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1_3
갑작스런 놈의 태도에 난 상당히 당황했다.
지금 뭐하자는 거지?
이 새끼가 미쳤나?
“아~ 씨팔! 생각하면 할수록 열 받네. 초짜 땜에 손해가 얼마야? 10등급 던전이면 타이틀만 대충 1억은 떨어질 건데… 아유~ 씨팔!”
뭐?
타이틀?
1억?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런데 기갑 던전 10등급짜리가 그렇게나 돈이 되는 거야?
기갑 던전은 신혼여행 때 관람해 본 게 태어나서 처음이었고, 각성자로 입장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네이브에서 검색한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어떻게 할 건데? 따라다니면서 쓰레기라도 주워 먹을 거?”
“… 어이. 현 가. 내가 지금 심히 당황스러워서….”
“좆까고 있네.”
“뭐라고?”
“좆까지 말라고! 아저씨! 내가 예전 그 놈처럼 보여? 언제 적 추억을 곱씹는데. 솔까 여기서 뒤지면 그냥 개죽음이야. 왜? 한번 붙을까? 죽여줘? 응?”
놈의 오른손에서 거대한 대검이 생성되더니 날 향해 겨눈다.
“현 과장님! 저기 제주지부 직원 있습니다!”
“알고 있어. 그래서 내가 이렇게 참는 거고! 씨팔! 좆도 아닌 새끼가 던전 타이틀 먹으니까 그렇지. 이게 뭐야! 모양 빠지게.”
“협회에서 타이틀 우선 협상권 줄 껍니다. 그러자고 데려온 거 아닙니까? 빨리 정리하고 나가시죠. 제가 오늘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아… 진짜 옛날 생각나네. 씨팔! 그래도 옛 기억 살려줘서 봐준 거니, 그렇게 찌그러져 있으쇼. 푸하하하….”
놈과 젊은 청년이 저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자, 난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이게 뭔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옛날 당구장 알바 할 때 술 한 잔 얻어먹거나 돈을 빌리기 위해 나에게 아양을 떨어대던 현 가 놈이 정말 맞는 건가?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었지?
가슴은 주체 없이 뛰고, 얼굴은 엄청 화끈거렸으며, 손을 부들부들 떨린다.
등 뒤로 식은땀이 나고, 콧물과 입가에 침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흐른다.
“저… 지금 상황에서 이런 말 하긴 뭐합니다만,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 제주지부 지원팀 현태민이라고 합니다. 일단 진정하시죠. 여기, 물 좀 드세요.”
벌벌 떨리는 손으로 500ml짜리 물통을 잡았다.
몇 번이나 뚜껑을 열지 못하자 옆에 있던 20대 후반의 사내가 대신 열어줬다.
생수 하나를 거의 원샷 하자 조금이나마 이성이 돌아왔다.
“아리아길드 제주지부 현 과장이죠. 나이는 35. 전삽니다. 등급은 8. 나이에 비해 등급과 능력치는 높은 편이지만, 성격이 좀… 그렇죠. 약한 자에겐 한없이 강하고, 강한 자에겐 한없이 비굴한… 전형적인 소인배입니다. 물론 알고 계시겠습니다만….”
난 손으로 코를 한번 푼 후 바지에 대충 딲고 일어섰다.
참았던 갈증이 해결되었는지 조금은 진정이 됐다.
“고맙습니다. (주)OO정보기술 한지원 팀장입니다. 여기 명함….”
“… 직장인이세요?”
“네. 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세상에….”
대충 1시간이 되지 않아 던전은 클리어 됐다.
밖으로 나와 제주지부 지원팀 현태민이라는 직원이 그놈들과 몇 분 동안 대화를 하더니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나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네주며 이번 주까지 지부로 찾아오라고 한다.
던전 타이틀 관련이라고 하는데, 그게 뭔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는다.
혼자 남겨진 후 해안도로를 터벅터벅 걸으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았다.
우연찮게 입장한 10등급 기갑 던전.
