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14_3
“알겠습니다. 크음.”
내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경호실장이 앞을 막는다.
“어디 가십니까?”
“비키세요.”
“어디 가시냐고 물었습니다.”
“… 저번에 있었던 일, 다시 되풀이 해 볼까요? 오늘도 여기 총 4명 숨어 있는데, 유닛 소환해요? 아니면 비키실래요?”
“돌아가시는 거면 절대로 안됩니다.”
“… 똥 싸러 화장실 갑니다. 됐습니까?”
“…….”
경호실장도 볼 일이 급한지, 똥 씹은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다녀오세요. 화도 좀 식히시고. 안내해 드리게.”
대빵이 구원해준다.
근데 나, 여기 화장실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데?
굳이 그곳까지 안내할 이유가… 아! 내가 이대로 튈까봐?
크큭, 안내하기는 개뿔, 감시하라고 대놓고 말하지!
“홍찬 형, 나 좀 봐.”
“… 어? 어.”
입구로 걸어가며 홍찬 형을 찾자, 자리에서 일어나 눈치를 보더니 날 뒤따라 나온다.
그리고 끝까지 기분 나쁜 시선이 계속 이어진다.
일단 자리를 피해주지.
대빵 아저씨의 능력을 보겠어.
잠시 후.
“하… 내가 이래서 여기 오기 싫은 거야. 뭔 놈의 갑질은….”
화장실에 들려 손만 씻고 나온 후 건물 뒤편에서 담배 하나 빼어 물었다.
예전에는 주변의 경호원들이 눈치를 주더니만, 이제는 본체만체한다.
“너도 잘한 거 없어. 나이도 너보다 많고, 사회적 지휘도 높은 사람한테….”
“참나. 형도 가끔 가다보면 이해가 안될 때가 있다니까. 우리가 일반인이야? 아니면 그 사람 부하직원이야? 내가 여기 오고 싶어서 온 거냐고! 필요에 의해서 불렀으면 대우는 못해 줄지언정, 무시는 하지 말아야지.”
“… 니가 대답하는 말투가 좋았으면….”
“내가 그 사람 비유 맞추면서 아부 떨어야 해? 그리고 아쉬운 건 우리가 아니야. 괜한 사람 불러놓고 갑질하는 그 아저씨가 문제지. 내가 갑질, 훈계질에는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거든!”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요. 하지만, 여기 대부분의 관료들이 길드장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죠. 아, 담배 한 개비 빌릴 수 있을까요?”
“…….”
“…….”
어느새 나타난 경호실장이 이상한 웃음을 지으며, 옆으로 다가와 담배를 찾는다.
뭐지? 왜 갑자기 친한 척이지?
그리고 그 웃음의 의미는 뭔데?
“…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도 월급 받는 월급쟁입니다.”
내가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건네주자, 익숙하게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담배는 안 태우시는 줄 알았는데….”
홍찬이 형의 혼잣말에 경호실장이 씩 웃더니, 담배와 라이터를 나에게 돌려준다.
그러면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낸다.
“혹시 제가 이 일 그만두면, 제 밑에 있는 녀석들하고 같이 지원 길드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각성자는 아니지만, 대부분 특전사 출신에 무술 고단자입니다. 어디 가서 얻어맞고 다니진 않습니다만…?”
뭐야? 뭔 말인데?
경호실장이 대빵 아저씨를 내버려두고 왜 그만 둬?
내가 어이가 잠시 가출한 탓에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자, 홍찬 형이 대신 물어본다.
“…….”
“… 시, 실장님이요? 왜, 왜요? 아니 경호실장도 그만 둘 수 있는 겁니까? 그게 맘대로 되는 거예요?”
“하하, 지금 당장은 아니구요. 나중에,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하, 하하하….”
화통한 웃음소리와 함께 멀어지는 경호실장.
어이, 아저씨! 그렇게 그냥 갈 거면 왜 찾아왔는데? 담배 피려고 왔던 거야?
