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19_2
“부르지마. 닥쳐! 닥치고 그냥 죽어!”
“형님, 저도 팰까요?”
“어, 패!”
“오빠 나는?”
“너도 패! 아니 다 패!”
“콜!”
“알겠습니다!”
“이데아 여신의 안배, 퍼스널 힐!”
응?
힐?
이것들이 친구라고, 감히 봐주는….
“형님, 때릴 때 때리더라도 힐 주면서 패야죠. 그래야 손맛이 있잖습니까?”
“… 굿 잡!”
‘퍼어억!’
‘퍼억! 퍼어억!’
“아악! 너, 너는 왜? 지, 지혜야! 아아악! 거, 거긴 안 돼!”
처음엔 한득, 그 다음은 지혜, 그리고 미혜와 중환, 김은희, 최은지까지 합세해 길수의 몸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길수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온 동네에 시끄럽게 울려 퍼진다.
“주군, 앞으로 사일런스 마법진도 연구하겠습니다.”
“너도 굿 잡.”
“감사합니다. 주군.”
다음 날 오전.
어제 속 시원하게 몸을 풀었다.
그제 있었던 그 일에 대한 잡념의 찌꺼기까지 한꺼번에 다 털어버린 기분이다.
혹시, 길수 놈이 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건가?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없지.
나를 포함해 팀장급 얘들이 전부다 달려들어 길수를 구타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전사는 전사.
그렇게나 쳐 맞고도 나중에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할 때는 또다시 처묵처묵하더구만. 물론 얘들이 진짜로 던전에서 발휘하던 마력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그럴게 쳐 먹을 수가 있었지. 나도 마찬가지고.
침대에서 일어나 담배 하나 빼어 물고 화장실로 가려는데, 거실에서 도란도란 와이프와 아들 목소리가 들린다.
응?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왜 이 시간에 애가 학교를 안가고….
방을 나서자 날 발견한 아들이 아빠를 연발한다.
“오늘 무슨 요일이야?”
“… 토요일.”
“역시… 아침밥은 뭐야?”
“된장찌개.”
“굿.”
자신이 두부와 야채를 썰었다며 옆에서 쫑알거리는 와이프와 아빠, 아빠란 단어를 계속해서 읊어대는 아들까지 옆에 두고 아침식사를 했다.
팀장급 얘들이 아닌 내 소중한 가족과 함께하는 아침식사.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아침을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역시 미친 아들놈의 편지처럼 진짜 아들과 함께 놀아본지도 아주 오래전 일 같고.
그렇다면,
“음… 오늘 특별한 일 있어?”
“조금 있다가 호숙이네하고, 제환이네하고 아쿠아룸 놀러 가려고 하는데?”
“처재하고 처남네?”
“응.”
“얘들까지 전부 다?”
“응.”
“서귀포에 있는 아쿠아룸?”
“응.”
“나도 같이 갈까?”
“… 으응?”
왜?
왜, 응이라고 말을 못하는데!
으응 은 도대체 뭐야?
아니, 간만에 남편이 와이프와 아들을 데리고 같이 놀러 가겠다는데, 어째서 대답이 시원하게 나오질 않는 건데?
“지, 진짜 같이 갈 거야?”
“어.”
“갈 수는 있고? 안 바뻐?”
“바빠도 갈 거야. 감히 누가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데?”
“진짜지?”
“어.”
“진짜로 가는 거지?”
“그렇다니까.”
“… 이야~. 성준아, 오늘은 아빠하고 같이 놀러간다! 엄청 좋겠지!”
“우와아아아. 아빠 최고!”
“당연하지. 내가 원래 이쪽에선 최고란다. 크크큭.”
“헤헤. 나 지훈이네 가서 얘기하고 올게. 아빠도 간다고.”
“그래. 준비 다 됐으면 출발한다고 해.”
“응.”
아들이 신나서 옆 건물에 살고 있는 처남 집과 처제 집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와이프가 조그맣게 허밍을 하며, 아침상을 치운다.
고개를 돌리자 저 앞에서 화창한 햇살이 거실을 가득 비춘다.