득도 있었고 실도 있었다.
아니, 얻은 것보단 잃은 게 더 많았다.
던전에 우연히 입장한 거라 알고 있는 게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내 속에 꽉 들어찬 상실감과 집 나간 자존심은 날 힘들게 했다.
더러워진 정장에 희끗거리는 자국, 얼굴엔 눈물인지 모를 얼룩이 묻어 있었고, 내 손엔 제주지부 지원팀 현태민이라는 각성자 협회 직원의 명함이 들려 있었다.
난 한참이나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봤다.
참 넓다.
제주 바다가.
잠시 후.
“무슨 일 있었냐?”
“형. 오늘은 그냥 술 벗 해줍서.”
“… 알았다. 한잔 하자.”
“네.”
소맥으로 항상 시작하던 저녁자리에 난 맥주 글라스에 소주를 가득 채웠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 대신에 쌈무 하나 집어먹고 다시 소주병을 들었다.
“너… 그따위로 술 먹을 꺼면, 나 간다.”
“…….”
“뭔 일인진 몰라도 안주하고 같이 먹으라. 속 버린다.”
“… 크큭.”
참았던 눈물이 흐른다.
몇 개월만 더 지나면 내 나이 마흔인데, 이렇게 속절없이 눈물이 흐른다.
도대체 내가 뭔 잘못을 한 걸까?
내 잘못이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이거는 아니지 싶다.
1년 열두 달, 365일.
그렇게 크게 잘못한 것 없이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왜 이렇게 억울하고 속이 상할까?
너무나 속이 상해 내 몸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
* * *
다음날.
일어나 보니 해가 중천이다.
지끈거리는 머리로 핸드폰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전 11시 38분.
좆 됐다.
좆 된 건 좆 된 거고, 일단 일어나 시원한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킨 후 화장실로 들어가며 담배 한 개비를 빼어 물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집 근처 중국집에서 얼큰한 해물짬뽕으로 해장을 마쳤다.
그래도 머리가 지끈거리자 편의점에서 숙취음료까지 원샷 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다들 점심 먹으러 나간 상태.
인터넷으로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 제주지부 위치’를 검색했다.
일도지구 선관위 사무실 3F.
직원들이 사무실로 들어오자 얼굴만 비추고 다시 나왔다.
택시를 잡아타고 선관위 사무실까지 대략 20분.
제주는 이게 좋다.
산과 바다가 있고, 거리가 아무리 멀어봐야 1시간이면 넉넉하다. 그게 제주시에서 서귀포까지라도.
명함에 찍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네. 현태민입니다.”
“수고하십니다. (주)OO정보기술 한지원 팀장… 은 맞고, 어제… 그러니까 기갑 10등급 던전….”
습관은 무서운 거다.
공적인 일에 항상 신분을 먼저 밝히는 게 정해져 있어 나도 모르게 소속이 튀어나와 버렸다.
통화를 마치고 3층으로 올라가자 엘리베이터 앞에 어제 본 직원이 마중 나와 있었다.
“빨리 오셨군요. 이쪽으로….”
안내를 따라 사무실 내에 회의실 비슷한 곳으로 들어가자, 잠시 후 커피와 40대 중반의 남성이 직원과 함께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 제주지부 지원팀 팀장 고용석입니다.”
“네. 한지원입니다.”
서로 명함을 꺼내 주고받는 사이, 현태민이란 직원이 서류철을 펼치고 몇 장의 종이를 나에게 넘겨준다.
“일단 이것 먼저 보시고 말씀하시죠. 중간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 주십시오.”
“네.”
간단한 보고서였다.
던전 발생 위치, 시간과 등급.
그리고 내가 최초 던전 입장 각성자, 클리어 각성자 아리아 길드 한… 씹어먹을 놈.
“어제 발생한 기갑 10등급 던전은 아시다시피 아리아길드 제주지부 현지훈 과장 외 1명이 클리어 하였습니다. 인정하십니까?”
