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18_3
한숨 한번 쉬어주고, 담배 하나 빼어 물어 불을 붙이려던 순간,
“주군. 식사 하셨습니까?”
어디선가 불청객이 나타난다.
“… 넌? 밥 다 먹었냐?”
“넵. 주군께서 준비해 주신 감동스러운 양식으로 인해, 이 비루한 몸이 성은을 입었사옵니다.”
“하… 너… 진짜 병원 한번 갔다 와라. 내가 진짜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지!”
“… 아, 알겠습니다. 주군.”
“…….”
“…….”
뭐?
할 말 없으면 저리 가지?
왜 내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는 건데?
싸이가 머뭇거리며 입을 뗐다 말았다 한다.
마치 지금 존나 급히 똥이 마려우니, 내 앞에서 볼일을 봐도 되는지 물어볼 표정으로.
“왜? 똥 마려? 가서 싸라.”
“… 그게 아니오라….”
“싸! 싸라고!”
“저, 주군. 이번 일본 나들이 가실 때 오사카 던전에 들어가실꺼죠? 그때 이걸 한번 사용해 봤으면 합니다만.”
싸이가 지 혼자 중얼거리더니, 인벤토리에서 괴상망측한,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미네랄 판 하나를 소환시킨다.
이게 뭔데?
그리고 아까 뭐? 나들이?
니 눈에는 우리가 일본 바이오 던전 터진 거 수습하러 가는 게, 뒷동산에 나들이 가는 걸로 보이나 보지?
도대체가 어떻게 생겨먹은 대가리길래 그 따위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거지? 크큼.
그건 그렇고,
“이게 뭔데?”
난 싸이가 꺼내놓은 미네랄 판을 유심히 살폈다.
뭔가 작업을 해놓은 건지, 알 수 없는 기하학적인 도형들이 판 위에 가득하다.
“네. 주군. 예전부터 연구한 겁니다만, 던전 내 스펠 쇼크웨이브가 6등급 던전 이상부터 발생하는 것으로 보아, 고위급 던전에서는 던전 내 마력을 넥서스나 성체 타워가 일정 부분 집중해서 마력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간단히.”
“넵! 던전 내 마력 흡수진입니다.”
“마력 흡수진? 마법 회로, 아니 마법진이야?”
“네. 주군.”
“근데?”
“네?”
“그러니까 이걸로 뭐 할 거냐고!”
“네. 주군. 오사카 던전은 저번에 주군께서 비활성화시키지….”
“어이~.”
“… 네?”
“뭐가? 그러니까 이걸로 뭐 할 거냐고?”
“그러니까, 오사카 던전은 저번에 주군께서….”
“에헤이!”
“…….”
“뭐? 뭐가?”
“… 아, 아닙니다. 여하튼, 던전에 퍼져 있는 마력을 흡수할 수 있는 마법진입니다. 이걸 충분히 활용하면 아마도….”
“넥서스나 성체 타워에서 발생하는 스펠 쇼크웨이브를 인위적으로 아무 때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라는 뭐, 그런 말?”
“무불통지천리안이십니다. 주군!”
씨파!
때릴까?
다음 날 오후.
지원 길드 서울지부에서 기존의 클리어 팀원들이 전부 제주로 내려왔다.
그리고 각성자 협회와 정부쪽에서 마련해 준 종류별 포션들과 비상용품, 식량, 식수, 천막 등을 셔틀별로 분배하고, 나머지 개인물품들과 무기류, 방어류 등을 점검한 후 제주국제공항으로 이동, 길드 소유 전세기를 통해 일본 오사카 인근 공항에 도착했다.
마중을 나온 일본 각성자 협회 사람들과 정부 측 인사들, 군인, 기자들의 열혈한 반응에 약간 놀라긴 했지만,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씨밤바 새끼들이 더 중요하지.
내 물음에 옆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은 외무차관이 냉큼 대답한다.
“오사카 던전 인근에 구금하여 대기시켜 놨습니다. 말씀만 하시면….”
