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18_5
“지혜, 너! 그렇게나 우리가 우스워? 도대체가….”
들어오자마자 지혜를 다그치는 얘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뭔가 좀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얼굴이 한껏 붉어진 채 어쩔 줄 몰라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지혜. 그리고 지혜 뒤에 숨어서 허둥대는 싸이.
마치 얘네들이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대역죄인처럼 손가락질 받는 듯한 그런 분위기.
이거 지금 나한테 화풀이를 못하니까 타깃을 바꾼 것 같은데?
맞나?
오호라, 아까 금방 길수하고 눈이 마주치자, 금세 고개를 돌리는 걸 보면 분명 맞다.
“어이, 팀장님들.”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는지 시험하던 얘들이 갑자기 조용해지며,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맞구만 뭐.
“싸이, 그거 전부 가져와 봐.”
“네? 넵. 주군.”
싸이가 한쪽에 쌓여 있는 미네랄 판들을 가방에 쑤셔 넣더니 통째로 가져온다.
“여기 이 안에 1등급 아이템 19개가 들어있지.”
“꿀꺽.”
“세상에! 여, 열아홉 개!”
“무려 1, 1등급!”
입을 쩍 벌린 채, 침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이,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로 다들 맛이 갔다.
역시 내가 이럴 줄 알았지.
1등급 아이템도 이런 반응인데, 태초의 던전에서 얻은 절대등급 스킬북은 말 안해도 비디오다.
그때 쌩 까길 잘했지. 만약 그걸 오픈 했다면… 진짜 뒤집어졌겠지.
“이건 뭐, 내 마력과 행운 능력치, 그리고 싸이의 인챈트 기술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이라고나 할까?”
“주, 주군!”
말하는데 중간에 감동하지 마라.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내가 약간의 시간을 주자, 가장 먼저 길수가 흥정을 한다.
“제 직군에 맞는 아이템, 100억, 아니 300억에 사겠습니다!”
“마찬가집니다. 저도 300억!”
“저두요!”
“… 제가 돈이 모자라서… 200억에는 안될까요?”
팀장급 얘들이야 다들 돈이 빠방할 텐데, 최은지는 왜 저렇지?
잠시 잡생각이 들었지만, 결론은 이게 아니지.
“이걸 팔든, 독식하든, 버리든지 간에 이 모든걸… 지원 길드 3팀장 한지혜에게 일체 위임한다. 이상, 오더 끝! 지혜 이거 받아. 그리고 다들 나가! 나 잘거야!”
“혀, 형님!”
“길드장님!”
“아~ 왜?”
“이런 법이 어딨습니까!”
“여깄다, 딱따구리새꺄! 내가 길드장인데 누가 뭐라 그래! 꼬우면 너도 1등급 아이템 만들어서 뿌려! 됐지? 그럼 나가! 나가라니까!”
“오, 옵빵~!”
“빵은 그만 찾고 지혜 너도 나가! 나 맘 바뀌기 전에 얼른!”
내 말에 지혜가 미네랄 판 아이템이 들어있는 가방을 어깨에 둘러매고, 두 손을 모아 찌그러진 하트를 뿅뿅 날리더니 헛소리를 내뱉고는 밖으로 나간다.
“응! 잘 자! 내 꿈 꿔~.”
시발년이 뒤질라고!
내가 니 꿈을 왜 꿔!
저거 다시 뺏을까?
아니다. 그래도 조금은 귀, 귀여웠는데… 크으음.
일본 오사카 1등급 바이오 던전 나들이 입장 1일 14시간 20분 후.
“우리 예쁘고, 착하고, 몸매 좋고, 맘씨 좋은 지혜야~. 오빠가 던전 나가서 소개팅 시켜줄까?”
“꺼져.”
한득과 지혜의 대화 1.
“지혜야, 우린 어렸을 때부터 친구 사이였잖아. 그러니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나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한번 해 보려고.”
“그, 그게… 지혜야!”
미혜와 지혜의 대화 2.
“3팀장님 제가 실언을 했어요. 죄송합니다.”
