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95
95화 죽더라도 살아남아야 해!
엽현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영수검에서는 강렬한 전의가 무궁무진하게 피어나고 있었으며, 그로인해 동굴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의? 검의?
사실 양자는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둘은 하나인 것이다!
엽현은 검수이지만 넓게 보면 무도인이기도 하다. 한 명의 검수로서 적을 상대할 때 어찌 전의가 없을 수 있겠는가?
검의란 검에 기초를 둔 것이지만 그 본질은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전의 역시 마찬가지로 사람이 핵심이다.
그러니 검의든 전의든 모두 한 줄기에서 시작되는 셈이다.
이전까지 엽현은 의식적으로 검의와 무의를 분간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고서 전의와 검의가 서로 융합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 완벽한 형태로 말이다!
전의의 핵심은 바로 ‘전(戰)’에 있다. 그렇다면 검을 쥐는 목적은 무엇인가? 마찬가지로 ‘전(戰)’ 이다.
양자의 핵심이 서로 같은 것이다!
엽현의 머리 위에서 영수검이 극렬히 진동하고 있다.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의가 마치 홀로 온 세상과 싸우기라도 할 정도로 충만했다.
바로 이때, 영수검에서 또 다른 의경이 피어올랐다.
검의!
전의에서 검의로 전환했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영수검에서 청명한 검명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전의와 검의는 서로 한데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밀어내지도 않았다. 똑같이 영수검 안에 존재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엽현이 공중에 떠올라 영수검을 쥐었다. 그러자 전의와 검의가 그의 몸을 온통 둘러쌌다.
그러면서도 두 의경은 서로 조화가 있었다.
엽현이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전(戰)!
만약 누군가 ‘전의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눈앞의 중년인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전(戰)’이란 한 글자로 설명할 수 있었다.
이 ‘전(戰)’은 일검정생사에 깃들어 있는 ‘세(势)’와 맥을 같이 한다.
눈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얼마나 강한지 상관없이 나를 죽이려 한다면 반드시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아니!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
엽현에게 부족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신념이었다.
검도신념(劍道信念)!
생각이 통하면 마음이 열린다!
엽현이 눈을 번쩍 떴다. 순간, 그의 손에서 검이 요란하게 진동하더니 순식간에 동굴 천장을 뚫고 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동굴 안에 남은 엽현의 몸 주위에는 한바탕 강대한 기운이 그의 주위를 휘감고 있었다.
바로 이때, 하늘의 구름들이 서서히 동굴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뿐 아니라 동굴 상공에 하늘을 수놓는 무지개가 피었다.
천지이변(天地異变)!
동굴 안에서 중년인이 두 눈을 크게 뜬 채 엽현을 바라보았다.
“무도종사와 검도종사의 경지를 동시에 이루다니… 게다가 천지이변까지……. 도대체 어떤 대단한 인물이 이와 같은 무인을 길러냈단 말인가!”
무도종사(武道宗師)!
검도종사(劍道宗師)!
엽현은 이 두 가지 경지를 한 번에 이룬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엽현의 체내에서부터 강대한 기운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 기운은 그가 지난번 삼켰던 명계(明階) 급 검의 역량이었다. 당시 그는 전투를 위해 이 힘을 억눌러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도, 더 이상 이 힘을 억누를 수도 없는 것이다.
한 자루 명계 검의 힘. 공포스러울 정도의 힘이었다.
이때, 엽현의 전신이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보고 중년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아직 경지를 돌파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나 강렬하단 말인가!?”
중년인 역시 한 명의 천재 무인으로 추앙받던 인물이다. 그는 눈앞에 엽현에게 벌어지고 있는 기이한 현상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의 그 역시 엽현과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쳤던 것이다.
그 순간, 엽현의 떨림이 더욱 격렬해졌다.
중년인이 근엄한 얼굴로 엽현을 향해 슬쩍 손을 뻗었다. 그러자 엽현의 몸에서 발작하던 광포한 힘들이 중년인의 몸으로 들어오면서 천천히 진정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평정을 되찾은 엽현은 검의 힘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엽현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쾅!
어떤 강대한 기운이 엽현의 체내로부터 회오리치며 그의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때, 중년인이 엽현을 향해 물었다.
“통유경에 이를 수도 있었는데, 어찌하여 멈춘 것이냐?”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너무 이릅니다.”
중년인이 기이하다는 표정으로 엽현을 바라보다 웃으며 말했다.
“무슨 뜻이냐?”
“저는 능공경에 이른지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경지를 견고히 하기도 전에 경지의 상승을 이르게 된다면 그저 허황될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허… 너와 같은 어린 소년이 조급해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보기 드문 일이다. 네 말이 맞다. 아직 능공경에 익숙해지지도 않았으면서 통유경에 이른다는 것은 그저 빛 좋은 개살구 신세가 될 뿐이다. 만약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냥 넘어가도 좋겠지만, 너처럼 기초가 튼튼한 아이가 각 경지에 이를 때마다 충분히 견고히 다지게 된다면, 훗날 남들은 감히 넘보지 못할 대단한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엽현이 중년인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차렸다.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하하하! 사실 지금의 너는 경지에 있어서 다른 통유경 강자들과 큰 차이가 없다. 훗날 네가 진정으로 통유경에 이르게 된다면, 너와 겨룰 수 있는 통유경 강자들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중년인이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무도방면에 있어서도 너는 이미 어떻게 전의를 응집하는지, 어떻게 최대의 위력을 끌어내는지 배웠다. 다만, 다른 무도에 대해서는 네가 단전이 없는 관계로 더 이상 가르쳐줄 수가 없을 것 같구나.”
