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978
978화 눈치가 없는 건가?
끝이야? 이렇게 끝난 거야?
여차하면 출수할 준비를 하고 있던 무인들은 민망한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그리고 이들 중 유일하게 원일만이 왜 소도가 엽현을 보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엽현 역시 잠시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야말로 울지도 웃지도 못할 상황!
하지만 분명한 것은 복잡할 수 있었던 일을 소령이 나서서 한 방에 정리해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이와 별개로 선령은 인간에게는 적대감을 가졌지만 같은 영체에게는 호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엽현이었다.
이때 예외 없이 울려 퍼지는 구층 존재의 음성.
[캬, 대단하구나. 소령이가 저걸 누구에게서 배웠을까? 너는 아느냐?]“…….”
이때 원일이 환한 얼굴로 엽현에게로 다가왔다.
“엽 공자, 자네 덕분에 살았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하하, 별말씀을 하십니다. 사실 보셨듯이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슨 그런 말을 하는 겐가? 애당초 그대가 잘 말해 주지 않았더라면 소도 낭자도 그 과일을 내어 주지 않았을 걸세. 이 모든 건 그대의 호의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는가!”
말을 하던 원일이 엽현에게 검은 영패 하나를 꺼내 보였다.
“이 태일령(太一令)안에는 진법이 내재 돼 있네. 훗날 위급한 일이 닥쳤을 때 사용하길 바라네!”
“어르신, 저는 이런 걸 바라고 그런 것이…”
“자, 나의 호의를 생각해서라도 받아 두게나!”
엽현은 고민 끝에 영패를 받아 들었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하하, 가세나. 큰 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니, 또 대접을 소홀히 할 수 없지!”
이에 엽현이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초대는 감사하나,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소도 낭자가 제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어서 말입니다.”
“음…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다음에 시간 있을 때, 꼭 한 번 들러주게나. 내 소홀하게 대접하진 않을 걸세!”
“하하, 그렇다면 반드시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엽현이 태일종 무인들을 향해 포권을 취해 보였다.
이에 태일종 무인들 역시 일제히 예를 차렸다.
“자, 그럼 안녕히 가시게나!”
말을 마친 원일이 엽현의 앞에 가볍게 일획을 그었다. 그러자 그 공간이 벌어지며 하나의 틈을 만들어 냈다.
마지막으로 재차 포권을 취해 보인 엽현은 곧장 그 공간 안으로 사라졌다.
엽현이 떠나고 난 후, 원일의 곁에 한 노인이 다가섰다.
“듣자하니, 저 엽현이란 자는 호도자들과 반목하는 사이라 합니다. 게다가 수많은 눈이 그의 몸 안에 있는 보물에 향해 있는데, 우리가 저자의 편에 선다는 것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오. 소도 낭자와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당연히 이쪽에 서는 것이 옳소. 게다가 됨됨이도 나쁘지 않으니, 친분을 맺어 두는 건 전혀 나쁜 일이 아니오.”
“하… 종주, 제가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원일이 재차 고개를 저어 말을 끊어냈다.
“지금처럼 혼란스런 세상에서는 줄을 잘 서야만 하오. 만약 이도 저도 아닌 곳에 서 있다가 곤란한 상황이 닥치면, 그때는 무릎 꿇고 빌어야 할 일이 생길 것이오. 저 성가의 꼴을 한 번 보시오. 처신 한 번 잘못 했다가 길바닥에 나앉지 않았소?”
원일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주 말씀이 옳습니다. 소도 낭자와 같은 절대강자와 한 편이 될 수 있다면, 호도자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 말이 내 말이오. 기왕 피할 수 없는 형국이라면, 강하게 나가야만 하오. 우리 태일종의 안위를 위해서 말이오!”
말을 마친 원일의 시선이 엽현이 사라진 곳으로 향했다.
“보통 인물이 아니야. 그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어쩌면 우리 태일종의 운명을 뒤바꿀만한 결정이었는지도 모르겠군…….”
* * *
“어라?”
천도전당포에 도착한 엽현이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여전히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성천이었다.
