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11_3
클리어 보상 미네랄 총량 760톤. 돈으로 환산하면, 2조 6천억 이상.
원래는 미네랄 환전 수수료와 각종 세금 명목으로 국가에서 삥 뜯어가는 금액이 환산 금액의 30% 가까이 됐었는데, 면세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면세 혜택까지 줘서 보상 금액을 지불하면, 예산이 모자라다는 것.
이럴 거면, 면세라는 허울 좋은 말은 꺼내지나 말던가.
대통령이 직접 TV에 나와 기분 좋게 말한 지 일주일도 안됐는데, 그걸 벌써 쌩 까?
역시 사람은 화장실 들어갈 때하고 나올 때가 다른 법이다.
나도 됐다. 환전 안하면 끝.
미네랄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상 금액을 깎아주면서 받고 싶지도 않다. 세금은 더더욱 내고 싶지도 않고.
그냥 보관하고 있지 뭐.
어차피 미네랄도 금과 같은 통화수단이니, 상관없다.
지금 집 짓는 곳에 창고 하나 더 지어서, 스크루지 영감처럼 미네랄 수영장이나 만들어 봐야겠다.
근데, 잠시.
던전 클리어 보상하니까 생각나는 건데, 서울시청 3등급 리젠 클리어 보상, 내가 받았던가?
통장 좀 확인해봐야겠다. 크큼.
다음날.
모든 인터뷰 요청과 TV출연 요청, 정부 관계자의 만남 등을 모두 홍찬이 형에게 위임하고, 난 제주로 내려가길 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왜 이렇게 날 찾는 이가 많은 거야?
귀찮아~ 귀찮다고!
그냥 조용히 던전 클리어만 하면 안될까? 응?
객실에서 당분간 대기해 달라는 홍찬 형의 협박 같지 않은 협박에 한숨을 쉬며, 캔 맥주나 홀짝이고 있는데, 한득이가 이상한 서류철을 들고 내 방에 들어온다.
“형님, 바쁘십니까?”
“어.”
“… 안 바쁘신 것 같은데요?”
“바빠. 나가줄래?”
“저번에 말씀한 특이 마법사와 특이 직군 각성자 리스트 뽑아 왔습니다. 저희 쪽으로 들어올 인원에 대해….”
“부길드장은 뭐하고?”
“형님한테 얘기하라는데요?”
“내가 누군데? 왜 부길드장 명(命)이 길드장보다 높아!”
“에이, 아시잖아요. 지금 부길드장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에요. 그리고, 이건 형님이 따로 보고 하라면서요. 안 그래도 일일이 다 파악한다고, 시간 꽤나 걸린 건데….”
“하, 됐다. 가져와 봐.”
“네.”
마시던 캔 맥주와 마른안주를 옆으로 치워놓고 한득이가 가지고 온 서류철을 펼쳤다.
일 할 때는 해야지.
홍찬이 형의 눈 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을 생각해서는 분명 아니다. 크큼.
한 장, 한 장 살펴보는데, 특이 마법사들의 신상 내역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이번 태백산 1등급 던전을 클리어, 아니 클리어 보상 미네랄을 캐며, 팀장급 얘들에게 넌지시 일러 둔 내역을 바탕으로 슬쩍 소문을 퍼트린 결과다.
그들에게 살짝 손을 내밀고, 눈 한번 찡긋거려주면, 왠지 가슴이 설레일꺼다.
그들도 아는 거지. 지원 길드가 어떤 길드인지를.
한 장씩 천천히 넘기며 서류를 살피는데, 대부분 7등급에서 8등급 사이다.
“여기에 있는 인원들은 전부다 오케이 한 거야?”
“네. 연봉하고, 클리어 보상에 대한 혜택까지는 세세하게 정하진 않았지만, 형님이 오케이 하는 순간 다들 짐 싸서 제주로 내려온답니다.”
“그럼, 대충 연봉은 5억 선에서 맞춰주고, 집은 알아서 구하라고 해. 그리고 한 달에 한번 정도 버스 태워주고. 그럼 됐지?”
“전원 다 받습니까?”
“어.”
“그 맨 마지막에 있는 아트팩터 두 명도요?”
