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18_2
“길드장님,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러지 마시고….”
“부국장님이나 이러지 마세요. 앞으로 저, 국내의 모든 던전 클리어 입장을 거부합니다. 던전 클리어와 관련된 일은 길드 쪽으로 알아보세요. 그리고 제가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이만 나가 주셨으면 하는데요?”
“기, 길드장님!”
실내가 덥지?
부국장이 땀을 뻘뻘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한다.
하긴, 이 사람이 무슨 잘못이 있으… 있지! 암, 있고말고!
능력이 안되면 주변에 도움을 청하던가, 그것도 아니면 눈치라도 빠르던가!
각성자 세계에 다리 한 짝 걸쳐놓고, 지금 뭐하자는 행동인데? 더군다나 당신이 지금 제주에 왜 내려와 있는지 정말 몰라서 그래?
처리국 국장이 당신을 왜 제주에 보냈다고 생각하는 건데!
뭐? 유감입니다?
나도 유감이다.
“지부장님.”
“그래. 말씀하시게.”
“데리고 나가셔서 바람 좀 쐬세요.”
“아, 알겠네. 나가시죠. 부국장님.”
“지원 길드장님! 제가,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방법을 알려주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 건 미리미리 알고 계시다가 상황이 닥치면 지체 없이 행동하셔야죠. 저한테 물어볼게 아닙니다. 그리고 저 점점 더 바빠지려고 하는데, 좀 나가주시죠? 굳이 안 좋은 모습, 보여 드려야겠습니까?”
“어허~ 부국장님. 어서 나가시죠. 지원 길드장, 난 감세!”
“네. 멀리 안 나갑니다.”
“그래. 수고하시게.”
제주지부장이 땀에 절은 부국장을 데리고 나가자, 상황을 지켜보던 얘들이 한마디씩 한다.
“국장이나 부국장이나 도긴개긴.”
“그래도 국장님이 낮긴 하지.”
“아니, 저런 사람을 부국장으로 뽑았으니 마찬가지 아냐?”
“것도 그렇군. 그나저나 형님, 진짜 이민 가실 건 아니죠?”
이민?
무슨 이민?
내가 내 돈 들여 집 지어놓고 어딜 가?
더군다나 외국어는 파인 땡큐 앤드 유 인데.
아, 좀 더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긴 한데… 됐다. 그냥 해 본 말이야.
사람이 기분이 존나 나쁘면 가끔씩 이민이나 갈까라고 한번쯤은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거잖아.
안 그래요? 파란 집 대빵 아저씨?
잠시 후.
와이프 전화로 홍찬 형한테서 연락이 왔다.
뭐 내 전화기는 배터리가 분리되어 소파 위에서 굴러다니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어이… 어이, 와이프. 뭔 놈의 전화를 그렇게 활짝 웃으며 받는데?
‘… 후후후. 아니에요. 정말 괜찮다니까요. 네, 네… 알겠어요. 그럴게요. 네, 네… 바꿔 드릴게요. 네~. 자기야, 큰 아주버님 전화.’
도대체 내가 모르는 큰 아주버님은 누구냐?
난 와이프가 방긋 웃으며 건네주는 전활 받았다.
그래. 웃는 게 좋지.
세상이 무너져라 울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뭔 말을 했는데, 와이프가 뒤집어져?’
‘괜찮냐?’
‘괜찮지 않음?’
‘한득이한테 상황 대충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진행할 일들도. 도와줄 건 없고?’
‘다 쌩 까.’
‘전부?’
‘전부.’
‘운영하는 던전들도?’
‘몽땅.’
‘… 손해가 막심… 해봤자 거기서 거기지 뭐. 알겠다.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지원 길드는 잠정적 해체다. 덕분에 푹 쉴 수 있게 되었으니, 이걸 좋다고 해야 하나? 그건 그렇고 바다 건너 있는 얘들은 내버려둘 거냐? 어째 잘 참는다?’
어이, 홍찬이 형.
지금 이거 나 놀리는 거야, 칭찬하는 거야?
