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20_2
일단 오전, 오후로 시간을 나눠 오전에는 마법사들이 마법공격을, 오후에는 전사들이 스킬 연습을 거대한 성체 타워를 대상으로 하기 시작했고, 6팀 마법사 재명에게는 내가 따로 보상을 책정해준다는 말로 인근 동굴을 살펴보라고 명령을 내렸다. 물론 찾게되면 조심스럽게 날 찾아오라는 귓속말과 함께.
과연 저 거대한 성체 타워를 파괴한 후 엄청난 양의 돌무더기를 치우는 게 빠를지, 아니면 재명이가 투시마법을 사용해서 보상의 공간을 찾아내는 게 빠를지는 두고 보면 알 일.
난 내게 할당된 성체 타워 하단의 일정 부분을 향해 홍찬 형의 대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근데 이거 간만에 하는 거라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존나 힘들다.
영국 태초의 던전 클리어 입장 3일 6시간 20분 후.
“하앗! 이데아 여신의 한탄! 슬픔의 이슬!”
“이데아 여신의 분노! 불의 벽!”
“이야앗! 이데아 여신의 눈물! 얼음의 벽!”
“이데아 여신의….”
‘콰아앙! 콰앙!’
‘쿠아아앙! 콰앙!’
‘쿠르르….’
다음날 오전.
공동이 무너져라 마법 공격이 터져나가고 엄청난 굉음과 함께 먼지가 치솟자, 특수팀 몇몇 길드원들이 보조 마법을 사용한다.
“여신의 나팔거림! 윈드!”
“여신의 갈망! 워터 레인!”
팀장급 마법사들이 마법 공격 여파에 발생된 엄청난 먼지구름에 바람이 불고, 공중에서 수증기를 머금은 빗방울이 쏟아져 내린다. 성체 타워 일부가 파괴되면서 커다란 돌무더기가 밑으로 떨어져 내리고, 귀를 멀게 만들 굉음에 괜히 짜증이 난다.
어느새 거대한 성체 타워는 반파 되어가고 있지만, 6팀 마법사 재명이에게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알 수 없는 짜증이 밀려든다.
몇 시간 뒤.
“우왓! 무적 베기!”
“초월의 검, 3단 휘두르기!”
“하아앗! 찌른데 또 찌르기! 마구 찌르기!”
‘카가각! 카각!’
‘콰과곽… 카앙!’
전사들 역시 자신의 스킬을 거대한 성체 타워를 상대로 마구 시전한다.
다들 자신의 키보다 큰 커다란 대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공중에서 몇 번이나 몸을 틀거나, 회전시키며 그 원심력을 이용해 성체 타워를 파괴한다.
파편이 이리저리 튀고 바위에 금이 쩍쩍 가지만, 여전히 재명이는 소식이 없다.
이 새끼, 어디 짱 박혀서 실실 쪼개고 있는 거 아냐?
괜한 의심과 함께 내가 직접 돌아다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길수의 검에서 희미한 빛이 일렁인다.
음, 말로만 듣던 검기인가?
하긴 길수도 3등급 전산데, 그럴만도 하기… 는 개뿔!
아까 뭐?
찌른데 또 찌르기? 마구 찌르기?
염병을 해라. 아주.
늦은 저녁.
오전과 오후가 마법사들과 전사들이 자신의 마법공격과 스킬을 시전하는, 테스트하는 시간이었다면, 저녁식사 후 취침 전까지는 성체 타워 파편, 일명 엄청난 양의 돌무더기들을 줄럿들이 치우는 시간.
팀장급 얘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괜히 짜증나는 말투로 물었다.
“그냥 파괴하지?”
“안 돼. 이제야 감 잡히기 시작했단 말이야.”
지혜의 반대,
“저 역시 뭔가 알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죠?”
길수의 반대와 협박,
“저번에 흡수한 아이템 최적 마력치를 찾았어요. 하루정도만 더 하면 안될까요?”
김은희의 반대와 요청,
“전 상관없습니다.”
한득의 포기,
“주군, 이번에 준비한 미네랄 판은 총 30개입니다. 마법 회로 다 인챈트 해놨으니, 언제든지 던전 스펠 쇼크웨이브 부탁드리옵니다.”
“…….”
“… 그게 무슨 말… 사, 삼십개?”
“그, 그렇다면!”
“헐….”
싸이의 뒤통수 후려치기.
