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6_2
“예. 작년 초까지 다니다가 그만 두고, 지금은 육지 올라간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연락해?”
“네. 이번에도 저희파티에 들어오고 싶다고 해서 지원했는데, 떨어진 모양입니다.”
“음, 그래? 몇 등급인데? 직군은?”
“9등급, 전삽니다.”
“그런 일이 있었어? 한득아.”
“네, 넵. 그 친구 이름이 뭐지?”
“최경태입니다. 인천 활주로 파티 소속이구요.”
양기수의 대답에 한득이가 잠시 나갔다가, 손에 몇 장의 출력물을 들고 다시 들어온다.
“파티장님, 맞습니다. 이번에 저희 신규 각성자 모집에 지원했었습니다. 여기….”
“이 친구는 왜 안 뽑은 건데?”
“우선 현 거주지도 제주 지역이 아니고, 능력치도 그리 높지 않아서… 보류 했습니다.”
“연락해서 아까 말한 거 슬쩍 물어보고, 그 놈 때문에 자리하나 비니까, 그 친구 채용토록.”
“알겠습….”
‘쾅! 쩌저적.’
길수가 파티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며 소리친다.
“형님! 지금 뉴스 속보 뜹니다. 각성자법 바뀐데요!”
뭔 개소리냐?
그리고 지금 문짝 부서진 거 안보여?
전사긴 전사구나.
발로 툭 차면, 문짝 부수는 어처구니없는 전사.
“새꺄! 파티장님 지금 미팅 중인거 안보여? 그리고 각성자법 그거 구라야. 한 두 번 속아?”
“이 놈이! 진짜라니까! 지금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 회장이 직접 대국민 발표하고 있어!”
“… 진짜?”
“새끼가 속고만 살았나. 얼른 TV 틀어봐!”
길수의 외침에 한득이가 테이블에 올려진 리모콘으로 벽에 걸린 TV를 켰다. 밖에서도 TV 시청하는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해서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던전 등급별 클리어 입장 최소 인원 수에 대한 규정이 철폐되며, 이는 기존에 말씀드린 각성자 레벨과 능력치, 공격력 측정을 기준으로 해당 던전 클리어 수치만 충족시키면, 입장이 가능하도록 관련 규정을 보완하였고, 던전 클리어 수치를 넘어서는 각성자를 중심으로 개인, 파티, 길드를 구성하여 던전 입장 할 수 있습니다.이에, 현 던전 관리소에 클리어 입장 신청서와 완료 내역서를 작성하시면,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던전 클리어 진행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공격력 기준을 새롭게 구분하기 위해, 지금까지 년 1회에 한하여 측정한 각성자 레벨과 능력치는 매월 해당 지역 각성자 협회 지부를 통해 새롭게 실시, 측정이 가능하며, 아울러…]
“저게 지금 뭔 소리냐? 한득아, 이해되냐?”
전사 계열 길수가 나와 같은 심정으로 한득에게 물어본다.
마법사 계열이니 계산이 빠르다는 상식?
나도 궁금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한득이가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뭔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지금 TV에서 실시간으로 나오는데, 그게 벌써 인터넷에 퍼질리가 없잖… 응?
한득이가 뭘 발견했는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나에게 폰을 넘기며 말했다.
“재작년부터 주구장창 나왔던 말입니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을 스폰으로 두고 있는 길드 중심으로 협회 쪽으로 로비가 많이 들어간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핵심 내용만 간단히 말씀드리면, 지금 던전 클리어하려면 등급에 맞는 각성자 최소 입장 인원 수 있잖습니까? 그걸 폐지한다는 말….”
“씨팔!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그러다 뒤지면? 협회에서 책임진데?”
“새꺄! 끝까지 들어. 내 말 아직 안 끝났다. 저 무식한 놈이 말하는 것처럼, 이렇게 되면 문제가 생기는데, 그걸 공격력 측정으로 판별하겠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저희가 성판악 8등급 기갑 던전 클리어하려면, 최소 9등급 각성자 15명 필요하잖습니까?”
“어, 그치.”
길수가 이해하고 있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이럴 때는 가만히 있는 게 중간이라도 가는 법.
