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8_1
3-2
금요일 저녁.
2일 동안 한득과 길수, SG 길드장 및 팀장급 각성자들과 몇 차례 협상 자리가 있었다.
각자의 길드에서 운영되고 있는 던전에 대한 지분율, 직군에 따른 팀 구성, 길드 지원팀 운영 여부, 재무상황 등.
하나를 협의하면, 그 뒤에 또 다른 안건이 나왔고, 그걸 또 협의되면 또 다른 안건이 나왔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회의는 점심을 먹고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고, 다음날도 마찬가지.
수십 개의 안건과 문제점 등을 보안한 후에야 길고 긴 M&A 협상에 대한 기초가 마련됐다.
“이대로 하죠.”
“휴~ 진짜 힘드네. 지원이 진짜 대단하다.”
“내가 대단한 게 아니고, 형이 대단한 거지. 끝까지 글자 하나하나 짚어대는데… 나 중간에 판 엎을 뻔 했어.”
“야, 우리 SG라니깐. 알잖아.”
“그래서 이 정도로 참은 거야. 나 밖에 나가면 달라붙는 길드 많아.”
“잘났다. 그래서 뭐, 다시 무를까?”
“이 짓 두 번은 사양. 저녁에 술이나 쏴.”
“야! 술은 니가 사야지! 부하직원이 사장한테 술 사는 거 봤냐!”
“판공비로.”
“진짜로… 서류에 잉크도 안 말랐다. 뭔 놈의 판공비! 그 판공비는 어디서 나오는 건데? 네 주머니?”
“형 주머니.”
SG 길드장 문홍찬과는 사적으로 형, 아우 사이가 됐다.
던전에서도 그렇고 식사를 겸한 술자리가 몇 번 이어지더니,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그렇게 되어 버렸다.
내가 지금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금수저들은 다 대가리에 똥만 차있는 줄 알았는데….
멀쩡한 사람이 있었다니!
하긴, 이 사람도 대기업 소속일 뿐 재벌 2세는 아니었다. 약간 부유한 부잣집 차남 정도.
물론 약간 부유하다는 개념이 내 생각과는 많이 다르긴 하지만.
여하튼, 이번 주 주말까지 시간을 줬었는데, 그날 늦은 저녁에 SG 길드 팀장들과 날 찾아왔다.
마침 9시 뉴스에서 이데아 미러 경매건과 이번에 판매될 바이오 던전 유닛 사체에 대한 특집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3일 후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 대강당.
“… 잠시 후 서울시청 랜덤 3등급 바이오 던전 클리어 영상이 담긴 이데아 미러와 바이오 던전 유닛 사체에 대한 경매가 진행되겠습니다. 경매에 참석하시는 분들은 자리에 착석 바랍니다. 경매 대상은 이데아 미러 5개, 발업 저굴링 사체 1,478개체, 히드라 885개체, 울트라 8개체, 와이번 14개체, 락커 5개체….”
굳이 사회자가 올라와 장내를 정리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대강당을 꽉 채운 사람들이 다들 자리에 앉아 약간의 웅성임만 있던 상황이었으니.
강당 앞에는 방송용 카메라 수십 대와 기자들이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는데, 이들도 경매가 시작되면 자리를 비켜야 한다.
경매 진행 방식과 최저 금액, 주의사항 등을 알린 후 드디어 첫 번째 이데아 미러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먹만 한 크기에 겉에는 기하학적인 패턴이 빽빽이 그려진 둥그런 구슬.
“경매 시작가는 1억 원부터 시작합니다.”
경매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번호표가 솟구친다.
“1억 1천.”
“1억 3천.”
“1억 7천.”
“2억!”
….
잘~ 한다.
….
“7억 5천!”
“8억!”
“8억 5천.”
역시나 내 생각대로 대충 10억 원대에 낙찰….
“20억!”
되지는 않았다.
근데 저 놈은!
강당 뒤편에 마련된 경매 물품 소유자 대기실에서 경매 상황을 지켜보던 중 갑자기 누군가의 외침이 울렸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입찰에 참가하지 않던 강당 맨 앞줄이라 신경 쓰지 않았는데, LC 길드 그 싸가지 금수저였다.
그러고 보니 강당 앞 3줄까지 던전에서 보았던 그 싸가지 금수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앉아 있었다.
“21억.”
“22억 5천.”
“30억!”
사성에서 30억을 불렀고,
“40억!”
LC에서 40억을 부르면,
“50억!”
로데오에서 50억을 부른다.
