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16_3
그건 또 어떻게 알았냐고?
크음.
그러니까….
“프롤브 1개체 소환.”
이 말을 수백 번 반복하다보면 알 수 있게 돼.
해볼래?
존나 컴컴한, 한정된 공간에서 같은 말만 수백 번 외쳐대는 게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지?
그나마 어둠의 암살자와 어둠의 전사들이 일부 남아 있어서, 이 짓도 할 수 있는 거다.
뭐, 소환 유닛이 깔려죽는 일이야 없겠지… 음, 깔리고도 살아 있을 수… 아, 아니, 얘네들은 살아 있는 게 맞긴 한 건가?
일단 잡생각은 그만.
여하튼, 그렇게 공기가 통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 다음은… 뭐 뻔한 거 아냐?
‘카앙!’
‘사각… 사가각!’
뭔 소리냐고?
묻지 마라.
그냥 그러려니 생각해라.
‘스걱… 후두둑.’
‘카앙! 사가각!’
그냥 그러려니 생각하라니까!
몇 번이나 막심한 후회 끝에 윗옷을 벗어 땀에 절은 런닝을 찢은 후 인벤토리에 있던 물을 꺼내 대충 씻고, 충분히 적신 후 얼굴을 가렸다.
아니, 얼굴을 가린게 아니고 입과 코를 가렸다고 해야 하나?
이유는 엄청난 흙먼지 때문이다.
왜 그렇게 흙먼지가 많이 나냐고?
잠시만, 아주 잠시만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을 왜 자꾸 귀찮게 물어보는 건데?
그래.
땅 파고 있다.
밑으로 파는 게 아니고, 위로 파는 것도 아니고, 내가 파는 것도 아니고, 파는 게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둠의 암살자와 어둠의 전사들이 쉬지 않고 뒤쪽의 바위덩어리를 부숴대고 있다.
이 흙먼지는 그래서 나는 거고.
오케이?
더 이상 묻지 마라. 숨쉬기 힘드니까.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주변은 깜깜하니까.
중간에 잠깐 눈을 붙이고, 대충 밥도 처묵처묵하고, 작은 볼일도 봤는데… 문제는 큰 거다.
분명 먹었으니, 분명 싸야 하는데… 이 좁은 공간에서… 그러니까… 음… 됐다.
일단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아보다가, 정 안되면 구덩이 파서 일을 본 후 메워야지 뭐.
근데… 화장지가 없는데… 크으음.
배가 고플 때마다 햇반을 꺼내 스팸 통조림과 배추김치, 고추장에 밥을 비벼 처묵처묵 했는데, 문제는 불을 피울 수 없다는 거고,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냄새다.
흙먼지야 물이 충분하니 대충 면으로 된 런닝이 필터 역할을 하지만, 볼일을 보고 난 뒤 땅을 파 묻어놓은 그것의 냄새가 묘하게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더군다나 배고플 때마다 먹는, 같은 음식, 같은 맛에 약간은 질려가기도 하고.
아니다. 일단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인벤토리에 먹을 게 아예 없어서 굶어 죽기직전에, 저 묻어 있는 그것들을… 아, 아니다. 괜한 상상이다.
그래도 던전에 입장하기 전에 대형마트에서 장보기를 한 게 신의 한 수다. 크으음.
…….
‘카앙!’
‘퍼억… 퍼어억!’
‘카앙! 사가각!’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소환한 어둠의 암살자와 어둠의 전사들의 대검에 이가 빠지기 시작한다.
아직까지는 꽤 쓸만하지만, 지금처럼 카앙이란 소리는 차돌 같은 단단한 바위나 암석 등에 검이 부딪히는 소리고, 처음에는 들리지 않던 퍼억 이란 소리는 대검이 바위 덩어리에 박히는 소리다.
원래라면 스거걱이나 사각, 사가각 이란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쩝… 점점 더 땅 파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괜찮다. 아직까지는.
…….
‘카앙!’
‘퍼억… 퍼어억!’