“원래 이렇게 최소 입장 인원을 제한한 이유가 각성자 보호차원이기도 합니다만, 해당 등급 던전에 대한 클리어 가능한 최소 인원 수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8등급 던전에는 9등급 각성자 15명이 굳이 다 들어갈 필요가 없어진다는 뜻이죠. 15명이 클리어하든지, 아니면 능력되는 각성자 몇 명이 하든지, 아예 한명이 솔플하든지 상관없다는 말입니다. 대신!”
“대신?”
“현행처럼 유지하되, 그 기준은 공격력으로 판단하겠다는 거죠. 등급에 따른 클리어 기준이 바뀐다는 말입니다.”
“그니깐! 그게 막걸리냐고! 도대체 뭔 소리야? 8등급 던전 솔플되는 사람이 뭐하러 8등급을 돌아? 6, 5, 4등급 돌지. 걔네들을 머리가 없냐? 말이 안되잖… 어? 자, 잠시만!”
“이해했냐?”
“잠시 대기! 뭔가 막 머릿속에서 엉켜서….”
길수가 머릴 부여잡고 소파 쪽으로 걸어온다.
부서진 문짝은 쳐다보지도 않고.
썩을 놈.
난 한득을 쳐다보며 말했다.
“대기업하고 중견기업 각성자 때문이군.”
“맞습니다. 파티장님.”
“… 맞아, 그것 때문에… 어? 그러면 우리는? 대기업하고 중견기업 소속 길드만 먹여 살리면? 우리들은? 우리 파티는!”
“…….”
“…….”
입이 쓰다.
이놈의 협회는 도대체가 배부른 두꺼비한테 더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물어다 바치는 꼴이다.
아니지, 둘 다 다.
어쩌면, 셋 다 배부른 두꺼비일지도.
내용인 즉, 지금까지 각성자들의 안전을 이유로 막았던, 던전 등급에 따른 클리어 입장 제한을 풀겠다는 거다.
얼핏 보면 존나 좋은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하위 레벨,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이제 좆 된 거다.
사실, 6, 5, 4등급을 위주로 클리어하는 대기업, 중견기업 소속 길드 내 고레벨 각성자들이 인원 수 제한이 없어진 하위등급 던전들도 클리어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막말로 4등급 던전 클리어하는 각성자 1, 2명만 있어도 8등급은 껌 일꺼고,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다 보면, 10~8등급 각성자들은 던전 클리어 입장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힘 있는 놈이 다 가져가는 세상.
고레벨, 강한 공격력을 기준으로 던전 클리어가 이루어지게 되면, 힘없는 저레벨 각성자들의 돈줄인 저등급 던전은 그들의 놀이터가 될 게 분명하다.
“말도 안 돼!”
‘와장창… 쩌저적.’
밖에서 지혜가 뭔가를 부수는 소리가 들린다. 책상인가?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팀장 미네랄 클리어 보상 5% 추가, 없애야겠다.
팀장들이 더 설쳐.
‘우웅… 우우웅.’
안 그래도 심란한데, 각성자 협회 제주지부 지부장이다.
이 사람도 협회와 한편인가?
어제까지는 아무런 말도 없었는데, 역시나일까?
일단 전화를 받았다.
괜한 짐작은 필요 없는 법, 확실히 확인해봐야겠다.
“네. 지원입니다.”
“파티장, 오해하지 말게. 나도 지금 속보 보면서 깜짝 놀랐어. 분명 자네가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미리 연락했네. 제주지부 방위파티하고 어떻게 맺은 계약인데, 나 그렇게 함부로 안 버려. 버릴 의사도 없고.”
“지금 일, 지부장님도 모르시는 일입니까?”
“어. 본회에서 그제 공문이 내려온 것 보내주겠네. 이걸 보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걸세. 끊지 말고 잠시만….”
‘찰칵.’
‘우웅.’
지부장이 뭔가를 찍어 나에게 문자로 날렸다.
확인해보니 직인이 뚜렷한 협회 내부 공문이다.
