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13_1
5-1
‘숨겨진 던전(비활성)
등급: 1등급, 종류: 바이오
종속: 테라피
타임: 없음
키(Key): 아트팩터 한지원’
그곳엔 나만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상태를 가진 숨겨진 던전이 묘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버스에 올라 오사카 공항으로 이동하려는데… 뭐가? 왜? 왜 안돼?
하긴 대형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분 자체가 일본 각성자 협회 소속이고, 통역도 그쪽 사람들이니 내 말을 들을 턱이 있나.
잠시 정차된 버스에 일본 각성자 협회와 정부쪽 요원들이 승차한다.
“이대로 돌아가시면 저희가 면목이 없습니다. 오늘은 휴식을 취하시고, 내일은 연회에 참석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던전 클리어 내역이나 그에 대한 보상도 협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금으로 1조 받았고, 나머지만 입금해 주시면 끝날 텐데요?”
“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죄송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희가 최대한 빠르게 사건을 파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대신 저희 길드원들의 일당은 챙겨주셔야 합니다. 원래는 이대로 돌아가서 던전 클리어 운영할 인원들이라서요.”
“… 알겠습니다. 그럼,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네.”
내 허락을 얻자마자 버스가 다시 출발하기 시작했다.
휴식이고, 연회고 간에 대충 세 시간이면, 넉넉하게 제주로 돌아가 집에서 뒹굴거리며 야식이나 시켜 먹을 수 있는 시간인데, 이들이 우릴 붙잡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아마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던전이 사라진 걸로 핑계를 삼는 거겠지.
1등급 던전은 클리어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 그런데 그 거위가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분명 거위를 관리하던 이가 있었는데 거위가 사라졌다면, 관리하던 이를 제일 먼저 의심하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증거도 없고, 확신도 없다. 어떻게 던전을 클리어했는지 모르기도 하고.
일단은 무조건 잡고 보는 거다. 자기들이 상황을 파악하기 전까진.
한마디로 인질인 셈이다.
엄청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수십 명의 인질 말이다. 크큼.
다음날.
몰라요. 제가 어떻게 알아요?
글쎄요? 저도 아는 게 없어요.
님들도 답답하시죠? 저도 왜 이런 일이 벌어져서 여기서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답답해요.
싸이하고 대화해 볼래요? 대가리에서 흰 김이 무럭무럭 나오는 걸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사라 붙여 줄까요? 복창 터져서 죽는다는 게 어떤 건지 느낄 수 있을 텐데.
참~ 아쉽네요.
뭐, 대충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길드원들에게도 일일이 던전 클리어 내역에 대해 물어봤겠지만, 그들이 들은 건 길드장님이 알아서, 혼자서, 슥싹 했다는 어이없는 말 뿐.
원래 사람이 믿지 못하는 일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면, 모든 일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법니다.
하긴, 내가 던전 클리어하는 방식을 얘네들이 봤다고 한들 믿지도 않겠지만.
의미 없는, 불필요한, 시간만 잡아먹는 시간이 흐르고, 오사카 1등급 던전 주변을 마력 스캔으로 샅샅이 훑어봐도 특별한 게 나오지 않자, 결국은 우릴 제주로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아, 물론 길드원들 일당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두둑해진 은행 잔고를 보며, 전세기편을 이용해 제주로 돌아와 집에 가서 발이나 딲고, 빈대떡이나 부쳐 먹으려던 생각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사라졌다.
수백, 수천 명이 모인 것 같은 환영인파.
엄청난 환호성과 함께 수십, 수백 대의 카메라 플래시와 방송용 장비들.
국위선양(國威宣揚)한 위대한 영웅을 환영하는 것처럼… 응? 국위선양은 맞나? 크큼.
여하튼, 국내에 또 다른 이슈거리를 만들어 냈고, 집으로 들어가는 게 점점 늦어지고 있다.
음, 폐인모드에 접속해서 빈대떡을 부쳐 먹어야 하는데. 쩝.
