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6_1
2-3
난 조용히 오른손을 힘껏 움켜쥐었다.
얼마나 기다리던 블랙코어인가!
블랙 코어를 생성하게 되면, 게이트웨이에서 줄럿과 드라칸을 제외하고도 번개주술사, 어둠의 암살자를 생산할 수 있다.
어둠의 암살자는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투명화 특성을 가진 기갑 던전 유닛인데, 아주 유용하다.
투명화 특성이 발각되지 않는 한 무적의 상태라 볼 수 있으며, 암살자의 공격력은 지상 유닛들 중 최강이다.
더군다나 어둠의 암살자 2개체의 특성을 합치게 되면 새로운 유닛이 탄생하는데, 그게 바로 ‘타락한 전사’다.
번개주술사 역시 2개체의 특성으로 번개정령 ‘토르칸’을 소환할 수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난 타락한 전사가 기대된다.
타락한 전사는 공격 능력 대신 특이 특성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복제다.
기갑 던전 유닛이든, 바이오 던전 유닛이든 상관없이 복제가 가능하고, 그 복제된 대상은 타락한 전사의 소유물로 취급된다.
머지않아, 언젠가는, 반드시 타락한 전사의 복제 특성을 이용해 바이오 던전의 드란을 복제하리라.
그 드란을 이용해 성체 타워를 생성시켜, 또 다른 드란을 만들고, 그 드란으로… 크큼.
일단 어둠의 암살자를 생산할 수 있을 때까지 방심은 금물이다.
물론 어둠의 암살자 생산 비용이 얼마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던전 클리어하고 나면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입장하자마자 뒤통수 맞는 일이 또 일어났다가는 어둠의 암살자가 날 썰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씩, 하나씩 처리하다보면 언젠가는 타락한 전사를 소환하는 날도 오겠지.
‘체력에 몰빵? 아니면 인챈트와 체력에 나눠? 힘이나 민첩?’
고민은 개인 보유 능력치 10에 대한 분배다.
저번 레벨업에서는 체력을 무시하고 행운에 몰빵했지만, 지금은 후회막급이다.
던전 입장과 동시에, 내 저질 체력 때문에 뒤통수 쳐 맞아보니 ‘아~ 내가 인생을 대충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전사 계열 각성자라고 하더라도 난 7등급인데, 9등급한테 뒤질 뻔 하다니!
위급한 상황이 언제 닥칠지 모르니, 최소한 줄럿이나 드라칸을 소환할 잠깐의 시간은 내 의지대로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신체 특성 능력치를 올려야 하는데, 또다시 여기서 문제.
능력치는 정해져 있고, 올린 특성은 많으니 방법이 없다. 그저 조금씩 분배할 수밖에.
고민 끝에 결국은 체력 3, 민첩 3,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인챈트에 4를 투자했다.
이성은 체력에 몰빵하라고 하지만, 본능은 인챈트가 중요하다고 속삭인다. 일단 모든 테스트는 던전 클리어하고 나서다.
난 자잘한 생각을 일단 접고 파티원들이 있는, 내 뒤통수를 후려친 놈의 면상을 보러 움직였다.
“그래서 모른다?”
“크흑. 넌, 내가 해치… 워야… 할 대상… 일뿐. 나에겐 내… 동생을… 지켜… 크으흑.”
“이 새끼 왜 이래? 원래 이랬냐?”
“처음 제압하는 과정에서 좀 심하게 굴렸더니만, 이렇습니다.”
“허, 진짜 가지가지 한다.”
“던전 나가서 지부나 경찰에 인계할까요? 아니면….”
“넘겨라. 저주 걸린 놈, 저주 풀려다가 내가 저주 걸리겠다. 넘길 때 신원 파악 확실히 하고, 중간에 결과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파티장님.”
난 길수에게 빌어먹을 놈을 떠넘기고, 파티원들을 향해 말을 꺼냈다.
“중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지만, 여러분 덕택에 살아날 수 있었다. 다들, 정말, 고맙다.”
“아, 아닙니다. 파티장님!”