“저에게 실망하셨다면서요. 아니에요. 제가 더 죄송해요. 실망을 끼쳐 드려서… 흥!”
“…….”
김은희와 지혜의 대화 3.
“3팀장님. 제가 돈이 별로 없어서….”
“음, 뭐가 필요하신데요?”
“제가 아이스 속성이니까, 아무래도 얼음의 정화가….”
지혜가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미네랄 판 하나를 꺼내 최은지에게 내민다.
“자요.”
“고, 고맙습니다. 3팀장님. 그럼 대금은 얼마나….”
“100원만 주세요.”
“… 네. 100억이죠?”
“100원! 음, 발음이 이상하네요. 천 원? 만 원?”
“… 저, 정말요? 진짜루요?”
“대신 오빠한테는 비밀이에요.”
“1팀장님요? 아니면 2팀장님?”
“그 녀석들은 제 오빠가 아니죠.”
“아, 길드장님요! 무, 물론이죠. 내가 입 꽉 다물고 있을게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흡수해요. 아, 저기 오빠 있네요. 오빠 천막 가서 흡수하면 아무도 모를… 까아악! 걸렸당~!”
허당, 황당, 얼빵 없는 지혜와 최은지의 대화 4.
난 까아악 소리치며 폴짝폴짝 뛰고 있는 지혜는 내버려두고,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최은지에게 손짓으로 이리 오라고 했다.
죽기보다 싫은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온 최은지.
커다란 두 눈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다.
그거 다 연기지?
“들어가서 흡수해.”
“… 저, 정말요? 고, 고맙습니다. 길드장님.”
“무슨, 지혜한테 고맙다고 하면 돼. 그거 내가 준거 아니니까.”
“네. 길드장님. 3팀장님! 고마워요!”
“네? 네. 어서 들어가요. 그리고 오, 오빠, 그러니까….”
“됐어. 내가 말했잖아. 그거 니 맘대로 처리하라고.”
“응! 역시 옵빵! 사랑해~.”
어쭈?
나에게 이상한 말 한마디 내뱉고 가방을 다시 둘러매더니, 저쪽으로 폴짝폴짝 뛰어가는 지혜를 보며 난 묘한 기분에 사로 잡혔다.
음, 저거 진짜 뺏을까?
왜 계속 헛소리를 툭툭 내뱉는 건데? … 어? 길수다.
폴짝폴짝 뛰어가는 지혜 앞에 길수가 똭 나타나 말을 건다.
“지혜야, 이 오라버니가….”
“닥치고 꺼져!”
지혜의 걸걸한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여하튼, 5.
일본 오사카 1등급 바이오 던전 나들이 입장 2일 12시간 40분 후.
지혜와 얘들의 재밌는 꽁트를 구경하고 줄럿들을 소환해 미네랄 캐는 것을 도와주다가, 중간에 생각난 김에 공터 뒤쪽으로 가서 가스 조각을 최대한도로 흡수했다. 물론 미네랄도 한계치까지 흡수했고.
저번 태초의 던전에서 다 써버린 가스 조각이 한계치까지 꽉꽉 차자, 그제야 지갑 두둑한 아저씨가 된 것 같다. 역시 남자는 지갑이 두둑해야 어디서든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는 법이다.
나와 싸이, 중환과 문희까지 가스를 흡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스 잔량이 꽤 남아 있는 상황.
기갑 테크트리와 바이오 테크트리를 동시에 올려 소모된 줄럿들과 어둠의 암살자, 타락한 전사, 번개주술사 등을 추가로 생산하고, 저굴링과 마법지렁이를 중심으로 바이오 유닛까지 충원시켰다.
소환 대상능력치 한계까지 소환 유닛들을 충원한 후 가슴 충만한 기분을 느끼며 천막으로 돌아가는데, 싸이와 팀장급 얘들 전원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지혜와 떨거지들이란 꽁트는 다 끝난 거냐?
아이템은?
중간에 너희들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 했었는데 이렇게 다 같이 모여 있는 걸 보니, 진짜 끝난 모양이구나. 크음.