니들이 그러든 말든 난 상관없고, 밤에 재명이나 두드려 패야겠다.
다음 날 오전.
포기했다.
아니, 어제 밤에 한적한 곳으로 재명이를 불러 살짝살짝 어루만져준 결과, 녀석이 이상한 곳을 발견하긴 했는데 안으로 들어가질 못한다고 한다. 뭔가에 막혀있는 것처럼.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보상의 공간은 아마도 던전 클리어가 되고 나서야 활성화가 된다는 당연히 단순한 결과를 도출해 냈다.
원래 성체 타워 밑에 그려진 마법진이 보상 공간으로 이동하는 목적의 마법진이라면, 어차피 성체 타워를 파괴해야 하고, 성체 타워가 파괴된다는 말은 당연히 던전 클리어가 된다는 뜻인데… 지금까지 그냥 보상의 공간만 찾아 돌아다녔으니, 그게 제대로 될 턱이 있나?
괜히 지금까지 뻘짓거리를 한 셈이다.
여하튼, 얘들의 스킬 연습이든 마법공격이든지 간에 다 필요 없고, 일단은 싸이의 마법 회로만 스펠 쇼크웨이브로 활성화시켜준 뒤 재명이가 알려준 의심스런 곳으로 가보기로 결정했다.
“다들 모여. 스펠 쇼크웨이브 진형.”
“오빠, 하루만~ 하루만 더? 응?”
“형님~. 조금만 더 하면 알 것 같은데요.”
“여기만 던전이냐? 여기 나가서 이탈리아는 안 가? 거기도 태초의 던전 있잖아.”
“아니, 아는데. 일단 여기서 연습해서 거기서 써 먹으려고 했지. 응? 하루만 더~.”
지혜가 간만에 몸을 꽈배기처럼 꼬면서 가식적인 애교를 부리자, 옆에 있던 길수까지 지혜의 행동을 따라하려고 한다.
이것들이 간만에 미쳤나?
“기각. 나 바쁘다. 줄럿 전체 소환 해제. 줄럿 전체 소환!”
“쳇. 바쁜척은….”
지혜의 투덜거림과 길수의 알 수 없는 행동을 무시하고, 경계를 서던 줄럿들을 역소환 시켰다.
하얀 빛과 함께 수천 개체의 줄럿들이 성체 타워 근처에 모습을 나타내자 그제야 얘들이 진형을 갖추기 시작한다.
아무리 투덜거래도 각성자들에게는 마력 흡수가 가장 소중하리라.
나머지 얘들이 진형을 갖추고, 싸이가 부지런히 내 앞에 미네랄 판을 까는 것을 잠시 기다린 후 줄럿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성체 타워 파괴해.”
내 명령에 수천 개체의 줄럿들이 반파되어 있는 거대한 성체 타워로 달려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뒤.
‘콰르르르… 콰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거대한 성체 타워가 무너져 내린다.
[띠링! 태초의 던전을 클리어하였습니다. 공헌도를 계산합니다. 19분 59초, 58초, 57초, 56초…]됐다.
던전 클리어 됐다.
그렇다면….
난 알림이 울림과 동시에 재명이가 알려준 동굴로 뛰어가기 시작하자, 옆에 있던 지혜가 묻는다.
“응? 어? 오, 오빠! 어디가? 싸이 씨 아이템 확인 안 해?”
“어. 안 해. 똥 마려!”
뒤에서 지혜의 변태 소리가 들리는 듯싶다.
넌 똥 안 싸냐?
똥 싸면 변태?
염병.
재명이가 의심스럽다고 말한 곳으로 급히 뛰어간 후 두 손을 뻗어 벽을 짚어 가는데, 역시나. 던전 클리어가 된 이후에나 마법 활성화가 된 듯싶었다.
착시마법을 무시하고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자, 저번 무등산 던전과 비슷한 규모의 보상 공간을 나타난다. 천장과 벽이 온통 반짝반짝 거리는 미네랄 덩어리가 박혀 있고, 제단 위에는 1m 크기의 던전 클리어 보상 상자가 놓여 있었다.
인벤토리에 있는 태초의 열쇠 두 개 중 하나를 소환한 후 침을 꿀꺽 삼키고 동그란 구멍에 조심스럽게 가져갔다. 파란 빛이 잠시 일렁거리더니, 태초의 열쇠가 구멍 안으로 쑥 밀려 들어간다.