“저흰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원래 부상자 생기면 다들 이렇게 합니다.”
내가 고개를 정중히 숙여 감사 인사를 하자 다들 한마디씩 한다.
“아니, 막상 당해 본 사람만 안다. 일단 던전 클리어 빨리 끝내고 복귀한다. 오늘 성판악 8등급 클리어 보상 중 내 몫은 모든 파티원들에게 골고루 분배하도록 하겠다. 지금부터 클리어 진행한다. 줄럿 전체 소환!”
[띠링! 발업 줄럿(공격력+100%) 120개체를 소환합니다.]지혜와 한득이가 내 말에 뭐라 하려다가 입을 다문다.
아마도 클리어 보상 때문이겠지.
일단 던전 클리어부터 하고 보자.
난 주변 인근 공터를 가득 채운 업그레이드된 줄럿들을 보며 명령을 내렸다.
“줄럿 10개체는 이놈을 경계하고, 나머지는 던전 내 유닛들과 건물들을 파괴한다. 우선순위는 넥서스, 방어탑, 게이트웨이, 드라칸, 줄럿 순이다. 출발!”
내 명령에 업그레이드된 줄럿들이 둔덕을 넘어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동 진형 구축한다. 파티장님 중심으로, 좌 하나, 우 둘. 출발!”
줄럿들이 뛰기 시작하자 한득이가 클리어 상황을 전파했고, 날 중심으로 왼쪽에는 1팀, 오른쪽에는 2팀이 자릴 잡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속 이동 후 전투 B 대형! 전사들 뛰쳐나왓!”
‘쿠쿵… 콰아앙.’
‘쿠워워… 쿠워’
앞서 달려간 줄럿들이 방어탑에서 쏘아대는 캐논포 공격을 무시하며, 넥서스를 일점사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파괴된 넥서스.
미처 넥서스 근처까지 도달하지 못한 줄럿들은 사방에 펼쳐진 방어탑, 게이트웨이 건물을 향해 달려들었고, 공격력이 업그레이드된 120개체의 줄럿들에 성판악 8등급 기갑 던전은 금세 클리어 됐다.
던전 클리어 알림이 뜨자, 주변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세상에~ 8등급 클리어하는데 얼마나 걸린 거야?”
“파티장님 소환능력 듣기만 했는데, 실제로 보니 진짜 짱이다.”
“저게 업그레이드된 줄럿들이야? 드라칸도 있다면서?”
이번에 처음으로 나와 같이 던전 클리어한 신규 각성자들이 업그레이드된 줄럿들과 날 쳐다보며, 연신 감탄을 터트린다.
그러면 뭐 하냐?
9등급 전사 계열한테 뒤통수나 쳐맞는 놈인데… 쩝.
내가 궁시렁 거리며 넥서스 쪽으로 이동하자, 한득과 길수가 이동 진형을 유지하며 따라온다.
넥서스 주변에 도착해서 던전 클리어 보상에 따른 미네랄을 캐라고 한득에게 지시하고, 클리어 후 살아남은 업그레이드 줄럿들로 주변을 살피게 한 후 난 뒤쪽으로 이동했다.
넥서스 뒤쪽에서 뿌연 수증기가 솟구치는 걸 봤기 때문이다.
[띠링! 가스채광소가 생성되었습니다. 총량 82.311L]“82 리터면, 대충 270 조각? 꽤 괜찮네.”
프롤브 수십 개체들이 가스채광소에서 검은 수증기를 나에게 물어다 줄 때마다 가스 조각을 흡수했다는 알림이 울렸다.
가장 먼저 수정체를 소환시키고, 게이트웨이를 생성시킨 후 드라칸 코어 생성, 그리고 발업 코어 생성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여기까지 들어간 가스 조각만 100개.
남아 있던 가스 한 조각을 더한 170여개의 가스 조각으로 블랙코어 생성과 어둠의 암살자를 생산할 수 있으려나?
“블랙 코어 생성!”
[띠링! 미네랄 조각(60)이 부족하여, 블랙 코어를 생성할 수 없습니다.]이놈의 미네랄 조각 부족!
