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974
974화 돈을 내시오!
밥!
엽현이 고개를 돌려 탁자 위를 보았다. 이제야 엽현은 그녀의 그릇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도가 떠나고 장내에 홀로 남은 엽현.
식기들을 정리한 엽현은 찻잔을 들고서 계산대 앞에 비스듬히 기대어 섰다.
“구층 주민, 저 여자를 어찌 생각하시오? 고시대부터 지금까지, 모르는 게 없어 보이는데.”
[나도 만나 본 적이 없으니 무어라 평가할 순 없다. 그저 일반인은 아니라는 것 정도?]“인간이긴 한 거요?”
[확신할 수 없다.]“으음?”
구층 존재의 말에 엽현이 눈살을 가볍게 찌푸렸다.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하느냐? 지금으로써는 악의는 없어 보이니 그걸로 된 것 아니냐?]“하긴… 그것만 해도 다행이지.”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던 이때, 문이 열리고 전당포 안으로 웬 노인 하나가 들어왔다.
장내를 둘러보던 노인이 엽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소도 낭자는 어디 있소?”
“아, 사정이 있어 잠시 나갔소. 지금은 내가 가게를 맡고 있으니,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시오.”
“그대는…….”
노인이 미심쩍은 듯한 표정을 짓자, 엽현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소도의 오라비 되는 사람이오.”
“…소도 낭자에게 가족이?”
노인은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이때 구층 존재의 음성이 엽현에게 들려왔다.
[야, 너 진짜 이러다… 큰일 나.]“소도 낭자의 오라버니?”
엽현을 바라보는 노인의 분위기가 묘했다.
분명 전혀 믿고 있지 않은 눈초리였다.
이에 엽현이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젊은 친구, 농담하지 마시게. 소도 낭자가 이곳을 맡긴 걸로 봐서 보통 사이가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이때까지 그녀의 오빠라는 자를 본 적은 없네. 그녀의 신분도 신분이거니와 그대는 우리와 동시대 인물도 아닌데 어찌 그런 말이 가능하단 말인가. 많이 봐줘야 친구 정도가 아니겠는가?”
이 말을 듣자 엽현의 안색이 다소 검게 변했다. 허풍이 통하질 않는 것을 보니 상대 역시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이때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누구인지는 제쳐두고, 낭자는 언제쯤 돌아온다고 하던가?”
“그건 알 수 없소. 다만 그녀가 내게 전당포를 맡기고 갔으니, 원하는 게 있다면 내가 대신 처리해줄 수 있소.”
“그대가?”
“왜 그리 보시오. 날 전혀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표정 같은데?”
그 말에 노인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
[하하하! 멍청한 녀석. 이 노인의 경지는 결코 그 백의인의 아래가 아니거늘, 그런 허술한 말장난에 놀아날 듯싶더냐?]“크윽…….”
엽현이 구층 존재의 일침에 당황하고 있을 때 정면의 노인이 말했다.
“그럼 실례가 안 된다면 여기서 좀 기다려도 되겠는가?”
“하하, 물론이오. 이쪽으로 앉으시오!”
노인이 한 켠에 마련된 자리에 착석하자, 엽현은 부리나케 차를 한 잔 만들어 내왔다. 이에 노인 역시 공손하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찻잔을 내려놓은 노인은 그제야 정면의 엽현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나이에 벌써 범검을 얻다니, 보기 드문 인재구나.”
“하하, 그저 막 발을 담갔을 뿐, 자랑할 거리도 아니오!”
엽현이 손을 내저으며 말하자, 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그 정도면 이미 훌륭하거늘.”
“하하… 아참, 우리 전당포에는 물건을 맡기러 온 것이오, 아니면 소도 낭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온 것이오?”
“둘 다일세.”
“아… 하지만 그녀는 보통 다른 자를 돕는 일은 잘 안 한다고 하던데 말이오.”
“후… 그건 알고 있지만, 시도라도 하기는 해 봐야지.”
