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985
985화 내가 희생할게
구층 존재의 음성에 엽현이 곧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끝에 상처를 냈다.
한 방울 선혈이 막 날개 위로 떨어지려는 순간,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소도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죽고 싶은 게로구나.”
엽현이 고개를 돌리자, 소도가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때 그 악마가 한 말을 잊었느냐? 그건 악마들의 조상의 날개, 즉, 그의 의지가 깃든 물건이다. 그런 식으로 깨워버린다면 악마의 의지가 네 정신을 순식간에 집어삼킬지도 모른다.”
“악마 조상의 의지?”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묻자 소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물건의 가치는 네게 있는 천도필과 비교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 물건을 복액이 어찌 그렇게 대방하게도 넘긴 줄 아느냐?”
“악마 조상의 의지를 통제할 수 없어서?”
엽현의 대답에 소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총명하구나. 만약 복액이 그 날개의 힘을 통제할 수만 있었더라면 애당초 성군에게 봉인 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소도가 말없이 엽현을 담시 응시했다.
“지금 너의 실력이라면 악마의 의지에 대항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대는 또 뭔가 다른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렇지 않소?”
“뭐, 그럴지도?”
소도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본 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몇 개?”
이 물음에 소도가 손가락 두 개를 흔들어 보였다.
“이십 개?”
“이백.”
자기 이백 개!
순간 엽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쳤다.
“소도 낭자, 이제 아예 대놓고 강도질을 하려는 것이오?”
그러자 소도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다시 자리에 엎드렸다.
엽현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자기 이백 개는 그에게도 큰 개수였던 것이다.
[구층 주민, 혹시 저 악마의 날개를 통제할 방법이 없겠소?] [나는 물론 그 악마의 의지인지 하는 걸 다스릴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네가 그렇게 하도록 돕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음… 어차피 써먹지도 못할 거 나한테 싸게 넘기겠느냐?] […못 들은 걸로 하겠소.] [하하하!]잠시 후, 결심을 굳힌 엽현이 계산대 앞으로 다가왔다.
이때 소도의 머리맡에 정순한 자기 이백 가닥이 떨어졌다.
그 순간, 소도의 손이 번개보다 빨리 움직였고, 자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사실, 그건 아주 간단하다.”
몸을 일으킨 소도가 웃으며 손을 펼쳤다. 그러자 엽현에게 있던 악마의 날개가 그녀의 손바닥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바로 이때 날개가 갑자기 부르르 떨더니, 그 안에서 잔혹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엽현의 표정이 다소 기이하게 변했다.
설마 날 속이려 드는 건 아니겠지?
이때, 소도가 다시 악마의 날개를 돌려주었다.
“다 됐다.”
“정말, 이걸로 다 된 것이오?”
“그럼 속고만 살았느냐? 이 날개를 착용하면 지금보다 다섯 배 이상의 속력을 더 낼 수 있을 것이다. 즉, 네가 마음먹고 달아난다고 하면 아라 정도 되는 존재가 아니고서야 잡을 수 없다는 것이지. 물론 세상에는 절대라는 것이 없느니, 예외도 있는 법이다.”
“예를 들면?”
“예를 들자면 몇몇 특별한 이수들이나, 생령들이 있지. 아무튼, 현재 살아 있는 생명체 중 너보다 빠른 존재는 열을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그 말에 엽현이 활짝 웃었다.
“그 정도면 이미 훌륭하오!”
엽현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도가 말한 열 사람은 대부분 절대강자일 것이고 심지어 이 시대의 인물들도 아닐 테니까.
“좋아, 그럼 오늘은 푹 쉬도록 해라. 내일부터는 나와 함께 이 세계가 얼마나 큰지 알아가야 할 테니까. 아 참, 좀 있다 저녁 하는 거 잊지 말거라.”
“후후, 알겠소.”
이때 엽현이 문득 장문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여기 내 친구도 함께 갈 수 있겠소?”
소도가 장문수를 한 번 힐끔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은 없다.”
