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5_2
“지원 씨! 한지원 씨!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판별기가 뒤로 다 뒤집어지기 전에 고용석 팀장이 달라붙었다.
“뭐가요?”
“능력치가 201로 나온 것도 웃기는데, 정말 마법사 계열 아트팩터 맞습니까? 예? 상태창에 그렇게 떠요? 정말요?”
이 아저씨가 뭘 잘못 먹었나? 왜이래?
주변을 살펴보니 측정사부터 엔지니어, 한태민 직원과 한득이까지 안절부절 한다.
“한득아! 뭔 말이냐? 측정 잘못됐어?”
내 말에 한득이가 깜짝 놀라더니, 엔지니어 앞에 있는 모니터를 가리키며 이상한 소릴 해댄다.
“형님! 능력치는 둘째 치고, 형님 직군 여러 개 떠요!”
“… 너 미쳤냐?”
내 말에 다들 나만 쳐다본다.
내가 미친 듯이.
잠시 후.
한득과 옥상 흡연실에서 담배 하나 피며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다.
“하… 지친다. 지쳐. 벌써 재측정만 5번째다.”
“전 지금도 이해가 안 됩니다.”
“난 되겠냐?”
“그러게요. 형님. 올해 초에는 아무 이상 없었지 않습니까?”
“그치. 그때도 너하고 같이 와서 측정했었지?”
“맞습니다.”
“근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그러게요. 형님이 올해 초와 달라진 거라곤 부산 갔다 오고, 이번에 성판악 던전 클리어한 것 밖에 없잖스… 어? 혀, 형님!”
“왜?”
“형님 이번에 성판악에서 아이템 하나 흡수하지 않으셨….”
“이데아 송곳? 그게 왜? 별 쓰잘떼기 없는 아이템이더구만.”
“혹시 그것 때문 아닐까요? 다른 특성은 바뀐게 없잖습니까?”
“음… 잠시만. 상태창!”
[아트팩터: 한지원(Lv-3)국적/소속: 대한민국/지원 파티,
나이: 40, 신장/체중: 177cm/79kg,
민첩: 3, 지구력: 3, 힘: 4,
체력: 3, 지능: 2, 행운: 13, 인챈트: 1
인벤토리: 7/9
(각성자 부츠, 장갑, 망토,
줄럿(발업+100%)(120), 드라칸(32),
미네랄(5.128kg), 이데아 송곳),
건물: 8
(포스, 배터리, 게이트웨이, 드라칸 코어,
가스채광소, 발업 코어, 랜드 코어, 스타게이트),
수정체: 0/30, 개인 보유 능력치: 0,
소환 대상 능력치: 201(프롤브),
줄럿의 상의 갑옷 1,
보유 아트팩트: 미네랄 조각(흡수) 210,
가스 조각(흡수): 1, 이데아 주머니(흡수) 1,
이데아 송곳(흡수) 1]
그땐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내가 인챈트 할 것도 아니고, 이런 건 진짜 아트팩터에게나 필요한 거지 나에게는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데아 송곳이라… 어차피 인벤토리에 있으니 소환시켜 볼까?
“이데아 송곳 소환!”
[띠링! 이데아 송곳을 소환합니다.]“혀, 형님!”
아! 깜짝이야!
“왜!”
“혀, 형님! 현실에서도 소환 가능하십니까?!”
“응? 뭔 소리냐?”
“무슨 말이긴요! 현실에서는 인벤토리에서 소환 자체가 안되… 아! 형님이 아트팩터라서 그런 건가요? 힐러처럼? 힐러나 성직자들도 축복이나 힐만 쓰지 인벤토리 소환은 안 되는데… 이상하다.”
“실없는 놈. 그나저나 이게 문제일 거란 말이지?”
난 내 손에 잡혀 있는 조그만 송곳을 쳐다봤다.
‘이데아 송곳
출처: 기갑 던전(8등급), 등급: 8등급,
제작: 직군에 상관없는 마법 회로 제작 가능,
대상: 미네랄 덩어리(1, 3, 5, 10, 20kg, 비활성),
마법계열(아트팩터) 인챈트 능력치 가용률: 1.7% 상승’
길이 30cm가 채 되지 않을 정도의 뾰족하게 생긴 송곳.
