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21_4
“… 너 내가 부른거 인지하고 있지?”
“네.”
“그런데 왜 안 나타나?”
“지금은 전쟁 중이에요.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할 틈이 없네요.”
“…….”
오호~ 이것 봐라?
“그래? 그렇다면 좀 전의 발업 저굴링들이 양쪽으로 퍼져서 기갑 유닛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미끼였어요. 원래는 좀 더 끌어들인 이후에 대규모 락커를 통해 일망타진 하려고 했는데, 어떤 분이 그 작전을 다 망쳐버렸죠.”
“…….”
으응?
이건 또 무슨 개소리냐?
“수천 개체의 락커들이 인근 땅속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주변 성체 타워에서 사방을 포위할 만큼의 울트라와 히드라, 그리고 저를 비롯한 그분까지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그 작전을 다 망쳐버렸죠.”
“…….”
“많은 희생을 내가면서까지 실행한 작전을 단 한순간의 잘못된 명령으로, 누군가가 망쳐버렸죠. 저들이 눈치를 채고 물러났으니 더 이상 같은 수법에는 당하지 않을거예요. 즉, 저희 쪽 진형을 이용한 작전은 수포로 돌아갔고, 이젠 전면전만 남은 셈이죠.”
“…….”
에… 그러니까, 내가 했던… 아, 아니지!
“그, 그럼. 내가 본 장면은 뭔데?”
“뭐가요?”
“니, 니가 말했잖아! 내가 본 장면이 맞다고!”
“그랬죠.”
“내가 태초의 던전과 이곳으로 오면서 본 것은 이 전투에서 너희들의 패배야! 아까처럼 기갑 유닛들이 밀고 내려와 수많은 바이오 유닛들이 도륙당하고, 저 거대한 성체 타워가 불타오르고, 그분이라는 유닛은 타락한 전사의 마법 복제로 복제 당하는 게 마지막 장면이란 말이야!”
“지난 일이에요. 800년도 더 된 일이지요.”
“케켁… 뭐, 뭐라고?”
뭐? 뭐라고?
그게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처음부터 말씀드렸잖아요. 당신은 그분이 선택하신 분이라고. 그분을 찾기 위한 안배.”
“… 이, 개씨팔좆같은년이! 말 똑바로 안 해! 이게 마지막 전투라며! 이게 최후의 전투라며! 도대체 800년이나 지난 장면을 왜 나한테 주입시킨 건데! 뒤질래? 앙? 대가리 썰어줘?”
고함을 지르며 인벤토리에서 홍찬 형의 대검을 꺼내 사라 목에 가져가자, 뒤쪽에서 인간형 유닛들의 기괴한 괴성이 들린다.
씨팔 썅년!
진짜 조금이라도 허튼 소리를 꺼낸다면, 내게 종속된 존재고 나발이고 간에 썰어버릴 심산이다.
내가 지금 여기에 왜 있는데!
내가 지금까지 던전 바닥을 박박 기어가며 어둠의 엘릭서를 왜 구해다가 바쳤는데!
그런데 뭐?
지금까지 내가 본 장면이 800년이 더 지난 일이라고?
이, 개씨팔쌍년이!
그럼 800년이나 지난 장면을 지금까지 나에게 각인시킨 이유가 뭔데!
말 똑바로 안하면 진짜 썰어주마.
“알고 계세요.”
“뭐가!”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당신은 이미 알고 있어요.”
“쌍년아! 이 상황이 너한테는 존나 웃긴가 보지? 장난 까냐?”
내가 대검 손잡이에 약간의 힘을 더하자 칼날이 사라의 목으로 파고들며, 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똑바로 읊어라. 대가리 썰린다.”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당신. 안타깝네요.”
“… 이상한 말로 지랄 말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읊어라.”
사라의 목에서 흐르는 피가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하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인간형 유닛 하나가 황급히 어디론가 뛰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사라가 날 쳐다보며 무심한 얼굴로 입을 연다.
“먼 오래전, 저희 종족은 이곳 이데아에서 잘 지내고 있었어요. 당신이 지내는 지구에서처럼 문명은 고도로 발달하진 못했지만, 저희들이 가지고 있는 마력과 미네랄, 가스는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고, 키우며, 결국은 자연의 마력으로 돌아가죠. 그리고는 다시 그 마력을 바탕으로 당신이 말하는 바이오 유닛의 탄생이 시작되죠. 그렇게 돌고 도는 순환계에 800년 전, 저들의 침략이 있었어요.
