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982
982화 죽어야 끝이 난다
패배를 인정한다고?
엽현은 이 말을 똑똑히 듣고서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그만두기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보자 표정이 어두워진 혁련천은 결국 일 장을 방출했다. 이 공격은 엽현이 아닌, 아래쪽에 있던 막천을 향한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같은 편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막천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한 줌의 혈무가 되어 사라졌다.
이 모습을 본 나머지 무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하면 같은 부족 사람을 이런 식으로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이때 한쪽에 있던 송성이 혁련천을 보며 중얼거렸다.
“혁련천은 과연 결단력이 있군. 같은 부족을 죽인 일로 세인의 손가락질을 받을 순 있겠으나, 더 큰 손실은 막겠다는 생각이야. 만약 여기서 혁련전이 비명횡사라도 하게 된다면 부도고족으로서는 재기하기 어려울 정도의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선택이긴 하지.”
이때 막천을 제거한 혁련천이 엽현을 향해 소리쳤다.
“엽현, 네 친구를 노린 자는 이미 죽었다. 나머지 죄 없는 자들을 봐서라도 이쯤 해 두는 게 어떻겠나?”
이쯤 하자고?
엽현의 표정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엽현은 결코 멈출 수 없었다. 한 번 이빨을 드러낸 이상, 반드시 상대의 숨통을 끊어 놓아야만 한다. 이것이 후환을 남기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엽현이 혁련천의 말을 무시한 채, 다시 천도필을 치켜들었다.
바로 이때, 장중에 한 여인이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소도!
소도를 보자, 어둠 속에 숨어서 관망 중이던 무인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엽현이 계속 천도필을 사용한다면 자신들의 터전마저 사라져버릴까 두려웠던 것이다.
소도는 먼저 혁련천을 향해 무뚝뚝하게 물었다.
“어쩌다 그의 친구를 건드리게 되었나?”
“그게… 소도 낭자, 이번 일은 분명 우리 부도고족의 실수였소. 잘못을 인정할 테니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길 바라오!”
“잘못을 인정해?”
소도의 차가운 웃음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너희는 사전에 분명 내가 이 일의 개입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와 너희 조사 사이에 나름 친분이 존재했으니까. 확실히, 나는 저 아이를 도울 생각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너희가 간과한 것은 엽현의 실력을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과소평가!
혁련천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소도의 말대로 그들은 장문수를 노리면서 크게 소도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물론 엽현이 생각보다 강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부도고족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그들의 패착은 소도가 엽현에게 천도필을 주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는 것에 있었다.
천도필이 없었더라면 엽현이 자신들의 상대가 되었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았다.
소도는 잠시 혁련천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 후, 시선을 엽현에게로 돌렸다.
“엽 공자, 이쯤 하고 돌아가지? 나 배고픈데?”
“그렇겐 아니 되오!”
엽현의 대답을 듣자 장내 무인들은 기절초풍할 뻔했다.
감히 소도가 말하는데도 듣지 않다니, 이건 누가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혁련천 역시 경악에 찬 얼굴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설마 소도의 말도 흘려들을 정도로 엽현의 배경이 대단하단 말인가?
“흉수는 이미 죽었는데 계속할 건가?”
“흉수는 죽었지만, 그 뿌리는 아직 남아 있소!”
이 말을 들은 혁련천은 거의 뒤로 넘어갈 뻔했다.
그 말은 곧 부도고족을 멸망시킬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뜻이 아닌가!
“만약 내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내 친구의 목숨은 없었을 것이오. 만약 내게 천도필과 촉룡갑이 없었더라면 나 역시 죽었겠지. 저들은 명명백백 내 친구와 나를 죽이려 했는데 내가 어찌 여기서 그만둔단 말이오?”
“하지만 부도고족을 멸망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소도의 말에 엽현이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분명 나 혼자서는 어렵겠지. 하지만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오. 오늘 나는 반드시 저들을 멸망시키고 말 것이오. 이 점에 대해선 누구의 체면도 봐주지 않을 것이오!”
