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2_2
“옵빵!”
엄마를 찾아가며 펑펑 울어대던 지혜가 달려와 뒤에서 날 껴안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입술을 내 목과 볼에 미친 듯이 부딪치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지혜가 서둘러 아이템들을 주워 모았다.
‘불꽃의 정화(흡수가능)
출처: 기갑 던전(10등급), 등급: 10등급,
파이어 마법계열 능력치 가용률: 1.4% 상승(레벨에 따른 차별 가용)’
이게 2개.
‘얼음의 정화(흡수가능)
출처: 기갑 던전(10등급), 등급: 10등급,
아이스 마법계열 능력치 가용률: 1.2% 상승(레벨에 따른 차별 가용)’
이게 하나.
‘전사의 투지(흡수가능)
출처: 기갑 던전(10등급), 등급: 10등급,
전투계열(전사) 능력치 가용률: 1.7% 상승(레벨에 따른 차별 가용)’
이거 하나와 가용률 1.5% 짜리 하나.
‘이데아의 축복(흡수가능)
출처: 기갑 던전(10등급), 등급: 10등급,
힐러 계열(성직자, 힐러) 능력치 가용률: 1.3% 상승(레벨에 따른 차별 가용)’
이거 하나와 가용률 1.2% 짜리 하나.
‘이데아의 치료(흡수가능)
출처: 기갑 던전(10등급), 등급: 10등급,
힐러 계열(성직자, 힐러) 능력치 가용률: 1.6% 상승(레벨에 따른 차별 가용)’
이거 하나.
‘줄럿의 상의 갑옷(흡수가능)
출처: 기갑 던전(10등급), 등급: 9등급(평범한),
대인 방어 능력치 가용률: 1.3% 상승(레벨에 따른 차별 가용)’
이거 하나.
‘줄럿의 건틀릿(흡수가능)
출처: 기갑 던전(10등급), 등급: 10등급,
전투계열(전사) 대인 공격 능력치 가용률: 1.2% 상승(레벨에 따른 차별 가용)’
이거 하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데아 주머니(흡수가능)
출처: 기갑 던전(10등급), 등급: 9등급(평범한),
인벤토리 능력치 4 증가’
이거 하나.
총 11개의 아이템을 바닥에 펼쳐놓고 고한득, 최길수가 미친 듯이 웃어댄다.
“푸하하… 세상에 이런 날도 있구나.”
“이게 진짜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겠다. 카하하….”
“이거 내다 팔면 대충 계산해도….”
“아서라.”
“큼… 그, 그래.”
지혜는 조금 전 나에게 말한 건전한 고백 이후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메마른 나뭇가지에 달라붙은 매미처럼….
“형님. 저희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여기에 있는 것 중 이거하고 이거는 흡수하시고 나머지는 길드나 협회를 통해 판매하시면 될 겁니다.”
고한득이 줄럿의 상의 갑옷과 이데아 주머니를 손으로 가리키며 나머지는 팔라고 한다.
“너희는?”
“예? 무슨 말씀이신지? ….”
“왜 너희 꺼는 없어?”
“…….”
“… 하나 정도 주시게요?”
응?
던전 같이 클리어 하다가 나오는 아이템은 클리어 공헌도에 따라 나누어 가지거나 일정 비율로 정산해서 계산하는 게 정상적인… 아… 공헌도!
오늘 아라동 10등급 기갑 던전 클리어는 우연찮게 내 공헌도가 가장 컸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도 알고 있고 이들도 알고 있다.
중간에 이들이 처리한 줄럿이 얼마나 되는지는 난 모른다.
못 봤으니까.
자신들이 다 처리했다고 우겨도 난 아무 말 못하는 상황.
그래도 양심적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아이템을 앞에 두고도 욕심을 내지 않는다.
옆에 달라붙어 있는 이 앙큼한 고양이 한 마리는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밉지 않다.
아니, 사실 많이 고맙다.
처음 들어온 10등급의 기갑 던전.
아무도 다치지 않고 클리어 한 것은 물론, 뜻밖의 미네랄도 생각보다 많이 얻었고, 특성 테스트도 이것저것 해봤다.
앞으로도 이들과 같이 한다면 오늘 같은 성과는 지속적으로 생겨날 것이다.
물론 다른 각성자들과 던전에 들어와도 되지만, 난 한번 연을 맺은 인연은 쉽사리 끊지 않는다.