‘카앙!’
‘퍼어억! 퍼억.’
씨밤바 새끼들이 단체로 약을 먹었나.
왜 자꾸 바위덩어리에 검을 내려치고… 응?
평상시 3개체의 유닛들이 가로로 서서 땅을 파거나, 긁어내면, 나머지 7~8개체들이 뒤에서 파낸 흙을 옆으로 운반하거나, 단단하게 쌓아 길을 만들어 내는 형식인데, 오늘따라 왠지 바위에 부딪혀 불똥을 튕기는 경우가 잦다.
지금도 땅을 파내는 어둠의 암살자 셋이 휘두른 검에 전부다 불똥이 튄다.
이러니까 검이 상하고, 검이 상하니까 땅 파는 게 더 느려지는 거잖아!
음, 근데 저렇게 셋이 전부다 불똥을 튀는 경우는….
“잠시 대기! 다들 뒤로 빠져봐.”
내 명령에 땅 파던 두더지들이 뒤로 빠지자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가며, 연신 프롤브를 소환시켰다.
음….
으으음….
그러니까… 이게… 씨발!
존나 거대한 바위덩어리다.
여기다 대고 무식하게 칼질을 하니까, 이가 나가는 거지.
내가 언제 고속도로처럼 일자로 길을 내라고 했냐?
그냥 공기가 통하는 거 막지 말고, 무너지지 않게, 상황을 봐 가면서 조심스럽게 파라고 했잖아!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한다?
옆으로 돌아서 길을 터야하나?
아니면, 그냥 부숴?
그러다가 저번처럼 공간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을 텐데… 그렇다고 옆으로 다시 길을 내는 건 시간이 존나 오래 걸릴 테고… 음, 자꾸 이런 식이면 여기서 언제 빠져나갈지 모르는데… 크음. 일단 이 좆같은 바위덩어리가 얼마나 큰지 살펴보자.
프롤브를 100여 개체쯤 소환했을까?
사방을 둘러 파낸 부분을 살펴보니 오른쪽으로는 더 이상 덩어리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둠의 암살자 대검을 빌려 끝부분이 바위덩어리에 닿지 않게 꿈틀꿈틀, 요리조리, 찔렀다가 빼기를 수십 번 하다 보니… 역시나, 이쪽으로 길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봤지? 이렇게 하는 거라고. 무턱대고 휘두르지 말고, 이렇게, 이렇게 해서, 이걸 쑥 빼면 이렇게 존나 많이 파지니까 쉽게….”
응?
어어어?
뭐, 뭐냐?
한 뭉텅이의 흙더미가 우르르 쏟아지더니, 프롤브를 소환하지 않았는데도 빛, 빛이 세어 나온다. 그러니까 이렇게 빛이 세어 나온다는 말은….
“추, 출구닷! 출구라고! 마, 만세! 씨팔, 이 좃같은 걸 드디어 다 팠다! 다 팠다고!”
난 그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다가, 뒤로 물러나 소환 유닛에게 고함을 질렀다.
“저기, 저기를 중심으로 주변을 판다! 전부 다 달라붙어!”
10여 개체 유닛들이 서로 비비적거리며 앞으로 달려가 대검을 무턱대고 휘두른다.
젠장, 멍청한 명령을 내렸다.
전부 다 달라붙을게 아니고, 지금처럼 그냥 3개체씩 움직여야 효율적으로… 오, 그래도 괜찮은데?
비비적거리던 유닛들이 서로 뒤엉켜 마구잡이로 찌른 벽을 중심으로 흙더미가 우르르 흘러내리며, 빛이 점점 더 선명하게 세어 나오더니, 점차 그 크기가 커진다.
“좋아! 그 정도면 됐어! 다들 뒤로 나와서 대기하고 있다가… 아! 아니다. 음, 거기 너. 너부터 이쪽으로 나가서 대기해. 혹시 던전 유닛이 공격하면, 일단은 상대하지 말고 도망 다녀.”