고맙다.
금수저들.
역시나 돈 많은 집안 자제들이라서 그런지 10억 단위로 금액을 외쳐대는데, 나야 땡큐지.
흐뭇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는데 순식간에 100억 원을 돌파했다.
음, 처음부터 너무 과열되는 것 같은데?
이데아 미러는 이것 말고도 4개가 더 있는… 응?
서, 설마… 독점?!
“이, 시팍새끼들이!”
“왜? 저 사람들한테는 안 팔 거야? 경매는 최고 입찰금액을….”
“독점이야. 개새끼들.”
“뭐가? 독점이 무슨… 어라? … 하~, 진짜 그렇겠네. 하긴 나도 돈만 많으면 그리 했을지도.”
“… 여기서 중단 못하지?”
“못하지.”
“아~ 씨팔!”
생각지도 못했던 금수저의 기발한 행동에 난 거친 욕만 뱉어냈다.
결국 첫 번째 이데아 미러는 230억에 사성 길드한테 낙찰되었다.
엄청난 가격.
각성자 협회에서도 이런 높은 가격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경매를 지켜보던 임원진들이 당황하는 눈치다.
그들도 역시나 이데아 미러 하나 이상은 구매하려고 했을 테지.
약간의 소란스러움이 있는 동안 사성 길드 길드장 홍태성은 LC 길드장과 질풍 길드장에게 다가가 뭔가를 쑥덕거리더니 자신의 자리로 다시 돌아간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이데아 미러 경매.
1억으로 시작한 금액이 9억 원을 넘어갈 때 사성 길드장의 호가가 있었다.
“100억!”
순식간에 엄청난 금액이 튀어나오자 주변의 사람들이 다들 LC 길드장과 질풍 길드장을 쳐다본다.
또 다른 볼거리.
강 건너 불구경.
대기업들끼리 서로 치고 받는 장면을 어디 가서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을까?
경매에 참가한 사람들이 조용히 그들을 지켜본다.
“… 더 이상 없으시면, 세 번 호가 후 마감합니다. 100억. 100억. 100억. 탕!”
경매사의 경매봉 내려치는 소리가 강당에 울린다.
그리고 세 번째 이데아 미러는 70억에, 네 번째는 중견기업의 입찰 참가에 85억, 마지막은 각성자 협회와 중견기업의 입찰 참가에도 불구하고 130억에 사성으로 넘어갔다.
시팍새끼들!
안 봐도 비디오다.
독점에 단합까지.
부글거리는 속을 차가운 음료수로 식히고 있는데 대기실 문이 열리며 협회 지원본부장과 제주지부장이 들어온다.
“지원 길드장님. 이거 어떻게 하죠?”
“혹시 이데아 미러 남은 거 없나요? 저희가 따로 구매토록 하겠습니다.”
지들이 못 산 걸 왜 나한테 와서 하소연 하는데?
안 그래도 짜증나는 판국에.
“저게 답니다. 그리고 사성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죠. 아직은 모르잖습니까. 던전 상황과 클리어 내용, 오픈할지, 숨길지.”
“한 길드에서 다 낚아 갔습니다. 오픈할 리가 없잖습니까.”
“그럼 알아서들 하시구요.”
“기, 길드장님!”
“일단 나중에 말씀하시죠. 유닛 사체까지 지켜보구요.”
“크큼. 알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죠.”
다시 시작된 바이오 던전 유닛 사체 경매에서 저굴링은 사체 300개체씩 묶어 진행되었고, 17억에 낙찰되었다.
마리당 5백만 원이 넘는 금액.
공식적으로 17년 만에 터진 3등급 던전이란 타이틀이 유닛 사체 가격을 엄청나게 폭등시켰다.
이어진 히드라와 락커 사체도 시세 가격보다 최소 2배, 많게는 6배가 넘는 금액에 낙찰되자, 옆에서 같이 지켜보는 협회 지원본부장의 얼굴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경매 금액이 높을수록 협회에 떨어지는 수수료가 그만큼 많아질 테니.
와이번 14개체는 마리당 6억 8천에 낙찰되었고, 마지막 물건으로 나온 울트라 사체는 포션의 주재료이기에 마리당 65억 원에 낙찰되었다.
그것도 전부 대기업들한테.
아주 돈으로 지랄을 하는구나. 쩝.
수십, 수백 억 원이 왔다 갔다 하는 장면이 전국방송을 탔고, 그 이후에도 협회 임직원들과 몇 번의 귀찮은 협의가 이어졌다.
