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18_1
6-3
일단 쌩깠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처음 듣는, 어처구니없는 뜬 소문을 대하듯이 행동했다.
당연하지. 여기서 그걸 인정 했다가는… 좆된다.
어떤 식으로든 반발할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날 잡아먹으려고 달려들겠지.
처음엔 강력한 외교적인 항의로 시작해 점차 돈으로, 만약 그게 안되면 그 다음에는 힘으로 해결하려 들 것이다.
내가 한 국가와 싸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으니 그냥 난 호구가 되는 거고, 국제적으로 인증된 병신 하나 탄생하는 거다. 그러니 당연히 오리발을 내밀 수밖에.
그리고 그때, 내가 나만 잘 먹고 잘 살자고 그렇게 행동한 게… 음, 맞구나.
내 개인적인, 지극히 사심이 가득한 행동으로 일본 오사카 1등급 던전을 비활성화시켰으니, 나에게 책임이….
흥! 일단 몰라!
나도 길수처럼 배 째!
어디서 들었는지, 어디서 주웠는지, 아니면 그냥 한번 찔러보는 건지는 모르지만, 이럴 때는 나도 모르는데요? 가 답이다.
나에게 뭐라고 할 거면 증거를 가지고 와!
법치주의 국가잖아!
무죄추정의 원칙(無罪推定─ 原則) 몰라?
어디서 씨알도 안 먹힐, 되지도 않는 말로 나에게 들이대는 건데!
음… 그나저나 일본 오사카 1등급 던전이 바이오였지?
그럼 저번에 태석 형님이 알려준 내용이 맞다면, 1년에 대충 50조 정도는 손해를 보고 있는 건가?
아, 아니군. 돈 뿐만이 아니라 거기서 바이오 유닛 사체를 수급하지 못하니까, 그 여파까지 계산하면… 음… 계산이 안되네.
그럼, 또 배 째!
난 모르는 일이야!
일본 오사카 1등급 바이오 던전이 비활성화되든지 말든지, 내가 그 던전은 두 번 다시 갈 이유가 없으니… 아, 아아!
나 거기 들어가야 하잖아!
이번에 태초의 던전에서 얻은 어둠의 엘릭서로 테라피와 함께 총 3부작 공주를 구해서 다시 가둬라 1편 영화를 찍어야 하는데….
어, 어쩌지?
분명 어둠의 엘릭서를 이용해 테라피의 던전 종속의 인을 파괴시켜야 하는데… 음… 일단 보류.
던전이 다리가 달려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거기에 종속된 테라피가 노처녀로 늙어 죽을 것은 더더욱 아니기에, 지금 당자 움직이는 것은 그들에게 좋은 핑계거리만 만들어 줄 수 있으니… 응? 사, 사라?
주변의 군인들과 함께 무등산 인근 주차장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내 옆에 갑자기 사라가 현신했다. 내가 존나게 대가릴 굴리고 있어서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 같다.
“도, 도대체가 어디 갔다가 이제야 나타난 거야!”
내 외침에 주변의 길드원들이 날 쳐다보더니, 사라를 발견하곤 고개를 다시 돌린다.
자폭 스킬은 상대하기 싫다는 태도로.
“하나는 구했군요. 앞으로 2개 남았어요.”
이 시발년이!
지금 뭐라고 한 거야?
“… 내가 분명히, 미리, 확실하게 말하는데, 안.한.다. 안.한.다.고! 이번에 완전 뒤질 뻔 했다니까! 태초의 던전이고 나발이고 간에 인간형 던전 유닛 수백 개체가 한꺼번에 달려드는데, 정말….”
“가여운 아이들이죠.”
“커컥!”
엄청나게 높아진 내 외침이 중간에 짤리며, 숨이 탁 막혔다.
“제 분신을 찾으면 해결될 일이에요. 그 전에 그에 대한 힘을 되찾아야 하구요. 지금까지 잘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카악! 크음. 그러니까 내가 두 번 다시는….”
응?
얘 또 어디 갔냐?
“어이, 사라.”
…….
“사라 마틸다!”
…….
“씨발! 내 절대등급 스킬 사라 마틸다! 현신해! 나타나라고! 내가 왜 미친년 하나 구하겠다고 그 빌어먹을 곳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이번에 뒤질 뻔 했다니까! 태초의 던전이고 나발이고 간에 안 가! 안 들어간다고~!”
“… 오빠. 미쳤어? 왜 혼자 소리를 꽥꽥 지르는 건데? 뒤쪽에 카메라 아직도 있어.”