누구의 체면도 봐주지 않는다니.
이는 분명 소도를 겨냥해 한 말이 아닌가?
이렇게 둘 사이에 다툼이라도 벌어지게 되는 걸까?
소도가 엽현을 향해 말했다.
“천도필이 없으면 한 명도 더 죽일 수 없을 텐데?”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으니, 그대에게 돌려주겠소.”
말을 마친 엽현이 정말로 소도를 향해 천도필을 던졌다.
“네가 정녕 우리 부도고족을 멸할 수 있다 생각하느냐?”
바로 이때, 중후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이와 함께 허공에 하얀빛이 몰려들더니, 이내 중년 남자의 형상을 이루었다.
중년인이 나타나자 살아남은 모든 부도고족 무인들이 무릎을 꿇었다.
“선조를 뵈옵니다!”
“선조를 뵈옵니다!”
중년인의 정체는 바로 부도고족의 선조, 혁련담(赫連炎)이었다.
혁련담은 먼저 소도를 향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소도 낭자, 저 사내아이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은데, 내가 대신 훈육을 해도 되겠소?”
“그대 좋을 대로…”
“누가 누굴 훈육해!!”
이 순간, 웬 여인의 날카로운 음성이 엽현의 등 뒤에서 울려 퍼졌다.
“그의 말이 옳다. 오늘 우리는 누구의 체면도 봐주지 않고 너희 부도고족을 멸망시킬 것이다!”
무인들은 일제히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때, 엽현의 뒤편에서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소녀 하나가 녹슨 철검을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이 소녀의 모습을 본 순간, 송성은 온몸이 전율에 휩싸였다.
아라!?
불패아라가 왜 이곳에!?
한편, 엽현 정면에 있던 혁련담 역시 아라를 보고 눈을 가늘게 찌푸렸다.
“한무기의 최강자, 불패아라. 그대가 어찌?”
비록 두 사람이 같은 시대에 활약한 것은 아니지만, 혁련담 역시 한무기에 속해 있던 무인이었다.
그런 그가 한무기의 상징적인 존재인 불패아라를 모를 리가 있겠는가!
엽현 곁에 선 아라는 혁련담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소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소도, 그대가 우리 남매를 막을 수 있겠소?”
남매?
이 단어를 들은 순간, 장내 모든 무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매라니, 엽현과 불패아라가 남매지간이란 말인가?
순간 송선의 등에도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당시 염전은 두 사람이 남매지간인 것도 모르고 엽현을 향해 출수하지 않았던가.
이 생각이 떠오르자 송성은 손으로 자신의 뺨을 후려치지 않을 수 없었다. 염전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정말이지 천운이었던 것이다.
이때 소도가 아라를 향해 대꾸했다.
“그대들을 막을 생각은 없소. 어차피 막는다 해도 더 강한 자를 불러올 게 뻔하니까.”
소도가 말한 더 강한 자란 천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배후만을 놓고 보자면 이 오유계에서 누가 엽현을 능가하겠는가?
이때 아라가 소도에게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도 낭자, 너무 언짢아하지 마시오. 우리는 결코 그대의 얼굴에 먹칠하려는 것이 아니오. 하지만 그대도 부도고족이 한 일을 알고 있지 않소?”
소도는 말없이 엽현의 표정을 살폈다.
엽현은 아직도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부도고족 무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소도는 확실히 엽현과 아라 두 사람을 저지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엽현의 불같은 성격을 볼 때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 심각한 상황이란 무변지하성의 모든 사람들이 죽는 것을 뜻한다.
이들은 아직 천녀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지만, 소도는 그녀의 실력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만약 엽현이 눈이 뒤집혀 정말로 천녀를 불러낸다면, 그땐 부도고족 하나가 멸망하는 걸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목숨을 파리보다도 못하게 여기는 그녀일진대, 무변지하성,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생령을 죽인다 해도 눈이나 하나 깜빡할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소도는 몸을 돌려 혁련담을 바라보았다.