식후땡이나 할까?
식후연초 불로장생이니까.
대충 나들이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와 정원 잔디밭에서 담배 하나 빼어 물려고 하는데… 응? 뭐, 뭐냐?
“니, 니들이 여기 왜 있어!”
“흥! 오빠 보러 온 거 아냐. 언니이~.”
“헤헤. 형님 보러 온 거 아닙니다. 형수니임~.”
“저흰 항상 같이 있어야죠.”
“맞아요. 이렇게 날씨도 좋은데, 길드장님 혼자서만 놀러가시다니.”
에… 그러니까 내가 와이프한테 같이 간다고 한 게, 아직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꼬모뿌~.”
“이모부~.”
“삼촌~.”
“아들!”
“한 서방.”
좌, 우 건물에서 조카네 가족들과 부모님,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나오신다. 에… 그러니까 내가 같이 가자고 한 적이… 크으음.
근처에 살면, 아니 한 울타리 안에 살면 이런 게 안좋다.
창문을 열고 고기만 구워도 집으로 찾아… 아니, 집에서 고기를 구울 리가 없잖아. 바비큐장이 따로 있는데, 냄새 나게 집에서 왜 고기를 구워?
음, 그러니까, 아마도 아들 녀석이 신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얘기를 했나 보다. 지금도 조카들과 정원을 마구 뛰어다니는 걸 보면, 아마도… 하… 됐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가면 좋지 뭐.
하지만,
“아, 쫌! 니들은 니들 가족끼리 가면 되잖아! 왜 여기 달라붙어서….”
“저희도 가족끼리 나들이 가는 거예요. 저기요.”
“응?”
어느새 얘들의 가족이 하나둘씩 우리 집으로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낚시터 정자, 평상, 정원 테이블, 주변에 서서 부모님과 장인어른, 장모님께 인사를 하며 안부를 묻고,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에… 또, 그러니까,
“우리 집 정원이 니들 만남의 장소냐? 왜 여길 맘대로 들어와!”
“흥! 치사하게. 언니한테 허락 맡았다 뭐.”
“… 하, 됐다. 버스나 불러라.”
“미리 준비시켜 놨습니다. 형님.”
옆에서 내 눈치를 살피던 한득이가 갑자기 끼어든다.
에… 또, 마지막으로 그러니까,
내가 와이프하고 서귀포를 가겠다고 한 게, 여전히 아직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저쪽 마을 입구에서 대형 리무진 버스 2대가 들어온다.
그래.
가자. 가.
기껏해야 나들이 한번 가는 건데, 같이 가면 어떻고, 따로 가면 어떠리.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오늘 하루 던전 클리어 한다고 생각하고, 눈 꼭 감고 있으면 되겠지. 암, 그렇고말고.
여하튼, 대형 리무진 버스 2대로 30여명의 인원들이 서귀포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1시간이 이렇게 길었나?
차는 왜 이렇게 막히는 건데!
언제부터 제주에서 사거리 교차로 신호를 두 번씩 받아야 하는 건데!
이게 다 외국 자본이 들어와서 제주 땅을 무작위로 사들인 결과야. 그래서 내가 외도로 이사를 갔고, 집 하나 없이… 응? 뭐야? 뭔가 앞, 뒤가 안 맞는데?
그러니까….
신나서 마구 떠들어 대는 아들과 조카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지만 버스가 터져라 웃음을 터트리는 부모님과 어르신들.
도무지 너무 시끄러워서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외도에 집을 지은 이유가….
‘우웅… 우우웅.’
또 새롭게 바뀐 핸드폰이 진동한다.
액정을 쳐다보니 간만의 홍찬이 형이다.
잠수 탄다고 하더니, 자기가 먼저 전화가 온다. 핸드폰 화면을 터치하고, 귀에 갔다대자 첫마디부터 특이하다.
“나다.”
“어.”
“… 괜찮냐?”
“뭐가?”
“일본에서 있었던 일.”
“… 괜찮고 말고가 어딨어. 우린 각성자잖아.”