잠시 후.
던전처리국 국장, 외교부 장, 차관,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장, 제주지부장을 비롯한 파란 집 비서실장까지.
인근 조용한 한정식집으로 이동해 식사를 가장한 청문회가 다시 열렸다.
“정말 1등급 던전이 사라진 건 한지원 씨하고 상관이 없는 거죠?”
“네. 저도 왜 사라졌는지 몰라요. 이유를 알면 공개 안 할 이유가 없죠. 그게 다 돈인데….”
“그럼, 클리어 방식은 어땠습니까?”
“클리어 방식요?”
“네.”
“오사카 1등급은 국내의 태백산 1등급과 다르게 본진 한군데만 있더군요. 그래서 본진을 찾는데 대략 2일 이상 걸렸고, 본진 성체 타워에서 인간형 던전 유닛이 나왔습니다. 바디랭귀지로 어떤 뜻을 전하려고 하는 것 같던데, 이해는 안됐구요. 그 다음에는 클리어 알림이 울렸습니다. 길드원들에게 물어보면 아실 텐데요.”
“크음, 역시나 그렇군요.”
“…….”
왜 다들 알면서 물어보는 건데?
어차피 일본에서 정보 공유 했을 거 아냐?
지금 날 테스트하는 거야? 정말? 이 사람들이….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죠. 영국에서 1등급 기갑 던전 클리어 요청 들어왔습니다. 클리어 보상 선입금 1조, 클리어 후 1조. 이동 경비 및 식량, 식수 등을 포함한….”
“안 갑니다.”
“예?”
“영국 1등급 기갑 던전 클리어 안 간다구요.”
“왜, 왜요?”
“안 가면 안가는 거지, 이율 굳이 말씀드려야 하나요? 제 맘입니다만?”
“… 그, 그래도. 일본은 지원해주면서 영국은 가지 않는다는 게….”
“참나. 기갑 던전 1등급은 저도 못 깨요. 클리어하지도 못하는데 왜 갑니까? 거기 가서 뒤지라구요?”
“바이오는 되고, 기갑 던전은 클리어 안된다는 게 이해가 잘 안됩니다만?”
“이해까지 바라진 않습니다. 여하튼 안 갑니다.”
“…….”
어이 아저씨. 아저씨도 답답하지?
그러니까 왜 굳이 날 테스트하려고 해서….
“그런데 국외에서 벌어들인 돈도 면세 혜택이 부여되는 겁니까? 원래 국내법상 각성자가 국외에서 번 돈은 세율 38% 아닌가요?”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파란 집 비서실장이 한마디 한다.
어이~ 아.저.씨!
지금 나하고 싸우자는 거지? 그치?
내가 진짜 파란 집 가서 깽판 한번 다시 쳐봐? 아저씨 감당할 수 있음? 엉?
다음날.
국내의 언론을 비롯한 외국의 방송들까지 점차적으로 지원 길드라는 단어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아니 지원 길드, 한지원, 1등급 각성자, 세계 최초, 1등급 던전 클리어 이런 단어들이 무작위로 쏟아지기 시작했고, 내 페이스톡 팔로우 수도 엄청나게 증가… 응?
웬 영어? 어라? 이건 불어고, 이건 러시아언가? 중국? 돼, 됐다. 더 이상 보지 말자. 크큼.
내가 아침을 먹으면서 핸드폰을 확인하다가 테이블에 내려놓자, 조심스럽게 와이프가 묻는다.
“자기야.”
“응?”
“새 집 인테리어, 내 맘대로 해도 돼?”
“어. 대신 서재하고 지하 1층은 내가 할 거야.”
“응. 그건 맘대로 해도 돼. 얘 방하고 거실, 주방, 욕실하고 안방… 하여튼 자기가 하겠다는 것만 빼고 내가 알아서 할게.”
“어. 근데 그게 왜?”