일단 나부터 빠져나가려고 하다가, 혹시 몰라 소환 유닛 먼저 내보내려고 맘을 먹었다.
만약 던전 클리어가 되지 않았다면, 이 출구가 그 거대한 공동이라면, 남아 있는 인간형 던전 유닛이 있다면, 최대한 시간을 벌어줄 땜빵용 미끼인 셈이다.
굳이 내가 먼저 나가서 대가리 깨질 필요는 없잖아.
내 명령을 들은 놈이 자세를 낮추고 바닥을 기며, 빛이 세어 나오는 구멍에 대가리를 집어넣는다.
음, 괜찮은 것 같은데?
밖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렇다면….
난 바닥에 가슴을 붙이고 양손으로 흙을 헤집으며, 유닛이 빠져나간 구멍에 몸을 집어넣었다.
몇 번이나 꿈틀거렸을까?
눈이 존나 부신다.
지금까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를 그 컴컴한 어둠 속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응? 뭔 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바닥을 박박 기며 그곳에서 빠져 나온 후 눈을 뜨기 힘들어, 조심스럽게 자세를 잡고 이 충만한 빛의 느낌을 되새기고 있는데, 어디선가 무슨 말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데아 여신의 어쩌고저쩌고… 어… 어라?
‘콰앙… 콰아앙!’
뭐, 뭔데?
앞이 안 보이니, 지금 도대체가 무슨 상황인지… 어, 어라?
“저기도 한 놈 있어요! 이데아 여신의 눈물! 얼음의 벽!”
“집중 공격한다! 서포터 힐 주고, 마법사 일점사!”
“저쪽부터 처리해야 합니다. 도망치고 있어요!”
“아냐! 이쪽부터!”
에… 그러니까… 이 목소리들은….
“… 야이~ 개씨브럴쌍놈의 개새끼들아아아~.”
내 커다란 외침에 갑자기 묘한 정적이 흐르더니,
“주우우… 구우우운!”
싸이의 커다란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후.
“대가리 똑바로 박지?”
“끄으응. 넵.”
“오, 오빠! 난 아니라니까! 난 마법 공격 안했어!”
“닥치고 대가리 똑바로 박아!”
“혀, 형님. 전 그냥 힐도 안 줬는데요? 왜 저까지….”
“기각! 길드원들이 잘못하면 팀장이 벌 받는 거야! 입 더 놀리면, 10분 연장한다!”
“… 네에엡.”
한득과 길수, 지혜와 미혜, 김은희와 최은지까지.
팀장급 얘들이 내 앞에서 대가리를 땅에 박고, 양손은 뒷짐을 지고 있다.
일명 원산폭격.
감히 하늘같은, 신과 동일한, 너희들의 생명줄인, 이 몸을 인간형 던전 유닛으로 착각해?
아무리 내 겉모습이 흙투성이에, 시커멓고, 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좆같다고 해도, 너희들이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
내가 왜 그 구덩이 속에서 프롤브 소환을 주구장창 외치면서도, 런닝을 찢어가며 코와 입을 틀어막고, 맨날 같은 것만 처묵처묵 해가며, 그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서 하루하루 불안하게 땅속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박박 기며 살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감히… 아니, 그렇게 살아 돌아온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아니, 길드원들이 전부 다 못 알아본다면 말도 안 해.
싸이는 알아봤잖아! 싸이는!
“싸이.”
“넵. 주군.”
내 말에 기합이 잔뜩 들어간 싸이가 쪼르르 앞으로 다가와 차렷 자세를 취한다.
“편하게 해. 일단 그동안 벌어진 상황, 읊어봐.”
“넵. 주군. 제가 기억하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할까요?”
“처음? 처음이면 언제부터?”
“이 곳에 들어오기 전에, 저희들끼리 돌산 9시 방향으로….”
“그래. 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넵. 그러니까… 주군께서 아트팀이 먼저 돌산 9시 방향으로 우회해 바이오 유닛들을 소환해서 시간을 벌라고 말씀하신….”