“… 그래. 니 말이 맞다. 우린 각성자지.”
어떻게 일본에서의 일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날 위해 걱정해주는 홍찬이 형.
그래도 난 시크한 척, 쿨한 척 넘어갔다.
“…….”
“…….”
“할 말이 그것뿐이야? 심심했구나? 할 일 없으면 길드 운영, 다시 복귀하시지?”
“정말 괜찮은 거냐?”
“… 지금, 나 놀리는 거야?”
“괜찮을 리가 없는데, 괜찮다고 해서 하는 말이다. 니 소심한 성격하고, 쪼잔한 뒤끝을 생각해보면, 지금 이렇게 조용한 게 더 불안하단 말이지.”
“진짜 소심하고, 쪼잔한 게 어떤 건지 보여줘?”
“…….”
“이상한 말 하지 말고, 이번 달 내로 영국하고, 이탈리아 갈 수 있게 준비해 줘.”
“거긴 왜?”
“아, 쫌!”
길드장이 부길드장한테 명령을 내리면, 토를 달지 말고 즉각 이행을 해야지, 어디서!
내 신경질적인 말투에 홍찬 형이 더 신경질적으로 대답한다.
“뭘 알아야 준비를 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
“… 내가 거길 왜 가겠어? 클리어팀 다 갈 거니까, 나머지는 형이 알아서 해. 처리국하고 싸우던, 외교부하고 싸우든지 알아서….”
“나는?”
“응? 뭐?”
“새꺄! 나는? 내가 어제 길수 전화 받고 얼마나 열 받았는지 아냐? 내가 원래 각성자 4등급이었는데, 1년 반이 지나도 마력치가 그대로다. 지금 팀장급 얘들은 니가 버스 몰고 다니며 다 레벨업시켜주고, 여기서 이렇게 맨날 길드 운영이나 하고 있는 난 뭐냐고! 니가 첨에 뭐라고 했어? 1년만 하고 자리 잡히면, 나 키워준다며! 그래서 좆 빠지게 이 지랄 하고 있었는데, 지금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웬만하면 내가 아무 말 안하려고 했는데, 한득하고 길수가 벌써 날 추월했다고 자랑질이라고! 부길드장이 4등급인데, 팀장급 얘들이 나보다 마력치가 더 높으면 뭘 어쩌자는 건데! 말 나온 김에 물어보자. 난? 나는? 도대체 언제 버스 타는데!”
홍찬 형의 핸드폰 터져라 스킬이 발휘된다.
아, 원래 이게 목적이었구나.
날 위한답시고 물어볼 사람이 아닌데, 웬일인가 싶긴 싶었다. 더군다나 길수가 홍찬이 형한테 전화해서 꼬치꼬치 고자질하면서, 메롱메롱 거리며 속 뒤집어지게 자랑질을 쳐 했겠지.
안 봐도 비디오고, 안 찍어 먹어봐도 똥이다.
그나저나, 벌써 홍찬 형이 지원 길드 운영을 한지 1년 반이 지났구나. 난 그저 던전만 클리어하러 다닌다고 전혀 신경 쓰지 못했었는데. 역시나 홍찬 형.
“… 이번에 영국하고 이탈리아 갈 때 형도 같이 가. 그럼 됐지?”
“지, 진짜지? 나중에 딴 말하면, 뒤진다?”
“대신, 길드 운영 차질 안 생기게 확실하게 인수인계 해놓고, 아니, 이 기회에 똘똘한 사람 여러 명 뽑아서, 형 일 넘겨. 앞으로 가급적이면 클리어팀에 끼고, 대충 그렇게 하면 형 등급 있으니까 금방 레벱 업….”
“그러지 말고, 그냥 나 제주 내려가면 안 돼?”
“그걸 왜 나한테 허락 맡아? 형수님은 뭐래? 얘들은?”
“와이프야 예전부터 찬성했지.”
“그럼 됐네 뭐.”
“좋아! 그럼 니가 살고 있는 근처로 간다. 근처에 내놓은 집 있냐?”
내놓기는!