외양은 얼음 깨뜨리는데 쓰는 얼음송곳과 거의 비슷하고, 파란 빛이 손잡이에 스며들어 있는 게 조금 특이할 뿐, 별 이상 없어 보이는데?
“응? 마법 회로?”
난 이데아 송곳 상태를 살피다가 뭔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이건 뭐냐? 마법 회로 제작? 대상은 미네랄 덩어리?
송곳으로 미네랄 덩어리에 뭘 인챈트 하는 건가?
“마법 회로요?”
“어. 그게 뭐냐?”
“형님도, 마법사 계열이시면서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마법 회로를 어떻게 모를 수가….”
“씁!”
“… 마법 회로는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주문을 도식화시켰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지혜의 파이어 월 공격마법을 풀어서 도식화시킨 건데, 이런 건 산업용이나 연구용으로 많이 쓰입니다.”
“복잡하냐?”
“엄청요.”
“얼마나?”
“일반사람 눈에는 안 보입니다.”
“허… 그거 혹시 미네랄에 새기는 거냐?”
“네.”
“음, 그렇단 말이지. 알았다. 일단 이거 빼고….”
한득이와 한참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흡연실 문이 벌컥 열리며 한태민 직원이 들어왔다.
“지부장님 도착하셨습니다. 곧 만나 뵐 수 있을 거고요. 측정 한 번 더 가죠.”
이 새끼도 미쳤구나!
“저 그만 갈랍니다. 피곤하네요.
“지부장님 관람하에 본 회 이사진들과 실시간 화상으로 측정 하시는 거 같이 보신답니다.”
“나 간다니깐!”
어린놈의 시키가!
내가 안 하겠다는데 어딜!
“잘되면 저희가 가지고 있는 성판악 8등급 던전 지분권, 일정 부분 양도해드릴수도 있답니다.”
“… !”
“… !!!”
“5분만 있다가 내려갈게요.”
내가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자 한득이가 나선다.
“알겠습니다. 내려오시면 바로 측정 시작하겠습니다.”
“네. 금방 내려갑니다.”
한태민 직원이 문을 닫고 옥상에서 내려가자 한득이가 담배 한 개비를 나에게 더 권한다.
“형님. 제 생각인데요, 아까 그 이데아 송곳 특성 때문에….”
담배 불을 나에게 붙여주며 말을 있는 한득을 보며 난 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담배 많이 펴서 폐암으로 뒤지라는 거냐?
잠시 후.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 제주지부장 한태환일쎄. 반갑네.”
“네. 한지원입니다.”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후한 아저씨가 악수를 건넨다.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일단 악수에 응했다.
일단은 갑중의 갑이니까.
자리에 착석하고 담배 때문에 털털한 입을 원두커피로 희석시키려고 하는데,
“능력치 201도 놀랄 일이지만, 직군이 여러 개 뜬다는 건 무슨 말인가?”
옆 자리에 있던 지원팀 고용석 팀장이 몇 장의 프린터 물을 지부장에게 건넨다.
“이중 직군은 전 세계적으로 0.1% 정도 있습니다만, 다중 직군은 아직 보고된 바 없습니다. 여기 한지원 씨 능력 측정 결과물입니다.”
몇 장의 보고서를 슥슥 살피던 지부장이 이상한 신음을 토해낸다.
“이,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측정 장비 이상 아냐?”
“혹시 몰라 다른 각성자로 측정해 봤습니다만, 이상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지원 씨 능력 측정은 벌써 5번째 이루어졌고, 같은 결과를 도출하고 있습니다.”
“허… 마법사에, 전사에, 성직자와 힐러, 대장장이, 소환술사… 이건 뭔가? 이런 직군도 있나? 헌터?”
“네. 전 세계적으로 헌터 직군이 0.02% 정도 있습니다.”
“그럼, 전 세계에 있는 직군이 한 사람에게 다 나타난다. 뭐 그런 말인가?”
“예. 한국에 없는 직군까지 포함하면 총 28가지 직군. 한지원 씨에게 다 있습니다.”
“…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드디어 지부장이 폭발했다.
1시간 전 지원팀 팀장처럼.
“그러니까요.”
내가 조그만 목소리로 동의 해줬다.
같이 폭발하라고.
‘우우웅… 우우웅….’
오늘 각성자 능력치 측정만 6번째다.
이제는 내 몸에 덮어진 판별기에서 울리는 진동음에 슬슬 잠이 올 지경이다.
