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Return RAW novel - Chapter 15
15화. 11조의 무위(武威)를 높이는 방법(4)
‘헛! 어찌……!’
맹호동이 그걸 보며 크게 당황하는데, 군불위가 몸을 곧추세운 자세 그대로 자기 몸통 앞으로 타구봉을 세워 들었다.
피할 수 없으니 막는 것이다.
따아아앙!
검과 봉이 부딪치며 뭔가가 튕겨져 나가는 소리가 장중을 뒤흔들었다.
그런데 날아가는 것은 놀랍게도 고검령의 검이었다.
나무로 된 봉이 쇠로 된 검을 튕겨낸 것이다.
싸움 중에는 병기를 쥔 무인이라면 누구나 격체전력으로 병기에 내공을 싣게 되는데 이건 군불위의 내공이 고검령의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 역시……!’
다시 한번 맹호동이 속으로 감탄사를 발했다.
하급 개방도들이 익히는 반합신공으로 방주전승신공인 용두귀합신공을 이긴 것이다.
물론 군불위는 반합신공의 극의를, 고검령은 용두귀합신공이 바닥인 탓에 만들어진 결과이긴 했지만.
털커덩!
고검령의 손에서 분리되어 나온 검이 바닥 한쪽에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이익!”
휘잉!
잠시 당황하던 고검령이 이를 악물며 군불위의 턱을 향해 맨주먹을 날려 갔다.
이대로 패배를 받아들이기 싫었던 것이다.
따아악!
그러나 고검령의 주먹에 닿은 것은 군불위의 턱이 아니라 타구봉이었다.
타구봉법은 지키는 게 주인 수비적인 봉법이다.
그래서 59초식 대부분이 수비식이지만 몇 초식은 개의 머리통을 박살 낼 만큼 치명적인 공격 초식이었다.
지금 발현된 게 그중 하나인 명부탈혼(冥府脫魂)이었다.
“끄아악! 내 손……!”
고검령이 타구봉에 맞은 오른손을 싸쥐고 주저앉았다.
엄청난 고통이 고검령의 전신을 휩쓸고 지나갔다. 손아귀의 뼈가 여러 조각으로 부서진 듯했다.
와아아아아아!
11조원들에게서 환호가 터져 나오고 1조원들의 얼굴에는 절망이 깃들었다.
톡! 툭!
손을 싸쥐고 주저앉아 있는 고검령의 머리통을 군불위가 타구봉의 끝으로 군밤을 먹이듯 두드렸다.
그리고 낮게 읊조렸다.
“끝장을 보자며? 어떻게 할까?”
검을 빼 들고 먼저 도발한 것은 고검량이니 군불위가 어떻게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내, 내가 너무 무모했소. 이쯤에서…… 그만 합시다, 선배.”
“선배? 일단 호칭부터 제대로 해라, 사결개 고검령.”
선배라는 호칭은 같은 결개에게나 쓸 수 있는 호칭이고 선 결개에게는 사형이라는 호칭 써야 한다.
그간 고검령이 선 결개에 나이까지도 한참 많은 군불위를 우습게 보며 선배라는 호칭을 썼던 것이다.
“그, 그건……!”
이 상황에서도 알량한 자존심이 고개를 드는 모양이었다.
고검령이 군불위를 올려다보며 말을 더듬었다.
처억!
군불위가 고검령의 머리통을 겨누고 타구봉을 치켜들었다.
그 타구봉에서 다시 옥빛 기운이 번져 나왔다.
“……제대로 하겠소, 사…… 형. 본 사제의 무례를 용서하시오.”
고검령이 두 손을 바닥에 짚으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11조원들의 얼굴엔 화색이 돌고, 1조원들의 얼굴엔 절망이 깃들었다.
군불위가 천천히 타구봉을 내리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선배로서 청 하나만 하마.”
“……무엇이든지요.”
“저기, 저거…….”
군불위가 한 곳을 가리켰다.
1조원들의 가운데 모닥불 위에 걸려 있는 통짜 양구이였다.