“네.”
“그럼, 던전특별법 및 각성자특별법에 따른 최초 던전 입장 각성자 타이틀 협상권은 귀하에게 없다는 것도 인정하십니까?”
“네.”
“됐습니다. 여기에 서명하시고… 여기도.”
타이틀 협상권은 말 그대로 던전에 대한 소유, 관리, 운영하는 일종의 계약이다.
물론 자격이 되지 않거나 등급에 따라 클리어하는 조직이 여러 군데이면 지분율(%)로 나누어 먹는다.
당연히 던전에서 나오는 던전 클리어 보상 미네랄은 타이틀 협상을 마친 업체나 기업에서 독점하며, 클리어 기여도에 따라 배분하기도 한다.
또한 높은 등급의 던전, 5등급 이상은 기갑, 바이오 던전은 등급으로 칭하지 않고 던전에 명칭을 부여하는데 여기서 나온 말이 타이틀 던전이다.
즉, 유명한 던전은 등급 대신 클리어 한 기업이나 단체에서 정한 타이틀을 붙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성 던전은 바이오 던전으로, 4등급 던전이다.
대기업 사성의 전자사업부와 던전 사업부가 합심해서 세운 사성길드에서 클리어하여 그들의 회사명을 이었다.
“… 그리고 한지원님은 아직 각성자 라이센스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맞습니까?”
“네. 각성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요.”
“직업군과 레벨은 어떻게 됩니까?”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
“사실은… 저도 잘 몰라서요.”
“그렇군요. 4층에서 각성자 능력 시험을 볼 수 있는데, 라이센스 발급을 위해 측정에 응하시겠습니까?”
“…….”
“비용은 저희가 부담하겠습….”
“네. 하죠.”
일단 100만 원 벌었다.
그리고 측정한 후 다시 얘기해 보자.
잠시 후.
“하….”
협회를 나와 횡단보도 앞에서 손에 쥔 각성자 라이센스를 쳐다봤다.
각성자 라이센스는 신분증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라이센스 가운데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 로고가 선명히 박혀 있고, 좌측 위로는 내 사진과 주민등록번호, 오른쪽에는 직업군과 능력치, 등급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냐.
10등급인데.
각성자가 10등급이면 말 그대로 거의 일반인이다.
힐러나 성직자 직군이면, 10등급이라도 병원이나 한의원에서 서로 데리고 가려고 아우성이겠지만, 난 마법사 직군. 거기에 아트팩터로 판명되었다.
더군다나 능력치는 고작 4.
1년마다 갱신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각성자 10등급 평균 능력치가 20임을 감안하면 형편없는 수치… 어?
자, 잠시만… 능력치가 4 라….
“상태창.”
[아트팩터: 한지원(Lv-1)국적/소속: 대한민국/없음, 나이: 39, 신장/체중: 176cm/84kg,
민첩: 1, 지구력: 1, 힘: 2, 체력: 1,
지능: 2, 행운: 1, 인벤토리: 1
소환 대상 능력치: 4(프롤브), 보유 아트팩트: 미네랄 조각(흡수) 20]
“음… 이, 이거 왠지….”
느낌이 이상하다.
뭔가 알 듯 말 듯.
일단 레벨 업하는 방법부터 찾아봐야겠다.
사무실로 돌아와 업무를 보다가 6시가 넘어가자 퇴근 한 뒤, 내가 찾은 곳은 집 근처 공원… 은 아니고, 공터.
그래도 주변에 이름 모를 나무들과 벤치, 운동기구들이 있어 내가 자주 찾는 곳이다.
공터 구석에 있는 바위에 엉덩이를 붙인 후 담배 하나 물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일단 던전에서 프롤브 소환하는 것까지 됐고, 이제는 흡수한 미네랄 조각을 어떻게 사용 하느냐가 문제인데….
혹시?
“음… 미네랄 소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냥 한번… 허, 진짜 된다.
어제 조그만 프롤브가 물고 온 미네랄 조각이 내 손에 잡힌다.