집터를 기준으로 왼쪽은 길수요. 오른쪽은 한득, 뒤쪽은 지혜, 길 건너편은 김은희와 최은진데. 그리고 그 뒤쪽으로는… 하, 됐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문제긴 문제다.
“왜 말이 없어? 그냥 건물을 올릴까? 그러자면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집을 사든, 짖든지 간에 그건 형이 알아서 하고!”
“콜! 나 최대한 빨리 내려가마. 영국하고 이탈리아라고 했지.”
“응.”
“이번 달 내로 간다.”
“어.”
“그럼 끊는다. 갑자기 막 바빠지려고 하네.”
“…….”
뚝.
일방적인, 뭔가 의사전달이 잘못 된 것 같은, 원래 목적이 무엇인지 애매한 전화를 받고, 내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찰을 하고 있는데, 통로 옆에서 아들과 같이 앉아 있던 와이프가 묻는다.
“큰아주버님 전화였어?”
“…….”
도대체 와이프에게 큰아주버님이란 존재가 누구냐?
“제주로 내려온데?”
“아마도.”
“집 구한데?”
“어.”
“우리 집 많이 비는데.”
“… 안 돼. 절대 안 돼. 꿈도 꾸지마.”
“가족 세 식구가 사는데, 지하 1층을 포함해서 3층까지 다 쓸 일이 뭐가 있어? 전기세하고 이것저것 합치면 관리비도 꽤나 나오던데. 그러지 말고 2층이나 3층을 주면….”
“기각! 내가 그걸 누구 주려고 지은 게 아니잖아!”
“알아. 근데 자기 없을 때는 집이 너무 커서 무섭단 말야. 건물 한 동에 성준이하고 나만 있다고 생각하면 가끔씩 오싹오싹 해. 자기 외국 나가면 대충 한 달은 집에 못 들어오는데, 그럴 때마다 옆 건물에서 자. 엄마하고.”
“…….”
음… 그러니까, 음….
하, 모르겠다. 일단 접자. 대가리 아프다.
집이 너무 커도 문제가 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왜 요즘, 뭔가를 생각하면 이렇게 머리가 아픈 거지?
대가리 속에 회충이 들었나?
회충약을 먹어 봐?
늦은 오후.
홍찬이 형 전화 이후로 거의 정신을 못 차렸다.
내 아들 흉내를 내는 미친놈의 권유에 따라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려고 나들이를 나왔는데, 이게 가족단위 나들이인지 단체 여행인지 개념이 안 잡힌다. 대가리가 지끈거리기도 하고.
점심 전에 도착한 아쿠아룸을 대충 훑어보고, 돌고래쇼 관람 후 근처의 맛집에서 대충 처묵처묵하고, 다시 30여분을 이동해 월드컵경기장에 있는 워터파크에 들려 대충 풍덩풍덩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그래도 나름 충실히 아들과 놀아주려고 노력했으니 애가 어떤 기분인지 물어봤다.
“아들~ 오늘 재밌었어?”
“응. 아빠. 근데 놀이 공원 가고 싶어.”
“놀이공원? 탑동?”
“아니. TV에 나오는 놀이공원. 청룡열차 타고 싶어.”
“그 서울에 있는 놀이공원 있잖아. 거기 가고 싶다는 말이야.”
옆에서 와이프가 아들 말을 번역해준다.
“서울? 아, 거기….”
음… 가는 건 어렵지 않지.
그냥 전세기를 타던, 국내선을 타던, 대충 제주에서 2시간이면 아들이 말하는 놀이공원에 도착할 수 있겠지.
근데, 그런데 말이야. 거긴 오늘 간 아쿠아룸보다 사람이 더 많을 텐데?
오늘도 봤잖아. 내가 왜 대충 훑어보고, 대충 처묵처묵하고, 대충 풍덩풍덩 했는데?
내가 신비모드, 시크릿 모드로 신변을 일부로 감추는 건 아니지만, 이 아빠가 한국에서 꽤나 유명하단다.