“아트팩터?”
한득의 말에 서류철 맨 뒤에 있는 곳을 살펴봤다.
8등급 각성자 남성 한명과 여성 한명. 나와 같은 마법사 직군에 아트팩터.
남성은 30대 후반, 여성은 30대 초반.
“이 둘은 우선적으로 뽑아. 내가 직접 본다. 스케줄 정리해서 다시 보고하고.”
“… 알겠습니다.”
싸이야 미안.
니가 먼저 들어왔지만, 니 선배들이다.
각성자는 각성자 등급으로 말하는 거다. 물론 돈과 함께.
이거, 여분의 배터리가 더 생길 것 같다. 크큼.
장장 하루 하고도 반나절을 객실에서 하염없이, 쓸모없이 뒹굴뒹굴 거리며 보냈다.
쪽팔림을 무시하고 인터넷 검색과 TV시청을 감행했고, 하루 세끼 룸서비스를 시켜 객실에서 돼지처럼 사육 당했다.
팀장급 얘들도 악마 같은 부길드장, 홍찬 형이 시킨 일 때문에 내 집처럼 드나들던 내 방을 찾지 않는다.
심심하고, 심심하다.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돌아다닐 수도 없으며, 할 것도 없다.
이거 만두만 처묵처묵하는 그 영화가 갑자기 생각난다. 만두가 룸서비스인가? 크큼.
그나마 미치기 직전에 한득이가 그제 말한 아트팩터 두 명을 데리고 객실로 찾아왔다.
앞으로 싸이의 선배들이 될 것이고, 내 여분의 배터리가 될 소중한 인재들.
간단히 인사하고 테이블에 앉자, 손수 커피를… 그냥 냉장고에 있던 캔 커피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지원 길드에 들어오고 싶다고?”
“예. 맞습니다.”
나이는 38. 이름은 문중환. 각성자 7등급, 마법사 직군에 아트팩터다.
“네. 정말 들어갈 수 있나요?”
나이는 31. 이름은 홍문희. 각성자 8등급, 역시 마법사 직군에 아트팩터다.
“가입 못 할 이유는 없지. 단, 여러분의 특성을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처음부터 말을 놓는다.
뭐, 이들보다 내가 나이가 더 많기도 했지만, 태백산 1등급 던전 클리어하면서 놨던 말을 이제 다시 올리기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지원 길드로 가입하게 되면, 같은 상황이니까 겸사겸사다. 귀찮기도 하고. 크큼.
“민첩 30, 지구력 28, 힘 25, 체력 28, 지능 30, 행운 12… 소환 대상 능력치는 209입니다.”
문중환이란 남성이 먼저 대답한다.
“프롤브야, 드란이야?”
“네? 소환 대상 능력치 말씀하시는 거 맞으시죠? 프롤브요? 프롤브도 소환 되십니까?”
“왜? 다른 사람들은 안 돼?”
“지금까지 프롤브 소환 했다는 아트팩터는 못 들어봤습니다.”
“그럼, 그쪽도 드란이고?”
“네. 저도 드란이에요. 민첩 17, 지구력 17, 힘 16, 체력 16, 지능 14, 행운 10… 그리고 소환 대상 능력치는 143입니다.”
둘 다 드란이다. 싸이도 마찬가지고.
수십, 수백 명의 아트팩터를 만나보지 못해 장담할 순 없지만, 다른 이들은 다 드란만 소환 가능하다고 하는 걸 보니 뭔가 이상하긴 이상한데.
“테크트리는 어디까지 가능하지? 가스 최대 흡수치는?”
“넵. 저는 저굴링 코어, 히드라 코어까지 가능하며, 성체 타워 2에서 저굴링 100개체까지 생산 할 수 있으며, 최대 흡수치는 가스 85 조각입니다. 아, 히드라는 15개체 정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저굴링 코어만 생성 가능하구요. 생산은 저굴링 80 유닛, 가스는 34 조각이에요.”
“음, 둘 다 발업 저굴링은 못 만드네?”
“네, 발업에 가스 100 조각이 들어가서, 아무래도….”
“… 네.”
이들도 이제는 느낄 거다.
