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11_1
4-2
‘우우우~ 우우~. 기다리고 있었어요. 여신의 선택을 받은 그대.’
뭐, 뭐지? 아까 무슨 소리를 들었는데?
“마법사 마법공격!”
“대기! 현 상태 대기! 마법사 마법공격 중지! 중지해봐!”
“대기! C1 대기하라!”
“길드장님!”
“대기하라! 전원 대기하라!”
“C1, C1!”
“전원 대기! 현 상태 대기!”
길드원들과 던전 클리어팀 모두가 나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
혼자서 천천히 걸어오던 바이오 던전 유닛, 인간형 유닛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여신의 선택을 받은 그대. 나와 함께 가요.’
맞다. 내 머릿속에 울리는 이 음성.
한국말인지, 영어인지, 불어인지 모르지만, 알 수 있다. 느낄 수 있다.
‘셔틀 생산, 셔틀 생산, 셔틀 생산!’
머릿속의 울리는 음성과 별도로 난 랜드코어에서 셔틀 생산을 지속적으로 지시했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 시간을.
대충 10분, 8분이라도.
난 떨리는 가슴을 무시하고, 천천히,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기, 길드장님!”
“전원 대기! 진형 유지!”
“진형 유지! 현 상황 대기하라!”
“C2! C2다!”
C2는 현 상황에서 급작스런 공격을 준비하라는 암구호.
물론, 길드원들처럼 나도 불안하긴 매일반.
일단 시간을 벌어야 한다.
던전 유닛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말을 걸었으니, 조금이라도 응대하면서 시간을 벌어볼 심산이다. 잘된다면 말이다.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며 인간형 던전 유닛을 살폈다.
170cm의 신장. 알 수 없는 재질로 만들어진 갑옷 같지 않은 갑옷이 온몸에 휘감겨져 있고, 등 뒤의 커다란 날개가 펼쳐져 있으며, 일반 여성처럼 들어갈 곳은 적당히 들어갔고, 나올 곳은 적당히 나왔다.
두 팔과 두 다리, 양쪽 귀와 균형 잡힌 눈, 코, 입과 웨이브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릿결.
창백한 안색과 파란 눈동자, 등 뒤의 커다란 날개를 제외하면, 코스프레하는 섹시한 일반 여성이다.
청순한, 백치미가 있는, 아름다운, 뇌쇄적인, 퇴폐적인 분위기가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주변 공간을 감싸고, 마력이 그 공간에서 터져 나간다.
지금 당장 공격해도 절대 상대할 수 없는 극악의 유닛이다.
내 자신이 하염없이 작아지며, 그 공간에서 사라질 듯 위태롭다.
“끄응. 뭘 원하는 거지?”
일단 입을 열었다.
‘나와 함께 가요.’
“어딜?”
극악의 던전 유닛, 아니 유닛으로 보이는 날개 달린 여성이 함께 가자고 한다.
머릿속을 울리는 그 물음에 한없이 작아지는 내 몸뚱이를 무시하며, 물었다.
‘내 손을 잡아요. 그럼 알 수 있어요.’
손잡는 건 어렵지 않지.
그 손에 시퍼런 칼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시간을 벌어야 한다. 시간을.
난 날개 달린 여성의 시퍼런 칼날을 조심스럽게 잡아갔다.
* * *
세상이 변했다.
던전이 변했다.
시간이 변하고, 내가 변하고, 주의의 모든 것이 변했다.
어디인지도 모른다.
알 수도 없고, 인지도 안된다.
바이오 유닛들의 세상에 금방 봤던 날개 달린 여성이 권태로운 표정으로 거대한 성에서 거대한 의자에 앉아 있다.
초록색 피 같은 액체를 고급스러운 잔에 홀짝이며, 날개가 없는 여성에게 뭔가 지시를 내리자, 고개를 숙이고 그 여성이 물러간다.
핏빛 같은 하늘과 붉은 토지, 기괴한 식물들과 기괴한 바이오 유닛.
생전 처음 보는 유닛들도 있었고, 저굴링, 히드라, 락커, 울트라, 와이번, 멍텅구리, 하늘군주, 성체 타워가 저 지평선 넘어 수없이 보인다.
