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952
952화 누님! 그런 게 아닙니다
엽현이 발견한 것은 제도산 절벽에 걸려 있는 엽령이었다.
그녀의 복부는 날카로운 창에 의해 꿰뚫린 상태였고, 창에서 흘러나오는 신비한 기운이 그녀의 몸을 끊임없이 갉아 먹고 있었다.
흡수!
제군은 엽령의 몸을 조금씩 흡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엽현은 순식간에 혈인(血人)이 되어버렸다. 그 모습을 본 현와는 경악을 금할 길이 없었다. 저게 도대체 무슨 혈맥이란 말인가!
바로 이때, 자리에서 사라진 엽현이 엽령 앞에 나타났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엽현을 확인한 엽령.
그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흘렀다.
“오빠…….”
엽현이 말없이 엽령의 몸을 금제하고 있는 창을 부여잡았다. 그 순간 그의 손이 불타올랐다.
엽현이 이와 상관없이 창을 뽑아내자, 엽령이 그대로 엽현의 품 안에 쓰러졌다. 한 손으로 엽령을 안은 엽현이 다른 손으로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기다리라니까 왜 왔어…….”
“…살아있는지 보러 왔지. 만약 죽었으면 나도 죽으려고.”
순간 엽현의 눈에서 두 줄기 강물이 터져 나왔다.
“정말 바보 같다니까.”
“오빠…….”
떨리는 눈으로 엽현의 손을 꼭 붙잡는 엽령.
“혈맥의 힘, 그거 쓰지 마.”
엽령은 이미 엽현의 혈맥이 날뛰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혈맥이 활성화되면 엽현 역시 피해를 입는다는 걸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엽현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저었다.
“상관없어. 널 이렇게 만든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해!”
먼저 엽령을 계옥탑 안에 피신시킨 엽현은 고개를 돌려 소범과 대치 중인 제군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입에서 야수의 괴성이 터져 나왔다.
“너는 오늘 반드시 죽는다!”
말을 뱉음과 동시에 엽현이 자리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한 줄기 검광으로 변한 엽현이 그대로 제군을 향해 일검을 휘둘렀다.
이때 엽현이 날아오는 것을 확인한 제군이 한 손을 들어 앞을 방어했다.
쾅-!
엽현과 제군이 있던 공간이 크게 요동치면서 엽현의 신형이 뒤로 멀찍이 날아갔다. 제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공격을 받아 낸 제군.
하지만 그의 표정은 크게 일그러져 있었다. 엽현의 검을 막은 팔에 어느새 균열이 일었던 것이다.
이를 확인한 제군이 놀란 눈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대단한 검이로군! 과연 촉룡의 비늘인가!”
말과 함께 제군이 오른손을 들어 갑자기 허공을 쥐었다. 그 순간 엽현을 에워싼 공간이 그대로 찌그러졌다.
그러나 엽현은 그 공간 안에서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았다.
촉룡갑이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했던 것이다.
이를 본 제군이 미간을 찌푸리며 재차 출수하려는 때 그의 옆구리 쪽에서 한 자루 검이 날아들었다.
바로 소범의 검이었다.
제군은 어쩔 수 없이 다시 팔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쾅-!
이 충격에 소범이 한 발 밀려난 반면 제군은 곧장 백 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
그가 자리에 멈춰 서기 무섭게 이번에는 뒤편에서 붉은 검광이 날아들었다. 이에 제군이 재빨리 뒤로 돌며 일권을 날렸다.
쾅-!
붉은 검광을 그대로 흩어버린 제군의 주먹은 여세를 몰아 엽현의 가슴을 강타했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엽현의 신형이 실이 끊어진 연처럼 튕겨져 나갔다. 다만, 그가 있던 공간이 완전히 박살 날 정도의 충격이었음에도 엽현은 큰 부상을 입진 않았다.
촉룡갑을 착용한 덕분에 원래 받아야 할 타격의 팔 할이 무용지물이 돼 버린 것이다.
나머지 이 할의 공력 정도야 엽현의 육신으로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게다가 여기서 불사지체를 운용한다면 앞으로 반 시진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는 불사지체 하나만으로는 부족하고, 촉룡갑과 함께 저항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망할 놈의 영감탱이!”
제군은 자신의 공격을 받고도 엽현이 멀쩡하자, 애꿎은 대장간 노인을 탓했다. 아니, 따지고 보면 그를 탓하는 게 옳았다. 왜냐하면 촉룡갑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대장간 노인이었으니까.
그는 백악시대에도 최고로 평가받던 대장장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아직까지도 그를 넘을 대장장이는 탄생하지 않았다.