자신과 나와의 격차를.
물론 나도 처음부터 킹왕짱 능력치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 버스 좀 태워주고 제주시청 6등급 던전 스펠 쇼크웨이브를 수십 번 정도 맞다보면, 한 사람 역할은 톡톡히 하겠지.
약간의 고민 끝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니, 처음부터 받을 생각이었다. 내 여분의 배터리니.
“언제 제주로 내려올 생각들이지? 결혼은 했나? 가족은?”
“가, 가입되는 겁니까? 정말로요?”
“전 내일이라도 당장 내려가도록 할게요!”
“워, 워. 진정들 하고. 내일이나 모레쯤 나도 내려 갈 거니까, 그때 같이 움직이자고. 그렇게 알고 준비하고 있어.”
“아, 알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담에 보자고. 나가면서 한득이 들여보내고.”
“넵. 이만 가보겠습니다. 길드장님.”
“어야. 수고들 해.”
인사를 마친 여분의 배터리들이 나가고, 한득이가 다시 들어온다.
“부르셨습니까?”
“불렀으니, 니가 왔겠지.”
“…….”
“됐고. 싸이, 버스 얼마나 태웠냐? 대충 한 달쯤 되지 않았나?”
“제주시청은 한번 돌았고, 대부분 7, 8등급이었습니다. 지금쯤 9등급쯤 되었을까요? 뭐 그렇습니다.”
“아까 나간 얘들 받기로 했으니, 싸이하고 같이 돌려. 가능하면, 제주시청에 자주 좀 넣어주고. 다음에 서울시청 리젠 클리어할 때도 꼭 클리어팀에 넣고.”
“키워주시게요?”
“어. 포동포동하게 키워서 잡아먹어야지. 크크.”
“…….”
“재미없냐?”
“네.”
“나가.”
“눼.”
한득이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밖으로 나간다.
여분의 배터리가 3개나 생겼다.
충전 좀 빠방하게 해볼까?
다음날 오후.
“국회의원~?”
“…….”
“청자앙~?”
“…….”
“내가 왜, 무슨 이유로, 뭣 땜에, 이런 사람들을 만나야 되는데! 진짜 이건 아니지!”
“… 한 번만 만나주면 안될까?”
“응. 한 번이 두 번되고, 두 번이 세 번 돼. 안돼! 절대로!”
“진짜?”
“응. 안 그래도 형 바쁘잖아. 존나 바쁜거 아냐? 사무직 계속 뽑아도 모자란다며? 그런 사람이 도대체 왜 이런 자리를 만드는 건데?”
“… 휴~. 나 진짜 못해 먹겠다.”
긴 한숨과 함께 홍찬이 형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눈 밑의 짙은 다클서클과 축 쳐진 어깨, 피곤한 표정, 까칠한 수염까지.
쩝. 내가 너무한 것 같다.
“형. 미안. 내가 괜한 소릴….”
“너 때문이 아니고… 너 때문이구나. 하~.”
날 쳐다보다가 이상한 말을 한다.
“왜? 아까 말한 사람들 때문에?”
“… 어.”
“왜 자꾸 날 만나겠다는 건데? 내가 아무리 요즘 핫한 이슈라고 해서, 그 아저씨들이 날 만나야 할 이유가 없잖아. 왜? 이참에 인기 좀 끌어서 유명인사 놀이한데?”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크음, 왜? 돈 좀 달래? 무슨 기부나 투자, 뭐 그런 거?”
“그걸 직접 말하겠냐? 빙빙 돌리고, 돌려서 그런 결론에 도달하는 거지.”
“하여튼간, 이놈의 썩어빠진 정치계는! 어찌 레퍼토리가 변하질 않아! 젠장!”
“어떻게 할까? 미루고 미룬다고 해도, 언젠가는 부딪친다. 그 사람들한테 밉보이면, 어떻게 되는 줄 알잖아.”
“하, 씨바. 진짜 짜증나네.”
“하~ 내 말이 그 말이다.”
홍찬 형과 내가 그렇게 한숨만 푹푹 쉬고 있을 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지혜와 미혜, 김은희, 최은지까지. 팀장급 여성 길드원들이 내 방으로 쳐들어왔다.