수백, 수천의 성체 타워, 그중 엄청난 크기의 성체.
성으로 보였던 그것은 크기가 짐작도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성체 타워였다.
시간이 흐른다.
몇 년인지, 수십 년인지, 수백 년인지 모를 시간이 흐른다.
생생한 성체 타워가 말라가고, 떨어지면, 그 자리에 조그만 성체가 다시 변태한다.
저굴링이 떼로 몰려다니고, 히드라가 락커로 변태하고, 울트라가 뛰어다닌다.
모든 생명체가 자신의 존재를 뽐낼 때, 하늘이 열리고, 파란빛이 쏟아져 내린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천지가 번쩍인다.
셀 수도 없는 줄럿들이 기다란 건틀릿으로 저굴링들을 토막내고, 히드라의 독침에 줄럿들이 산화한다.
드라칸의 캐논포가 가시체와 히드라들에게 쏟아지고, 굼벵이 전차의 포격이 하늘을 가린다. 매캐한 연기와 붉은 화망을 뚫고 수백, 수천의 와이번과 가디언, 멍텅구리가 그 뒤를 덮는다.
엄청난 숫자의 토르칸이 울트라와 락커를 찢고, 마법 지렁이의 마법안개가 지평선을 뒤덮는다.
하늘이 불타고, 대지는 붉은 핏빛으로 말라간다.
거대한 성체 타워가 불타오르고, 날개 없는 여성들이 몸으로 토르칸을 덮친다.
그리고 이어진 타락한 전사의 복제.
시퍼런 칼날을 휘두르며, 토르칸을 썰어대던, 거대한 날개를 가진 여성의 파란 눈빛이 붉은 빛으로 변하자, 세상을 향해 저 심해 끝에서 울려대는 귀곡성의 메아리.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심금을 울리는 메아리가 사방에 휘몰아친다.
불타오르는 거대한 성체 타워를 나선 붉은 눈빛의 여성이 하늘을 향해 귀곡성을 터트리고, 그 자리에서 사라지자 세상이 변하고, 암흑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어둠 속에서 귀곡성이 흐르고, 누군가가 말한다.
‘우우우~ 우우~. 기다리고 있었어요. 여신의 선택을 받은 그대.’
붉고, 푸른 화망이 사방에 휘몰아치고, 세상을 덮는다.
존재를 부정하는 모든 시간이 멈춘다.
‘충실한 이데아 여신의 종. 그녀를 구해주세요.’
세상이 변하고, 인지가 시작된다.
* * *
[띠링! 축적된 가용률로 레벨 1 상승합니다. 개인 능력치 10이 부여됩니다.] [띠링! 축적된 가용률로 레벨 1 상승합니다. 개인 능력치 10이 부여됩니다.] [띠링! 축적된 가용률로 레벨 1 상승합니다. 개인 능력치 10이 부여됩니다.] [띠링! 축적된 가용률로 레벨 1 상승합니다. 개인 능력치 10이 부여됩니다.]…….
[띠링! 숨겨진 스킬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스킬명을 정해 스킬을 등록하십시오.스킬명: ? (절대등급)
조건: 이데아 여신의 종, 사라 마틸다의 선택.
효과: 바이오 던전 유닛 절대 명령.
데미지: 바이오 던전 비/활성화]
셀 수도 없는 알림이 울리고, 마지막에 숨겨진 스킬이 활성화되었다는 메시지가 뜬다.
“…….”
“오빠! 뭐해! 바로 앞에 멀티 있잖아!”
“…….”
“중첩 가시체! 중첩 가시체! 우, 움직입니다!”
“성체 타워! 성체 타워 움직입니다!”
“전방 500m! 450m! 계속 다가옵니다!”
“B1! 물러나! 물러난다!”
“뒤에 공간 없습니다. 포위 됐습니다!”
“씨팔! A2! 전사들 뛰쳐나와! 시간 번다! 길드장님!”
“…….”
“젠장! 마법사 마법 공격!”
