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Return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개방귀환(丐幇歸還)(2)
그런데 그 자리를 피하려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검매홍이었다.
물론 어릴 적부터 환희밀교도의 한 사람으로 살아온 검매홍은 따로 연옥상의 연혼대법을 받을 필요도 없는 사람이었으므로 제심을 당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성을 잃지 않고 절대적으로 불리한 이 자리를 벗어날 궁리를 하는 중이었다.
“허엇! 제남총타주가 환희밀교의 사람일 줄이야!”
“성도총타주 방귀환이 연옥상에게 제심이 되다니!”
까가강! 파카카캉!
검매홍과 함께 자리하고 있던 15총타주들 중에서도 연옥상의 연혼대법에 제심이 된 사람이 다섯이나 있었고, 제심이 되지 않은 아홉 총타주와 검을 휘두르며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쉬이이잇!
난전을 틈타 장중에서 빠져나온 검매홍이 환희밀교의 상승신법인 등산신풍(登山迅風)으로 개방의 담장을 가뿐히 날아 넘었다.
“어딜 도망가, 검매홍!”
한데 막 개방의 담장을 날아 넘은 검매홍의 앞으로 어디선가 날아온 한 신형이 검매홍을 막아서듯 내려서며 쩌렁한 고함을 내질렀다.
그는 오랫동안 란주 총타에서 검매홍과 앙숙으로 지냈던 백병부주 공도협이었다.
“고, 공도협! 네, 네놈이 끝까지 내 앞길을……!”
자신의 앞을 막은 것이 공도협임을 확인한 검매홍이 이를 갈며 치를 떨었다.
“그래. 나는 대 개방의 백병부주고 그대는 사교일파인 환희밀교의 사령인데 어찌 그 앞길을 막지 않을 수 있겠나?”
공도협이 비아냥거리는 어투로 검매홍의 말을 받았다.
“그 맹추란 놈이 결국 이렇게 큰일을 저지르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란주에서 어떻게든 때려잡았어야 했는데……!”
무결개의 신분으로 무위 분타에서 란주 총타에 왔던 맹호동을 떠올리며 검매홍이 다시 한번 이를 갈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미심쩍은 게 있었지만 종내에는 개방의 새 방주가 되고 환희밀교를 망가뜨리는 데 앞장을 서니 지난 날 그를 없애버리지 못한 게 후회가 되는 것이다.
와아아아! 카카카캉! 파카캉!
두 사람의 뒤, 개방의 담장 안에서는 연옥상의 연혼대법에 의해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나선 자들과 맹호동의 명에 따라 나선 개방도들 간에 목숨을 건 난투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나오고 있었다.
“환희밀교에 발을 담근 자들이 모두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홀로 도망치려 하다니 비겁하지 않은가, 검매홍?”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이건 도망이 아니다! 나, 검매홍은 이미 이런 일이 있을 경우 후일을 도모하라는 명을 부주님으로부터 받았다!”
“후후! 부주라면 연옥상을 말하는 것인가? 내가 보기엔 도망자의 변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데?”
“흥! 우리 환희밀교의 명이 이렇게 쉽게 끊어질 줄 아느냐?”
개방의 담장 안에서 들려오는 난투 소리를 들으며 두 사람이 독하게 더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다.
와아아아아아! 카카캉! 파카캉!
담장 안에서의 난투소리가 더 높아지고 있었다. 싸움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었다.
스릉!
“기필코 네놈의 시체를 밟아 넘고 가리라!”
검매홍이 더 독한 어조로 말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좋을 대로! 나는 그대를 절대로 여기서 살려 보낼 생각이 없거든!”
처억!
유정풍이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검매홍을 향해 내밀었다.
그것은 검이 아니라 오의파 개방도들이 쓰는 애병, 타구봉이었다.
유정풍이 검을 버리고 타구봉을 쓰는 것은 유정풍이 공개적으로 오의파로 전향한 것을 의미했다.
“타구봉? 옷도 거지 옷으로 갈아입지 왜?”
“흐흐. 일부러 거지 옷을 입을 필요는 없지. 계속 입고 있다 보면 뭐, 거지 옷이 되니까.”
맞는 말이었다. 오의파는 일부러 거지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한 벌의 옷을 계속 입어서 헤어져 거지 옷이 되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제 공도협은 란주 총타 백병부주의 신분으로 입은 이 옷을 마르고 닳도록 입을 것이었다.
물론 초록색의 허리띠는 다섯 개의 삼베 매듭이 달린 허리띠로 갈아 차야 할 테지만.
스파아앗!
