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Return RAW novel - Chapter 89
89화. 홍화선복령(紅花仙福鈴)이 다시 출현하다(3)
해가 동산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맹호동이 몽중첩첩신공을 거두고 신경을 곤두세운 채 주위의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백화백주루 후원에서나 본청 쪽에선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쉬이잇!
맹호동이 별채의 지붕에서 날아 내려왔다.
그리고 후문을 통해 당당히 객청 안으로 들어갔다.
객청으로 들어간 맹호동이 주루의 현관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와 살펴보니 ‘今日休業(금일휴업)’이란 붉은 글씨가 쓰인 나무현판이 현관문 위에 떡하니 붙여져 있다.
‘어제 밤 객청을 빠져나가면서 이런 것까지 붙여 놓다니!’
적이지만 대단하다. 맹호동이 다시 한번 감탄하며 객청 안으로 들어왔다.
저런 것까지 붙여놨으니 기루에 들어올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맹호동이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배가 고팠던 것이다.
잘 숙성된 돼지고기, 소고기, 말린 생선, 전복 등등 육거리가 지천이다.
말린 표고버섯, 능이버섯, 청경채, 무, 고추, 마늘 등 야채와 양념도 없는 게 없다.
맹호동이 얼른 화덕에 불을 피우고 야채를 다듬기 시작했다.
재료가 지천인데 거지가 못 만들 음식이 어디 있는가?
* * *
맹호동이 녹순전복에 어향우육까지 만들어서 고정공주까지 곁들여 개 트림이 나오도록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 어제 밤에 쓰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깨끗한 객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객방의 푹신한 침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몽중첩첩신공을 운용했다.
이들이 다시 기습을 해온다 해도 낮에는 그럴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둠이 내릴 때까지 늘어지게(?) 몽중첩첩신공을 운용하던 맹호동이 객방에서 나와 지난밤을 보냈던 별채의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 앉아 다시 몽중첩첩신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 * *
세상이 모두 잠든 시간, 축시(01시~03시)가 되어서야 흑룡회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리 없이 나타난 흑의인들이 맹호동이 올라 앉아 있는 별채를 기점으로 백화백주루를 에워싸기 시작했는데 그 수가 물경 3백 명에 달했다.
백화백주루 본청의 지붕 위와 담장 위, 다른 별채들의 지붕 위는 물론 옆 건물의 지붕 위에까지 빼곡히 올라서서 맹호동을 포위했다.
흑룡회도들이 그야말로 나는 새가 아니면 빠져나가지 못할 천라지망을 구축한 것이다.
하지만 맹호동은 별채의 지붕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계속 몽중첩첩신공을 운용했다.
이들은 단지 맹호동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포위망의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을 맹호동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축시 중엽이 되었을까.
쉬이이잇!
순간, 네 명의 사내들이 가까이 있는 본청의 지붕 위에서 맹호동이 있는 별채의 지붕 쪽으로 몸을 날려왔다. 드디어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처처처척!
몸을 날려 온 네 사네가 맹호동의 주위, 사방으로 동시에 내려섰다.
그들은 흑룡회의 사내들과 달리 모두 붉은 무복을 입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똑같은 건 복색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얼굴도 모두 하나같이 똑 닮아 있었다.
‘네 쌍둥이……?’
쌍둥이하면 대부분 둘이다.
개나 돼지야 흔한 일이지만 사람이 네 쌍둥이인 경우는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희귀한 일이다.
내려선 네 사내가 들고 있는 병기를 맹호동을 향해 겨누는데 둘은 검이고 둘은 창이다.
‘혹시 사자혈귀(四孖血鬼)……?’
그들의 병기를 보고서야 맹호동이 짚이는 것이 있었다.
전생에서 호남지역에서 창검으로 합격술을 펼치는 사자혈귀라 불리는 네쌍둥이 무사가 있는데 합격술로는 호남제일이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던 것이다.
그들 하나하나의 무공도 대단했지만 창검을 이용한 합격술은 얼마나 뛰어난지 한 무가의 가주급 고수도 그들을 당할 수 없다고 했다.
‘창검의 합격술이라……! 재미있겠군.’
스으으으!
맹호동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검집 검을 뽑아 세워 들고 천천히 진기를 끌어 올리며 네 사내를 둘러보았다.
번뜩!
순간, 네 사내의 눈에서 차가운 살기가 동시에 번져 나왔다.
파아아앗!
그리고 동시에 네 사내가 맹호동을 향해 몸을 날려 왔다.
마치 한 사람이 움직이는 듯 네 사람의 움직임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퓨우웃!