“마법사 마법 공격!”
“이데아 여신의 분노! 불의 벽!”
“이데아 여신의 눈물! 얼음의 벽!”
“이데아 여신의 한탄! 슬픔의 이슬!”
“…….”
내가 꿈을 꾸었나?
내가 드디어 미친 건가?
지금 이 상황도 헛것인가?
“기, 길드장님!”
“오더 대기!”
“오더 대기합니다!”
“길드장님!”
“…….”
현실이 현실 같지 않다.
주변에서 외치는 팀장급 얘들과 길드원들, 저 앞에 보이는 움직이는 멀티도 다 허상 같다.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상태창!”
[띠링! 본인의 상태를 확인합니다.] [아트팩터/전사: 한지원(Lv-99)국적/소속: 대한민국/지원 길드, 나이: 40, 신장/체중: 180cm/77kg,
민첩: 43, 지구력: 36, 힘: 37, 체력: 38, 지능: 36, 행운: 34, 인챈트: 34,
인벤토리: 7/10
(줄럿(방어+공격 200%, 1,160), 어둠의 암살자(4), 토르칸(100), 타락한 전사(1), 드란(101), 발업 저굴링(공격 100%, 388), 마법 지렁이(15))
건물: 11
(포스, 배터리, 게이트웨이, 드라칸 코어, 가스채광소, 발업 코어, 랜드 코어, 스타게이트,
블랙 코어, 라이트 코어, 랜드 스포 코어),
수정체: 0/990, 개인 보유 능력치: 690, 소환 대상 능력치: 13,801(프롤브),
보유 아트팩트:
미네랄 조각(흡수): 1,160, 가스 조각(흡수): 1,160, 이데아 주머니(흡수): 1, 이데아 송곳(흡수): 2] [스킬명: 천지 스톰(3등급). 타임: 480분/480분
조건: 번개 주술사 100개체 이상 광역 번개 사용 시
효과: 인지하는 범위 내 광역 번개(바이오 던전+200%)
데미지: 광역 번개+200%, 크리티컬+50%] [스킬명: 인텐시브 스톰(4등급). 타임: 480분/480분
조건: 줄럿 1,000개체 이상 동시 공격 시
효과: 대상에 따른 물리 공격력 강화(기갑 던전+100%)
데미지: 공격력+100%, 크리티컬+25%] [띠링! 숨겨진 스킬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스킬명을 정해 스킬을 등록하십시오.
스킬명: ? (절대등급)
조건: 이데아 여신의 종, 사라 마틸다의 선택.
효과: 바이오 던전 유닛 절대 명령.
데미지: 바이오 던전 활성/비활성화]
“… 크으음. 역시 내가 미친 건 아니었군. 스킬명, 사라 마틸다!”
[띠링! 이데아 여신의 종, 사라 마틸다의 선택 스킬을 사라 마틸다로 등록하시겠습니까?]“그래.”
태고의 하얀 빛, 천지의 탄생,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광활한 새하얀 빛.
대답과 동시에 내 몸에서 새하얀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크악! 뭐, 뭐야!”
“기, 길드장님!”
“오빠!”
“형님!”
[띠링! 바이오 던전 유닛 절대 명령, 스킬 사라 마틸다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스킬명: 사라 마틸다 (절대등급). 타임: 없음조건: 이데아 여신의 종, 사라 마틸다의 선택.
효과: 바이오 던전 유닛 절대 명령.
데미지: 바이오 던전 활성/비활성화]
“A1, A1!”
“길드장님을 지켜라!”
“전원 방어대형!”
“A1 상황! 전사들, 전원 방어!”
눈을 멀게 한 새하얀 빛이 점차 사라지자, 팀장급 길드원들이 방어대형을 갖추려고 한다.
아마도 새하얀 빛이 움직이는 성체 타워에서 뿜어져 나온 공격 기술로 인식한 모양이다.
그래. 이 모든 게 그녀로부터 시작됐지.
“사라 마틸다!”