그나저나, 그 잠깐 사이에 뭔 일이 있었던 거지?
경호실장의 웃음이 가식적인 것 같던데….
하긴, 스트레스 안 받는 직장이 어딨겠냐. 경호실장도 금방 말한 것처럼 일반적인 월급쟁이일 뿐이다.
적당히 대가릴 식히고 집무실로 다시 들어오자, 분위기가 꽤나 이상하다.
정확한 건 모르지만, 아마도 대빵 아저씨가 장관한테 뭐라고 했겠지.
거기에 경호실장도 포함 됐으려나?
아무렴 어때.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니 신경 끄자.
홍찬 형과 내가 다시 자리에 앉자, 공항에서 따라온 비서관이 서류가방에서 파일철을 꺼내 내 앞에 놓는다.
“시간이 지체된 것 같아 본론만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4일전 광주 무등산 등산로 입구에 새로운 던전이 발현되었습니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등급은 1등급. 종류는 바이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던전 주변 마력치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활성화되고 있다는 말이죠. 이걸 좀 보시죠.”
비서관이 내 앞에 놓인 서류철을 펼쳐 안에 있던 위성사진들과 이상한 기호가 잔뜩 들어간 지도를 보여주지만, 난 눈으로 보는 대신 입으로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도 던전이 커지고 있다? 뭐 그런 말씀입니까?”
“네. 맞습니다.”
“발현 이후에 있는 일상적인 현상 아닌가요?”
“다른 던전 발현 현상이었다면 그렇습니다만, 이건 좀 많이 이상합니다. 측정 마력이 두 종류가 발생되고 있어서요.”
응? 뭔 말이야?
측정 마력이 두 종류? 그런 것도 있어?
“… 이해가 잘 안됩니다만?”
내가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번에는 던전처리국 국장이 입을 연다.
“지원 길드장도 아시다시피, 던전이 발현할 때 측정되는 마력의 패턴은 총 두 가지입니다.간단히 말하면 바이오 패턴과 기갑 패턴. 여기까진 문제없죠?”
“네.”
“그런데 이번에 광주 무등산에 발현된 던전은 기갑 패턴과 바이오 패턴이 동시에 측정되고 있습니다. 바이오 패턴 주기가 좀 더 많아서, 지금까지는 바이오 던전이라고 짐작하고 있고요. 그리고 일본과 미국에서도 비공식적으로….”
“그 이후에는 제가 말씀드리죠.”
처리국 국장 대신 외교부 장관이 설명을 이어갔다.
“일본과 미국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 태국, 인도, 이탈리아, 터키 등에서도 국내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쪽에서 던전 클리어 요청이 쇄도하고 있고요.”
“음, 세계 각지에서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씀이시죠?”
“네. 맞습니다.”
내가 레벨업하면서 들은 알림의 새로운 던전이 이것과 무슨 상관이 있으려나?
아니다. 상관이 있는 게 아니고, 필연 같다.
새로운 던전. 지금까지 발현되지 않는 새로운 던전이라….
그렇다면….
“… 형. 그거 꺼내 봐. 어차피 공개된 거 여기서 오픈 해야겠어.”
“… 그래.”
홍찬 형이 품속에서 내가 건네준 아들 받아쓰기 노트 메모를 꺼내자, 주변의 시선이 집중된다.
“제가 이번에 레벨업 하면서 들은 각성자 시스템 알림 내용을 정리한 겁니다. 제가 임의대로 짐작한 거라 100% 정확하지 않지만, 이걸 보시면 도움이 좀 될 겁니다.”
테이블에 올려진 볼품없는 종잇조각.
태석 형님이 제일 먼저 그 메모를 펼쳐 읽는다.
“… 크으음. 저, 정말 이게 알림 내용이라고?”
“뭔데요? 저도 좀 봅시다.”