“형님, 사라 씨하고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냥 포기하세요.”
“전 누가 뭐라 하든지 간에 형님 편입니다. 힘내십쇼!”
“…….”
옆에서 같이 걸어가던 지혜와 한득, 길수가 한마디 했고, 길드원들도 안쓰러운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시발.
씨이파알!
몇 주일 후.
무등산 던전, 태초의 던전을 나오고 난 후 파란 집에 한번 갔다 오고, 태석 형님과 던전처리국 국장을 비롯해 정부쪽, 협회 쪽 인사들과 무수히 많은 미팅을 가졌다.
뭐 신규 던전의 출현으로 그들의 애타는 속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이데아 미러 줬잖아. 그걸 보면 되지, 왜 이렇게 나만 들들 볶아대는 건데?
하도 귀찮아 홍찬 형에게 전권을 넘기려고 했지만, 실패.
지금 자신의 하고 있는 일에서 조금이라도 업무가 늘어나면 그만 두겠다고 협박을 해대니, 입도 떼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하지만, 지들이 직접 태초의 던전을 클리어한 것도 아니고, 이데아 미러에 던전의 모든 것을 담은 것도 아니고, 인간형 던전 유닛 한 개체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내가, 우리 지원 길드 클리어팀이 말하는 내용을 기반으로 파악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을 거다.
그러라고 했고, 대충 짐작하라 했다.
거의 2주일 가까이 같은 의미를 가진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면… 존나 귀찮다.
여하튼, 졸라 귀찮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의미 없는 시간을 꾹꾹 눌러 참고, 드디어, 드디어 제주로 내려왔다.
근 한 달 만인가?
아들 얼굴 잊어먹겠다.
뒹굴뒹굴.
바둥바둥.
허우적허우적.
안방 침대에 누워 벽걸이 대형 TV로 지금까지 보지 못한 각종의 예능 프로그램을 두루 섭렵하고, 핸드폰으로 그 동안 연재된 판타지 소설을 큭큭 거려가며 읽고 있는데… 출출하다.
내가 아침은… 아니, 점심을 먹었던가?
넓은 거실로 나와 부엌으로 들어가 8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식탁에 앉자 도우미 아줌마가 묻는다.
“식사 차려 드릴까요? 가벼운 브런치부터 된장국이나 김치찌개까지….”
“네. 그냥 있는 대로 주세요.”
“알겠어요. 잠시만요. 일단 과일 주스부터 드세요.”
아줌마가 꺼내준 차가운 생과일 키위 주스를 원 샷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크으음.
포털 사이트 대문에 내 기사가 큼지막하게 났다.
좋은 내용으로 났으면 신경도 쓰지 않을 텐데, 이상한 소문과 이상한 칼럼, 이상한 지레짐작으로 채워진 어처구니없는 말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사실이지. 내가 부정할 뿐.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 이상한 소문들.
지금까지야 나에게 대놓고 물어본 사람은 저번의 무등산 던전 때의 기자들이 전부였지만, 어째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기자회견 한 번 더 해?
아니면 페이스톡에 게시물 하나 올려?
이런 소문에 괜히 응대했다가는 점점 더 많은 의구심이 생기는 법인데… 음, 어찌한다?
어디서 이걸 사주하는 놈들이 분명 있을 텐데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볼테고, 그렇다고 발 벗고 나서자니 모양새가 안 난다. 어차피 가설이고, 짐작이고, 그렇게 된 게 아닐까 라는 몇몇 소수의 의견이니 그냥 무시하면 속 편한데, 거기에 동조하는 여론들과 각성자들이 아닌 일반인들의 냄비근성이 문제다.
역시 나를 비롯해 한국 사람들의 급한 성격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오지랖이… 응? 경호 2팀장?
밥 차려지는 것을 기다리며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살펴보고 한창 대가리를 굴리고 있는데, 와이프와 아들을 경호하는 경호 2팀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
갑자기 등에 한기가 들고, 팔뚝에 소름이 돋는다.
무슨 일인지?
뭐, 뭐가 잘못된 걸까?
왜 이렇게 심장이 펄떡펄떡 뛰고, 왜 이렇게 존나 불안한 거지?
평상시에 한 번도 전화를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전화가 오니까… 난 떨리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2팀장입니다. 지금 제주대학교병원 응급실입니다만….”
“뭐, 뭐요! 누가 다쳤어요? 거긴 왜요!”