확대해서 대충 살펴보니, 오늘 날짜, 한 시간 전으로 각성자법 O조 O항의 변경, 추가, 삭제 등에 대한 언론보도가 있다는 내용이고, 맨 아래로 해당 지부별로 지부장 재량껏 각성자 공격력 측정과 방위파티, 길드 유지, 신규 계약건이 명시되어 있었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대충 알겠습니다만, 솔직히 제가 이걸 100% 확신하기에는… 쫌 그렇습니다.”
“알고 있네. 당연한 말이지. 그래서 말인데… 자네 낼이나 모래, 성판악 다시 들어가게.”
“예? 어제 클리어했잖습니까? 다음 달에나….”
“협회 소속, 각성자 한명 붙이겠네. ‘이데아 미러’ 지참해서.”
“예? ‘이데아 미러’요?”
‘이데아 미러’가 뭐지?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잠시 있자, 한득이가 손가락으로 동그랗게 만 후 사무실 주변을 가리킨다.
“아~ ‘이데아 미러’요~. 근데 그걸 왜… 설마, 찍으시게요? 저희 클리어하는 걸?”
“맞네. 아시다시피 소문만 무성하고 말만 많지, 검증된 게 없잖나. 차라리 이참에, 이데아 미러로 찍어서 검증 받게. 그것들로 클리어하는 거 입증되면, 내 권한으로 지원 파티를 방위길드로 격상시키겠네! 파티원들 모두 포함해서!”
“방위 길드요?!”
내 외침에 한득과 길수, 양기수까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잠시 후.
파티장실을 나가보니 개판이다.
몇몇 파티원들은 담배 피러 나갔는지 보이지 않고, 몇몇은 침울한 표정으로 핸드폰과 인터넷 검색에 정신이 없고, 몇몇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고 있었다.
“다들 주목!”
길수의 커다란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지자, 정신을 차렸는지 쳐다보기 시작한다.
“5분 준다. 없는 사람 연락해서 전원 제자리에 착석. 파티장님 중대 발표가 있다.”
길수의 지시에 3팀 막내가 문을 열고 나가더니, 금세 돌아왔다. 다른 파티원들을 데리고.
5분은커녕, 1분도 안 걸렸다.
한득이가 앞으로 나서며 주위를 환기시키고, 입을 열었다.
“다들 뉴스 속보에 관해 걱정이 많은 줄 안다. 해서, 파티장님의 중대 발표가 있겠다. 이상한 생각들 하지 말고 잘 들어. 아주 중요한 일이다. 크큼. 말씀하시죠. 파티장님.”
“어, 일단 방금 뉴스 속보 내용은 사실이다.”
내 말 한마디에 수십 마디가 뒤따른다.
“젠장! 이럴 것 같더라니!”
“미친것들! 협회가 각성자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 거야.”
“진짜 씨팔새끼들이네. 도대체가 뭔 정신으로….”
“다들 조용! 지역 방송 허락 안했다. 파티장님 말씀 도중 지역방송 나오면, 탈퇴 시킨다. 조용!”
길수의 억압에 금세 조용해진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일, 짐작하는 일, 앞으로 벌어지게 될 일, 우리와는 상관없다.”
“…….”
“……?”
재밌는데?
저기 뒤에서 지혜가 마법 주문을 외우려고 하는 것 같아 말을 빨리 이었다.
“10분전, 각성자 협회 제주지부 지부장과 통화했다. 모래 성판악 8등급 던전 클리어 후, 지원 파티는 공식적으로 제주지역 방.위.길.드.로 다시 태어난다. 이상!”
난 깔끔한 척, 쿨 한 척, 뒤돌아서서 파티장실로 다시 들어갔다.
뜯겨진 문짝이 날 반기며, 뒤에서 엄청난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사무실 유리창이 터져 나가기 시작한다.
새끼들!
소리 좀 작작 질러!
파티원들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한득과 길수를 파티장실로 불러들여 부서진 문짝과 유리창, 책상을 새로 교체하라고 지시하며, 한마디 했다.
“너희, 담에도 이러면 팀장 공헌도 없앤다. 흥분했다고 다 때려부수면 끝나? 문짝 부수고, 유리창 깨고, 책상 찍어대고, 잘~ 하는 짓이다.”
“죄송합니다. 형님.”
“넵. 앞으로 절대 흥분하지 않겠습니다.”