[띠링! 스킬 ‘사라 마틸다’를 사용합니다.]이질적인 공간이 무너지고, 팔랑거리는 새하얀 옷을 입은 170cm의 청순한, 백치미가 있는, 아름다운, 뇌쇄적인, 퇴폐적인 그녀가 나타났다.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으, 은신. 급습이다!”
“기, 길드장님!”
오늘은 어째 날 부르는 외침이 잦다.
“일단 저것부터 처리해야 할 것 같군. 어찌하지?”
난 내 스킬인지, 그녀의 존재의 부정인지, 여신의 종인지 모를 그녀에게 물었다.
“아시잖아요.”
“그런가?”
“그럼요.”
“… 그렇군. 그럼.”
난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거대한 성체 타워를 바라보게 한 후 입을 열었다.
“들어가라.”
공간이 비틀리고, 시간이 멈춘다.
그리고 거대한 성체 타워가 내 인벤토리로 들어간다.
사라진다.
“…….”
“… 뭐, 뭐지?”
“… 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 분명, 길드장님이 손을 이렇게 들어서….”
[띠링! 던전 1등급 바이오 던전을 클리어하였습니다. 공헌도를 계산합니다. 19분 59초, 58초, 57초, 56초…]“…….”
“… 그, 금방 알림이 울렸는데? 던전 클리어했다고?”
“나, 나도 울렸는데?”
“그럼, 지금… 길드장님이 이렇게 손을 들어서 뭐라고 하니까, 클리어 된 거? 맞아?”
“커컥. 나, 나 숨을 못 쉬겠어. 히, 힐 좀 줘.”
“… 오, 오빳!”
지혜의 떨리는 커다란 외침이 적막한 공간을 깨트린다.
“…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지원아,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기, 길드장님. 지금 분명 던전 클리어했다고 알림이 울렸는데요. 들으셨어요?”
“오빠! 아까 뭘 어떻게 한 거야? 지금 우리들한테 환상 마법 건거야? 아니면, 무슨 마법진 비슷한 거? 웃지만 말고 설명 좀 해봐!”
멍~ 해 있는 길드원들이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릴 때쯤, 팀장급 얘들과 홍찬이 형이 내게 다가와 상황을 묻는다고 난리다. 뭐 다른 길드원들도 마찬가지고.
생전 처음 이런 관경을 접한 지역 방위길드나 파티 소속 나머지 각성자들은, 지금 던전 바닥에 주저앉아 벙어리 흉내만 내고 있다.
그건 그렇고, 난 내 스킬 같지 않는 존재하는 스킬에 대해… 이거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그냥 대충 넘기자.
“인사해라. 사라 마틸다다.”
“… 어디 소속이신지?”
“저희가 모르는 근접 경호원입니까? 던전처리국 소속?”
“외국인이세요? 이름이 미국이나, 영국쪽인 것 같은데?”
길드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내 스킬 같지 않는 스킬, 사라 마틸다가 한마디 한다.
“… 비밀.”
응? 뭐, 뭐지?
이 어처구니없는 대답은?
잠시 후.
“그러니까, 스킬이다?”
“응.”
홍찬이 형의 물음이고,
“진짜 스킬 맞습니까?”
“어.”
한득이의 물음이고,
“스킬 아닌 것 같은데요? 말이 안되지 말입니다.”
길수의 물음과 대답.
“오빠, 그냥 숨겨둔 세컨이라고 해. 굳이 그렇게 구차하게 설명할 필요 없어. 난 다 이해해.”
지혜의 헛소리.
“스킬이 사람으로 나타난다는 얘기는 금시초문, 황당무계하네요. 길드장님 정말 실망이에요.”
김은희의 헛소리 2.
“각성자의 특성이 중첩되거나 특이사항에서 발생하는 게 스킬이에요. 길드장님, 다른 설명이 필요해요.”
미혜의 설득.
“아닙니다! 저는 주군의 금과옥조(金科玉條)를 맹신(盲信)합니다. 주군이야 말로, 스킬을 인간으로 형상화(形象化)하여, 본신(本身)의 몸체(-體)를 현신(現身) 할 수 있는….”
‘퍼억!’
“으악! 으아악!”