‘철컥.’
두근거리던 심장이 점점 더 펄쩍펄쩍 뛰기 시작한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집에서 혼자 있을 때 방문을 잠그지 않고 헤드셋을 낀 뒤 소리를 높여 야구 동영상을 감상하는 쫄깃한 심정으로 보상 상자 안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어둠의 엘릭서(1/3)
출처: 태초의 던전, 등급: 절대등급,
효과: 던전 내 종속의 인 파괴’
‘던전 워프(흡수 가능) 스킬 북, 타임: 10,080분/10,080분
출처: 태초의 던전, 등급: 절대등급,
효과: 인지 좌표 이동
동행: 인지하는 범위 내’
‘태초의 갑옷(흡수 가능), 타임: 1,440분/1,440분
출처: 태초의 던전, 등급: 절대등급,
효과: 물리적 방어+60%, 착용자 마력 시간당 3,000 소모’
‘태초의 검(흡수 가능), 타임: 1,440분/1,440분
출처: 태초의 던전, 등급: 절대등급,
효과: 물리적 공격+60%, 착용자 마력 시간당 3,000 소모’
“… 크으음.”
중세시대에 사용했던 것처럼 보이는 사슬 갑옷 한 벌과 50cm 크기의 단검. 그리고 얇은 노트 하나와 주먹만 한 도자기병 하나.
역시나 저번처럼 보상상자 크기에 비해 과대포장이지만, 내용물 하나하나가 엄청나다.
어둠의 엘릭서가 있을 것이라 짐작했으니 저건 됐고, 던전 워프 스킬북?
갑옷과 검은 아이템이기에 태초의 던전을 클리어했으니 어쩌면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던전 워프는… 음….
한창 눈앞에 보이는 아이템과 스킬북을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분배할지에 대해… 어?
자, 잠시만!
어둠의 엘릭서야 사라가 말한 바이오 던전 종속의 인을 파괴할 때 사용해야 하니 당연히 내 꺼고, 던전 워프 스킬북도 직군에 상관없으니 내 꺼, 태초의 갑옷과 검 역시 전사 직군이 사용해야 하니, 이것도 역시 내 꺼!
“… 얘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일단은 내가 다 챙겨야겠군.”
흐뭇한 마음으로 던전 클리어 보상을 하나 둘 꺼내 바닥에 내려놓고 다시 한 번 더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황금빛이 감도는 사슬 갑옷과 검 집에 기하학적 패턴이 그려진 단검이 무척이나 맘에 든다. 황금빛 사슬 갑옷과 붉은 망토를 두르고, 이 짧은 단검을 지휘봉처럼 소환 유닛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내 모습을 생각해보니 자꾸 입 한쪽이 옆으로 찢어진… 응?
등 뒤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얼른 뒤를 돌아보니, 두 눈을 부릅뜬 길수 놈이 경련이 온 듯 온몸을 부들부들 거리며 입을 한껏 벌리고 막 고함을 치려고 한다.
“… 크아! 내, 내 꺼다아아아!”
“…….”
잠시 후.
“뭐어~? 또오옹?”
“… 똥 싸려고 했어. 보상 확인하고.”
“흥! 이다. 흥!”
어쭈?
니가 지금 감히!
그나저나….
“당연히 던전 클리어 공헌도로 나눠야죠!”
“뭔 소리야! 직군에 맞는 게 나오면 우선 배분하기로 했잖아!”
“언제요? 길드장님이 그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요?”
“뭐가! 왜 또 이제 와서 말이 바뀌는 건데! 분명 형님이 직군에 맞는 거 나오면 우선 분배한다고 했잖아! 축복이나 힐 나오면 한득이 준다고 한 거 못 들었어!”
“물론 그건 들었죠. 근데 힐이나 축복 스킬이 아니잖아욧!”
“그럼! 갑옷하고 검이 마법사에게 어울린다는 말이야 뭐야!”
“힐하고 축복 스킬이 거론됐지, 갑옷하고 검 얘기는 없었잖아요! 더군다나, 마법사가 방어용 갑옷을 착용하면 안된다는 개념은 도대체가 어디서 나오는 건데요! 접근전에 취약한 마법사가 당연히 갑옷을 착용하는 게 더 일리가 있잖아요!”
“맞아요. 2팀장님께서는 단검으로 만족하시고, 갑옷은 마법사들에게 넘기세요.”