먼저 맹호동의 몸에 닥쳐든 것은 창이었다.
따당!
맹호동이 몸을 휘돌리며 앞뒤에서 동시에 닥쳐든 창날을 검집에 든 검을 휘둘러 쳐냈다.
쉬아앗! 슈각!
순간, 벼락같이 닥쳐든 두 자루의 검이 맹호동의 좌우에서 대각선을 그리며 베어 들어왔다. 전광석화 같은 빠르기였다.
따앙!
하지만 맹호동이 급히 몸을 휘돌리며 한 자루의 검을 자신의 검집 검으로 막아냈다.
츄욱! 퓨웃!
하지만 다시 한 치의 틈도 주지 않고 맹호동의 앞뒤에서 장병인 창날이 찔러 들어왔다.
파앗!
맹호동이 급히 바닥을 차고 솟구쳤다.
파팟!
이어 발아래를 스치고 지나가는 창날을 한 번 더 두 발로 차고 솟구쳐 올랐다.
휘리리릭!
허공에서 재주를 넘으며 맹호동이 몸을 날려간 곳은 후원의 너른 잔디밭이었다.
협소하고 굴곡이 심한 지붕 위에서가 아니라 운신이 용이한 평지에서 이들과 제대로 붙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평지가 혼자인 맹호동보다 합격술을 쓰는 사자혈귀에게 더 유리할 수도 있었지만 이들의 합격술을 제대로 견식해 보고자 맹호동이 일부러 이곳을 선택한 것이다.
쉬이이잇!
곧장 맹호동을 따라 사자혈귀가 별채의 지붕 위에서 잔디밭으로 몸을 날려 와 맹호동의 앞뒤로 사뿐하게 내려섰다.
창을 든 두 사람이 맹호동을 향해, 검을 든 두 사람이 창을 든 자들의 뒤에 선 것이다.
‘앞뒤로 서다니? 이게 무슨……!’
그들의 위치를 보며 맹호동이 고개를 갸웃했다. 네 명이 한 명을 공격할 때는 사방을 점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었기 때문이었다.
파아앗! 파앗!
그들이 앞뒤로 선 이유는 바로 밝혀졌다.
앞의 창수들이 동시에 맹호동을 앞뒤에서 창을 찌르며 공격해 왔는데 창수들의 뒤에 있던 검수들이 창수들의 어깨를 박차고 동시에 맹호동을 향해 날아든 것이다.
그러니까 맹호동의 앞뒤로 두 개의 창날과 그 창날의 상부에서 두 개의 검날이 동시에 맹호동을 겁박해 들어온 것이다.
동서남북이 아닌 동서상상(東西上上). 사자혈귀가 상식을 깨는 파격적인 합격을 해 온 것이다.
양면에서의 공격이니 양면의 양쪽, 남북 어느 한 곳으로 피하면 간단하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검수들은 검을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휘두르고 있었다.
옆으로 피하는 것도 위로 솟구쳐 피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다.
찌르기만 하는 창, 창, 창, 창의 합격이라든지 베기만 하는 검, 검, 검, 검 합격이라면 이보다 상대의 수를 예측하기도 쉽고 상대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파아앗!
선택지는 한 곳뿐이었다. 맹호동이 급히 바닥으로 몸을 던져 데구르르 몸을 굴렸다.
지당취권 중의 신법초식인 토룡일신(土龍一身)을 시전한 것이다.
여간해서 강호의 무사들은 바닥에 몸을 던지지 않는다.
바닥에 몸이 닿는 것은 넘어지거나 쓰러지는 것,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당취권은 당당히 바닥에서 구르고 재주를 넘는 신법들을 초식으로 만들어 놓았다.
격식이나 위신을 중히 여기지 않는 개방의 철학이 녹아들었기에 가능한 것일 터였다.
퓨파파팍! 슈아악!
맹호동이 바닥을 구르자 사자혈귀도 예기치 못한 일인지 잠시 당황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사자혈귀가 바닥을 굴러가는 맹호동을 쫓아 움직이며 번개같이 창을 찔러내고 검을 휘둘렀다.
파파파팍! 파가각!
맹호동이 바닥을 구르거나 재주를 넘어 사자혈귀의 창검을 피하고 창검을 맞은 바닥에선 잔디 잎과 흙먼지가 어지럽게 흩날렸다.
“하하! 살다 저런 무공은 처음 보는군!”
“그러게. 바닥을 구르면서 싸우다니, 토룡권법(土龍拳法)인가?”