40대의 유부남에 아들까지 딸려 있는 놈이 인기가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만, 국내 길드를 대상으로 길드원 수에 따른 던전 클리어 보상 순위를 매달 매기는 모 사이트의 잠정적인 매출액만 해도 이 아빠가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지원 길드의 길드장이며, 국내 재혼남 인기 순위에서 절대적인 1위를 하는 대단한 사람이란다. 물론 엄마가 이걸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러니 공공의 장소, 어디를 간다하더라도 사람이 당연히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놀이동산 같이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은 가급적… 으응? 자, 잠시.
놀이동산?
워터파크?
아쿠아룸?
맞아!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
역시 난 천재야!
사람 많고, 복잡하고, 멀리 있는, 그런 데를 왜 가?
그냥 집 근처에 지으면 되지!
다음 날.
기존 새 집을 지을 때 여러모로 행정적인 도움을 준 시청 건설과장에게 전화를 하려다 그만 뒀다. 도지사나 시장도 아니고 일개 시청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보기엔, 내가 너무 급이 높다. 크음.
아니, 이 사실 같지 않는 사실은 핑계고, 귀찮아서다.
상황을 설명하고, 인근 부지를 둘러보고, 행정적인 절차와 건설업체 선정, 각종의 신고들과 운영에 필요한 인력 충원 등등.
돈이 문제가 아니고, 뭔가를 하기엔 내가 너무 귀찮다.
그냥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게… 오호.
홍찬이 형 시키면 되겠네.
원래 그 사람이 이런 쪽으로는 빠삭하니까, 제주 내려온다고 했으니,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내가 정말 귀찮으니까, 홍찬이 형 시키면 된다.
원래 가장 높은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이것저것 시키고, 그에 대한 관리, 감독과 믿음을 보여주면 되는 거다. 괜히 내가 직접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면, 당사자들이 피곤해 한다.
그러니까 난, 대충 상황을 설명해 주고 알아서 하라고 하면, 끝.
대가리 아프거나, 몸이 지친다거나, 신경이 많이 쓰인다는 것들은 홍찬이 형 몫이지, 내가 감당할 일이 아니다.
여하튼, 홍찬 형이 빨리 제주로 이사를 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맘 놓고 부려먹지. 크으음.
점심 식사를 마치고 3층 테라스에서 고급 원두커피 향을 음미하며, 어둠의 엘릭서 수급과 사라의 날개, 그리고 던전 클리어에 대한 계획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데, 도우미 아주머니가 날 찾는다.
“손님 오셨습니다. 회장님. 사모님 말씀으로는 큰아주버님이라 하시는데요. 2층 서재로 모실까요?”
“… 네. 그래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차는 어떤 걸로 준비할까요?”
“홍차 주세요.”
“네. 그럼.”
큰아주버님?
그럼 홍찬 형인가?
에이, 설마. 어제 통화했는데 바로 오늘 내려오는 사람이 어딨어?
본인이 육지에서 하는 일도 있… 기는 개뿔. 그 사람 잠수 중이었지.
그래도 벌써 내려왔다고?
사전답사인가?
잘됐네 뭐. 안 그래도 시킬 일이 생겼으니… 난 남아있던 커피를 원샷하고 자리에 일어나 2층 서재로 향했다.
“뭔 바람이 불어서 벌써 내려와?”
서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홍찬 형이 뜨거운 홍차를 후후 불어가며 조신하게 마시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나 어젯밤, 꼬박 샜다. 도통 잠이 와야 말이지. 그건 그렇고 이 근처는 왜 이리 땅값이 비싸냐? 어째 제주 촌 동네가 내가 사는 동네보다 땅값이 더 비싼 건데?”
“제주 촌 동네? 얼씨구, 육지 촌 동네 사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해? 그리고 뒤로는 한라산, 앞으로는 바다가 보이는 뷰를 가진, 공항에서 15분, 초, 중학교 다 있고, 대형마트를 비롯해 편의시설이 즐비한 이곳이….”
“내가 잘못했다. 좀 닥쳐줄래?”