“절대 흥분하지 마시고, 제 말을 끝까지….”
“빨랑! 누구야? 와이프? 아들? 어, 얼마나 다쳤는데?”
“나, 납치 시도가 있었습니다. 사모님은 괜찮습니다만, 성준 군이 약간의 찰과상과 꽤나 많이 놀란 상황….”
“개새끼들아! 뭣들 하는 거야! 씨팔새끼들, 지금 갈 테니까 거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마! 씨파아알! 어떤 새끼야~!”
난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고,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잠시 후.
신호, 속도, 차선을 무시하고 마구 달리라고 고함을 질렀다. 경호 1팀이 차량 2대로 비상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외도 집에서 제주대학병원까지 10여분 만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응급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주변을 살피자, 한쪽에서 경호 2팀의 경호원들이 의사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난 서둘러 다가가며 고함을 질렀다.
“뭐 하는 새끼들이야!”
주변의 몇몇이 날 알아보았는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아들 곁에 있던 와이프가 울면서 나에게 다가온다.
“흐흑. 자, 자기야.”
“그래. 성준인 어때?”
“의사 말로는 괜찮다고 하는데… 그러는데… 흐흐흑.”
“한득 불러! 아니 근처에 있는 힐러, 성직자, 소속 가리지 말고 다 불러 모아! 최대한으로!”
내 외침에 경호원들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고, 난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아들에게 다가갔다.
제발, 제발….
“아빠~.”
“그, 그래. 내 새끼! 어디 다쳤어?”
“응. 여기하고 여기. 처음에는 많이 아팠는데, 지금은 괜찮아졌어. 근데 아빠 화났어? 화내지 마.”
아들을 살피자 왼쪽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얼굴에는 몇 개의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하… 이만하길 다행이다.
펄떡펄떡 뛰던 심장이 지쳤는지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었고, 멀찍이 떨어져 있던 의사들이 서둘러 다가와 설명을 한다.
“외관상으로는 크게 이상이 없습니다만, 정확한 진단을 위해 MRI 및 엑스레이 촬영을….”
“어린아이라 크게 놀란 상태입니다. 혹시 모르니 정신과 치료를 병행해서….”
“제가 잠시 흥분 했었습니다. 소란스럽게 해서 죄송합니다만, 잠시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아, 예예.”
“물론입니다. 저 옆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50대 초반과 후반으로 보이는 의사 둘이 머뭇거리며 한쪽으로 물러선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찰과상의 어린아이한테 과장급 전문의가 2명이나 달라붙어 있다는 건 날 알아봤다는 얘기. 물론 경호원들이 신분을 밝혔겠지만, 내심 탐탁찮다.
내가 주변을 훑어 경호 2팀장을 쳐다보자, 30대 후반의 남성이 다가와 고개를 푹 숙인다.
“죄, 죄송합니다. 길드장님.”
“… 어디, 누구야?”
“학교를 마치고 J마트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노형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양쪽 차량에서 달려든 각성자들이 막무가내로 사모님과 성준 군을….”
“어디, 누구냐고 물었다.”
“… 범인들이 상위급 각성자라 저희가 응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와중에 20대 초반 남성 각성자가 도와줬는데, 이, 이걸 길드장님에게 전하면 안다고 해서….”
경호 2팀장이 슈트 안쪽에서 꺼낸 쪽지를 나에게 조심스럽게 전해준다.
하… 이이제이, 성동격서인가?
위급한 상황을 역으로 이용하는 게 아니면, 또 다른 세력?
시발… 난 한숨을 길게 쉬고 경호 2팀장이 건네준 쪽지를 폈다.
그러자,
‘아빠에게.
많이 놀랐지? 켈켈켈.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난 아빠 아들이야.
아! 지금 옆에 있는 성준이가 나 맞아. 그러니까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지 마.
그리고 지금 생각하고 있는 J로 시작하는 국가가 범인 맞아. 거기 극우 세력 중 하나인 R로 시작하는 길드가 사건의 주범이지.
뭐, 일본 외무성 소속 고위공직자들이 몇몇 포함됐기도 했고.
내가 지금 9살 때, 이 사건으로 인해서 무척이나 마음고생이 심했었지. 켈켈켈.
뭐 물론 아빠가 이상한 뻘짓거리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통에 더 심해지긴 했었지만, 지금은 괜찮아.
아! 대충 5년 정도 아빠가 전 세계를 들쑤시고 다니는 통에 내가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만 기억해.