‘내버려두긴. 잠시 기다리고 있는 거지. 들었어? 쪽지?’
‘어. 엄청 황당하긴 하지만, 주체만 빼고 나머지는 내가 조사한 것하고 비슷하더라. 몇 명은 빼고.’
‘나도 거의 비슷해. 맞는 내용 같아. 그러니까 지켜보려고.’
‘오케이. 접수했다. 5분 지나려고 한다. 나중에 다시 연락하마.’
‘라져.’
‘전화 끊는 순간 나 휴가다?’
‘내가 먼저 찾는 일은 없을 테니, 잠수 타셔.’
‘라져.’
뚝.
난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잠정적 해체?
것도 좋은 방법이지.
일개 길드가 해체하겠다는데 국가가 나서서 막을 명분도 없고, 끼어들 틈도 없을 거다.
물론 실직적인 해체가 아니라, 분위기 쇄신용이다.
지원 길드가 해체한다는 소식을 여론들이 여기저기 퍼 나르면 더 좋긴 하겠지만, 이럴 때 우리가 직접 나서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 일단 제주지부장과 처리국 부국장이 대충 눈치를 깠으니, 알아서 판을 만들겠지.
대충 앞으로의 일들을 짐작하며, 와이프 핸드폰을 돌려주러 아들방으로 향했다.
언제 왔는지 지혜, 미혜, 최은지, 김은희까지 아들을 둘러싸 공룡 놀이를 하고 있었고, 와이프는 옆에서 과일을 깎고 있었다.
“아빠~ 이것 봐봐. 지혜 이모가 만들어 줬다~.”
장난감 블록으로 만든 괴상망측한 물건.
“오~ 잘 만들었네. 공룡이야?”
“… 로버트야!”
“…….”
그게?
그게 로봇이라고?
도대체 어디가?
다음 날 오전.
난 간만에 페이스톡에 하나의 게시물을 올렸다.
‘… 각성한 게 이렇게 후회되기는 처음입니다.
저희가 한 게 아니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는 분위기.
저희 때문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지만, 어느 누구하나 고개를 끄덕여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세계 최대 미스터리인 던전 발현과 관련된 일, 던전 비활성화를 저희가 했다구요?
어떻게요?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분들이 저희에게 손가락질을 하더군요.
하도 억울하고, 답답해서 입을 열면, 우이독경(牛耳讀經)이더군요.
이번에 확실히 느꼈습니다.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만 할까 합니다.
건강하세요.’
글을 올리자마자 수많은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고, 무슨 일이냐, 뭐가 어떻게 된 일이냐, 그런 게 아니다, 찌라시 여론에 흔들리지 마라, 항상 지원 길드를 응원하고 있다, 뭔가 이상하다라는 의견이 넘쳐났다.
그리고 그날 오후, 홍찬 형이 지원 길드 서울지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의 주제는 간단했다.
‘이 시간 이후부터 지원 길드는 국내외 모든 일정을 중지하고, 잠정적 해체 수순을 밟습니다.’였다.
집 정문 앞에 모여든 기자들 때문에 줄럿 500개체를 소환해서 경비를 서게 만들었다.
허락없이, 내가 알려주지 않은, 일가친척이 아닌, 신분이 불명확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면 가능한 제압해서 밖으로 내보내라고 했고, 집으로 찾아온 모든 인사의 방문을 전부 다 거절했다. 뭐 핸드폰이야 지금도 여전히 분리되어 어딘가에 뒹굴고 있을 테고.
아마 짧지 않은 폐인모드 시간이 도래한 것 같다.
잘됐다. 아직까지 다 보지 못한 예능프로그램이나 실컷 봐야겠다.
이틀 후 오전.
아침 겸 점심을 처묵처묵하고 2층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깔깔거리며 한창 재밌게 예능프로그램 재방송을 보고 있는데, 와이프가 1층에서 올라오더니 약간 불안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자, 자기야, 얼른 뉴스 틀어봐. 지금 일본 완전 난리 났데.”