“아니, 꽤 돈이 들어갈 것 같아서.”
“내가 준 카드, 그거 거의 한도 제한이 없을 텐데?”
“지, 진짜? 한도가 없을 리가….”
“이상한데만 쓰지 않으면, 평생 못 쓸 거야. 정 뭐하면 새 집 근방에 땅이나 더 알아보든가. 역시 건물 3동으로는 너무 작아.”
“우리하고, 시부모님, 우리 부모님만 사실 건데? 80평 3층짜리 건물 3채가 왜 작아?”
“죽을 때 가지고 갈 돈도 아닌데, 뭐하러 썩혀. 있을 때 써야지. 사람이 성공하면, 건물주가 되야 해. 하느님 위에 건물주잖아. 임대료만 받아서 유유자적하면 얼마나… 아! 멍청한 놈!”
“왜?”
“엄마하고, 어머님하고 당분간 제주시 건물 좀 알아보러 다녀. 노형이나 연동 근처로. 최소 10층 이상 상가 건물이나 단독 아파트 등을 최우선으로… 아니다. 일단 새로 지은 건물들은 금액에 상관 말고 다 사들여. 내가 이번에 아주 한 개의 동을 전부 다 사들여서….”
“자, 자기야. 그건 쫌 아닌 것 같은데.”
“얼마나 좋아. 기사 달린 차 타고 다니면서, 저것도 내 거, 이것도 내 거. 여기 있는 거 전부 내 거. 이렇게 하면! 존나 폼 나잖아.”
“…….”
“우리 처음 결혼 했을 때 기억나? 제일 중요한 일?”
“신혼 집? 아니면 내 집 장만?”
“그치. 여전히 한국은 땅주인하고 건물주가 대접 받는 세상이라고. 어디 가서 이빨 좀 털려면 건물 몇 채는 가지고 있어야 돼. 알겠지?”
“으, 으응. 일단 돌아다녀 볼게.”
“어야.”
와이프가 알겠다고 대답하는 소릴 들으며, 난 식은 국을 원샷하고 식탁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꿈은 높고, 크게 가지는 법!
아예 제주도를 다 산다는 허황된 꿈을 가지고 살다보면, 조그만 동 하나는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겠지.
아니, 어디 넓은 땅을 하나 얻거나, 무인도를 하나 사서 거기에 나만의 왕국을 만들어… 에이, 이건 너무 나갔다. 크큼.
음, 혹시….
늦은 오후.
중간에 각성자 협회 제주지부에서 어제 만났던 그 아저씨들과 2차 미팅( 이라 쓰고, 2차 뻘짓거리라 읽는다)을 대충 해주고, 사무실에 와보니.
“형님! 영국이 먼저죠?”
“무슨! 형님, 중국이 먼저 아닙니까?”
“러시아가 1등이라니까!”
“프랑스죠?”
“스위스.”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뭐가?”
“형님 페이스톡요. 거기에 댓글로 던전 클리어 요청 들어왔습니다. 일본 다음으로 클리어할 1등급 던전을 지금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구요. 중국에서 5조 배팅했으니까, 거기가 1등 아닙니까?”
“그전에 영국이 공식적으로 먼저 클리어 요청 했잖아! 우선순위는 무시하고 돈만 많이 주면 가냐?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건 신의가 아니지.”
“신의는 무슨. 프랑스 에펠탑 바로 옆에 있는 1등급 기갑 던전부터 처리해야죠. 세기의 건축물인데.”
“흰 꽃처럼 아름다운 알프스 산맥의 스위스.”
허, 그러니까 일본 다음으로 어디 가냐고 물어보는 거야? 지금?
그리고 걔네들은 왜 페이스톡에 댓글로 지랄한데?
그냥 한국 외교부나 던전처리국으로 요청하면… 음, 어차피 똑같구나. 크큼.
“전부 기각. 아무데도 안 간다.”
“예? 왜, 왜요? 5, 5조라니까요! 일본의 2.5배라구요!”
