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945
945화 촉룡의 비늘
엽현과 소범은 다시 고요해진 숲속을 걷기 시작했다.
천천히 걷는 중에 엽현은 이따금씩 소범을 흘끗 쳐다보았다. 소범의 실력이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한 것에 놀랐던 탓이다.
조금 전에 겨루었던 이수는 천주검이 박히지 않을 정도의 단단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소범은 그 꼬리를 마치 두부 자르듯 잘라버리지 않았던가!
혹시 소범의 검이 더 날카로워서 그랬던 걸까?
“소범아, 잠깐 네 검을 좀 볼 수 있을까?”
소범은 아무 경계도 없이 곧장 들고 있던 검을 건넸다.
이네 엽현은 두 손을 검을 받쳐 들고서 구석구석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엽현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소범의 검은 무슨 천하의 신병 같은 것이 아닌, 정말로 보통의 철검이었다.
게다가 녹까지 잔뜩 낀!
[검에서 뭔가 느껴지시오?]엽현의 물음에 탑 구층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무것도.]엽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구층 존재마저 특별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것은 둘 중 하나였다. 소범의 검이 정말로 그저 그런 고철 덩어리이거나, 아니면 너무나 대단한 검이어서 두 사람이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검을 살펴본 엽현은 녹슨 철검을 소범에게 돌려주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천주검을 소범에게 보여주었다.
“소범아, 네가 볼 때 이 검은 어때?”
그 말에 소범이 천주검을 살펴보더니, 눈을 깜빡이며 자신의 철검을 들어 보였다.
“네 생각에 네 검이 더 낫다는 거야?”
이에 소범이 고개를 젓더니, 손가락으로 검을 가리키고, 그다음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제야 엽현은 소범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적합함!
소범은 철검이 자기 손에 더 어울린다고 말하고 있던 것이다.
검이 좋고 나쁨을 떠나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얼마나 어울리느냐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옷이라 해도 어울리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지 않은가!
엽현은 뜻하지 않게 깨달음을 얻었다.
잠시 후, 엽현은 미소를 띤 채 검을 갈무리했다.
“이제 가자.”
말을 마친 엽현은 소범의 손을 붙잡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두 사람은 울창한 숲속을 지나고 있었다. 이따금씩 멀리서 이수의 포효소리가 들리고 대지의 진동이 느껴졌다.
엽현은 이럴 때마다 자신이 이수들의 세상에 떨어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만약 이들 이수가 한꺼번에 오유계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 위주의 세상이었던 오유계는 상상할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물론 엽현에게 이는 근심보다는 흥밋거리에 가까웠다.
이수들이 오유계를 지배하든 말든, 자신과 친구들만 안전하면 그뿐이니까.
그런 것보다는 차라리 무변지하성이나 허무계에 관심을 두는 쪽이 더 재밌을 듯했다.
이 두 곳도 같은 금역으로 묶이는 만큼 결코 영생지보다 못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언젠가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탐험해 보리라!
물론 정말로 가게 된다면 매우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곳에서도 소범과 같은 강자가 자신의 편이 되어 준다는 법은 없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소범을 만난 것은 하늘이 내린 행운이었다.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밝은 대낮에 떳떳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을까?
그의 실력이 예전보다 크게 향상된 것은 맞으나, 그렇다고 이수들 사이에서 유유자적할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이 순간, 엽현에게는 또 하나의 골칫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수경.
이수경이 자신에게서 만유서옥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이동하는 중에, 엽현은 마침내 흑의인이 알려 주었던 대장간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 대장간은 강과 인접해 있었다. 뒤로는 몇 개의 커다란 산이 대장간을 내려다보듯 우뚝 서 있었다. 엽현은 이 대목에서 다소 기괴함을 느꼈다.
어느 대장간이 이런 곳에 자리한단 말인가?
어쨌든 엽현은 소범과 함께 대장간 안으로 들어섰다.
대장간 안은 바깥에서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크게 특별하다고 할 만한 점은 없었다. 그저 주변에 몇 점의 병기들이 이리저리 너부러져 있긴 했지만, 모두 매우 평범하여 주의를 끌기는 어려웠다.
“계십니까!”
엽현이 목청을 높여 보았지만 아무도 대꾸하는 이가 없다.
사람이 없는 건가?
혹시나 해서 다시 불러 보았지만, 반응이 없기는 마찬가지.
이에 엽현이 대장간 더 깊숙한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이때, 강대한 기운이 엽현의 몸을 휘감았다.