그게 아리아 길드 제주지부 현 가 새끼일지언정….
더군다나 앞으로 던전 클리어 인원은 전사와 전투 마법사, 그리고 성직자와 나. 조합도 딱 좋다.
짧지 않는 시간 동안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이런 아이템쯤이야.
투자다.
나에 대한 투자와 이들에 대한 투자.
오늘은 큰돈을 벌었으니 내가 흡수하지 못하는 아이템으로 선심 한번 쓰지 뭐… 그게 거시적 안목으로 이들을 키우고 날 키우는 길이다.
난 바닥의 아이템 중 전사의 투지 2개와 줄럿의 건틀릿 1개를 전사인 최길수 앞으로, 이데아의 축복 2개와 치료 1개를 고한득 앞으로, 마지막으로 불꽃의 정화 2개와 얼음의 정화 1개를 지혜 앞으로 밀어 놨다.
우연인지 각자 아이템 3개씩 돌아갔다.
그들의 직군에 맞춘 듯.
“이거는 길수 꺼, 이거는 한득이 꺼… 그리고 이거는 지혜 꺼.”
“…….”
“… 혀, 형님!”
“… 오빠.”
다들 나만 멍하니 쳐다본다.
아이템 처음 보는 사람마냥….
“뭐하냐? 아이템 처음 봐? 뭐… 난 처음 본다만… 앞으로도 던전 클리어하려면 너희들한테 필요할 것 같아서 잘 부탁한다고 미리 뇌물 좀 주는 건데. 약소해? 약소하면 내 미네랄이라도 꺼내서….”
“…….”
“오빠! ….”
갑자기 지혜가 날 덮친다.
이 미친년은 지금 뭐하자는… 게 아니고… 날 쓰러뜨린 그녀의 뜨거운 눈에서 차가운 이슬비가 내 가슴에 떨어진다. 촉촉이….
역시 무슨 일이 있었나?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감정을 수습한 지혜가 자신 앞에 놓인 아이템을 흡수했다. 그걸 본 고한득과 최길수도 아이템에 손을 가져갔다.
나 역시 줄럿의 상의 갑옷과 이데아 주머니를 흡수했다.
“상태창!”
국적/소속: 대한민국/없음, 나이: 39, 신장/체중: 176cm/84kg,
민첩: 1, 지구력: 1, 힘: 2, 체력: 1, 지능: 2, 행운: 1,
인벤토리: 1/5(미네랄 11.453kg), 수정체: 1/3,
건물: 3(포스, 배터리, 게이트웨이),
소환 대상 능력치: 16(프롤브), 줄럿의 상의 갑옷 1,
보유 아트팩트: 미네랄 조각(흡수) 0, 이데아 주머니(흡수) 1]
“음….”
인벤토리 능력치가 1에서 5로 늘어났고 줄럿의 상의 갑옷은 소환 대상에, 이데아 주머니는 보유 아트팩트에 흡수되었다.
아… 갑옷은 소환하는 건가?
“줄럿의 상의 갑옷, 소환!”
떨떠름한 목소리로 갑옷을 소환시켜 봤다.
역시나 제대로 될리가 없… 응?
가슴이 간질간질거리는 게 꼭….
‘푸치… 지지직’
깜짝이야!
바닥에서 솟아난 하얀 빛이 순식간에 내 발을 타고 오르더니, 어느덧 줄럿의 상의 갑옷으로 변해 있었다.
손으로 살며시 만져보자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겉은 거칠고 차가운 느낌에 딱딱한 표면이….
‘콰광!’
진짜 깜짝이야!
뭔소리야?
소리 나는 방향을 쳐다보니 지혜가 놀란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날 쳐다보더니 순식간에 나에게 다가와… 또 덮친다.
던전 클리어 완료 시간까지 한지혜와 최길수, 고한득이 미친 듯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누구는 손에서 파이어 마법을, 누구는 불에 그을린 게이트웨이와 반쯤 부서진 넥서스를 대검으로 썰어댔고, 또 누구는 지친 그들을 회복시켰다.
뭐 나야 그냥 저 미친 짓거리하는 애들을 구경했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불덩어리를 던지고, 칼로 춤을 추는데… 장관이다.
팝콘이나 콜라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중간에 한득이가 그만 나가야 된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아마도 관리 길드에 던전 사용료 추가 비용을 부담했을지도 몰랐다.
물론 난 얼마인지 모른다.
