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12_1
4-3
“… 정말 절 잊은 건 아니죠?”
깜짝이야!
어느새 식탁 옆에 사라가 조신하게 서 있었다.
제발 인기척 좀 내고 다니라니까!
“누, 누구야?”
와이프가 입을 벌리고 어, 어 거리며 묻는다.
“특이 각성자라고 생각해. 이번에 새롭게 길드원으로 받았어.”
“… 저, 정말? 외, 외국인인 것 같은데. 진짜지? 응?”
“안녕하세요. 전 한지원 씨 전속 비서 사라 마틸다예요. 갑작스럽게 나타나게 돼서 정말 미안해요. 원래는 서울에서 내버려 졌다가 이제야 누군가가 불러주네요. 자신에게 종속되었다고 그만 막, 함부로….”
“거기까지! 일단 좀 나가자.”
가만히 놔두면 더 이상한 소리를 할 것 같아 밥을 먹다말고, 사라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침울해 하는, 삐진 사라가 날 째려본다.
넌 인간이 아니잖아! 그런 감정도 느낄 수 있는 거야?
그래. 몰랐어. 몰랐다고… 잊어 버렸지.
그냥 나에게 종속된 존재니까,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인벤토리에 들어가 있으면 안될까?
이렇게 밖에서 존재하지 않아도 될 텐데, 왜 꼭 현실에 있으려고 하는 건데?
의아한 궁금증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 사라가 한숨을 푹 쉬더니 이상한 말을 꺼낸다.
“… 이 세상은 정말 신기한 게 많아요. 존재하는 마력은 형편없음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이 엄청난 발전을 이뤘어요. 마법 없이 하늘을 날고, 물은 밑에서 위로 솟구치고, 무한한 빛이 세상을 비추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 다른 인간들 것을 훔치고, 빼앗고, 죽이죠. 같은 종족들이 서로 칼과 무기로 상대방 것을 빼앗더군요. 그리고 화해하죠. 그리고는 또다시 서로를 경계해요. 참, 우습죠?”
“…….”
내가 우습다.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그리고 그런 건 어디서 배운 건데?
서울에서 한참이나 인터넷을 하더니 거기서 배운 건가? 거긴 잘못된 지식도 꽤 있을 텐데.
사라가 말하는 진정한 의미를 몰라 내가 존나 가만히 있자, 그녀가 다시 독백한다.
“그 분의 선택은 지금까지 틀린 적이 없었어요. 전 믿어요. 당신을. 그리고 기다릴게요. 당신이 절 구할 때까지… 여긴 너무나 황량하고, 삭막해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저, 잠시 쉴게요.”
사라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그녀는 사라졌다.
알 수 없는 묘한 말을 남기고 사라진 그녀.
홀로 남겨진 난, 그녀가 말한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자 조용히 담배를 꺼내 물었다.
식후땡이다.
2주일 후.
역시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
그게 꼭 직장생황을 한다거나, 농사를 짓거나, 사업을 하거나, 프리랜서 일을 하거나 상관은 없지만, 일단 무슨 일이든지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해야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고 아버지가 가끔씩 훈계 하신다.
하지만, 난 서울에서 내려온 뒤로는 전혀 그런 일 같은 것을 해본적이 없다.
아침 늦게 일어나 와이프가 정성스럽게, 결코 맛있다고 표현할 수 없는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대충 씻은 뒤 소파에 누워 TV를 켠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또 보고 그러다 더 이상 볼게 없으면, 날씨에 상관없이 낚싯대를 챙겨 밖으로 나온다. 그럼, 그들이 다가와 내가 가고자 하는 곳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준다.
세월을 낚는 건지, 물고기를 잡는 건지 분명하진 않아도, 낚싯대를 던져 놓고 캔 커피를 하나 까고, 담배를 입에 문다.
여름이 성큼 다가와 햇살이 따끈하다. 슬슬 졸리면 대충 아무데나 쓰러져 잠이… 당연히 안오지. 매일 하루에 8시간 이상 꼬박꼬박 쳐 자니까.
그러다가 이것도 귀찮으면, 낚싯대를 챙긴 후 새 집을 짓고 있는 현장을 둘러본다.
뭐, 내가 할 일은 없을지라도 이렇게 얼굴이라도 한번 비쳐주면, 현장에 있던 인부들과 건설사 직원들은 엄청 기뻐한다. 가끔씩은 출장 뷔페를 인원에 맞게 넉넉히 불러 점심이나, 저녁을 대접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가끔씩은 노형 인근의 대형 제주흑돼지 전문점을 찾아간다. 여긴 내가 부모님에게 선물해 드린 식당이다. 돼지고기를 받은 농장부터 종업원, 조리장들을 비롯해 기존의 운영 시스템까지 예전과 그대로다.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던 곳은 아니지만, 꽤나 장사가 잘되던 곳을 현 시세의 3배 가까이 웃돈을 주고 구매한 후 부모님에게 넘긴 것이다.