나른하게 울리는 진동에 몸을 맡기고 정신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면, 어느덧 내가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고 있는….
‘우우웅… 우웅. 띠리리 띠릭.’
개꿈 꿀뻔했다.
역시나 엔지니어 앞 모니터에 모여 있는 제주지부 직원들과 실시간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현재 상황을 지켜보던 본회 이사진들.
입을 떡 벌린 아저씨와 이상한 소릴 질러대는 아저씨, 누군 연신 고함을 질러댔고, 누군 손가락질을 해댄다.
그러든가 말든가, 난 자리에서 일어나 한득이를 찾았다.
“담배 하나 피자.”
“알겠습니다.”
한득과 내가 측정실을 나가려고 하자 한태민 직원이 따라 붙는다.
“한지원 각성자님,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될 듯합니다. 현재 지부장님이 본회 이사진들과 현 상황에 대해 상의하고 있습니다.”
얼래? 갑자기 왜 이리 공손해졌데?
그리고 나도 눈이 있거든.
측정실에서 소리 치는 거 다 보이는데 굳이 설명할 것까지야.
“알겠습니다. 바람 좀 쐬고 오죠.”
“같이 가시죠. 제가 커피 한잔 내 오겠습니다.”
“커피는 그만 마시렵니다. 하도 마셔대니 속이 안 좋네요.”
“아! 따뜻한 홍차 있는데 어떻습니까? 내 올까요?”
그런 거 있음 진작에 줘야지!
“네. 차라리 그게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올라가 계십시요. 가지고 올라가겠습니다. 흡연실이죠?”
“네.”
한득과 난 옥상으로 올라가 흡연실로 들어갔다.
5분정도 지나자 한태민이 뜨끈한 홍차를 내왔고, 자신은 자리를 비켜줬다. 갑자기 눈치가 빨라진게 좀 이상하다.
“형님. 성판악 8등급 던전 지분권 얼마나 줄까요?”
“글쎄다. 한 5%? 아님 3%?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냐. 주는 대로 받거나 아니면 딴 걸 노려봐야지. 그건 그렇고, 너 그 마법 회로에 대해서 자세히 얘기해 봐.”
“아까 말씀 드린게 전붑니다. 저도 일반적인 것 밖에는….”
“그래? 음, 그럼 일단 테스트해보자. 미네랄 전체 소환!”
[띠링! 미네랄 5.128kg을 소환합니다.]“하… 다시 봐도 신기합니다. 형님. 던전 밖에서도 소환할 수 있다니! 아트팩터만의 장점입니까?”
“내가 다른 아트팩터를 봤어야 알지. 홈페이지에도 안 나와 있더구만.”
“뭐 그건 그렇습니다. 근데 뭐 하실려구요.”
“잠시만, 확인해 볼께 있어. 이데아 송곳 소환!”
[띠링! 이데아 송곳을 소환합니다.]난 이데아 송곳까지 소환한 후 오른손에 움켜쥐고 미네랄 덩어리를 유심히 살폈다.
이 단단한 미네랄에 마법 회로를 그린다고? 이걸로?
“아! 마법 회로 새겨 보실려구요?”
“마법 회로는 개뿔. 그냥 동그라미나 그려보련다. 되나 안 되나.”
“당연히 되겠….”
‘쩌적… 쩌저적.’
이데아 송곳을 가져가 힘을 주자마자 미네랄 덩어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송곳을 빼는데,
‘쩌저적… 투둑.’
“… 쪼개졌네요.”
“힘 조금만 줬는데 쪼개지네? 이러면 어떻게 회로를 그린다는 거야?”
“미네랄 덩어리에 그리는 게 아니고, 산업용이나 연구용처럼 미네랄 판에 그리는 거 아닐까요?”
“미네랄 판?”
“예. 미네랄 덩어리는 울퉁불퉁 하잖습니까? 평평해야 뭘 그리든 하죠. 여기에 어떻게 복잡한 수식을 그리겠습니까?”
“그래? 아닌 것 같던데. 잠시.”
‘이데아 송곳
출처: 기갑 던전(8등급), 등급: 8등급,
제작: 직군에 상관없는 마법 회로 제작 가능,
대상: 미네랄 덩어리(1, 3, 5, 10, 20kg, 비활성),
마법계열(아트팩터) 인챈트 능력치 가용률: 1.7% 상승’
난 손에 들린 송곳의 특성을 확인해 봤다.