왜냐고? 난 평범하니까… 가 아니고, 그래 본 적이 있어야 알지!
던전 입구 쪽으로 걸어가다 지혜가 아이템 값이라고 자신이 얻은 미네랄 전부를 나에게 넘겼다. 그러자 길수와 한득 역시 자신의 미네랄을 인벤토리에서 꺼내더니 한마디 한다.
“형님. 이 정도로는 부족하지만 아이템 값이라고 생각해서 받아주십시오.”
“맞습니다. 형님. 추후에 던전 클리어하게 되면 그때마다 저희 몫은 형님이 다 가지세요.”
“그깟 아이템 하나가 얼마나 한다고….”
그러면서도 난 그들이 준 미네랄을 인벤토리에 차곡차곡 쌓아갔다.
중간에 길수에게 미네랄 덩어리를 부셔달라고 한 후 흡수 가능한 작은 미네랄 조각들은 최대치로 흡수했다. 나중에 수정체로 만들어야지~
물론 흡수하지 못하는 나머지 것들은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이것도 다 돈이거든.
미네랄 무게만 대충 20kg 가까이 된다.
인벤토리가 좋긴 좋다. 들고 다닐 필요도 없고.
그리고 미네랄 20kg면… 대충 계산해도 치, 칠천만 원이다. 캬하하….
이 정도의 금액이면 내가 가진 빚을 다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밖으로 나오니 여긴 다른 세상 같다.
던전에 고작해야 몇 시간이나 있었다고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그래도 제주는 공기가 깨끗한 편인데, 던전 안의 그 청량함과는 비교가 안 된다.
한득이 차를 빌려 타고 신제주로 향했다.
뭐 자주 가는 사우나에서 몸을 씻은 후 각성자 쇼핑몰에 잠시 들린다는데… 뭣 하러 그런데를… 응? 날 위해서?
그게 무슨 말이야?
신제주 OO사거리 쪽에 있는 커다란 쇼핑몰.
평상시에도 지나가다 많이 봤다.
물론 들어가 본적은 없다. 들어갈 일이 있어야지….
여긴 각성자 마법물품을 전문적으로 파는 곳.
“형님. 이번에 얻은 미네랄로 초보용 장비는 마련하세요. 형님처럼 평상복 입고 던전 들어가는 각성자는 없다구요.”
“맞습니다. 처음엔 저도 형님 복장 보고 많이 놀랐어요. 왠 잡상인이 던전 관리소에 뭘 팔러 오는 줄….”
“왜 지원 오빠한데 그러는 건데? 지들은 처음부터 다 알았나?”
“…….”
“… 지… 들?”
“쳇!”
지혜야….
제발 이상한 말로 분위기 흐리지 말아 줄래?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각성자 라이센스 확인하는 절차가 있었고, 그 주변에는 정장을 입은 보안요원들이 보였다.
여긴 일반인들은 못 들어오는 거야?
안으로 들어서자 고급스런 인테리어에 붉은 카펫, 넉넉한 공간과 이름 모를 마법 물품들… 거기에 상당한 미모를 소유한 여직원들이 한껏 미소를 지으며… 어이. 왜 옆구리를 꼬집고 그래?
“헐….”
무엇보다 내가 놀란 건 초보용 각성자 부츠가 1,200만 원이나 한다는 것이다.
장갑이 900만 원, 망토가 2,300만 원, 거기에 각종 액세서리류와 무기류, 방어류는 그 값이… 크헉!
깜짝 놀라 다른 물품들도 이 정도 금액인가 하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다 우연찮게 뭔가를 봤다.
아이템 코너라는데….
‘불꽃의 정화,
등급: 10등급,
파이어 마법계열 능력치 가용률: 1.4%,
금액: 128,000,000’
응? 얼마?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조그만 보석 같은, 붉은 돌멩이, 허접한, 아무것도 아닌… 저 아이템이 얼마라고?
이, 일억 이천?!
그럼 내가 던전에서 지혜에게 인심 쓴 척 건네준 아이템 3개의 값은…?
난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불꽃의 정화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특히나 금액부분을….
집중적으로….
…….
날 따라오던 지혜가 뒤에서 말을 건넨다.
“오빠. 다른 건 몰라도 부츠하고 장갑, 망토는 꼭 사야 돼. 바이오 던전에는 식물형 공격 유닛도 있단 말야… 중독 될 수도 있어.”
내가 뒤돌아서서 지혜를 마주봤다.
