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98
98화 사부께서 오고 계십니다
노인의 묵직한 한마디에 창란학원 사람들은 노인의 의도를 파악했다.
대운 창목학원이 저 소년을 함께 보낸 것은 소년으로 하여금 엽현을 죽여 그가 명성을 얻게 하려 함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된다면 대운 창목학원은 강자가 약자를 괴롭힌다는 비난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다고 소년이 진다고 해서 큰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노인은 어차피 엽현을 죽일 것이며, 대운 창목학원은 청주의 세력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엽현이 기 원장을 바라보며 그의 의견을 구했다. 그러자 기 원장이 외쳤다.
“시작해!”
엽현은 쓸데없는 말을 생략한 채 그래도 소년을 향해 날아올랐다.
소년 역시 곧바로 엽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신형이 원래 자리로 미끄러지듯 돌아왔다. 그들의 발밑을 받치고 있던 대리석은 이미 산산조각 난 상태였다.
소년이 엽현을 노려보며 오른발로 땅을 찍어 눌렀다.
퍽-!
그러자 엽현의 발아래로 강대한 힘이 들이닥치면서 엽현의 신형을 십여 장 물리게 했다.
소년이 이에 그치지 않고 마치 굶주린 사자와 같이 순식간에 엽현을 향해 십여 장을 날아올라 발을 뻗었다.
그의 발은 흐릿한 금망과 함께 공기를 날카롭게 찢으며 엽현을 향해 날아왔다.
엽현이 눈을 치켜뜨며 오른손 주먹을 그대로 앞을 향해 꽂아 넣었다.
일권폭이두(一拳爆你頭)!
엽현의 주먹에 강력한 전의가 넘쳐흘렀다.
쾅-!
엽현의 주먹을 맞은 소년은 그대로 노인의 근처까지 날아가 커다란 구멍을 내며 처박혔다.
잔해를 해치고 나온 소년이 엽현을 노려보며 입가의 피를 닦아냈다.
“무도종사(武道宗師)라…….”
“무도종사라고?”
그 말을 듣고 묵운기 등 세 사람이 깜짝 놀랐다. 그들은 엽현이 전의를 깨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무도종사가 되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무도종사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방금 전의 일 권은 족히 무도종사의 수준이라고 할 만한 위력이 있었다.
지계 무기의 위력이 있는, 전의를 담고 있는 일 권!
엽현이 표정 없는 얼굴로 주먹을 말아 쥐었다. 말보다는 싸움에 집중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엿보였다.
휙-!
그때, 소년의 모습이 사라지는 듯하더니 어느새 엽현의 앞에 나타났다.
엽현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정면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쾅-!
주먹에 정통으로 가격된 소년이 이번에도 맥없이 노인의 곁으로 날아가 구덩이를 만들었다.
소년이 재빨리 일어나 재차 출수하려는 때 노인이 그의 앞을 막았다.
“그만 됐다.”
소년이 분노와 불만이 섞인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네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소년은 여전히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듯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경지의 무인 중 이다지도 처참하게 패배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노인이 차가운 눈으로 소년을 바라봤다.
“자신감이 넘치는 것도 좋지만 그것도 분수를 모르게 되면 그저 어리석은 것일 뿐이다. 내가 이번에 너를 데리고 온 이유도 세상에 얼마나 많은 강자가 존재하는지 일깨워주려 한 것임을 모르는 것이냐!”
노인이 성을 내자 그제야 소년은 두려운 기색을 보이며 노인의 뒤편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여전히 엽현을 향해 번뜩이고 있었다.
노인이 엽현을 향해 말했다.
“강국 창목학원이 왜 그런 큰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널 죽이려 하는지 이제야 이해가 가는구나. 너 같은 아이는 더 크기 전에 반드시 싹을 없애 버려야 하지!”
그가 말을 마치자 그대로 엽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강대한 기운이 엽현의 머리 위에 나타나 그를 짓눌렀다. 엽현은 마치 금방이라도 으스러질 것 같은 압력을 받았다.
엽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일말의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았다.
상대는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두려움을 느껴야 할 이유가 될 순 없었다.
전(戰)!