던전 처리국 국장이 메모를 가져갔고, 반응은 태석 형님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결국은 대빵 아저씨한테까지 전달되었고, 잠시 동안 집무실에 이상한 침묵이 흐른다.
“테스트를 통과한 최초의 각성자라… 대단하네. 대단해! … 역시 지원 길드장이 들어가야 한다는 소리군.”
“네?”
왜 결론이 그렇게 나는데?
왜 나한테 지금 이 상황에 대한 독박을 씌우는 건데?
대빵이면 다야?
내가 안 가겠다면 어쩔 건데?
“아마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동감합니다.”
“지원 길드장이 세계를 이끄는 최고의 각성자가 맞긴 하죠.”
얼씨구?
어이, 태석 형님. 형님까지 왜 그러는 건데요?
새로운 던전이라니까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기갑, 바이오 던전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생소한,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그런 던전이라구요!
거기에 이 아우를 등 떠밀려서 던져 넣고 싶으세요? 네?
다음날.
결국은 일단 광주 근처에서 대기 타기로 했다.
어차피 새롭게 발현된 던전이 마력 활성화가 진행되고 있기에 입장하는 건 불가능.
던전 주변의 마력이 안정화 되고, 등급과 종류가 파악된 후 움직여야 할 것 같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제주와 지원 길드 서울지부에서 던전 클리어 팀 길드원들이 속속 모여들고, 정부와 각성자 협회에서 지원하는 식량과 식수, 포션과 응급물품 등이 대형 트럭에 실려 호텔 뒷 공간에 차곡차곡 쌓인다.
만약 마력 활성화가 끝난 후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던전이라면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던전의 크기, 던전의 유닛을 비롯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팀장급 길드원들도 밑의 얘들을 다그치며, 무기류를 비롯한 모든 물품들을 하나씩 점검했고, 나도 태석 형님을 다그쳐 협회에서 보관 중이던 몇 개의 아이템을 건네받았다.
분명 건네받은 게 맞다.
어허, 맞다니까!
그냥 잠깐 빌린거야! 내가 돈이 없어서 이런 걸 못 사는 게 아니잖아!
아니라니까! 빌린거 맞아.
나중에 다시 돌려줄… 크으음.
여하튼, 약간은 넉넉해진 인벤토리 공간에 잠시 빌린 아이템 몇 개를 쑤셔넣고, 나도 새로운 던전 입장 준비를 했다.
그게 뭐냐고?
에이, 알잖아.
클리어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일단 마트로 가서 장을 보는 거지.
사람이 경제력에 여유가 생기고 모든 일이 잘 풀리면, 문화생활로 눈을 돌리는 법이다.
뮤지컬을 보거나, 골프를 치거나, 낚시를 하거나, 요트, 배, 전용기 등을 구입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고 던전 안에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니, 일단 먹는 식도락에서 문화생활을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길수와 한득을 데리고 근처 대형 마트로 이동한 후 허겁지겁 뛰쳐나온 지점장의 안내 하에 대량의 햇반과 고기류, 생선류, 김치, 고추장, 밀가루 등을 싹쓸이 했다.
음, 일단 한 곳은 털었고… 다른 대형 마트가 어딨더라?
다음날 오후.
하루 종일 방안에서 뒹굴거리며, TV를 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얘들과 저녁식사를 마친 후 한창 싸이에게 귀찮음의 절대신공을 발휘하고 있는데, 누가 내 방문을 발로 차고 들어오며 소리를 지른다.
‘쾅! 쩌적.’
“형님! 마력 활성화 끝나고, 전혀 새로운 던전이 활성화됐답니다!”
“…….”
“혀, 형님! 지금 새로운 형태의 던전이….”
“… 저거 안 보이냐?”
“네?”
“너도 길수 닮아가냐? 왜 방문을 쳐부수고 지랄이야!”
“형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새로운 던전이라고요! 지금까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던전!”