그러니까 내가 처리할 테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서 지금 나를 잘 돌봐줘.
생각보다 정신적인 데미지가 크니까.
아마 한득 아저씨한테 축복 존나게 걸어주면 괜찮을 것 같아.
그럼,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켈켈켈.
PS. 아빠. 미친척하고 여기저기 절대 들쑤시고 다니지 마. 그거 존나 민폐야. 알간?
…….
에… 그러니까… 이게….
난 옆에서 초롱초롱한 눈말울로 엄마 말을 듣고 있는 내 새끼를 쳐다봤다.
이거 니가 쓴 거냐?
9살 된 아들이 이걸 내게 썼다고?
아니, 아니지.
여기 이 내용을 보면 얘가 얘가 아니지. 아니, 얘가 얘가 맞다고 하는데… 얘가 어떻게… 그렇니까… 음….
“도대체가 뭔 소리야!”
내 외침에 경호 2팀장의 고개가 더 밑으로 내려가고, 저쪽에 있던 와이프와 아들이 날 쳐다본다.
크으음.
일단 여기서 나가자. 아들 녀석 치료도 다 됐다고 했으니, 집으로 가서 한득이를 불러 힐이나 축복을 때려 박아야겠다.
“집으로 돌아갑니다. 준비해 주세요.”
내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2팀장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주변의 경호원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하… 진짜 뭔 소리야. 어떤 새끼가 이런 개떡 같은 장난을 치는 건데!”
잠시 후.
검은색 SUV 차량 4대가 줄을 지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두 번째 차량, 와이프와 아들이 세 번째 차에 탑승했고, 난 묘한 의구심에 보조석에 탄 경호 2팀장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이걸 누가 줬다구요?”
“20대 초반 남성이었습니다. 낡은 청바지와 반팔 티셔츠, 어울리지 않는 야구 모자를 쓰고 있었고, 최고위급 각성자인 것 같았습니다. 저희가 제지하지 못한 이들을 순식간에 처리한 후 사라졌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
“됐습니다. 능력이 안돼서 벌어진 일, 더 이상 거론하지 맙시다. 일단 제주지부하고 처리국에 연락해서 지부장이던, 국장이든지 간에 최대한 빨리 모이라고 하세요. 저 이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2팀장이 고개를 돌려 핸드폰을 꺼낸 후 어디론가 통화하기 시작했고, 난 차창을 열어 김이 모락모락 나려고 하는 대가리를 식혔다.
아빠? 아빠라고?
그러니까 지금 뒷 차량에 탄, 9살 된 아들 말고 또 다른 아들이 나한테 있던가?
아니, 20대 초반의 남성?
20대 초반이라면 내 나이 10대 후반에 여자를 만나 쿵떡쿵떡해서 얘를 나아야 할 시점인데, 내가 그런적이… 음…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럼 도대체가 뭐야?
그냥 어떤 미친놈의 어설픈 장난?
그런데 그 미친놈이 현재 상황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다고?
내가 생각하는 국가가 맞고, 거기다가 범인들이 속한 길드까지 집어 줬다?
이 미친놈은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 건데?
더군다나, 뭐?
내가 이것 때문에 존나 뻘짓거리를 해서 5년 동안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 지금의 나?
지금의 나?
지금의…!
…….
에이… 설마… 혹시 뭐, 먼 미래에서 내 아들이 돌아와 지금의 내 아들을 구한다는 어설프고, 억지스러운 그런 설정은 아니지?
그런 거 하지마!
어차피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나야! 혹시 이 미친놈이 진짜 미래에서 돌아온 내 아들이라고 해도, 절대 주인공은 양보 못 해. 절대 안 돼!
그래. 쩝. 이런 생각 자체도 말이 안되긴 하지. 크음.
“형님! 성준이는 어때요?”
“오빠, 언니는?”
“길드장님, 괜찮으세요?”
“도, 도련님~!”
집에 도착하자 어느새 소식을 들었는지 팀장급 얘들과 몇몇 길드원들이 모여 있었다.
음… 생각해 보니 얘네들도 나 따라 이 근처에 집을 지어서 살고 있었지!
몰랐다. 아니 알고 있었는데, 까먹었다.
아들과 와이프가 차에서 내리자 얘들이 우르르 모여서 호들갑을 떤다. 특히나 어떤 놈은….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1팀장님! 도련님이 다치셨습니다. 어서, 어서 힐과 축복을 내려 도련님의 상처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이것 보세요! 얼마나 아팠을까! 그 와중에도 울지 않고 이렇게 씩씩하게 커 나가는 도련님을 보고 있자니, 이 비루한 몸뚱이라도 대신….”