“그래요.”
“이, 이 녀석들이… 혀, 형님! 말씀 좀 해주세요! 얘네들이 자꾸 전사 전용 갑옷과 검을 자기네끼리….”
하….
재밌냐?
그러고 노니까 재밌어?
지혜와 한득을 제외한 나머지 팀장급 얘들이 모여, 전사 길수 대 마법사들로 편을 나눠 꽁트 같은 보상 따먹기 놀이를 한다.
그리고 저쪽 구석에 있는 한득과 홍찬 형은 멍하게 그저 바라볼 뿐이고.
“하나씩 가자. 어둠의 엘릭서는 이번 태초의 던전 클리어 목표니까, 내 소유다. 인정?”
“당연히 인정합니다.”
“네.”
“알겠어요.”
그래. 그렇겠지.
그럼,
“던전 워프 스킬북은 내가 공헌도가 제일 높으니 일차적으로 내가 먼저 선택한다. 인정?”
“혀, 형님이 클리어 공헌도가 제일 높으니 우선순위가 있죠. 그것도 형님껄로 인정합니다.”
“… 그래요. 인정해요.”
“네.”
인정하기는.
원래 두 가지 다 내 꺼라니깐. 그 다음이….
“그리고 아이템이나 직군에 맞는 스킬북이 나오게 되면, 공헌도 우선순위로 분배한다고 했다. 공헌도 1위, 내 직군에 전사도 있으니, 갑옷하고 단검도 내 꺼. 인정?”
“… 예? 뭐, 뭐라고요?”
“… 왜? 왜 길드장님이 다 가져요! 아트팩터가 왜 갑옷하고 단검이 필요한 건데욧!”
“아, 안됩니다! 형님! 어떻게 저에게 이럴 수가….”
“에효….”
안 되기는….
억울하면 니들이 길드장 하든지.
지혜의 한숨소리가 저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영국 태초의 던전 클리어 입장 4일 12시간 50분 후.
결국 내가 양보했다… 가 아니라, 일단 이탈리아 태초의 던전까지 클리어한 후 보상을 분배하기로 다시 합의했다.
어차피 그곳 역시 클리어하게 되면 뭔가 보상이 나올 터.
지금 당장 이게 전사꺼니, 마법사꺼니 정하지 말고, 일단 그곳에서 나온 보상을 확인한 후 직군에 따라 분배하거나, 공헌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선점할 수 있도록 협의했다.
대신 난, 이곳에서 얻은 던전 워프 스킬북 때문에 어둠의 엘릭서를 제외한 한가지만 더 선택할 수 있다고 팀장급 얘들이 자꾸 우긴다.
하긴, 아트팩터인 내가 마법사 전용 스킬을 흡수할 것도 아니고, 길수처럼 갑옷이나 검에 집착할 이유도 없다.
뭐, 있으면 없는 것보다 좋긴 하겠지만, 언제까지 내가 얘네들 따라다니면서 뒤 딲아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양보할 때는 해야지 뭐.
얘네들이 커야 내가 편하니까.
그래. 괜춘.
너희들끼리 알아서 나눠먹어라.
근데 혹시, 혹시 말야….
영국 태초의 던전 클리어 입장 7일 09시간 30분 후.
수백의 줄럿들과 전사들을 동원해 미네랄을 캐기 시작한지 3일차.
던전 클리어하면서 뿜어져 나온 스펠 쇼크웨이브 영향으로 활성화된 마법 회로, 아니 싸이가 인챈트한 아이템 30개는 팀장급 얘들을 포함해 길드원들에게 선별적으로 나눠졌고, 틈나는 대로 전사들이 검을 휘두르거나, 마법사들의 마법공격 연습에 거대한 공동이 웅웅거린다.
이거, 아주 귀찮아 죽겠다.
그래도 조금만 참으면 미네랄을 다 캘 것 같으니, 일단 참자.
…….
길드원들이 자신의 스킬을 외쳐대는 소리가 어느 정도 암기 될 때, 드디어 미네랄을 다 캤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자 싸이를 앞세워 밖으로 나왔다.
근 4일 가까이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었더니, 귀에 벌 한 마리가 들어간 것 같다.
돌산을 빠져나와 셔틀을 생산한 후 던전 입구 쪽으로 이동, 들어왔던 역순으로 영국 브라이튼 던전, 태초의 던전을 무사히 클리어하고 던전 밖으로 나왔는데… 응?