태양계에 지구만이 유일하게 지적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이라면, 이곳 환계에는 쌍둥이 별, 이데아와 올륌푸스 행성이 그에 속하죠.
뿌리는 같지만 수많은 세월에 종족이 갈라져버린 우리들은 그래도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었는데… 저들이 지내는 올륌푸스 행성에서 다른 차원계를 공격하기 위해 모자란 가스를 보충하고자 우릴 침략한 것이지요.
돌고 도는 순환계를 인정하지 않고, 한정된 자원을 노린 그들은 우리에게 남아 있던 가스를 약탈하고자 이곳에 침략했고, 당신이 본 그 치욕스런 장면은 800년 동안 환계를 벗어나 온 우주에 퍼지게 되었죠. 그리고 마침내 이곳 이데아와 커넥트가 가능한 곳을 찾게 되었고, 커넥트가 된 지구에 마력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죠. 그게 바로 바이오 던전과 기갑 던전이에요. 그리고….”
“… 쓸데없는 잡설은 집어치우고 현실을 말해. 왜 그때가 아닌 지금이지? 800년 전에 그들에게 당했다면, 지금의 전투는 또 뭐고? 그리고 과거의 망령을 나에게 각인 시킨 이유는?”
“각인 시킨 적 없어요. 당신의 기억 속에 존재할 뿐.”
“계속해서 말장난이군. 정말 뒤지고 싶나?”
“지구에선 평행차원이라고 하더군요. 당신이 속한 곳에서는. 구리 반지, 기억하시나요?”
“…….”
“그걸 끼면 아실거예요. 당신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 대해.”
“…….”
또, 또 허튼 수작인가?
그런데 낡은 구리 반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아는 거지?
함정인가? 날 낚기 위한?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이 낡은 구리 반지는 태초의 던전 보상 물품이다.
던전 시스템이 어떤 형식으로 보상을 분배하는지는 모르지만, 이건 분명 던전을 클리어하고, 지혜가 필요 없다며 던져버린, 상태창이 물음표로 뜨는, 하등의 쓸모없는 잡템일 뿐인데….
왜 이렇게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거지?
왜 내가 이 필요 없는 잡템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다녔던 거지?
안 그래도 공간이 부족한 인벤토리에 하등의 쓸모없는 잡템을 넣고 다닌 이유가… 이 꺼림칙한 기분과 연관이 있는 건가?
일단 사라의 목에 대검을 겨눈 상태에서 인벤토리에서 낡은 구리 반지를 소환했다.
하얀 빛을 내뿜으며 바닥에 소환된 낡은 구리 반지 하나.
‘키키엑. 쿠에에엑!’
‘쿠에에엑!’
뒤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인간형 유닛 2개체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이것들이 지금 뭐 하는 짓이지?
갑자기 미친 거냐?
쓸데없는 생각은 집어치우고 소환된 구리 반지를 들고 왼손 약지에 가져가 끼웠다. 그러자,
‘스… 파… 아아앗!’
하얀 빛과 함께 세상이 변하고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 * *
또 이 장면인가?
도대체 낡은 구리 반지하고, 800년 전 벌어진 전투하고 무슨 상관이 있길래… 어, 어?
권태로운 표정으로 거대한 의자에 앉아 있는 아름다운 여성.
그리고 그 옆자리 화려한 의자에 앉아 있는 한 명의 남성.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과 파란 눈동자는 분명 외국인으로 보이지만, 얼굴 생김새와 체형은….
나?
내가 지금 가발을 쓰고, 써클 렌즈를 끼면 저렇게 변할 건가?
지금까지 이런 장면은 한 번도 없었는데!
둘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대화를 하며 입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헐레벌떡 커다란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인간형 여성 유닛.
열려진 커다란 문 뒤로 보이는 수백, 수천의 성체 타워.
하늘이 열리고 파란빛이 쏟아져 내리고, 엄청난 굉음과 함께 천지가 번쩍이면, 엄청난 숫자의 줄럿들이 기다란 건틀릿으로 저굴링들을 토막내고, 히드라의 독침에 줄럿들이 산화한다.
드라칸의 캐논포가 가시체와 히드라들에게 쏟아지고, 굼벵이 전차의 포격이 하늘을 가린다. 매캐한 연기와 붉은 화망을 뚫고 수백, 수천의 와이번과 가디언, 멍텅구리가 그 뒤를 덮는다.
엄청난 숫자의 토르칸이 울트라와 락커를 찢고, 마법 지렁이의 마법안개가 지평선을 뒤덮는다.
