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3_3
응? 이모, 이모부까지?
엄마 친구들?
아버지 친구분들?
왜?
도대체 왜 이렇게 판이 커지는 건데!
집들이 답례품과 식사비용, 잔치고기, 광어회 정도로 대접하려고 했던 내 계획을 철저하게 무시한 와이프의 대담한 주문과 계획으로 새로 발급받은 통장의 체크카드를 아예 넘겨 버렸다.
이제 됐다.
신경 끝!
알아서… 제발 알아서 해.
며칠 후.
왁자지껄. 시끌벅적.
난리법석. 난공불락.
처음에는 좋게… 좋게 손님들을 맞이했다.
사무실 직원들에게도 두시 이후로 오라고 했으니 넉넉할 줄 알았던 집들이는, 두시가 채 되기도 전에 집이 터져버릴 것 같다.
큰 거실과 안방에 마련한 자리가 좁아 아들방과 내 방까지 상을 마련한 후 대접했지만 밀려드는 손님들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33평이 이렇게 좁았어?
이럴 줄 알았으면 집들이 안 한다고 할 것을… 아, 아니다.
현관문 앞에서 환하게 웃으시며 손님들을 맞이하는 어머님, 친구분들하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모르지만 입이 귀에 걸린 아버님, 저번에 드린 삼천(이라 읽고 최초 멀티 포상금이라 쓴다.)이 아무래도 좋으셨나 보다. 아마도 그렇겠지?
장모님과 장인어른도 흡족히 웃으며 여기저기 손님 대접이 한창이고, 와이프는 불려 다니기에 바빴다.
뭐 나야… 아들과 함께 소파에 앉아 TV를 보다가 친척분들이나 아시는 분이 오면 인사 하는 게 전부.
물론 술을 권하는 손님들도 있었지만, 아직은 내가 취하면 안됐기에 웃으며 대충 한잔 정도 입에 댔다.
지금은 때가 이르다.
내 손님 올 시간이 아직 안됐거든.
두시부터 들이닥친 사무실 직원들과 선배들, 그리고 몇몇 친한 친구들까지 대충 접대하자 온몸에 힘이 없고, 나른하다.
어찌 한림 9등급 바이오 던전 클리어보다 더 피곤한지 모르겠다.
이제 대충 한 시간 정도면 집들이는 끝날 것 같고, 내 방에서 잔치고기를 안주 삼아 훌라판을 벌인 선배들까지만 보내버리면 대충… 나도 껴야지, 보내긴 어딜! 크큼….
근데 어찌 일명 ‘지원 파티’ 애들이 안 온다.
시간 넉넉할 때 온다고 한득이가 그러던데.
‘우웅~.’
이 녀석도 양반이 되긴 그른 모양이다.
“어. 언제 올건데 지금 4시 다 되가는데….”
“형님! 세 시간 후 아라동 10등급 기갑 던전 어떻습니까?”
“아라동 10등급? 저번에 클리어한데?”
“네. 올 초에 신청한 10등급 던전 클리어 대기자 명단에서 저희 파티가 추첨된 것 같습….”
“갈께! 지금 나간다.”
“형님. 5분이면 형님 집 앞에 도착합니다. 제 차로 가시죠. 얘들 다 같이 있습니다.”
“콜!”
내 전화 목소리가 컸는지 부모님과 장모님이 날 쳐다보고 있었고, 와이프가 다가오더니 살며시 묻는다.
“나갈 거?”
“응. 아라동에 볼 일이 생겨서….”
“지금? 집들이는?”
“10등급 기갑 던전 클리어 빵구 나서 우리 파티가 추첨에….”
“자기! 얼른 갔다 와! 던.전.클.리.어.할 때 꼭 몸조심하고!”
깜짝이야.
갑자기 왜 큰 목소리를 내는 건데?
“… 던전?”
“클리어?”
“어이~ 길수! 자네 사위 각성자였나? 진작에 얘길하지! 허허….”
“세상에… 희순이 남편이 각성자였다니.”
“봐봐. 맞잖아. 희순이한테 들었다니까. 지지배, 절대 비밀이라면서 지가 말하고 자빠졌네.”
“진짠가 봐. 어쩐지 얘가 요즘 입이 귀에 걸렸더라.”