몇 초간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지혜가 쑥스러웠는지 몸을 비비 꼰다.
“오, 오빠… 왜~ 에?”
지혜한테 준 아이템… 다시 달라고 할까?
한득과 길수한테 준 것도 다시 돌려 달라고… 크아악!
이왕 준 거 다시 달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이제 와서 그렇게 비싼 건줄 몰랐다고 하는 것도 우스웠다.
더군다나 그들이 감격해하며 자신들의 미네랄을 나에게 넘겨줬으니 공짜는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준다고 했으니 그 금액만큼 받아내야… 그, 그래도 존나 아깝다.
씨팔!
쇼핑몰 안에 있는 미네랄 취급소에서 깨진 미네랄 조각까지 21.684kg 전량을 팔았는데, 그 금액이 7천7백3십만 원 가량 나왔다.
세금과 수수료를 떼니 대충 칠천만 원 정도가 내 통장에 입금되었고, 무조건 사야 된다는 부츠와 장갑, 망토를 사고 나니 3,300만 원 정도가 남았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받는 1년 연봉이 4,000만 원이 안되는데, 10등급 기갑 던전 클리어 한방에 마법물품을 사고도 삼천만 원 이상 남았으니… 는커녕, 아직도 약간은 아쉽다.
아니, 많이 아쉽다.
담에는….
쇼핑몰을 나와 신제주 위쪽의 소고기 전문점으로 향했다.
미리 예약을 해놨는지 아니면 자주 오는 곳이라 그런지, 조용한 방으로 들어가 자릴 잡고는 술과 음식을 시켰다.
선홍색 마블링이 뚜렷하게 보이는 꽃등심이 숯불 위에서 익기 시작하자 한득이가 복분자 잔을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형님. 한잔 올리겠습니다.”
“어. 그래. 근데 복분자는 첫잔 만이다. 소고기에 왠 복분자?”
“알겠습니다. 형님. 오늘 정말… 대단히 고맙습니다.”
“고맙긴… 나도 많이 고맙다.”
“자~ 한잔 드시죠.”
“그러자. 길수하고 지혜도 같이 건배하자.”
“네. 오빠~.”
“예.”
다들 잔을 채우고 건배를 한 뒤 달콤한 복분자로 목을 축이고, 적당히 잘 익은 꽃등심을 입에 넣자 세상 부러운 게 없다.
이 맛에 던전을 클리어 하는… 게 아니고, 돈만 많으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거다.
순한 소주와 촘이슬, 맥주를 따로 시킨 후 본격적인 술자리가 시작됐다.
지혜는 소맥, 한득이는 복분자, 길수는 촘이슬, 난 순한소주. 다들 취향이 달랐다.
서로 술을 따라 주기도 하고, 자작하기도 하고, 고기는 무조건 웰던이라고 우기는 지혜를 보며 웃기도 하고… 참 분위기가 좋았다.
어느 정도 배가 차자 한득이가 슬며시 나에게 물었다.
“형님. 다음 주 수요일 오후 3시에 어리목 10등급 기갑 던전 어떠십니까?”
“수요일? 오후 3시?”
“네.”
“나 평일은 출근해야 하는데?”
“예? 추, 출근?”
깜짝 놀랐는지 지혜가 날 쳐다보았고, 고기를 굽던 길수의 바쁜 손이 멈췄다.
“어. 나 직장인이야.”
“…….”
“… 노, 농담이시죠?”
“오빠!”
어? 내가 뭘 잘못했나?
당연히 일 해야 벌어먹고 살꺼 아냐!
그럼 너희들은?
아~ 일 안 해도 되겠구나….
음… 오늘 하루 벌어들인 돈이 삼천. 아니지 마법물품까지 합치면 칠천.
뭐 아이템 빼고도 하루에 칠천이면….
한 달이면… 아… 한 달 내내 던전 돌지 못하니 대충 한 달에 2번만 던전에 들어가면….
음… 회사, 그만둘까?
* * *
다음날.
11시쯤 일어나보니 어제 무리를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술을 짬뽕으로 먹어서 그런 건지 평상시보다 머리가 더 아팠다.
역시나 와이프는 애를 데리고 처제집으로 놀라간 모양이다. 집에 아무도 없는 걸 보니.
냉장고에서 찬물을 들이키고 담배하나 빼어 물고 화장실로 향했다.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온 후 경환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일요일.
주말은 무조건 낚시다.