노인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보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행운이 있길 바라겠소.”
“고맙네. 그런데 젊은 친구는 소도 낭자와 어떤 관계인가?”
“음… 그냥 친구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오. 사실 나 역시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노인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묻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거짓이 아니라 진짜요. 그녀는 이미 내게 많은 편의를 봐주었소.”
“흠… 보아하니, 소도 낭자가 그대를 각별하게 생각하는 듯하군.”
“하하…….”
엽현은 실없이 웃기만 할 뿐, 굳이 자세한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찻주전자를 가운데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보통 엽현이 질문하고 노인이 대답하는 식이었는데, 노인 역시 엽현의 의도를 알았음에도 소도와의 관계를 의식해서인지 대부분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 * *
성가의 성.
엽현과 소도가 떠난 후, 성가의 가주 성천은 한 무리의 무인들을 이끌고 어느 심연(深淵)에 도착해 있었다. 연못가에서 내려다본 심연 속은 마치 어두운 동굴을 마주하는 듯 매우 시커멨다.
그리고 조용한 와중에 심연 안쪽에서 왕왕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악마의 숨결!
이 심연의 안쪽엔 바로 고시대에 존재했던 악마가 봉인돼 있던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서 이 악마의 존재를 아는 이는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 직접 악마를 봉인한 성가는 이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말없이 연못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성천.
그의 곁에는 열두 명의 황금 장포를 입은 노인들이 저마다 금색으로 빛나는 고서를 들고 서 있었다.
이때, 성천의 손에 피안도가 나타났고, 곧 그의 짧은 음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봉(封).”
음성이 떨어진 순간, 노인들이 빠르게 책을 펴들고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윽고 책 안에서 빠져나온 정체불명의 황금빛이 연못 상공으로 몰려들었다. 바로 이때, 성천의 손에 있던 피안도가 공중에 붕 떠오르더니, 몸을 덜덜 떨며 이 금광을 모조리 흡수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피안도가 연못을 향해 신비한 기운을 방출해냈다.
피안도.
이 신비한 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악마의 힘을 쇠약하게 한다는 점이었다.
오래전 성가의 선조는 바로 이 방법을 사용해 저 악마를 심연 안에 봉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연못가에서 열두 노인의 주문이 계속 이어졌다. 이제 연못 주위는 온통 황금빛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이와 함께 피안도에서 방출된 힘이 끊임없이 연못 안으로 흘러 들어가니, 악마의 신음소리는 점점 더 작아져만 갔다.
상황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하자 성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 성가의 선조는 천하를 위해 악마를 봉인할 생각은 했지만, 자신의 후대를 위한 대안은 마련해 두지 않았다.
하지만 성천은 달랐다. 그의 머릿속엔 온통 성가의 안위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만약 악마의 봉인이 풀려버리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게 될 것은 바로 성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의 성가는 선조가 있었을 때만큼 강한 것도 아니었기에 더더욱 절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대략 한 시진쯤 지났을 때, 심연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던 악마의 기운은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다.
이때에도 연못 주변은 온통 황금빛 일색이었다.
성천이 침착한 표정으로 허공의 피안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피안도에서 뿜어져 나오던 신비한 기운이 한층 더 강력해져 연못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다시 한 시진이 더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열두 노인이 책을 덮었다.
처음처럼 잠잠해진 연못.
성천이 그 안을 내려다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짓는다.
“생각만큼 어렵진 않았군.”
“과연 그럴까?”
바로 이때, 중후한 저음이 심연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 나왔다.
이 음성을 들은 순간, 장내 모든 무인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성천의 표정이 다시 날카로워진 이때, 연못 전체가 갑자기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심연 깊은 곳으로부터 강대한 힘이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이 순간, 연못을 뒤덮고 있던 황금빛이 터져 나갔고, 허공에 떠 있던 피안도 역시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무인들이 채 반응하기도 전, 피를 모아 만든 것 같은 붉은 손이 돌연 연못 밖으로 튀어나와 열두 노인들의 머리를 차례로 터트렸다.