“고맙소!”
이때 소도가 아무 말 없이 눈을 깜빡였다.
그걸 본 엽현이 한숨을 내 쉬며 소매를 펄럭이자 자기 스무 가닥이 소도를 향해 날아갔다.
“흡… 하… 좋군.”
“그런데, 소도 낭자. 그대에게 이런 기운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오?”
“음… 그렇다고 해 두지.”
“어째서 말이오? 그대에겐 진귀한 보물도 많을 텐데, 자기보다 좋은 영기가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소.”
소도가 엽현을 잠시 응시했다.
“이 세상에 너의 자기보다 뛰어난 것은 본원조기(本源祖氣) 뿐이다.”
“본원조기… 그대라면 어디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지 않소?”
“물론이다. 나는 이미 본원조기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차지하는 것엔 대단한 차이가 있다.”
“어째서 차지하지 못한 것이오?”
엽현이 의아하다는 듯 묻자 소도가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뭘 그리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냐. 너와 하등 상관없는 일이거늘.”
“…….”
소도가 말을 아끼자 엽현은 더 이상 그를 방해하지 않고 악마의 날개 위에 자신의 피를 뿌렸다. 순간, 악마의 날개가 부르르 떨더니, 한 줄기 묵광으로 변해 엽현의 미간 속으로 파고들었다.
쾅-!
순간, 엽현의 체내에서 강대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 시진 가량이 지났을 때, 엽현이 두 눈을 번쩍 떴다. 이때 그의 등 뒤에는 검을 연상케 하는 날카로운 검은 날개가 돋아난 상태였다.
엽현은 날개를 이리저리 움직여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야말로 한 마리 새가 된 기분이었다.
엽현은 더 기다릴 것도 없이 날개에 현기를 주입했다.
바로 그 순간, 엽현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성 밖에 있는 어느 강가였다. 지금 온 곳은 천도전당포까지는 무려 십만 리나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이건 미쳤다!
만약 여기에 일검무량이나 일검정생사를 섞는다면……
이 생각이 들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오는 엽현이었다.
바로 이때, 그의 귓가에 누군가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순간 고개를 돌린 엽현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강가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 여인이었다.
한 손에 빨래 방망이를 들고서 엽현을 응시하고 있는 여인은 다리가 한쪽뿐이었다.
이때 여인의 시선이 엽현의 발밑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여인의 시선을 따라 엽현도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제야 엽현은 자신의 발밑에 하얀 치마 한 장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바람 앞의 갈대와 같이 천천히 나부끼는 외발 여인. 가만히 서서 엽현을 바라보는 그녀에게선 어떠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편 여인을 바라보는 엽현의 표정은 점점 딱딱하게 굳어갔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무변지하성의 영역.
이런 곳에서 만난 자가 보통 존재일 리 있을까?
이 점을 깨달은 순간 엽현은 뒤로 한발 물러나, 재빨리 밟고 있던 치마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엽현을 응시하고 있는 여인.
마침내 엽현이 먼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오, 실수로 그대의 옷을 더럽히고 말았소.”
엽현은 천천히 여인에게 다가가 치마를 건넸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여인은 아무 동작도 취하지 않았다. 바로 이때, 엽현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순간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던 것이다.
날 죽이려는 걸까?
엽현이 숨죽인 채, 검을 뽑아 드려는 이때, 갑자기 나타난 소도가 엽현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이와 동시에 엽현의 몸에서 끓어오르던 현기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그저 단순한 오해였소.”
소도가 외발 여인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여인은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소도를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소도 역시 더 이상 긴말하지 않고 엽현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두 사람이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던 여인.
잠시 후, 그녀가 손을 뻗자, 엽현이 놓고 간 치마가 그녀의 손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불쾌하다는 듯 먼지 묻은 부분을 탁탁 털어냈다.
“소도 낭자, 조금 전 그 여자는 대체 누구요?”
“방금 정말로 출수했더라면, 너는 지금쯤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나 강한 사람이오?”