“오래전 그대에게 후대를 올바른 길로 이끌지 않으면 화를 당할 것이라고 한 것이 생각나는군. 헌데 그 화가 나와 관련이 있을 줄은 나조차도 알지 못했구려.”
“이번 일은 분명 우리 부도고족이 백 번 잘못한 일이오.”
혁련담은 돌연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했다.
아라가 모습을 보였을 때부터 이미 그에겐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설령 지금이 아닌 전성기 시절의 부도고족이라 할지라도 그녀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불패아라.
그녀와 같은 시기를 살지 못한 사람들은 그녀의 무서움을 알지 못하리라!
“후… 미안하게 됐소, 혁련. 내 힘으로는 저들을 저지할 수 없소. 그리하면 이 땅에 더 큰 일이 벌어질 테니 말이오.”
소도의 말에 혁련담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소도 낭자, 저 사내는 도대체 누구요?”
“그걸 알아봐야 이미 아무런 의미도 없소. 그대가 앞서 저 아이를 도발하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혹시 한 가닥 희망이 있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정면승부만이 남아 있을 뿐이오. 행운을 빌겠소.”
소도가 막 돌아서서 떠나려 할 때, 혁련담이 급히 그녀를 불러 세웠다.
“소도 낭자,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어떻게 중재해 줄 수 없겠소? 우리 부도고족의 명맥만 이을 수 있다면……”
“이렇게는 해 볼 수 있겠지.”
소도가 뒤편에 있는 혁련천과 혁련전, 그리고 혁련담을 차례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대들 세 사람이 죽는다면 부도고족의 나머지는 살 것이오.”
그 말을 듣자 장내 무인들은 크게 당황했다.
혁련천 등 삼인 역시 큰 충격을 받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들이 죽어야만 끝나는 거라고?
“아, 아니… 그 방법 말고는 전혀 없는 것이오?”
“없소.”
소도가 딱 잘라 대답하자 혁련담의 안색이 검게 변했다.
바로 이때, 한쪽에 있던 혁련전이 돌연 아라 앞으로 다가갔다.
“듣자하니, 그대는 평생토록 져 본 적이 없다는데 나와 한 번 겨뤄보겠소?”
“그러지.”
아라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혁련전이 양손을 앞으로 모았다. 찰나의 순간, 강력한 힘이 그에게로 몰려듦과 동시에 하늘에 거대한 압력이 발생했다.
이 압력이 나타나자 무변지하성 전역이 지진이라도 난 듯 뒤흔들렸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혁련전의 영혼에 불이 붙기 시작하더니,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몇 배 이상으로 폭증했다.
소도가 돕지 않기로 결정한 이상, 부도고족의 힘만으로 눈앞의 여인을 물리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혁련전은 마지막이 될 일전에 모든 걸 쏟아 붓기로 결심했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 과연 불패아라가 얼마나 강한지 직접 느껴보는 것.
기회는 단 한 번뿐이란 걸 직감한 그는 처음부터 동귀어진의 수를 꺼내 든 것이었다.
엽현의 바로 옆, 아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혁련전이 불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출수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죽음을 앞둔 무인에 대한 그녀의 작은 배려였다.
이 순간, 혁련전이 자리에서 훌쩍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아라의 머리 위에 도달한 그는 이제는 완전한 하나의 불덩이가 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쥐게 되었다.
이때, 모두의 시선 속에 화염을 뚫고 혁련전의 주먹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의 인생을 통틀어 최강, 그리고 최후의 일격이었다.
목표는 불패아라, 전설 속의 절대강자!
그리고 이때 아라가 마침내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검은 매우 평온했다. 심지어 공기의 방향도 바꾸지 않을 정도였다.
가볍게 검을 뽑은 그녀는 다시 가볍게 검을 회수했다.
그리고 이때, 온 천지에 폭풍처럼 몰아치던 혁련전의 기운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잠시 후, 혁련전이 아라 앞에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듯 마지막으로 눈빛이 반짝였지만, 그러나 이마저도 회색빛으로 변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