“하여튼 무슨 무공인지 모양은 전혀 안 나는구먼.”
그 모습을 보며 천라지망을 구축하고 있던 흑룡회의 사내들이 비웃었다.
파파파팍! 슈아악!
계속 맹호동은 모양 빠지게 바닥을 굴러댔고, 사자혈귀의 창검이 맹호동의 움직임을 쫓아 무자비하게 바닥을 찌르고 베어내는 난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사자혈귀도 바닥을 구르며 싸우는 상대는 처음 겪어보는 것일 터였다.
그런 탓인지 그들의 창검도 아까보다는 위력적이지 못했다.
맹호동이 바닥으로 내려와 지당취권으로 이들을 상대한 것도 그런 점을 노린 것이었다.
파파파팍! 수가가각!
계속 맹호동은 바닥을 굴러 피하고 사자혈귀의 창검 합격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렇게 창검을 피하는 가운데 맹호동은 사자혈귀가 펼치는 연환공격의 공식을 알아냈다.
창,창이 동시에 찌르고, 검,검이 이어서 동시에 베고, 창이 찌르고 검이 베고, 검이 베고 창이 찌르고, 그 다음에는 창,검의 동시 공격, 다시 한번 창,검의 동시 공격, 그리고 검,검이 베고, 창,창이 찌르고, 네 자루의 창검이 눈 코 뜰 새 없는 합격을 하고 있었지만 이런 공식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슈아아악! 파파파팍!
맹호동이 계속되는 사자혈귀의 연환공격을 바닥을 구르며 피하는 가운데 그 공식을 외운 맹호동이 반격의 순간을 가늠하고 있었다.
맹호동이 노린 것은 창, 검이 동시에 공격하는 순간이었다.
파악! 까앙!
동에서 창이 찌를 때 서에서는 거의 동시에 검이 날아드는데 일부러 맹호동이 검을 쳐오는 혈귀 쪽으로 구르며 창을 피하고 동시의 혈귀의 검을 검집 검을 휘둘러 막아냈다.
빠각!
그리고 구르는 기세를 한 발에 실어 검질을 한 혈귀의 무릎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발은 바닥을 딛고 있을 때보다 이렇게 바닥을 구르고 있을 때 훨씬 더 상대를 공격하기에 효율적이다.
“아윽!”
검을 든 혈귀가 비명을 지르며 한 발로 껑충껑충 뛰며 뒤로 물러났다. 아마도 무릎이 박살났을 것이다.
한 명이 부상을 당해 합공전력에서 이탈하자 남은 세 혈귀가 크게 당황한다.
타라라락!
맹호동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창을 든 동쪽의 혈귀를 향해 빠르게 몸을 굴렸다.
“어딜!”
슈악!
창을 든 혈귀가 굴러오는 맹호동을 향해 창을 찔러냈다.
카앙!
하지만 이미 예측하고 있던 것이라 맹호동이 어렵지 않게 그 창을 자신의 검집 검으로 쳐올리며 계속 혈귀를 향해 굴러 들어갔다.
빠악!
그리고 다시 아까처럼 혈귀의 무릎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흐악!”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들고 있던 창을 던지며 혈귀가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 역시도 무릎이 거꾸로 꺾여서 한 발밖에 쓸 수 없을 것이다.
“…….”
두 명이나 부상을 당하자 남은 두 혈귀도 크게 당황하며 어쩔 졸 물라한다.
“물러나라!”
바로 그때, 어디에선가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사자혈귀에게 하는 말인 듯했다.
처척!
그러자 부상당하지 않은 두 혈귀가 부상당한 두 혈귀를 급히 부여안았다.
쉬이이잇!
그리고 가까운 후원 뒤편의 담장을 넘어 사라져버렸다.
흑룡회의 1차 공격은 이렇게 끝난 보였다.
툭툭!
맹호동이 일어나 옷에 묻어 있는 흙먼지를 털었다.
파앗!
그리고 원래 있던 별채 지붕을 향해 다시 몸을 날렸다.
그곳이 자신을 공격해 오는 적들을 조망하기도, 상대하기도 가장 좋은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척!
맹호동이 별채 지붕의 용마루에 걸터앉았다.
‘한바탕 했더니 갈증이 나는군. 이럴 줄 알았으면 객청에서 나올 때 술이라도 한 병 가져올 걸.’
맹호동이 아까 먹었던 고정공주의 맛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바로 그때였다.
쿵! 쿵! 쿵! 쿵!
갑자기 백화백주루의 본청 쪽에서 육중한 쇠망치로 땅을 두드리는 듯한 진동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