“알겠습니다. 일단 던전으로 이동하죠.”
“예. 리무진 버스를 대기시켜 놨습니다.”
공항 근처에 대기시켜 논 대형 리무진 버스에 탑승한 후 수십 대의 경찰차 호위속에 2시간을 달려 오사카 던전 인근에 도착… 응? 이게 뭔 소리야?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포성과 인근 주변에 매캐한 화약 냄새가 난다.
“아직도 던전 유닛 처리 안됐습니까?”
“… 네. 저굴링과 히드라 대부분은 처리됐습니다만, 울트라 몇몇 개체가….”
“헐… 던전 터진지가 언제인데.”
“도쿄와 요코하마에도 각성자들이 투입돼서 고위급 각성자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도, 도와주십시오.”
“… 그러죠. 이거 추가 임금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방어선 간격은 어떻습니까?”
“1차 저지선까지 2km입니다. 2차는 5km이구요. 3차는 10km….”
“혹시 2차까지 퍼진 유닛이 있습니까?”
“…….”
개판이구만.
도대체 뭐 하자는 건데?
설마 일부러 안 잡는 건가? 유닛 사체 챙기려고?
에이, 그건 아니겠지.
허허벌판, 사막 한가운데도 아니고, 시가지 중심에서 일부러 바이오 던전을 터트리지는… 아, 이 사태는 미친 아들놈이 주범이지! 크큼.
미안. 괜한 오해를 했네.
일단 주변 정리부터 할까? 어차피 던전에 입장하려는데 걸리적거리는 건 귀찮으니까.
“줄럿 전체 소환!”
[띠링! 줄럿(방어+공격 200%) 3,360개체를 소환합니다.]하얀 빛과 함께 주변에 3천 개체가 넘는 줄럿들이 소환되자, 옆에 있던 사무차관이 깜짝 놀라 헛소리를 뱉어내고, 주변의 군인들과 협회, 정부쪽 인사들이 일본말로 뭐라 존나게 소리를 질러댄다. 그리고 우리 얘들은,
“허억!”
“오빠, 왜?”
“형님 무슨 일… 아! 청소하시게요?”
별 관심이 없다.
그래. 청소긴 청소지.
바이오 유닛 사체 챙기는 청소.
난 소환된 줄럿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곳을 중심으로 반경 5km, 아니 6km 내에 있는 바이오 유닛 전부 다 처리해. 처리한 사체는 이곳으로 가지고 온다. 출발!”
내 명령에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줄럿 3천여 개체.
자, 던전 앞마당 쓸고 돈이나 주워볼까?
잠시 후.
발업 저굴링과 히드라, 울트라 사체가 거의 조그만 둔덕을 만들만큼 쌓였다.
“허….”
“오빠, 울트라는 나중에 던전에 들어가서 먹….”
“형님. 저굴링하고 히드라는 버리죠? 괜히 인벤토리 공간만 차지할 것 같은데.”
누구는 놀라 멍하니 서 있고, 누구는 울트라 사체를 보며 먹을 생각부터 하고, 또 누구는 저장 공간이 모자란다고 버리라고 한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더니, 지금이 딱 그 짝이다.
언제부터 수십, 수백만 원짜리 유닛 사체를 그렇게 대했는데?
배가 부르니, 푼돈은 돈도 아니냐?
“발업 저굴링 235개체, 히드라 58개체, 울트라 9개체, 락커 4개체 넘길 테니, 시세에 맞게 알아서 통장에 넣어주세요.”
“오, 오빠. 울트라는 던전에 들어가서….”
“아, 울트라는 제욉니다. 나머지만 처리해 주세요.”
“… 알겠습니다.”
사무차관이 씁쓸한 표정으로 바이오 유닛 사체들을 쌓은 둔덕을 바라본다.
떨리는 눈동자와 알 수 없는 자괴감에 몸을 흠칫 떤다.
일본 각성자 협회 직원들과 군인들이 바이오 던전 유닛 사체들을 정리하기 시작하고, 지혜가 울트라 사체를 인벤토리에 구겨 넣는 것을 보며, 난 그 씨밤바 새끼들을 던전 입구로 데리고 오라고 했다.