사체 판매 대금은 구매처에서 입금 받아 각성자들에게 지급하면 되지만, 미네랄 환전은 예산이 모자란단다.
이번 3등급 바이오 던전 보상 미네랄이 워낙 많은 양이라, 한꺼번에 처리하기가 어렵다는 얘기인데, 차라리 잘됐다.
수수료와 세금을 미네랄로 지급했다.
어차피 환전할 때 세금과 수수료를 떼야 하니, 그걸 감안한 금액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간단히 말해 물물교환이다.
아, 아닌가?
하루 정도 호텔에 더 머물며 미네랄 판매 금액과 이데아 미러, 사체 판매 대금이 입금되기를 기다렸다.
원래는 3일에서 5일 가까이 걸리는 일인데 이번만큼은 신속했다.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고 정부쪽에서도 뭔가 지침이 내려온 모양이다. 이렇게 빨리 진행되는 걸 보아하니.
결국 내가 서울시청 3등급 바이오 던전을 클리어하고 받는 보상은 미네랄 181톤 중 공헌도에 따른 67.7%에 해당하는 4,285억 원과 이데아 미러 경매 금액 615억 원, 바이오 던전 유닛 사체 경매 금액 286억 원이 총 수익으로, 여기서 세금과 수수료, 경매 진행 비용, 그리고 길드 운영비 5%를 제외하고 보니, 통장에 4,145억이 넘는 금액이 입금되었다.
숫자로만 보이는 금액, 4,145억.
5만 원권으로 찾으면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거지?
한꺼번에 찾을 수는 있고?
나뿐만이 아니라 길드원들 역시 엄청난 수익을 올렸는데, 전사 계열로 공헌도가 0.7%에 불과한 길수가 미네랄과 사체 판매금액을 합쳐 50억이 넘는 보상을 받았다.
마법사 계열 지혜, 김은희, 최은지는 100억이 훌쩍 넘었고, 힐러인 한득 역시 100억 원에 가까운 보상을 받았다.
이런 엄청난 보상이 있으니 그 금수저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지도.
돈이 된다고 판단되면 똥파리가 꼬인다.
그것도 엄청난 금액의 던전 클리어 보상이면 똥파리가 아니라, 똥파리 여왕이라도 달려들겠지.
대충 클리어 보상에 대해 정리를 마치고, 근처의 각성자 쇼핑몰에 들려 포션과 방어구 등을 싹쓸이하다시피 한 후 제주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동안 길수의 투덜거림이 계속 이어졌는데 자신이 전사 계열로 각성한 걸 처음으로 후회한다나 뭐라나.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제주지부장을 비롯한 협회 직원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유는 공항 입구에 지역 방송국 기자들이 몰려 있다는 핑계와 날 보좌하겠다는 아부, 그리고 얼굴 한 번 더 익혀두려는 속셈.
일단 길드원들에게 각자 귀가 후 내일 오후에 다시 사무실에 모여 앞으로의 진행사항에 대해 협의하기로 했다.
제주지부장 역시, 내일 연락한다고 한 뒤 보안요원들과 함께 공항을 나섰다.
차마 주차장까지 갈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승차 대기 중인 택시를 잡아타고 외도로 가는데, 택시기사가 자꾸 빽미러로 날 쳐다본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 저, 혹시 그 사람 아니죠? 허허. 맞을 리가 없지. 그런 사람이 왜 택시를 타겠어. 아니에요. 허허. 근데, 진짜 비슷하게 생겼네요. 허허허.”
“누구요?”
“에이~ 알면서. 이런 말 안 들어 봤어요? 진짜 그 사람하고 비슷하게 생겼는데? 제주 외도동 근처에 산다고 하더라구요. 앞으로 외도 지역은 땅값 급상승할 거예요. 지금보다 더. 허허, 허허허.”
도대체 무슨 소문이 어떻게 퍼졌길래 내가 사는 동까지 택시기사가 알고 있는 거지?
뭔 일이 있었던 거야?
SG 길드와의 M&A, 이데아 미러, 바이오 던전 사체 경매, 미네랄 환전 등 신경 쓸게 많아 TV나 인터넷을 안 봤더니만… 기가 찬다.
집 앞에 도착해 택시비를 지불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잠시 생각했다.
택시기사가 알 정도면 여기도 대충은 알려진 셈.
OO 어디 복지협회다, OO 기부단체다 하면서 집 앞을 서성거리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방송국 기자들이나 뭔가를 바라는 사람들이 무턱대고 찾아올지도 모른다.