어차피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고, 그저 일을 하기 위함이니 망한다 한들 상관없다고 내가 밀어붙여 드린 것이다.
뭐, 물론 대로변 길 건너서는 적당한 크기의 소고기 전문점이 하나 더 있다. 거긴 장인어른과 장모님 거고.
나머지 친인척분들은 부모님이나 장모님이 알아서 잘 할 것이다. 그러라고, 꽤 금액이 들어간 카드를 줬으니까.
내가 굳이, 하나하나, 일일이 챙길 필요는 없잖아.
그냥 일정 금액이 들어간 통장과 도장, 카드를 넘기면 알아서 잘 쓰시겠지. 크큼.
그렇게 식당을 둘러보다 시간이 되면, 시청으로 향해 선배들과 당구를 치고, 저녁을 먹는다. 물론 술도 곁들여서.
1차로 반주를 하고, 2차로 맥주와 양주를 섞어 마시며, 음주가무를 즐기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콜.
그럼, 내 콜을 받은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경호원들이 날 무사히 집으로 데려다 준다.
이것만 2주일째 거의 매일 같은 스케줄이다.
그렇게 매일같이 즐거운 삶을 즐기다가, 드디어 입질이 왔다.
‘우웅… 우우웅.’
홍찬이 형이다.
“응. 형.”
“일본 거 터졌다!”
“이번에 1등급?”
“어. 지금은 비공식이고, 조만간 공표하긴 할 건데, 금방 외교부에서 연락 왔다. 도와달라고.”
“그럼, 이제 시작이네?”
“그치.”
“중국하고, 미국, 나머지 나라는?”
“다른데는 아직 모르겠다. 미국은 애매하고, 처리국이나 외교부가 바쁜걸 보면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알았어. 그리고 그거는?”
“우리 법무팀하고 몇 군데 더 불러서 합쳤다. 아무래도 금액이 금액인지라. 각성자 인원 수도 엄청나고.”
“형이 알아서 잘 하겠지 뭐. 난 이대로 있을게.”
“어. 근데 지원아. 한가지 물어보자. 전부터 궁금하긴 한 건데….”
홍찬이 형이 통화를 하다말고 묘하게 말꼬리를 흐린다.
“뭔데?”
“너 나 믿냐?”
“응. 그러니까 내가 이러고 있는 거지.”
“얼마나?”
“형이 가진 돈 만큼.”
“응?”
“맞잖아. 형제자매 사이에도 돈 거래는 정확히 하는데, 내가 뭘로 형을 믿어? 형이 가진 돈 만큼 믿는 거지.”
“…….”
“대충 알아. 형이 무슨 생각으로 이 말을 꺼냈는지. 그거 물어보려고 했지? 내가 맡긴 미네랄?”
“어? 어.”
“그냥 형이 다 먹고 어디로 튀어도 돼. 그럼 그 미네랄 양 만큼이 형의 가치니까. 설마 그 정도로 만족하려고?”
“야! 미네랄 다 환전하면, 2조 6천억이야!”
“각종 세금하고 수수료도 빼야지.”
“그래도 그거 다 합쳐도 2조 가까이 돼!”
“그래. 그럼 형이 2조의 가치밖에 안되는 거지. 던전 클리어 한번만 하고 다음에는 안할 거야? 황금알을 낳는 거위 배 째고 싶어? 진짜?”
“… 새끼가.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나도 말이 그렇다는 거야.”
“… 여하튼 알겠다. 그럼 끊으마… 그리고 고맙다. 믿어줘서.”
“응. 근데 형을 믿어서가 아니고… 내가 귀찮아서 그래.”
“새끼가. 끝까지. 쪽팔려 하지 마라. 괜찮다.”
“… 응. 크큭.”
“크큭. 끊어, 새꺄!”
“엉.”
서로 이상한 웃음소리를 마지막으로 홍찬 형과의 전화통화를 끝냈다.
그래, 드디어 시작됐다 이거지?
좋아! 앞으론 더욱더 폐인 모드에 집중해 주지!
뭐가 좋을까? 낮술부터 시작할까?
다음날 오후.
수백 명의 기자들과 수십 대의 카메라가 몰려 있는 지원 길드 서울지부 내 대강당.