“강해도 보통 강한 자가 아니다.”
소도의 말에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대체 정체가 뭐요? 좀 알려 주시오.”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아무튼 다음에 다시 마주치거든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게 좋을 게다.”
엽현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외발 여인에 대해 더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차피 말해 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둘은 전당포로 돌아왔다.
다음 날.
“밥 좀 내와 봐. 후딱 먹고 출발하지.”
“맡겨 주시오!”
소도가 전당포에 들어서자마자 한 말에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잠시 후, 탁자 위에 거하게 한 상이 차려졌다.
“흐음… 오늘은 꽤나 힘을 준 것 같군.”
“헤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시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도의 젓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반면 장문수는 망설이며 젓가락을 들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를 본 엽현이 직접 그녀의 손에 젓가락을 들려주었다.
“먹어봐, 맛있을 거야.”
그러자 장문수가 천천히 바로 앞에 놓인 반찬을 향해 손을 가져다 댔다.
“웩, 맛없어!”
하지만 말과 다르게 장문수의 손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
그렇게 식사를 마친 후, 소도는 엽현과 장문수 두 사람을 데리고 전당포를 나섰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이오? 미리 좀 알려 주면 안 되는 것이오?”
“가 보면 안다.”
소도가 말을 아끼자 엽현이 입을 삐쭉였다. 방향이 남쪽이라는 것만 알지, 행선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때 소도가 장문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네 몸에 상고 마족의 피가 흐르는 것 같군. 그런가?”
“그렇소.”
장문수의 대답에 소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소도 낭자, 상고 마족의 혈맥이 무엇이오?”
엽현이 궁금해 하며 묻자 소도가 웃으며 대답했다.
“마족이란 오래전 세상에 존재했던 매우 강성한 종족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하지만…”
소도가 문득 장문수를 바라보았다.
“만약 그녀 안에 잠들어 있는 마혈을 활성화시킬 수만 있다면 지금의 몇 배로 강해질 것이다.”
“그 마혈을 어떻게 활성화시킬 수 있소?”
“흠… 가장 빠르고 간단한 방법은 마혈보다 더 강력한 혈맥의 소유자를 찾아 교접하는 것이다.”
교접!
그 말을 이해한 엽현이 장문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너를 돕기 위해서라면 내 한 몸 희생할 수 있어.”
그 순간, 장문수가 창을 꺼내 들더니 다짜고짜 엽현의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이에 엽현이 황급히 고개를 숙여 창을 피함과 동시에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둔부와 둔부가 마주한 채로 얼어붙은 두 사람.
이때 소도의 따가운 눈빛을 느낀 엽현이 황급히 허리의 손을 풀었다.
아무리 엽현이라 하더라도 다른 이가 보는 앞에서 여인과 시시덕거릴 순 없는 노릇.
“흠, 흠! 그러니까 방금 전 하던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그 상고 마족은 어떤 자들이었소? 지금은 없다면 어느 시대에 존재했소?”
“왜 내게 묻느냐. 본인에게 물어보면 될 것을.”
소도가 장문수를 턱으로 가리키자, 장문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소.”
“아니, 스스로의 혈맥이 뭔지도 모른단 말인가?”
소도가 기이하다는 표정을 짓자 장문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고 마혈을 물려받았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오.”
“흠… 그럼 할 수 없지.”
엽현에게서 자기 열 가닥을 뜯어낸 소도는 곧장 설명을 시작했다.
“상고 마족은 고시대(古時代)에 존재했던 매우 강력한 종족이다. 그들의 육신 수련 방식은 매우 고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덕분에 최후에는 당시 가장 강력하다고 여겨지던 고요족(古妖族)의 육신을 뛰어넘을 수 있었지. 게다가 인간에게도 뒤떨어지지 않는 지능 탓에 고도로 발전된 문명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지금은 거의 멸종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거의?”
장문수가 묻자 소도가 웃으며 대꾸했다.
“요행히 살아남은 자들이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