가스만 신경 썼더니 미네랄 조각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기존에 흡수해 논 미네랄 조각은 210개.
거기서 게이트웨이 생성에 100개, 드라칸 코어에 40, 발업 코어 30개를 사용했으니, 남아있는 미네랄 조각은 40개.
60개나 부족하다는 걸 보니, 블랙 코어 생성에는 미네랄 조각이 100개가 사용되는 것 같다.
한숨을 쉬며 인벤토리에 저장된 미네랄을 꺼낸 후 이데아 송곳을 소환해 찔러대기 시작했다.
‘푹… 푹푹… 쩌적. 푹푹푹….’
“뭔 놈의 송곳이 이렇게 미네랄을 잘 쪼개냐? 이거 진짜 미네랄 쪼개는 용도 아냐?’
길수가 대검으로 후려쳐야 조금씩 부서지는 미네랄 덩어리가, 이데아 송곳에는 푹푹 잘도 박힌다.
박힌 송곳을 이리저리 휘둘러 빼면, 미네랄 결대로 쩍쩍 금이 가며 쪼개진다.
길수에게 매번 미네랄 쪼개달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되는 게 좋긴 하지만, 영 모양새가 안 나온다. 이게 뭐 하는 짓거리인지.
바닥에 앉아 미네랄 덩어릴 앞에 놔두고 송곳으로 푹푹 찔러댄 후 조그만 놈들로 조각을 흡수하길 몇 분.
최대치로 흡수했다는 알림이 뜨지 않더니만, 흡수 최대치가 210조각에서 260조각으로 늘어나 있었다.
레벨이 올라 미네랄 조각 흡수 최대치가 증가한 탓이다. 뭐 이건 좋은 거고.
자리에서 일어나 프롤브를 인지하며 다시 한 번 외쳤다.
“블랙 코어 생성!”
내 외침에 프롤브가 발업 코어 옆 3m 지점으로 쪼르르 기어가더니, 놈이 몸통을 파랗게 빛내기 시작한다.
‘푸… 치…치직.’
귀여운 프롤브가 만들어 낸 블랙 코어.
외양은 기하학적인 패턴과 무늬로 감싼 검은색의 길쭉한 궤짝과 비슷하다.
“블랙 코어 상태창!”
[띠링! 건물 블랙 코어 상태를 확인합니다. 구분: 건물, 명칭: 블랙 코어, 업그레이드: 번개주술자 번개 특성(미네랄 조각 200, 가스 조각 100 필요, 비활성), 타락한 전사 복제 특성(미네랄 조각 300, 가스 조각 200 필요, 비활성)]블랙 코어 상태, 특성 활성에 대한 것을 살펴보니, 번개주술자의 번개 특성을 활성화시키는데 들어가는 가스 조각이 100, 타락한 전사의 복제 특성은 가스 조각이 200개나 필요했다.
블랙 코어를 생성시키면서 80개의 가스 조각을 더 소비했으니, 이제 남아 있는 가스 조각은 90개.
어차피 내 레벨이 되지 않아 특성창에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는 번개 특성과 복제 특성이지만, 왠지, 많이 아쉽다.
남아 있는 가스 조각으로는 어둠의 암살자나 번개주술자 한 개체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번개주술자는 번개 특성도 사용하지 못하는 비활성화 상황.
난 게이트웨이에서 어둠의 암살자를 생산했다.
“어둠의 암살자 생산!”
[띠링! 게이트웨이에서 어둠의 암살자를 생산합니다. 소요시간 6분 59초, 58초, 57초…]게이트웨이에서 어둠의 암살자가 생산되길 기다리며, 난 주변을 살폈다.
파괴된 넥서스 뒤쪽으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길수와 파티원들이 미네랄을 다 캔 모양이다.
어둠의 암살자만 생산되면,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던전을 나가야겠다.
내 뒤통수를 깐 시팍새끼를 경찰에 넘기고, 신원조사 해보면 뭔가 나오는 게 있겠지. 어떤 놈이 날 노렸는지는 몰라도, 절대 가만있지 않을 생각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되는 세상이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뒷정리를 하려고 아까 쪼개다 만 미네랄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려 허리를 숙이는데, 정면에 소환해놓은 수정체가 갑자기 눈에 잡힌다.