예고도 없이 느닷없이 검매홍이 바람처럼 유정풍을 향해 짓쳐들어와선 유정풍이 목을 향해 벼락같이 검을 휘둘렀다.
따앙!
하지만 유정풍이 가볍게 뒤로 한 발 물러나며 타구봉을 휘둘러 그 검을 쳐냈다.
따앙! 뚜다다당!
삽시에 둘이 어우러져 검과 타구봉을 휘두르며 열댓 초식을 나누었다.
오랫동안 개방에 들어와 천안전의 방도로, 천안부주로 있으면서 검매홍은 정의파의 검식인 정양일원검법에 익숙해져 있었다.
유정풍 역시 정양일원검법을 모르지 않으니 검매홍의 검식이 유정풍에게 다 읽히고 있었다.
쉬이잇!
그런데 순간, 난투를 벌이던 검매홍의 신형이 유령처럼 유정풍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환희밀교의 상승심법인 망량신풍(魍魎身風)을 발휘한 것이었다.
“……!”
파앗!
일순 공도협이 당황했지만 자신의 왼쪽 최하단을 향해 급히 타구봉을 뻗어냈다.
따앙!
거짓말처럼 검매홍이 신형이 땅바닥에 엎드린 듯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공도협의 왼쪽 발목을 노리고 검을 내질렀지만 그 공격을 예상한 듯한 공도협의 타구봉에 검이 막히고 말았다.
“헉! 어, 어찌 네놈이 망량신풍의 공격방향을……?”
타앗!
회심이 공격이 막히자 검매홍이 놀라 급히 뒤로 몸을 뺐다.
“자운영 전 천안전주께서는 비연회를 운영하며 일찍이 그대들이 환희밀교의 사령들이라는 걸 알아냈지. 그 후 해갈량 집법전주와 내밀히 연락하며 대응책을 모색해 왔는데 우리가 집법창에 잡혀 있는 동안에도 두 분께서는 여러 환희밀공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 주시고 훈련하게 해주셨다.”
“이, 이런, 우라질! 해갈량과 자운영이 진즉부터 공모하고 있었단 말이냐?”
“그렇지. 해갈량 전주께서 괜히 연옥상과의 연인관계를 청산했겠어?”
“제기랄! 그때부터 네놈들이……!”
공도협의 얘기를 들은 검매홍이 다시 이를 갈았다.
연옥상과 해갈량이 연인관계를 청산한 건 3년쯤 전이었다.
그때부터 자운영은 연옥상이 환희밀교도임을 파악하고 이를 분쇄할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치이! 해갈량 그 작자를 연혼대법으로 엮어 버렸어야 했는데, 부주가 연정에 빠져서는……! 연정은 대의를 그르치는 가장 큰 주범이라며 자제해야 한다고 당신 입으로 늘 말해놓고선……!’
검매홍이 연옥상의 잘못된 대처를 생각하며 머리를 저었다.
연옥상이 돌연 마음을 돌린 해갈량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연혼대법으로라도 제압을 했어야 했으나, 연옥상은 차마 연인이던 해갈량에게까지 대법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연옥상은 늘 연정을 주의하라고 사령들에게 주의를 줬던지라 검매홍 역시도 유정풍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지만 냉정을 잃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던 것이다.
그때였다.
쫘악!
갑자기 검매홍이 자신의 상의를 자기 손으로 잡아 뜯었다.
출렁!
백설처럼 고운 그녀의 맨살과 함께 유갑(乳鉀)에 쌓인 그녀의 탐스러운 유방이 흔들리며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무, 무슨……!”
돌연한 검매홍의 행동에 놀란 공도협이 주춤하며 뒤로 한 발 물러섰다.
“호호홋! 어때? 이건 네놈이 연구한 환희밀공에 없는 것일 텐데. 네놈의 자제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자!”
그런 모습으로 검매홍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려대며 공도협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
공도협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붉게 물들었다.
여자경험이 전무한 공도협에게 눈앞에 닥친 검매홍의 반라 여체는 평정심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 것이었던 것이다.
“어디…… 해보자, 공도협!”
파앗!
다가오던 검매홍이 바닥을 박차고 공도협을 향해 다시 짓쳐들어왔다.
“헛!”
카앙!
황망성을 토하며 급히 뒷걸음질을 치며 공도협이 타구봉을 휘둘러 검매홍의 검을 막았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공도협의 얼굴에는 진한 당혹감이 베어 나와 있었다.
해갈량이 알려준 환희밀공의 여러 대비책 중에도 이런 실물 반라 여체를 상대하는 법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검매홍의 이런 대처는 공도협의 허를 제대로 찔렀다 할 수 있었다.
피윳! 피피핏!