엽현의 주변에서 한 줄기 전의가 휘몰아쳐 나왔다. 하지만 노인의 힘 앞에서 한순간에 흩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의 경지의 차는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것이었다.
이때 기 원장이 엽현의 앞으로 나와 가볍게 손을 저었다. 그러자 그의 소매 사이에서 강대한 기운이 해랑(海浪)이 일 듯 넘실거리며 쏟아져 나왔다.
쾅-!
두 개의 강대한 기운이 부딪치자 한 줄기 거대한 파동이 장내를 휘몰아치며 주변의 건물과 지면을 산산조각내기 시작했다.
기 원장이 가볍게 손을 누르자 장내에 미친 듯이 휘몰아치던 기운이 이내 잠잠해졌다.
노인이 기 원장을 바라봤다.
“창란학원을 멸하려면 그대부터 없애는 것이 순서겠군!”
노인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현재 창란학원에서 가장 강한 무인은 기 원장이다. 만약 그가 죽는다면 나머지들은 눈 깜빡할 사이에 모두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해야 할 것이다.
기 원장이 왼손을 들어 자신의 뒤편으로 가볍게 밀어 넣었다. 그러자 엽현 일행의 신형이 순식간에 백여 장 밖으로 밀려났다. 이때, 엽현 일행의 머릿속에 기 원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기회를 봐서 탈출해라!”
탈출이라고?
엽현이 상대와 막 전투를 벌이려는 기 원장을 바라보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지금 상황에선 도망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들은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근본적으로 그런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창란학원 일대에 천라지망(天羅地網)이 깔려져 있는 것을 그들은 느끼고 있었다. 창란학원을 멸망시키기 위해 단단히 마음먹은 저들을 상대로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도망쳐서 훗날을 도모한다?
저들의 목적은 그것을 막는 것이었다!
바로 이때, 엽현의 정면에 이현창이 나타났다. 그의 곁에는 예전에 보였던 검은 장포의 무인도 함께였다!
이현창이 한창 전투 중인 기 원장 쪽을 바라보다가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제 정말로 의지할 곳이 없는 듯하구나. 그럼 이제 죽여도 되겠지?”
이현창의 신형이 제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는 창목학원으로 새까맣게 몰려든 기운을 느끼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왔다. 오늘이야말로 엽현이라는 큰 우환을 제거할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이 원장으로선 결코 놓칠 수가 없었다.
엽현이 어금니를 깨물고 출수하려는 순간, 검은 그림자 하나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이현창의 신형이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나타났다.
옆현의 앞을 막은 자는 다름 아닌 취선루의 구 루주였다. 그의 뒤를 이어 강월천까지 그의 곁에 나타났다.
두 사람을 보자 이현창이 부득부득 이를 갈며 말했다.
“구 루주, 강월천! 정녕 그대들이 창목학원과 원수를 맺으려 하는 것인가?”
구 루주가 이현창을 한 번 바라보고는 엽현을 향해 말했다.
“엽 공자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눈앞의 두 사람을 막는 것이 전부일세. 저들 외에도 이 주변엔 적어도 대여섯 명의 만법경 강자가 어둠 속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을 걸세. 게다가 눈으로 확인할 순 없지만 이 근처 어딘가에 분명 암계의 무인들도 와 있을 것이 확실하네…….”
이때 엽현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미 사부께서 오고 계십니다.”
‘사부!’
엽현의 입에서 사부라는 말이 나오자 구 루주가 잠시 당황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이현창을 향해 웃음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하하하! 이현창, 그동안 창목학원은 악행과 불의를 일삼는 것을 서슴지 않아 왔다. 오늘 우리 취선루는 강국 전체를 대신해 너희 악랄한 창목학원을 강국에서 제거할 것이다!”
이 말과 동시에 구 루주의 신형이 이현창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강국을 대신해서 창목학원을 제거하겠다고?
이현창은 구 루주의 도발에 당황했다.
“무슨 병이라도 든 것이냐!?”
이현창이 분노하여 소리칠 때 구 루주의 일 장은 이미 그의 면전에 도달한 상태였다.
쾅-!
