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10_2
데미지: 공격력+100%, 크리티컬+25%]
줄럿 1,000개체 이상 동시 공격할 때를 조건으로 활성화된 스킬.
4등급인걸 보니, 천지 스톰보다 약한 거겠지?
그나저나 이 스킬은 뭐로 정한다?
얘들한테 물어볼까? 아니면, 기존에 내가 생각한대로?
그런데 그걸 외치면 존나 쪽팔릴 것 같긴 한데… 쩝.
샤워를 하고 나오자 애들이 여전히 모니터에 달라붙어 누가 더 유명한지에 대한 심각하고도, 진지한 미친 짓거리를 아직도 하고 있었다.
“주목! 던전 내에서 찾은 스킬명 공모. 줄럿 1,000개체 이상 동시 공격시 스킬 활성화. 제한시간, 내일까지. 상금 1억. 끝! 나가, 다들 나가!”
“오빠. 닥치고 줄럿, 어때?”
“닥쳐라! 나가, 나가라고.”
“형님. 묻지마 줄럿, 어떻습니까?”
“묻지마라. 너도 나가. 얼른!”
“길드장님, 떼줄럿은요?”
“무슨! 천 개체의 줄럿이니까, 싸우전드 줄럿. 어떻습니까?”
“싸울래? 나가라니깐!”
어찌, 왜, 굳이, 꼭 내 방에서 이러고들 있는 건데! 다들 쫌 나가라고!
다음날.
오전부터 또다시 애들이 내방으로 몰려와 뻘짓거리를 한다.
도대체 이럴 거면 왜 방을 나눈 건데? 그냥 너희들끼리 단체로 방을 잡아서, 뻘짓거리 하든, 미친 짓거리 하든지 하라고! 왜 내 방에서 이러냐고!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초딩들인가? 씨밤바색들.
“아침식사 하시죠?”
“이 시간에 먹으면 점심이지, 아침이냐? 먹고 와라. 난 간단히 룸서비스나 시켜서….”
“오빠. 나도.”
“저두요.”
“하… 내가 나갈게. 니들끼리 놀아라.”
대충 옷을 걸치고 호텔 객실을 나오자, 애들이 쫓아 나온다.
내가 보모냐? 니들이 어린이집 다니는 5살 꼬맹이들이야? 왜 쫄래쫄래 쫓아오는 건데!
먹이를 물어다주는 어미새처럼 애들을 데리고 인근 식당으로 들어가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왔다.
아이스커피를 한잔씩 들고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데, 주변의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든다. 호텔 보안요원들과 협회의 직원들이 막아서지만, 달려드는 기자들과 일반인들이 너무나 많다.
역시나 나오는 게 아니었어. 호텔 식당이나 이용할걸. 괜히 다른 메뉴 먹는다고 나와서는… 민폐다, 민폐. 쩝.
“닥치고 줄럿 이라니까.”
“아니야. 싸우전드 줄럿.”
“폭풍 줄럿, 어때요?”
“음, 그건 좀 괜찮아 보이는데?”
“천 개체의 줄럿들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거니, 집중, 인텐시브와 기존의 스킬에도 있는 폭풍이란 단어를 써서 인텐시브 스톰(Intensive storm), 어때?”
“오호~.”
“아니야. 닥치고 줄럿!”
“싸우전드 줄럿이 더 멋진데.”
“홍찬이 형, 인텐시브 스톰, 당첨!”
“하하, 괜히 뻘줌하네.”
“치, 끼리끼리 다 해 먹는구나. 둘이 짰지?”
“짜긴 뭘 짜? 나도 금방 들은 거구만. 짰으면 스킬명 미리 정했지.”
내일 파란 집에 갈 내용에 대해 상황설명을 들을겸, 팀장급 길드원들과 홍찬이 형과 함께 다시 커피 타임을 가졌다.
뭐, 모인 김에 스킬명도 정하고.
애들의 작명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는데, 홍찬 형의 스킬명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왠지 뭔가 있어 보이면서도, 뜻이 들어맞는 듯한 느낌. 역시 작명은 한글이 아닌 영어나 다른 언어로 해야 뭔가 있어 보인다. 크큼.
“내일 오전 10시에 출발할 거야. 그쪽에서 데리러 온다고 하니까, 옷 좀 신경쓰고.”
“10시? 점심 한 끼 먹는데, 왜 2시간 전에… 알았어. 알았다고. 무슨 눈빛이….”
