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983
983화 거래를 하겠는가?
신혼소멸(神魂消滅).
무덤가처럼 고요해진 장내.
누군가의 침 넘기는 소리가, 모두의 귓속을 바늘처럼 파고들었다.
그 혁련전의 최후가 이렇게도 허무하단 말인가!
송성은 갈수록 당시 엽현과의 일이 원만히 해결된 것은 조상신이 도운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염전은 이미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 아닌가.
아라는 혁련전이 죽어가는 모습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
수많은 강자들과 싸워왔던 그녀가 상대적으로 약체인 혁련전과의 일전에 감흥을 느낄 리가 없던 것이다.
아라의 시선은 곧장 망연자실해 있는 혁련담과 혁련천에게로 향했다.
“알아서 할 텐가? 아니면 너희도 내 손을 빌리고 싶나?”
순간 혁련천이 흉악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난 인정할 수 없다!”
모두의 눈이 혁련천에게로 향했다.
이때 혁련천이 살기 어린 눈으로 엽현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네 여인은 죽지도 않았는데 꼭 이렇게 극단적이어야만 하는 건가?”
이에 엽현이 무뚝뚝한 얼굴로 대답했다.
“만약 그녀가 너희들에게 붙잡혔고, 내가 실력이 약해서 제발 풀어달라고 애원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과연 너희가 너무 과해서 미안하다라고 하면서 그녀를 풀어줬을까? 흥! 절대 그럴 리가 없지. 내가 잔인하다고 원망할 필요 없다. 만약 반대 입장이었더라면 너희는 나보다 훨씬 더 잔인했을 테니까.”
혁련천이 무어라 말을 이어가려 할 때, 갑자기 아라가 검을 뽑아 들었다.
서걱-!
순식간에 혁련천의 머리가 피를 뿜으며 잘려 나갔다.
“이제 한 놈 남았군.”
아라가 무덤덤하게 말한 이때, 혁련담이 무언가 초탈한 표정으로 소도를 바라보았다.
“소도 낭자, 오늘 우리 부도고족에게 환란이 닥친 것은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소. 부디 낭자께서 옛정을 생각하여 부도고족이 명맥만은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오.”
말을 마침과 동시에 혁련담의 몸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부터 영혼으로 존재했기에, 이 불길이 사라지게 되면 그 역시 소멸되는 것이었다.
장렬히 싸우다 죽는 것 따위는 생각지도 않았다.
지금은 고사하고 전성기 시절의 그라 할지라도 아라에겐 상대가 되지 않을 테니까.
현재 장내에서 유일하게 아라를 멈출 수 있는 건 소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마도 엽현의 뒤에 있는 자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리라.
천하의 소도가 두려워하는 자를 부도고족이 어찌 대항할 수 있을까.
그저 이렇게 재가 되어 사라지는 수밖에.
한편, 소도는 활활 타오르는 혁련담을 보며 침묵하고 있었다.
내키진 않았으나, 도저히 엽현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억지로 막는다 하더라도 저 괴팍한 젊은 무인이 그 소복의 여인이라도 불러오는 날에는 더 이상 오유겁을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오유겁 보다도 더 위협적인 존재랄까.
그렇게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혁련담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발버둥 치지 않았다. 가는 마당에 수모를 겪고 싶진 않았으니까.
이때 엽현이 아라를 향해 돌아섰다.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와 줘서 고맙긴 했지만, 사실 엽현은 아라를 부른 사실이 없었다.
엽현의 질문에 아라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떻게 오긴,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서 바로 달려왔지.”
“고마워.”
“고맙긴, 우리 사이에. 나는 이제 다시 폐관에 들어가야 해. 다시 나오려면 아마 오랜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그때까지 몸조심하고 있어.”
“그래.”
아라가 고개를 돌려 소도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소도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앞으로 어쩔 셈이야?”
아라가 다시 엽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음, 글쎄. 아직 생각해놓진 않았어.”