“냅 둬. 난리는 나라고 있는 거야.”
“… 1등급 바이오 던전이 터졌다는데? 그것도 3군데나.”
“정말? 오~ 아들이 힘 좀 썼네.”
“아들? 성준이?”
“아, 아니. 여하튼 그런 게 있어. 신경 쓰지 마.”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지금 TV에서 우리나라도 언제 터질지 모른다고 하는데.”
“어허~. 세계 최강 각성자가 남편인데, 뭘 신경 써?”
“그, 그래도.”
“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응.”
호들갑 떨며 올라왔던 와이프가 내 한마디에 안심이 됐는지, 표정을 풀고 1층으로 내려간다.
자뻑인진 몰라도 내가 세계 최강 각성자인 건 맞잖아?
아, 아닌가?
무림에도 숨겨진 초고수들이 은거하고 있다고 하니, 전 세계를 뒤져보면 나보다 더 뛰어난 각성자가 있을지도.
그나저나 아들 같지 않은, 아들인지 불확실한, 아들인지 미친놈의 장난인지 모를, 그 놈이 드디어 일을 벌린 것 같다.
그런데 1등급 바이오 던전을 3군데나?
허… 이놈도 존나 대단한데?
이 정도면 거의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능력치가 높은 것 같은데… 음… 내가 세계 최고 각성자라고 한 건 취소다. 내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미친놈도 이 정도면, 도대체가 숨겨진 절대 고수가 얼마나 많다는 말인지….
설마 이놈도 내가 가지고 있는 바이오 던전 절대스킬, 그것과 비슷한 게 있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삼 일 후.
불타오르는, 폭격을 맞은 도심의 건물들과 수십만 명의 이재민, 수천 명의 사상자, 수천 명의 실종자를 비롯해 경제적, 물리적, 공항의 상태에 빠진 일본 특보 상황을 통쾌함 반, 걱정 반 심정으로 한창 지켜보고 있는데, 각성자 협회제주지부장을 비롯해 협회장인 태석 형님, 던전처리국 국장과 외교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일본 외무성 외무사무차관이 동시에 집으로 찾아왔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집으로 들였고, 예전에 만났던 외무사무차관이 아닌 50대 후반의 일본 남성이 정중히 내게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연다.
“도와주십시오. 지원 길드장님.”
어라?
한국말 존나 잘하는데?
“한국말 잘 하시네요?”
“네. 부전공이 한국어라… 귀찮은 걸 싫어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려, 오사카, 도쿄, 요코하마에 터진 1등급 바이오 던전 클리어에 7조원을 준비해놓았습니다. 도와주십시오.”
“70조, 700조를 줘도 두 번 다시 일본에 던전 클리어하러 갈 생각 없습니다.”
“기, 길드장님!”
내 막힘없는 거절에 외무사무차관이 깜짝 놀라며 더듬거린다.
“저번에 오사카 1등급 바이오 던전 클리어 해주고 이번에 확실하게 느꼈죠. 죄송합니다만, 자국일은 자국민들과 알아서 하시길. 그럼 전 바빠서요.”
난 그들을 내버려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2층 서재로 향했다.
잠시 후.
‘똑똑.’
“아우님. 날세.”
“들어오세요.”
태석 형님이 멋쩍은 표정으로 던전처리국 국장, 대통령 비서실장과 함께 서재로 들어온다.
“외교부장관은 사무차관 배웅 중이네.”
“…….”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는지, 어디 갔는지, 뭘 하는지 전혀 신경 안 쓰는데요?
안 물어 봤어요. 필요 없어요. 알려주지 않아도 돼요.
“정말 도와주지 않을 생각인가?”
“역지사지(易地思之). 그리고 지원 길드 해체 중입니다. 도와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네요.”
“크음. 지원 길드장님. 정말 왜 이러십니까? 길드 해체 신청도 액션에 불과하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일본 극우 세력들이 약간의 장난을 친 것 같긴 한데….”
“장.난.요? 지금 장난이라고 했습니까!”