“오빠! 얘기 좀 해.”
“기각. 나가.”
“지금 장난칠 때가 아니야. 이것 봐봐. 우리가 무슨 불여우에 걸레, 된장녀에다가 김치년처럼 인식되고 있다고!”
“뭐 맞는 말이구만.”
“오빠!”
지혜가 내민 스마트폰을 쳐다보자, 거기엔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에 베오베(Best of Best) 게시물이 있었는데, 제목이….
‘국내 최고의 각성자 한지원 길드장에게 왜 중급의 여성 길드원들이 둘러싸고 있나?’
이거였고, 그 밑에 달린 수천 개의 댓글들은 대부분,
‘돈 많은 놈 물어서 팔자 고치겠다는 심보지 뭐.’
‘나 같아도 물고 안 놓아줄 거임.’
‘돌아가면서 그거 하는 거 아냐? ㅋㅋ’
‘그렇겠지. 던전 한번 클리어하면, 들어오는 돈이 얼만데.’
‘끼리끼리 잘 논다.’
‘그래도 한지원 길드장은 그렇지 않겠지. 옆에서 꼬시는 년들이 문제지.’
‘윗분 말이 정답.’
‘싸구려 창년들!’
‘던전 들어가서 위급할 때마다 길드장이 정리하고, 나머지는… 캬캬. 기대된다.’
…….
이와 비슷한 것들이 추천을 가장 많이 받고 있었다.
“다른 곳도 거의 다 비슷해! 이것들이 사람을 뭘로 보고! 이거 다 화면 캡처해서 고소, 고발 할 거야! 나 말리지 마!”
“응. 해라. 다 해. 그럼 이제 그만 나가줄래?”
“오빤 이거 보고도 열받지 않아? 오빠 완전 난봉꾼에다가 쓰리썸, 4P 하는 사람처럼 되어 있다니깐!”
“그게 내 꿈이다. 쫌 나가지?”
“오빳!”
“길드장님!”
지혜의 외침과 더불어 김은희, 최은지까지 날 이상하게 쳐다본다.
안 그래도 대가리가 터지기 일보직전인데, 왜 너희들까지….
“하~.”
“… 하~.”
내 깊은 한숨에 옆에서 홍찬이 형까지 동감한다.
잠시 후.
한득과 길수마저 불러 대책 회의 같지 않은 대책 회의에 들어갔다.
도토리 키재기 하듯, 백지장도 맞들면 낫 듯, 그렇게 쌩쌩 돌아가지 않는 머릴 맞대다 보면 무슨 기발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높아지는 건 지혜의 목소리뿐이다.
“강경하게 대처해야 돼!”
“고소, 고발 다 할 거야!”
무시하고, 무시한다.
무시해야 하며, 무시할 거다. 지혜의 높아진 목소리를.
한득과 길수도 마찬가지. 지혜의 말을 쌩까고 나에게 물어본다.
“… 형님. 무슨 고민 있으십니까?”
“어. 안 그래도 대가리 터지겠는데, 얘네들까지 이런다. 하~.”
“무슨 일인데요?”
“뭐긴, 어떤 개새끼들이 자꾸 밥 달라고 짖어대는 소리지.”
“오빠! 나한테 한 말?”
“알아서 들어라.”
“요즘, 주변 상황이 이상해. 여기저기서 다 찔러 들어온다. 정부기관은 별로 내색이 없는데, 국회의원이나 어깨에 힘 좀 준다는 양반들이 침을 흘려대고 있지. 서울시청 3등급 클리어할 때부터 그렇더니만, 요즘은 더 심해. 일을 못하겠어. 일을. 그렇다고 다 무시할 수도 없는 양반들이고. 죽겠다. 아주.”
홍찬이 형의 하소연에 지혜가 눈치를 살핀다.
“우리가 잘 나가서 그런 거지? 그치?”
“돈 좀 만지니까 파리들이 꼬이는 거지.”
“맞아. 그럴꺼라고 생각했어. 지들이 못생기고, 돈 없고, 빽 없으니까, 나름 상상해서 그런 거겠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지 뭐.”
“너도 싸이 닮아 가냐? 뭔 소리야?”