“내일 하루는 그냥 하자는 대로 해주라. 귀찮다고 판 엎으면, 나도 같이 엎는 수가 있다.”
“알았다니까.”
“사고치지 말고, 귀찮아하지 말고, 욱 하지도 말고.”
“아~, 알았다니까. 그렇게 말하면 내가 무슨 맨날 사고만 치고 다니는 것 같잖아. 초딩도 아니고. 형도 어미새 할래?”
“어미… 뭐? 그건 또 뭔 소리냐?”
“하여튼, 그런 거 있어. 괜한 잔소리는 사양.”
“진짜 걱정되서 하는 소리다. 진짜!”
“알았어. 알았다니깐. 하여튼, 그 양반은 뭐하러 불러대서는….”
“지원아!”
“예이~. 옙.”
나도 홍찬이 형한테는 애들과 동급인건가? 왜 이렇게 날 믿지 못하지? 내가 그렇게 뻘짓거리를 많이 했었나? 응?
다음날.
아침부터 난리다.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만지고, 어제 새로 구입한 짙은 남청색 슈트로 갈아 입고, 새로 산 구두를… 하, 꼭 이렇게 해야 해? 진짜?
홍찬이 형이 하라는대로 하기는 한다만, 진짜, 정말, 리얼리 귀찮다.
내가 아쉬운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한번 보자고 한다고 해서 이 난리를 쳐야 되는 거냐고!
작년 이맘때쯤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면 모를까, 우린 각성자잖아. 각성자의 마인드로 그냥 쿨하게, 쌩까면… 홍찬이 형이 뒤집어지겠지?
그래 오늘은 홍찬 형을 위해서 내 한 몸 희생해 주지. 쩝.
엘레강스하고, 블링블링한, 뭔가 억지스러우면서도 이상한, 어울리지 않는 지혜, 미혜, 최은지, 김은희 팀장급 애들의 화장 기법에 한번 놀라고, 남성미를 한껏 드러내 봤다는 한득과, 길수의 괴상한, 신기한 옷차림에 두 번 놀랐다.
길드원 대부분이 뭔가 멋들어진 차림새로 호텔 로비에 모여 들었고, 그쪽에서 인솔한다는 요원들과 함께 대형 버스로 파란 집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반드시 차야 합니다.”
“싫은데요?”
“마력 제어를 하지 않으면, 접견하실 수 없습니다.”
“그럼, 그냥 돌아가죠. 수고하세요.”
“지원아!”
“아, 진짜! 우리가 무슨 범죄자도 아니고, 왜 이런 걸 차야하는데! 누가 불러놓고 이따위 걸 차라고 하는 건 무슨 경우야! 내가 본다고 했어? 지가 불러놓고….”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함부로 그렇게 칭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주의해 주세요.”
“하, 진짜 빡돌겠네.”
“지원아!”
“하~. 알았어. 근데, 나 찐짜, 그냥 콱. 하~. 릴랙스, 릴랙스. 그거 줘봐요. 손목에 차면 되는 거죠? 이거 말고 더 있음, 빨랑 말하시고. 없으면 끝. 맞죠?”
“방어구를 비롯한 모든 무기류와 소환체, 정신계, 마법 발현, 주문 등은 사용하실 수 없으며, 접견실 내, 외부는 강제로 마력이 차단됩니다. 이에, 마법사 계열 분들과 힐러, 성직자 분들 역시 마력 발현이 일시 정지되며, 전사분들을 위한 마력 차단기를 손목에 착용하는 겁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사항이니,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 그 만약의 사태가 뭐죠? 우리가 뭔가를 해코지하려고 하는 게 만약의 사태? 누가 불렀는데! 내가 여기 오고 싶어서….”
“야! 한지원!”
“… 쩝. 알았어. 가시죠. 여긴가요?”
난 지금이라도 날 향해 대검을 꺼내들 것 같은 홍찬이 형을 뒤로 하고, 보안요원인지, 경호원인지 모를 건장한, 젊은 남성을 향해 물었다.
“이쪽입니다. 팀장급 이상 인원분들만 이쪽으로 오시고, 길드원분들은 저쪽으로 입장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따라 오시죠.”
“눼이~.”
바짝 긴장한 애들과 얼굴이 붉게 변한 홍찬이 형이 날 따라오고 있고, 길드원들은 다른 쪽으로 입장하는 것 같다.
진짜 대단한 사람 만나는 것처럼, 절차도 복잡하고, 구속도 심하다.
걸어가는 복도에도 사방에 경호원으로 보이는 각성자들이… 어? 숨어 있는 사람도 있네? 은신, 자격 특성인가?