…….
몇몇 손님들과 와이프 친구들인 칠공주가 몇 마디 하자, 집 전체에 각성자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가 퍼진다.
일단 난 손님들에게 대충 인사하고 급한 듯 현관문을 나서는데, 어머님과 장모님까지 배웅하며 던전에서 조심하라고 계속 소리 높이신다.
쪽팔리게….
“하… 전쟁이다. 전쟁.”
“형님. 죄송해서 어쩌죠? 그냥 저희들끼리….”
“너희에게 한 말 아냐. 집들이 하는데 손님들 앞에서… 며칠 내로 여기저기 소문날 것 같다.”
“크큭… 오빵. 첨엔 누구나 다 그래. 그래도 그거 몇 개월 안 가.”
“그래야지. 그건 그렇고. 이대로 가게?”
“뭐 어때. 얼른 타.”
한득이가 운적석에, 길수가 보조석에, 그리고 미혜와 지혜가 뒷자석에 앉아있는데 지혜가 나보고 자기 옆에 타란다.
미혜는 지혜를 밀치며 가운데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나 결혼해서 아들 8살 아니 이제 9살 된 거 너희들도 알고 있지 않냐? 도대체 왜 이러는… 아라동까지 양 옆에 꽃을 끼고 이동… 할미꽃이다. 호박꽃이나.
참!
선배들 내 방에서 훌라 치고 있을 텐데, 아무 말 않고 나왔다!
음… 됐다. 알아서들 돌아가겠지. 크큼.
아라동 10등급 기갑 던전 주차장에 도착한 후 대기실에서 뜨거운 차를 마시며 오늘 던전 클리어 계획을 세우… 긴커녕 다들 농담 따먹기다.
10등급은 몇 번이나 클리어 해봤으니 초조한 긴장감 대신에 이렇게 클리어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다들 기분이 업 됐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10등급이라고 할지라도 던전 클리어 보상비용이 얼마인데!
뭐 그 때문에 내가 집들이 하는 중간이라도 나온 거고.
“상태창.”
[아트팩터: 한지원(Lv-2)국적/소속: 대한민국/지원 파티, 나이: 39, 신장/체중: 176cm/84kg,
민첩: 3, 지구력: 3, 힘: 4, 체력: 3, 지능: 2, 행운: 3,
인벤토리: 6/9
(각성자 부츠, 장갑, 망토, 줄럿(80), 드라칸(2), 미네랄(4.531kg)),
수정체: 0/20, 건물: 5
(포스, 배터리, 게이트웨이, 드라칸 코어, 가스채광소),
개인 보유 능력치: 0,
소환 대상 능력치: 101(프롤브), 줄럿의 상의 갑옷 1,
보유 아트팩트: 미네랄 조각(흡수) 160, 가스 조각(흡수): 0,
이데아 주머니(흡수) 1]
기다리기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아 있고, 10등급이긴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던전 클리어라서, 난 내 상태를 확인하다가 갑자기 묘한 생각이 들었다.
저번 9등급 바이오 던전에서 생산해 놓은 드라칸이 인벤토리에서 잠을 쳐 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줄럿도 마찬가지고.
기존처럼 무식하게 묻지마 줄럿, 닥치고 뛰어 줄럿보다는 사거리가 일반 줄럿보다 훨씬 긴 드라칸 두 개체가… 음….
어차피 10등급은 가스가 없다.
기갑 던전이기에 넥서스와 방어탑, 줄럿들만 처리하면 클리어 된다.
더군다나 세이프티 존까지 있는 상황.
줄럿으로 방어탑만 처리한 후… 드라칸 무빙 샷으로 클리어 해볼까?
“잠시만 주목.”
내 말에 서로 농담이나 주고받던 녀석들이 날 쳐다본다.
“오빵. 왜?”
“저번에 한림 9등급 바이오 던전에서 내가 드라칸 생산한 거 봤지?”
“응. 인벤토리에 넣은 거?”
“그래. 그래서 말인데, 던전 입장하면 내가 줄럿을 먼저 뽑고 넥서스와 방어탑을 제거한 뒤 남아 있던 줄럿들은 드라칸으로 상대해 보려고 하는데….”
“…….”