왠 시가지?
그러니까 이게 지금….
한자가 존나 많을 걸 보니….
중국? 대만?
아! 태초의 던전이었지!
2일 후.
그제 주변에서 달려들던 군인들과 중국 각성자 협회 요원들의 도움으로 인근 호텔에서 휴식을 취한 후 한국에서 대기하고 있던 전세기 편으로 이탈리아로 이동했다.
역시 내가 좀 인지도가 있는 편인 모양이다. 중국 각성자 협회와 정부쪽 요원들의 반응을 보면.
콩글리쉬를 제외한 모든 언어는 내 귀에 들리지 않기에 무슨 말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수는 없었지만, 쎄쎄? 씨에? 라는 단어를 연신 말하면서, 허리를 90도로 접는 걸 보니, 좋은 말이지?
여하튼, 저번처럼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여유롭게 호텔로 이동,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비상식량이 아닌 데코레이션이 화려한, 비싸 보이는, 맛있는 음식으로 처묵처묵하고, 천막 내 간이침대가 아닌 푹신한 침대에서 쳐 잤더니, 컨디션이 빠방하다.
와이프한테 살아있다고 보고하고, 협회 태석 형님에게 중국에서 이탈리아로 간다고 통보하고, 나머지 수십 건의 부재중 전화와 수백 건의 문자는 모두 다 쌩.
또 전화번호를 바꿔야 하나?
뭔 전화가 이리 많이 오는 건데?
홍찬 형이 길드운영에서 손을 놓기 시작한 시점부터 어째 점점 더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
근데,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이거 누가 내 개인정보를… 크음.
여하튼, 이탈리아에 도착해 마테라 협곡으로 이동, 싸이 마력 추적 아이템으로 던전 입구를 찾은 후 그냥 들입다 입장했다.
어차피 이젠 신규 던전이고, 태초의 던전이고 나발이고 간에, 얘들의 눈이 벌게져서는 좀비처럼 내 아이템, 내 아이템, 내 스킬북, 내 스킬북이란 단어만 반복한다.
마테라 신규 던전을 슥 지나치고, 다시 태초의 던전에 입장.
싸이의 던전 마력 추적 아이템으로 셔틀을 생산하자마자 성체 타워로 이동해서 팀장급 마법사들이 파이어 마법과 아이스 마법을 수없이 날려대자, 순식간에 몰려든 인간형 던전 유닛들.
싸이가 만들어낸 1등급 아이템을 처묵처묵한 효과가 나타나는지, 아니면 길수의 검기 위력이 대단한 건지는 몰라도, 저번보다 훨씬 더 커진 화염구가 중첩되어 날아가고, 얼음창이 터져나가며, 그 사이사이에 길수의 검기가 이어진다.
엄청난 폭음과 화염, 기괴한 귀곡성과 함께 달려오던 던전 유닛들이 먼지처럼 산화된다.
역시나.
처음이 어렵고, 두 번째는 약간 어리버리할 뿐이지, 세 번째의 태초의 던전 클리어는 기존 1등급 던전 만큼 널널한 심정으로 클리어할 수 있었다.
물론 지혜와 팀장급 마법사 얘들이 동굴이 무너져도 나만 살면 된다 라는 파이어 마법과 아이스 마법을 날려대는 것과 길수가 외쳐대는 대검의 길이는 중요치 않다. 난 검기로 썬다. 라는 괴상한, 요란한 스킬에 정말 동굴이 무너질뻔 했고, 거대한 성체 타워 돌무더기에 길드원들이 다칠뻔 했다.
하지만, 성체 타워가 파괴됨과 동시에 울린 던전 클리어 알림에 팀장급 얘들이 재명이를 달달 볶아 동굴을 탐색하게 만들고, 최단 시간 내로 보상 공간을 찾아냈다.
마지막 남은 태초의 열쇠.
두 눈 부릅뜨고 나만 쳐다보는, 밑장 빼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간다고 위협하는 얘들이 지켜보는 와중에 열린 보상 상자.
그 안에는….