홍찬 형의 기자회견 장면을 TV로 실시간으로 시청했다.
“… 이에 저희 지원 길드에선 이번 태백산 1등급 바이오 던전 클리어 보상에 대한 한지원 길드장의 미네랄 760톤을 가용 금액으로 5년 내에 국내의 각성자가 던전 클리어 시 사망한 경우 그 가족에 대한 생활자금으로 매월 350만 원을 지원하며, 역시 던전 클리어 시 당한 후유장애 1등급 각상자 가족에게는 250만 원, 2등급 200만 원, 3등급 150만 원을 매월 지원합니다. 또한 각성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비롯한 모든 정신장애를 포함하며, 가족관계증명서, 후유장애 진단서만 확인되면 가용금액 한도에 따라 지속적으로 지원됩니다.
또한, 클리어 보상 미네랄 760톤에 대한 보유 가용금액 20% 미만 시 지원 길드가 클리어한 던전 보상을 우선적으로 충당하며, 이는 지원 길드가 해체되기 전까지 유지됩니다.
이상으로 지원 길드 국내 각성자 지원재단 창립에 대한 가이드를 마칩니다.”
홍찬 형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엄청난 카메라 플래시와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들을 천천히 훑어보며 질의응답을 하는 지원 길드 부길드장을 보며, 난 묘한 기분에 사로 잡혔다.
일단 우물에 돌을 던졌으니 어디선가 물결이 일 것이다.
다음날 오전.
어제 홍찬 형의 기자회견은 태백산 1등급 바이오 던전을 클리어한 이후 약간이나마 잠잠해진 국내의 여론을 또다시 한 번 들끓게 만들었다.
모든 뉴스와 신문 등 언론매체들이 앞다투어 지원 길드 국내 각성자 지원재단 설립 취지와 지원내역을 설명했다.
세계 최대 미스터리, 기갑 던전과 바이오 던전이 생겨난지 근 50여년이 지났지만, 국내의 일개 길드가 던전 클리어 보상을 타인에게 이렇게 대규모로 지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입에 거품을 물고, 침을 튀기며, 흥분하기 바빴고,
그리고 그날 오후, 일본의 총리의 오사카 1등급 던전 클리어에 대한 지원 요청 언론보도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던전처리국 국장 전화를 쌩 깠다.
홍찬 형이 알려준 외교부 직통 전화도 쌩 깠다.
제주지부장 핸드폰도 쌩 까자, 지부장이 찾아와서 이런 소리, 저런 소리를 하다가 돌아갔다. 그리고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지 않은, 우리 길드원이 아닌, 모든 전화를 쌩 깠다. 크큼
그러자, 그들이 역시나 날 찾아 제주로 내려왔다.
홍찬 형한테 물어봐야 무조건 모른다고 대답하고, 나와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아쉬운 사람이 찾아 와야지 별 수 있나?
뭐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물론 찾아온 사람이 그걸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의문이지만.
외교부 장관과 던전처리국 국장이 집으로 찾아왔지만, 난 내 집에 들일 생각이 없으니, 내가 집 앞으로 나갔다.
“한지원 씨! 왜 이렇게 연락이 안되는 겁니까? 핸드폰도 그렇고, 길드사무실에 아무리 연락을 넣어도 연결이 되지 않아요. 요원들의 전화만 받아도 되지 않습니까!”
던전처리국 국장의 말이고,
“지금 일본 바이오 던전 뿐만이 아니라 러시아, 영국 등을 포함한 8개국에서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클리어 요청이 들어왔어요. 서두르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납니다!”
외교부 장관의 말이다.
그러든가 말든가.
“뭘 서두르고, 뭐가 큰일 나는지 모르겠네요. 무슨 일인지 대충 짐작하는데, 저 마력 활성화가 안돼요. 스킬도 사용 못 하구요. 딴 사람 알아보세요.”
“…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예? 뭐라구요?”
“무슨 말은… 한국말이죠. 다시 말씀드리죠. 저 마력 활성화 안돼요. 이럴 시간에 다른 각성자 알아보시라니까요?”
“화, 활성화요? 그런 것도 있습니까? 각성자면 보유하고 있는 마력을 통해… 호, 혹시 마력 차단기 같은 거 차고 있습니까?”
“전혀요.”
난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위, 아래로 뒤집어 주고, 바지도 종아리까지 걷어 올렸다.
“수갑형, 팔찌형, 발찌형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갑자기 이렇게 됐네요.”
“끄응, 시험해 봐도 됩니까?”
“시험은 상관없는데, 갑자기 제가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네요. 지금 그 말씀은 제 말을 못 믿는다는 말이니까요. 맘대로 하세요.”