“… 그때 생산된 드라칸이 두 개체 아닙니까?”
“오빠!”
얘들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드라칸 사정거리 알잖아. 줄럿들이야 직접 부딪혀서 상대하는 거고, 몸빵이잖아. 드라칸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캐논포로 공격하면 어찌 될 것 같기도 한데… 뭐 정 안되면 나머지 줄럿들로 클리어하고.”
“테스틉니까?”
“그치. 우리가 언제까지 10등급이나 9등급만 클리어 할 수는 없잖아. 기회 될 때마다 이것저것 다 해봐야지. 안 그래?”
“그, 그쵸.”
“맞긴 맞는 말인데….”
“…….”
고민되겠지.
나도 고민되는데.
진짜 두 개체로 수십의 줄럿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아마도 안 되겠지?
그래도 되든 안 되든 일단 저지르고 봐야지.
로또도 사야 당첨이 된다.
안 될꺼라 생각하고 안사면… 그냥 안 된다.
기갑 던전으로 입장했다.
약간의 어지러움이 가시자마자 각성자 부츠와 장갑, 망토를 착용하고, 세이프티 존 경계에서 인벤토리에 들어있는 드라칸 2개체와 줄럿 80개체 중 40개체만 소환했다.
줄럿 40개체 정도면 클리어 하는데 문제없겠지?
일단 방어탑과 넥서스를 먼저 부셔야 한다.
나머지 던전 줄럿들은 드라칸으로 테스트 해볼것이고.
난 멍하니 날 쳐다보고 있는 줄럿과 드라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줄럿들만 먼저 공격한다. 던전 줄럿들은 무시하고 넥서스 일점사 후 방어탑이다. 드라칸은 날 따라오고 줄럿들은 출발!”
40개체의 줄럿들이 둔덕을 넘어 뛰어가기 시작했다.
길수가 앞으로 나서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했고, 지혜와 미혜, 한득은 나와 같이, 드라칸 두 개체는 뒤에서 따라왔다.
둔덕에 올라서자 미리 출발했던 수십의 줄럿들이 방어탑 캐논포와 던전 줄럿 공격을 무시하고 넥서스만 일점사 했다.
순식간에 넥서스가 파괴되자 나머지 줄럿들이 주변 방어탑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앙… 콰앙….’
‘쿠워워….’
방어탑 위에서 하얀 연기와 함께 발포되는 캐논포와 게이트웨이 주변의 던전 줄럿들.
그들의 공격을 아예 무시하고 방어탑만 부셔대는 줄럿들.
그동안 소모된 줄럿은 20개체 정도.
대략 반 정도가 살아남았고, 이제는 드라칸을 투입해서 테스트를….
“줄럿 뒤로 후퇴! 공격하지 말고 물러나.”
내 명령에 줄럿들이 뒤로 물러나는데… 씨파!
던전 줄럿들이 눈에 불을 켜고 쫒아온다.
“형님!”
“오빠!”
“괜찮아. 기다려봐. 줄럿들 뒤로 계속 물러나고, 드라칸 앞으로!”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드라칸 두 개체가 앞으로 나섰다.
“드라칸들은 던전 줄럿 사정거리까지 다가가 유인한 뒤 물러나면서 캐논포 지속적으로 발포. 파괴된 넥서스 중심으로 왼쪽으로 움직이며 큰 원을 그린다. 드라칸 출발!”
내 명령이 끝나자 드라칸 두 개체가 뒤뚱거리며 앞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던전 줄럿의 이동속도와 비슷하긴 한데, 어째 믿음이 가질 않는다.
그냥 줄럿들로 클리어 해 버릴까?
아니다.
드라칸도 어떻게 활용해야하는지 시험해봐야 한다.
잠시 후.
“야! 캐논포 쏘고 움직이라니까!”
…….
“씨팔! 크게 돌라고, 크게! 캐논포 쏘고 이동! 쏘고 이동하라고… 야이~ 개새꺄!”
…….
[띠링! 10등급 기갑 던전을 클리어하였습니다.]결국 던전 클리어는 남아있던 줄럿들과 10개체의 줄럿들을 추가로 소환해서 클리어했다.
드라칸 두 개체의 무빙 샷으로 던전 줄럿들을 상대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허공에 삽질, 칼로 물 베기… 맞나?