“미네랄 소환, 소환, 소환, 소환. 아 귀찮아. 그냥 한꺼번에 다 소환되면 얼마나….”
된다. 한꺼번에 스무 개의 미네랄이 소환되자 알림이 울렸다.
[띠링! 미네랄 20개로 2개의 수정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합성하시겠습니까?]“어? 이게 뭐야?”
[띠링! 수정체 2개가 생성되었습니다. 보유 아트팩트 총량이 증가합니다.] [띠링! 포스, 배터리, 게이트웨이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띠링! 소환 능력치가 증가합니다.]“왜? 뭐, 뭔데! 뭐가? 내가 뭘 했는데!”
정신없이 울려대는 알림에 벌떡 일어나며 소리치자, 저쪽에서 운동하고 있던 아줌마들이 쳐다본다.
뻘쭘해하며 다시 바위에 앉아 심호흡했다.
뭔가 정신없이 울려대는 알림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알림을 상기하며 더듬거렸다.
“사, 상태창”
[아트팩터: 한지원(Lv-1)국적/소속: 대한민국/없음, 나이: 39, 신장/체중: 176cm/84kg,
민첩: 1, 지구력: 1, 힘: 2, 체력: 1,
지능: 2, 행운: 1, 인벤토리: 1, 수정체: 2,
건물: 3(포스, 배터리, 게이트웨이)
소환 대상 능력치: 12(프롤브), 보유 아트팩트: 미네랄 조각(흡수) 0]
“그렇치!”
난 벌떡 일어나 미친놈처럼 팔짝팔짝 뛰었다.
상태가 업그레이드 됐다.
건물과 수정체란 특성이 새로 생겼고, 소환 능력치는 8이나 증가했다.
뭐 여전히 소환 대상자는 프롤브밖에 없지만.
잠시 진정한 후 흐뭇하게 상태창을 바라보고 있는데….
‘우우웅… 우우웅….’
와이프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 왜?”
“자기 각성자 됐어? 정말? 진짜? 등급은? 지금 어디야? 사무실? 퇴근 핸? 집에 오는 중?”
이 여자가 어떻게 알았지?
그리고 뭔 말을 이렇게 빨리 하는데?
“… 집 옆 공터에 있는….”
전화가 끊겼다.
그리고 3분이 채 되기도 전에 저쪽에서 와이프가 손을 벌리고 뛰어온다.
OO은행 유니폼 그대로, 환복도 하지 않고 퇴근 하자마자 나에게 전화를 한 것 같다.
아들은?
달려오던 속도로 그대로 내 품에 안겼다.
아니 충돌했다.
“자기! 각성자 됐어?”
“… 어.”
“진짜?”
“응.”
“라이센스 받았어?”
“어.”
“어디?”
난 지갑에 있는 각성자 라이센스를 꺼내 와이프에게 보여줬다.
“와~ 진짜네. 어디보자. 이게 그 각성자들만이 만들 수 있다는 라이센스… 10등급이네?”
“어.”
“능력치가… 4 네?”
“응.”
“… 그래도 각성자잖아. 그치?”
“어. 그런데 나 각성한 거 어떻게 알았는데?”
“집 현관문에 각성자 협회 우편물 왔던데? 그거 보고 알았지.”
이 협회 새끼들은 왜 이리 일 처리를 빨리 하는 건데?
그리고 우편물은 사무실로 보내… 아, 그럼, 사무실 사람들이 알겠구나… 크으음.
그래도 그날 밤, 간만에 와이프와 같이 옆에서 잠을 잘 수… 크큼.
알아서 생각하시길….
* * *
며칠 후.
오후 업무를 보며 퇴근 시간 전까지 제주도내 모든 던전을 검색한 후 검색 결과를 열심히 적었다.
기갑 던전은 이번에 생성된 용담동과 아라동, 서귀포시 법환동, 성판악, 어리목 등 총 십여 개가 넘게 있었고, 바이오 던전은 한림, 애월, 표선, 성산에 각각 하나씩 있었다.