누군가 있구나!
엽현이 황망히 멈춰 서서 예를 차리려는 순간, 그의 눈에 어느새 검을 휘두르고 있는 소범이 들어왔다.
부앙-!
콰콰콰쾅-!
엽현이 채 말리기도 전, 소범의 일검에 대장간 전체가 폭삭 내려앉았다.
“…….”
잠시 후, 먼지가 걷힌 잔해더미 위에서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은 막 차를 들이키려는 찰나였는지, 찻잔을 입에 댄 채로 굳어 있었다.
회색 장포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말없이 소범을 응시했다. 소범 역시 호전적인 기운을 내뿜으며 그 눈빛을 마주했다.
언제 또 검을 날릴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
“실례합니다,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엽현이 황급히 고개를 숙여 보았지만, 노인의 시선은 소범에게서 떠날 줄 몰랐다.
“과연 천맥자, 대단하구나. 그리고 너 역시도.”
마지막 말은 엽현을 향해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엽현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내가 대단하다고? 여기서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
“그래, 무슨 일로 찾아온 게냐? 차나 한잔 달라고 온 건 아닐 테고.”
“저… 제련을 좀 배우고 싶습니다.”
“쇠 두들기는 걸 알려달란 말이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허허허, 글쎄다. 제련이란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너는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쇠를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구나. 오히려 불순한 동기가 있는 것 같으니 거절하도록 하겠다.”
“…….”
[하하하하!]이때 구층 존재의 웃음소리가 엽현의 머릿속을 울렸다.
[꼴좋다! 네 녀석이라도 매번 운이 좋은 것은 아니었군! 아이고 고소해!] […….]이때 엽현 앞에 노인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비록 네게 쇠 다루는 법을 알려주진 않겠지만, 다른 도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도와주도록 하겠다. 나 역시 그리 고지식한 늙은이는 아니니 말이다.”
이때 구층 존재의 실망 섞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제길, 영감탱이가 왜 이랬다저랬다 해. 방금 전에 한 말은 취소다, 취소!]“…….”
이때 노인이 엽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내가 왜 너를 도우려는지 궁금하지 않느냐?”
“그렇지 않아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후… 내 말을 들어 보거라. 오래전 나는 제련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살았었다. 그런데 그자를 만나게 된 후, 이런 믿음이 산산조각이 났지.”
“그자라면… 혹시 선각자 말입니까?”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만난 후, 내 제련술은 실제로 그저 그런 정도란 걸 알게 되었다. 왜 이런 말 있지 않느냐. 하늘 위에 하늘 있고, 사람 위에 또 사람 있다고. 사람이란 모름지기 겸손해야 하는 법이다. 세상에는 반드시 너보다 강한 자가 있기 마련이니까.”
“그럼… 도와주신다고 한 이유가 혹시 제가 선각자의 전인이기 때문입니까?”
“전인?”
순간 노인이 눈을 크게 뜨고 엽현을 바라보았다.
“왜 그리 보십니까? 혹시 제 말이 틀렸습니까?”
“전인이라… 그래, 어찌 보면 그런 셈이겠지.”
그런 셈?
엽현은 다소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셈이라니.
혹시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다른 걸까?
“그건 그렇고, 정말로 날 찾아온 이유나 말해 보거라.”
노인의 말에 엽현은 조심스레 천주검과 진혼검을 꺼내 놓았다.
“이 두 검의 경지를 끌어 올리고 싶습니다.”
노인의 시선이 두 검에 향한 순간, 그의 눈빛이 밝게 빛났다.
“오랜만에 보는 좋은 검이로구나! 특히 이 검.”
노인이 천주검을 집어 들었다.
“아직 불안전한 상태인데도 이 정도라니, 만약 떨어져 나간 다른 부분까지도 합쳐지게 된다면 천하에 둘도 없는 신검이 될 것이다.”
“아참, 그렇다면 이것들도 한 번 봐 주십시오!”
엽현이 부랴부랴 두 개의 검을 더 꺼내 놓았다.
바로 흑검과 소칠의 검이었다.
엽현은 당시 소칠의 검을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려 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소칠이 거절했기에 검은 그대로 엽현에게 남았다.
소칠의 검과 흑검, 천주검, 그리고 천녀의 검은 원래 한 자루였다.
하지만 너무나 강력한 위력 탓에 검의 주인이었던 청아가 그것을 네 등분으로 나누었고 이제는 그것들이 모두 엽현의 차지가 된 것이다.