여하튼, 이동 속도가 비슷하기에 사정거리를 감안하면서 캐논포를 쏘아 달려드는 던전 줄럿들을 상대하면서… 됐다. 설명하자니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앞으로 복잡한 명령은 가급적 사양이다.
그냥 한가지씩만 시켜야겠다.
넥서스 파괴, 게이트웨이 파괴, 던전 유닛 파괴 등등.
“하… 형님. 이러면 저희가 한 게 아무것도 없잖습니까?”
“괜찮아. 내 욕심에 이리 됐으니 던전 보상은 기존에 정해진 비율에 따라.”
“그, 그래도….”
“옵빵 최고!”
“고마워요.”
오늘 10등급 기갑 던전 클리어는 얘들이 나설 기회조차 없었다.
내 욕심, 드라칸 테스트를 위해 얘들의 던전 클리어 공헌도 올릴 기회를 박탈했으니, 한 일이 없을지언정 보상은 기존 비율대로.
넥서스 주변에 남은 미네랄을 캔 후 한숨과 함께 던전을 빠져나왔다.
결국 오늘 기갑 던전 클리어를 통해 확인한 내용은….
멍청한 드라칸이라 읽고 닭대가리 같은 드라칸이라 쓴다.
필요 없는 놈.
던전 클리어 완료 신청서를 제출하고 사우나로 향하던 길에 한득에게 물어봤다.
“9등급 한림 바이오 던전은 구정 지나서야 들어갈 수 있지?”
“네. 28일 오후 3십니다.”
“쩝… 이번 달은 이걸로 끝이고?”
“네.”
“그럼 다음달 28일까지 뭐하냐?”
“뭐 저희야 괜찮지만… 형님, 혹시 육지 던전 클리어도 괜찮습니까?”
“육지 던전?”
“네. 아시다시피 제주 지역은 워낙 클리어 신청 경쟁이 심해서 대기순도 순전히 운빨이잖아요. 육지는 8등급까지 꽤 널널합니다. 확인해 보니 리젠 안된 곳도 몇 군데 있구요.”
“그래? 8등급까지?”
“네.”
음….
육지 던전이라.
하긴, 이 좁은 제주지역에 던전이라곤 최고 등급이 8등급이니 9등급, 10등급 던전 클리어 신청만 해도 각성자들이 몰리는 게 당연… 잠시만. 8등급?
“우리 9등급이잖아. 8등급 들어가려면 9등급 각성자 최소 15명 이상 있어야 하는거 아냐?”
“맞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파티하고 조인해야죠.”
“음… 그러면 던전 보상은 공헌도에 따르니까… 허… 한득이, 머리 쫌 굴렸는데?”
“하하… 형님도 참.”
“그럼 육지 던전도 클리어 함 해보까? 며칠 육지 갔다 오면 돈이 얼마… 아~ 젠장!”
“오빠 왜?”
“나 직장 다니잖아. 사무실에 출근해야지.”
“…….”
“… 허….”
“오빳! 그 놈의 직장은 때려치란 말야! 도대체가 언제까지 다닐건데? 오빠가 돈을 못 벌어. 능력이 없어!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지혜가 옆에서 소리를 꽥꽥 질러댄다.
근데 왜 이렇게 밉지가 않지?
그리고 왠지 지혜 말을 따르고 싶기도 하고… 크큼….
오늘 와이프하고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
다음날.
난 출근하자마자 사직서를 작성한 후 사장님을 찾았다.
내가 소파에 앉자 사장님이 원두커피를 건넨다.
“그래. 한 팀장이 어쩐 일로….”
난 아무 말 않고 사직서를 내밀었다.
“… 한 팀장. 내가 뭐 섭섭하게 한 거 있나?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사장님. 그게 아닙니다. 먼저 이걸 보시면….”
난 외투에서 지갑을 꺼내, 안에 들어있는 각성자 라이센스를 테이블에 올려놨다.
그러자 사장님이 잠깐 머뭇거리더니 라이센스를 살펴보고는 내게 다시 건넨다.
“허… 언제 각성한 건가? 등록일을 보면 작년인데…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었다는 게 용쿤. 그나저나 한 팀장이 각성자였다니… 인수인계 할 시간은 줄테지?”