“알고 있어.”
내 간단한 대답에 할 말을 잊어버린, 말문이 막힌 한득.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멍하니 쳐다본다.
왜? 몰랐어?
지금까지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던 이유가 뭔데?
그 새로운 던전의 마력 활성화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거 아냐?
그럼, 그게 끝났으면 그냥 들어가면 될 일이지, 웬 호들갑을 떨고… 아, 내가 레벨업 하면서 울린 알림에 대한 내용을 얘들한테는 말 안해 줬던가?
기억이 잘… 크으음.
다음날 오전.
던전 처리국 국장과 임직원을 비롯해 각성자 협회 간부진들과 직원 수십 명이 호텔에 쳐들어왔다.
직원들과 길드원들은 던전에 들고 갈 식량과 식수를 비롯한 물품 등을 다시 한 번 확인했고, 나와 홍찬이 형, 간부진들은 호텔 내 회의실에서 브리핑을 가졌다.
“던전 규모는 1등급 이상. 종류는 일단 바이오로 보고 있습니다.”
“일단 바이오라는 건 기갑 유닛들도 나올 수 있단 말이죠?”
“마력 패턴으로 보면 그럴 확률이 높죠.”
“던전은 하나인데, 유닛은 서로 다른 종이라….”
“지금까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타입의 던전입니다.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죠. 그리고 이번에 던전 들어가는 길드원들에 대한 보상은 확실한 거죠?”
“물론입니다. 여기.”
내 물음에 처리국 간부 한명이 서류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나와 홍찬 형이 저번 미팅때 던전에 입장하는 길드원들의 혜택에 대해 물은적이 있었다.
새로운 타입의 신규 던전인 만큼, 던전 클리어에 대한 보상을 확실하게 해달라고.
물론 던전 내 클리어 보상 역시 일부는 길드원들에게 돌아갈테지만, 이번만큼은 정부쪽이나 협회 쪽으로부터 뭔가 다른 것을 요구한 거다.
지금까지 던전 클리어를 진행하면서 공헌도에 따른 비율로 던전 클리어 보상, 미네랄을 배분하다 보니 수천억 이상의 보상 금액에도 불구하고, 길드원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극히 일부.
그렇다고 매번 내가 내 돈으로 길드원들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할 이유도, 필요성도 못 느낀다.
물론 지원 길드 소속으로 되어 있기에 각종의 혜택과 일반인이라면 만지지 못할 만큼의 연봉이 지급되고 있기는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끝이 있을까?
가끔씩 길드원들이 농담 삼아 던지던 불평, 불만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는 아니고, 홍찬 형이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따낸 결과물이다. 크큼.
여하튼, 처리국에서 지급하고 정부와 협회가 보증한 각성자 평생 연금 가입서.
지원재단에서 운영하는 것을 참조해서 만든 정부의 졸속 행정의 결과물.
그래도 이게 어디인가?
가입자 나이가 만 60세가 넘어 평생토록 연금으로 받거나, 더 이상 던전에 들어갈 수 없는 장애와 사망 했을 때, 일시금으로 유가족에게 돌아가는 일종의 보험 혜택인데, 그 금액이 시중에 판매되는 보험과는 천양지차다.
뭐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부가혜택이 있긴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형이 챙겼다가 다들 사인하라고 해.”
“그래. 알았어.”
홍찬 형이 테이블에 올려진 수십 장의 연금 가입서 챙기자, 난 자리에 일어나며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오후 4시쯤 입장합니다. 그 전까지 이거 다 처리 될 수 있게 해주세요.”
“… 오, 오늘 말입니까?”
“네. 전산으로 확인하고 입장할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조치하죠. 그러려면 일단 길드원들의 신상정보를 알아야….”
“홍찬 형이 수고 좀 해줘.”
“… 크으음.”