이미 모닥불은 꺼져 있었고 고기도 식었지만 육향은 계속 은은히 11조원들에게까지 풍겨오고 있었다.
“……양구이 말입니까?”
“그래. 그걸 이쪽으로 좀 가져다주게. 우리 애들이 아까부터 먹고 싶어 했거든.”
고검령이 거지새끼들은 어쩔 수 없는 건가, 속으로 비웃으며 1조원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아니, 자네가 직접 가져다주게.”
“그, 그건……!”
군불위가 다시 타구봉을 치켜들었다.
할 수 없이 고검령이 일어나 양구이 쪽으로 걸어갔다.
1조원들이 풀이 죽은 모습으로 보고 있는 가운데 고검령이 엄청난 모멸감을 참으며 쇠꼬챙이에 꽂혀 있는 양구이를 11조원들 쪽으로 들고 왔다.
11조원들이 얼른 바닥에 짚을 깔았다.
짚 위에 양구이가 놓여졌다.
곧바로 양구이에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11조원들이 희희낙락 양구이를 뜯어댔다.
“아구 아구, 쩝쩝…… 맛있다.”
“이런 쫄깃쫄깃한 육고기가 얼마만이냐?”
“우리 같은 말단들은 조장을 잘 만나야 된다니까, 히히.”
“맞아, 맞아, 히히.”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그런 11조원들을 보며 고검령과 1조원들이 엄청난 모멸감에 치를 떨었다.
* * *
호되게 당한 고검령과 1조원들은 그 일이 있은 후 11조원들을 바로 보지도 못했다.
11조원들이 내려올 때가 되면 자기들 천막 안으로 들어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나 인정하는 분타의 최정예 1조가 찌끄레기조 11조에게 참혹히 짓밟혔으니 쪽팔림도 그런 쪽팔림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이 일에 알려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고, 그것을 본 성재일과 성씨주가의 장정들에게는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해 두었다.
* * *
술독을 나르는 일을 시작한 지 이제 한 달 반이 되었다. 이제 술독은 이틀만 더 하면 내릴 게 없었다.
“하아아앗!”
“이야아앗!”
늦은 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일을 마친 11조원들이 후원 공터에서 타구봉법 수련에 열중이었다.
“그래! 당소! 이제 타구봉에 힘이 좀 실리는구나. 이제 개가 아니라 호랑이도 때려잡을 수 있겠어!”
“좋아, 좋아, 조청! 이제 몸이 기우는 버릇은 완전히 없어졌구먼!”
조원들의 수련도가 높아지자 군불위의 채근하는 목소리도 한층 누그러졌다.
맹호동도 그들과 어울려 타구봉법 수련을 했다.
전생에선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는 초식들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머릿속에만 있어서는 무공이라고 할 수가 없다.
어디까지나 무공이라는 것은 신체로 발현해 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엄청난 내공을 가진 내가고수라 해도 신체를 통해 무공을 발현해 내지 못한다면 누가 그를 고수라 하겠는가.
그래서 무공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신체가 초식에 익숙해지도록 훈련을 해야 한다.
목숨을 건 싸움은 초를 다투는 급박한 것이고, 반복 훈련을 통해 순간순간 본능적으로 초식이 발현되게 해야 한다.
그것을 초식을 체화(體化)한다고 하는데 새로운 신체로 환생한 맹호동의 입장에서 이런 초식 수련은 필히 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하아아앗!”
“이야앗!”
달이 중천으로 떠오르고 수련이 끝나갈 시간이 되어가자 조원들의 함성이 드높아졌다.
이제 11조원들에게 수련하는 시간은 고통스러운 시간이 아니라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그건 여러 가지 이유로 11조원들의 사기가 드높아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이, 여러분! 잠깐, 잠깐만요!”
바로 그때, 난데없는 목소리가 조원들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그…… 수련하는 건 좋은데 기합은 지르지 말고 하쇼. 잠자리에 든 주가 사람들이 소음 때문에 불편해 합니다.”
그는 성씨주가의 내총관 성원종이었다.
동작을 멈추고 자신을 바라보는 조원들을 향해 불퉁스럽게 주의를 주었다.