“죄송합니다. 사장님. 이번 주까지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 관련해서 인수인계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아니네. 그동안 고생했네. 어찌 각성자가 일반 회사에 만족하겠는가, 대기업도 아니고. 그동안 신문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는구만. 허허허… 참 많이 아쉽네.”
뭐가 아쉽다는 건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사장님 표정에 상실감과 허탈함이 잔뜩 묻어 있으니… 차마 물어보지는 못하겠고, 내가 그동안 일을 잘해 왔다는 뜻인가?
됐다. 생각지 말자.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그동안 감사했다는 말을 끝으로 사장실을 나섰다.
인수인계 문서 작성과 프로젝트 관련 사항을 체크하고 있는데 강재윤 전무가 날 찾는다.
2층 흡연실에 있다고 하는데, 전무는 비흡연자다.
사장님이 아마도 말했겠지. 인수인계 똑바로 받으라고.
흡연실 앞에 다다르니 강 전무가 날 쳐다본다.
“한 팀장. 아니, 지원아….”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갑작스럽게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만 두는 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각성자 일과 사무실 일, 병행할 수 있게끔 스케줄이나 인력 지원을 서포터 해줄 테니….”
“…….”
그동안 내가 일을 잘한 게 맞나? 진짜?
하긴, 지금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 제안서도 내가 다 만들어서 PT 발표한 거고, 나머지 사업들도 거진 내 손을 다 거쳤으니, 내가 그만 두게 되면 당장 피곤한건 바로 강 전무다.
날 필요로 해서 날 잡는 게 아니고, 내가 당장 없으면 자신이 피곤하니 날 붙잡는 걸까?
“인수인계 문서 작성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까지 제출토록 하겠습니다. 그럼….”
날 부르는 강 전무의 외침을 무시한 채 난 내 자리로 돌아와 작성하던 문서에 눈을 돌렸다.
그러게 평상시 있을 때 잘하지.
그만 둔다고 하니 이제야 필이 오지?
기존 제안했던 모든 프로젝트까지 한꺼번에 넘겨주마.
기대하시라.
* * *
“오늘 사직서 낸.”
“사무실에서 뭐라고 안 해?”
“전무는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는데, 굳이 그럴 이유가 없잖아. 아마도 이번 주까지면 어느 정도 인수인계는 끝날 것 같아.”
“그럼, 언제부터 육지 올라갈 건데? 한 달 내내 있는 건 아니지?”
“응. 정확히는 모르지만 던전 입장 신청하고 클리어 하는데 대충 2~3일이면 되지 않을까? 정확한건 나중에 말해 줄께.”
“응.”
난 와이프, 아들과 함께 집 근처 갈비 집에서 식사를 하며, 이번에 상의했던 사무실 퇴사를 말했다.
내가 각성하지 못했다면 여전히 다니고 있을 회사인데, 돈 더 벌겠다고, 더 많은 기회를 잡겠다고, 그만 둔거다.
사람이 원래 그렇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다.
원래 인생이 그런 것 아닐까?
착한 사람, 나쁜 사람 따로 있지 않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 뿐.
일주일 후.
10년간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팀원들이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왜 그만 두냐고, 어찌된 일이냐고, 그만두지 말라는 이런저런 요청들이 있었지만, 한마디로 앞으로도 잘 먹고 잘살라고 다독거려 줬다.
프로젝트 관련 이슈사항들을 인지시켜주고, 사장님과 전무, 이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감사님을 만나 퇴직금 정산 관련 사항을… 음… 퇴직금도 꽤 된다.
연금이나 일시금으로 수령할 수 있다는데, 그냥 한꺼번에 받기로 했다.
하긴 10년간 다녔던 회사인데, 그동안 빚만 늘어났으니 각성하지 못했다면 이게 내가 가진 마지막 재산이었으리라.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나서자 후련한 마음과 섭섭함, 허전함 등이 서로 교차하며, 기분이 꽤 싱숭생숭했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오후 2시.
음….
뭘 한다?
한득이가 육지쪽 경기, 인천, 대구, 부산을 중심으로 8등급 던전 클리어 신청을 알아보고 있을꺼고, 몇 개의 던전을 선택한 후 그 결과를 나에게 알려주기로 했다.