1m 크기의 수정체.
위아래로 마름모꼴 육각형에, 투명하고, 길쭉한, 반짝거리는 표면이 왠지 미네랄과 상당히 닮았다.
머릿속에서 뭔가, 어렴풋한 기억이 왔다 갔다 한다.
뭐지?
뭔가 생각 날 듯하면서도, 막상 뭔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게 뭔지 모르겠다.
미네랄과 수정체, 비슷하면서도 비슷하지 않는….
쪼개진 미네랄 덩어리 중 하나를 주워들고 수정체 앞으로 다가가 서로 비교해 보았다.
퍼런빛이 감도는 미네랄과 하얀빛의 수정체.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간질거리는 이 느낌은… 난 바닥에 주저앉아 수정체를 자세히 살폈다.
육각형 기둥의 수정체 표면은 누가 조각한 것처럼 반질반질 윤이 나는 듯 평평하게… 평평? 평평하다?
난 손에 든 미네랄과 수정체를 번갈아 쳐다보며, 답답한 속을 억눌러 참았다.
‘미네랄… 수정체… 평평… 판? 미네랄 판? 이데아 송곳?’
난 다시 이데아 송곳을 소환해 애꿎은 미네랄만 푹푹 찔러대다가, 대상을 바꿔 수정체를 푹….
‘틱!’
푹 찔러 봤더니, 튕겨져 나온다.
음, 미네랄보다 수정체가 훨씬 강도가 쎈… 응? 얼씨구?
이데아 송곳 손잡이가 파랗게 빛나기 시작하더니, 송곳 끝에 하얀빛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아까 던전 클리어하기 전에 인챈트 능력치를 부여한 효과인가?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정체 표면에다 동그라미를 그려보려는데… 하, 이것도 인지가 가능한 것 같다.
원, 삼각형, 사각형에 대해 인지하고 손으로 이데아 송곳을 움직이면, 생각했던 것과 같은 모양이나 크기로 수정체 표면에 새겨진다.
이데아 송곳이 수정체 표면을 깎아내며, 내가 생각한 것들을 새겨내기 시작하자 재미가 붙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화염계열 마법 회로를 생각하며, 크게 원 하나 그리고, 그 안에 육망성을 그리기 시작하는….
“형님. 뭐하십니까?”
언제 다가왔는지 한득이가 날 쳐다보며 묻는다.
새끼, 왔으면 왔다고 인기척이라도 좀 내지.
“어. 이거 여기다 쓰는 거 같은데, 잘 모르겠다. 원래는 미네랄 덩어리인데….”
“이데아 송곳을 수정체에다가요? 미네랄 덩어리 아닙니까? 저번에….”
“몰라. 우연찮게 해 봤는데, 되네?”
“신기하네요. 일단, 미네랄 다 캤습니다. 그거 연습하시고 나갈까요?”
“아니, 됐다. 오늘은 그냥 나가자. 그럴 기분도 아니고, 그 놈 경찰에 넘겨야지. 참, 미네랄 얼마나 나왔냐?”
“입장했을 때 시간을 소비해서 그런지, 저번보다는 적습니다. 대충 190kg 정도요.”
“뭐 그 정도면 양호한 편이네.”
“네.”
8등급 기갑 던전 클리어 보상 미네랄 190kg.
돈으로 환산하면 대충 6억 6천 정도.
원래는 내가 파티장 권한 및 클리어 공헌도에 의해서, 클리어 보상 미네랄 중 40%인 76kg, 2억6천이 내 몫이지만 오늘은 그걸 깔끔하게 파티원들에게 나누어줄 심산이다.
가장 많이 고생한 건 힐러와 성직자들이겠지만, 전사와 마법사도 초반에 나타난 저굴링들을 처리하지 않았다면, 나머지 일들이야 뻔한 일.