하늘이 불타고, 대지는 붉은 핏빛으로 말라간다.
똑같다.
아니 같지 않다.
지금까지 본 장면에는 나와 닮은 남성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거대한 성체 타워가 불타오르고, 날개 없는 여성들이 몸으로 토르칸을 덮친다.
그리고 이어진 타락한 전사의 복제 마법.
시퍼런 칼날을 휘두르며 토르칸을 썰어대던, 거대한 날개를 가진….
나를 닮은 남성의 파란 눈빛이 붉은 빛으로 변한다.
같은 여섯쌍의 날개를 가진 아름다운 여성이 세상이 찢어져라 질러대는, 저 심해 끝에서 울려대는 귀곡성의 메아리.
금발의 남성이 그녀에게 시퍼런 대검을 겨눈다.
…….
* * *
감았던 눈을 뜨자, 낡은 구리 반지에서 새하얀 빛이 세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 빛은 점점 더 선명해지고, 점점 더 밝아지며 왼쪽 손목을 지나 어깨까지 올라간다.
이윽고 찌릿한 통증과 함께 왼쪽 어깨부터 손목까지 새하얀 기하학적인 도형이 문신처럼 새겨진다. 그리고 느껴지는 등 뒤의 아픔.
“… 위대하신 군주의 부(夫)를 뵙습니다.”
“…….”
사라가 내 앞에서 털썩 주저앉아 무릎을 꿇는다.
“위, 위대하신 군주의 부를 뵙습니다.”
“찬란한 영광! 군주의 부를 뵙습니다.”
“…….”
직접 보지 않아도 이젠 알 수 있다.
등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인간형 유닛, 아니 내 종 들이 말하는 뜻과 행동.
저 멀리 느껴지는 각종의 종 들과 가슴을 뛰게 만드는 그녀.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삶을 살았었는지 알게 되었다.
“…….”
잠시 후.
사라가 항상 말하던 그분이 내 앞 화려한 의자에 조신하게 앉아 있다.
이곳이 던전이라 이곳에서 나가 집으로 돌아가면, 아마 머리 염색과 서클 렌즈를 낀 내 와이프와 똑같으리라.
“… 그, 그래서 제가 어쩔 수 없이 차원이동 마법진을 사용했어요.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은 아닐지언정, 분명 당신은 제 남편이에요. 이곳 이데아의 부군이기도 하시고요. 흐흑.”
“…….”
“어, 어찌 지금까지 한마디 말씀이 없으신가요? 그토록 오랜 시간 당신을 찾아 얼마나 많은 곳을 헤매고 다녔는지… 당신도 알고 계시잖아요. 어찌….”
“… 일단 이 전쟁을 마치고 보지.”
“낭군!”
“재회는 나중에. 종 들의 희생을 헛되게 할 생각인가.”
“아, 아니에요. 너무나 반가워서 그만….”
“수식(修飾)은 그대로인가.”
“네. 변하지 않았어요.”
“그렇군. 2시간 이후 총공격을 감행한다. 그 동안은 잠시 쉬고 싶은데.”
“네… 쉬세요.”
그녀가 성체 타워 밖으로 나가자 주변에 서 있던 사라가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부군. 여쭙기 황공하오나 모든걸 인지하셨는지요. 저들의 워프게이트를 파괴하지 않으면 이 전쟁을 이기기 어렵사옵니다. 계속해서 충원되는 기갑 유닛들을 어찌 상대하시려는지요. 인지하시기 전에….”
“사라.”
“네. 부군.”
“난 지구에 있던 그 사람인가, 아니면 이데아의 부군인가.”
“… 이데아의 부군이십니다.”
“그런가.”
“… 네.”
“나가보라.”
“네.”
사라가 머뭇거리며 밖으로 나가자 난 긴 한숨을 쉬며 두 눈을 감았다.
2시간 후.
수십만의 발업 저굴링, 수만의 히드라, 수천의 와이번과 락커, 울트라, 가디언, 멍텅구리, 하늘군주 등이 바이오 진형을 나와 광활한 공터에 진형을 이뤄 내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난 지금도 여전히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내게 각인된, 아니 내가 기억하고 있던 금발의 파란 눈동자, 바이오 군주의 부군은 예전의 나 일지언정, 지금의 나는 아니다.
이들이 찾고 있던 군주의 부군은 수많은 차원에서 지구와 커넥트 된 예전의 내가 되었지만, 난 이곳에서 부군으로 살 맘이 전혀 없다.