‘어둠의 엘릭서(1/3)
출처: 태초의 던전, 등급: 절대등급,
효과: 던전 내 종속의 인 파괴’
‘파이어 월(흡수 가능) 스킬 북, 타임: 60분/60분
출처: 태초의 던전, 등급: 절대등급,
효과: 인지하는 범위 내 파이어 월
데미지: 파이어 마력+200%, 크리티컬+50% 추가’
‘아이스 토네이도(흡수 가능) 스킬 북, 타임: 120분/120분
출처: 태초의 던전, 등급: 절대등급,
효과: 가시거리 내 아이스 토네이도
데미지: 아이스 마력+250%, 크리티컬+70% 추가’
‘낡은 구리 반지(흡수 가능),
?
?
?’
“나, 나왔다!”
“파… 파이어 월이닷!”
“아이스 토네이도!”
“… 구, 구리 반지? 몰라! 여하튼, 떴다!”
떴다?
뜨긴 뭐가 떠?
그나저나, 쩝.
내껀 없네?
이번 이탈리아 태초의 던전 클리어 공헌도는 나를 제외하고 지혜, 미혜, 김은희, 최은지, 길수 순이었다.
뭐, 저번 영국 태초의 던전에서는 나보다 홍찬 형이 공헌도가 더 높긴 했지만, 얘들이 부길드장은 미리 스킬북을 받았기 때문에 보상 분배에서 빼야한다고 바득바득 우겨서 어쩔 수 없이… 는 아니고, 본인 자신도 더 이상은 욕심 부리지 않겠다고 하니,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어차피 어둠의 엘릭서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스킬북 두 개와 사슬 갑옷, 단검을 놓고 얘들이 서로 혈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지혜는 홍찬 형과 같은 파이어 월 스킬북을, 미혜와 김은희, 최은지는 아이스 토네이도 스킬북을, 길수는 여전히 단검과 갑옷을 요구하지만, 인원 수는 5명인데 보상은 4가지이니 쉽사리 협의가 될 턱이 있나.
더군다나 전사 직군 아이템이 두 개인 상황.
길수는 갑옷과 단검 두 개를 다 가지려고 하고, 지혜를 제외한 나머지 세명이 아이스 토네이도를 원하고 있으니, 목소리가 높아지고, 감정이 격해져간다.
이럴 때는 내가 나서서 정리를 해줘야… 음… 귀찮은데?
됐다. 기냥 니들끼리 지지던, 볶던, 알아서 해라.
괜히 나서서 이래저 저래라 하면 더 큰 싸움이 날까봐 한쪽 구석에서 찌그러져 있으려고 하니, 파이어 월 스킬북의 소유가 자신에게로 정해진 것에 무척이나 흡족한지, 지혜가 나에게 뭔가를 던지며 입을 연다.
“오빠, 이거 오빠 가져.”
툭.
발밑에 나뒹구는 낡은 구리 반지 하나.
등급, 효과, 상태에 대해 모든 게 물음표로 떠 있는 쓸모없는, 불필요한 잡템.
이게 왜 태초의 던전 클리어 보상에 끼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관심 없는데?
그나마 반지 표면에 새겨져 있는 기하학적인 패턴만 아니면, 저 멀리 던져버리기라도 할… 응?
촉감은 괜찮은데?
바닥을 뒹구는 반지를 들어 엄지손가락으로 슥슥 문질러보니 표면이 까끌까끌한 게 느낌이 괜찮다.
그래,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했으니, 이놈도 어딘가에는 쓸모가 있겠지.
난 지혜가 던져준 구리 반지를 대충 주머니에 넣어두고 구석으로 향했다.
미네랄이야 얘들이 알아서 캐겠지 뭐.
낮잠이나 자자.
피곤하다.
천막 간이침대에 누워 꿈틀거리길 얼마나 했을까?
젠장! 잠이 안온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면 솔솔 꿈나라로… 쩝.
밖에서 여전히 다투고 있는 얘들 때문에 잠은커녕, 귀가 그쪽으로 자꾸 쏠린다.
애써 무시하고, 이번 태초의 던전 클리어 때 오른 내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데, 싸이가 천막 밖에서 주군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안 그래도 심심한데 잘됐다.
오늘 저녁 먹기 전까지 싸이나 갈구면서 놀아야지.
반갑게, 쿨하게, 심심했던 적이 없는 척 녀석을 들어오라고 한 뒤, 놈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이번 이탈리아 태초의 던전 클리어 전에 싸이가 만들어 논 마법 회로는 미네랄 판 50개.
성체 타워를 파괴하면서 생성된 스펠 쇼크웨이브에 35개의 미네랄 판만 활성화되었고, 나머지 15개는 금이 쩍쩍 가버려 못 쓰게 됐다고 한다.