참나, 뻔히 보이는 은신이 은신이냐? 그냥 대놓고 나 여깄소라고 외치면… 응? 자, 잠깐!
내가 왜 마력을 느낄 수가 있지? 이거 마력 차단기라며!
난 황당한 눈빛으로 왼쪽 손목에 있는 마력 차단기를 쳐다봤다.
고장인가?
잠시 후.
대형 로비 같지 않는 접견실에 우리 길드원들이 석상처럼 모여 물만 홀짝이고 있었다.
씨밤바쌕! 올 거면 빨리 오던가 하지. 불러놓고 기다리게 만드는 건 또 뭔데?
아니 기다리게 할 거면, 왜 2시간 전부터 이 지랄이냐고!
부글거리는 속을 앞에 놓인 물로 열심히 식히고 있는데, 주변의 경호원들이 나만 쳐다본다. 뭐? 어쩌라고?
그나저나, 이거 고장 아냐? 마력을 차단했으면, 못 느껴야지. 거기 그 연단 위에 숨어 있는 아저씨, 그리고 거기 창문 왼쪽 위에 들어가 있는 아저씨. 다리 안 아파? 바짝 웅크려서 뭐하고 있는 건데?
“최한석 대통령님 내외분이 입장하십니다. 내빈 여러분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겨주시기 바랍니다.”
“염병하네.”
“지, 지원아.”
“… 하, 그래. 릴랙스, 릴랙스.”
눈만 동그랗게 뜬 얘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너무 막 나갔나 싶다. 그래 참자, 참아.
문이 열리며 가끔 TV에서나 보던 60대 중반의 늙은 아저씨와 50대 후반의 아줌마, 그리고 30대 초반의 젊은 여성과 수행원으로 보이는 몇몇이 입장한다.
준비된 테이블, 즉 내 앞자리까지 다가와 나에게 악수를 건넨다.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정말 반갑네요. 최한석이에요.”
이 아저씨, 말투가 왜 이래? 싸이 닮았는데?
“예. 한지원입니다.”
서로 악수하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제 아내와 딸입니다. 하도 한지원 씨를 보고 싶어하길래, 큰 맘먹고 데리고 나왔어요. 괜찮죠?”
“… 네.”
괜찮기는. 니가 언제 나한테 물어봤다고.
어쩐지 정해진 시간이 존나 넘는다 싶었다.
자리에 착석하고 이상한 대화법에 익숙해지지 못해 멘붕이 대가리 속에서 친구하자고, 달려들때쯤 되어서야, 밥이 나왔다.
삼계탕이다.
오늘이 복날인가? 뭔 놈의 삼계탕?
“삼계탕 좋아하세요? 제가 요즘 몸이 부실해서 좀 챙겨 먹고 있는 편이죠. 많이들 들어요.”
우리한테는 안 물어보냐? 니가 부실해서 먹는 거 하고, 강압적으로 메뉴를 정해서 먹는 거 하고 존나 차이 많이 나는데.
“예. 감사합니다.”
옆에서 홍찬이 형이 손으로 내 허벅지를 꾹 누르며 대신 대답한다.
조용히 수저가 그릇에 스치는 소리만 울리고, 다들 깨작깨작이다.
자고로 삼계탕은 닭다리를 뜯어서 손으로 잡고, 뜯어 줘야 소화가 잘되는 법.
“쩝쩝. 뽀드득. 음, 맛은 괜찮네요. 국물이 배지근한 게 딱 좋아요.”
“… 배지근한 건 뭔지 모르지만, 맛있다니 다행이네요. 허허.”
“삼계탕엔 소주인데….”
“점심인데 괜찮겠어요?”
“술은 낮술이죠.”
“하하, 그래요. 여기 소주 한 병만 가져다 줘요.”
주변의 경호원들이 또다시 나만 쳐다본다. 어이, 거기 창문 위 아저씨. 다리 저려? 왜 꿈틀거리고 그래. 그냥 내려오라니까.
여성 경호원? 웨이트리스?로 보이는 이가 쟁반에 소주잔 두 개와 소주 한 병을 가지고와 테이블에 올려놓으려는데,
“제가 한잔 따라 드려도 될까요?”
지금까지 조신한 척, 종가집 며느리처럼 얌전히 있던 30대 초반의 여성이 소주병을 잡아간다.
“뭐 안될 건 없죠. 감사합니다.”
“네. 실제로 뵈니 정말 훤칠하시네요.”