“다들 여기서 뭐해? 미네랄 안 캐냐?”
“옵빵~.”
“… 왜?”
“들어가서 얘기하면 안 돼? 좀 문제가 있네.”
“문제는 니들끼리 알아서 해결해.”
“그 문제가 아니야.”
“…….”
그 문제는 어떤 문제인데?
그리고 내가 그걸 지혜 너에게 준 건 이렇게 날 찾아와 귀찮게 하지마, 라는 뜻도 포함돼 있거든? 이것들이 툭하면 맨날 나한테만….
“팀장급 인원은 싸이 씨와 아트 팀장님 포함 총 8명, 직군에 맞는 거 하나씩 줘도 지금 내가 가진 아이템이 13개라고. 나머지는 어떻게 해? 그리고 여기 이상한 거 있던데? 오빠도 알아?”
“이상한 거?”
이상한 거, 이상한 거라….
도대체 이상한 거란 단어 뜻이 뭔데?
아이템이 이상해봐야 아이템이지!
“싸이.”
“넵. 주군.”
“이상한 짓 했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 제가 지금까지 연습해 온 마법 회로들을 미네랄 판에 인챈트 했을 뿐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십시오!”
“… 이렇다는데?”
내가 싸이의 대답에 지혜를 빤히 쳐다보자, 녀석이 어이없어 한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해.”
“그러던가.”
감히 내 천막, 길드장 전용천막, 던전에서의 내 전용공간을 어디 편의점 가듯이 들어가 버리는 팀장급 녀석들. 그나마 싸이 혼자 끝까지 내 옆에 남아있을 뿐이다. 이상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냥 연습 삼아 인챈트 한 건데….”
…….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자 지혜가 내가 준 커다란 가방에서 미네랄 판을 하나 꺼내들고 코맹맹한 소릴 한다.
“이게 뭐게~?”
‘여신의 발걸음(흡수 가능)
출처: 아트팩터 고병찬, 등급: 1등급,
인지 좌표 이동(타임 720분)’
“역시, 아무리 봐도 진짜 대단해.”
“그치? 역시 1등급. 쇼핑몰에서 본 건 일주일짜리던데.”
옆에 있던 다른 녀석들은 미리 알고 있었는지 한마디씩 아이템 평가를 한다.
“… 그래. 텔레포트. 그래서 그게 뭐? 아무나 흡수하면 되는 거 아냐?”
“오빠, 진짜 멍청한 거 알아?”
씨발년이!
내가 1등급 아이템을 몇 개나 줬는데, 감히 나한테 멍청하다고 함부로….
“타임이 720분이라고! 무려 720분. 무슨 말인지 몰라?”
“…….”
어. 몰라.
텔레포트면 텔레포트지 쿨타임하고 도대체 뭔 상관인데!
720분이든, 7,200분이든지 간에 그냥 자신이 찍어 논 좌표로 이동하는 그따위 쓸모없는, 하찮은, 불필요한 이동 수단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아, 720분이면 12시간이니까, 하루 두 번 이동하는 건가? 그래서, 그게 어떻다고?
내가 아무 말 없이 존나 가만히 있자, 지혜의 목소리가 더 높아지며 설명 같지 않은 설명을 한다.
“도대체가 왜 이런 걸 몰라! 진짜, 내가 애를 데리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잘 들어봐. 예를 들면, 일단 텔레포터 각성자 마력이 본인 말고 다른 이들까지 충원할 수 있다고 가정할 때, 아침 9시에 사용하면 다시 저녁 9시에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말이잖아. 그러니까 이걸 역으로 말하면….”
“재택근무?”
“… 뭐, 뭔 소리야!”
맞잖아!
아침 9시에 사무실로 출근해서 얼굴만 비춰주고, 집으로 텔레포트 한 다음에 퇴근시간 전에 다시 사무실로… 아, 이건 쿨타임 때문에 무조건 야근해야 하는 건가?
“야근모드? 수당은 준데?”
“…….”
“… 형님. 농담이시죠?”
“… 푸하하하. 역시 주군! 대단한 조크입니다.”