대통령 비서실장은 고스톱 쳐서 딴 거야?
당신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거 맞지?
“하… 하나만 묻죠. 제 와이프와 아들 납치가 장난입니까?”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됐습니다. 그게 정부의 입장이군요. 알겠습니다. 이만 나가주시죠?”
“기, 길드장님!”
“나.가.주세요.”
“크음. 나가시죠. 실장님이 말실수 하시긴 했습니다. 아우님, 나중에 말씀 나누세.”
“…….”
태석 형님이 억지로 비서실장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하… 진짜, 내가 존나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로 보이는 모양인데, 두 번 다시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응? 이 아저씨는 왜 안 나가는 건데?
던전처리국 국장 김진환 아저씨가 내 앞에 서서 물끄러미 날 쳐다보더니 한마디 한다.
“… 로얄길드.”
“… 알고 있어요.”
“… 중위원의원 자민당 초선 野田彦, 재선 秋葉賢也, 3선 小野寺五, 逢沢一 을 비롯해서 중견기업 소속 타로스 길드, JJ길드, 타부길드….”
자, 잠시. 잠시만!
아저씨! 지금 뭐하자는 건데?
“… 지금은 공무 수행 중이라 어쩔 수 없이 이러고는 있지만, 나도 바다 건너 있는 얘들은 별로 맘에 안 들어. 지금까지는 내 혼잣말이었네. 알지?”
뭘?
뭐가?
자기 혼자 실컷 떠들어 놓고 나한테 알겠냐고 물어보면, 내가 거기서 ‘넵.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해줘야 하는 거야?
쩝. 해주지 뭐.
“눼이~.”
“…….”
내 성의없는 대답에 처리국 국장 아저씨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날 지긋이 쳐다본다.
크으음.
“알고 있었군.”
“…….”
“… 서, 설마 일본의 지금 사태가 자네 작품….”
“어허이!”
약간 큰 소리가 서재에 울린다.
“아, 미안하네. 그럴 리가 없겠지. 암 그렇고말고. 자네가 여기 있는데, 어떻게 그런 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음… 그러니까… 정말 아닌가?”
“에헤이!”
이 아저씨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리고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건데?
도대체 날 평상시에 어떻게 봤으면, 그런 말도 안되는, 상식을 벗어난, 괴상망측한 지레짐작으로 지금의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건데!
아저씨, 밖에 나가 돗자리만 깔아도 굶어죽지는 않겠수?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본 사태를 주시하고 있겠지만, 지원 길드장도 어느 정도는 생각해 보게. 이 정도면 되지 않았나?”
“뭐가요?”
“혹시 그들의 직접적인 사과와 배상을 바라는 건 아니겠지? 그건 힘들 거야. 원래 그런 족속들이 아니지 않는가?”
“그러니까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크음. 그런가? 혼잣말일세. 혼잣말. 수고하시게. 담에 또 보자고.”
“멀리 안 나갑니다.”
“나오지도 않을 거면서.”
“정답.”
“하하하. 역시 길드장은 알다가도 모를 사람일세. 하하.”
던전 처리국 국장이 허파에 바람이 들었는지, 이상한 혼잣말을 실컷 내뱉고는 껄껄 웃으며 밖으로 나간다.
그래. 맞다.
저 아저씨도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지만, 서로서로 그 내색을 하지 않는다. 혼잣말이라는 말도 안되는 핑계로 서로 대화를 할 뿐.
그런데 뭐?
이 정도면 되지 않았냐고?
되긴 뭐가 됐는데?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구만!
일본에서 오사카, 도쿄, 요코하마 1등급 바이오 던전이 터진지 일주일이 지났다.
TV 정규 방송 뉴스 시간은 온통 일본에 대한 소식뿐이다.
사상자와 실종자가 얼마며, 경제, 물리적 손실과 국가 이미지, 신용등급의 하락, 던전 리젠 클리어 가능성과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고, 던전 클리어를 지원한 국가에서 꽤나 이름 있다고 하는 길드들이 속속 일본에 도착했다는 소식과 저번에 오사카 1등급 던전을 클리어 해 준 한국의 지원 길드가 왜 도와주지 않는지에 대한 불평, 불만, 의문의 여론이 점차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삼 일 후.