던전처리국 국장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요원을 불러 휴대용 마력 측정기를 가지고 오게 했다.
“아, 저번에 파란 집에서 저 마력 차단기 차고 있어도, 마력 측정되더라구요. 그거 참조 하세요. 아마도 마력 활성화가 안되도, 측정은 될 거예요.”
“그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일단 측정 해보겠습니다.”
“맘대로 하시라니까요. 근데 왜 자꾸 기분이 나빠지는지 모르겠네요오오~.”
“크음. 죄송합니다. 믿지 못하는 게 아니고, 한지원 씨가 워낙 특출난 각성자라 저희들도….”
‘삐빅… 삑삑! 삐이익~… 파치직.’
처리국 국장의 지시에 경호원 중 한명이 휴대용 마력 측정기로 내 몸을 스캔 한 후 측정결과를 보여주는데, 이상한 비프음과 함께 LED 화면이 터져 버렸다.
“…….”
“… 이게 무슨….”
“고장이네요. 좋은 것 좀 가지고 다니시지.”
내 말에 처리국 국장이 요원을 쳐다본다.
잠시 머뭇거리던 요원이 서둘러 차에 가서 새로운 마력 측정기를 가지고 오지만,
‘삐빅… 삑삑삑! 삐익~… 파치직.’
결과는 같다.
“이것도 고장인가 보네요. 여하튼, 전 마력 활성화가 안돼서 도와드릴 수 없겠네요. 그럼, 이만.”
난 내 말만 마치고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
베란다 창문으로 살짝 살펴보니, 집 앞의 주차장 공터에서 둘 다 핸드폰을 들고 통화하기 바쁘다. 요원들은 서둘러 차량에 탑승해 어딘로가 이동하고 있고.
됐다. 속은 건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지들이 어쩔 거여.
마력 활성화도 되지 않는 각성자를 등 떠밀어 외국으로 보낼 것도 아니고.
서울시청 3등급 바이오 던전 리젠 클리어가 얼마나 남았더라?
한 달쯤 남았나?
다음날 오후.
몇 번의 제주지부장 전화가 걸려 왔지만, 역시나 쌩.
그리고는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집 앞으로 이상하게 생긴 대형버스 비슷한 것이… 하, 저거 혹시 이동형 마력 측정기?
휴대용으론 안되니 아예 지부에 있는 걸 들고 온 건가? 쩝.
저것도 터트릴 수 있을까? 뭐 해보면 알겠지.
흰색 면티에 추리닝을 입고, 까치집 머리에 슬리퍼 하나 질질 끌고 밖으로 나가보니, 역시나.
제주지부 직원들이 대형버스 안에서 뭔가를 조작하고 있었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처리국 국장이 다가와 물었다.
“다시 한 번 측정해도 되겠죠?”
이 양반 안 바쁜가? 나하나 역겠다고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돼?
아니, 내가 쫌 잘나서 그런 건가?
그래도 귀찮은 건 마찬가지.
“만약 이걸로도 측정 안되면, 다시는 찾아오지 마세요. 제가 마력 활성화되면 연락드릴게요. 아셨죠?”
“그 마력 활성화는 언제 되는 겁니까?”
“글쎄요. 그건 저도 모르죠. 제가 각성한지 만 2년도 안돼서.”
“되기는 하는 겁니까? 아니, 평생 안될 수도 있고, 내일 당장 될 수도 있겠죠. 여하튼, 이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눈치 챘나?
말투가 약간 이상한데?
그래도 확신할 수는 없을 거다. 그러니까 이걸 가지고 왔겠지.
일단 해보고, 안되면 다른 방법으로….
“측정치 최대값!”
“맥스값, 12,800으로 설정합니다!”
“모든 능력치 한도 범위 내에서 최대값으로 설정하고, 퓨즈 이중화 시켜! 절대 터지지 않게!”
처리국 국장과 대형버스 안으로 들어가자, 제주지부장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어이, 아저씨. 아저씨까지 왜 이래? 응?
우린 같은 편이잖아. 기다려봐. 이 사람들 돌아가면, 살짝 복선 좀 깔아줄게.
그리고 아까 뭐라고 했더라?
측정치 최대값이 12,800이라고?
크큭, 산술적으로 계산한 각성자 1등급 기준이구만.
그래, 그래야지. 그래봤자,
‘삐빅… 삑삑삑!”
“어, 엄청나게 올라갑니다! 이, 이러다 터집니다!”
“최대 수치! 최대 수치로 올려!”
“지금이 최대 수칩니다!”
“이중화 안됐어! 뭔 소리야!”