촉룡의 비늘이란 재료 자체도 대단한데, 최고의 대장장이의 손을 거쳤으니, 제군으로서는 도저히 촉룡갑을 뚫고 엽현을 공격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바로 이때, 한 줄기 검광이 그의 정신을 바짝 들게 했다.
출수한 것은 다름 아닌 소범.
소범이 공격한 것을 본 제군은 순간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공격은 정말이지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날카로웠던 것이다.
정면으로 맞서고 싶지 않았던 제군은 순식간에 백 장 뒤로 신형을 물렸다. 이때, 소범이 개의치 않고 빈 공간에 검을 찔러 넣었다.
퓻-!
순간 제군이 황급히 팔로 앞을 막았다.
쾅-!
제군이 재차 뒤로 미친 듯이 밀려났다. 이때 검을 막은 오른팔에 선혈이 낭자했다.
소범이 재차 출수하려는 이때, 갑자기 제군의 전신에서 검은 비늘 같은 것이 돋아났다. 이와 함께 매우 음산한 기운이 사방으로 쏟아져 나왔다.
반인반요(半人半妖)!
바로 이때, 소범의 검이 날아들었다.
팟-!
공간을 가르며 날아드는 날카로운 검.
이때 제군이 오른손을 갈고리 모양으로 만들어 내질렀다. 그러자 그의 손이 돌연 조류의 발톱으로 바뀌었다.
쾅-!
검의 힘을 견뎌낸 발톱은 그대로 소범의 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힘을 줘 부러뜨리려고 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발톱이 부러질 뻔했다.
제군이 인상을 찌푸리는 이때, 엽현이 재차 그의 뒤편에서 나타났다. 그러자 제군이 번개처럼 엽현의 복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결국 엽현의 검이 채 도달하기도 전, 제군의 발톱이 엽현의 복부를 움켜쥐었다.
촥-!
그대로 복부의 상처를 입고 멀리 날아가는 엽현. 그러나 이때 엽현의 검끝이 제군의 이마 부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잠시 멈춰 선 제군이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자 그의 손끝을 타고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순간, 제군의 살기 넘치는 눈빛이 엽현에게로 향했다.
“제법이구나, 인간. 나를 화나게 하는 데 성공하다니!”
바로 이때, 제군의 입에서 야수의 괴성이 흘러나왔다.
쾅-!
이와 동시에 반경 수만 리 이내의 공간이 갈라졌고, 하늘 높이 솟아 있던 산들이 무너져 내렸다.
이때 제군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려는 소범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나 대신 잠시 천맥자를 붙잡아 두어라!”
음성이 떨어진 순간, 돌연 장내에 누군가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히히히 천맥자와 진작부터 겨뤄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소원을 이루게 됐군!”
웃음소리가 뚝 그친 순간, 소범의 앞에 붉은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찰나의 순간, 머리카락처럼 얇은 붉은 기운이 소나기처럼 소범에게 쏟아져 내렸다.
이를 본 순간 현와의 안색이 크게 어두워졌다.
사령(邪靈)!
영생지에 서식하는 이 사령은 웬만한 강자들도 꺼리는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사령이 제군을 돕고 있었다니!
한편, 소범은 전혀 동요함 없이 평소처럼 녹슨 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붉은 기운들을 모두 제거해 냈다. 바로 이때, 사령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소범의 사방의 공간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에 소범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어디론가로 신형을 날렸다.
한편, 드디어 엽현과 단독으로 마주하게 된 제군은 천천히 엽현을 압박해 들어가고 있었다.
“자, 어떻게 죽으면 좋겠느냐?”
제군의 정면에 서 있는 엽현은 서서히 혈맥지력의 지배를 받아 이성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멍청한 녀석! 정신 차려라! 저런 강자에게 함부로 달려들었다간 목숨이 두 개라도 남아나질 않을 게다!]“…….”
아직 이성을 완전히 놓지 않은 엽현은 좀처럼 혈맥지력을 억누를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는 지금 무척이나 상대를 죽이고 싶었고, 그러려면 결국 혈맥지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바로 이때, 제군의 시선이 엽현의 복부로 향했다.
“너는 뭔데 거기서 계집애처럼 재잘대는 것이냐?”
“뭐? 계집애!?”
순간 구층 존재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러는 너는 뭐 하는 종자이기에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 아니, 가만… 반은 인간에 반은 요수… 이거 이제 보니 완전히 잡종이었구나! 잡종 주제에 감히 노부에게 계집애라 부른 것이냐!”
“…….”
엽현은 말없이 제군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구층 존재의 발언은 분명 제군의 아픈 부분을 찌른 것이 분명했다. 다만 이는 절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반인반요였으니까.
하지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제군의 표정은 일순 괴물처럼 일그러져갔다.
“이 벌레만도 못한 자식이 날 모욕해? 네가 죽고 싶은 게로구나!”