어떤 경로로 어떻게 퍼졌는지 모르지만, 내 아들과 와이프의 납치 시도가 일본 극우세력에 의한 일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현재의 던전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한국의 지원 길드를 직접 데려오라는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처음에는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일축하던 극우세력들이 납치 시도했던 교통관제 CCTV 영상과 차량에 달려있는 블랙박스 영상, 그리고 그들이 지원하는 길드 소속 각성자들의 한국 입, 출국 기록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그 여파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그렇게 이틀의 시간이 더 지나자 항의 시위는 거의 폭동 수준으로 변했다.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불타오르는 그들의 사무실과 차량들.
길거리나 장소에 상관없이 계란, 돌, 쓰레기 등을 던져대는 시민들과 항의단체.
이거, TV 예능 프로그램보다 더 재밌다.
녹화해놔야지. 크음.
다음 날 오후.
그 동안 읽지 못한 판타지 소설을 보며 낄낄거리고 있는데, 또다시 외교부 장관, 던전처리국 국장, 일본 외무성 외무사무차관이 집으로 찾아왔다.
저 핼쑥해진 얼굴 좀 봐라.
아저씨도 괜한 사람들 때문에 고생이 많네요. 그러니까 아저씨는 아무리 이렇게 찾아와봐야 나한테 좋은 소리 못 듣는다니까!
당사자를 데리고 오던가. 당사자를!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쩝.
“죄, 죄송합니다. 지원 길드장님. 그들을 대신해서 이렇게 사죄드립니다. 제발 이번 한번만 도와주신다면…….”
“대신할 필요도 없고 사무차관님이 사죄할 이유도 없습니다. 제가 철이 없어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전 제 가족을 위협하는 사람들이 속한 조직을 도와줄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당사자도 아니고. 돌아가세요.”
“… 그, 그럼, 그들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아니, 압송해서 한국으로 넘기겠습니다! 그럼 되겠습니까?”
“…….”
“알겠습니다! 당장 처리하겠습니다!”
“…….”
내가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자 이걸 승낙의 뜻으로 이해했는지, 사무차관이 허둥지둥거리며 양해를 구하고 핸드폰을 꺼내 밖으로 나간다. 아마도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쑥떡쑥떡하기 위함이겠지.
그나저나 난 아무 말도 안했다?
그냥 당신이 지레짐작해서 설레발치는 거라고. 크으음.
됐다. 일단 내가 나서서 요구하는 게 아니니, 첫 단추는 잘 끼웠다.
다음은 놈들이 한국으로 왔을 때의 문젠데… 어떻게 할까?
놈들을 법의 심판을 받게 한다는 그런 구시대적인 발상은 집어치우고, 그렇다고 그냥 다 대가리를 쓱싹 해버리기엔 보는 눈이 너무 많고 내 스스로 범죄자가 될 테니, 패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가장 효율적으로 놈들에게….
음… 오~ 오호라… 그럼 되겠군.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마당 쓸고 돈 줍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거기에 추가로….
난 갑자기 뒤통수를 강타하는 좋은 생각에 던전처리국 국장과 외교부장관을 쳐다봤다.
“… 왜 그러나? 표정이 심상찮은데, 뭔가….”
“국장님, 그리고 장관님.”
“… 불안한데….”
“네. 길드장님.”
“제가 일본으로 가겠습니다. 근데….”
“진심인가?”
“저, 정말입니까? 지원 길드가 나서는 겁니까? 네?”
어허, 사람 말은 항상 끝까지 들으셔야지.
“장관님은 이제 대충 아시죠? 제 가족을 납치하려고 했던 인물들에 대해서?”
“무, 물론입니다. 그래서 사무차관이 이렇게 찾아와서 대신 사죄하는 게 아닙니까?”