내 물음에 지혜가 또다시 헛소리 한다.
“맞잖아. 우리가 엄청 잘 나가니까, 시기하고, 질투하고, 험담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거 아냐. 그냥 무시하면 되잖아. 아니면, 다~ 고소, 고발하던가.”
“앞에는 맞는데, 뒤에는 틀리거든. 고소, 고발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럼, 입 닥치게 만들어 줘야지.”
“어떻게?”
“뭐가 어떻게야? 돈이 있으면 돈으로. 힘이 있으면 힘으로 하면 되지.”
“…….”
묘~하게 설득되네?
지혜 너, 존나 천잰데?
내가 홍찬 형을 바라보자 서로 눈이 마주친다.
형도 나와 비슷한 생각?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돈에는 돈으로. 힘에는 힘으로.
늦은 저녁.
저녁 식사를 마치고 홍찬 형과 함께 내 방 앞 테라스에 앉아 캔 맥주를 깠다.
“얼마까지 생각하는데?”
“돈으로 하려고?”
“일단 그들이 원하는 건 돈이니까. 가용 금액을 정해서 움직여야 일이 쉽지. 힘으로 하면 우리가 더 좋고.”
“음, 그럼 이번에 태백산 1등급 던전 클리어한 거는 환전 안했으니까, 형이 알아서 써.”
“… 그, 그걸 전부 다?”
“돈으로 찍어 누르려면, 그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모자란다면 외국 나갔다 올게. 돈이야 벌어서 오면 되지.”
“크음. 그, 그렇다면야….”
어설프게 누르면 튀어나온다.
어설프게 때리면 나중에 또 덤빈다.
어설프게 할 거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좋다.
어차피 쓰려고 버는 돈. 쓸 때에는 확실하게 써야 한다.
옛말에도 있지 않는가.
개 같이 벌어서 개처럼 쓴다고. 아, 이게 아닌가?
여하튼, 두 번 다시 개소리 하지 못하게 개처럼 써주마. 씨밤바 귀찮은 새끼들!
어떻게 돈을 써야 존나게 잘 썼다고 후회하지 않을까?
어떤 방식으로 진행해야 나중에 뒤탈이 없을까?
막상 돈으로 누르려고 해도 딱히 ‘이거다’라고 뒤통수를 후려치는 기발한 생각이 나지 않는다. 천천히 고민해 보고 얘들한테 조언을 구해도 되겠지만, 왠지 그러기는 싫다.
왜냐고?
내 돈이니까!
내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은 아니구나. 스킬 사라 마틸다의 손 한번 흔들었던 것뿐인데.
그나저나, 얘는 도대체가 어디로 간 거야? 아까는 열심히 인터넷 서핑하는 것 같던데… 애도 아니고 알아서 할 테지.
함께 고민하던 홍찬 형이 뭔가 계획이 잡혔는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지원아, 이런 방식은 어떨까? 이왕 쓰려고 하는 돈, 좋은 일도 하면서.”
“뭔데?”
“그러니까, 일단 국내만 생각했을 때 각성자의 수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글쎄? 대충 50만 명?”
“협회 자료에 따르면, 서포터 직군까지 합친 수는 87만 명 정도 돼. 병원이나 대학, 연구실이나 기타 기관까지 합치면 이 숫자는 더 늘어날 수 있겠지. 거기에 각성자들의 가족이나 친인척을 감안하면, 대충 400만 명가량. 그렇다면….”
홍찬 형의 목소리 톤이 조금씩 가라앉고, 난 홀짝거리던 맥주캔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깊어져 가는 밤하늘의 어둠이 주변에 내려앉고, 우리들의 돈 지랄 계획은 점차 익어간다.
다음날 오후.
공식적인, 비공식적인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이제는 제주로 내려가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했다.
어제 새벽녘까지 홍찬 형과 상의한 계획은 조금씩, 또는 급작스럽게 진행될 거고, 난 당분간 새로 짓는 집이나 둘러보고, 그 동안 하지 못했던 낚시를 다닐 생각이다.
이것도 그 돈 지랄 계획에 포함된 일.
난 가급적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거기엔 던전 클리어도 마찬가지.