“하하하, 제가 쫌 생겼죠. 하하.”
“후훗, 자신감도 넘치세요.”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종가집 며느리가 소주잔이 넘치도록 가득 따라주더니, 옆의 아저씨한테 묻는다.
“아빠도 한잔 하실래요?”
“음, 그럴까? 딱 한잔만 하지.”
“당신, 괜찮아요?”
“허허. 멋진 사내를 봐서 그런지, 갑자기 소주 한잔 하고 싶구려. 어디 한잔 따라줘 보거라.”
이상해. 말투가 이상해. 이랬다가 저랬다가.
이상한 처자에게 잔을 받은 이상한 아저씨가 이상한 말을 한다.
“이것도 인연이고, 앞으로도 자주 볼 것 같은데, 건배나 하지요.”
“… 네.”
일부러 이런 말투를 고집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한 아저씨와 소주잔을 부딪치고 막 입으로 가져가려는데, 아까부터 자꾸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창문 위쪽의 아저씨가….
“거기, 자꾸 꿈틀거릴 거면 나오라니까요. 다리 저리는 거 뻔히 아는데, 왜 그 자세로….”
갑자기, 순식간에, 상당히 빨리 주변의 경호원들이 다가오고, 이상한 아저씨가 이상한 자세로 자리를 일어나려고 한다.
길드원들도 영문을 몰라 당황하기는 피차일반.
응? 내가 아까 금방 뭐, 뭐라고 했지?
귀에 이어폰을 찬 수십 명의 경호원들이 식사를 하던 테이블을 둘러싼다.
경호원에게 둘러싸여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던 이상한 아저씨가 잠시 허우적대더니, 주변의 경호원을 제치고 내게 조금씩 다가온다. 뭐 날 죽일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던, 근육 짱짱맨 친구들이 날 존나 째려보는 건 덤이고.
이상한 아저씨가 내 왼쪽 손목에 차 있는 마력 차단기를 바라보며,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묻는다.
“그거 가짜인가?”
“이거요? 전 모르죠. 아까 대기실에서 저 아저씨가 차라고 줬어요.”
내가 손가락으로 유의사항을 귀 아프도록 설명한 경호원을 가리키자, 주변 몇 명의 눈길이 가고, 누군가가 다가와 이상한 스캔 장비로 내 손목을 훑는다.
“정상입니다.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은신을 알아봐. 거기 나와. 어차피 걸렸어. TX-1 올리고, 이동해.”
50대 초반의 경호원이 명령을 내리자 주변의 근육 짱짱맨들이 서둘러 움직인다.
“됐네. 소란 피울 거 없어.”
이상한 집주인 아저씨가 경호실장으로 보이는 남성의 지시를 말린다.
만류하던 경호원들을 제치고 다시 다가와 조심스럽게 제 자리에 앉자, 대연회실 입구까지 움직였던, 영부인과 영예가 다시 이쪽으로 걸어온다.
수십 명의 경호원들이 우리 테이블을 둘러싸 나만 쳐다보고 있다.
“쩝. 말 한마디 잘못 했다고, 죄인 취급하는 분위기네?”
내 말에 옆에 있던 홍찬 형이 큰 한숨을 내쉬고, 팀장급 애들의 혀 차는 소리가 들린다.
뭐? 어쩌라고? 맞는 말 했구만.
“약간의 착오가 있었던 것 같네요. 식사는 다 하셨습니까?”
“뭐, 대충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혼자 밥 먹는 건 쫌 그렇네요.”
“하하. 그럼 잠시 커피 한잔 하시지요?”
“저만요?”
“길드장님 아니십니까? 그럼 된 거 아닌가요?”
“길드 운영은 여기 부길드장님이 전담하고 있어서요. 괜찮다면 같이 가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어수선한 분위기와 수십 명의 경호원들이 나만 째려보고 있는 이런 상황에 집주인 아저씨가 따로 보자고 한다.
날 한심하게 쳐다보는 홍찬이 형 손목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나 대연회실을 빠져나와 집무실로 이동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은은한 커피 향이 지겨워질 때쯤 잠시 밖으로 나갔던 집주인과 경호실장, 경호원들이 다시 들어왔다.
“한지원 씨, 올해 초에 각성자 등급과 능력치 재측정하지 않으셨더군요. 잠시 재측정 가능하시겠습니까?”
“왜요? 강젭니까?”
“협조해 주시죠?”
“… 그러죠 뭐.”