“그치? 내가 생각해도 꽤 괜찮은 아재 개그였어.”
“…….”
“… 하… 말을 말자. 말을 말어. 됐어. 나 안 해! 진짜 내 맘대로 할 거야!”
응.
그러라고 너 준거야.
내가 귀찮은 건 딱 질색이니까. 맘대로 하셔.
뭐 그 이후에도 헤이스트, 스트렝스, 스모그 마법 아이템이 지혜 손에 나왔지만, 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아니 지혜가 그냥 가방에서 미네랄 판을 슥슥 뽑더니 이런 게 있다고 말하곤, 천막에서 나가 버렸다. 그러자 길수와 한득이가 길드원들 중 마력량이 꽤 괜찮은 인원을 선발해 별도의 팀을 구성하겠다고 하는데, 니들 맘대로 하세요.라고 말해줬다.
니들도 최상위급 던전 클리어 횟수가 얼만데 이런 하찮은, 쓸모없는 일에 날 끼워 넣는 건데?
대(大)지원 길드 팀장급이면 국내의 어지간한 중견길드 길드장급 위치다.
알아서 해라. 알아서.
괜한, 하찮은, 쓸데없는 일에 내 소중한, 금쪽같은 심력을 낭비해야겠니?
그리고 그것들, 다 쓸모없어 보이던데… 아! 내가 생각해도 꽤 괜찮은 아이템은 하나 있었다.
디그.
말 그대로 땅 파는 마법인데, 그래도 안개 만들어내는 스모그 아이템이나, 존나 빨리 달리는 헤이스트, 존나 힘이 세지는 스트렝스보다는 나아 보였다.
왜냐하면, 최소한 미네랄 캐는데 도움이 될 것 같으니까.
일단 던전 바닥에 묻혀 있는 미네랄이니 땅을 존나 쉽게 파 놓으면, 한결 미네랄 캐는 게 쉬워지겠지. 그러니까 디그 마법 아이템을 흡수한 길드원을 잘 구슬려서 앞으로 전문적으로 미네랄 캘 때 활용해라.
그것 말고는 영… 응? 잠시.
전사한테 존나 짱쎈 힘으로, 존나 빨리 움직여서, 던전 바닥에서 건져낸 미네랄을 캐라고 시키면?
오호~. 오호라.
이거 존나 괜찮은데?
미네랄 캐는데는 딱! 이다.
일본 오사카 1등급 바이오 던전 나들이 입장 3일 14시간 20분 후.
한득과 길수가 길드원들 중 몇몇의 지원자와 선발자들을 데리고 날 찾아왔지만, 니들이 알아서 하라고 말 한마디 내뱉은 후 돌려보냈다.
앞으로 던전 클리어 보상, 미네랄 캐는데 쓸 인원들까지 왜 꼭 내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데?
제발, 부디, 알아서… 알아서 좀 해라.
아주 귀찮아 죽겠다. 크큼.
늦은 저녁.
어느덧 그 많던 미네랄이 바닥을 드러낼 때쯤, 뜬금없이 미혜가 천막으로 찾아와 머뭇거리며 한마디 한다.
“저, 길드장님.”
“응. 왜?”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한데….”
“…….”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어느 누구하나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서 일부러 여쭤보는 건데요.”
“…….”
서두가 길다.
그렇게 자꾸 얼버무리지 말고 빨랑빨랑 얘기해 줄래?
나 존나 귀찮아지려고 하거든?
근데, 왜 요즘 모든 일이 다 귀찮아지는 거지?
벌써 갱년긴가?
내가 미혜를 빤히 바라보자, 머뭇거리던 입에서 드디어 본론이 나온다.
“괜히 나서는 건지도 모르겠는데요, 저… 던전 입구에 놔두고 온 인원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신지… 그래도 도덕적으로 이러면 안되는 것 같아서요. 처음엔 장난이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이건 아니다 싶더라구요. 끔찍한 일은 가급적 안 했으면 해요. 길드장님이 엄청 화난 거는 알고 있는데요. 그래도, 사람이 그렇게 막…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주제넘게 나섰다면 죄송한데… 그래도….”