때가 무르익고, 돈이 돌아 지랄을 하면, 그때야 뻥~ 하고 터트리면 된다.
어디 재미있는 백수. 폐인 모드로 돌아가 볼까?
갑자기 존나 재밌어질 것 같다. 완전 내 스타일이다. 캬캬캬.
출발 1시간 전에 호텔로 새롭게 지원 길드에 가입하게 된 문중환과 홍문희가 커다란 여행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팀장급 길드원들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다른 길드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신삥이니 예의를 차리는… 어쭈? 저 새끼가?
싸이가 홍문희의 손을 잡고 잘하라며, 주물럭 거린다.
‘퍼어억!’
“아악! 아아악! 주, 주군!”
“뒤통수가 앞으로 돌아오게 만들어줄까? 어디서 수작질이야?”
“아픕니다! 너무 아파요!”
“아프다는 느낌을 간지럽게 만들어 줘? 극악의 고통에서 평생 살아볼래?”
“아, 아닙니다!”
바닥을 박박 기어 다니는 싸이를 보며, 주변의 길드원들이 몇몇 웃음을 터트린다.
“기상!”
“넵!”
얼른 일어나 내 앞에서 다가와 차렷 자세를 취하는 싸이.
“문중환, 홍문희.”
“넵. 길드장님.”
“네.”
일단 둘을 불러 내 옆에 서게 한 후 길드원들에게 공표했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오늘부터 지원 길드로 들어오게 된 문중환, 홍문희 길드원이다. 자세한 건 차차 알아보도록 하고, 직군은 나와 같은 아트팩터다. 기존에 싸이도 있고, 신규 길드원도 둘이나 같은 직군이니, 이참에 새롭게 팀을 창설한다. 팀명은 나중에 공고하고, 일단 구성은 여기 두 명과 싸이까지. 팀장은 문중환이 맡고, 부팀장은 홍문희다. 팀원은 싸이. 이상 끝. 공항으로 이동한다. 출발.”
“넵. 알겠습니다. 다들 들었지? 이동한다. 버스 타기전에 잊어버린게 없나 다시 한 번 확인해!”
“개인 물품 다시 확인하고, 이동!”
한득과 길수가 나서서 상황을 전파하고 길드원들을 데리고 주차장으로 움직인다.
주변의 던전처리국 요원들과 협회 직원들이 무전기와 핸드폰으로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고, 호텔 경호원들이 외곽에서 2중으로 우릴 감싼다.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주, 주군!”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던 싸이의 외침이 내 등 뒤에서 들려온다.
번번이 말했지만, 각성자는 각성자 등급으로 말하는 거다.
먼저 들어왔다고 선배 대접 받으려면, 그냥 일반 회사를 다녀라. 여긴 직장이… 마, 맞군.
여하튼, 얼른 제주로 내려가서 폐인 모드로 들어가야지.
약간은 들뜬 기분으로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든다.
마치 뭔가를 잊어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 음. 뭐지?
수십 대의 경찰차와 오토바이를 선두로 김포공항까지 이동해, 또다시 수십 명의 공항 경호원들과 수십의 처리국 요원, 수십의 협회 직원들과 함께 VIP 라운지에서 대기하다가, 특별 전세기 편으로 제주로 내려왔다.
어찌 30여명의 각성자들을 경호하기 위한 수백 명의 요원들이 달라붙는 건데?
어차피, 우린 각성자니까, 굳이 경호 안 해도 되는데? 우리가 너희들보다 더 쎈데?
아, 우릴 경호하는 게 아니라 우리와 마주칠 일반인들을 경호하는 건가?
우리가 뭐, 해코지라도 할까봐? 응? 진짜 그런 건 아니겠지?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비행기에서 내려 게이트로 들어섰다.
인원 수가 꽤 되기에 약간 지체하는데, 40대 후반의 남성이 허겁지겁 다가온다.
“허억. 자, 잠시만요! 저, 도청 비서실입니다.”
“…….”
“도, 도지사님이 차 한잔 하시잡니다.”
“…….”
“한지원 씨, 도지사님이….”
“뭐해? 안갈 거야?”