회의실을 나와 호텔 뒤편 공터로 이동하자 팀장급 얘들의 고함소리와 함께 길드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거기! 무기류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다 인벤에 넣으란 말야! 던전 들어가서 흙 퍼먹을래? 잘 챙겨!”
“포션, 응급용품 셔틀팀별로 수량 확인하고 보고해!”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어디 소풍갑니까? 신규 던전, 새로운 타입의 던전이라고요! 정신 안 차립니까!”
그래, 잘한다.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잘 챙겨야 내가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크큼.
그래도 내가… 아니 홍찬 형이 알아서 너희들 연금 혜택 받게 해주잖아. 그러니까 난 좀 놀아도 되지?
거듭 말하지만, 한 조직의 수장이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보기에도 안좋고, 너희들도 피곤할 거야. 그치?
그럼, 잠시만 나 나갔다가 올게.
오다가 보니까 각성자 쇼핑몰이 근처에 있는 것 같더라고.
아이 쇼핑 잠깐 하고 올게. 크큼.
오후 4시 20분 무등산 던전 입구 앞.
홍찬 형이 나누어준 연금 가입서를 본 길드원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다.
물론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면 하찮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지만, 미리 알고 있던 선물하고 깜짝 선물은 그 여파가 다른 법이다.
더군다나 민간 보험회사의 연금도 아니고, 국가에서 보증을 선 연금이다.
각성자들이 원래 워낙 위험한 직군이기에 보험료도 무지막지하고, 그 혜택은 미비한데 길드에서 자체적으로 정부와 협상한 보상이라 길드원들의 감동은 배가 되었다.
듣기 좋은 감사의 인사를 대충 받고, 대형버스로 이동해 무등산 던전 입구에 도착했다.
어제 갑작스럽게 소집된 길드원들과 아트팀원, 팀장급 얘들까지 포함한 지원 길드 80여명과 처리국, 협회 소속 임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던전에 입장하기 전에 한마디 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곳 무등산 1등급 던전은 지금까지 발현되지 않았던 새로운 타입의 신규 던전이다. 물론 더 위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던전 내 규모와 환경, 상태를 포함하여, 던전 유닛 종류까지 아는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우리 지원 길드는 지금까지 던전을 클리어 해왔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무사히 클리어를 진행할 것이라 믿는다. 여러분이 믿고 있고, 내가 믿으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새로운 신규 던전 입장한다. 입장!”
“입장!”
“입장!”
내 말이 끝나자 대형 맨 앞줄 전사들이 먼저 시커먼 구덩이에 몸을 던진다.
전사들 다음으로 마법사와 힐러, 성직자들이 던전에 입장하자, 나도 그 시커먼 구덩이에 몸을 맡겼다.
무등산 신규 던전 클리어 입장 5분 후.
어지러움이 가시자마자 사방을 인지하며, 주변을 살폈다.
혹시나 모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음, 일단 던전 입구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프롤브 1개체 소환!”
[띠링! 프롤브 1개체를 소환합니다.]“수정체 생성, 게이트웨이 생성, 발업 코어, 드라칸 코어 생성!”
언제나 똑같은 패턴이 되어 버린 프롤브 소환 이후 테크트리다.
“랜드 코어 생성, 셔틀 생산! 랜드 코어 생성, 셔틀 생산! ….”
랜드 코어에서 셔틀을 생산하고, 생산된 셔틀 10개에 길드원들을 나누어 탑승시켰다.
“셔틀 이륙, 서쪽으로 먼저 이동한다. 셔틀 출발!”
무등산 신규 던전 클리어 입장 2시간 30분 후.
“아무것도 없네요.”
“던전이 바이오면, 중간에 저굴링이나 히드라, 와이번이라도 나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왜 나오면 좋겠냐?”
“아무것도 없으니까 왠지 이상해서요.”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얼마나 이동했다고.”
“그쵸. 좀 더 움직이다 보면 뭐라도 나오긴 하겠죠.”