그래. 처음부터 하든지 아니면 했던 말 또 하든지, 횡설수설하든지, 침묵의 시간을 가지든지 상관없다.
니 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팀장급 얘들의 원산폭격 시간도 같이 길어질 테니까.
“… 그 이후에는 발업 저굴링들을 전부 다 돌기둥 오른쪽 하단부분으로 공격하게 만들었습니다. 주군만이 세울 수 있는 탁월한 전략이었지요. 그리고 주군의 훌륭한 전략에 힘입어 돌기둥에 금이 가고, 맨 꼭대기에서부터 시작된 균열이 점차 아랫부분까지 이어서 내려오기 시작하자….”
“끄으응….”
“아아악, 싸이 씨 그냥 패스! 패스하라고요. 그런 거는 오빠도 다 알고 있는 거잖아요!”
“어디서 자꾸 지역방송이 나오는 거지? 시간 연장할까?”
“끄음.”
“오, 오빠!”
“음… 그래. 거기까지는 나도 알고 있는 얘기고. 그 다음은?”
“넵. 주군. 그렇게 위험한 상황에서도 덕(德)이 많고, 인재를 아끼시는 주군께서는 우리들을 위해 동굴 쪽으로 몸을 피하라 명(命)하시고, 자신은 그 자리를 지키시며 상황을 살피시고, 주변을 돌아보시며, 혹시나 모를 만약에 사태에 대비해 준비를 하고 계셨던 겁니다. 저처럼 비루(鄙陋)하고, 능력 없는 길드원들을 위해서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희생을 행(行)하시는 주군의 그 높고, 깊은 뜻을 어찌 감히 헤아릴 수가 있겠사옵니까만은….”
“…….”
“… 성체 타워인 돌기둥이 무너지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상황에서 동굴마저 무너질 때, 전 느꼈습니다. 주군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은 그에 합당한 사유(事由)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었고, 그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길드원들이 쓰러져 있던 그 동굴이 무너질 때, 끝까지 주군의 자리를 지킨 보은(報恩)이 행해졌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인고(忍苦)한 결과가 도래(到來)한 것이죠. 그것은 바로 던전 클리어 알림이었습니다. 그 알림이 울리는 순간….”
“… 뭐? 잠시! 아까 뭐라고? 클리어 알림?”
“네? 네. 주군. 위대하신 주군의 행동에 하늘도 감동하신 것이죠. 태초의 던전, 그 새로운….”
“결론만!”
“네. 던전 클리어 알림이 울리면서, 저희가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사유는 모르겠사옵니다만은 동굴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저희가 이렇게 무사히 목숨을 연명(延命)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주군의 크나큰 은혜와 복이며, 이에 지원 길드원들 모두가 주군의….”
싸이의 설명이 귀에서 멀어진다.
싸이가 말하는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
던전 클리어 알림이 울렸다고?
던전이 클리어 됐다고?
그럼 던전이 클리어 됐고, 모든 상황이 끝났는데, 왜 이 좆같이 거대한 성체 타워는 리젠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며, 내가 지금까지 왜 그 컴컴한 동굴에서 죽자 살자 땅을 박박 기며 꿈틀거렸는데?
아니! 그건 그렇다고 치고, 왜 너희들은 클리어 알림이 울림과 동시에 이곳으로 소환되고, 왜 난 그 좆같은 동굴 속에서 똥냄새 맡아가며, 흙먼지 먹어가며, 한 치 앞도 모를 암담한 상황에서… 크윽, 크으윽!
“씨이이파아알! 왜, 왜 나만 이따위냐고오오!”
내 커다란 외침에 싸이가 깜짝 놀라 갑자기 딸꾹질을 시작한다.
마치 자신의 설명이 너무 길어져 주군이 화가 난게 아닐까 하는 망상에 사로 잡혀서.