아마 쇼크웨이브때 발생한 마력의 최대 출력치가 그 정도인 것 같다며, 활성화된 아이템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묻는데… 이것도 귀찮은데?
전사 직군 아이템과 활용 가능한 서포트 아이템을 먼저 쓱싹 한 뒤 나머지는 너 먹어라 하고 던져주자, 싸이가 엄청 몸을 부들부들 떨며 되도 않는 사자성어를 남발하려고 하기에 뒤통수를 시원하게 갈겨 주었다.
둘이서 이건 니 꺼, 이건 나 꺼 놀이를 열심히 하다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아이템을 선별적으로 길드원들에게 분배하고, 여전히 다투고 있는 얘들을 무시하길 이틀째.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 *
외국 출장 같지 않은 출장을 다녀온지 벌써 일주일째.
간만에 선배들과 연락이 돼서, 간만에 경호차량이 아닌 콜택시를 불러서 시청으로 이동하는데, 주변 시가지 풍경이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제 내 나이 43.
팀장급 얘들도 이제 30대 초반이 됐으니 슬슬 나도 은퇴를… 은퇴는 무슨. 귀찮아서 그런 거지.
원래 이 나이가 되면 이런 건가?
왜 모든 게 귀찮고, 하기 싫어지는 거지?
경제적으로 풍족해서 그런 건가?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무조건 일을 해야 한다고… 음. 누가 이런말을 했었지? 기억이 잘… 크음.
여하튼, 이젠 어디 돌아다니면서 던전 클리어하는 것도 귀찮고, 그냥 집 앞에 만들어 논 낚시터에서 한가하게 낚시를 하거나, 선배들과 예전처럼 당구 한 게임 치고 저녁식사나 하면서 그렇게 한량처럼 지내면 안될까?
국내 1등급 던전 리젠 클리어도 이젠 얘들 시켜도 될 것 같고, 길드 운영과 나머지 행정적인 일들도 얘들 시키면 될 것 같고, 각성자 협회와 정부쪽 요구사항들도 얘들 시키면 될 것 같으니, 난 그저 탱자탱자 놀면서 지내도 될 듯싶은데?
어차피 이렇게 뭐 빠지게 고생하면서 돈을 번 이유가, 쓰려고 번거잖아?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열심히 번 돈, 열심히 써 줘야지.
내 할 일도 다 했으니, 이제 누가 나한테 뭐라… 아! 사라 때문에 안될껀가?
저번에 지금까지 좆 빠지게, 던전 바닥을 박박 기며, 이럴 거면 차라리 뒤지는 게 낮겠다고 생각할만큼 존나 고생해서 어둠의 엘릭서 두 개를 다 모아 사라에게 넘겨주니….
그냥 날 존나 째려보면서 한숨을 쉬더구만.
그래서 나도 같이 째려봐줬지.
같이 한숨을 쉬면서.
감히, 나에게 종속된 존재인 주제에 주인, 주체에게 그런 눈빛이라니!
엘릭서 두병 던져주고, 그 다음부턴 신경 껐다.
이젠 자유다.
이제는 하드코어 모드가 아니고, 이지모드.
이제부터는 국내 제일의 한량이 되자.
이게 내 새로운 목표다.
한창 서리가 낀 택시 차창 밖으로 무심히 시가지 풍경을 감상하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있는데, 자꾸만 빽미러로 날 힐끔힐끔 쳐다보는 기사분이 더듬거리며 입을 연다.
“저… 혹시, 한지원님 마, 맞으세요? 아까 외도에서 콜 부른걸 보면….”
“네. 맞습니다. 택시비는, 사인?”
“… 가,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콜택시 기사분이 엄청 큰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하며, 보조석 짐칸과 주벼을 자꾸 날 살핀다. 아마 메모지나 깨끗한 종이를 찾으려는 것 같다.
아, 아저씨 일단은 운전에만 신경 써요. 나중에 시청 도착하면 알아서 해줄 테니까.
저번에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올라온 내 사인 최저 경매가가 1백만 원이라는 걸 어디선가 듣긴 했는데….
* * *
새해가 밝고 나도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도우미 아주머니 손을 빌리지 않았다고 계속해서 말하는, 와이프가 직접 만든, 떡국을 아무 말 없이 처묵처묵하고, 집 양쪽 건물에 계신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께 새해 첫 인사를 한 후 달려드는 조카들을 피해 집으로 다시 들어가려는데… 어? 어? 너, 넌 누구냐?