“각성자 세계도 너희가 더 많이 겪어왔잖아. 아는 사람들이 왜 이래? 이슈사항 있을 때마다 이럴 거야?? 알잖아.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OK?”
“넵.”
“주의하겠습니다.”
“그럼 됐고, 모래 성판악 들어가는 거 준비 잘하고, 아까 그 친구 연락해서… 알지?”
“네.”
“어야. 나 그만 나간다. 일 있으면 연락 주고.”
“넵.”
“들어 가십시요. 형님.”
길수가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인사한다.
“한득아.”
“네.”
“친구 교육 잘 시켜라.”
“예? 제가 뭘 또 잘못했나요?”
“됐다. 나중에 한득이하고 얘기해봐라. 나 진짜 간다.”
어디 일반인이 보면 깍두기 아저씨인 줄 알겠다.
검은 정장 입고 허리 90도로 숙여가며, ‘형님’ 소리 하는 거 정말 쪽팔린 짓인데, 길수는 자연스럽게 나온다.
한득이한테 대충 말했으니 알아서 잘할 거고….
난 사무실을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시청으로 향했다.
아까 경환 형이 간만에 한 게임 하자는 카똑이 왔기 때문이다.
시청 OOOO 당구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경환 형, 승찬 형, 상준 형, 오늘 보기로 한 멤버들이 모두 먼저 도착해 있었다.
“간만이우다.”
“넌 어째 갈수록 얼굴 보기 힘들다?”
“나, 바빠.”
“난 안 바쁘냐? 일은 잘되… 아! 너, 지원 파티라고 했지? 야, 혹시 너희 파티가 그 제주지역 방위파티… 맞아? 에이~ 설마.”
“맞수다.”
“진짜? 뻥치네!”
“믿든가 말든가. 편 어떻게 가를 건데? 이긴, 진?”
“새꺄, 말을 했으면 끝까지 해야지. 진짜 맞아?”
“맘대로 생각합써. 어떵?”
“이 새끼가. 여하튼 끝나고 보자.”
난 경환 형과 가위바위보를, 상준 형은 승찬 형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과 진 사람이 각각 한 팀을 이뤄 저녁내기 당구가 시작됐다.
결과는 우리팀의 역전승.
대략 1시간 반 정도 당구를 치고 밖으로 나와, 역시나 어디로 갈지 한참을 갈팡질팡 하는데… 응?
“씨파!”
난 얼른 뒤로 돌아서서 담배 하나 빼어 물어….
“오빠~.”
아! 존나 쪽팔리다.
“오빠~ 여기는 웬일? 저녁 먹으려고? 옆에 있는 분들은, 친구분?”
지혜가 시청에는 어쩐 일인지 멀리서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소리 지르며 달려왔다. 미혜와 김은희, 최은지까지.
오늘 여성 전투마법사 팀장, 부팀장 회식하는 날이냐?
“누구냐?”
옆에서 경환 형이 옆구릴 쿡쿡 찔러댄다.
“모르는 얘야. 일단 아무데나 빨리 들어가게.”
“뭐가 모르는 얘야. 오빠 진짜 이럴 거?”
“여기서 뵙네요. 파티장님.”
“아까 사무실에서 뵙고, 또 보네요.”
최은지, 김은희가 인사를 하고, 미혜는 수줍게 웃는다.
“아~ 지원이가 있는 파티, 각성자분들이시구나아~. 역시 각성자분들이라서 그런지, 멀리서 봐도 얼굴에 빛이 나십니다. 하하, 전 지원이 학교 동아리 선배, 김경환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경환 형이 능숙한, 저렴한, 싼티 나는 멘트를 날려대고,
“식사 하시려고 시청 오신 거죠? 저희도 식사 하려고 하는데, 합석할까요?”
승찬 형이 토스하면,
“지원이가 파.티.장.으로 있는 각성자분들을 여기서 뵙다니, 상당한 우연이네요. 같이 움직이시죠?”
상준 형이 받아 넘긴다.
“너희 신시가지나 제원 쪽에서 노는 거 아냐? 여긴 어쩐 일인데? 그냥 각자 갈길 가지?”
큭, 상준 형이 살며시 내 등 뒤를 때린다.