왕?
여왕의 남편?
그게 뭐라고?
그게 뭐라고 내 가족을 버리고 이곳에서 평생을 지낼까.
낡은 구리 반지가 그녀와 예전의 내가 이곳에서의 언약의 증표라면, 지금의 나 역시 아주 조그만 다이야가 박힌 언약의 증표를 내 와이프에게 줬었다.
인식 마법과 종 들의 언령이 담긴 낡은 구리 반지에 비하면 조족지혈이겠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날 기다리고 있을 아들과 와이프, 부모님과 친척들을 다 버리고 여기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까.
그녀와 이들이 찾고 있는 금발의 파란 눈동자를 가진 군주의 부군은 더 이상 어느 차원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만 그걸 인지하지 못할 뿐.
알려준다고 해서 알아들을 수도 없겠지만, 나 역시 그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
800년간 찾아온 그들의 부군이 더 이상 어느 차원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면 이들의 전쟁은 또다시 시작되리라.
아마도 무수히 많은 다른 차원에 새로운 커넥트를 연결할 것이고, 나처럼 800년 전 기억을 가진 이가 또다시 이곳으로 선택받아 찾아들겠지.
어떤 누군가는 이곳에서 부군으로 남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역시 예전의 그들의 부군이 아님을 알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은 그저 기다리고 기다릴 뿐.
난 아니다.
하지만, 당신.
저 먼 기억 속에 언약의 증표를 나누어 가진 다른 차원, 다른 세상의 또 다른 내 반쪽.
그래도 내가 이곳에 찾아온 마지막 기억은 남겨줘야지.
그래야 이 기억으로 800년 전 그때로 다시 돌아가는 게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결정은 이데아의 군주, 당신이 할 일이겠지만.
난 기나긴 상념을 끝내고 바이오 진형 가장 앞에 서서, 그녀를 위한 마지막 기억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발업 저굴링 1만 단위로 부대를 나눈다. 좌측으로부터 저굴링 1군, 2군, 3군 형식으로 칭하며, 아래로 히드라 1천 개체씩 위치한다. 울트라 100개체씩 각 군에 배정하며, 와이번, 가디언, 멍텅구리, 하늘 군주는 해당 군 상공에서 대기. 마법지렁이 100개체씩 히드라 진형에 포진하고, 각 군 진형 300m 간격 유지하라. 진형 편성 후 군단장 퀸들은 각 부대 편성에 대한 보고를 나에게 직접….”
내 부대 편성 지시에 옆에 서 있던 그녀가 이상한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부대 편성을 마치고 해당 군단장, 인간형 유닛들이었던 퀸들에게 보고를 받은 후 출진하기 바로 전.
옆에 있던 그녀가 내게 묻는다.
“예전에는 이런 식으로 지휘하신 적이 없는데….”
“예전의 난, 내가 아니지. 내가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면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나.”
“… 그런가요?”
“그렇지.”
“… 당신! 너무나 이상해요. 마치 다른 사람처럼, 껍질은 같은데 안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같을 수가 없질 않나.”
“…….”
“내 이름은 한지원. 나이 43. 지구에서 대한민국이란 국가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지. 그게 바로 나야.”
“…….”
“이데아 대륙의 여왕이자 만물의 군주인 당신의 남편, 이데아 부군. 아카펠라 드 이데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그 망령만 떠돌고 있을 뿐.”
“아, 아니에욧! 그럴 리가 없어요!”
“현명했던 군주가 뭔가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역사적으로 그 종족이 끝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가? 스스로 돌아보기를….”
난 내 생각을 그녀에를 툭 내뱉곤 셔틀을 부대 진형 상공으로 이륙시켰다.
“모든 부대 종속 전진! 부대 간격 유지. 복명복창 하라!”
“종속전진! 간격유지!”
“종속 전진! 간격 유지!”
내 명령에 해당 부대 퀸들의 외침이 사방에서 메아리쳐 돌아온다.
‘두드드드… 드드드드.’
‘콰… 치지직! 파… 치직!’
바이오 부대가 진형을 갖추어 본진에서 이동하기 시작하자 전방 5km 앞으로 다가온 기갑 유닛들의 진형에 수많은 마법 번개가 생성되고, 수만에 달하는 줄럿들과 드라칸들이 여기저기서 바삐 움직인다.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것은 저들의 워프게이트 파괴.