엽현은 잠깐이지만 청아가 있던 그때 네 검을 하나로 합쳐 본 적이 있었다. 당시의 위력은 정말이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청아!
청아를 떠올리자 엽현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따듯하게 대해 주었던, 그러나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그 여인!
이때 엽현의 분위기가 바뀐 것을 눈치챈 소범이, 가볍게 그의 손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정신이 돌아온 엽현이 가볍게 미소를 보였다.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소범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걱정스런 얼굴이었다. 이때 소범이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고이 간직하던 사탕 한 알을 꺼내 엽현에게 건넸다.
이에 마음이 따뜻해진 엽현은 사탕을 덥석 받아 바로 입에 집어넣었다.
이런 선의는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엽현이 사탕을 먹는 모습을 보자, 소범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웃을 줄 모르는 그녀에게는 이것이 기쁨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 세 개의 검은… 상당히 흥미롭구나!”
검을 들여다보던 노인의 다소 흥분된 음성에 엽현이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말입니까?”
이때 노인이 불쑥 고개를 들어 엽현을 쳐다보았다.
“분명 한 자루가 더 있어야 할 것인데?”
그 말을 들은 순간, 엽현은 잠시 노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검을 볼 줄 아는 실력자이지 않은가!
엽현은 곧장 천녀의 검을 꺼내 들었다.
이것으로 네 자루가 한자리에 모두 모인 셈!
천녀의 검을 본 순간, 노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범검!”
“노인장도 범검을 알고 계십니까?”
“…대장장이가 범검을 모르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노인이 눈을 흘기자, 엽현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헤헤, 그런 게 아닙니다. 그저 예전에도 범검을 본 적이 있으셨는지 궁금했던 것뿐입니다.”
“…….”
“왜 그러십니까?”
잠시 침묵하던 노인이 눈으로 소범을 가리켰다.
“천맥자의 검이 바로 범검이다.”
범검!
순간 엽현의 눈이 커졌다. 평범한 검이라 생각했건만, 사실 범검이었단 말인가!
“그러나 그녀의 검은 여기 네가 가진 범검보다 강하지 않다. 이 검을 사용했던 자의 실력은 선각자에게도 뒤지지 않았을 것 같구나.”
엽현은 다시 한번 놀란 눈으로 노인을 쳐다보았다.
검 한 자루 만 가지고도 천녀의 실력을 짐작해 볼 수 있단 말인가!
이때 노인이 하늘을 향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의 세상은 정말이지 끊임없이 강자를 토해내고 있구나.”
“…….”
노인은 천녀의 검을 다시 엽현에게 돌려주었다.
“이 검은 내가 어찌 해볼 도리가 없구나. 그리고 여기 이 두 검에는 봉인이 걸려 있다. 알고 있었느냐?”
노인이 소칠의 검과 흑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두 검 역시 대단히 특별한 신병들이지만, 봉인에 걸려 있는 까닭에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잠시 후에 내가 한 번 봐 주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검은 지금보다 더 강화시킬 수 있을 것 같구나. 그런데 한 가지 재료가 필요하니 네가 직접 구해 와야만 할 것이다.”
“어떤 재료 말입니까?”
“촉룡(燭龍)의 비늘!”
촉룡의 비늘?
“촉룡이 뭐 하는 놈입니까?”
“하하, 촉룡은 오래전 이수방 일위에 있었던 존재다. 당시 이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인과 함께 오유겁에 맞섰던 강자였지.”
“그 촉룡이 아직 살아있습니까?”
이 물음에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쉽게도 그는 온몸으로 오유겁의 힘을 받아 낸 탓에 결국 죽고 말았다. 그 시체를 기인이 끌고 와 저기에 묻어 주었지.”
노인이 손을 들어 먼 곳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천 리쯤 떨어진 곳에 장미산(章尾山)이란 곳이 있다. 그리로 가 보거라.”
이때 엽현이 우물쭈물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 아무리 그래도 죽은 자의 시체에 손댄다는 건 천벌을 받을 짓이 아니겠습니까?”
“걱정 말거라. 다른 자가 그런 짓을 하면 시체도 남아나지 않겠지만, 너라면 아무 일 없을 것이다.”
“정 그렇다면…….”
이때, 계옥탑 구층에서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젠장, 이거 봐, 이거 봐. 또 이런다니까? 도대체 무슨 뇌물을 갖다 바쳤기에 하늘이 이렇게 편애하는 거지? 거 좋은 거면 나도 좀 같이 알면 안 되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