“잘 지냈수꽈? 형 얼굴 보기 엄청 어렵네.”
나와 똑같이 생긴, 나보다 키가 조금 작은, 나보다 배가 약간 더 나온, 나보다 약간 머리가 긴, 도대체 얼마 만에 보는지 모를 동생 놈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건다.
“그, 그러니까….”
“집 엄청 좋다. 형이 다 지어준거라면서? 인터넷이나 뉴스로는 꽤 많이 보길 했는데, 내 친형이 국내, 아니 세계 굴지의 길드장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네.”
“에… 왜 넌….”
“형. 나도 좀 도와줘. 직장 생활도 이젠 지겹다.”
“…….”
미안. 동생아.
지금까지… 사실 까먹었다.
워낙 존재감이 없어서, 니가 이 소설에 등장할 일이 뭐가 있겠냐 싶어 잊어버린게 사실이다.
너 혼자 육지에서 직장생활 한다고 올라간지가 언… 그러니까, 니가 육지 올라간게… 음….
너 언제 올라갔었냐?
계산이 안된다.
여하튼, 이 형아가 만 3년이 채 되지 않아 국내 1위, 전 세계 1위의 각성자가… 맞나?
여하튼, 그건 됐고, 앞으로 이 형아만 믿어라.
내가 팍팍 밀어줄게.
아, 너 다니는 회사 이름 좀 말해줄래?
내가 너 거기 사장이나 회장 시켜주마.
푸하하하하.
“… 형. 어디 아파? 왜 자꾸 실실 쪼개?”
“…….”
그냥 넌 지금처럼 열심히 부지런히 직장생활 해라.
그게 낮겠다.
크으음.
동생에게 니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제일 좋은 집을 알아보라고 큰 소리 한번 뻥뻥 쳐주고, 앞으로 직장생활 하다가 애로사항이 생기면 언제든지 나에게 전화를 하라고 큰 소리 두 번 뻥뻥 쳐주고, 니가 내 친동생이라고 밝혀도 된다고 큰 소리 세 번 뻥뻥 쳐주자, 한숨을 푹 쉬고 부모님 댁으로 들어가는 녀석.
부끄러워서 그런 건 아니지? 그치?
동생의 뒷모습이 어째… 나하고 똑같이 보인다. 크음.
여하튼, 간만에 동생도 만났고, 새해도 됐고, 나이도 한 살 더 쳐 먹었으니, 올해는 반드시, 기필코… 국내 최고의 한량이 되어주마!
한 달 뒤.
폐인모드, 최고의 한량모드로 돌입한지 한 달 째.
어느덧 팀장급 얘들이 국내 던전 리젠 클리어와 길드운영에 익숙해져 갈 때쯤, 난 오늘도 여전히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 하고 있었다.
좋다.
너무나도 좋다.
누가 나한테 돈 벌어오라고 소리치지 않아서 좋고, 집 청소하라고, 밥 하라고, 빨래하라고, 애 숙제 봐주라고, 애 목욕시키라고 잔소리 하는 사람이 없어서 더욱더 좋다.
돈이야 내 통장에 얼마가 들었는지 확인해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고,
집 안 살림은 와이프와 도우미 아주머님들이 알아서 하고 있고,
애 챙기는 거야 부모님과 장모님, 와이프가 서로 챙기니 내가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다 좋다.
다 좋긴 좋은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그건 바로….
“도대체 언제 가는데요?”
“…….”
“제 모습이 바뀐게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
“종속의 인을 끊는 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
“그 분의 선택을 받았으면 이젠 움직여야….”
“아아아아~ 왜!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건데! 싫어! 싫다니깐!”
내 격한 고함에도 사라는 꿈쩍을 하지 않는다.
이제야 찾은 평화야!
이제야 찾은 내 자유라고!
이제야 본격적인 한량모드로 돌입하기 직전인데, 왜 자꾸 나에게 강제 퀘스트를 주는 거냐고!
싫어!
싫어!
싫다니까!
“하… 안 가면 안 될까?”
“…….”
“기냥 너 혼자 가면 안 돼?”
“…….”
“… 도대체 내가 꼭, 반드시, 무조건 가야할 이유가 어디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