“5조든 50조든, 안 가!”
“아, 그러니까 왜요! 왜 안가냐구요!”
“이씨팍쌕꺄! 내 맘이다!”
“…….”
할 말 없지?
그럼, 다들 해산하지?
어이 얘들아.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지 말아줄래?
“형님, 5조가 적긴 적죠?”
“야이, 개씨밤바쌍놈의 쌔꺄! 돈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안 간다니까!”
“… 클리어 수당 10조까지는 되야, 그래도 움직일만한 여건이….”
하, 이것들이 진짜.
“다들 주목!”
“넵!”
“예. 길드장님. 어디로 갈 건지 경청 하겠습니다.”
“말씀하세요. 준비는 다 됐어요.”
그래, 차라리 오픈을 하고 말지. 계속 대답해주기 짜증난다.
얘네들도 언젠가는 알아야 할 것이고.
“태백산 1등급 던전의 종류는?”
“바이오입니다.”
“정답이다. 그럼 이번 일본 오사카 1등급 던전은?”
“역시 바이오입니다.”
“영국은?”
“기갑이죠.”
“중국은?”
“역시 기갑입니다.”
“그래서 안 간다.”
“… 예? 그게 무슨… 어? 호, 혹시….”
“그래. 현재까지는 1등급 바이오 던전만 내 능력치로 클리어할 수 있다. 사라 알지? 사라가 바이오 던전 유닛에게 절대명령을 할 수 있기에….”
내가 왜 영국과 중국 1등급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미혜와 지혜의 중얼거림이 들린다.
“프랑스는 바이오인데.”
“스위스도.”
“… 아~ 쫌!”
며칠 후.
그 동안 한창 이슈가 된, 사람을 귀찮게 하는 일부터 처리했다.
일단 내 페이스톡에 1등급 기갑 던전은 왜 클리어 못하는지에 대해, 약간의 진실이 섞인 거짓의 게시물을 작성한 것이다.
‘세상에 제가 모든 일을 다 할 순 없습니다.
시간적 여유도 없지만, 제가 그럴만한 능력 또한 되지 않습니다.
전 세계 일정 등급 이상의 모든 각성자들은 직군에 따라 자신만의 고유한 스킬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상태 특성에 따라 그 스킬의 활용범위는 무궁무진 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제 스킬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드릴 순 없지만, 저는 바이오 던전 유닛을 상대 하는데 최적화된 스킬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에, 기갑 던전. 특히 최고위급 2등급 이상의 기갑 던전 클리어는 간단히 말씀드려 무리입니다.
많은 분들이 자국의 1등급 던전 클리어를 요청하고 계십니다만, 기갑 던전은 저희 지원 길드에서 클리어하지 못함을 양해 바랍니다.
저희가 다 부족한 탓입니다.
앞으로도 저희 지원 길드원 모두 자신의 상태 능력치를 더욱 발전시켜, 추후 던전 클리어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충 이것으로 핑계거리는 만들어 놨다.
능력이 안돼서 클리어 못하겠다는데, 지들이 뭐라고 할 건데?
아니면, 우리가 1등급 기갑 던전에 들어가서 던전 유닛한테 자살이라도 할까?
바랄걸 바래야지. 이건 아니잖아. 그치?
위 게시물이 작성된 이후로 1등급 기갑 던전 발현이 있었던 나라의 클리어 요청은 많이 줄어 들었지만, 없어지진 않았다.
아마도 못 믿는 것 같다. 젠장.
그리고, 1등급 바이오 던전을 발현되고, 클리어하지 못하는 나라들의 요청은 더욱 늘어났다. 썩을….
다음 날.
던전처리국 국장을 비롯한 외교부 장, 차관과 파란 집 비서실장이 또다시 길드사무실로 날 찾아왔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자꾸 얼굴을 들이미는 건데?
페이스톡 못 봤어요?