기존의 오사카 던전 앞으로 이동해 입장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길 30여분.
군인들과 각성자 협회 요원들에 의해 8명의 일본인들이 손에 포승줄이 묶여 있는 상태로 궁시렁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온다.
각성자 협회 요원들에게 뭐라고 고함을 질러대는 씨밤바 새끼 1,
그 옆에서 더 큰 고함으로 뭐라고 지랄방광을 해대는 씨밤바 새끼 2,
어깨가 축 늘어져 고개를 떨구고 있는 씨밤바 새끼 3,
주변을 살피다가 날 발견한 후 입을 쩍 벌려 몸을 부르르 떠는 씨밤바 새끼 4 등, 나이는 50대 초반부터 60대 후반까지, 일본말로 존나게 떠들어대니 당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떠들던가 말던가.
난 조용히 어둠의 암살자들을 소환시킨 후 길드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일본 오사카 1등급 바이오 던전 리젠 클리어 입장한다. 전사들부터 입장.”
“입.장!”
“입장!”
20여명의 전사들이 먼저 시커먼 구덩이 속으로 몸을 던지자, 씨밤바 새끼들의 아우성이 더욱 거세진다.
일단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이제 저들이 알아서 던전에 들어가면, 아무 문제없는 거죠?”
“… 그건 맞습니다만, 강제하시면 안됩니다.”
“강제는 무슨, 지들이 알아서 들어가는 거라니까요. 목격자가 이렇게나 많은데 제가 힘으로 하겠어요? 돈 워리, 비 해피.”
“…….”
옆에 있던 사무차관이 뭐라 말을 하려다 그만둔다.
그래. 그냥 지켜만 보셔.
난 소환된 어둠의 암살자들에게 씨밤바 새끼들을 포위한 후 던전 입구로 움직이라고 인지했다.
“な、何だ!”
“え? ここは何かがいて!”
“おい! ここ、目に見えない何があるんだよ!”
“アアアッ! ダメ! 入るもイヤ! 入る嫌だと!”
안 들린다.
안 들려.
그리고 뭐라고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니까!
한국말 몰라?
두 유 노우 김치?
“기, 길드장님! 아무리 봐도 다들 뭔가에 끌려가는 것 같은데,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사무차관이 입에 거품을 물고 대든다.
아저씨, 침 튄다.
입 좀 딱고 말하지?
“제가 압니까? 전 그냥,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아가리 닥치고 가만히 있었는데, 제가 뭐라 명령을 내린 적 있습니까?”
“그, 그게 아니고. 지금 아무리 봐도 무언가에 잡혀서 끌려가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응.
내가 봐도 그래.
“쇼하는 거예요. 들어가기 싫어서. 아아, 들어가고 싶은데 부끄러워서 일부러 저러는 걸지도 모르죠. 에이, 나이가 몇인데 부끄럽다고 저렇게 바닥을 박박 기다니. 리액션이 상당히 좋은데요? 어디 연기학원이라도 단체로 다니나 봐요?”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건 분명….”
“어이, 얘들아!”
“넵. 길드장님!”
“예!”
“내가 지금 저들을 강제하고 있냐? 내가 너희들한테 무슨 명령을 내렸어? 내가 보기엔 지들이 던전에는 들어가고 싶은데, 보는 눈이 많아서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크큭. 제 눈에도 그렇게 보입니다!”
“맞아요. 엄청 부끄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막 굴러다니네요! 크크큭.”
“카카. 너~무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 쑥스러워서 고함도 막 질러!”
얘들의 한결같은 대답에 옆에 있는 사무차관의 입이 한없이 벌어진다.
턱 빠질라.
어느덧 고함이 멈추고, 주변이 다시 조용해진다. 바닥을 박박 기던 씨밤바 새끼들이 시커먼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난 대형을 유지하고 있던 길드원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전원 던전 입장!”
“입.장!”
“입장!”