유명한 건 좋지만, 귀찮은 건 질색.
이사를 갈까?
어디로?
외도동에서 내도, 이호, 하귀 근처에 땅을 사서 건물을… 아!
엄마 소원이 2층짜리 전원주택에서 텃밭 가꾸는 거였지!
그럼, 장인어른하고 장모님, 부모님과 다함께 살만한 집을 지을까?
아니면 전원주택을 구매해 리모델링?
일단 돈은 충분하고 얘 학교 때문에 멀리까지 갈 필요는 없으니….
8층까지 올라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일단 고민은 나중에 하고.
집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서자,
“아빠~.”
“어야. 내 새끼.”
문이 열리자마자 다이얼 누르는 소리를 들었는지 거실에서 아들이 달려온다. 달려드는 아들을 번쩍 들어 품에 안고, 거실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자기야~.”
“한 서방. 고생했네.”
“어디 다친 데는 없는가?”
“아들~ 잘 다녀왔고?”
“어서 들어와라.”
어째서 부모님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아직까지 우리 집에 있는 거지?
설마 지금까지 쭉~ 여기서 지낸 거야?
서, 설마….
방으로 들어가 환복한 후 준비된 술상 앞에 앉았다.
왼쪽에는 부모님이, 오른쪽에는 장인어른과 장모님, 옆에는 아들, 앞에는 와이프.
간소하지만 전혀 간소하지 않는 술상을 앞에 두고 다들 나만 쳐다본다.
내가 서울에 있던 기간은 9박 10일.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
엄마와 장모님의 사소한, 시시껄렁한, 잡다한 질문에 대답하고, 장인어른이 직접 담근 복분자와 아버지가 직접 담근 매실주를 섞어 마시길 30분.
술을 잘하지 못하시는 장인어른의 얼굴이 붉어질 무렵, 지금까지 웃고만 있던 아버지가 한마디 했다.
“지원아. 한 가지 묻자.”
“네.”
“며칠 전부터 지금까지 TV에 나온 게 진짜냐?”
“뭐가요? 하도 정신이 없어서.”
“그제 경매할 때 봤는데, 그 이데아 미러. 그 경매 낙찰 금액 말이다. 진짜냐?”
“아니지? 그게 하나당 그 금액으로 사람들이 살게 아니지?”
“사돈, 그게 전부다 지원이께 아닐 거예요. 뭐, 그중 몇 %만.”
“그렇죠. 말이 안된다 싶었다니까요. 그래도 그게 어디에요?”
“그렇구말구요. 그중 10%만해도… 호호홋.”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었다.
지금 여기에 다들 모여 있는 이유도 궁금하고.
결과는 기-승-전-돈.
그러니까 서울에 가서 얼마나 벌었는지를 돌려 묻는 거다.
3등급 바이오 던전 클리어에 대한 9시 뉴스특보와 속보.
실시간 경매진행 사항과 전국 방송.
저번 주 일주일 내내 국내에서 가장 핫한 일은 바로 나와 우리 길드가 아닌가 싶다.
아, 아닌가?
던전 클리어와 바이오 유닛 사체인가? 크큼.
여하튼, 상황을 알지 못하는 부모님과 어르신들의 어찌 보면 당연한 궁금증.
대충이라도 말해주자.
쓸데없는 지레짐작은 엉뚱한 결과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
난 이상한 호기심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날 쳐다보는 와이프에게 대신 말했다.
“여기 이 집 놔두고 땅 좀 알아봐봐. 근처 부동산에 물으면 될 거야.”
“땅? 땅은 뭐하러?”
“엄마.”
“응. 아들.”
“엄마 평생소원이 2층짜리 전원주택에 넓은 앞마당과 조그만 텃밭, 맞지?”
“그래, 내 평생… 아, 아들?”
“어머님, 아버님.”
“그래. 한 서방.”
“그때 말씀하신 일주도로에 위치한 편의점, 아니 편의점 건물 올리시죠.”
“자, 자기야!”
“하하. 그래 큰아들. 이번에 꽤 성공한 모양이구나. TV에서 그렇게나 요란하게 하더니만… 그래, 대충 어느 정도냐?”
아버지가 직접적인 금액을 물어본다.
“앞자리 4, 그 뒤로는 동그라미가 10개 있습니다.”
“… 사, 사백억.”
은행에 종사했던 와이프가 제일 먼저 더듬거리며, 액수를 말한다.
“뭐, 뭐? 어, 얼마?”