‘뜨거운 밤~ 잠 오지 않고~ 이런….’
“이제야 일어난? 왜 전화 안 받았어?”
“전화 했었어? 못 봤는데?”
“오늘 말고 어제 오후에 전화했었는데….”
“아~ 어제는 던전 들어갔다 나왔… 큼큼….”
“뭐? 더, 던전? 니가? 진짜? 진짜로? 야! 뻥 쳠지?”
무심코 내뱉은 말에 경환 형이 죽자고 달려든다.
“알아서 생각하시고. 그리고 오늘 낚시 안 감?”
“지금 낚시가 문제가! 너 어제 진짜 던전 들어갔다가 나완?”
“궁금하면 낚시 장비 챙겨서 오세요~. 오면 말해줌. 끊어.”
난 내 할 말만하고 전화를 끊었다.
끊자마자 막바로 전화가 다시 걸려오는 게 여간 궁금한 모양이다.
근데… 이거 말해도 되려나?
사실대로 얘기했다간 금방 멤버들한테 소문이 돌테고… 여기저기 퍼져 나갈 텐데… 끙….
무심코 어제 일을 말한 내 입이 방정이다.
대충 거실을 치우고 환복한 후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시는데 집 초인종이 울린다.
경환 형이 벌써 왔나? 존나 빠른데?
신발을 신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경환 형이 내 팔을 낚아챈다.
“야! 진짜? 진짜로 던전 들어가 난? 니가? 어떵?”
“… 나 각성한 거 말했잖아. 저번에 라이센스도 봤으면서. 낚시나 가게.”
아파트 복도를 걸어가는데 경환 형이 안 따라온다.
뒤를 돌아보니 멍한 눈으로 날 쳐다보고만 있다.
“낚시 안 갈 거?”
“… 얼마 벌 언?”
내가 던전 들어갔다 나온 것보다 얼마나 번 게 더 궁금한 건가?
뭐 사실 주변에 아는 각성자라곤 나 밖에 없을꺼고, 포털사이트나 TV에서 보면 10등급 각성자 평균 연봉이 4억 이상이라고 하니 내가 얼마 벌었는지 궁금하게 생각할 만도 하다.
그건 그렇고 그래도 20년을 알고 지낸 사이에, 던전 들어갔다 나왔다는 말을 들으면 어디 다친 데는 없냐, 몸은 괜찮냐, 거기 분위기는 어떠냐, 유닛은, 다른 각성자들은… 뭐 이럴 걸 물어보는 게 정상적인 반응 아닌가?
아니다.
우리들은 이런거 쑥쓰러워서도 못 물어본다.
차라리 지금처럼 얼마를 벌었는지를 물어보는 게 최대한의 관심 표출이다.
그래도 우리 멤버들은 내 능력치를 4로 알고 있을 테니, 대충 말해줘도 되겠지?
언제까지 숨길수도 없는 거고….
“500.”
“응? 500? 입장료 포함?”
“입장료 빼고.”
“… 이야~ 대박! 대박 중의 대박. 야! 술 쏴!”
“낚시 가믄.”
“횽. 어서 가시죠. 오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밑밥 통도 횽이 들고.”
“예이~ 당연한 말씀을… 자자… 이리로….”
“이쪽으로 가야 빠릅니다.”
“네이~ 그럼 저리로….”
“캬캬캬….”
“크큭….”
서로 장난을 쳐가며 복도를 걸었다.
형도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다.
이게 전부가 아님을….
아마도 오늘 저녁도 술자리가 이어질 것 같다.
아마도….
경한성이 낚시를 하는 둥 마는 둥이다.
자꾸 날 힐끔거리더니 자신의 낚싯대를 거두고는 이쪽으로 다가온다.
새로운 생물 오징어 조각을 꺼내 낚시 바늘에 끼고 멀리 던진 후 갯바위에 낚싯대를 고정시키고는 비닐봉지에서 캔 커피 두 개를 꺼내 내게 다가와 하나를 건넨다.
“커피 한잔 하자.”
“응.”
나도 바닥에 낚싯대를 내려놓고 경환 형이 준 캔 커피를 따고 담배를 빼어 물었다.
“… 솔직하게 불어.”
“…….”
“너와 나 사이에 이럴 거?”
“…….”
“500 넘지?”
“… 응.”
“1,000은?”
“대충 그 정도.”
‘퍽~.’
갑자기 경환 형이 내 어깨를 힘껏 친다.