괜히 그와 엮이기 싫었던 엽현은 아는 척도 하지 않고 곧장 전당포 문을 열어 젖혔다.
가게 안으로 들어와 보니 소도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성렴만 덩그러니 한 켠에 앉아 있었다.
엽현을 보자 성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에게로 다가왔다.
“엽 공자, 가주께서 이미 잘못을 뉘우치셨으니, 공자가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안 되겠소?”
“나에게 이러지 말고 소도 낭자께 부탁해 보시오.”
엽현이 지나쳐 가려 하자, 성렴이 더욱 간곡한 표정으로 그의 앞을 막아섰다.
“엽 공자, 제발 좀 부탁하오. 그대만이 소도 낭자는 그대의 말만 듣지 않소!”
“내가 왜 그래야 하오?”
엽현이 차갑게 되묻자, 성렴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성렴 소저, 다시 한번 말하건대, 사건의 본질은 내가 아니라 소도가 화가 났다는 것이오. 그녀가 그대들에게 화가 난 것을 내가 어찌 해결해 줄 수 있겠소? 나는 성가와 아무런 은원도 없고, 관여하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 내가 와서 이러지 마시오. 아시겠소?”
“엽 공자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는 바이오. 하지만 그 악마가 이제 곧 봉인을 뚫고 나올 텐데, 그리되면……”
“그건 또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엽현이 정색하며 소리쳤다.
“악마가 나오면 나오는 거지 나더러 어쩌란 말이오? 톡 까놓고 말해 그놈도 나같이 나쁜 놈은 동족이라 생각하여 건들지 않을 것이오. 어쨌든 간에 나는 싫다고 분명히 말했소!”
“엽 공자, 하지만…”
“구걸할 필요 없다!”
이때, 문밖에 있던 성천이 소리쳤다.
성렴이 고개를 돌리자, 성천이 무릎을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이어 그는 천도전당포의 현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뭐 하고 있느냐! 어서 가자!”
이 한 마디를 남기고 성천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이에 성렴은 잠시 안절부절못하다가 엽현에게 포권을 취하고는 황급히 성천의 뒤를 쫓았다.
두 사람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엽현은 괜히 어깨를 한 번 으쓱거렸다.
“저러고 가서 나중에 내게 원한을 품지는 않겠지?”
[왜 아니겠느냐? 성미를 보아하니 이날 이후로 네게 원한을 가질 것이 분명하구만. 차라리 지금 죽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 네 실력으로는 어렵겠지만.]구층 존재의 말에 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 팔자야.”
엽현은 자기 자신이 속이 좁다는 걸 인정하는 편이었다. 그런 그조차, 다른 사람의 도움을 당연히 여기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 자신을 돕는다면 고마운 일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러려니 하면 될 일이다.
누가 무슨 근거로 남에게 도움을 강요한단 말인가!
“쯧쯧… 나도 남의 일에 신경 끄고, 내 일이나 하자.”
이때, 문이 벌컥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엽 공자!”
황급히 엽현을 찾은 자는 다름 아닌 염전의 송성이었다.
“아니, 그대가 여긴 어쩐 일이오?”
“엽 공자, 다른 게 아니라 혹시 그대 친구 중에 창을 쓰는 여인이 있소?”
창을 쓰는 친구?
“있기야 있겠지만,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러는 것이오?”
“그렇다면 큰일 났소. 무변지하성 남쪽에 웬 여인 하나가 그대를 찾겠다며 나타났소. 문제는 그 지역을 다스리던 부도고족(浮屠古族)에게 곧바로 포위됐다는 것이오!”
잠시 뭔가 고민하던 엽현이 돌연 눈을 반짝이며 붓으로 뭔가를 주섬주섬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그려낸 것은 다름 아닌 장문수의 얼굴이었다.
“혹시 이 여인…”
“맞소! 바로 그 사람이었소!”
그 말을 듣자 엽현의 안색이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그녀는 내 친구… 아니, 내 여인이오!”
엽현의 여인!
그 소리를 듣자 송성이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이거 큰일이군! 빨리 그리로 가 봅시다!”
송성은 엽현을 데리고 황급히 대전 밖을 나섰다.