역시나 대상은 미네랄 덩어리고 각 무게별로… 응? 비활성?
“하, 어쩐지.”
“뭐 알아 내셨습니까?”
“비활성이란다. 능력치가 모자란 모양이야.”
“인챈트 능력치요?”
“어.”
이럴 줄 알았으면 저번 레벨업할 때 개인부여 능력치 다 쓰지 말고 아껴둘 껄.
가만 놔둔다고 썩어 문드러질 것도 아닌데, 괜히 행운에 몰빵 해서는.
아니다.
행운에 몰빵했으니 아이템 드랍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졌을 것이고, 확률이 높아졌으니 이 쓸모없는 이데아 송곳을 획득할 수 있었겠지.
신경 쓰지 말자. 속 쓰리다.
나중에 다시 한 번 레벨업하면 그땐 인챈트에 몰빵해봐야겠다. 어떻게 바뀌는지 확인해봐야지.
“젠장, 괜히 아까운 미네랄 덩어리만 조각냈네. 일단 인벤토리에 넣고 필요할 때 꺼내 써야겠다. 이러면 이거 아예 쓸모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아닌 것 같은데요. 형님. 앞으론 미네랄 조각 흡수 한다고 던전에서 길수한테 쪼개달라고 부탁할 필요 없잖습니까? 그냥 그걸로 쿡쿡 찍어대면 다 부서질 것 같은데요?”
“… 응?”
난 내 손에 들린 이데아 송곳을 다시 쳐다봤다.
이거 얼음 쪼개듯, 미네랄 쪼개는데 쓰는 거 아냐?
인챈트는 무슨.
잠시 후.
제주지부 지부장이 회의가 끝났는지 날 찾는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회의실로 향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부장과 각 부서 팀장들이 다 모여 있었다.
처음 보는 직원들과 간단히 인사하고 자리에 앉자 지부장이 말을 건넨다.
“한지원 씨. 오늘 대단히 고맙습니다. 시간도 많이 내 주시고, 거듭된 능력 측정에도 성실히 임해 주시고,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늘 제가 이곳에 방문한 건 지원팀장 요청이 있어서입니다. 피곤하긴 하지만 저에게도 득이 되는 일이 있겠지요.”
“하하하! 맞습니다. 당연히 이득이 있어야죠. 그래야 각성자 아닙니까? 그리고… 에… 시간이 늦었으니 간단히 말씀드리죠. 한지원 씨, 아니 지원 파티 파티장님.”
“네.”
도대체 무슨 소릴 하려고 이렇게 무게를 잡는 건데?
“지원 파티를 제주지역 방위 파티로 선정토록 하겠습니다.”
“네?”
“방위 파티요?”
한득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난 잠깐 이해가 안됐다.
“방위파티는 아리아 길드 제주지부 아닙니까? 어째서 저희 파티를….”
“솔직히 말씀드리죠. 사실 아리아 길드가 대기업 소유 아닙니까. 제주지부에 있는 아리아 길드 각성자들, 저희와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해요. 뭐 본 길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올해 초부터 수수료 때문에 말이 많습니다. 안 그런가?”
“맞습니다. 지부장님. 아리아 길드에 수수료 높여줄 거면 이번에 계약 해지하고 지원 파티를 방위 파티로 선정하는 게 이득일겁니다. 그런데 인원 수가 딱 15명이라서, 비상사태를 커버할 각성자 수가….”
“신규 각성자 충원토록 하겠습니다. 파티 인원 30명 넘어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한득이가 흥분했는지 덥석 덤벼든다.
하긴, 방위파티로 지정되면 파티로 들어오겠다는 각성자들이 줄을 서겠지.
방위파티는 말 그대로 해당 지역내에 갑작스런 던전 출현에 대비한 파티 또는 길드를 말하는 것인데, 파티나 길드 규모에 따라 방위길드, 방위파티로 구분 짓는다.
제주는 지금까지 대기업 사성과 스폰 계약을 맺은 아리아 길드 제주지부가 맡고 있었다.
각성자 능력도 문제이긴 하지만, 길드, 파티에 소속된 인원 수와 해당 각성자의 능력치, 레벨에 따라 지역 각성자 협회 지부에서 판별하여 계약을 맺는다.