날 제외한 14명, 아니 그 씨팍새끼는 빼야하니까 13명으로 나누면 한 사람당 2천 정도 떨어지겠지만, 원래 자신들의 몫과 합치면 꽤 큰 금액이 될 것이다.
오늘 난 파티원들 아니면 뒤졌으니까, 이 정도 보상은 해줘야지. 그래야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게 되면, 우선적으로 날 보호해주지 않을까?
아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이런 좆같은 일은 한번이면 족하다.
방심하지 말고, 항상 경계해야 한다.
각성자 세계는 언제, 누가, 어디서든 뒤통수를 후려칠 수 있는 세상이거든.
수정체와 미네랄, 이데아 송곳으로 장난치고, 한득과 대활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잠시.”
난 게이트웨이 앞에 떡하니 서 있는 어둠의 암살자를 살폈다.
신장 180cm 정도. 줄럿과 비슷한 복장에 검은 망토, 줄럿의 건틀릿 대신 기다란 대검을 손에 쥐고 있었고, 주변에 컴컴한 어둠을 뿌리고 있었다.
투명화 특성을 가지고 있으니 안 보여야 정상인데, 내가 생산해서 보이는 걸까?
“한득아.”
“네, 형님.”
“보이냐?”
“뭐가요?”
“안 보여? 저기 저 녀석.”
난 손으로 게이트웨이 앞에 있는 어둠의 암살자를 가리켰다.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뭐가 있는데요? 뭐 다른 특성 생기셨나요?”
“됐다. 아무것도 아니다.”
“형님. 말씀 좀 해주세요. 뭔데요?”
한득이는 안 보이는 모양이다.
잘됐다. 다른 각성자들에게도 안 보인다면, 꽤나 유용하게 써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탐지나 투명화 스킬 파악하는 마법물품들도 있지만, 그걸 항상 가지고 다니는 각성자도 많지 않을 거고, 때와 장소에 따라 시기적절하게 소환시키면 괜찮을 것 같다.
던전 클리어 대신 다른 상황에 써먹어 주마.
기다려라. 내 뒤통수 친 새끼, 넌 뒤졌어!
한득에게 던전 나갈 준비를 하라고 지시한 후, 난 게이트웨이 앞에 서있는 어둠의 암살자에게 다가갔다.
검은색,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망토, 주변의 밝기와는 상관없이 컴컴한 어둠에 쌓여있는 공허한 눈빛의 어둠의 암살자. 얇고 긴 검이 특이하다.
투명화 특성을 활용해 저 검으로 유닛을 썰어대는 걸까? 아니면, 어떤 놈이 녀석의 먹이가 될 것인지.
어차피 나중에 확인하면 될 일. 난 녀석의 망토에 손을 가져가 인벤토리에 넣었다.
거기서 잠시만 기다려 봐.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주 유용하게 써먹어 줄 테니.
그런데 유닛들도 던전 밖에서 소환될까?
줄럿과 드라칸, 어둠의 암살자가 마법물품도 아닌데?
내가 이데아 송곳을 소환했을 때 한득이가 그렇게 놀랐던 것처럼, 각성자들의 인벤토리 안에 있는 물품들은 전부 다, 던전 안에서만 소환이 가능하다.
뭐 마법물품이야 미네랄이 섞여 있어, 밖에서도 흡수가 가능해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지만, 꺼내는 건 일부분이다.
마법물품 중 자신이 흡수한 아이템들.
그 중 방어류, 공격류, 의복류, 액세서리 등의 사물들.
불꽃의 정화나 얼음의 정화, 이데아 주머니 등은 각성자가 흡수하게 되면 상태에 따른 변화를 주는 특성이지, 소환 대상이 아니다.
즉, 던전이든, 현실이든, 흡수한 아이템이나 마법물품 중 물건, 사물들만 소환 가능한데, 유닛들도 사물인… 아, 머리 아프다.
나가서 확인하면 될 일을, 이렇게 고민하고 자빠졌으니… 내가 미친놈이지. 쩝.
다른 건 안 바랄 테니, 제발 소환만 되라.