나 1등급은 고사하고, 2등급 기갑 던전도 클리어 못한다니까!
다른 사람들이나 찾아보셔.
“프랑스가 가장 급합니다. 다음은 스위스구요.”
음, 봤나? 기갑 던전은 아니네?
그래도 한 방에 오케이 하기엔, 귀찮다. 그럴만한 이유도 없고.
“… 갈 맘이 없는데요?”
“끄응, 도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페이스톡으로 언론 장악하는 것도 그렇고. 저희 쪽에 협조 좀 해 주세요.”
“역지사지(易地思之)입니다. 기브 앤 테이크 아닙니까? 외국 가서 국위선양하면 뭐 합니까? 세율이 38%인데. 저희 목숨 값을 왜 나라에서 가지고 가요? 해준 것도 없으면서.”
“… 법이 그런 걸 어쩝니까?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조만간 여, 야당 최고위원들이….”
“그럼, 그거 통과될 때까지 어디 안 갑니다. 태백산 1등급도 다음 달 안에는 리젠 클리어해야 해요. 국내는 신경 안 씁니까?”
“5주 이상 남았습니다. 이번에 신청한 유럽권 나라 세, 네 군데는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는 시간이구요.”
“제 스케줄을 왜 나라에서 관리해요? 그리고 거기서 뭐 받았어요? 왜 이렇게 적극적이죠?”
“크으음.”
안 봐도 비디오다.
1등급 던전 클리어를 목적으로 뭔가를 약속했겠지.
나에게는 수고비와 던전 사체 소유권을, 그리고 정부쪽에 뭔가를 제시했을 것이다.
그랬으니 이 사람들이 나에게 몰려와 이런 귀찮은 짓을 하고 있는 거고.
“외국도 100% 면세. 그거 아니면 저도 싫습니다. 다들 바쁘신 분들인데, 그만 일들 보세요. 전 선약이 있어서.”
대충 응대 해주고 길드사무실을 나왔다.
사람들이 말이야 그러면 못 써.
위험하다고 한번 해주고, 급하다고 두 번 해주면, 나중에도 그렇게 해달라고 징징 거린다.
정당한 대우와 그에 상응하는 대가만이 날 부려 먹을 수 있다. 크큼.
그나저나 어디로 간다? 갈 곳이 없는데.
형들한테 전화해서 당구나 한 게임 할까?
난 바쁜척, 선약이 있는 척, 핸드폰을 꺼내 경환 형한테 전화를 걸었다.
삼일 후.
각성자법 특별조항이 적혀 있는 문서를 비롯한 묵직한 서류 가방을 들고 처리국 국장과 외교부 차관, 파란 집 비서실장이 또다시 찾아왔다.
이러다가 이 아저씨들과 정분나겠다.
대충 인사를 마치자마자 내 방 테이블에 올려놓은 수십 장의 서류들.
“말씀하신 특별조항과 지원 길드만을 위한 세부적인 내용을 추렸습니다. 대통령님 지시로 금일부터 적용됩니다.”
허, 벌써? 아무리 못해도 한 달 이상 걸릴 줄 알았는데.
나를 제외하곤 다들 급한가 보죠? 크큼.
입꼬리가 벌어지는 것을 참으며, 테이블에 놓인 서류에 손을 가져가는데… 근데 이걸 나보고 다 읽어보란 말씀?
“밖에 한득이하고 길수 좀 들여보내.”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사무 여직원이 홍차를 테이블에 내려놓자, 난 길수와 한득을 불렀다.
내가 귀찮을땐 어디선가 나타나 내 일을 대신해 주는 슈퍼울트라짱 에너자이저 길드원. 길수와 한득.
오늘은 밤을 세워서라도 이걸 다 검토한 후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협의해서, 법무팀에 넘긴 다음, 그 내용을 간단히 추려서 내일 나에게 설명을 해주면 된단다.
참 쉽지?
역시 사람은 인재를 골고루 잘 써야… 크큼.