“씨팔! 좆같은 세상! 던전 클리어 됐으면 똑같이 적용 받아야지. 누군 땅속에서 박박 기어 다니고, 누군 편안하게 이동돼서 탱자탱자 놀고 있고. 각성자 시스템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던전 시스템은 왜 또 이 지랄인데? 하… 진짜 더럽다, 더러워.”
“…….”
내 궁시렁거리는 말에 싸이가 옆에서 안절부절한다. 마치 이 미친놈이 언제 또다시 폭발할 것인가? 라는 눈빛으로… 아, 아닌가? 아님 말고.
“에효~. 됐다. 내 인생이 원래 이렇지 뭐. 다들 기상!”
원산폭격하던 팀장급 얘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몇 번 꿈틀대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매만진다.
“그래, 던전 클리어는 됐고 이슈사항은?”
“…….”
“…….”
“어쭈? 아무도 대답 안하네? 한 시간 정도 더 할까? 아직까지 정신 못 차리….”
“혀, 형님.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길드원들은 던전 클리어 되면서 자잘한 부상은 다 치료 됐습니다만, 몇몇은 나가서 후송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건 아직 살펴보지 못했고, 던전 클리어 보상 미네랄이 아무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엥?”
그건 또 뭔 소리냐?
미네랄이 없어?
그러니까 던전을 클리어했는데, 보상이 없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개떡같은 소린데?
“뭔 소리야? 왜 미네랄이 없어? 그리고 포션은? 상급이라도 괜찮으니까 얘들한테 나누어줘서… 아… 젠장!”
맞다.
하급과 중급 포션은 있는 대로 중간에 다 처묵처묵 했고, 상급 포션까지 탈탈 털어서 맨 마지막 공격에… 크음.
“얼마나 다쳤는데? 심각해? 누구야?”
“2팀 전사 재덕이하고, 3팀 마법사 호환이, 덕숩니다. 다들 외부 상처는 클리어 되면서 괜찮은데, 재덕이는 왼팔, 호환이는 오른쪽 다리, 덕수는 갈비뼈 2대가 나갔습니다. 클리어 되기 전에 떨어진 바위에 깔렸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여기서 나가면 한두 달은 움직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에휴… 얘들 어딨어? 좀 보자.”
“네. 저쪽 뒤편에서 쉬고 있습니다.”
한득이가 날 길드원들이 쉬고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머뭇거리던 팀장급 얘들과 함께 걸어가기 시작하자, 부글부글 끊던 내 울화가 어느 정도 가라앉는 느낌이다.
일단 내가 무너진 동굴에 갇혀 박박 기어 다녔던 것은 얘네들의 잘못이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치고, 전투상황에서 아니 클리어 진행하면서 부상당한 얘들의 안위부터 살펴봐야겠다.
그래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다가 다친 건데, 내가 존나 기분 나쁘다고, 내가 존나 성질 더럽다고, 내가 존나 억울하다고 해서 얘들의 상태를 무시해 버리면, 내가 길드장을 할 이유도, 길드원들이 날 따를 이유도, 팀을 이뤄 이곳 던전을 클리어할 목적도 사라져 버린다.
던전 클리어 보상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사람 목숨인거다.
사람 있고 돈 있는 거지, 돈 있고 사람 있는 게 아니다. 물론 가끔씩은 그게 아닐 때도… 크으음.
팀장급 얘들과 함께 무너진 돌기둥 뒤쪽으로 잠시 움직이자, 몇몇 길드원들이 날 알아보곤 소리를 지른다.
“기, 길드장님!”
“길드장님! 정말 무사하셨군요!”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길드장님이 돌아 오셨다! 길드장님이 돌아 오셨다고!”
역시 처음부터 이런 분위기가 됐어야 한다.
역시 처음부터 이렇게 길드원들이 날 반겨줬어야 했다.
무턱대고 마법 공격을 하는 게 아니라, 날 알아보고 격하게 반겨줘야… 크큼.
일단 얘들부터 살펴봐야겠다.
잠시 후.
부상자들을 살펴보고 격려의, 안심이 되는, 이제 곧 이곳을 나간다는 희망의 말들을 전해주고, 팀장급 얘들과 자리를 마련했다.