그 중 성판악 기갑 던전이 8등급이고, 한림 바이오 던전은 9, 나머지는 다 10등급이다.
각성자 협회에서 관리하는 게 대부분이었고, 저번 씨팔색끼가 있는 아리아 길드 제주지부에서 관리하는 게 두 곳, 천상 길드 제주지부와 울트라 길드가 각각 한 곳씩 맡고 있었다.
“던전을 들어가 봐야 하는데… 그래야 미네랄을 모으고 수정체를 만들 수 있으니….”
난 사무실 흡연실에서 커피 한잔과 담배 한 개비, 그리고 검색결과를 훑으며 중얼거렸다.
던전에 들어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프롤브로 미네랄을 모을 수 있을 텐데….
문제는 내 능력치로는 어림도 없다는 거다.
10등급 각성자들의 평균 능력치가 20대인 반면, 난 고작 4.
이번에 수정체 2개를 만들고 나서 12가 되었지만, 그래도 다른 각성자들보다 훨씬 낮은 능력치에 날 끼워주는 던전 클리어 파티는 없을 것이다.
그러지 말고 승찬 형이 빌려준 돈으로, 현질 할까?
알 수 없는 유혹에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는데,
‘우웅….’
경환 형한테 카똑이 왔다.
‘끝나고 데리러 갈까?’
‘ㅇㅇ. 옵서.’
‘알았다. 도착하면 전화하마.’
‘ㅇㅇ.’
오늘은 금요일이다.
금요일은 불금.
당연히 멤버가 모이는 날이다.
그리고 내일은 토요일.
낚시 가는 날이고….
바쁘다.
항상 만나는 당구장에 경환 형과 같이 도착하자, 승찬 형과 상준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빨리 왔네? 오늘 일 일찍 끝난?”
“어. 오후엔 쉬언.”
편을 갈라보니 오늘도 승찬 형과 같은 편이다.
“오늘은 잘 치라.”
“공을 잘 줘야 잘 치지….”
음, 괜찮다. 산뜻한 출발이다.
두 번째 턴에 11점이나 쳤다.
세 번째는 7점.
경환 형의 쌍욕이 들린다.
결국 한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저녁내기 당구에서 이겼다.
우린 이긴 팀이 당구비를 내기 때문에 카운터로 걸어가며 계산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옆에 있던 경환 형이 지갑을 낚아챈다.
“어! 이거 뭐야?”
“뭐 하는거? 돈 얼마 없어….”
아차! 각성자 라이센스가 지갑 맨 위, 체크카드 넣는 곳에 있었다.
저번에 와이프한테 보여주고 그냥 습관적으로 꽂아 두고는 까먹었다.
“뭐야! 지원이 너 각성자였어?”
“뭐?”
“누가? 지원이가?”
“뭔 말?”
경환 형의 외침을 들은 상준성과 승찬 형이 당구장을 나가려다가 갑자기 다가온다.
카운터 앞에 있던 당구장 사장도 유심히 날 쳐다본다.
저쪽에서 당구를 치던 손님들도 날 쳐다보고 있고.
꽤 쪽팔리다.
“아냐, 그거 그냥 합성한 거야. 조작된 거. 일 때문에 디자인 하려고… 내가 각성자 일리가 없잖….”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환 형이 라이센스를 들고 조명에 비춰보고 있었다.
예리한데?
“뭔 합성 라이센스가 홀로그램까지 되냐? 여기 위변조 방지 마크까지 보이는데?”
“어디?”
“나도, 나도….”
“아트팩터? 능력치… 4 ?”
“응? 능력치가 4? 크크… 크크큭.”
“푸하하… 아, 지원아 미안. 그래도 어떻게… 캬캬캬.”
처음에는 깜짝 놀라며 호들갑을 떨던 형들이 갑자기 쳐 웃기 시작한다.
옆에 있던 당구장 사장까지.