난 한숨을 쉬며 던전을 나가기 전 마지막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게이트웨이를 추가로 더 생성시키고, 클리어 때 소모된 줄럿들을 생산한 후 한득이에게 5kg 정도 되는 미네랄 덩어리와 줄럿들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파티원들과 던전 입구로 되돌아가며, 마지막으로 내 상태를 점검했다.
“상태창!”
[아트팩터: 한지원(Lv-4)국적/소속: 대한민국/지원 파티,
나이: 40, 신장/체중: 178cm/78kg,
민첩: 6, 지구력: 3, 힘: 4,
체력: 6, 지능: 2, 행운: 13,
인챈트: 7, 인벤토리: 8/9
(각성자 부츠, 장갑, 망토,
줄럿(발업+100%)(120), 드라칸(32),
어둠의 암살자(1),
미네랄(5.815kg), 이데아 송곳(2)),
건물: 11
(포스, 배터리, 게이트웨이, 드라칸 코어,
가스채광소, 발업 코어, 랜드 코어, 스타게이트,
블랙 코어, 라이트 코어, 랜드 스포 코어),
수정체: 0/40, 개인 보유 능력치: 0,
소환 대상 능력치: 251(프롤브),
줄럿의 상의 갑옷 1,
보유 아트팩트: 미네랄 조각(260),
가스 조각(2), 이데아 주머니(흡수) 1,
이데아 송곳(흡수) 2]
전화위복으로 우연찮게 4레벨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부여된 개인 보유 능력치는 신체 특성과 인챈트에 나누어 분배했고, 신규 건물의 특성, 흡수 가능한 미네랄 조각의 최대치 증가 정도가 이번 던전 클리어의 소득인가?
아, 아니다.
소환 대상 능력치가 251인걸 보니 50정도 늘어난 것 같다.
그리고 위급상황이나 비상상황 시 파티원들의 대처능력을 알아본 정도?
그 위급상황에 내 목이 왔다 갔다 했던 게 문제이긴 하지만.
각성자 능력치 400부터가 6등급이던가?
그러면 도대체 4등급인 사성 길드 길드장 홍태성은 능력치가 얼마라는 말이야? 쩝.
난 대한민국 내에서 최고의 길드로 인정된 대기업 소유의 사성 길드 길드장, 국내 최고 등급의 각성자와 날 비교하며 넥서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왕지사 이렇게 각성자로 각성하게 된 것, 목표는 높고, 크게, 현실은… 시궁창이지 뭐.
그래도 지금까지는 꽤 괜찮다.
버는 돈이나 각성자 능력치나, 다른 이들에 비하면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레벨업하고 있으… 아닌가?
나만의 착각, 자뻑?
혼자만의 상상을 그만두고, 던전 밖으로 나온 후 관리소에 클리어 완료 내역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인제 쪽에 있는 제주동부경찰서로 향했다.
씨팍색을 경찰로 넘기기 위해서다. 일단 각성자 전담반으로 들어가기 전,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 제주지부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이런 일들은 미리미리 말해놔야 나중에 협조가 잘된다.
지부장이 날 쌩까지 않을 거라면.
“어이, 지원 파티장!”
신호가 몇 번 가기도 전에 반갑게 받는다.
이번에 방위파티로 지정되면서 추가로 몇 번 더 회식자리를 가졌더니, 꽤나 친해진 상태다.
이럴 때 운을 띄워나야 씨팍쌕의 신원조사가 신속, 정확, 확실하게 처리가 되겠지?
“네, 지부장님. 지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성판악 던전 클리어할 때 PK 있어서요.”
“PK? 누, 누가? 누굴? 자네는 피해 없고? 자네 파티에서? 도대체 무슨 말인데?”
“이번에 방위파티 관련해서 신규 각성자들을 모집했잖습니까. 그중 한명이구요. 제 뒤통수를 노렸더라구요.”
“괜찮나? 어디 다친 덴 없고?”
“죽다가 얘들 때문에 살았습니다. 파티원 중 힐러나 성직자 한명이라도 부족했으면, 저 지금, 지부장님하고 통화 못 했습니다.”