방위 파티로 선정되면 해당 지역 내에 있는 던전의 지분권 역시 확보할 수 있고, 이 지분권은 다른 사람에게 판매하거나 양도하지 않는 이상, 평생 던전 수입에 대한 수수료가 발생한다.
즉,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주운 격인데, 아주, 아주 좋은 말이다.
너무나 좋은, 달콤한, 매력적인 말이기에 더욱 더 의심이 간다.
“조건이 있겠죠?”
내 말에 옆에 있던 한득이가 옆구리를 툭툭 친다.
이 새끼가!
“기껏해야 급조된, 9등급 각성자 15명으로 이루어진 파티를 방위 파티로 지정한다? 지부장님이 제 입장이라면 의심이 안 들겠습니까?”
“허허허… 역시. 내가 잘못 보지 않았군. 맞네. 이유가 있지. 암 있고말고.”
환한 웃음을 짓는 각성자 협회 제주지부 지부장.
내가 좀 오버 했나?
뭔가 이상한데?
“아까 본회 이사진들과 화상으로 의견을 모았네. 자네 파티, 앞으로 우리가 띄워주지.”
응? 도대체가 뭔 말이야?
이거 한국말 맞아?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자세한 얘기는 고용석 지원팀장과 협의하고, 어떤가? 저녁때도 다 됐는데, 일도지구에서 한잔 할텐가? 사적으로 물어볼 말도 많은데?”
얼씨구?
이젠 아예 말을 놓는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갑 오브 갑을 상대 하는 게 좋지.
“좋습니다. 안 그래도 출출 했었는데, 잘 됐네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일도지구면 장어죠. 어떻습니까?”
“허허, 자네도 장어 좋아하는군. 좋네. 앞장 서 시게나.”
“알겠습니다. 한득아. 지금 출발한다고 거기 예약해 놔라. 풀코스로. 팀장님들도 같이 가시는 거죠?”
난 일부러 각 팀 팀장들을 거론했다.
어차피 밥 한번 사는데 누군 데려가고, 누군 안 데려가면 삐진다.
아니 삐지기 보단 저녁 먹으며 등골을 더 뽑아먹을 심산이다.
지부장이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지들이 어쩔 거야?
“당연히 다 같이 가야지. 다들 저녁 약속 없으면, 같이 하지. 7등급 각성자가 사는 밥 한번 먹어 보자고.”
“하하. 알겠습니다. 참석하겠습니다.”
“다들 일어나시죠. 7시가 넘어갑니다. 퇴근하셔야죠.”
“하하하. 지부장님 모시고 식사 한지도 꽤 됐군요.”
지원팀 고용석 팀장을 비롯해, 마법팀, 전사팀, 힐러팀, 성직자팀까지 전원 회의실을 나섰다.
“형님. 어떻게 하시려구요?”
한득이가 옆으로 다가와 살짝 묻는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했다. 지켜봐.”
“… 예. 분위기 봐서 띄우겠습니다.”
“어야.”
띄우긴 뭘 이렇게 자꾸 띄워.
일도지구 OO장어 전문점.
제주지부 사무실에서 걸어서 5분 거리다.
한득이가 먼저 뛰어와 방으로 자릴 잡았고, 지부장과 팀장들이 착석한 후 밑반찬을 안주 삼아 소맥을 만들었다.
첫잔이 돌고, 장어가 노릇하게 구워질 때쯤 내 앞에 자릴 잡은 지부장이 이상한 소릴 했다.
“자네, 취미가 뭔가?”
내 취미는 알아서 뭐하게?
여기가 소개팅 자리도 아니고. 씁.
“뭐 이것저것 다 합니다. 낚시도 다니고, 바둑도 두고….”
“정말인가? 나도 낚시하고 바둑이 취미인데. 낚시는 갯바위지. 저번에 하귀쪽에서 감성돔 손 맛 좀 봤지. 그래 바둑은 얼마나 두나?”
“바둑은 아마 2단쯤 됩니다. 그리고, 이거 한번 보시죠.”
난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감성돔 사진을 지부장에게 보여줬다.
“오, 괜찮은 놈일쎄. 얼마나 되나? 한 40전쯤 돼 보이는데.”
“39전입니다. 용담 갯바위도 괜찮습니다.”
“그래? 언제 한번 낚시나 바둑 같이 하지. 허허… 취미가 나하고 똑같구먼.”