“크음. 제주 무시하지 마셔. 최근에 제주에 살려고 육지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중국을 비롯해서 외국 자본이 마구 들어오면서 땅값이 많이 오르기는 했지만, 아직은 괜찮아. 더군다나 산과 바다가 있고, 물 좋고, 공기 좋은 이런 곳에서 살면, 심신이 안정되고….”
“아, 쫌! 닥치라니까!”
“크으음. 그니까 무시하지 말라고. 크큼.”
“새끼. 여하튼 뭐 한마디 하면, 꼭 잔소리만 늘어놓지. 됐어. 됐고, 진짜 이 근처 내놓은 집이나 건물 없냐? 막상 건물 지으려니까 아무래도 시간이….”
집에 도착하기 전에 인근 부동산이라도 들렸나?
땅값, 집, 건물 얘기하는 모양새가 아무래도 미리 살펴본 것 같다.
“그러지 말고, 여기 2층하고 3층 살펴봐.”
“엉? 왜?”
“여하튼, 한 바퀴 돌아보고 와.”
“이유를 말해줘야 보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
음, 말해줘?
뭐 어차피 금방 눈치 챌 사람이니까, 미리 말해 주는 게 낮겠지.
“앞으로 형도 던전 버스 타러 다니면, 나처럼 집에 거의 없겠지?”
“그치. 아무래도 던전 클리어하러 돌아다니면 그렇게 되겠지. 근데 그게 왜?”
“그럼, 형수님은 애들하고만 있으면 불안하지 않데?”
“그런 말은 없었는데?”
“지금이야 던전 안 들어가니까 그런 거고! 예를 들어 일주일이나 2주일, 아니 한 달 동안 집에 없다고 가정 하면?”
“그, 그야….”
“불안하지?”
“… 아무래도.”
“내가 돈 들여서 이렇게 건물 짓고 다 같이 모여 사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과시욕, 뭐 이런 거?”
“… 음….”
“2층하고 3층 올라갔다 와 봐.”
“그러니까, 도대체 왜… 어? 너 혹시. 자, 잠시만 기다려!”
내 말에 홍찬 형이 뭔가 생각났는지, 거칠게 쿵쿵거리며 밖으로 나가 여기저기 살펴보기 시작한다.
음, 2층을 선택하면 층간 소음이 발생하려나?
3층을 줘?
잠시 후.
“음… 저번에도 느낀 거지만 진짜 잘 짓긴 잘 지었다. 몇 평이냐?”
“평수가 중요해?”
“아니.”
“방 개수하고 구조는?”
“네 식구 사는데, 한 층에 방만 7개면 차고 넘치지.”
“화장실, 욕실, 사우나 다 봤어?”
“어. 3층 야외 테라스 죽이더라.”
“둘 중 하나 골라. 2층이나 3층.”
“음… 둘 다?”
“… 그냥 건물 지어. 올해는 지나가겠네.”
“농담이다. 농담. 그나저나 3층이 끌리긴 하는데, 그렇게 되면 넌? 테라스 안 써?”
“옆에 건물 몇 개 더 올리지 뭐. 괜찮아.”
“…….”
“… 왜?”
뭐?
뭐가?
왜 그렇게 입에 바람이 잔뜩 들어가서 얼굴을 부풀리고 그래?
복어야?
“그리고 근처에 놀이공원하고 워터파크, 아쿠아룸 지을 거야. 그건 형이 도나 시청 담당자하고 알아서 진행해. 내 이름 팔아도 되니까 처음에만 신경 쓰면 될 거야. 이번 달 안에 서류 같은건 다 끝내자고.”
“놀이공원? 워터파크? 그건 왜?”
“제주에 있는 놀이공원이라고 해봐야 바이킹하고 탈거 몇 개밖에 없어. 규모도 다 그만그만하고. 육지처럼 대규모로 지을 거 아냐. 그냥 성준이가 놀 수 있을 정도로만. 아, 근처 동 주민들도 이용하게 할 거야. 그러니까 대충 형이 알아서 해. 돈은 걱정 말고.”
“…….”
홍찬 형이 한참이나 멍하니 날 쳐다본다.
왜?