싸이가 죽겠다고 던전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닌다.
음, 힘이 좀 쎘나? 아닌데. 크큼.
“됐다. 믿을 사람만 믿고, 믿기 싫은 사람은 믿지 마. 일단 클리어했으니, 클리어 보상 캔다. 북동쪽, 거리 57.45km에 멀티 미네랄 하나 있고, 남서쪽, 거리 89.34km에 두 번째 미네랄 있으며, 북서쪽, 거리 117.68km에 본진 미네랄 있다. 미네랄 총량 764톤 567.675kg, 가스 총량… 왜? 뭐가?”
한참 던전 상황 설명을 해주는데, 홍찬이 형을 비롯해 길드원 전체가 나를 멍하니 쳐다본다.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이.
“맞아요.”
그 중에 사라 마틸다의 동의.
“오빠! 이거 지금 몇 개로 보여?”
지혜가 손가락 두 개를 내 눈앞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음, 내가 잘 못 말한 것 같긴 하다. 크큼.
잠시 후.
“어, 어떻게 아신 겁니까?”
“에이, 때려 맞춘 거겠지.”
“그치?”
“그럼.”
“미네랄이나 캐지?”
“넵.”
“알겠습니다.”
“전체 셔틀 착륙!”
난 얘들의 말을 건성으로 넘기고 아무것도 없는 멀티 앞 미네랄이 묻혀 있는 곳에 셔틀을 착륙시켰다.
한득이에게 클리어 보상 미네랄 캘 것을 지시한 후 뒤쪽 공터로 향하자, 사라 마틸다가 따라온다.
1등급 던전 가스를 캐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장시간 대화할 이유가 생겼다.
“주군! 부디 저에게도….”
“얘들하고 같이 있어.”
“… 넵. 알겠습니다.”
따라오려는 싸이를 대기시키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살짝 뒤를 인지하니, 스킬 사라 마틸다가 조신하게 따라온다.
우리, 참~ 할 말이 많지? 그치?
강원도 태백산 1등급 바이오 던전 클리어 입장 6시간 40분 후.
“하…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야?”
“그러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 않아? 공헌도가 98.876%라니! 그냥 혼자서 솔로잉 한 거하고 차이점이 뭔데!”
“내말이.”
“우리는 그저 클리어 보상, 미네랄이나 캐는 짐꾼? 일꾼? 뭐 그런 거야?”
“동감이다.”
“우리도 클리어 보상에 대해 일정 부분 획득할 권리가….”
‘퍼억!’
“아악! 혀, 형님!”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던전 나가면 챙겨주마. 투덜거리지 좀 마.”
“가, 감사합니다. 형님!”
“존경합니다. 길드장님!”
“됐고, 다 캤냐?”
“전사들이 열심히는 캐고 있습니다만, 양이 워낙 많아서 하루는 걸릴 것 같습니다.”
“헐. 무슨, 던전 클리어하는 것보다 미네랄 캐는 게 더 오래 걸려? 알겠다. 오늘은 여기서 야영하자.”
“옙. 길드장님. 저, 그런데, 그분은?”
“마틸다? 왜?”
“아니, 갑자기 안 보이셔서.”
“관심 꺼라. 내 스킬이다.”
“… 혀, 형님. 던전 나가시면 꼭 병원에 들리셔야 할 것 같은….”
‘퍼어억!’
“아악! 아아악! 혀, 형님!”
강원도 태백산 1등급 바이오 던전 클리어 입장 18시간 30분 후.
첫 번째 멀티 부근에 대형 천막을 설치하고, 저녁식사를 한 뒤 경계조를 정해 개인 정비시간 및 휴식을 취했다.
물론, 던전 클리어 때문이 아닌 미네랄 캔다고 고생한 전사들의 휴식이다.
경외(敬畏)스런, 의문의, 몽롱한, 이상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길드원들과 중견길드 소속, 지역 방위파티 각성자들.
타닥타닥 거리며, 검은 공간에 불빛을 살려내는 모닥불을 지긋이 쳐다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길드원들이나 다른 각성자들도 놀랐겠지만, 나도 많이 놀랐다. 처음에는 내가 헛것을 보고 있거나, 드디어 미친것이라 생각했다.