이 사람까지 왜 이래?
“회식 때 말고 오빠하고 한 번도 같이 밥 먹은 적 없잖아. 그리고 여기 시청이거든?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게 맞고, 오빠네가 있는 게 이상한 거지.”
“난 대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여길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리고 회사 카드 줄 테니, 그냥 너희들끼리… 크큼.”
승찬 형이 눈을 힐끗거리며, 입 모양으로 ‘닥쳐’를 말한다.
아, 다들 진짜 왜 이러는 건데!
“자자~ 움직이시죠. 회 어떻습니까? 양념갈비? 소고기?”
웃겨.
평상시 ‘회’라는 단어를 절대 쓰지 않던 경환 형이 먼저 메뉴를 묻는다.
“회 좋죠. 맨날 누군가 소고기만 먹여서, 고기는 질리네요. 횟집으로 가요. 미혜야, 괜찮지? 은희 씨, 은지 씨도 괜찮아요?”
“뭐, 나쁘진 않죠.”
“돼지고기보단 괜찮아요.”
잘들 논다.
“근데, 누가 맨날 소고기만 먹여요?”
승찬 형의 물음에 네 명의 여자들이 다들 나만 쳐다본다.
어쭈? 지혜가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한마디 한다.
“저 오빠가 우릴 사육시켜요. 크크….”
주변에서 헤드락과 주먹이 날아든다.
지금 7대 1로 싸우자는 거냐?
줄럿하고 드라칸, 소환할까?
20분 후.
시청 뒷골목 쪽에 있는 횟집으로 이동한 후 대충 자기소개를 하고 주문을 마쳤다.
어이가 없는 건 당구에서 진 팀이 모듬회를 주문한 것이다.
그것도 대자짜리로 두 개나.
인원 수가 8명이기에 대자 두개는 이해했고, 시청은 대학로이기에 그리 비싼 금액은 아니지만, 저녁내기 당구치고는 꽤 금액이 나올 것 같다.
뭐 승찬 형이 지금까지 2차 계산한 금액으로 따지자면 세발의 피겠지만, 그래도 왠지 속이 쓰리다.
쓰린 속을 안주삼아 소주잔을 기울이자 옆에서 지혜가 개불을 초장에 찍어 준다.
“오빠, 아~.”
“자기나 많이 드셔.”
“어머? 나보고 ‘자기’라고? 벌써? 음, 그럼 안, 되는데.”
“벌써 취했냐? 취했으면 알아서 택시 타고 집에 가라.”
“하하, 원.래. 지원이가 한 개그 하죠. 지혜 씨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23? 24?”
“어머, 저 올해 일곱인데, 정말 그렇게 보여요?”
“그럼요, 정말 20대 초반처럼 보이네요. 집은 어디…?”
경환 형이 내 앞에서 너스레 떨고 있을 때, 옆 자리에선 승찬 형과 상준 형이 김은희와 최은지에게 비슷한 말을 건네고 있었다.
경환 형은 총각이니 그렇다 치고, 승찬 형과 상준 형은 뭔데?
남자들이야 늙어서도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동감은 가지만, 이건 아니지. 하, 집에나 갈까?
어느덧 소개팅 같은 분위기가 애매모호하게 이어졌고, 다들 술이 얼큰해졌다.
이 선배들이 술로 마법사 계열 각성자를 이기려고 해?
아무리 술을 권해도, 절대 못 이길 거다.
그래도 약간은 취기가 돌았는지 지혜가 연신 노래방을 가자고 부추긴다.
나 나 선배들도 음주가무는 좋아하는 편.
더군다나 20대 후반부터 중반까지 일반인이 아닌 여성 각성자들과 함께 하는 상황, 다들 2차를 가기로 했다.
밖으로 나와 끼리끼리 가까운 노래주점을 향해 걸어가는데, 경환 형이 담배 하나 피고 가잖다.
저녁자리에서도, 2차 노래주점에서도 담배 냄새 날까봐 그동안 참은 것 같더니, 결국 이렇다.
천천히 이동하면서 담배 하나 입에 무는데, 승찬 형이 담배가 떨어졌다며 맞은편 슈퍼로 걸어가자, 상준 형과 경환 형도 쫓아간다.