다음날 오후.
번개불에 콩을 볶아 먹듯, 연탄불에 샤브샤브용 고기를 직화하듯, 그렇게 모든일이 찰나의 시간에 처리가 된다.
내가 프랑스 1등급 바이오 던전 클리어하겠다는 소릴 오전 10시에 했는데, 오후 4시에 제주국제공항에서 프랑스 파리로 가는 전세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우리 지원 길드원들도 서울지부에서 부랴부랴 제주에 내려오기 바쁜데, 이 아저씨들은 어떻게 벌써… 음, 인재를 정의하는 기준에 약간의 오류가 생긴다.
여하튼, 10시간 이상 걸리는 비행시간을 고려하면, 약간의 여유가 있는 건가?
가는 동안 잠을 자던, 밥을 먹던, 똥을 싸던, 그건 길드원들이 알아서 할 것이고.
난 그동안 못 봤던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나 처리해’를 보면서 어여쁜 승무원 언니들과 재미있는 농담 따먹기 신공이나 연마 해야겠다.
프랑스 파리로 가는 전세기 탑승 4시간 30분째.
300여명이 한꺼번에 탑승할 수 있는 전세기에 승무원을 포함 150명이 안되는 인원들만 타고 있으니, 자리가 넉넉하다.
물론 비즈니스석과 퍼스트석에는 나를 비롯한 팀장급 길드원들과 처리국, 정부, 협회 간부들이 타고 있고.
대충 기내식을 처묵처묵하고, 얘들이나 살필 겸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80여명의 지원 길드원들이 한두 자리씩 자리를 잡고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미네랄 판으로 뭔가 조각을… 응? 넌 뭐하냐?
싸이가 뻘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뭐하냐?”
“아, 주군. 인챈트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틈틈이 시간날 때마다 연습하라고 하셔서. 하하, 이거 생각보다 재밌습니다.”
“…….”
응? 인챈트 연습?
내가 그런 거 하라고 했어?
음, 곰곰이 생각해보니 얼핏 그런 얘기를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일단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그 미네랄 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그거 내가 준거냐?”
“네. 작년에 인챈트 연습하라고 주신 미네랄 판 5개 중에 하납니다.”
응? 또 뭐?
미네랄 판 5개? 전부 다?
“내가 5개나 줬어?”
“네.”
“언제?”
“12월 말에 주셨습니다.”
“내가 미쳤구나.”
“네?”
묻기는.
맞아. 내가 미친 거.
미네랄 판 하나에 1억씩이나 하는 건데, 그걸 5개 전부 너에게 주다니!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친… 잠시만.
그때 내가 이걸 주면서 뭔가를 시켰었는데, 그게 뭐였더라? 당최 기억이… 아! 마법 회로!
역시 내 기억력은 출장하다. 크큼.
“마법 회로 진척율은?”
“아, 네. 주군. 마법 회로 중 소형화 마법진과 파이어, 아이스 마법 아이템 계통하고, 개인 축복, 힐은 평상시 20%까지 일정 부분까지 활성화 가능하며….”
“뭔 소리야? 그게 다 돼? 그걸 전부 인챈트 할 수 있다고?”
“네.”
응?
또 뭐? 네?
이 새끼 진짜 미쳤나? 도대체 인챈트 능력치가 얼마나 되길래….
“너 인챈트 능력치 얼만데?”
“98입니다.”
“… 야이~ 개쌔꺄!”
조용하던 내부에 내 고함소리가 울려 퍼지고, 잠들었던 몇몇 길드원들이 깜짝 놀라 깨어난다.
한득과 길수가 급히 나에게 다가오다가, 싸이의 표정을 보곤 쯧쯧 거리며 다시 돌아간다.
그러든가 말든가, 이 미친 싸이코 새끼가!
“주, 주군!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니 등급이 얼만데 인챈트가 98이야! 멍청한 쌖꺄!”
“그, 그게….”