일단 던전 클리어가 됐으니 밖으로 나갈 생각이긴 한데, 그 전에….
“… 클리어 알림 이후 이곳으로 이동되었고,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펴보다가 이걸 발견했어요.”
김은희가 바닥에 내려놓는 것은 어둠의 정화 아이템 10여개.
아마도 수백의 인간형 던전 유닛들이 클리어와 함께 산화되면서 남긴 것일꺼다.
“그럼, 보상은 이것뿐? 이곳에서 나가보기는 했고?”
“형님이 안 계신데 저희끼리 갈 수 있나요. 형님 기다렸죠.”
“맞습니다. 형님이 소환한 줄럿들이 주변에 남아 있길래 무사한 줄 알았습니다. 다른 곳을 살펴보는 줄 알았죠. 동굴에 갇혀 계신지는 저, 정말로 몰랐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기어 나오자마자 마법 공격을 날려댄 거야? 뒤지나 안뒤지나 확인하려고? 앙?”
“오빠! 말은 똑바로 해야지. 공격하진 않았잖아! 어디 다친 곳도 없으면서.”
“어쭈? 다치지 않았으니 됐다? 공격의사는 있었지만 뒤지지 않았으니, 만사 오케이?”
“왜 또! 그건 오빠가 하도 던전 유닛하고 똑같이 생겼으니까….”
“오~ 내가 던전 유닛하고 똑같이 생겼다? 그니까 마법 공격을 날려서, 날 처리하려고 했고?”
“아~ 진짜! 진짜 밴뎅이 아저씨! 오해 할 수도 있는 거지! 남자가 쪼잔하게 그것 가지고 언제까지 삐칠 건데!”
“어허… 오해 두 번 잘못 했다가는 같은 편끼리 마법공격에 불에 타 죽거나, 꽁꽁 얼어 죽겠구만. 세 번 잘못하면….”
“아악! 아아악!”
지혜가 미친 듯이 히스테리를 부린다.
크음. 오버했나?
그래도 아닌 건 아니잖아.
말 그대로 그 수십의 파이어 마법과 아이스 마법이 실제로 나에게 들이닥쳤다면, 난 꽥 한마디도 못하고 불타 죽거나, 얼어 죽었겠지.
음, 그러고 보니 내가 마법 공격에는 존나 취약한데?
수백, 수천의 유닛들을 소환하고, 생산할 수 있음 뭐하나?
주체가 병신인데.
주변에서 달려드는 던전 유닛들과 드잡이 할 생각만 했지, 마법공격에 대한 반응을… 아, 던전 유닛들은 마법공격을 못하지!
어차피 마법 공격을 못하니 굳이 내가 이런 걸 고민할 이유가 없을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또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되면… 크으음. 이거 나중에 따로 생각해봐야겠다.
그건 그렇고,
“일단 던전 클리어했으니 보상 챙기고 이곳에서 나가도록 한다. 한득.”
“네. 형님.”
“클리어 보상 미네랄이 없다고?”
“네. 공동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찾아본 동굴에서는 미네랄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가스도 마찬가지구요. 돌기둥이 성체 타워가 맞을 텐데 뭔가 좀 이상합니다.”
“형님, 제 생각입니다만 안쪽에 있는 게 아니라 돌산 바깥쪽에 있는 게 아닐까요? 근처는 한득이 말대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한득의 말에 길수가 자신의 의견을 대신한다.
음…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가 있는 이곳은 거대한 돌산. 그 안에 있던 수많은 동굴들과 커다란 공동에 있던 돌기둥이 던전의 성체 타워였다면, 아마도….
“오늘까지 살펴보도록 하지. 그리고 아무것도 없으면 내일은 밖으로 나간다. 얘들한테 전파하고, 각자 휴식을 취한다. 이상.”
“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형님.”
대략적으로 앞으로의 일들을 정리하자 얘들이 주변으로 흝어진다.