약세를 잡은 검매홍이 매섭게 검을 찌르고 휘두르며 공도협에게 숨 쉴 틈 없는 연환공격을 해댔다.
퓨웃! 퓻!
공도협이 급히 몸을 빼며 검매홍의 매서운 검날을 피해냈지만 검매홍의 검날에 옷자락이 찢기고 피부가 베여 피가 튀었다.
순간, 공도협이 눈을 질끈 감았다.
스파앗! 패액!
눈을 감고 그 대신에 기감을 활짝 연 공도협에게 검매홍이 휘두르는 검의 움직임이 잡혔다.
단지 기감만으로 공도협이 검매홍의 날카로운 검식 몇 초식을 피해냈지만 계속 옷자락이 베이고 피부가 찢겨져 피가 튀는 것을 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유정풍이 흔들렸던 심중을 다잡고 있는 것을 검매홍은 알아채지 못했다.
쐐애액!
날카로운 검매홍의 일검이 유정풍의 목을 향해 짓쳐들어왔다.
수세에 몰린 유정풍의 명줄을 끊어 놓겠다는 검매홍의 의지가 담긴 회심의 일격이었다.
스파앗!
눈을 감은 유정풍이 기감만으로 목을 젖혀 그 검날을 피해냈다.
하지만 온전히 그걸 피해내지 못해 예리한 검날이 목줄 옆쪽의 피부를 베고 지나쳐 가며 붉은 피가 튀었다.
“베엇…… 큭!”
검매홍이 유정풍이 목을 베어냈다고 생각하며 회심이 미소를 짓다가 눈을 부릅뜨며 신음을 토했다.
유정풍의 타구봉이 자신의 가슴에서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검매홍의 일검이 자신의 목줄을 베어오는 그 순간, 유정풍은 타구봉법에 있는 단 하나의 찌르기 초식인 타구파총을 시전했다.
타구파총은 몽둥이로 찌르기를 시전하리라곤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초식으로 굉장히 유효했고 절체절명의 순간, 유정풍은 검매홍에게 그걸 시전한 것이었다.
“커억……! 타구봉법 따위에…… 이런 살초가 있었다니……!”
푸우웃!
유정풍의 타구봉이 정확히 검매홍의 심장을 찌른 탓에 타구봉을 빼지도 않았는데도 타구봉이 뚫고 들어간 검매홍의 가슴에서 타구봉과 검매홍의 피부 사이로 붉은 핏물이 삐져나왔다.
“미친개의 머리통을 박살 내는 명부탈혼과 함께 타구봉법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초식이지.”
쑤욱!
유정풍이 말하며 검매홍의 심장에 박혀있던 타구봉을 잡아 뽑았다.
푸아아악!
타구봉이 박혔던 자리에서 붉은 피가 폭포수처럼 터져 나와 유정풍이 옷까지 그 피가 튀었다.
“으……! 환희천국……!”
기우뚱!
검매홍의 눈빛이 급격히 흐려지며 그 몸이 앞으로 쓰러져 갔다.
쓰러져 가는 동안에 그녀가 읊조린 말은 환희교도가 죽어서 갈 수 있다는 환희천국이었다.
그곳은 진정한 환희교도였던 그녀가 죽으면서도 놓지 않는 마지막 희망인 듯했다.
털퍽!
그녀가 자신의 핏물로 범벅이 된 바닥에 눈을 허옇게 뜨고 엎어졌다.
“유…… 정풍, 그 바보 같은 놈에게 전해줘. 내, 내게 놈에 대한 연정은 눈곱만큼도 없었다고…….!”
허억! 헉!
가쁜 숨을 쉬며 검매홍이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그 말을 내뱉은 뒤 검매홍의 몸이 곧 뻣뻣하게 굳어졌다.
심장이 터져 버렸으니 생체는 잠깐 순간에 시체가 되고 말았다.
‘훗! 그런데 그 말은 유정풍에게 풀지 못한 연정이 가득하다라고 들리는군.’
눈을 흡뜨고 죽은 검매홍을 보며 공도협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렵다, 어려워. 무공도 어렵지만 남녀지간사는 더 어려워.’
파악!
검매홍이 쓰러지며 바닥에 꽂아놓은 검의 옆면을 공도협이 발끝으로 걷어찼다.
핑글핑글 돌며 저만치 날아간 검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꼽혔다.
와아아아! 채앵! 챙! 파카카캉!
개방의 담장 안에서 소란스러운 난투소리가 계속 들려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아까보다 많이 잦아들어 있었다. 어느 쪽으로든 승부가 기울고 있는 것이다.
파앗!
공도협이 바닥을 박차고 개방의 안쪽을 향해 담장을 날아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