“그래, 어쨌든 무슨 일이 생기면 대황국으로 와. 내가 있는 한 누구도 행패를 부릴 수 없을 테니까.”
이 말을 끝으로 아라는 자리를 떠났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그림자조차 순식간에 사라졌다.
갔구나!
잠시 멍하니 서 있던 엽현은 시선을 돌리고 장문수를 향해 다가갔다. 이때 장문수는 부상을 대부분 회복한 상태였다.
“이제 좀 괜찮아?”
“괜찮아.”
장문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나저나 어떻게 온 거야?”
“…들어간 지 한참이 돼도 안 나와서 죽었나 확인하러 왔다. 왜?”
“미안해, 그건 미처 생각을 못 했네.”
“됐어. 앞으로 네 곁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마.”
“그래, 알겠어. 이제 가자.”
엽현이 웃으며 장문수의 손을 붙들었다.
순간, 장문수가 손을 빼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잠시 엽현을 흘겨본 그녀는 이내 엽현에게 몸을 맡겼다.
이때, 엽현이 뭔가 생각난 듯 송성을 향해 돌아섰다.
“빠르게 날 찾아와줘서 고맙소. 그대들이 아니었으면 위험할 뻔했소.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오.”
“하하, 별것 아닌 일에 너무 괘념치 마시오.”
송성이 괘념하라는 듯 과장된 몸집으로 손사래를 치자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잊지 않겠소. 그럼 이만.”
그렇게 엽현은 장문수의 손을 잡은 채 빠르게 자리를 떠나갔다.
“휴… 이렇게 끝나서 다행이오. 그나저나 저놈의 배후가 도대체 몇이나 있는지 궁금하구려.”
송성의 말에 곁에 있던 한령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가 아는 것보다는 많지 않겠느냐? 참으로 무서운 놈이로구나.”
“확실히, 대단히 신비한 놈이오. 그런데…”
이때 뭔가 떠올린 듯 송성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만약 호도자가 시킨 대로 계속 엽현을 노렸다면 정말로 큰일 날 뻔했소.”
그 말에 한령의 표정 역시 크게 무거워졌다.
“정말로 간발의 차이였다.”
“부도고족에 비하면 천운이라 할 수 있소. 엽현이 비록 씨를 말려버리진 않았지만, 가장 강한 자들이 모조리 죽어버렸으니… 아무래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예전의 모습을 회복하긴 어려울 것 같구려.”
송성이 착잡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앞으로는 누군가를 건들기 전에 반드시 뒤에 누가 있는지부터 살펴봐야겠구나…….”
엽현과 부도고족 간의 일전은 순식간에 무변지하성 전역에 알려졌다.
부도고족의 패배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한무기의 전설, 불패아라의 등장과 그녀와 엽현이 남매사이란 점이었다.
이 소식이 기폭제가 되어 이내 무변지하성에서는 엽현의 존재를 모르는 자가 없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가장 건드려선 안 될 존재로 등극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뒤를 봐주는 것이 소도와 불패아라이기 때문이었다.
부도고족의 최후를 알고서도 엽현을 건드릴 대담한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 * *
엽현은 무변지하성을 떠나지 않고, 장문수와 함께 천도전당포로 돌아왔다.
그곳엔 소도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더 볼 일이 있었나?”
“소도 낭자, 이번 일은……”
엽현이 우물쭈물 말문을 열자 소도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고 해서 화를 내진 않는다. 사실 이번 일은 너와 부도고족 사이의 사안이었다. 다만 저들의 조사와의 인연 때문에 중재를 하려던 것뿐이었지.”
말을 하던 중 소도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천도필이 엽현의 앞에 떨어졌다.
“가져가거라. 한 번 줬으면 준 거지.”
“소도 낭자… 그대에게는 항상 신세만 지는 것 같소. 이번 부도고족과의 일은… 만약 내가 다쳤더라면 모를까, 내 친구를 건드렸기에 인내심이 무너졌던 걸 이해해 주시오.”