웃겨.
뭔 담배 떨어지는 것도 알아서 딱딱, 아니면 무슨 작전이라도 짜려는 듯이 날 빼고… 어? 저게 뭐지?
내가 술이 취했나?
아직은 아닌데.
슈퍼 앞 길가에서 검은색 수증기가 넓게 퍼져 있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그 슈퍼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세 사람.
주변에 사람들도 많고, 여자 얘들은 뒤에서 걸어오고 있는 상황.
등 쪽에서 차가운 한기가 척추를 타고 흐른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왠지 느낌이 안 좋다.
이런 상황, 분명 언젠가 당했던 느낌인데….
찰나의 순간, 검은색 수증기가 점점 진해지기 시작하더니, 원형을 이루며 끝부분에 퍼런빛이 감돌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봤던, 느꼈던, 불투명한 검은색 입구….
아!
용담 해안도로!
“씨팔! 멈춰! 다들 멈추라고!”
내 외침과 동시에 검은색 수증기가 순식간에 늘어나며, 주변의 사람들을 삼켰다.
주차 되어있던 자동차, 건물, 상가들이 회색 먼지로 변해 흩날렸고, 영문을 모르는 몇몇은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추어 섰다.
“까아아!”
“뭐, 뭐야!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금방 사람들이 사라졌어! 저기 자동차 봐봐!”
“바, 발현, 출현이다!”
“물러서, 물러서라고!”
삽시간에 주변이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뒤따라오던 얘들이 날 둘러싸며 물었다.
“오빠! 왜? 뭔 일이야?”
“무슨 일이죠?”
“더, 던전 출현이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고, 선배들하고 일반인 두세 명 정도 던전에 먹혔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면서 입이 바짝 말라온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인지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정신 차리자.
한득이에게 말한 대로,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진정하자.
“저, 저게 던전 입구? 먹혔다구요?”
“그럼 어떻게 해? 지금 당장 입장해?”
“어차피 우리가 제주지역 방위파티야! 전사들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무슨 소리야! 오빠 선배들하고 일반인 먹혔다며, 지금 안 들어가면 다들 죽어! 못 버틴다고!”
“던전 등급 아직 안 떴잖아! 아직 시간 있어! 10등급이면 세이프티 존 있다고!”
“10등급 아니면? 그냥 눈앞에서 사람 죽는 걸 보고만 있자고? 난 그렇게 못해. 오빠 어떻게 해?”
지혜와 김은희가 서로 날 선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난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더 몰려오기 시작한다.
이곳은 시청, 대학로다.
이대로 있다가는 민간인 피해가 더 늘어날 수 있다.
난 굵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외쳤다.
“비상상황! S1, 구축해!”
“파티장님!”
김은희가 소리를 빽 지른다.
“잔말 말고 구축해! 마력 발현!”
“알았어. 이데아 여신의 분노! 불의 벽! … 레디!”
“네! 이데아 여신의 눈물, 얼음의 벽! … 레디!”
“이데아 여신의 통곡! 절망의 바다! … 레디!”
“쳇, 어쩔 수 없네요. 이데아 여신의 분노, 파이어 월! … 준비 됐어요!”
날 중심으로 앞에는 지혜가, 좌, 우에는 김은희와 미혜가, 뒤에는 최은지가 자릴 잡았고, 마력 발현을 시작했다.
저녁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그녀들의 몸에서 하얀빛 아지랑이가 피어오르자, 난장판이던 주변이 점차 조용해진다.
“가, 각성자다!”
“맞지? 각성자 맞는 거지?”
“저 사람, 나 TV에서 봤어! 지원 파티라고. 우리 제주지역 방위파티!”
“우와아~ 됐다. 됐다구!”
“되긴 뭐가 돼! 지금 던전 등급도 안 떴는데. 저 사람들 들어가면 다른 파티 못 들어가!”
“새까! 지원 파티가 방위파틴데, 당연히 해결하겠지!”
“저 인원으로? 꼴랑 5명이서? 8등급이면? 7등급이면? 다 뒤지라고 새꺄!”
“몰라, 씨발. 알아서 하겠지. 아까 일반인도 먹혔다니까!”