개또라이 새끼.
내가 레벨 99, 각성자 1등급 능력치에 신체 특성과 인챈트 능력치를 골고루 분배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에서야 124인데!
니가 무슨 주식투자의 귀재야?
뭔 개인 보유 능력치를 인챈트에 몰빵해!
내 고함에 싸이가 불안한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하… 신체 능력치 읊어봐.”
“네, 넵! 민첩 28, 지구력 27, 힘 25, 체력 26, 지능 24, 행운 19, 인챈트….”
“98?”
“넵. 주군.”
“하아~. 진짜 너, 도대체 생각이란 걸 하고는 사냐? 어찌 각성자 개인 보유 능력치 분배조차 상식이 없냐! 그냥 인터넷만 봐도 아는 거 아냐? 아니 주변에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될 것을.”
“… 주, 주군께서 인챈트에….”
“뭐?”
잠시 후.
일단 분배시켜버린 개인 보유 능력치는 어쩔 수 없다.
더군다나, 내가 시켰다고 더듬거리며 말하는 싸이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래서 내 말대로 했다?”
“네, 넵. 주군.”
“하, 미추어버리겠구만.”
“제가 잘못 분배한 겁니까?”
“그럼 니가 잘했으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죄, 죄송합니다. 주군.”
“… 됐다. 니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 대충 말해놓고 신경 쓰지 못한 내 잘못이지.”
“주, 주군!”
이 새끼는 미친 게 분명해.
감정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갈팔질팡 하는 걸 보면 분명 싸이코다.
지금도 봐라.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던 표정이 찰나에 저렇게 초롱초롱 해지는 걸 보면.
“일단 아까 하던 말 계속해 봐. 마법 회로 중 소형화 마법진하고, 파이어, 아이스 마법 아이템… 또 뭐?”
“네. 설명드리겠습니다. 일단 마법 회로 중 소형화 마법진 활성화 가능하며, 파이어, 아이스 마법은 아이템으로 활성화됩니다. 그리고 축복과 힐은 능력치의 20% 가까이 개인적으로 사용가능한 아이템으로 만들 수 있으며, 공간과 시간에 따른 마법진은….”
이 새끼 미친 거 맞아?
뭔 놈의 소리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지?
싸이코가 외우는 주문인가?
“크큼. 간단히!”
“넵! 주군! 설명 드리는 것보단 보여 드리는 게 빠르겠습니다. 마침 완성된 파이어 마법과 아이스 마법진이 있으니까요. 여길 보시면….”
싸이가 내가 준 미네랄 판 위에 기하학적인 패턴 모양을 이데아 송곳으로 가리키며 설명하기 시작한다.
음, 저거 이데아 송곳도 어디서 많이 본 물건인데 말이야.
“우선적으로 파이어 마법과 아이스 마법은 상극입니다. 불과 얼음은 서로 융화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게 마법진, 마법 회로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어차피 같은 공격형 마법이고, 원소 마법이기에 배열은 같습니다. 지금 보시는 이 부분이 원거리에서 투척되는 사거리 부분이고요, 이쪽 이 부분이 그 원소 특성을 가지는 부분입니다. 우연찮게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이걸 이렇게 서로 돌려서 맞물리면….”
이 새끼가!
지금 이거 날 놀리는 거 맞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설명을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응?
싸이가 뭔가를 설명하면서 두 개의 마법진 꼬리부분에 이데아 송곳으로 이어진 선을 긋자, 이어진 기하학적인 패턴 도형들이 파란 빛을 뿜어대기 시작한다.
‘스… 파아앗.’
뭐, 뭐냐?
이 어이없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내가 약간 어리둥절 하는 사이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계속 이어서 싸이가 뭔가를 한다.
“… 이렇게 서로 상극인 마법 회로들이 미네랄 판에서는 서로 호응하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형화 마법 회로 끝을 이쪽으로 연결시키면….”
‘스… 파… 아… 아.’