“알겠습니다. 제가 전화 드리면 귀찮다고 피하지만 마십시오. 하하.”
난 지부장과 그렇게 쓸데없는 대화를 하며 가끔씩 팀장들과 눈빛을 마주쳐 갔다.
장어 안주에 소주를 기울이던 그들은 가끔씩 우리 대화에 추임새를 넣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슬쩍 웃거나, 고개를 끄덕인다.
바둑을 두던, 낚시를 하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난 그저 단순히, 아무 사심 없이, 팀장들과 눈빛을 교환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다들 얼큰해졌을 때 난 본론을 꺼냈다.
“오늘 측정한 능력치에 따른 라이센스, 새로 발급됩니까?”
“당연한 말 아닌가? 그러려고 측정한 게 아닌가?”
지부장이 지원팀장을 쳐다보자 술잔을 기울이던 고용석 팀장이 대답한다.
“이번 주 내로 새로 발급토록 하겠습니다.”
“들었지?”
“네. 제껀 그렇다 치고 저희 파티원들도 능력 측정 다시 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올해 초에 다들 하지 않았습니까? 별 차이가 없을 듯싶은데요?”
지부장 대신 지원팀장이 말을 있는다.
“절 보면 제가 왜 이런 말씀 드리는지 짐작하실 텐데요.”
“그렇지. 9등급에서 7등급으로, 그것도 그 짧은 시간에 레벨업 되는 각성자가 이끄는 파티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해. 아, 그리고 측정비용은 받지 말게.”
“감사합니다.”
역시 갑 오브 갑.
친해져서 나쁠 건 없다.
“… 측정 인원만 14명인데, 그러면 그 비용이….”
“제가 몇 명만 추려서 데리고 가겠습니다. 사실 그 몇 개월 사이에 파티원 전원, 레벨업 한다는 게 말이 좀 안되긴 하니까요.”
“음, 그런 거야 지원팀장하고 알아서 하시고. 말 나온 김에 묻겠는데, 자네 그 다중 직군, 언론에 발표해도 되나?”
“예? 언론요?”
“사실 자네 파티를 방위파티로 선정하자는 의견은 내 독단이기도 하지만, 본회에서도 자네에게 관심이 많아. 내일 당장 내려오겠다는 이들도 있어. 이중 직군도 희귀한 판에, 다중 직군이라니. 어디 가서 얘기한들 누가 믿어 주겠는가. 그래서 말인데 이번 기회에….”
얼씨구?
원래 목적이 이거였어?
대화가 진행될수록 제주지부장의 속셈이 뻔히 보였다.
전 세계적으로 처음 발견된 다중 직군을 측정한 성과.
특별하다면 특별할 수도 있고, 관심 갖지 않으려면 필요 없다 느낄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최초라는 단어와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 제주지부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상황이 바뀐다.
공무원들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좋아한다.
이렇듯 저렇듯 돌려 말해도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이 좋은 관심을 끌만한 이슈가 있으면, 포장하기 나름이다.
하지만, 문제는 각성자 레벨, 능력치는 모두 개인식별정보로 보안 대상.
더군다나 직군이 다중으로 측정되는 각성자들은 대부분 저 레벨이다.
이유는 한 가지에 특화되지 않았기에, 두 가지 직업을 모두 레벨업할 수 없기 때문인데, 물론 그렇지 않는 각성자들도 있긴 하다.
마법사가 대검을 들고 던전 유닛하고 드잡이질 하는 것도 웃기는 일.
마법사면 전투 마법사, 전사면 파이터, 힐러나 성직자는 서포트, 엄연히 구분되어 자기 역할에 충실하지, 혼자서 북치고 장구쳐봤자 알아주는 이 없다. 물론 공헌도야 많겠지만.
여하튼, 지부장의 속셈은 7등급 각성자, 그것도 빠른 시간 내에 레벨업한 각성자, 거기에 다중 직군, 그리고 제주지부라는 단어다.
이걸 조합해 뭔가를 꾸미려는 속셈.
난 대충 응대하며 고민해 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지부장이 엉뚱한 소릴 뱉어낸다.
“…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본회에서 말이 많네. 그 던전 입장 최저 인원 수 때문인데. 사성과 LC을 중심으로 대기업에서 민원과 항의가 빗발치고 있고, 국회에서도 논의가 되고 있지. 그래서 아리아 길드와 사이가 좋지 못한 것도 있고… 만약 자네라면 8등급 던전. 솔로잉 가능한가?”