상태창을 확인하고, 스킬 사라 마틸다가 현신 했을 때야 모든 걸 인지할 수 있었고, 내가 본 게 헛것이 아니라는 걸 믿었다.
미네랄이 매장되어 있는 멀티 뒤쪽 공터에서 엄청난 가스 조각을 흡수하며, 사라와 긴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내가 해야 할 일을 물어보고, 앞으로 어떻게 던전이 변하는지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어차피 내 스킬이고 나에게 종속된 존재이기에, 그녀가 알고 있는 건 나도 알고 있는 내용일 뿐, 별 다른게 없었다.
그저 확인 과정에 지나지 않았을 뿐.
왜 이데아 여신의 종, 그녀는 날 선택했을까?
내가 무슨 세계를 구할 영웅도 아니고,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살아가던 난데.
우연찮게 신혼여행 갔다가 미네랄 조각 같은걸 흡수한 후 각성한 게 전부인… 응? 잠시.
그때 각성할 때 무슨 알림이 있었지 않았나? 뭐였지?
분명 뭐하고 했는데… 기억이 안난다.
아니다. 됐다. 의미 없다.
지나간 일 아무리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지금 당장 답이 없다.
내가 이데아 여신이라는 그녀를 만날 방법도 없고, 설사 만났다고 해서 내가 왜 당신의 종을 구해야 하는지 물어본다고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다.
일단, 좋게 생각하자. 좋게.
이데아 여신뿐만 아니라, 그녀의 종을 자처하는 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최고의, 엄청난, 굉장한 스킬 하나 득템했다고 생각하자.
그래야 내가 살 것 같다.
그래야 내 머리가 터지지 않을 것 같다.
그래야 내가 조금이라도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그게 아니면, 나 정말, 돌아버릴 것 같다.
만약 이데아 여신이 진짜 신(神)이라면, 하찮은 조물주에게 당신의 종을 구하라는 신탁(神託)을 내리진 않았겠지.
아무것도 없는, 하찮은, 별 볼일 없는, 그저 그런 나에게 말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긴 오늘, 던전에서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빨간 새끼 불꽃을 토해내는 모닥불과 함께.
강원도 태백산 1등급 바이오 던전 클리어 입장 2일 7시간 10분 후.
드디어 두 번째 멀티의 미네랄까지 모두 캤다.
물론 나도 미네랄 뒤쪽의 바위틈에서 뿜어대는 가스를 최대한도로 흡수하기도 했고.
엄청난 양의 가스가 매장되었기에, 최대한 고급 유닛으로 인벤토리를 꽉꽉 채웠다. 더군다나, 저번 폭풍 레벨업 때의 능력 가중치 상승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광폭 레벨업.
32의 레벨이 99까지 치솟으며 개인 보유 능력치만 690을 받았고, 소환 대상 능력치는 13,801. 산술적으로만 존재한다는 1등급 각성자의 기준치를 넘게 되었다.
던전 나가서 혹시 각성자 등급을 재측정하면, 아마도 아수라장이 될 것 같다. 크큼.
보유하고 있던 690의 능력치를 민첩, 지구력, 힘, 체력, 지능, 행운, 인챈트에 골고루 분배하자,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다.
던전 바닥을 한껏 박차면, 내가 인지한 곳으로 뛰쳐나갈 것만 같고, 길수에게 배운 기초 검술로 놈을 비오는 날 먼지 나게 두들겨 팰 수도 있을 것 같다.
모든 신체 특성이 기존보다 3배 이상 증가했고, 키도 2cm가 더 커졌으며, 몸무게도 1kg이 줄었다.
손으로 슬쩍 내 가슴을 만져봐도 탄탄한 근육이… 티 내지 말자. 이상하게 생각할라.
역시, 폭풍, 광폭 같은 단어가 들어간 레벨업은 무척이나 좋은 것이다. 크큼.
강원도 태백산 1등급 바이오 던전 클리어 입장 3일 1시간 40분 후.
“세상에!”