한득과 그렇게 의미 없는 대화를 하며, 난 셔틀을 계속해서 움직였다.
던전이 바이오가 맞는 건가?
그렇다면 멀티는 없고, 본진만 있는 던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본진 성체 타워에 다 모여 있는 그런 상황?
그럼, 굳이 이렇게 움직일 이유가 없지.
“사라.”
…….
“스킬 사라!”
…….
“스킬! 사라 마틸다!”
…….
“형님 뭐 하세요?”
‘퍼어억!’
“아악! 아아악! 혀, 형님!”
한득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쳐주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내 부름에 한 번도 응답하지 않은 적이 없던 스킬 사라가 아무런 반응이 없다.
파업인가?
어디 놀러 갔어?
그럴 리가 없는데? 뭔가 이상하다.
난 혹시나 싶어 한 번 더 사라를 불렀다.
“스킬, 사라 마틸다!”
…….
역시나. 아무런 반응이 없다.
사라가 나에게 종속된 존재이니 이렇게 나타나지 않을리는 없을 테고, 그럼 이곳은 스킬 자체가 적용되지 않는 던전… 어? 어어?
“천지 스톰!”
…….
“씨팔! 인텐시브 스톰!”
…….
뭐, 뭐야?
진짜 스킬이 적용되지 않는 던전이란 말야?
조, 좆됐다!
“젠장! 길드원 전원 스킬 확인한다!”
“예? 스킬 확인요?”
“빨리 확인해봐! 스킬이 안 먹혀!”
“넵. 허공 삼단 베기!”
“불꽃의 중첩 쌓기!”
“얼음의 평원!”
“찌른데 또 찌르기!”
주변에서 길드원들이 저마다 자신의 스킬을 난사해 보지만, 역시나 무용지물.
“… 지, 진짜로 스킬이 통하지 않습니다.”
“마력은 빠져 나갔어요. 마력만 빠지고 스킬 활성화가 안돼요!”
“뭐, 뭐야! 이런 던전도 있었어?”
“길드장님! 스킬이 먹히지 않는 게 아니고, 우리가 무슨 저주마법에 걸린 거 아닙니까?”
“병신아! 던전 들어와서 본 게 없는데 어느 세월에 저주 마법에 걸려!”
“새꺄, 그건 모르는 일이지. 보이지도 않는 유닛한테 당했을 수도 있잖아!”
“… 그, 그거야….”
요란스런 길드원들의 반응에 안 그래도 모락모락 김이 나는 대가리에 더 많은 수증기가 몰리는 느낌이다.
“셔틀 착륙!”
지금 이 상황에서 움직이는 건 도저히 무리다.
일단 조금이라도 상황을 파악하거나, 뭔가 정리를 하고 움직여야 할 것 같다.
내 대가리론 한계다.
무등산 신규 던전 클리어 입장 3시간 40분 후.
“후… 아까 말한 저주 마법이나 현혹, 환상계열 마법에 걸린 것은 아닙니다.”
한득이가 힘든 기색으로 보고를 한다.
성직자 길드원들과 함께 80여명의 각성자들의 마력 패턴을 조사했는데, 혹시나 길드원들 전체가 저주 마법이나 기타 다른 마법에 당했다면, 스킬 활성화 안되는 게 아닌 뭔가 다른 마력 패턴이 감지되었을 거다.
“그럼, 마지막으로 던전 자체가 이렇다는 건가?”
“그것밖에는 말이 안됩니다.”
“… 각성자 스킬 사용을 강제하는 던전이라. 스킬도 스킬 나름이지만, 길드원들이 자신의 상태를 확인… 자, 잠시! 상태창!”
…….
“씨팔! 상태창!”
…….
“오빠! 상태장도 안 열려? 나도. 상태창!”
“상태창!”
“젠장, 상태창!”
내 외침에 옆에 있던 팀장급 얘들이 상태창을 외치기 시작했고, 주변의 길드원들도 따라 외친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런 반응이 없다.