끝도 없이 펼쳐진 무변지하성 안에는 수많은 세력들이 저마다 자신들만의 구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세력을 꼽자면, 염전과 부도고족, 사령천교(邪靈天教) 그리고 상고전전(上古戰殿)이 있었다.
이 네 세력 외에도 절대 건드려선 안 될 존재들이 둘 있었으니, 그중 하나가 바로 소도였다.
무변지하성에서 소도의 지위는 그야말로 절대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 외에 또 하나 피해야 하는 자는 바로 강가에 거주하는 외발여인이었다.
한편, 송성이 보기에 이 두 여인 말고도 건들지 말아야 할 존재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엽현.
엽현을 건드리는 것은 곧 소도를 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하여 이번에 송성이 엽현을 찾은 것은 바로 이 새로운 강자(?)에게 점수를 따기 위함이었다.
* * *
무변지하성 남쪽.
한 손에 장창을 쥐고 있는 장문수가 차가운 눈초리로 주위를 노려보고 있다. 주변으로 보이는 적지 않은 수의 신비인들과 그녀 몸 곳곳에 난 크고 작은 상처로 보아 방금 전까지 치열한 교전이 있던 것으로 보였다.
이들이 전투를 멈춘 이유는 순전히 갑자기 찾아온 염전의 대장로 때문이었다.
“한령(韓冷), 이 일은 그대 염전과는 무관한 일이오. 어찌하여 끼어든단 말이오!”
“진정하시오 막천(莫天). 이 여인은 어쩌면 엽현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오. 만약을 대비해 한 번 확인하는 게 좋지 않겠소?”
한령의 정면, 부도고족으로 보이는 노인의 표정이 다소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 여인의 몸 안에는 상고의 마혈(魔血)이 흐르고 있소. 우리 부도고족에겐 천재일우의 기회란 말이오!”
“하지만 일단 엽현과의 관계를…”
“흥! 만약 그가 색을 즐긴다 하면 후에 우리 부도고족 여인을 백 명쯤 보내면 될 일 아니오? 반면 우리는 저 여자가 당장 필요하오!”
“막천… 만약 정말로 이 여인이 엽현의 친구라면 응당 그의 체면을 살려 줘야 할 것이오. 실수하지 마시오!”
“체면?”
막천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체면이라 하면 응당 엽현이 우리의 체면을 봐 줘야 하는 것 아니겠소?”
이 말을 듣자 한령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엽현이 왜 부도고족의 체면을 봐준단 말인가?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된 걸까?
아니면 그냥 눈치가 없는 건가?
“한령, 비켜나시오!”
“아니 저, 이러다가 큰일…”
“출수!”
한령이 머뭇거리는 사이, 막천의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이와 동시에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부도고족의 강자들이 일제히 장문수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때 한령의 눈에 장문수의 창이 날카롭게 번뜩이는 모습이 들어왔다.
쾅-!
창끝에서 강대한 힘이 터져 나오자, 막 달려들던 무인 몇이 제 자리에 멈춰 섰다. 바로 이때, 한령 앞에 있던 막천이 순식간에 장문수 앞으로 이동했다. 이를 본 장문수가 황급히 창을 세워 방어태세를 갖췄다.
쾅-!
한 자루 흑인(黑刃)이 번뜩인 순간, 창이 부러짐과 동시에 장문수가 백 장 뒤로 튕겨 나갔다. 이때, 기회를 잡은 부도고족 강자들이 그녀를 향해 재차 달려들었다.
콰콰쾅……
상대의 쏟아지는 공격에 장문수는 속절없이 뒤로 밀려나기만 했다.
그녀의 강력한 실력도 다수의 협공 앞에서는 철저히 봉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힘겹게 방어해 나가곤 있었지만, 그녀의 입가와 앞섬은 점점 더 붉게 물들어갔다.
쾅-!
이때 폭음이 울려 퍼지면서 장문수가 수십 장 뒤로 밀려나 성벽에 부딪혔다. 성벽은 곧바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겨우 빠져나온 장문수는 부러진 창에 몸을 의지한 채 붉은 선혈을 한 움큼 토해냈다.
이때, 그녀 체내의 혈액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