내가 좀 잘나긴 했지? 쿠헤헤헤.
3주 후.
홍찬 형 가족 네 식구가 제주로 내려왔다.
성준과 동갑내기인 홍찬 형의 아들 홍동수, 두 살 어린 귀여운 딸 홍진아, 그리고 나와 동갑인 형수님, 와이프와 함께 저녁식사와 함께 반주를 곁들여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느닷없이 놈들이 쳐들어왔다.
“어니이이~.”
“혀영수니이임~.”
“어찌 저희만 빼고….”
“부길드장님, 제주 입성을 축하드립니다!”
“형님! 저는 왜….”
난 전화 안했다.
분명 홍찬 형도 전화 안했다고 했다.
그럼, 도대체 너희들은 어떻게 알고 이렇게 쳐들어오는 건데!
역시, 역시나 한 곳에 모여 살면 이런 게 안좋다. 쩝.
이틀 후.
기존의 던전 클리어팀에 새롭게 한자리를 차지한 홍찬 형과 각성자 협회 요원, 외교부 직원 몇몇과 함께 제주국제공항에서 전세기를 이용 영국으로 출발했다.
출발하고 30분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길수가 홍찬 형에게 던전 클리어 시 주의할 점을 지속적으로 세뇌, 팀의 이동, 공격, 방어, 비상상황에 대한 진형과 오더를 설명하는 대신, 무조건 자기 뒤만 따라오라고 큰 소릴 뻥뻥 치는 걸 보고, 시원하게 뒤통수를 갈겨주었다.
할 거면 잘 하던가!
어차피 홍찬 형도 4등급 후반의 능력치를 가진 전사.
그 정도의 눈치나 실력은 길수 니가 각성하기 전부터 키워왔던 인물이다.
길수 니 걱정이나 해라. 할 줄 아는 게 미네랄 캐는 일 밖에 없으면서. 씨밤바쌕.
기내식 같지 않는, 꽤나 먹음직스런, 꽤 괜찮은 식사를 두 번 더하자,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영국각성자 협회 요원들과 정부쪽 인원들, 수백 명의 군인들과 함께 대형버스로 이동하길 2시간여.
브라이튼 해안가 인근의 신규 던전에 도착해 마지막으로 인원, 포션, 식량, 식수, 비상물품 등을 체크하고 던전에 입장했다.
영국 브라이튼 해안가 신규 던전 클리어 입장 5분 후.
“A2 대형. 진형 갖춰!”
“전사들 12시부터 2시까지, 앞으로 나와!”
내가 던전에 입장함과 동시에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길드원들이 고함이 울린다.
전사들이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자, 난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을 했다.
“프롤브 1개체 소환!”
[띠링! 프롤브 1개체를 소환합니다.]“수정체 생성, 게이트웨이 생성, 발업 코어, 드라칸 코어, 랜드 코어 생성!”
‘파…치…치직!’
“셔틀 생산! 랜드 코어 생성, 셔틀 생산! 랜드 코어 생성, 셔틀 생산….”
프롤브를 소환해 테크트리를 올린 후 한창 랜드 코어에서 셔틀을 생산하고 있는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홍찬 형이 다가와 한마디 한다.
“예전처럼?”
“당근.”
“셔틀? 던전 유닛도 안 보이는데?”
“공격용이 아니야. 이동용이지.”
“무, 무슨 말?”
“싸이한테 물어봐. 마법 회로 다 됐냐고.”
“…….”
답답하네, 이 아저씨.
하긴 대충 1년 반 만에 던전에 입장한 거니, 지금까지 정형화된 대(大)지원 길드 던전 클리어 방식이 이상하게 느껴질지도.
더군다나 여긴 신규 던전. 아마 홍찬 형은 신규 던전이 처음이겠지?
“싸이!”
“… 넵. 주군!”
내 부름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놈이 냉큼 뛰어온다.
“마력 추적 마법 회로 다 됐냐?”
“물론이옵니다. 주군.”
“셔틀 생성 다 되면 팀별로 탑승해서 바로 움직인다. 어차피 여긴 빈 던전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