“미네랄 산이다. 산!”
“그, 그러니까 저게 다 미네랄이란 말이지. 허, 진짜 말도 안 나온다.”
“멀티는 껌이었구만. 젠장! 저걸 언제 다 캐!”
“그냥 히드라나 울트라하고 싸우지, 던전에 들어와서 미네랄하고 씨름할 줄이야. 하….”
팀장급 얘들이 의미 없는 독백을 무시하고, 명령을 내렸다.
“본진만 다 캐면 더 이상 없다. 얼른 캐고 나가자. 내일은 집에서 푹….”
“형님, 이걸 무슨 수로 하루 만에 다 캐요? 최소한 이틀은 걸리겠구만.”
“힐러, 성직자, 버퍼 등 특이 각성자 전원 전사들 서포터 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나간다.”
“… 길드장님. 무슨 일 있습니까? 던전 클리어 된 거 아닙니까?”
“귀찮아서 그래. 심심하기도 하고. 뭔 놈의 미네랄을 3일 동안 캐냐!”
“… 그럼, 도와주시면 되잖습니까! 마법사도 다 달라붙으라고 하면, 더 빨리 캘 것 같은데요.”
“아, 그럴까? 근데 마법사가 미네랄 캔다고 여기저기 깝죽대면, 괜히 더 늦어질 거 아냐. 됐어, 그냥 전사만 캐.”
“… 형님도 전사 직군 있지 않습니까! 형님도 캐요!”
“원래 한 무리의 대가리는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법. 기각!”
길수의 말을 대충 씹어주고, 천막을 치려는 마법사들을 피해 한적한 곳으로 움직였다.
미네랄이야 전사를 위주로 특이 각성자가 서포터하면 되고, 천막을 치고, 물을 길어오고, 불을 피우는 건 잉여 인력이 남는 마법사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난 그저 얘들을 살피며 관리, 감독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라는 핑계고. 귀찮고, 심심하다.
음, 할 일이 없다.
내 스킬, 사라를 불러 농담 따먹기나 할까?
훤칠한 키에 볼륨 있는 몸매, 섹시한 목소리와 백치미가 느껴지는 눈동자, 서구적인 스타일까지.
어차피 나에게 종속된 존재이니, 이런 것도, 저런 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 오해 말라.
난 단순히 앞으로의 최고위급 던전 클리어에 대해 이런 것, 저런 것들을 물어볼 생각… 크큼.
“사라.”
“네.”
깜짝이야!
좀 인기척이라도 내고 나타나든가… 아, 얘는 사람이 아니니 인기척을 못 내나?
여하튼, 그렇게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그녀, 아니 스킬, 아니 스킬은 스킬인데, 그녀인… 아, 머리 아프다. 생각하지 말자.
“뭐 좀 물어볼게.”
“네.”
“사라 마틸다 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 준거야?”
“그 분이요.”
“그 분? 그 이데아 여신이라는 분?”
“네.”
“넌 그분의 종(種)이고?”
“네.”
“그럼, 그 이데아 여신이라는 분은 어디에 있어?”
내 물음에 사라가 내 가슴을 쿡쿡 찌른다.
뭐 하는 짓인데?
“여기에 있어요.”
응? 뭐가?
“뭔 소리야?”
“거기에 있다구요.”
“… 내 가슴 속?”
“네.”
씨파! 미치겠다.
내 가슴에 나도 모르는 미친년이 하나 들어가 있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됐다. 그럼 넌, 니가 왜 너를 구해?”
“아시잖아요. 전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아요.”
“…….”
하하하, 씨발! 무슨 스무고개냐?
술은 마셨지만, 취하지는 않았다. 썸 타는 남, 녀가 잠은 같이 잤지만, 사귀는 건 아니다. 뭐 이런 거?
응? 맞는 말 같기도 한데?
어찌 얘하고만 대화하면 대가리가 터질 것만 같을까?
“그럼 달리 물어볼게. 넌 지금 어떤 상태야?”
“기나긴 시간 동안 기다려온 사념(思念)을 현신(現身)한 상태죠.”
미추어버리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