“…….”
말이 존나 많다.
그리고 미혜야, 사실 나… 그거 까먹고 있었거든?
입구에서 버리고 온 씨밤바 새끼들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중간에 테라피, 아니 자폭스킬 사라에서 이제는 날개 달린 절대 자폭 스킬 사라와 싸이가 만들어낸 1등급 아이템 때문에 그놈들은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음, 던전에 들어온 지 오늘까지 포함해서 3일 반.
식량은 고사하고, 물도 없을 텐데… 설마 몽땅 뒤지지는 않았겠지?
뭐, 뒤지면 할 수 없는 일이고.
내가 그런 하찮은, 사소한 것까지 굳이 신경 쓸 이유가… 있구나.
우리가 여기 들어올 때 주변에서 상황을 지켜본 목격자만 수백 명이니, 우리끼리 이곳을 나가게 되면 아마도 꽤나 시끄러워지겠지.
아무리 범법자라고 할지라도 외국인이 국내에서 자국민을 살해했다는 여론이 퍼지면, 나뿐만이 아니라 지원 길드에도 극심한 타격이 있을 것이다.
물론 정확한 물증은 없겠지만, 던전에 같이 입장했는데, 한쪽만 나온다? 더군다나 강제로 끌려간 인원들은 다 사라지고? 그것도 일반인들 전부가?
말 안 해도 비디오고, 안 찍어 먹어봐도 똥이다.
존나 귀찮지만, 존나 하기 싫지만, 정말 아니꼽지만, 그래도 일단은 그들을 이곳에서 정상적으로 데리고 나가야 한다.
뭐, 언제 데리고 나갈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고.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도 모르는 일이겠지. 크으음.
다음날.
던전 클리어 보상 미네랄은 다 캤고, 드디어 이곳에서 나갈 때가 됐다.
하지만, 그냥 이대로 나가기에는 뭔가 존나 아쉽다.
어둠의 엘릭서로 테라피의 던전 종속의 인을 파괴한 목적과 덤으로 미네랄까지 챙긴 건 아무래도 좋은데, 씨밤바 새끼들이 문제다.
어차피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생각해 둔거는 다 무용지물이 됐지만, 그래도 이대로 끝내기에는… 음… 앞으로 두 번 다시, 절대, 반드시 이상한 생각을 하지 못하게끔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하는데, 뭐가 좋을까?
곰곰이 못 된 장난을 한참 생각하고 있는데,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온다.
음, 이건 울트라 스테이크 굽는 냄샌데?
아마도 무사히 던전 클리어 된 걸 축하하는 의미로, 지혜가 밖에서 챙겨온 울트라 사체로 길드원들끼리 거하게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려는 모양인데, 뭐 괜찮은… 울트라? 울트라!
빙고.
80명의 길드원들이 울트라 사체를 처묵처묵하고 천막과 개인물품 등을 정리하기 시작하자, 난 아트팀장 중환이와 문희를 따로 불러냈다.
“혹시 와이번 생산해 뒀냐?”
“네. 저번처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최소 10개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생산해 두고 있습니다.”
“잘했다. 조금 있다 철수하긴 할 건데, 너하고 문희가 해줄 일이 있다. 뭐 이건 약간 개인적인 일이긴 한데, 어때 괜찮아?”
“말씀만 하십시오. 괜찮습니다.”
“저두요.”
“그래. 알겠지만 던전 입구에 버리고 온 녀석들 문젠데….”
“드디어 처리하실 겁니까?”
“못 본 척 할게요.”
“…….”
어이.
지금 둘 다 무슨 생각하는 건데?
“그런 거 아니다. 그리고 일단은 데리고 나가야 해. 지금은 따끔한 맛만 보여주는 거지. 일단은 너희들이 미리 와이번 타고 던전 입구 근처에 가서 놈들을 찾은 후….”
내가 자세히 해야 할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하자, 중환이와 문희의 웃음소리가 점차 커져간다.
일본 오사카 1등급 바이오 던전 나들이 입장 5일 13시간 50분 후.