“하, 미추어버리겠구만. 스킬 사용 못하고, 상태창도 확인할 수 없다니.”
“… 형님 일단 움직이시죠. 어차피 답이 없질 않습니까? 최대한 빨리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가면, 원 상태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이곳 던전이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 니 말이 맞다. 움직이자. 이 빌어먹을 던전 최대한 빨리 클리어하고 나가자. 뭔가 존나 찜찜하다.”
“넵.”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한득의 의견이 맞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빨리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가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무등산 신규 던전 클리어 입장 6시간 20분 후.
진짜 아무것도 없다.
던전의 종류가 바이오인지, 기갑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스킬 사라가 현신하지 못하니 던전 내 본진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에 바이오라면 내가 가진 절대명령 스킬을 사용해… 어? 어어?
절대명령도 스킬이니까 사용하지 못하는 거잖아!
그럼, 나중에 본진 성체 타워 찾게 되면… 존나 뺑이 쳐야 하는 거야?
씨팔! 좆됐다!
무등산 신규 던전 클리어 입장 9시간 50분 후.
“형님. 오늘은 이 근처에서 쉬었다가 움직이시죠? 아무래도 멀티나 본진 찾는데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길드장님. 던전 규모가 기존의 1등급보다 곱절 이상 큰 것 같습니다.”
“그래, 오빠. 오빠도 마력 꽤나 소모 했을 거 아냐? 수치는 확인 못하겠지만, 얼굴이 반쪽이 됐어.”
그래. 그렇겠지.
아니, 그럴 수밖에 없지.
신규 던전, 새로운 던전 클리어 한답시고 무턱대고 들어와서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돌아다니기만 했으니.
그것도 기존에 사용했던, 유용한, 지금까지 전혀 불필요함을 느끼지 못한, 사라가 없으니 더욱더 짜증이 난다.
예전에는 1등급 던전이라면 이틀 동안 멀티를 찾아다닌다고 호들갑 떨었겠지만, 스킬 사라가 생긴 이후로는 그냥 멀티와 본진의 위치를 물어보면 됐다.
특히나 바이오 던전 같은 경우에는 던전에 입장해서 성체 타워까지 일직선으로 이동해, 날 기다리는 여성형 유닛과 농담 따먹기 하면 끝이었는데….
지금은?
사라 스킬은 고사하고, 내 상태창도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
셔틀을 이동시키는 거야 마력 소모가 그리 크지 않으니 상관없지만, 도대체 이 넓은 던전 안에 도대체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바이오 던전이라면 중간중간에 최소한 저굴링이나 히드라, 와이번 아니면 하늘군주라도 떠 다녀야 하는 거 아냐?
여기가 바이오 던전은 맞긴 한 거야?
됐다. 일단 신경끄자.
안 그래도 대가리에서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데, 머리 다 익을라.
조바심을 갖지 말자.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크큼.
무등산 신규 던전 클리어 입장 18시간 20분 후.
팀장급 얘들 의견을 따라 내천 근처에 자릴 잡고 숙영지를 만들어 식사를 한 뒤 휴식을 취했다.
뭐 던전 들어와서 한 일이라곤 셔틀을 생산해 돌아다닌 것 밖에 없지만, 스킬 사용 불가와 상태창 확인 자체가 안되는 괴상한 상황이라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동하자는 얘들의 말을 따른 것이다. 나 역시 그 의견에 동감했고.
물을 길어와 대충 씻고, 불을 피워 대충 먹고, 대형 천막을 설치한 후 대충 잠을 잤다.
왠지 찜찜한, 상당히 기분이 싱숭생숭한, 한 여름날에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지만 땀 냄새가 나는 그런 느낌이 계속 든다.
나이 탓이겠지?
그럴 거야. 아직까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잖아.
무등산 신규 던전 클리어 입장 1일 5시간 40분 후.