음….
현질 해야겠다.
그래도 그날 형들의 축하주를 많이 받았다.
한편으론 능력치가 그게 뭐냐며 코웃음 치자, 올해 내로 능력치 50 이상 업그레이드 한다고 큰소리 쳐놨다.
각성자 능력치 50 이상이면 9등급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각성자 됐냐고 물어보던 형들이 니가 무슨 수로 능력치 올릴 꺼냐며, 회사 그만둘 꺼냐고, 그만두면 뭐 먹고 살 꺼냐고, 집은 있냐고, 던전 들어갈 꺼냐고, 니 주제에 무슨 던전이냐고….
젠장.
짜증나서 연거푸 소주잔만 기울이다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토요일.
아침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바람도 좀 불고 파도도 높아서 오늘 낚시는 패스.
안 그래도 잘됐다.
오후에 시청 쪽으로 가봐야겠다.
일어나 보니 역시나 와이프는 얘를 데리고 처제 집으로 놀러갔다.
뭐 당직이 아니면 거의 대부분 밖으로 돌아다니니….
근데 왜 나한테는 아무 말도 않는 거지?
아니면 가끔씩 어디 같이 가자고 하던가!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담배 하나 꺼내 물고 화장실로 향했다.
짜장면 곱빼기 하나 시켜먹고 옷을 갈아입은 후 택시를 잡아타고, 시청 쪽에 있는 금은방 가게로 향했다.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금방 점심을 먹었는지 가게에 음식 냄새가 배어 있다. 안쪽에서 50대 후반 남성분이 나오며 반갑게 맞는다.
“어서 오세요.”
“저, 혹시 여기서 미네랄도 취급 하나요?”
“예. 얼마나 사시게?”
“어떻게 하는데요?”
“뭐 시세에 따라 매일 다르지. 어디보자. 오늘은 그램당 3,567원이네. 여기에 세금과 수수료를 더하면….”
‘응? 뭐가 이리 비싸? 그램당 삼천오백 원? 그, 그럼?’
속으로 깜짝 놀라며 잠시 계산을 해봤다.
그럼 대충 1kg짜리 미네랄은 3백5십6만 원?
아니지, 거기에 세금과 수수료까지 합치면!
“… 어, 어떻게 하는데요?”
“미네랄 안 쪼개는 거 알고 있죠?”
“네.”
“그럼 지금 가게에 있는 게… 어디, 이거는 378g짜리고, 이거는 789g짜리, 이거는 1,231g짜리. 뭐 더 큰 것도 있긴 한데,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는데?”
가게 사장이 미네랄 조각을 몇 개 꺼내며 그램수를 말해준다.
‘미네랄 조각(흡수가능)
출처: 기갑 던전(10등급), 등급: 10등급,
능력치 가용률: 0.45% 상승(레벨에 따른 차별 가용)’
‘미네랄 조각(흡수가능)
출처: 기갑 던전(10등급), 등급: 10등급,
능력치 가용률: 0.66% 상승(레벨에 따른 차별 가용)’
‘미네랄 조각(흡수가능)
출처: 기갑 던전(10등급), 등급: 10등급,
능력치 가용률: 0.78% 상승(레벨에 따른 차별 가용)’
난 내 눈에 보이는 미네랄 조각 특성들을 자세히 살폈다.
흡수 가능한 건 맞는데 가용률이 크기별로 달랐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건 가용률이 아닌 미네랄 조각의 개수.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제일 작은 게 378g짜리라는 거다.
대충 계산해 봐도 세금과 수수료를 제외하고도 100만 원이 넘는 금액이다. 굳이 크고 비싼 미네랄을 살 이유가 없다.
“음… 다른데 들렸다가 올게요.”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은… 개뿔이고.
돈이 감당 안 되서, 생각할 요량으로, 아무 의미 없이, 일단 밖으로 나와 담배 하나 빼어 물었다.
“휴~ 생각보다 만만찮네.”