저녁때까지 기다릴 겸 PC방이나 갈까?
일단 경황성, 승찬 형, 상준성에게 단체톡을 날렸다.
‘나 시청 쪽에 있을 테니 끝나면 연락 바람.’
일단 시청 쪽 PC방에서 인터넷 바둑이나 둬야겠다.
참고로 내 바둑 실력은 아마 2단이다. 크큼….
3시간가량 PC방에서 바둑을 두다가 당구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멤버는 나 포함 4명.
2대 2로 팀을 나눠 저녁내기 당구가 시작됐다.
결과는 형편없는 패배. 속이 쓰리다.
같은 편인 상준성이 꽤나 선전했지만, 내 앞 순서인 경환 형이 공을 엄청 안 준다.
심한 기복에 기본 쿠션이나 장타를 치지 못하니 내기에서 지는 게 당연.
한식 퓨전 식당으로 이동해 밑반찬이 셋팅 되고 주문한 맥주와 소주가 나오자 소맥을 한잔씩 말고, 쭉 들이켰다.
그리곤 멤버, 형들을 향해 한마디 했다.
“나 이번에 사무실 그만 둰.”
“왜. 각성자 일만 하려고? 너 등급이….”
가장 친한 경환 형이 먼저 물어본다.
“9등급이지. 근데 육지 던전 클리어 해보려고. 그래서 사무실 그만 둰.”
“육지?”
“응. 파티원 중 한명이 지금 알아보고 있는 중.”
“이야… 지원이 이제는 전국으로 노내?”
상준성이 놀리는 건지 부러운 건지 모를 묘한 말을 이었다.
“노는 거는 무슨… 돈 벌러 가는 거지. 던전 클리어.”
“제주에도 8등급 있잖아?”
“그치. 그런데 들어 갈수가 없어. 아니 한 달에 한번 클리어 하는 것도 힘들어. 그래서 육지 돌려고.”
“돈을 갈코리로 긁을 거?”
“형이 지금 그러고 있지 않음?”
“뭐, 그야 그렇지. 그런 의미로 오늘 달려? 너 그만 뒀다면 내일 출근 안 해도 되잖아.”
돈을 지금까지 제일 많이 번 승찬 형이 슬슬 시동을 걸어댄다.
음… 회사도 그만두고 낼부터는 한가하고, 낚시나 갈까?
날씨가 좋으려나? 경환 형한테도 가자고….
“아~ 맞아. 지원이 너, 아까 파티원 뭐라고 했지? 파티 들어간? 파티명은 뭐고, 누가 파티장?”
“… 지원 파티. 내가 파티장.”
“…….”
“…….”
“… 쌔끼. 뻥치네!”
사람이 진실을 말하면 좀 한방에 알아먹어 주지?
왜 이렇게 못 믿는 건데.
날 너무 잘 알아서?
다음날.
어제 너무 달렸는지 머리가 아프다.
승찬 형의 꼬심과 경환 형이 축하, 상준성의 못 믿겠다는 눈빛에 술이 마구 들어갔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술 한 잔 더 얻어먹겠다고 분위기 띄웠겠지만, 지금은 내 기분에 따라 2차와 3차가 정해지는 과정이다.
약간의 편두통에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 키고, 담배 하나 빼어 물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볼일을 보고 샤워를 한 후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한득이한테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네. 형님.”
“전화 했었네. 왜?”
“예. 다름이 아니라 다음달 15일 토요일 오후 2시에 부산 해운대 OO커피숍에서 아리아 파티, 짱쎈 파티와 미팅 잡혔습니다. 해운대 8등급 바이오 던전 클리어 신청하려고요.”
“부산? 해운대?”
“네.”
“아까 말한 그 파티원들은 몇 등급인데?”
“아리아 파티는 7명, 짱쎈 파티는 6명으로 구성됐는데, 전부 9등급이라네요.”
“허… 우리가 껴도 돼?”
“길수 사촌동생이 아리아 파티원입니다. 저번에 말씀드렸던….”
“아… 그 대학생? 걔가 거기 파티야?”
“예.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할까요? 당일 날 올라갈까요?”