술 취했수?
뭐라는 거야?
솔로잉? 내가? 왜?
던전 들어가서 뒤지라고?
이 아저씨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7등급 라이센스 아직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법 조항 바뀌지도 않았구요. 그리고 솔로잉 할 맘 없습니다. 능력도 안 되구요.”
“소문이 파다해. 자네 소환술사계열이라고, 뭐 측정이 다 맞다고는 볼 수 없잖는가.”
“다 맞죠. 30년 가까이 각성자 판별하면서 틀린 적이 있던가요?”
“크큼. 그건 그렇고, 여하튼 인정하는 건가? 지금 퍼지고 있는 소문?”
“인정하고말고 없습니다. 사실이니까요.”
“허… 그래? 본인이 맞다고 하면 진짜라는 말인데. 당최 이해가 안되는구만. 직군도 다중에, 소환 능력이라니. 근데 마법사 계열에 아트팩터라… 허허.”
뭔 소리야? 술 취한 것 맞구만, 이랬다가 저랬다가.
어이~ 지원팀장 아저씨!
지부장 좀 챙기지?
‘우웅.’
한참 신경이 날카로운데 와이프한테 카똑이 왔다.
‘자기야! 통장에 이거 뭐?’
‘뭐가?’
‘자기 대출 받았어? 왜? 근데 입금자가 저번에 입금한 업체인데?’
무슨 말이냐? 알아듣게….
‘우웅. 우우웅….’
답답했는지 카똑 말고 전화가 왔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 피러 가는 척 밖으로 나왔다.
‘어. 왜? 무슨 말?’
‘자기야! 사, 삼억 오천, 입금되있어!’
‘아, 그거? 이번에 성판악 클리어한 거야.’
‘이게 전부? 대출 받은 게 아니고?’
‘내가 그 돈 대출 받아서 어디다 쓰게. 8등급 던전 클리어했어. 공헌도가 높기도 했고, 미네랄 양 많아서….’
‘자, 자기야~ 흐흑… 흑흑.’
‘… 왜 울어. 울지마.’
‘… 흑. 고, 고마워.’
뭐가 고맙다는 건데?
그거 내 돈 같지 않은 내 돈이거든?
와이프가 진짜 우는지, 연기인지 모를 코 맹맹한 소릴 듣고 있는데, 얘까지 이상한 소릴 해댄다.
‘나 사무실 그만 둘까? 집에서 자기 뒷바라지만 하면 안 돼?’
‘지금까지 거기 다닌 거 아쉽지 않아? 예전에 자기 정직되겠다고 공부한 걸 생각하면….’
‘자긴, 나 스트레스 받으면서 일 다니는 게 좋아?’
‘… 스트레스 받지 말고 일 다니면 되지. 세상 어느 직장인이 스트레스 안 받을까? 나 지금 협회 사람들과 회식 중. 나중에 얘기하자.’
‘일단 알안.’
뭐가 일단인데?
그럼 이단도 있어? 삼단?
난 다시 방으로 들어가기 전, 답답한 심정에 담배 하나 빼어 물었다.
한득이가 언제 나왔는지 눈치를 보며, 불을 붙여 준다.
“형수님이세요?”
“어.”
“저번 성판악 던전 클리어 보상 때문에요?”
“어.”
“돈 많이 벌어도 문제네요.”
“그건 아닌 것 같고. 한득아.”
“네.”
“너 저번에 만난 여친, 아직도 만나지?”
“그럼요. 요즘 사이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슬슬 장래에 대한 고민을….”
“하지 마라.”
“뭘요?”
“하지 마. 아니, 가능하면 진짜 늦게 해라. 너 젊다.”
“… 그러니까 뭘요?”
“니가 생각하는 그것. 나 먼저 들어 갈 테니, 다 피고 들어와라. 갑자기 술이 확 땡기네.”
난 어리둥절한, 약간은 이해를 한 것 같은, 한득일 내버려두고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기분이 싱숭생숭이다.
술이나 퍼야겠다. 아니면 여길 끝내고 한득이와 둘이서 2차를 갈까?
다음날 오후.
지원 파티 모두가 사무실에 모였다.
내가 모이라고 했고 한득이가 연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