차라리 액세서리에 박힌 미네랄 조각을 사는 게 낮지.
오리지널 미네랄을 구매할 생각은 잠시 보류다.
뭐, 흡수 가능한 미네랄이 박힌 액세서리도 금액이 싼 편은 아니지만,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다.
근 3시간가량 주변 액세서리 가게를 다 뒤졌다.
흡수 가능한 미네랄 조각들을 따로 메모해 놨는데, 제일 싼 게 183,000원 짜리다.
대충 20만 원으로 잡고 25개만 사면 승찬 형에게 빌린 돈은 사라진다.
미네랄 조각 20개면 수정체가 2개.
수정체 2개 만들려고 500만 원을 쓰는 거다.
어떻게 빌린 돈인데….
일단 제일 싼 금액별로 핸드폰에 체크한 후 근처의 PC방으로 들어갔다.
구매 결정은 조금 더 생각해 봐야겠다.
자리에 앉아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생각난 김에 각성자 협회 제주지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홈페이지 자료실에 있는 던전 클리어 공략법 등을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는데, 메인화면 던전 클리어 파티 모집 글에 새로운 게시물이 떴다.
“응? 아라동? … 파티원?”
-아라동 기갑 던전 클리어 파티원 1명 급구(현장 도착 우선 순, 마법사 우대)
아라동에 있는 기갑 던전은 OO대학병원 뒤쪽의 공터에 있다.
시청에서는 불과 15분 거리.
신호가 안 막히면 10분내로도 가능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 도착 우선 순.
난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 승차 대기하고 있던 택시 하나를 골라잡고 기사 분에게 말했다.
“아라동 기갑 던전 앞이요. 빨리 가면 두뱁니다.”
“… 그럽시다.”
택시가 무서운 속도로 차선을 변경하며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OO대학병원 후문으로 들어서자 택시비를 두 배로 지급하고 내려서 뛰기 시작했다.
기갑 던전 입구에 있는 천상 길드 제주지부 관리소가 보인다.
관리소 직원에게 각성자 라이센스를 건네려고 하자,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3명의 젊은 각성자들이 날 반긴다.
“것 봐! 선착순이 직빵이라니까.”
“그러게.”
“아저씨. 각성자죠? 푸시 보고 오신거죠?”
“푸시요? 앱 푸시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홈페이지 게시물 보고 온건데… 요”
“각성자 앱 안 깔아놨어요?”
“…….”
그런 것도 있었어?
몰랐지… 가 아니고, 내가 그게 필요할 일이 있어야지.
“야. 지혜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얼른 던전 들어가야지. 입장시간 5분도 안 남았어.”
“아~ 맞다. 아저씨. 직군은 어떻게 되세요?”
“마법….”
“콜. 들어가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20대 후반의 남자가 던전 클리어 서류를 관리소 직원에게 넘겼다.
“각성자 4명. 아라동 리젠 기갑 던전 클리어 입장 요청합니다.”
“승인합니다. 입장하세요.”
10등급 리젠 기갑 던전 클리어 입장 최소 인원은 4명.
직업군에 관계없이 인원수만 맞으면 던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서류상은.
일단 던전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각성자의 몫이다. 하지만 입장 후 2시간, 즉 던전에서 4시간 동안 각성자들이 클리어하지 못하면 던전 관리소에서 직접 입장해서 클리어 한다.
그렇게 되면 입장한 각성자들이 클리어 보상을 못 받는 것은 물론이고, 입장비와 던전 내에서 나온 아이템까지 날리는 셈인데.
이렇게 급히 땜빵 인원으로 입장하는 경우는 거의… 가 아니고, 꽤 있다.
원래는 리젠된 10등급 던전이라 할지라도 5~6명 정도의 10등급 각성자가 입장을 대기하는데, 오늘, 왜, 하필 이런 상황이 어떻게 발생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난 오늘 아주 운이 좋은 편이다.
리젠 기갑 던전 클리어 입장비가 각성자당 200만 원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