“사죄는 무슨, 당사자도 아니고. 여하튼, 그 놈들이 한꺼번에 실종된다면 외교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나 됩니까?”
“네? 저, 절대 살인은 용납 안 됩니다! 아무리 그들이 죄를 지었다고 해도, 엄연히 한 국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던 사람들인데, 어찌….”
외교부장관이 화들짝 놀라 허둥지둥한다.
“쫌! 확실하게 들으세요. 제가 언제 그들 대가리를 친다고 했습니까? 그냥 실종이라니까요. 예를 들어 던전에 들어가서 실종된다든지, 아니면 던전에 들어가서 실종 된다든지, 그런 상황 말이죠.”
“…….”
“… 똑같은 말을 왜 두 번씩이나.”
“아, 제가 그랬나요? 예를 들게 별로 없어서요. 여하튼, 던전에 들어가서 실종 되는 건 괜찮죠?”
“괜찮을 리가 없잖습니까! 던전에서 실종 됐다는 말이 사망선고 아닙니까!”
“에헤이, 전 가만히 있을 거에요. 그들이 알아서 던전에 들어가는 거지.”
“예? 그게 지금 무슨 말 입니까? 그들이 직접 던전에 들어가요? 왜요?”
외교부장관이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자, 처리국 국장이 한마디 한다.
“니들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책임지고 들어가서 클리어하라고 하려고?”
“… 그게 무슨… 아~ 아….”
“거기에 제가 약간의 소금을 뿌리면, 좀 더 파닥파닥하겠죠.”
“역시 자네 잔머리는….”
“천재들만의 비애라고 해두죠.”
“…….”
큼큼. 역시 처리국 국장 아저씨가 눈치는 빨라.
일본 외무성 외무사무차관이 다시 안으로 들어오기가 무섭게 외교부장관과의 협상이 이어졌다.
아니 협상은 무슨, 장관 대신 내가 직접 말하는 일종의 통보지 뭐. 크큼.
“현재 공직자 대부분은 구금이 이루어졌습니다만, 그들이 지원한 길드 소속 각성자들은 1등급 던전 사태 때문에 아무래도….”
“아, 그건 따로 처리할 거예요. 물론 제가 할 게 아니구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그냥 그렇다구요. 그러니까, 잡몹들은 빼고, 대가리만 모아주시면 돼요.”
“…….”
한국말이 딸리나?
대가리란 단어는 한국어 공부할 때 없었나 보지?
“대가리만. 어렵지 않죠?”
“… 아,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이라도 당장 전세기를 동원해 일본으로 넘어가서 던전 클리어를 진행하는 걸로….”
“에헤이, 아직 안 끝났잖아요. 대가리들은 제 가족들을 위협한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이제부터는 던전 클리어에 대한, 아주 저렴한, 최저 임금에 해당하는, 제 일당에 대해서 얘기해봐야죠.”
“이, 일당요?”
왜 놀라는 표정인데?
당연한 거 아냐?
그럼 날 공짜로 부려먹으려고 했던 거야? 헐….
“아… 일당이라고 하니까 하루치로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건 아니구요. 시국이 시국인 만큼 많이 달라고 하진 않을게요. 저번에 얼마라고 했더라?”
“내가 듣기론 7조였네.”
옆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처리국 국장이 한마디 한다.
나이스.
“음… 7조, 7조라…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빠져 있으니 여기서 제가 일당을 더 올리면, 욕 먹겠죠? 음… 뭐, 최저 임금에 해당되긴 하지만, 그렇게 하죠.”
“가, 감사합니다. 그럼….”
“에이, 왜 자꾸 중간에 나가시려고 하는데요? 제 일당은 7조로 정했으니, 이제 지원 길드원들에 대한 일당을 정해야죠. 그리고 던전 클리어 보상과 유닛 사체 소유권은 당연히 저희에게 있는 거죠?”
“…….”
사무차관이 어이가 없는 표정, 할 말을 잃은 표정이다.
그냥 멍~ 하다.