일단 엄살은 심하게 부려야 한다.
내용물은 조그만, 싸구려일지언정 포장지는 크고, 비싼 포장지로 예쁘게, 잘.
“어떤 놈이 제주지부 방위파티, 파티장을 노려? 그 새끼 어디 소속이야? 이거 지금 나까지 무시당한 거지? 자네 지금 어딘가? 내가 그리로 가지.”
“아닙니다. 오실 필요까진 없구요. 일단 동부경찰서 앞입니다. 여기 각성자 전담반에 넘길 생각인데요. 전화 한통 해달라고, 먼저 연락 드렸습니다.”
“그래? 알겠네. 일단 반장한테 지금 바로 전화하지. 일단 끊고….”
지부장이 화를 못 이겼는지, 자신이 말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됐다.
대략 5~10분 후에 들어가면, 알아서 잘~ 해줄 거다.
난 주차장 한 켠에서 담배 하나 빼어 물었다.
춥다.
빨리 넘기고 사우나나 가자.
오늘은 기분도 그런데, 회식 때 좀 달려야겠다. 젠장.
아니나 다를까.
주차장에서 담배 두 개비 피고 안으로 들어서니, 전담반 반장이란 사람이 우릴 이끌었다.
난 PK 상황 진술서 작성과 신원조사, 사건경위 등에 대해 아주 친절하게 설명했고, 파티원들은 따로 목격자 진술을 했다.
13명의 파티원 전원이 일대일로 진술서를 작성, 설명하는데, 동부경찰서 각성자 전담반 인원들이 모두 달라붙은 것 같다.
뭐 정확히는 모른다.
내가 여길 와 본적이 있어야지.
그래도 무슨 소릴 들었는지, 친절하게 잘~ 설명해 주는 게 왠지 어깨가 으쓱거린다.
일반인이 여기 올 일이 있겠느냐만, 그래도 9등급 각성자를 우습게 보지 않는 이런 태도만 봐도 지부장한테 한마디 한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대략 한 시간 정도 PK 상황 조사와 목격자 진술을 마친 후 시팍쌕을 구금시설에 집어넣고 나서야, 우린 사우나로 향할 수 있었다.
놀란 가슴과 정신적으로 피곤한 몸을 구석구석 씻어내며 왼쪽 가슴을 살펴봤는데, 엄지손톱만한 상처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렇게도 많은 인원이 힐과 축복을 걸어도 상처는 남는 모양.
가까운 시일에 저급 포션이나 한 병 사서 마실까?
아니면, 응급치료 세트를 구매해서 인벤토리에 넣고 다닐까?
그 시팍쌕의 뒷배는 과연 누굴까?
정말 방위파티 선정과 관련된 일 때문에 뒤통수를 맞은 걸까?
온탕에 몸이 쭈글쭈글 해질 때까지 잡생각을 하다 밖으로 나왔다.
사우나를 마치고, 각성자 쇼핑몰에 들려 클리어 보상, 미네랄을 환전한 후 늦은 저녁을 먹으러 소고기집으로 이동했다.
성판악에 들어가기 전에는 15명이었던 클리어 파티가 14명으로 줄어들었고, 자리에 착석한 파티원들이 내 눈치를 살핀다.
내가 주도하에 소맥 한잔 만들어 건배 제의를 하며 입을 열었다.
“오늘, 다들, 정말 고맙다. 너희들 덕에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이렇게 술 한 잔 할 수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아, 아닙니다. 파티장님.”
“오빠, 그건 쫌 오버다.”
“하하. 형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괜히 부끄럽잖아요.”
다들 웃으며 말을 받아줬고, 이해해줬다.
각성자들의 세상.
뉴스나 신문, 인터넷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리는 말. PK.
누군 돈 때문에, 누군 아이템 때문에, 누군 이해관계와 치정, 보복성 PK 등.
던전 클리어나 던전 유닛한테 살해당하는 것보다 PK와 얽힌 사건이 더 많다는 설문조사.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각성자들의 던전 클리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느끼고 있음에도 그렇게 행동하는 수많은 각성자들.