나머지 마법사들이 줄을 지어 던전에 입장했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뒤에 남은 사무차관이 멍한 모습으로 날 쳐다본다.
어지러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주변에서 꽥꽥 거리는 일본말이 중구난방으로 들려온다.
아, 안 들린다. 안 들려.
그리고 한국말로 하라니까!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씨밤바 새끼들, 언제까지 그렇게 고함만 빽빽 질러대는지 보자.
그건 그렇고 일단은,
“사라.”
“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옆에 사라가 현신한다.
“테라피 어딨어?”
“서북쪽 213.35km.”
“말이 짧다?”
“그러니까요.”
“…….”
그렇게 말 한마디 하고 지 맘대로 사라져버리는 내 절대스킬 사라.
니가 나에게 종속되어 있는 스킬이라고?
그래서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고?
무슨!
엄청 귀찮은, 말없는, 무뚝뚝한, 복창 터지는 자폭 스킬이지. 종속은 얼어 죽을 종속… 쩝.
됐다. 괜히 자폭 스킬, 사라만 생각하면 속만 뒤집어진다.
얼른 여길 뜨자.
“프롤브 1개체 소환.”
“수정체 생성, 게이트웨이 생성, 발업 코어, 드라칸 코어 생성, 랜드 코어 생성! ….”
말 한마디 내뱉고 사라지는 자폭 스킬이나, 지금도 여전히 옆에서 길드원들을 붙잡고 알 수 없는 일본말로 고함을 쳐대는 씨밤바 새끼들이나 똑같지 뭐.
“야! 거기 좀 조용히 시켜!”
안 그래도 짜증나는데 시끄러우니까 더 열 받는다.
왜 이리 불쾌지수가 높지?
던전 열대아인가?
랜드 코어에서 셔틀 10개를 생성해 길드원들을 나누어 탑승 시킬 때쯤, 씨밤바 새끼들 중 제일 나이가 많은 놈이 머뭇거리며 나에게 다가와 일본말로 헛소리를 시전한다.
“いったい私たちにどうしてこんなことをするのか? 誤解があったら言葉にしよう。 他の所で奇妙な話を聞いたようだが….”
“뭐가?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넌 알아들을 수 있냐? 병신딱다구리 같은 새끼가!”
니들이 아직도 개념을 못 찾았구나.
영어를 해도 될까 말까인데, 일본말로 그렇게 툭툭 던지면 내가 잘 모르겠으니 통역 불러와서… 얼씨구? 이놈은 언제 왔데?
2팀 마법사 재덕이가 옆에 다가가 놈들의 말을 통역하려고 한다.
어이구, 오지랖도 태평양만큼이나 넓으시지.
“길드장님, 그러니까 이 녀석들이 하는 말은 오해가 있는 것 같으니 말로 하자고….”
“통역 패스. 관심 패스. 전원 셔틀 탑승!”
“탑.승!”
“탑승!”
오해가 있다고?
말로 하자고?
염병하고 자빠졌네.
“셔틀 전체 이륙!”
“はてな,どこ行くのか?”
“今これは何してるんですか?”
“私たちをこのままそのままにして行ったらどうするの!”
누군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려 하자 어둠의 암살자가 놈을 떼어 놓는다.
난 씨밤바 새끼들이 고함을 치던, 바닥을 구르던 상관치 않고 셔틀을 이륙시켰다.
내가 이곳 던전에 들어온 걸 테라피가 인지하고 있을 테니, 바이오 유닛들이 돌아다닐 일은 없을 테고, 그럼 최소한 던전 유닛들의 한 끼 식사는 되지 않겠지.
난 씨밤바 새끼들을 무시하고 셔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향 서북쪽, 거리 213km, 속력 최대 속도, 출발!”
남겨진 놈들의 아우성이 멀리서 들려온다.
일본 오사카 1등급 바이오 던전 나들이 입장 1시간 30분 후.
팀장급 얘들이 내 눈치를 살핀다.
말이 많던 지혜와 한득도 목소리를 낮춰 뭔가 쑥덕이고, 길수와 미혜, 김은희와 최은지까지 내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눈치다.