수박처럼 우수수 터져 나가는 노인의 머리들!
이를 본 성천이 대경실색하여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때, 연못 상공에 검은 기운이 먹구름처럼 몰려들더니, 기이한 형체를 만들어 냈다. 순간, 검은 기운 가운데서 두 개의 주홍색 빛이 번뜩였다.
악마!
소스라치듯 놀라 뒷걸음질 치는 성천.
“으하하하하! 뭘 그리 긴장 하느냐?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단 말이냐?”
“악마… 결국 봉인을 뚫어 버린 것인가…….”
“하하, 안심 하거라. 아직 완전히 자유가 된 건 아니니까. 그러나 너희에겐 시간이 얼마 없다. 만약 나를 다시 봉인하고 싶다면 저런 쓰레기 도 말고 제대로 된 걸 들고 와야 할 것이다!”
“선조께서는 똑같은 피안도로 봉인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엔… 어째서지?”
이에 악마가 한심하다는 듯 성천을 바라보았다.
“머저리 같은 놈. 당시 날 봉인했던 것은 저따위 도가 아니라 네 선조와 소도라는 여인이었다.”
소도!
그녀를 떠올리자 성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성가는 이미 그녀에게 죄를 짓지 않았던가!
“후후, 아무튼 네 선조와 비교해 너의 실력은 정말이지 못 봐줄 정도로구나. 비록 적이긴 하지만 그의 실력은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었지. 하지만 나의 복수는 그것과는 별개로 진행될 것이다.”
“…감히 소도 낭자를 향해서도 복수할 수 있을까?”
그 말에 악마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는 내가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너희들이라면 할 만할 것 같은데? 하하하하!”
“…….”
성천은 악마를 노려보기만 할 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이때 연못 위의 그림자가 탐욕스레 공기를 빨아들였다.
“하… 이 얼마 만에 맛보는 맑은 공기인가. 만약 다시 나간다면 까불지 않고 조용히 지내리라…… 그러나…”
순간 주홍색 눈빛이 다시 성천에게로 향했다.
“그 전에 너희 성가 놈들은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겠지? 하하하!”
이 말을 끝으로 검은 안개는 가시 심연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던 성천, 정신을 차린 그가 돌연 밖을 향해 황급히 뛰쳐나갔다.
“성렴아, 어디 있느냐! 지금 당장 나와 전당포로 가자!“
* * *
천도전당포.
오랜 대화 끝에 엽현과 노인은 꽤 친해진 상태였다.
이때 엽현은 노인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노인의 이름은 원일(元一), 태일종(太一宗)이라 하는 세력의 종주였다. 태일종은 태상계(太上界)라는 독자적인 세계 안에 위치했다. 고시대 때부터 존재해 온 이들은 오유겁을 이미 두 번이나 경험한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원일이 소도를 찾아 온 이유는 태상계에 큰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 했다.
엽현과 마찬가지로, 원일 역시 엽현에게 호기심을 드러내며 매우 친밀하게 대했다. 이는 물론 소도를 염두에 둔 것이긴 했지만.
바로 이때, 전당포 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다름 아닌 성천과 성렴이었다.
‘저 둘이 또 무슨 일로 온 거지?’
엽현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때, 성천이 엽현을 발견하고는 주춤주춤 말을 꺼냈다.
“엽 공자, 소도 낭자는… , 어디 계시오?”
이에 엽현이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걸 알려면 돈을 내시오.”
[하하하! 아 이거 골 때리네!]엽현 곁에 있던 원일도 엽현에게서 소도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웃지 못하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성천이었다.
“여, 엽 공자… 당시 장로들이 그대를 홀대했던 것은 모두 내 불찰이었소. 성가를 대표해서 이렇게 사과드리리다.”
“사과라니, 그게 무슨 섭한 말씀이시오? 나 엽현이 그렇게 소인배로 보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