그런데 묘하게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드는 건 왜지?
내가 뭘 놓치고 있었나?
다음날.
던전 내에서 날이 밝자마자 길드원들이 두세 명씩 흩어져 거대한 공동을 싹싹 훑었다.
조금이라도 이상하거나, 뭔가 특이한 걸 발견하게 되면 무조건 보고하라고 지시는 내려놨지만, 여태 날 찾는 이가 아무도 없다.
난 내 뒤를 졸졸 쫓아오는 싸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던전 클리어 된지 6일이나 지났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 말인 즉, 내가 동굴에 갇혀 있는 시간이 6일이란 소린데, 난 최소 이주일은 넘은 줄 알았거든.
컴컴하고 좁은 공간에서 소환한 어둠의 암살자들과 어둠의 전사들과 하루 종일 붙어 있거나, 프롤브만 1개체씩 소환해서 그 짧은 찰나의 시간에… 어… 그러니까… 잠시만.
프롤브와 던전 클리어 보상… 미네랄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프롤브 소환… 그러니까… 그게….
“맞아! 프롤브!”
역쉬 난 천재가 맞아!
이렇게 길드원들이 전부다 흩어져서 육안으로 미네랄을 찾을 이유가 없다.
던전 내 성체 타워나 넥서스는 마력을 분출하기에 싸이의 인챈트 특성으로 아이템을 제작해 찾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미네랄은 그 주변에 널려 있던 것이기에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못했다.
눈에 뻔히 보이는 걸 왜 찾아?
하지만, 지금처럼 던전이 클리어 됐음에도 불구하고, 보상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프롤브나 드론이 짱이다.
왜냐고?
원래 프롤브와 드론이 미네랄을 캐잖아!
재작년에 내가 처음으로 각성했던 용담 10등급 던전에서 우연히 발견한 프롤브 미네랄 물어오기 신공. 그렇다면,
“프롤브 100개체 소환!”
[띠링! 프롤브 100개체를 소환합니다.]내가 동굴 쪽으로 이동하는 중간에 갑자기 멈춰 서서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프롤브를 소환하자 싸이가 옆에서 궁금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이 새끼 또 이상한 짓거리 하는구나 라는 표정으로.
그러든가 말든가, 하얀 빛과 함께 나타난 100개체의 프롤브가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정신을 사납게 만든다.
“전부 다 미네랄 캐!”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100개체의 프롤브들이 한바탕 어우러지더니 한쪽으로 줄을 지어 이동하기 시작한다.
“오오~. 대, 대단하십니다. 주군!”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싸이가 어느새 다가와, 프롤브 꽁무니를 쫒으며 감탄어린 시선을 보낸다.
내가 쫌 하지?
이게 인식의 변화라는 거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어려운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고난이도의… 어? 어라?
야? 어디로 가는 거야?
거긴 돌무더기 밖에 없잖아!
소환한 프롤브 100개체가 쫄래쫄래 기어서 움직이는 곳은 거대한 돌기둥이 무너져 쌓인 조그만 돌산이다.
분명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제 와서 그쪽으로 가봤자… 난 프롤브를 뒤따라가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나 던전이 클리어 되면서 뭔가 바뀌었나?
저번에는 인간형 던전 유닛 때문에 돌기둥 성체 타워를 자세히 살피지 못했었는데, 아마 그것 때문일까?
혹시나 만약 클리어 되면서 뭔가 성체 타워에 변화가 있다면, 지금 이 상태로는 도저히 방법이 없다.
내 눈으로 봐도 이건 커다란 돌무더기가 아니라, 그냥 산이다, 산.
좋게 표현하자면 돌기둥이 무너져 내리며 엄청난 파편으로 이루어진 둔덕.
그 둔덕 밑에 깔려 있는 미네랄이라면… 난 사양이다. 크으음.
하지만, 내 심정을 모르는지 100개체의 프롤브들은 여전히 쫄래쫄래 공동 한가운데에 있는 돌무더기를 향해 기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