천둥소리가 장내를 뒤흔들더니 이내 두 사람의 신형이 떨어졌다.
“너희 취선루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창목학원을 벌한단 말이냐! 머리가 다치기라도 한 것이냐!”
“무슨 쓸데없는 말이 이렇게 많아! 헛소리 집어치우고 덤벼라!”
구 루주가 다시 한번 이현창을 향해 날아올랐다.
구 루주의 태도를 확인한 이현창은 더 이상 말로 하지 않고 구 루주를 향해 제대로 출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콰앙-!
두 사람의 주변으로 천둥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한편, 강월천은 눈앞의 흑포인을 향해 살벌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와 구 루주는 반드시 이 자리에 와야만 했다.
오늘 그들이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그들이 해 왔던 일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강월천은 엽현에게 도박을 걸었다. 만약 엽현이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그에 덧붙여 창목학원의 피의 복수 또한 홀로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때, 흑포인이 물었다.
“강국 황실의 운명을 걸 만큼 저 아이가 중요한 것인가?”
“무슨 헛소리냐, 노부는 단지 창목학원의 불의를 참지 못하고 나선 것뿐이다!”
말이 떨어지자 강월천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에 흑포인 또한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엽현과 창란학원 제자들은 다른 한편에서 강자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때, 엽현이 묵운기 등 세 사람을 향해 말했다.
“너희는 여길 떠나!”
세 사람이 당황한 얼굴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떠나라고?’
“못 들었어? 너희 세 사람은 빨리 여길 떠나!”
묵운기가 조심스레 물었다.
“엽 강도, 그게 무슨 뜻이야?”
엽현이 먼 곳을 바라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전부 죽을 이유는 없잖아!”
엽현은 상황을 명확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창란학원 본원은 지원을 거부한 상황인 듯 했다. 기 원장 하나로는 저 많은 자들을 감당해 낼 수 없다.
상황은 이미 절망적이었다.
분하지만 눈앞의 현실은 그저 잔혹할 뿐이었다. 결국 엽현이 검선이 아닌 바이야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어찌하겠는가! 약자는 그저 당하는 수밖에!
엽현은 이제까지 체득해 온 진리를 가슴속에 더욱 깊게 새기고 있었다.
약한 자들은 억울하더라도 체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묵운기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더러 너와 기 원장을 두고 떠나라고? 그게 사람으로서 할 짓이야? 그래! 네 말대로 우리는 아무것도 못 해 보고 죽겠지. 그래도 차라리 함께 죽는 편이 나아!”
엽현이 대꾸하려 할 때 묵운기가 그의 말을 막았다.
“창란학원은 너의 집이기도 하고 나의 집이기도 해. 물론 나도 죽고 싶진 않아. 하지만 그렇게 구차하게 살고 싶지도 않아! 그러니까 함께 맞서 싸우자! 그리고 두 번 다시 내게 도망가라고 하지마! 한 번만 더 그 말 들으면 진짜 도망가고 싶어질 테니까!”
이때 백택이 말했다.
“이제 남자가 다 됐구나.”
묵운기가 눈을 부릅떴다.
“무슨 계산이 그래? 나는 원래 남자였다고!”
“이전까진 몰랐지.”
“…….”
백택과 묵운기가 투닥거리고 있는 사이 엽현은 천천히 눈을 감고 계옥탑으로 들어갔다.
“2층에 계신 분…… 얘기 좀 나눌 수 있습니까?”
“…….”
아무런 답이 없자 엽현이 재차 물었다.
“나오고 싶지 않습니까?”
이때, 2층 문틈으로 한 장의 종이가 날아왔다. 종이 위에는 몇 개의 발자국들이 이어져 하나의 원을 그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뜻이지?’
이때, 그의 눈앞에 또 다른 종이 한 장이 날아왔다. 종이 위에는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원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엽현은 두 개의 원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는 두 종이를 겹쳐 보았다.
그러자 마치 앞으로 굴러가는 형상이 나타났다.
‘이건 뭐지? 나더러 꺼지라는 소린가?’
안색이 어두워진 엽현이 다시 말을 걸었다.
“저기, 이야기 좀 나눕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