* * *
다음 날 아침, 11조원들은 다시 술독을 메고 성씨주가를 출발했다.
이제 술독은 11조원들에게 별로 무겁지 않았다.
그만큼 근력과 내공이 높아지고 금휘주도도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쉬이이잇!
바람소리를 내며 조원들이 술독을 메고 날 듯이 금휘주도를 달려 내려갔다.
얼마 전부터 군불위는 금휘주도 중간에서 하던 도착 순서대로 볶은 콩 나눠주기를 그만두었다.
의도했던 것 이상으로 조원들의 신법 수준이 높아져 한 나절도 안 되어 산을 내려가니 중간에 새참을 먹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쉬이이잇!
처음에는 내공과 신법의 차이로 긴 줄이 형성되었지만 이제는 다들 신법 수준이 비슷해져 무리를 지어 달리게 되었다.
군불위와 맹호동은 그들을 따돌릴 수 있는 경지이긴 했지만 일부러 그들과 속도를 맞추어 달렸다.
같은 조원으로서의 일체감도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달리던 중 일결개 능소가 군불위를 향해 물었다.
“저기…… 조장님. 그 돈 받으면 어디다 쓰실 거여요?”
“그 돈……?”
“일을 시작할 때 성씨주가 내총관하고 번외계약을 했었잖아요. 하루에 한 독씩 일을 마친 뒤 계산을 해 주겠다고요.”
“글쎄…… 초장에 우리가 몇 독 깨뜨린 것도 있는데…… 그게 총 얼마가 되지?”
군불위는 계산에 둔한 사람이었다.
일이 끝나가는데도 받을 돈이 얼마가 되는지 그걸 어디에 쓸 건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맹호동 때문에 얼김에 하겠다고 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독을 깨뜨리지 않고 내일 일을 마쳤을 경우로 계산하면 총 3,200냥이 돼요. 내일까지 43일간 일을 했고 27개를 깨뜨렸으니 총 16개의 값을 받아야지요. 술독 하나 값이 200냥이라 했으니 받을 총액이 그렇게 나와요.”
일목요연하게 받을 돈을 정리해 알려준 것은 군불위와 나란히 달리고 있던 맹호동이었다.
“우와! 3,200냥이나 된다고?”
“화아! 3,200냥이면 큰 장원 하나를 살 만한 돈이야!”
“으하하하! 우리 조는 이제 부자다!”
“일단 무위 최고 주루에 가서 주지육림에 한번 빠져보는 건 어때요, 조장님, 우히히히!”
군불위도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받을 돈이 꽤 되리란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까지 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다른 조원들이 듣지 못하게 군불위가 맹호동에게 전음을 날렸다.
–어디에 쓸 거냐? 생각이 있으니까 내게 받으라고 한 거잖아.
–나도 아직은 몰라요. 하지만 분명 요긴하게 쓸 데가 있을 겁니다.
–공수정심 오의파 거지가 돈 쓸 데가 어디 있다고?
–우리 처지를 잘 알면서 왜 그래요? 더러는 돈이 칼보다 더 위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구요. 아! 그 돈, 은전으로 받지 말고 전표로 받아요. 간수하기 좋게요.
“…….”
맹호동이 더 물어볼 여지도 없게 만든다.
암중에 이미 받을 돈을 계산해 놓고 있었고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까지 알려주니 말이다.
‘무슨 어린애가 능구렁이 노인네 같은……?’
군불위가 그런 맹호동을 보며 다시 한번 이해 안 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에게 오결개를 달아준 맹 방주를 떠올렸다.
‘범의 새끼라…… 다른 건가? 그런데 외탁을 했는지 외양은 통 닮은 데가 없어 보이니…….’
맹 방주는 사각턱에 주먹코에 못생긴 축에 속하는 얼굴이었다.
아무리 맹추를 다시 봐도 맹 방주의 향수는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으앗!”
우당탕! 팍싹!
술독을 메고 뒤따르던 조원들 중 누군가의 비명과 함께 넘어지고 깨지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