탐탁지 않은 대답이 이어진 후 경호원 한명이 다가와 휴대용 마력 측정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물러서자, 난 아무런 말없이 측정대를 잡아 마력을 인지해줬다.
조그만 LED 판에 불빛이 들어오며 알림이 울리자, 물러섰던 경호원이 다가와 휴대용 마력 측정기를 회수해 경호실장에게 건넨다. 그리고는,
“… 이, 이천이백!”
“허억! 뭡니까!”
“몇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7등급이었던 사람이 어찌….”
응? 날 지칭하는 거 맞지? 맞나?
웅성거리는 경호원들과 내 마력 수치를 확인한 경호실장이 A4 용지 몇 장을 집주인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재작년 10월에 처음 각성하고, 작년 5월에 7등급, 그리고 11월에 4등급으로 측정되었습니다만, 2,200이 넘는 지금 이 수치는….”
“3등급이 3,200부터인가?”
“맞습니다. 대통령님.”
“국내에 3등급 각성자가 있던가?”
“전무(全無)합니다.”
“마력 수치 2,000대가 넘는 이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보고된 바로는 사성 길드 길드장 홍태성 씨가 1,900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내 최고였습니다.”
“그래, 그렇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성, LC, 질풍 길드 소속 각성자 천여 명도 거길 리젠 클리어하지 못했지. 사상자만 400명이 넘고.”
“… 네.”
어이? 아저씨들.
왜 사람 불러다 놓고 아저씨들끼리 대화 하는 건데?
그리고 그런 얘기는 둘이 따로 해도 되잖아. 우리가 굳이 여기 있을 필요가 없잖아!
속이 부글거리는데, 옆에서 홍찬이 형이 구두로 내 발을 툭툭 친다.
알겠음. 일단 대기.
“발현 후 두 번 터졌지?”
“네.”
“지원 길드가 클리어하지 않는다면 다시 터질 확률은?”
“98% 이상입니다.”
“그럼, 한지원 씨가 없는 지원 길드가 클리어할 수 있는 확률은?”
“10%도 안됩니다.”
“그렇다면, 여기 있는 한지원 씨가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맞는가?”
“맞습니다.”
“진환이 대기하고 있지? 들어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경호원 몇 명이 밖으로 나가고 2분이 채 되지 않아 검은색 정장 차람의 50대 후반 남성이 다시 들어온다.
지금 뭐하자는 건데?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소개하지요. 협회가 준공공기관이라면, 여기 이 친구가 정부가 운영하는 기관의 책임자라고 보시면 되요. 특별원 원장이에요.”
“김진환입니다. 반갑습니다.”
뭐 일단 악수하자고 하니까 하긴 한다만, 이게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지? 뭔가 이상한데?
“특별원이 어떤 조직입니까?”
옆에서 홍찬이 형이 내 대신 궁금한 점을 물어본다.
“아, 아직 비공개입니다. 조만간 공식적으로 발표할 거예요. 그냥 협회 비슷한 거라고 보시면 되요. 그리고 한지원 씨?”
“네.”
“사성이나, LC, 질풍하고, 3등급 리젠 클리어 같이 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하, 이젠 하다못해 한 나라의 최고 수장이 금수저 편이야?
왜 그 얘기가 여기서 나오는 건데?
“그쪽하고는 호흡도 안 맞고 상성, 직군, 특성, 능력치 전부 다 안좋습니다. 저희 길드가 자랑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던전 클리어 진행하면서 사망자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혹시나 그쪽하고 연계해서 진행된다면, 할 맘도 없습니다만,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요. 참, 아쉽게 됐어요. 그럼, 지원 길드에서 정기적으로 리젠 클리어 진행하는 거죠?”
“협회에서 운영 승인이 떨어지면, 그렇게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래요. 그건 그렇게 정리하고. 원장님, 이제는 그거 꺼내 놔 보세요.”
“네.”
집주인의 말에 특별원 원장이라는 사람이 서류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낸다.
무슨 위성 사진과 등고선이 빽빽한 지도 같은 건데, 붉은색의 잉크가 크게 번져 있고, 이상한 서류철에 들어 있어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크큼.
“간단히 말씀드리죠. 강원도 태백 근처에 던전 발현 현상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 사진이 저번 주에 찍은 거고, 이게 이번 주껍니다. 보시면 아시겠습니다만, 이곳을 중심으로 주변이 함몰, 아니 잠식당하고 있습니다. 던전 입구 크기가 처음 5m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40m 넘게 커졌으며, 지금도 커지고 있습니다. 던전 마력 발생 수치로 봤을 때, 최소 2등급, 최악은 1등급 던전이 발현 할 수도 있습니다.”