“왜!”
“술 두 번 사.”
“그냥 사라고 하면 되지, 때릴 것까지야. 그리고 승찬 형이나 상준 형한텐 비밀로 하고, 아니 말할 꺼면 대충 500이라 하던지.”
“아랐져.”
경환 형이 피식피식 웃으며 날 쳐다본다.
정말 비밀로 할런가?
우리들은 축하한다는 뜻 대신 서로의 뒤통수나 어깨를 친다. 힘껏.
그리고 술을 산다. 양껏.
낚시를 일찍 접고 시청 쪽 당구장으로 향했다.
저녁 먹기 전에는 항상 저녁내기 당구가 있기에….
당구장에 도착해보니 역시나 승찬 형과 상준성, 그리고 상호성과 서용성까지, 경환 형과 나, 총 6명의 모든 멤버가 모였다.
“어쩐 일로 다들 모였….”
“축하햄쪄.”
“오늘 거하게 쏜다며?”
“당구 치지 말고 막바로 가지?”
“그럴까? 의미가 없잖아. 의미가….”
“지원아… 잘됐져.”
응? 뭐지? 이런 분위기는….
어쩐지 경환 형이 당구장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먼저 간 이유를 알겠다.
그날 1차로 아나고 전문점에 들려 저녁을 샀고, 승찬 형과 가끔씩 가는 육회집 2차까지 내가 샀다.
* * *
월요일 아침 일찍 간부회의를 시작으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이번 주는 OOO 프로젝트 완료로 인해 정신없이 지나갈 것 같다.
그래도 수요일에 있는 어리목 기갑 던전 클리어는 꼭 해야지.
돈이 얼만데….
대충 3~4시간 정도면 어리목까지 이동하는 시간과 클리어 하는 시간을 합치더라도 넉넉하리라.
그 전에 내가 맡은 일은 빈틈없이 처리해 놔야 한다.
자리를 비워도 될 만한 시간적 여유를 만들려면, 오늘 내일은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아직까지 회사 내에서 내가 각성자라는 걸 아는 사람은 없다.
내가 일부러 얘기하지 않는 이상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게 좋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분간, 경제적 여유가 생길 때까지, 충분한 여유자금이 생길 때까지, 빚을 다 갚고 집을 사고, 차를 사고, 와이프한테 뭔가 해줄 수 있을 때까지는 이번에 번 돈을 가급적 숨길 심산이다.
어차피 기대가 너무 높아지면 그만큼 실망감도 더 큰 법.
여하튼, 회사는 가급적이면 지금처럼 계속 다닐 생각이다.
가급적이면….
다음날 오후.
프로젝트 완료 서류를 기관에 다 제출하고 저녁때까지 약간의 시간이 남아 사무실에 들렸다.
물론 이번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담당자가 밥을 산다는 걸 다음에 하자고 미뤘을만큼….
또 다른 프로젝트 건으로 인해 인력과 스케줄, 산출물 체크를 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우웅~ 우우웅~.’
한지혜다.
“한지원입니다.”
그리고 보니 이 녀석과 내 이름이 비슷하다.
무슨 남매처럼.
“옵, 빵~ 어디?”
“빵은 빵집에 가서 찾고. 나 지금 사무실. 왜?”
“진짜? 진짜로 사무실? 회사?”
“진짜. 진짜로 사무실. 회사.”
“헐… 저번에 준 명함, 그 주소로 가면 오빠 만날 수 있어?”
“그럼, 내가 어딨겠냐?”
“알써~ 20분 내로 도착. 길수오빠하고 한득 오빠도 같이 있어. 그리고 나보다 조금 못 생겼지만 꽤 괜찮은 애도 있고, 이따가….”
전화를 끊었다.
근데 이것들이 왜 사무실로 쳐들어오는 건데?
내일 만나면 되잖아!
얘들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사무실 1층으로 내려가자 진주색 산토페에서 길수와 한득, 지혜와 그녀의 친구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내린다.
“형님!”
“형.”
“옵빵~.”
“빵은 빵집에… 다들 일단 올라가자. 커피 한잔씩 먹고 가.”
난 이들을 데리고 회사 내 회의실로 자릴 옮겼다.
믹스 커피 한잔씩 타주고 자리에 앉자 처음 보는 젊은 여성이 인사를 해온다.
“안녕하세요. 김미혜입니다. 지혜한테서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응? 나?
왜 나한테 잘 부탁한다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