도대체 이놈의 던전은 크기가 얼마나 되는 거야?
아무리 1등급 던전보다 크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면 대충 반 이상은 돌지 않았나?
그동안 멀티는 고사하고, 던전 유닛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던전 규모가 6등급 이상이니 멀티와 본진이 구분되어 있을 거고, 본진 넥서스나 성체 타워를 파괴해야 클리어할 텐데….
씨팔! 언제까지 돌아 다녀야 해!
무등산 신규 던전 클리어 입장 2일 16시간 30분 후.
음, 내가 놓쳤나?
내 눈이 병신인가?
아니면 길드원들이 전부다 눈 병신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던전 내 아무것도 없을 리가 없잖아!
던전 유닛은 고사하고,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가 않는다.
혹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환상 마법에 걸린 건가?
“마법진도 아닙니다.”
“환상 마법이나 미로진, 환각이나 착시 현상도 아닙니다. 분명 이동하는 곳에 표시한 패턴을 보면 함정에 빠진 것도 아니구요. 즉, 아직까지는 정상적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내가 착각한 거다?”
“겨우 2일차지 않습니까? 기존에도 3일까지 멀티를 찾지 못한 경우도 있으니….”
“그래. 나도 알고 있지. 그런데 그게 말이야… 하, 아니다. 이동하자.”
그래. 그때는 걸어서 움직이거나, 다른 이유 때문에 하루 종일 돌아다니진 않았잖아.
셔틀 타고 24시간, 아니 밥 먹고, 똥 싸고, 잠자는 시간 빼고 이렇게 움직이진 않았잖아!
계산해 볼래?
셔틀 이동속도를 최소 시속 40km로 잡고 하루에 10시간씩 이틀 동안 움직이면 도대체가 거리가 얼마인지를?
중간에 우리가 던전 유닛과 전투를 했니? 아니면 세 시간 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기름을 넣었니?
그냥 존나 돌아다녔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뜨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이상하지 않아?
난 존나 이상한데… 크으으음.
무등산 신규 던전 클리어 입장 3일 13시간 50분 후.
“오빠! 아무래도 이상해. 멀티는 고사하고 본진이나 던전 유닛 자체가 하나도 없을 수가 있는 거야?”
“맞습니다. 멀티는 그렇다고 치고, 지금쯤이면 본진을 발견하고도 남을 시간인데요. 뭔가 이상합니다.”
빨리도 깨닫는다.
이제야 그걸 느끼다니… 참 대단들 하십니다.
“혹시 중간에 우리가 놓치거나, 히든, 숨겨진 본진이 있는 게 아닐까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야! 그럼 던전 내 유닛이 왜 한 개체도 없는 건데? 형님, 이거 그냥 빈 던전 아닙니까? 텅 빈 던전, 뭐 그런 거요.”
“얌마, 그럼 우린 어떻게 나가고?”
“… 응? 그게 그렇게 되나?”
“맞잖아! 던전을 클리어해야 나갈 수 있는데, 아무것도 없으면 못 나가는 거 아냐?”
“아니. 그냥 던전 입구로 이동해서 밖으로 나가면 되지 않을까? 아무것도 없는데 뭔 클리어야?”
“그러게. 그게 될까?”
“형님?”
“길드장님?”
“오빠?”
“…….”
그래. 이제야 이상한 걸 깨달았다면 내 기립박수를 쳐주지.
그리고 너희들 생각한대로, 지금 이대로 던전을 나갈 수 있다면, 내 개인당 1조 원씩 상여금을 지급해 주마. 만약 나갈 수만 있다면.
왜냐고?
왜 내가 갑자기 그런 큰 금액을 얘들한테 푸냐고?
지금까지 찜찜함의 연속이라면, 어제부터는 이상한 불안감과 알 수 없는 초조함까지 느끼기 시작했거든.
뭔가 존나 불안하고 초조하며,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했어. 씨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