“… 예? 1, 1등급요?”
“…….”
이럴 땐 미친척하고 정신줄 놓는 거 맞지?
잠시 후.
집무실 뒤편으로 빠져나와 경호원들이 지켜보는 와중에 담배 하나 빼어 물었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 이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뭐 담배 하나 핀다고 제 정신이 아니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고민을… 그냥 땡겨서 피는 거다. 뭐라하지 마라. 크큼.
“어떻게 할래?”
“고민 좀 해보고. 형은?”
“나도 모르겠다. 이걸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우리 3등급은 그럭저럭 익숙해지지 않았나? 2등급이 그 두 배고, 1등급은 그에 또 두 배면….”
“그렇게 생각하다가 날아간 목숨이 꽤 많지.”
“… 누가 모른데? 어이가 없어서 하는 얘기지.”
“그나저나 큰일이다. 세계 최초인가?”
“2등급이? 1등급이?”
“둘 다.”
“하긴. 근데 왜 꼭 우리나라야? 딴 나라도 많잖아.”
“내가 신이냐? 그걸 왜 나한테 물어?”
“형, 신 아냐? 잡 신.”
“그 잡이 ‘JOB’ 이나 그냥 ‘雜’ 이냐?”
“알아서 생각해.”
“… 넌, 이런 상황에도 그런 쓸데없는 개그가 나오냐?”
“사람은 항상 낙천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법. 고민 많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게 아냐. 가끔씩은 단순하게 생각해야 복잡한 문제가 풀려. 고민하지마.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뭘 고민해.”
“… 가끔씩 널 보면, 참 똑똑하다 싶은데. 가끔씩은….”
“가끔씩은?”
“똘아이 같아.”
“정답! 카카카.”
“미친놈.”
“복수 정답! 캬캬캬.”
“… 하하, 하하하.”
우리들의 웃음소리에 주변의 경호원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그러든가 말든가.
“그래, 어떻게 결정 되었습니까?”
“결정을 못하겠네요. 길드원들의 의견도 물어봐야 해서. 나중에 따로 연락 드려도 될까요?”
“네. 그렇게 하시죠. 여기 제 연락처 있습니다. 당분간은 이쪽으로 연락주시고, 대통령님 기자회견 시 공식 발표와 함께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 전에 연락드리죠. 전원이 다 할 수 없다면, 대기업이나 중견길드에서 각성자 모집해야 할 상황이 생길수도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국방부에서도 준비하고 있어요. 자세한 얘기는 그때 다시 하도록 하죠. 그럼 이만. 조심히 돌아가세요.”
“네.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큰 그림에 들어갈 스케치만 한 상황에서 특별원 원장이라는 정부기관 책임자에게 명함을 건네받고, 우린 파란 집을 나왔다.
길드원들 중 몇몇은 파란 집에서 초청을 받은 게 자랑인지 여기저기 연락하기 바쁘고, 몇몇은 긴장했는지 잠이 들었다.
“오빠, 그분이 뭐래?”
“뭐? 뭐가?”
“아니, 부길드장님하고 같이 들어가서 그분하고 미팅한 거 아냐? 뭐래? 우리 무슨 혜택 같은 거 준데?”
“뭐, 별거 없었어. 서울시청 3등급 바이오 던전 리젠 클리어 해준거 고맙다고 하더라고.”
“치, 뭐야. 그런 얘기는 우리들한테 해도 되잖아. 우린 뭐, 같이 클리어 안했나?”
“그냥 대표로 내가 감사의 인사 받은거야. 나중에 언론으로 따로 치사(致詞) 한데.”
특별원 원장의 말이 있긴 했지만, 아직은 말 할 단계가 아니다.
던전의 등급도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고, 종류도 모르는 상황.
괜한 설레발은 길드원들의 이상한 분위기로 이어 질수도 있다. 아직까지는 비밀이다. 아직은.
길드원 전원 대형버스로 이동해 서울지부에 들려 리젠 클리어에 대한 해산을 알렸다.
클리어 보상 내역과 향후 일정, 길드 운영의 이슈사항만 정리한 뒤 공항으로 움직였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1시간가량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해 공항을 빠져 나오자마자 숨쉬는 공기가 달랐다.
“크음, 역시 이 맛이야.”
“크큭. 형님, 뭐가요?”
“못 느끼냐? 이 상쾌한 공기, 이 청명한 하늘, 이 아름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