조용해진건 잠시, 더 시끄러워진다.
일단 우리가 누구인지, 몇 명인지,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떤지, 대충 알만한 목격자들은 확보했으니, 이제는.
“입장한다! 진형 유지해. 셋, 둘, 하나. 입장.”
난 쿵쿵 울려대는 심장을 무시하고, 마법계열 여성 전투마법사 9등급 4명과 함께 갑작스럽게 생겨난 신규 던전으로 입장했다.
어지러움이 가시자마자 각성자 망토와 장갑, 부츠를 소환하려는데,
“지원아!”
“야! 우리 이제 어떻게 해!”
“씨팔! 좆 됐다. 여기서 나갈 수 있지? 그치?”
경환 형, 상준 형, 승찬 형이 나만 기다렸는지 입장하자마자 나한테 달려들었고, 극도의 불안감을 보이는, 엉겁결에 말려든 일반인 여성 두 명도 내 쪽으로 다가와 소리친다.
“흐흑… 여기 몇 등급이에요? 클리어 되는 거죠? 그쵸? 제발… 던전 밖으로… 데려다 주세요. 제발요~.”
“어엉… 나 죽기 싫어. 살려주세요. 살려… 어어엉.”
선배들은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느니, 약간은 침착한 편.
일단 일반 여성들부터 진정시켜야겠다.
하지만, 내가 미처 뭐라 말하기도 전에 지혜가 앞으로 나선다.
“진정하세요. 저흰 제주지역 방위파티인 지원 파티입니다. 이쪽 분이 저희 파티장님이세요. 파티장님이 직접 클리어 진행할 거니까, 안심하세요.”
“흐흑, 저, 정말요?”
“… 아! 저, 들어본 적 있어요. 지원 파티, 제주 방위파티! 지, 진짜죠?”
지혜의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는지, 울음을 그치고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다행히 던전 입구에 유닛은 없었지만, 여기가 바이오 던전인지, 기갑 던전인지, 몇 등급인지도 모르는 상황.
난 일반인 여성 두 명과 선배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한 후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부터 던전 클리어하는 동안은 다들 제 지시에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아시다시피 급작스럽게 발생된 던전 출현입니다. 저희 제주지역 방위파티인 ‘지원 파티’가 인근에 있어, 최대한 빨리 던전에 입장했습니다만, 지금까지 던전의 종류나 등급에 대해서 저희들도 아는 게 없습니다.
현재 지원 파티 구성은 절 포함한 전투마법사 4명이 전부이며, 보호해야 할 일반인이 5명 있는 상황.
던전 클리어 시 발생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작전 수행 및 지시사항 전달에 있어 말을 놓습니다. 양해바랍니다.”
“뭐, 뭐야?”
“지금 뭐 하려고?”
선배들이 내 말에 토를 단다.
그러든가 말든가,
“가장 먼저, 던전 종류와 등급에 대한 정찰을 시작토록 한다. 원래 정찰조를 운영해야 하지만, 지금은 비상상황. 모두 함께 이동한다. 지금부터 여러분이 보게 될 모든 상황과 각성자들의 능력치, 특성 등은 모두 보안사항이며, 이를 위반했을 시 각성자법 O조O항에 따라 민형사상의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다들, 입 조심할 것!”
“지금 막 가자는 거?”
“오~ 지원이 센 척 하는데?”
“새꺄! 니 목이 왔다 갔다 하는데, 농담이 나오냐? 지원이 말 들어!”
“크큭….”
선배들이 투닥거리자, 일반인 여성 두 명이 살짝 웃는다.
분위기를 환기시킬 목적이었다면, 성공.
아니면, 개념이 없는 거지.
의도했는지, 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이왕지사 이렇게 던전 입장하게 된 거, 최대한 빨리 클리어하고 보상이나 챙기련다.
더군다나 랜덤 던전 발현이다.
클리어하게 되면 타이틀까지 챙길 수 있는 상황.
손해인지, 이득인지는 클리어하고 나서 생각할 문제.
난 선배와 일반 여성 두 명을 쓱 훑어보고, 주변 상황을 살폈다.
저 앞 둔덕까지는 사방이 확 트였으니, 급습은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줄럿 전체 소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