“벌레? 하하하하! 반인반요 주제에 날 벌레라 부르다니! 어디 자신 있으면 들어와서 한 판 붙어 볼 테냐!”
쾅-!
바로 이때, 강렬한 기운이 돌연 제군의 몸 안에서 휘몰아치듯 흘러나왔다. 그 순간, 반경 수만리의 공간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이를 본 엽현이 깜짝 놀라 출수하려는 때, 그 새를 참지 못하고 구층 존재가 또 입을 열었다.
“아이고, 저 잡종 놈 꼬라지 내는 것 좀 보소. 그 욱하는 성질은 누구를 물려받은 것이냐? 요수 쪽이냐, 아니면 인간 쪽이냐? 사실 네 부모가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 종족의 벽을 넘어 사랑을 한 것은 아주 고귀한 것이지. 잘못된 것은 바로 잡종 주제에 분수도 모르고 남의 보물이나 탐하려는 네 욕심이 아니겠느냐? 그것도 겨우 스무 살이나 될까 말까 한 어린아이를 상대로… 어? 어쭈, 왜 눈까리를 그렇게 떠? 그렇게 맘에 안 들면 이리 들어오너라! 내 삼 초 안에 끝내지 못하면 네 양자로 들어가겠다!”
구층 존재의 말을 듣고 있던 엽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입담이 매우 거친 와중에 모두 맞는 말만 하고 있지 않은가!
이때, 잔뜩 성이 나 있던 제군이 돌연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이거 이제 봤더니, 탑에 갇힌 자였구나.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놈이 도발을 하다니, 별 참 이런 우스운 경우를 다 봤나. 하하하!”
“이 잡종놈이… 안 들어오고 뭐하고 있느냐? 설마 겁먹은 건 아니겠지?”
제군은 더 이상 구층 존재의 도발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여유 있는 미소를 지어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반인반요인 것은 맞지만 너 따위 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 자, 이제 누가 불쌍한 놈이지? 어디, 약 오르면 한 번 나와 보던가. 입 아프게 거기서 떠들지만 말고. 하하하하!”
“…….”
순간, 자신만만하던 구층 존재의 음성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가 원하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강제로 밖으로 나가 자신을 약 올리는 제군을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엽현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 뭔가 잘못되어 엽현이 죽기라도 한다면, 그 무서운 여인이 곧바로 검을 들고 쫓아 올 테니, 그로서는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던 것이다.
천녀의 모습을 떠올린 구층 존재는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만 같았다.
이때, 제군의 비꼬는 듯한 웃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어찌, 나오지 않을 건가? 아차차, 못 나오는 거였지! 이거 미안하게 됐구나! 하하하! 그런데 내가 너였으면 거기 갇히느니 차라리 혀 깨물고 자진했을 터인데, 그럴 용기는 없는 것인가? 하하하하!”
“…….”
“되었다. 저 철창 안에 갇힌 구관조만도 못한 녀석에게 자꾸 말 해 봐야 내 입만 아프지. 너는 거기서 이 꼬마가 죽는 모습이나 잘 지켜보거라!”
이때, 구층 존재의 음성이 엽현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아이야,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도박 한번 해 보지 않겠느냐?] [도, 도박? 어, 형씨. 대체 뭐 하러 그러시오? 일단 진정 좀 하시오!] [제기랄, 진정은 개뿔! 내 오늘 저놈의 주둥아리를 찢어 놓지 않으면 단명할 것 같다. 네 몸을 한 번만 빌려다오!] […그러면 확실히 저자를 처리할 수 있소?] [만약 죽이지 못하면 오늘부터 내가 네 동생이다. 걱정 말거라!] [아이… 참, 안 되는데. 그럼 어디 한번 해 보시오!]엽현의 동의가 떨어진 순간, 그의 몸이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때, 엽현의 눈동자가 돌연 짙은 자주색으로 번뜩였다.
육신은 여전히 엽현의 모습이었으나, 그 영혼은 완전히 구층 존재의 것으로 교체된 상태였다.
바로 이때, 구층 존재가 세상에 출몰함과 동시에 이수경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 * *
한편 같은 시각.
사유계의 어느 성공을 거닐던 천녀가 돌연 걸음을 멈춰 세우고 오유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녀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흘러나왔다.
오유계, 제도산에 있는 구층 존재는 천녀의 서늘한 눈빛을 느끼자 당황하며 사유계 쪽을 향해 소리쳤다.
“저, 저, 누님! 에헤이, 들어봐요! 그거 아니에요, 누님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닙니다. 나는 그저 이 잘생긴 총각을 도와주려는 것뿐이라굽쇼! 이 녀석아 뭐 하느냐, 빨리 누님께 설명하지 않고! 이러다 나 진짜 죽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