“아빠~ 싸이 삼촌, 이상해.”
“원래 그런 캐릭이다. 괜찮아.”
“이데아 여신의 안배, 퍼스널 힐!”
한득이가 힐을 시전하자 아들 몸에 하얀 빛이 스며들더니 점차 사라진다.
“우와아~ 이거 엄청 신기해! 또 해줘요. 또!”
“성준아. 이 정도의 상처는 한번만 하면….”
“쓰읍!”
내 아들이다. 내 아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장 의미 있고, 하나 밖에 없는 내 귀염둥이 아들이란 말이다!
“… 퍼, 퍼스널 힐!”
또다시 하얀 빛이 일렁거리다 사라진다.
“우아~ 진짜 신기하다. 한득이 삼촌, 또!”
“…….”
“내가 이런 놈들을 데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어렵고 힘들어도….”
“퍼스널 힐! 퍼스널 힐! 다 쳐 먹어라. 퍼스널 힐! 힐! 힐!”
“다.쳐.먹.어.라?”
“… 형님. 형님도 아시다시피 이 정도는 그냥 침만 발라도 그냥….”
“그래서?”
“… 그, 그냥 그렇다구요.”
오호~.
마력도 빠방한 놈이 힐 한번 시전하는 게 그렇게 아쉬워? 응?
그러니까 내 금쪽같은 아들에게 힐 시전하는 게 그렇게 아쉽단 말이지!
안 그래도 지금 20대 초반의 또 다른 아들이 나보고 뻘짓거리하지 말라고 막말하고 있는 상황이라 대가리가 터질 지경인데, 오늘 너 잘 걸렸다. 이놈의 새끼를….
“다들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요. 얼른 들어가요. 자기야. 아주버님 데리고 들어와.”
“여기 아주버님이 어딨어?”
와이프가 한번 빙긋 웃더니 아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지혜와 미혜, 김은희와 최은지도 언니 괜찮아를 연발하며 따라 들어가고, 나머지 아주버님 떨거지들은 내 눈치를 살핀다.
“캬~ 역시 주모님 밖에 없습니다. 도련님이 중한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우리들을 이렇게 아껴 주시는 넓은 마음씨를 가진….”
‘퍼억!’
“악! 주, 주군!”
“그만해라. 그만하면 됐다.”
“네? 넵.”
“다들 들어가자. 상의할 일이 있다.”
“예. 형님.”
“알겠습니다.”
“… 그리고 이렇게 와줘서 고맙다.”
“… 헐.”
“… 세상에.”
“… 감개무량이옵니다. 주우구우군!”
‘퍼어억!’
“아아악! 주군!”
그래.
그래야 너희들답지.
난 집으로 들어가며 묘한 기분에 사로 잡혔다.
가만히 있던 입 꼬리가 슬쩍 위로 올라간다.
잠시 후.
“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이거 괜히 고민되는데요?”
“형님, 일단 상황을 지켜보는 게 낮지 않겠습니까?”
“오빠, 당분간은 지켜보지? 이 내용을 다 믿는 건 아니지만, 성준이와 언니를 구했다면 우리에겐 아군이잖아.”
“여기 제 신분을 이렇게 속이는 아군이 어딨어? 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말이야 안되지. 하지만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닐까? 일단 오빠에게 도움이 된 건 사실이잖아.”
“… 뭐, 그야 그렇지만. 이 내용에 전혀 믿음이 가질 않으니까 그렇지.”
“그건 나도 공감. 그냥 간단히 범인들만 알려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괜히 이상한 말을 써 놔서는….”
니들도 못 믿겠지?
나도 그렇다.
어떤 미친놈이 미래에서 온 내 아들을 흉내 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니 그러려니 할 뿐이다.
그마저도 의심스러운 건 마찬가지지만.
한창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심도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데, 와이프가 누가 찾아왔다고 알려준다.
“자기야. 제주지부장님하고 처리국 부국장님 오셨어. 2층 서재로 모실까?”
“어.”
일단 얘들에게는 오늘은 이 정도로 마무리 하자고 얘길 해놓고 2층 서재로 향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각성자 협회제주지부장과 던전처리국부국장이 커피를 마시며 날 기다리고 있었다.
“소식 들었네. 와이프와 얘는 괜찮고?”
“유감입니다. 괜찮습니까?”