“병렬, 이중화 다 되어 있습니다!”
‘삑삑! 삐이익~… 콰치지직.’
매캐한 연기가 대형버스 안에 퍼진다.
“윽, 이것도 고장인가 봐요. 냄새 많이 나네. 불 잘 끄시고, 담에 봐요~.”
난 황당해 하는, 멍한 각성자 제주지부 직원들과 지부장, 던전 처리국 국장과 요원들을 남겨 두고 집으로 다시 올라갔다.
오늘도 선배들이나 만나 당구나 한 게임 칠까? 크큼.
잠시 후.
내가 있으면 항상 게임비가 무료인, 당구장 한편에 당구장 사장과 함께 찍은 내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 있는, 거의 단골인 당구장에서 한창 신나게 게임을 즐기고 있는데,
“길드장님! 속보 뜹니다. 이것 좀 보세요!”
당구장 사장이 벽에 걸린 TV 볼륨을 높이며, 날 찾는다.
뭔 일인지 몰라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오~ 좆 됐네?”
일본 오사카 1등급 바이오 던전이 터져, 안에 있던 유닛들이 쏟아져 나와 인근 시가지를 공격하는 영상이었다.
산발이 된 여성 리포터가 일본어로 뭐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가며, 멀리 뒤쪽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중화기 무기를 비롯한 공격형 헬기와 전차들이 화망을 형성해 포탄을 쏟아 붓고는 있지만, 수백, 수천의 저굴링과 히드라, 그리고 엄청난 덩치의 울트라와 땅속을 파고드는 락커, 하늘을 날아오르는 와이번과 멍텅구리, 하늘군주 등을 감당하기엔… 말 그대로 진짜 좆 된 상황이고, 영상이다.
“아~ 울트라한테 포격하네. 저거 존나 맛있는데.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치면 나중에 벌 받을 텐데….”
어느덧 당구장에 있던 모든 손님들이 TV 앞에 모여, 속보를 보고 있다가 내 말에 화들짝 놀란다.
“지, 지원 길드장?!”
“한지원 씨다!”
“여어~, 이러지들 마세요. 손님이에요. 손님! 다들 소란 피우시면 쫓아냅니다. 길드장님한테 허락 맡고, 사진 찍으세요. 거기 학생! 핸드폰 내려 놔! 길드장님 다른 당구장 가게 되면 학생한테 손해배상 청구할 거야!”
내가 미처 당구장에 있었는지 몰랐던 몇몇 손님들이 나에게 달라붙었지만, 당구장 사장이 알아서 커버한다.
역시 이 맛에 내가 여길 오는 거지.
“… 야! 저기 총리가 무슨 지원 요청 하지 않았냐? 너 안가도 돼?”
같이 TV를 보고 있던 경환 형이 묻는다.
“내가 저길 왜 가? 그리고 가고 싶어도 못 가.”
“뭔 소리야. 니가 왜 못 가? 이러면, 저기 완전 난리 나는 거 아냐?”
“난리 나라고 하는 거야, 지금.”
“… 뭔 개소린데?”
“멍멍~. 멍멍멍. 이해 됨?”
“씨밤바새꺄! 당구나 잘 쳐!”
“멍멍!”
TV 속보는 TV 속보고, 당구는 당구다.
난 우리가 한창 게임 중인 당구 테이블로 움직였다.
일본 사람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여전히, 아직은 때가 아니다.
한국도 마찬가지.
다음날 오전.
와이프가 차려준 그 똑같은 음식을 대충 처묵처묵하고, 내 방으로 들어가 최신형 노트북을 켰다.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자마자 일본 오사카 상황을 살펴보는데,
“하, 미국하고 중국까지?”
미국 내 최고의 유명세를 자랑하는 Gap길드와 중국의 차차(次次)길드가 일본으로 입국했다는 속보가 눈에 띄었다. 뭐, 당연히 터진 바이오 유닛을 상대하기 위함이겠지.
우리 쪽으로 딜을 넣어보다가 안되니까, 다른 쪽으로 붙은 거다.
“그래, 불러들여 봐.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자고.”
난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홍찬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 그래. 그건 그렇고, 지원재단 반응은 어때?”
“너 아까 PC로 살펴보고 전화했다고 했는데? 니가 직접 살펴보면 되잖아!”
“그냥 형한테 듣고 싶어서.”
“귀찮은 건 아니고?”
“정답.”
“하~. 각성자 능력치 존나 오르면, 원래 그렇게 귀찮아지는 거냐?”
“글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반응은 어떤데?”
“어떻긴! 우리가 짐작한대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