뭐 가장 관심 없어하는 놈은 하나지. 미친놈 하나.
그건 그렇다 치고 이거 괜히 짜증나는데?
“아~ 왜? 뭐가?”
내 외침에 한득과 길수가 꽁트를 시작한다.
“… 니가 물어봐.”
“무슨, 그래도 니가 물어봐야지.”
“천, 콜?”
“1억 콜? 쫄리면 뒤지던가.”
“시파! 2억 콜?”
“3억! 콜?”
“그래 콜! 새끼가. 나가면 바로 쏘는 거다?”
“콜.”
뭔 콜?
천? 1억? 2억? 3억?
지금 니들 뭐 하는 거냐?
“형님, 뭐 쫌 여쭤볼게요.”
길수 놈이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입을 연다.
“여쭤라.”
“네? 네. 크큼. 저 혹시, 던전 입구에 버리고 온 놈들이요.”
“그게 왜?”
“나중에 던전 나갈 때 데리고 나가실껀가요?”
“뭐?”
“그쵸? 아니죠? 대가리를 쓱싹 할 거죠? 아무래도 그러니까, 형님이 직접 하는 게 아니고, 줄럿이나 어둠의 암살자 시켜서 그냥 대가리를 반으로 쪼개서….”
‘퍼어억!’
“아악! 아아악! 형님! 왜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길수 놈이 후다닥 튄다.
니가 튀어봐야 벼룩… 은 아니고, 이 좁은 셔틀에서 도망쳐 봐야 거기서 거기지.
“왜요? 왜요는 일본말로 덮는 이불이 왜요다. 너 일루와. 아까 뭐? 대가리를 반으로 쪼개서 뭘 어떻게 한다고? 내가 일단 니 대가리부터 반으로 성심성의껏 쪼개주마. 일로 안 와?”
“왜 저만요! 한득이도 그렇다고 했다구요!”
“무슨! 내가 언제! 형님, 전 그런 말 안했습니다. 전 그냥 여기에 버려두고 간다는데 걸었단 말입니다.”
“걸어? 뭘? 하… 이것들이!”
그런 거냐?
그래서 금액 단위로 레이즈를 한 거야?
이놈들이 미쳤나!
내가 무슨 피에 굶주린 살인마도 아니고!
“오빠! 난 패서 던전 바닥에 묻는다 에 걸었어!”
“전 던전 유닛 먹이로 던져준다 에 한 표!”
“저는 불로 태워서….”
“전 얼려서….”
옆에서 가만히 사태를 지켜보던 지혜와 김은희, 최은지, 미혜까지 합세해 한마디씩 한다.
하… 그래.
방법도 존나 많구나.
대가리를 반으로 자르고, 패서 묻고, 유닛 먹이고 던지고, 불로 태우고, 얼려서 냉동 보관하고… 그래. 니들끼리 다 해 먹어라.
한창 얘들이 투닥거리며 지들끼리 상상의 나래를 활짝 활짝 펼치고 있을 때, 앞쪽의 셔틀에서 상황보고가 들어온다.
“전방 2km! 성체 타워 발견!”
“성체 타워 발견! 전방 12시! 거리 2km!”
난 지끈거리는 대가리를 꾹꾹 누르다 말고, 셔틀의 속도를 점차 줄여나가기 시작했고 거대한 성체 타워 앞 200m 지점에 착륙시킬 때쯤, 테라피가 마중을 나온다.
“A1, 전방에 인간형 던전 유닛 발견!”
“인간형 던전 유닛 1개체, 이쪽으로 접근 중!”
“A2, 다들 대기해.”
“A2, A2다. 마법사 마력 발현!”
“취소. 마법사 마력 취소. 그냥 잔말 말고 따라와. 한득!”
“넵. 길드장님.”
“이번에 여기 나가면 진형 다시 짜. 뭔 놈의 대형이 공격, 대기, 후퇴 이런 것 밖에 없냐?”
“그게 기본 베이스인데요?”