내 말에 길드원들이 움직이고, 우리가 움직이자 경호요원들도 움직인다.
“하, 한지원 씨! 도지사님이 지금 공항 라운지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뒤에서 누군가의 애절한 외침이 울리지만, 난 쌩 깠다.
뭐? 어쩌라고?
도지사던, 개지사든, 걸지사든지 간에, 난 만날 생각이 아예 없다니까!
누가 여기서 기다리면 내가 꼭 만나 줘야 해? 나 존나 바쁘거든?
간만에 선배 만나서 당구치고, 술 먹어야 하거든?
폐인, 백수 모드로 들어가야 하거든?
공항 게이트로 빠져나가는 내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웃기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게이트를 빠져 나오자마자 각성자 협회 제주지부 직원들이 날 반긴다. 물론 지부장도 포함해서.
수십, 수백의 기자들과 우리 쪽 요원들, 경찰들이 몰려든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고, 엄청난 카메라 플래시와 일반인들의 함성 소리에 기자들이 외쳐대는 질문은 묻혀 버린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와 포옹하며, 귓속말을 하는 제주지부장.
“자네만을 위한 팀을 별도로 구성했네.”
특별 감시겠지. 위험인물에 대한.
하지만 상관없다.
당분간은 폐인 모드거든. 크큭.
수백의 인파를 헤치고 밖으로 나오자 경찰들의 경호 아래, 모 기업의 최신형 검은색 SUV가 주차되어 있었다.
협회 소속인지, 처리국 소속인지 모를 전담 경호원이 차 문을 열어주고, 운전석에는 다른 요원이 미리 앉아 있다.
이거 완전 괜찮은데? 어느 대기업, 회장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만족스런 상황에 입꼬리가 슬슬 올라간다.
차에 오르자 경호원이 문을 닫고, 자신도 함께 이동하는 것인지, 보조석에 탄다.
“자택으로 모실까요?”
“네. 그래 주세요.”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경찰차가 선두로 나서고, 조용히 SUV가 움직인다.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선명하게 보이는 파란 하늘과 한라산. 여름이 다가오는지 풍경은 녹색의 물감이다.
음, 갑자기 존나 뿌듯해지고, 어깨에 힘이 똭~ 들어간다.
아, 제주지부장은 이걸 노린 건가?
카카카. 지부장 아저씨 센스가 괜찮은데?
힘이 똭~ 들어간 어깨에 또다시 힘을 똭 더 주며,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서자… 응? 뭐, 뭐지? 왜 이렇게 신발이 많아?
“누구… 자, 자기야!”
와이프의 목소리에 시끄럽던 집 안에 단 한마디의 공통 분모가 생긴다.
“아빠~.”
“아, 아들!”
“한 서방!”
“지원아!”
“고모부~.”
“삼촌!”
왜 이렇게 날 부르는 호칭이 다 틀린 걸까?
부모님을 비롯해 장인, 장모, 삼촌들과 숙모들, 사촌들과 처제, 처남을 비롯한 그 얘들까지. 38평 빌라가 터져 나갈 것 같다.
도대체 새 집은 언제 다 지어지는 거야!
엄청나게, 격하게, 열렬히 날 환영하는 부모님과 친인척들을 보며, 왠지 알 수 없는 한숨이 내뱉어 진다.
나 나가야 하는데? 저녁 약속이… 크큼.
달려드는 아들을 안고, 달라붙는 외조카들을 무릎에 앉히고, 포옹하는 와이프 등을 토닥거려주고, 뭔가를 물어보는 부모님의 질문에 대답할 때쯤이면 장인, 장모가 말을 걸고, 그걸 다시 대답하려면, 삼촌들과 숙모들이 끼어들고, 거기에 또다시 사촌들이 동참하고….
음, 나 나가야 하는데.
식사 시간이 일러 대충 안줏거리를 마련한다는 엄마와 숙모들.
밥상 하나만 내 앞에 놓여 있고, 수십의 눈동자들이 나만 쳐다본다.
어서 빨리 뭔가를 설명해 보라는 듯이, 신기한 얘기를 어서 빨리 들려 달라는 듯이 온 신경을 나에게 쏟는다.