엽현이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뭐라도 좋습니다. 저에게 가르침을 주셨으면 합니다.”
엽현의 말에 중년인이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뗐다.
“검수든 무도인이든 누구나 모두 본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본심이란 가장 진실되고 원초적인 생각이다. 무인들은 때때로 실력이 상승함에 따라 이전에는 없었던 생각들과 야심이 생긴다. 이런 변화는 좋은 점도 있지만 분명 나쁘게 작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가난한 자가 하루아침에 부자가 됐을 때, 자식을 버리고 부인을 갈아치우는 경우가 바로 그런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본심을 버리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년인이 엽현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사람은 항상 마음속에 척도를 지니고 있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과 본인 스스로를 측량할 수 있도록 말이다.”
엽현이 다시 한번 허리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하하하.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자면, 너의 훌륭한 자질과 천성은 네가 수련하는데 긍정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점들이 오히려 네 발목을 붙잡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항상 성공에 익숙한 자들은 어느 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닥칠 때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경우가 있다.
너희 검수들은 흔히 ‘생각이 통하면 마음이 열린다’는 말을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이 말을 반대로 보자면, 만약 생각이 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때 명심해야 할 점은 결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길의 왕도는 천천히 걷는 것이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이때 중년인이 오른손을 펼치자, 어디선가 금색 상자 하나가 엽현의 앞으로 날아왔다.
엽현이 중년인을 향해 의아하다는 눈빛을 보내자 중년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한 번 열어 보거라!”
엽현이 조심스레 상자를 열자 그 안에서 용의 형상으로 된 영패 나왔다. 엽현이 영패를 뒤집어보자 황금색으로 새겨진 두 글자가 보였다.
국사(國士)!
그 글자를 본 엽현의 눈에 의아함이 묻어났다.
“그것은 저국에서의 신분을 나타내는 영패다. 비록 너는 저국 사람이 아니지만 그 영패를 지니게 됨으로써 저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그 영패 안에는 ‘취룡진(聚龍陳)’이라는 진법이 있다. 네게 최상급 영석이 있다는 전제하에 취룡진을 발동하면 그로부터 용기(龍氣)를 얻을 수 있는데, 이 용기는 너의 역량과 육신의 단단함을 극도로 증가시켜 줄 것이다.”
그의 말에 엽현이 영패를 품 안에 갈무리했다.
“감사합니다!”
“네가 오늘 나의 비경에 들어왔으니, 너와 나는 인연을 맺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네게 조금의 인정을 베푸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 소년이여, 좋은 날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하마!”
말을 마치자 중년인의 몸이 점점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중년인은 더 이상 장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엽현이 고개를 돌리자 방금 남자가 있던 자리 곁에 다른 두 개의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엽현은 상자에 손대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너무 욕심을 부려서도 안 되는 법이다.
중년인이 엽현에게 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은 이상, 그것들을 가져갈 수는 없었다.
엽현이 장내를 떠나가고 얼마 후, 중년인이 다시 동굴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덩그러니 제자리에 남아있는 두 개의 상자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좋은 아이로구나…. 저런 아이가 우리 저국인이 아니라니… 통재로다…….”
한편 엽현이 동굴을 나서자, 하늘이 빙빙 돌며 모든 것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엽현의 신형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엽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그의 눈에 비경 밖의 풍경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자신에게로 달려오는 기 원장과 강구 등이 보였다.
가장 먼저 그의 곁에 도착한 묵운기가 소리쳤다.
“임마, 우리는 네가 실종된 줄 알았어!”
“볼 일이 좀 남아있어서 늦었네. 오래 기다렸지?”
이때, 강구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무사하니 다행이야. 그럼 나는 이만 가 볼게.”
그 말과 함께 강구가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휙 돌리더니 갑자기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야! 안 쫓아와!?”
“…….”
그의 옆에서 묵운기가 이 장면을 보고는 낄낄대며 웃었다.
잠시 후, 엽현은 강구를 배웅하며 서로 나란히 걸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강구였다.
“저들은 결코 이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야. 네가 황성으로 돌아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알 수 없어.”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지!”
“너를 도와주고 싶어도, 이제는 이미 내 능력을 벗어나 버렸네.”
엽현이 씩 웃으며 강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강구, 이미 충분히 많은 도움을 받았어. 그러니 더 이상 위험한 일에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아. 그건 너에게도, 강국 황실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닐 테니까.”
강구가 걸음을 멈추고는 엽현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엽현이 어색한 나머지 무슨 말이라도 꺼내려는 순간, 강구가 한 걸음 다가와 헝클어진 엽현의 옷매무새를 만져주며 말했다.
“반드시 살아남아. 죽더라도 살아 남아야 해. 반드시!”
강구는 그렇게 엽현을 남겨 둔 채 혼자 걸어갔다.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강구는 순식간에 엽현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그 자리에 잠시 머물러 있던 엽현이 멀찌감치 떨어져 자신을 보고 있던 기 원장을 향해 소리쳤다.
“창목학원으로 가겠습니다!”
기 원장이 아무 말 없이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엽현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다 죽여 버리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