“… 한 서방!”
엄마와 장모님이 벌떡 일어났고 장인어른과 아버지는 두 눈만 끔뻑거린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와이프가 술상을 피해 날 덮쳤고, 아버지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이어 심장이 안 좋으신 장인어른이 가슴을 움켜잡는다.
음, 잘 못 말했다.
동그라미가 11개인데.
밝힐까?
아니다.
진실을 밝혔다간 응급차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크큼.
그날 저녁은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만큼 빨리 지나갔다.
뭐가 그리 좋다고 깔깔 웃어대는 엄마와 장모님, 붉어진 얼굴로 복분자를 연신 들이키는 장인어른. 그 옆에서 호탕한 웃음으로 대작하는 아버지, 안줏거리를 더 마련하겠다고 부엌으로 달려가는 와이프와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는 아들까지.
남동생과 처남, 처제 가족이 빠지긴 했지만, 역시나 가족.
내가 돈을 버는 건 날 위한 걸까?
아니면 이들을 위한 걸까?
아니다. 구분 짓지 말자.
의미 없다.
여기에 모여 있는 모든 이들이 나의 가족이요, 내 삶의 힘에 대한 원동력이다.
이들이 행복해하면 나 역시 행복하다.
아끼다가 똥 된다고, 돈 좀 풀어야겠다. 크큼.
술자리가 끝나자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처남이 와서 모시고 갔다.
처남과 우리 집은 불과 5분 거리.
집 앞에서 나한테 살며시 내일 연락하겠다고 하길래 그러라고 했다.
내가 가족이라 생각한 범위에 있는 이들을 경제적으로 좀 도와줄 생각이니, 흔쾌히 받아 들였다. 뭐 정확한 금액은 모르겠고, 더군다나 어설픈 경제관을 가졌다면 이번 한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호의가 지속되면 호구로 안다고 했으니, 한번이면 족하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배웅하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아버지를 부축하고 어머님이 나온다.
“왜? 가려고?”
“집에 가서 자야지. 나중에 전화할게. 사랑한다. 아들~.”
“응. 조심히 들어가.”
“그래.”
집으로 다시 들어오자 와이프가 술상을 치우고 있었다.
“아버님, 어머님도 금방 나가셨는데, 봤지?”
“응.”
“자기야. 아까 말한 그 땅. 어느 정도로 생각해?”
“대충 1,000평? 더 넓어도 상관없고. 일단 이 근처로 해서 알아봐봐. 금액은 상관 말고.”
“응. 내일부터 알아볼게. 그건 그렇고….”
와이프가 슬며시 내게 다가와 아랫부분을….
“애 먼저 재우고.”
“응. 기대해.”
뭘? 뭘 기대해?
항상 하는 말인데, 기대하라고만 하고, 별거 없잖아! 흥!
다음날.
구수한 된장찌개로 아침식사 한 후 사무실로 나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다가, 옷장 옆 구석에 놓인 예쁜 포장지가 눈에 띄었다.
“응? … 아! 젠장. 이걸 사다놓고 한 번도 연습 안했네.”
인챈트 특성을 연습하기 위해 제주대학 마법물품 연구소에서 4억5천 주고 산 미네랄 판 5개.
지금까지 까먹고 있었다. 아니지. 다른 일에 밀려 연습할 시간이 없었다.
“내 인챈트 능력치가 몇이더라? 상태창.”
[아트팩터/전사: 한지원(Lv-30)국적/소속: 대한민국/지원 파티,
나이: 40, 신장/체중: 180cm/77kg,
민첩: 43, 지구력: 36, 힘: 37,
체력: 38, 지능: 36, 행운: 34,
인챈트: 34, 인벤토리: 10/10
(줄럿(방어+공격 200%, 300),
드라칸(방어+공격 200%, 541),
어둠의 암살자(4), 굼벵이 전차(17),
번개 주술사(24), 토르칸(19)
타락한 전사(1), 드란(1)
미네랄(8.123kg), 이데아 송곳(2))
건물: 11
(포스, 배터리, 게이트웨이, 드라칸 코어,
가스채광소, 발업 코어, 랜드 코어, 스타게이트,
블랙 코어, 라이트 코어, 랜드 스포 코어),
수정체: 0/300, 개인 보유 능력치: 0,
소환 대상 능력치: 1,601(프롤브),
줄럿의 상의 갑옷 1,
보유 아트팩트:
미네랄 조각(흡수): 1020,
가스 조각(흡수): 1020,
이데아 주머니(흡수): 1,
이데아 송곳(흡수): 2]
“34라. 이게 높은 거야, 낮은 거야? 썩을… 일단 해보면 알겠지. 이데아 송곳 소환!”