하얀 빛과 함께 미네랄 판에 있던 그 큼지막한 패턴 도형들이 조그맣게 줄어들어 파란 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불꽃과 얼음의 정화(흡수 가능)
출처: 아트팩터 고병찬, 등급: 4등급,
파이어, 아이스 마법계열 능력치 가용률: 3.3% 상승’
“허….”
씨파! 이런 건 난생 처음 본다.
파이어와 아이스 마법 정화, 두 종류라니!
그럼 종에 상관없이 아무나 흡수 가능하단 말?
더군다나 4등급!
싸이가 7등급 초반대 능력치를 가졌는데, 어떻게… 아, 인챈트 능력친가?
새끼가! 각성자 등급은 7등급인데, 한 가지 특성에만 몰빵해서는… 이렇게 좋은 아이템을 만들어 내다니!
기특한 녀석.
그건 그렇고, 일단은….
“한득! 길수! 팀장급 얘들 전원 집합!”
내 고함이 조용한 전세기 내부에 울려 퍼졌다.
잠시 후.
“세상에!”
“말도 안돼!”
“헐….”
“야, 원래 아이템 특성이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냐?”
“몰라, 병신아. 말 걸지 마. 지금 대가리 아파 죽겠다.”
“왜?”
“몰라서 물어? 만약 저런 걸 지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다면….”
“… 있다면?”
“우린 존나 피곤해지는 거지.”
“… 그렇겠지?”
“아마도.”
한득과 길수가 지들끼리 연극을 하다말고, 싸이가 만들어낸 아이템과 날 번갈아 쳐다보기 시작한다.
이것들이! 도대체 날 어떻게 보고… 는 뭘. 정확하게 봤다.
너희들이 알아서, 훌륭하게, 잘 팔아서 내 통장에… 크큼.
“마법사들, 불러봐.”
“뭘요?”
“이 아이템 구매 금액.”
“그, 글쎄요. 10등급짜리 가용률 2점대가 1억 원 정도니까… 대충 5억?”
“후려치기는. 4등급에 3.3%인데?”
“오빠! 나 10억에 살게!”
“기각.”
“길드장님. 전 12억 배팅하겠습니다.”
“기각!”
“13억!”
“음….”
“14억!”
“15억!”
“…….”
어이, 왜? 왜 다들 나만 바라보는 건데?
계속해서 입질해봐.
내가 귀 기울여서 듣고 있다가, 맨 나중에 입찰한 금액을 부른 얘한테….
“오빠. 오빠는 우리들한테도 장사할 거야? 그냥 원가로 주면 안 돼?”
“니가 드디어 미쳤구나? 기각! 무조건 기각!”
“흥, 18억!”
“20억 정도는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옆에서 조용히 있던 미혜가 한마디 한다.
잘한다. 미혜야.
프랑스 파리로 가는 전세기 탑승 6시간 10분째.
결국은 전세기에 탑승한 모든 길드원들이 다 알게 됐다.
뭐 밀폐된 공간에서 다들 모여 소리를 꽥꽥 질러대고 있는데, 누가 모를까?
잠을 자던 얘들까지 다 깨어나, 삼삼오오 모여 아이템 성능과 그에 대한 적절한 금액에 대해 열띤 토론을 이어간다.
아주~ 바람직하고, 좋은 분위기다.
길드원들의 이런 반응이라면 아이템을 경매로 내놓기만 하면 대박…까지는 아니고, 중박… 음, 나한테는 의미 없나? 크큼.
그래도 돈은 많을수록 좋은 법.
그러니까 이걸 존나 많이 팔아서… 는 돈이 얼마 안되겠는데?
지금 전세기에서 벌어진 지원 길드원들의 경매는 어느덧 22억까지 올라갔다.
물론 팀장급 얘들이 돈이 없어서 그 금액에 멈춘게 아니고, 이 아이템 가격이 그 정도 선에서 구매가 이루어진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