음….
진짜 한 번 엎어야 하나?
감히, 감히 내가 있는 제주에서 내 가족들을 납치하려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각성자 협회와 정부의 입장이 이 따위라니!
내가 오버하는 게 아니라, 진짜 이렇게 반응하면 안되는 거 아닌가?
납치 시도가 중간에 미수에 그쳐서 다행이지, 진짜로 내 아들과 와이프가 어느 조직에 잡혀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데, 뭐? 유감이라고?
하….
협회는 이해한다. 나와 그렇고 그런 사이니까.
그런데 부국장 아저씨!
국장이라는 아저씨도 나한테 그런 말 못 해. 더군다나 지금 그렇게 느긋하게 앉아서 커피 마실 시간이면, 전화기에 불이 나도록 여기저기 알아보고, 숨을 헉헉 내쉬면서 나에게 뛰어와야 하는 거 아냐?
내가 지금까지 무엇 때문에 내 모가지를 담보 삼아 위험한 던전을 클리어하고 다녔는데!
1등급 던전이든, 신규 던전이든지 간에 내가 왜 거길 들어가서 던전 바닥을 박박 기어 다녔는데!
돈? 좋지.
돈 안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근데, 난 더 이상 돈 안 벌어도 되는데?
앞으로 내 자식들이 10대는 놀고먹어도 남을 돈이 내겐 있다고!
니들이 알랑방귀 뀌어가며, 해달라고, 해달라고 해서 꾸역꾸역 집어 넣은거 아냐!
그랬으면, 최소한, 도의적으로, 국가에서, 정부에서 내 가족만큼은 확실하게 책임지고 안전을 보장해줘야 하는 거 아냐!
“하… 진짜… 미추어버리겠네. 부국장 아저씨.”
“네. 지원 길드장님.”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정확히 상황 파악하고 있으신 거 맞죠?”
“대, 대충 그렇습니다만, 왜 그러시는지….”
“대충요? 지금 대충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아직 정확한 보고를 받지 못해서… 그, 그러니까, 왜 이러시는지….”
“… 하… 됐습니다. 제가 원래 병신이라서 이래요.”
“…….”
됐다.
진짜 됐다.
이놈의 국가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지 뭐.
뭔가를 기대한 내가 진짜 병신이다.
난 핸드폰을 꺼내 가끔씩 통화하자던 파란 집 대빵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러라고 핫라인을 만들어 놓은 거니까.
그쪽이 전화하던, 내가 먼저 전화하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내가 이상한 말을 하다가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자, 부국장 아저씨가 안절부절한다.
그래. 원래 처음부터 그렇게 내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했으면, 나도 이러지 않았지.
봐라. 지금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눈을 이리저리 돌리는 거.
약간의 대기음이 들리고 파란 집 아저씨가 바로 전화를 받는다.
“어허. 처음이네요. 지원 길드장님이 이렇게 전화를 먼저 걸어온 게.”
“혹시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정확하게는 대략 1시간 반 정도 전에요.”
“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제가 아직 보고를 받지 못해서….”
“그렇군요. 아니 그러시겠죠. 간단히 말씀드리죠. 오늘, 아니 1시간 반 전에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제 아들과 제 와이프가 어떤 씨밤바쌍놈의 개새끼들한테 납치를 당할 뻔 했습니다! 알고 계신가해서 전화해 봤어요! 그럼, 끊습니다. 제가 가족들과 함께 이민 갈 나라와 협상하느라 바빠서요!”
거칠게 내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은 뒤 잠시 부국장을 노려본 후 1층으로 내려왔다.
파란 집 대빵아저씨한테 다시 전화가 걸려 왔지만, 핸드폰 배터리를 뺀 후 소파 위에 던졌다.
팀장급 얘들이 거실에 모여 와이프와 아들 녀석과 같이 재밌는 얘기를 하고 있다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한 마디씩 한다.
“형님, 시작입니까?”
“잘했어요.”
“길드장님, 저희도 지금부터 동참합니다.”
“오빠, 쿨내 나.”
그래. 이래야지.
이래야 같은 팀이고, 같은 길드지.
이래야 서로 등을 맡기고, 대가리를 맡길 수 있는 진정한 전우지.
근데 지혜야.
쿨 내 나 는 무슨 뜻이냐?
쿵쿵.
2층에서 던전처리국 부국장이 헐레벌떡 내려온다. 제주지부장도 뒤에서 주춤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고.
“기, 길드장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