“오~ 저기 있다. 찾았습니다. 형님!”
“어. 나도 봤다. 카하하. 잘 뛰네.”
400m 앞에서 발업 저굴링 20개체들이 몰골이 엉망인 씨밤바 새끼들의 뒤를 쫒고 있었다.
물론 일부로 저굴링들의 속도를 늦춰 그냥 몰이 사냥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지만.
“하나, 둘, 셋, 넷… 일곱, 여덟. 다 살아 있는데요? 아쉽겠습니다. 형님.”
“죽지 못한 게 더 고통스러울 수 있어. 내가 지금부터 그걸 느끼게 만들어 주지. 크흐흐.”
“오빠, 진짜 변태 같아.”
“그래. 나 변태다. 이제 알았냐? 크크큭. 새끼들, 뒤지지 않으려면 존나게 달려야 할 거야.”
“그거 두 번 나면 병신입니다. 형님.”
“…….”
쩝. 길수야.
그거 아재 개그냐?
존나 재미없네.
난 저 앞에서 미친 듯이, 뛰다가 넘어져 다른 이들에게 밟히는, 거지꼴로 정신없이 도망치는 씨밤바 새끼들을 무심히 바라봤다.
하루 2시간 수면 보장, 최소한의 식량과 식수 제공, 팀을 이뤄 도망가든지 각자 뿔뿔이 흩어지든지 상관치 않는 자유의사, 저굴링에게 물리거나 뜯긴 부위를 치료해 주는 의료보험 혜택까지.
최소 3일은 놀아주마. 씨밤바 새끼들아!
감히 내 가족을 노려?
뒤졌다고 복창해!
던전 입구에 천막을 다시 친 후 삼일 동안 잘 놀았다.
발업 저굴링 수백 개체를 소환해 거대한 원을 그리듯 놈들을 둘러싸 일정 시간이 지날 때마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리면, 대충 쓰러지지 않을 정도의 휴식 시간을 주고는 지속적으로 공격시켰다.
그러자 혼자 살겠다고 따로 도망치는 놈, 이젠 아예 정신이 나갔는지 괴상한 고함과 함께 저굴링에게 달려드는 놈, 자포자기한 듯 바닥에 드러누워 맘대로 하라는 놈들의 모습에 약간이나마 아들 납치에 대한 응징이 됐다고 느끼… 기는 개뿔!
니들 입에서 제발 죽여주세요. 란 소리가 나오게 만들어 주마!
감히 내 아들과 와이프를 납치하려고 해?
죽지도 못하는, 고통의, 절망의 신세계를 보여주마. 씨밤바 새끼들!
그동안 제발 뒤지지나 말아라.
아니 뒤질 것 같으면 말해라.
한득이를 시켜 존나 축복과 힐을 퍼부어… 응? 아, 미안.
나 일본말 모른다.
그냥 고함만 계속 질러라. 뒤질 것 같으면 알아서 치료해 줄께.
일본 오사카 1등급 바이오 던전에 나들이 들어온 지 만 9일, 그리고 원래 시간으로는 대충 4박5일만에 정신이 나간, 눈이 뒤집힌, 입에 거품을 문, 시체처럼 축 늘어진 놈들을 데리고 던전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아직은 숨이 붙어 있는 시체들을 일본 각성자 협회 측으로 넘기며, 정신을 차리면, 회복이 되면, 일반인으로 다시 복귀하면, 나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이유?
이유는 별거 없어.
2차전 해야지.
어떻게 만난 인연인데, 이번 한번만 얼굴 보고 헤어지면 아쉽잖아.
그리고 아직도 도쿄, 요코하마 던전도 남았으니 얼른 치료해서 거기도 데리고 가야지. 데리고 가서 진짜로 미칠 때까지 굴리고, 굴리고, 굴려줘야지.
만약 그래도 미치지 않으면, 내가 꼭 미치게 만들어 줄 의무와 책임이….
“지원 길드장님, 죄송합니다만 혹시 중견기업 소속 타로스 길드, JJ길드, 타부길드라고 아십니까?”