지금 한 번의 전투를 승리로 가져가봤자 지속적으로 충원되는 유닛들이 생겨나게 되면, 종족간의 전투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중간의 유닛 보급과 이데아와 올륌푸스 행성간의 워프 연결을 끊어야 다음 대책을 세울 수 있다.
물론 기갑 부대 중앙 후미에 설치되어 있는 워프게이트에 접근하기가 쉽진 않겠지만, 어차피 나 혼자 치루는 전투가 아니다. 더군다나 지금까지처럼 무작정 전방으로만 달려들어 서로 드잡이질 하는 방식은 내가 아닌, 9살 된 내 아들이 봤어도 의문을 제시할 정도.
일부러 이러는 걸까?
아니면 전략이란 걸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종족?
아니, 그건 아니다.
수많은 평행차원을 들낙거리는 이들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명령을 체계적으로 내릴 지휘관이 없었던가?
그녀는 무얼 하고 있었던 거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자, 난 고개를 저어 상념을 떨치고, 부대를 전방 3km 앞까지 이동시킨 후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발업 저굴링 1군부터 5군까지 좌측으로 크게 돌아 저들의 왼쪽 진형으로 파고든다. 마찬가지 6군부터 10군까지 우측으로 돌아 오른쪽 진형. 히드라 본대는 현 지점 대기하다가 저굴링들이 양쪽 옆으로 파괴들 때 정면으로 달려든다. 락커 부대는 유닛당 30m 간격 유지하여 공격 및 방어를 서포트하고, 각기 해당 부대에 유치한 울트라, 와이번, 가디언, 멍텅구리는 저굴링 부대와 함께 움직인다. 전투 시작 후 30분 경과하면 모든 부대는 본진 방어 라인쪽으로 천천히 후퇴하라. 난 저들의 워프게이트를 파괴하겠다.”
“… 나, 낭군!”
내 작전 지시에 그녀가 날 다시 쳐다본다.
찌푸려진 아미(蛾眉)와 떨리는 입술로 보아하니 걱정과 근심, 불안함이 공존하는 모양이다.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할까. 당신도 날 선택한 이유가 있지 않아?”
“…….”
“다중 직군. 바이오 유닛, 절대 명령. 절대등급 스킬, 사라 마틸다. 그리고… 아트팩터.”
“……!”
“날 선택한 이유가 이것이겠지.”
“아, 아니에요. 그건 당신이 이데아의 부군이기에….”
“말했잖아. 난 이데아의 부군이 아니야.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는 인간이야. 대신 그의 기억을 함께 가지고 있을 뿐.”
“나, 낭군.”
“좋은 기억은 그대로 묻어 두는 게 좋아. 굳이 자꾸 꺼내서 퇴색시킬 필욘 없잖아.”
“…….”
떨리는 눈동자. 질끈 깨문 입술. 그리고 파르르 거리는 여섯 쌍의 날개.
지구에 있는 내 와이프라면 이럴 때 힘껏 껴안아 줄 텐데….
그녀가 한없이 날 쳐다본다.
난 그런 그녀를 말없이 지켜보다 고개를 돌려 전장을 살폈다.
그리고,
“전 부대… 공격!”
‘두드드드… 드드드.’
‘키에엑… 키엑.’
‘쿠롸롸라… 쿠롸라.’
“저굴링 1군부터 5군까지 좌측으로 우회하라!”
“6군부터 10군까지 우측으로!”
“히드라 부대 종속 전진!”
“와이번 부대 전진!”
내 총공격 명령에 해당 군단장 퀸들이 각기 다른 명령을 내리고, 엄청난 대지의 진동과 함께 뿌연 먼지가 일어난다.
좌, 우로 벌어져 뛰쳐나가는 발업 저굴링 부대를 바라보며, 난 캐비어를 소환시켰다.
“캐비어 전체 소환!”
[띠링! 캐비어 534개체를 소환합니다.]“전방 기갑 유닛들 중 타락한 전사, 마법주술사, 굼벵이 전차를 우선 파괴한다. 출발!”
…….
잠시 후.
‘파바방… 파바바방.’
‘파팡… 파파파팡.’
캐비어 한 개체 당 20마리의 피라미들이 본체에서 이탈해 지상으로 떨어진다.
개체 당 20마리 피라미.
셔틀을 중심으로 상공에 퍼져있는 캐비어 5백여 개체.
1만 마리 이상의 피라미들이 공중 30m 위에서 지상으로 자폭 스킬을 시전하자,
‘콰아앙. 콰앙.’
‘쿠아아앙… 쿠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