어디 간들 다르리오, 어디 있던들 무슨 상관이랴.
내 처지가 지금 이런데….
나도 이제야 이런 좆같은 세상에 한발 담근 것 같아 기분이 착잡해지며, 술이 무척이나 쓰게 느껴졌다.
오늘은 진탕 마셔야겠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지.
* * *
다음날 오후.
사무실로 출근해보니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파티장실로 들어가 커피 한 잔 내릴 때쯤, 노크를 하며 한득이가 들어온다.
“파티장님, 금방 동부경찰서에서 연락 왔는데요. 이거 아무래도 뭔가….”
“앉아서 얘기해.”
한득에게 원두커피 한 잔 건네주고 다시 물었다.
“그 놈 얘기냐? 벌써 조사 끝났어?”
“희한하게도 빨리 나왔네요. 근데 좀, 아니 상당히 많이 이상합니다.”
“뭐가?”
“일단 이걸 보시면….”
한득이가 문서 몇 장을 건넨다.
받아서 살펴보니 시팍쌕의 신상정보와 각성과정, 직군과 등급, 능력치, 집주소와 각성자 경력까지.
이걸 반나절 만에 다 조사했다고? 진짜?
“이런 거 이렇게 빨리 파악할 수 있는 거냐? 진짜 의외인데? 아무리 못해도 일주일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부분은 전산시스템 내에 있는 항목이긴 한데, 파티장님 전화 때문일 수도 있지요. 그건 그렇고, 여기 이걸 좀 보십시요.”
“뭐가?”
“여기 보면, 저희가 신규 각성자 채용하기 전에 그 놈이 다녔던 파티인데, 3개월, 2개월, 그리고 여기 이 파티명요.”
한득이가 약간 흥분했는지 손가락으로 일일이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토종 파티, 드센 파티. 여기 이 부분과 직군, 능력치, 기존에 제가 받았던 이력서의 경력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력서와 경력서를 구라로 작성했다?”
“네. 그리고 아시겠지만, 토종 파티, 드센 파티, 거기 하청이잖습니까.”
“오라 파티, 제주탑, 한라 파티도 하청이지.”
“정말 거기서 그랬을까요? 이렇게 금방 티가 날 걸 알면서?”
“둘 중 하나겠지. 진짜던가, 아니면 그렇게 짐작해달라고 수를 썼던가.”
안 그래도 한 살 더 먹어, 서른아홉과 마흔이라는 나이가 부담되는데, 예전 사무실도 아니고, 각성자가 되어서도 머리를 굴려야 돼? 진짜?
레벨업할 때마다 부여된 개인 보유 능력치를 행운, 체력, 민첩, 인챈트고 나발이고, 지능에다가 몰빵했으면, 지금쯤 천재가 되어 있으… 기는커녕, 다른 각성자와 비교하면 그 능력치로는 중간에도 끼지 못한다. 썩을.
별수 있나.
대가리 안 좋은 내 자신을 탓해야지 뭐.
그래도 기존에 다녔던 IT 직종에서는 꽤나 머리 좋다고 인정받던 몸인데, 각성자 세상에선 여전히 허접이다. 젠장.
“예전에 길수 사촌동생, 양기수 파티원 친구가 아리아 길드 제주지부에 있었다고 하던데, 물어볼까요?”
“거기에 지금 다녀?”
“아뇨. 작년 초에 그만뒀다고….”
“밖에 양기수 있나?”
“네.”
“들어오라고 해봐.”
“알겠습니다.”
일단 하청이든, 하청에 하청이든, 의심 가는 사항은 일단 짚고 넘어가야 한다.
괜히 지레짐작으로 판단하다간 나중에 커다란 오해로 돌아오기 십상이다.
한득이가 파티장실을 나가 양기수 파티원을 데리고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파티장님.”
“어, 거기 앉아. 차 한잔 줄까?”
“아, 아닙니다. 금방 마셨습니다.”
“그래? 미안한데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다름이 아니고, 자네 친구가 예전에 아리아 길드 제주지부 다녔다며?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