한창 놈들이 구급차에 실려 가는 것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응징에 대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데, 간만에 등장한 외무차관이 느닷없이 놈들의 사주한 조직원들을 거론한다.
알지.
자~알 알지.
일단 대가리 먼저 족치고 나머지 떨거지들도 차근차근 뼈를 아작 내서 씹어 먹을 건데, 그건 왜?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왜요?”
내 반문에 외무차관이 떨리는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뭐? 왜 그렇게 이상하게 쳐다보는데?
“… 타로스 길드 소속 각성자 6명, JJ길드 소속 4명, 타부길드 소속 9명, 총 19명이 어제 모두 사망했다는 보곱니다. 이들은 전부 다, 한 달 전에 제주에 다녀왔던 인물들입니다만, 아무래도 저번의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길드장님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고….”
“헐… 지금 그 말씀 진짭니까?”
“네. 길드장님이 던전 클리어하는 동안 벌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지원 길드 소속 각성자는 여기에 있는 클리어팀 빼고는 입국한 기록이 없더군요. 호, 혹시… 외부에 다른 길드에 지시한 일이 아니신지….”
“… 지금 그 말은 내가 사주했다는 말?”
얼씨구?
절씨구?
이 아저씨도 미쳤나!
내가 지금 여기에 왜 있는지 몰라?
니들이 하도 사정사정해서 이렇게 1등급 바이오 던전 리젠 클리어 해주러 온 거잖아!
근데 뭐? 내가 사주를 해?
뭐, 물론 누가 그랬는지는 대충 짐작이 가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잖아!
의심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존나 기분 나쁜데, 감히 날 사주꾼, 아, 아니 청부살인 외탁자, 아, 이것도 아니고, 여하튼, 날 그렇고 그런 놈으로 본 거야? 응?
아니꼬운, 비꼬는, 정색한 내 물음에 사무차관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더듬거리며 할 말은 한다.
“사, 상황상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4등급 이상 고위 각성자 19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협회나 정부쪽에서 방관해서는 안 될 일이기에….”
“오호~ 구우우래? 그래서? 그래서 지금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아! 이제보니 왜 군인들이 자동화기로 무장했는지 알겠네. 어쭈? 저 뒤에는 고위급 각성잔가? 왜? 여기서 한 판 뜨게?”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쪽 군인들은 제가 데리고 온 인원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그저 사실 확인을 위한 조그만 협조를….”
“사실 확인? 좆까! 클리어팀! A1! 실제 상황이다!”
내 커다란 고함에 상황을 지켜보던 팀장급 얘들이 가장 먼저 나선다.
“A1! 실제 상황!”
“전사들 진형 갖춰! 마법사 마력 발현!”
“새끼들, 해보자고! 이데아 여신의 분노… 어? 이게 왜 이래!”
“이데아 여신의… 뭐, 뭐야!”
길수를 비롯한 전사 길드원들이 순식간에 전방에 나서서 자릴 잡고 마법사들이 마력 발현 주문을 외우려는데, 뭔가 이상하다.
“기, 길드장님! 아닙니다! 아니라구요!”
“아니긴 뭐가 아냐. 지금 날 의심하고 있는 거 맞잖아! 씨팔새끼들, 던전 클리어해 주니까 지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거지?”
“절대 아닙니다! 저흰 지금 도쿄와 요코하마 정리에도 정신이 없는 실정입니다. 절대, 절대 아닙니다!”
사무차관이 내 앞에서 소리를 꽥꽥 지르며 지랄발광을 하다가,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길드원들을 제지한다.
“왜 이럽니까? 마법사님들, 마력 풀어요! 거기 전사님들, 왜 이러세요? 아닙니다. 아니라구요! 오햅니다. 오해라구요!”
“무슨 오해! 정황상 저쪽에서 지시한 게 맞을 텐데.”
응? 뭐여?
사무차관의 고함에 누군가가 응대한다.
수백의 군인들이 둘러싼 경계에서 30대 후반의 왠 미친놈이 걸어 나오더니, 한국말로… 어? 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놈인데?
누구지?
평범한 아트팩터
7권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