“어. 그날 오전에 비행기 표 예약해 놔라. 경비는 공금으로 쓰고. 대충 1박 2일이면 되지? 숙소는?”
“알아보고 있습니다. 토요일인데 형수님하고 같이 올라가서 해운대 근처 관광이나….”
“기각!”
“… 넵.”
“일단 알겠고, 출발하기 전에 미팅 한번 하자. 고생~.”
한득이가 뭐라 하기전에 전화를 끊었다.
눈치 없는 놈. 육지까지 돈 벌러 가는데, 왜 와이프와 얘새끼를 데려가?
던전 클리어 후 부산 해운대 밤 문화를 즐겨야지.
답답하다. 답답해.
* * *
삼 주 후.
차를 살까?
아니지, 차를 사기 전에 면허 먼저 다시 따야지.
딸까? 말까?
살까? 말까?
음… 이것 참 고민되네.
40 평생 차를 가지고 있던 기간이 몇 년 되지 않기에 자차 필요성을 못 느낀다.
아니 와이프가 아반똥 2006년식… 음… 와이프 차 먼저 바꿔줘야겠다.
남자라면 진주색 SUV지.
SUV 잘 나가는 차가 뭐뭐 있더… 아~ 와이프가 쓸 거지.
됐다. 알아서 고르라고 해야겠다.
삼주 동안 실컷 낚시를 다녔고, 술도 왕창 마셨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으니 이제 가장으로써 돈을 벌어 와야지… 는 무슨, 당장 내일 부산으로 떠난다.
오늘 저녁은 와이프와 외식하며, 차 알아보라고 해야겠다.
음… 통장에 돈이 얼마나… 응?
내 각성자 통장과 카드가 안 보인다.
누가 가져갔지?
다음날.
어제 와이프에게 차를 바꾸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통장에 얼마 있다고 그걸로 사도 되냐고 물어보는데… 역시나 내 각성자 카드가 와이프한테 있었나 보다.
일단 알겠다고 한 후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속옷과 수건, 치약, 칫솔 등을 챙겨… 음… 이게 필요가 있으려나?
그냥 속옷은 내일 갈아입고, 숙소에 세면도구는 다 있을 테고, 필요한 게 있으면 거기서 사면되지….
짐 챙기는 걸 그만뒀다.
와이프가 던전 클리어 할 때 조심하라고, 조심하라고, 또 조심하라고, 다치지 말라고 노래를 부른다.
아들과 잠들기 전까지 놀아주는데, 요새 학교에서 자신의 아빠가 각성자라고 자랑하고 다니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한번 보자고 하는데, 시간이 날 지 모르겠다.
통화 한 번 하면 되지 뭔 미팅.
학부모 면담? 미팅?
필요 없다.
다음날 오전 9시.
제주국제공항까지 콜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외도에서 15분정도, 공항 2층 출발 층에서 내리자 저쪽 입구에서 한득이가 날 부르며 손짓한다.
쪽팔리게.
한득과 길수, 미혜만 보였고, 지혜는 아직 도착 안했나 보다.
가까이 다가가자 미혜의 커다란 여행 가방이 꽤나 인상적이다.
“너 어디 관광 가냐? 뭔 짐이 이렇게 많아?”
“관광 가요.”
“응?”
“하하… 형님. 부산 8등급 바이도 던전 클리어하고 구경 좀 다니기로 했습니다. 내려오는 건 이틀 뒤구요.”
“그래? 그래라.”
“오빠. 오빠도 같이 다니자. 지혜하고….”
“기각! 난 부산의 유명한 맛 집을 탐방할 예정….”
“나도 오빠 따라 갈래.”
“그것도 기각! 맛있는 음식은 혼자 먹는 법. 절대 기각!”
얘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거야?
어딜 낄려고. 나 혼자 있어야 한다니까!
“옵빵~!”
택시에서 내린 지혜가 저쪽에서 큰 목소리로 날 부른다.
난 못 들은척 일행을 놔두고 입구로 들어섰다.
아까보다 더 쪽팔리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얘네들, 8등급 바이오 던전 클리어에 대한 긴장감이 하나도 안 보인다.
클리어 하기 전에 벌써부터 관광지 구경할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큰일이다. 아, 아닌가?
평범한 아트팩터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