“딱따구리새꺄! 공격할 때에도 살며시 뒤돌아서 아무도 모르게 살짝 찔러넣기, 앞뒤 상관없이 목숨 바쳐 있는 힘껏 모든 물량 한꺼번에 다 퍼붓기, 이런 것들도 있잖아! 상황에 따라, 장소에 따라, 인원 수에 따라 진형 전부 다시 짜.”
“… 그러면 그거 다시 처음부터 다 연습해야 하는데요?”
“… 그럼, 기각. 이대로 간다. 크큼.”
“넵. 탁원한 결정이십니다. 크큭.”
한득이가 크큭거리는 사이, 저 앞의 테라피가 다가왔다.
“사라님은 잘 계신지요?”
“너, 저번에도 첫 말이 이거 아녔냐?”
비디오냐? NPC야?
어째 반응이 똑같다?
“그래. 잘 있었어.”
깜짝이야!
사라, 너. 제발 인기척 좀 내고 나타나라고!
한두 번도 아니고, 내가 부를 때를 제외하고는 미리미리 노크 같은걸 해서 내 의사를 물어보고 현신하면 안될까?
저 나가도 될까요?라고 먼저 나에게 물어보고, 내가 오케이 하면 그때 현신하는 거지.
그럼, 나도 놀라지 않고 얘들도 놀라지 않을 테니,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오늘 이분께서 너의 종속의 인을 파괴시켜 줄 거야.”
“저, 정말요? 그럼 제가 사라님과 같이 있을 수 있는 건가요?”
“아마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아아, 도대체 이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정말, 정말인거죠?”
“그래. 이분께서 어둠의 엘릭서를 구해 오셨으니, 그리 될 거야.”
“아… 아아! 정말 오랜 기다림이었어요. 사라님도 그렇죠?”
“그래. 오랜 기다림이었지.”
“…….”
어이!
거기 두 사람, 아니 사람 같지 않은 절대스킬 1과 인간형 던전 유닛 1. 니들 지금 날 이렇게 세워두고 뭐하냐?
내가 꿔다 논 보릿자루냐?
장난쳐?
“아! 어서, 어서 자리로 오르시죠. 그분의 선택을 받으신 분. 그리고 사라님도 같이 가시죠. 종속의 인이 파괴된다면, 인지해야 할 일들이 꽤 많으니까요.”
“그래. 앞장서렴.”
“네.”
사라의 말에 테라피가 거대한 성체 타워로 뛰듯이 걸어가기 시작하자, 날 무심하게 한번 쳐다본 내 절대스킬 역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음… 분명 내가 주인공일 텐데, 이 알 수 없는 희미한 존재감은 뭐지?
역시나 저번과 같은 분위기와 같은 공간인 것 같다.
리젠 되어서 이런 건가?
기괴한 모습, 기하학적인 패턴, 침침한 분위기의 긴 복도를 지나자 거대한 공간이 나타난다.
주변에 수많은 바이오 유닛들이 정렬한 채 그르렁거리고 있고, 제단인지 모를 위쪽에는 황금빛 의자가 놓여있는 것도 마찬가지.
“우와~ 여기 다 모여 있었네?”
“그러니까! 도대체 형님에게 무슨 스킬이 있길래 던전 유닛이 공격을 하지 않는 걸까?”
“바이오 던전 절대스킬이라잖아. 그 이름과 레벨도 짐작이 안되는 바이오 던전 절대스킬! 완전 사기!”
“그럼, 우린 무조건 바이오 던전은 날로 먹는 거야?”
“저번에는 그거 안됐잖아? 태초의 던전!”
“거긴 신규 타입 던전이고, 바이오 던전만 그렇겠지.”
길드원들을 포함한 팀장급 얘들이 거대한 성체 타워 내부를 이리저리 살피며 지들끼리 호들갑을 떤다.
니들이 말하는 거 지금 사라하고 테라피가 다 듣고 있거든?
그러니까,
“거기, 지역방송 끄지? 내가 주인공이거든?”
“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