아빠, 아빠를 외치는 아들이 내 품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주방에 있던 엄마의 웃음소리는 점점 커져만 간다.
하~, 존나 부담된다.
차라리 나중에 하루에 한분씩 따로 만나면 안될까?
나 나가야 한다니까요! 이제 폐인 모드로 들어가야… 하, 됐다. 포기하자.
다음날.
와이프가 정성스럽게, 결코 맛있다고 표현할 수 없지만 성의가 느껴지는, 간단하지만 간단하다고 말하면 삐질 것 같은 아침을 먹고 대충 뒹굴거리다 점심 무렵이 되어 밖으로 나왔는데,
“움직이십니까? 모시겠습니다.”
검은색 양복에 검은색 선글라스, 검은색 넥타이를 맨 요원이 다가와 묻는다.
아, 물어보는 거 맞지?
“담배 사러 가요. 요~ 앞에요.”
“사올까요? 에쓔 아이스 맞으시죠?”
“맞긴 맞는데. 굳이 가실 필요 없어요. 그냥 제가 가면….”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사오겠습니다. 한지원 씨가 차량 이동이 아닌 이상은 저희가 더 힘들어 집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긴 집 밖으로 나온 지 5분도 되지 않아 주변 사람들이 슬슬 몰리기 시작하고, 저 앞에서, 바로 옆에서도 몇몇이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어댄다.
음, 이거 존나 편하기도 하지만, 존나 불편하기도 한데?
나, 일상생활은 할 수 있는 거야?
특급 연예인들은 다 이렇게 사는 거야? 응? 진짜?
얼른 새 집으로 이사를 가던가 해야지. 이거 영 불편… 하지는 않은데? 크큼.
늦은 오후.
어제 그렇게도 날 찾던, 보고 싶어 하는, 선배들의 요청을 오늘로 미뤘다.
아마도 당분간은 자주 어울릴 것 같다.
집 밖으로만 나오면 다가오는 경호원들의 차량을 이용해 시청에 들려, 제주시청 6등급 운영 상황을 대충, 간단히, 슥 지나치며 확인하고 당구장으로 들어서자,
“사, 사인 하나만 해 주시면, 평생 게임비 무료입니다.”
당구장 사장이 매끄러운 종이와 펜을 꺼내고, 미리 도착했던 선배들의 격한 인사와 내 눈치를 조금씩 보면서 슬금슬금 카메라를 꺼내 얼굴을 들이밀고, 셀카를 찍어댄다.
음, 진짜 나 예전처럼 생활 할 수 있을까?
정말?
한바탕 요란스런 분위기가 연출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 모습을 찾아간다.
하긴, 내가 각성한 게 만 2년이 채 되지 않는데, 20여년을 함께 해온 선배들이 단 한번에 바뀔 리가 없다.
뭐, 약간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예전처럼 찰진 쌍욕을 무더기로 날리는 일은 아직 없지만, 좀 더 얼굴을 맞대다 보면 익숙해 질 것이다.
간단히 당구 한 게임을 치고 인근의 갈비집으로 들어가 저녁을… 음, 이거 진짜 문제긴 문젠데?
처음에는 어, 어? 거리던 사람들이 아예 주변에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어대고, 갈비집 사장은 커다란 종이를 어디서 구해와 사인을 해달라고 한다.
화낼까? 아니면 줄럿들을 소환해서 다 쫓아버려?
도대체 이럴 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거지?
밥 먹다가 체하겠다.
역시나 선배들도 쑥스러운 지 술을 먹는 둥 마는 둥이다.
이상한 분위기에 다음에 다시 뭉치기로 하고, 각자 헤어졌다.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경호원에게 다가가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니, 금세 차량이 도착한다.
음, 앞으로 굳이 택시 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약간은 아쉬운 맘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창으로 시내 거리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조명들이 비쳐든다.
근데, 뭐지? 이 알 수 없는 허무함은?
왜 어제부터 이렇게 자꾸 뭔가 허전하지?
서울에서 내려올 때부터 자꾸 뭔가 잊어버린 듯한 느낌인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뭘까?
다음날.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우연히 어제 그 허전한 이유를 찾았다.
“사라 마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