엽현은 자신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장문수의 상황이 매우 처참했으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소도가 엽현을 지그시 응시하며 대답했다.
“많은 경우, 극단적인 행동은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든다. 물론 네 말대로 네 실력이 조금만 더 부족했더라면 부도고족은 너보다 훨씬 더 악랄하게 나왔을 테니, 네 행위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어찌 되었든 그대에겐 미안한 마음뿐이오. 만약 그대를 불쾌하게 했다면 용서해 주시오.”
말을 마친 엽현은 곧장 뒤로 돌아섰다.
“문수, 우리는 이만 가자.”
“알았어.”
두 사람이 가게 문을 나서려고 할 때, 뒤에서 소도의 음성이 들려왔다.
“지금 가려느냐?”
“이제 갈 때가 되지 않았소?”
엽현이 뒤를 돌아보며 대답하자, 소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 이르다. 지금 나가게 되면 호도자의 먹잇감이 될 뿐이다.”
“먹잇감이라니… 내가 느끼기에 이제 나도 좀 강해진 것 같소만?”
“너는 호도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
“음… 사실 아무것도 알고 있지 않소.”
그 말에 소도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들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이 범인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다.”
엽현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음… 지난번에 듣기를 그들은 다른 자들과는 달리 오유겁을 환영하는 입장이라던데, 이 말이 사실이오?”
“그렇다.”
“그렇다면 그들의 상대는 오유겁에 대항하려는 모든 무인들인 것이오?”
이 말에는 소도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네 착각이다. 일단 몇몇 절대강자들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상대가 될 만한 무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이 노리는 자들은 첫째로 앞서 말한 절대강자들, 둘째로 네게 있는 계옥탑이다. 계옥탑의 주인인 너는 저들의 첫 번째 제거 대상이 되는 것이지.”
“혹시 소범이도 그들의 공격을 받은 적이 있소?”
“그렇진 않았다. 그녀는 앞장서서 오유겁을 막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 했을 뿐이지.”
“그래서 천도자들은 그녀를 공격한 적이 없었다?”
엽현의 말에 소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소범이를 먼저 제거하는 게 저들 입장에서는 좋은 게 아니오? 내게 계옥탑이 있다고 한들 소범이가 훨씬 더 위협적일 텐데?”
그 말에 소도는 엽현의 얼굴을 응시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엽현이 의아해하자 소도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세상에는 종종 네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곤 하지. 당장은 그저 한 가지만 알고 있으면 된다. 지금의 너는 그들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 말이다.”
“그럼 그대는 내가 어찌했으면 좋겠소?”
“그야 물론…”
바로 이때, 무언가 말하려던 소도가 돌연 고개를 돌려 문밖을 바라보았다.
엽현은 순간적으로 그녀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무슨 일이오?”
“드디어 그 악마가 봉인을 깨뜨리려나 보군. 어디, 가서 구경이나 한번 해 볼까?”
말을 마친 소도는 엽현을 데리고 장내에서 사라졌다.
* * *
성가의 검은 연못에서는 마치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토해낼 듯 크게 일렁이고 있었다.
심연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마치 큰 파도처럼 성가 전역에 영향을 미쳤다.
성가의 모든 강자들은 이미 연못 앞에 집결한 상태였다.
그중 가장 앞에 있는 것은 가주인 성천이었다.
말없이 연못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있는 성천, 그의 안색은 매우 어두웠다.
그의 뒤편에 도열해 있는 강자들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지라 다소 긴장한 상태였다.
바로 이때, 연못 깊은 곳에서 물결이 출렁이더니, 악마의 기운이 더욱더 강력해졌다.
이에 모든 무인들의 표정이 일그러져갔다.
그들은 모두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절대 상대를 막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이제 어쩌지?
이제 모두의 시선이 성천을 향해 있는 이때,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성천의 입이 열렸다.
“나와 거래를 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