“아~ 제가 자꾸 당연한 걸 얘길 하니까, 아무 말씀 없으신 거구나~. 그럼 인도적인 차원에서 저번 오사카 1등급 던전 때와 같은 길드원 일당을 제시할게요. 그때 금액이 얼마였더라? ….”
“2, 2조였네. 크큭.”
“그렇다는군요. 그럼 길드원 일당 2조, 제 일당 7조를 합쳐, 9조를 제 통장에 선.입.금. 해주시면, 제가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길드원들을 모아 볼게요. 지금 다들 잠수타고 있어서 연락이 되려나 모르겠는데… 그나저나 일당은 어때요? 참 싸죠?”
“…….”
“크큭. 크크크큭.”
누구는 입을 벌려 멍한 눈동자와 함께 정신이 나갔고, 누구는 웃음을 애써 참아보려고 배를 부여잡고 크큭 거리며, 바닥을 긴다.
왜? 맞잖아?
이에는 이, 돈에는 돈, 힘에는 힘으로 대접해 줘야, 아~ 씨발! 저 새끼 잘못 건드리면 좆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겠지.
근데, 미안해서 어쩌나?
난 여전히 시작한 게 아닌데?
잠시 후.
얼빠진, 어이 없어하는, 멍한 사무차관이 정신을 차린 후 그제야 부랴부랴 움직이기 시작한다.
당연히 지금 당장 급한 건 돈이 아닐 거다. 9조든 90조든, 돈 문제뿐이라면 국가 예산에서라도 먼저 집행해 문제를 해결했겠지만, 지금은 자국 내에서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는 1등급 바이오 던전 사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다.
수십만 명의 이재민과 수천, 수만 명의 사상자와 실종자가 발생했고, 경제적인 손실은 집계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며, 더군다나 지금도 여전히 그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있다.
굳이 이런 상황에서 내가 굳이, 꼭, 반드시 돈을 바라는 거는 아니지만, 납치 사건의 내 정신적인 치료비와 후유증을 감안한 피해보상이니까 너무 억울해하지 마시길. 그래도 최저 임금으로 계산했으니까… 크으음.
얘들이나 미리 소집해 놔야겠다.
내 핸드폰이 어딨더라?
한득에게 연락해 팀장급 길드원들을 소집시켰다.
뭐 옆집이나 뒷집, 길 건너편에 살고 있는 얘들이니 소집시킨 게 아니라, 그냥 이웃사촌을 불러 저녁 바비큐 파티나 하자고 했다.
어차피 우리 부모님이나 장인어른을 비롯해 팀장급 부모님들과도 대부분 호형호제하는 사이니 이왕지사 저녁 먹을 거면 다 같이 모여서 소주 한잔 곁들이면….
왁자지껄.
아웅다웅.
난리법석.
집에 있는 바비큐장이 점점 더 개판이 되어간다.
그냥 처음에는 이웃사촌끼리 모여 간단하게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지만, 누가 누굴 데려오고, 또 누가 누굴 불러들여 점점 더 규모가 커졌고, 규모가 커진만큼 사람들의 목소리도 높아진다.
아버지의 화통한 웃음소리와 그에 못지않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주변에 퍼지고,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한자리를 차지해 와이프와 연신 뭔가를 숙덕이며. 처남, 처제 가족들도 팀장급 얘들과 하하호호 거리고 있고, 아들은 조카들과 함께 정신없이 사방을 뛰어다니며, 도우미 아주머니들과 아저씨들이 연신 음식을 나르고 있는 와중에 누가 시작했는지 모를 노래방 기계에 맞춘 노래 반주가 시작되자, 난 바비큐장을 빠져나왔다.
잘못 생각했다.
간단히 저녁이나 먹으면서 얘들과 앞으로의 일정을 상의하려고 했었는데, 이건 거의 놀고먹자판이 돼버렸다.
그래도 어쩌리.
가족들이 저렇게 좋아하는데.
내가 아무리 귀찮고, 귀찮고, 귀찮아도 가끔씩은 이런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