[띠링! 이데아 송곳을 소환합니다.]난 옷을 갈아입다 말고, 미네랄 판을 꺼내 포장을 뜯은 후 이데아 송곳을 소환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이데아 송곳을 오른손에 쥐고 엎드린 다음, 생각나는 대로 아이템 패턴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는 거였지? 일단 원을 그리고… 그 위에 육망성을 그린 후… 역삼각형 3개를 순차적으로 안에다 집어넣고… 작은 원을 안에….”
기존에 인터넷으로 찾아봤던 불꽃의 정화 아이템 마법진은 던전 클리어 때 드랍되는 아이템을 스캔 한 후 정교하게 그 비율을 조정한 패턴이다.
내가 손으로 이 마법진을 따라한다고 똑같이 되는 것은 아닐 테지… 응?
된다?
원을 그리면 정확한 원이 되고, 직선을 그리면 곧은 직선이 된다.
인챈트 능력치 때문에 이런 건가?
이거 좋은데?
20분 정도 지나자 미네랄 판에 불꽃의 정화 마법진을 다 그릴 수 있었다.
흐뭇하게 내가 그린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데, 마법진 왼쪽 아래부터 희미한 빛이 세어 나오더니, 금세 환한 빛이 흘러나온다.
‘스…파…아앗.’
[띠링! 불꽃의 정화 아이템이 제작되었습니다. 등급을 판단합니다. 2분 59초, 58초, 57초…]응? 뭐? 뭐가?
[띠링! 불꽃의 정화 10등급 아이템이 제작되었습니다.]‘불꽃의 정화(흡수 가능)
출처: 아트팩터 한지원, 등급: 10등급,
파이어 마법계열 능력치 가용률: 2.9% 상승’
“씨팔! 난 역시 아트팩터였어!”
난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른 후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잠시 후.
내 연락을 받은 한득이 집으로 달려왔는데, 혹을 데리고 왔다.
지혜라는 혹.
아니다. 차라리 잘됐다.
지혜가 파이어 마법 쓰지. 크큼.
“세, 세상에!”
“오빠가 아트팩터는 맞긴 맞는 모양이네! 아이템도 직접 제작하고!”
“내말이. 근데 이거 어떡하냐?”
“휴~ 어떡하긴요. 형님이 제작한 거니까, 형님이 알아서 하셔야죠.”
“오빠~ 나. 나 줘~.”
“한득아 2.9%짜리 불꽃의 정화 10등급 아이템 시세 좀 확인해봐라.”
“넵.”
내 말에 한득이가 핸드폰을 꺼내 뭔가를 두드린다.
“2억 8천 5백이네요.”
“2억 5천.”
“뭐가요?”
“지혜한테 한 말이다. 사고 싶으면 2억 5천 내.”
“치~ 같은 길드원한테 팔아먹기나 하고. 그냥 줘~ 선물로 줘~ 옵빵~.”
“빵은 빵집에서. 참고로 이 미네랄 판, 1억짜리다. 나머지는 내 수고비.”
테스트는 테스트.
원가는 원가.
그리고 내 수고비는 당연한 거다.
참고로 직군에 맞는 흡수 가능한 아이템은 돈이 있어도 못 살만큼 찾는 이가 많다.
“흥, 알았어. 계좌로 쏠 테니까, 얼른.”
“가져가서 애 방에서 흡수해. 아니면 인벤토리에 넣어두던가.”
“확인해봐야지. 잠시만….”
지혜가 미네랄 판을 들고 아들방으로 들어간다.
나도 궁금하기는 하다. 내가 만든 아이템이 정상적으로 흡수되는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부작용 같은 게 있을지도.
“대, 대박!”
“뭐가?”
“거의 6등급 스펠 쇼크웨이브 맞는 수준! 파이어 마법 능력치 2.9% 상승! 뻥 아님!”
“그거 원래 그런 거였잖아. 아니야?”
“아니, 아니. 그 말이 아니고. 왜 알잖아. 각성자 레벨 올라가면 능력치 상승 극악인거. 이건 그게 없다니깐!”
뭔 소리냐? 좀 알아듣게 설명해 주지?
“뭔 말이냐? 한득아.”
“형님. 이거 혹시….”
“한득오빠! 지원오빠한테 설명 좀 해줘. 진짜!”
“지혜 말이 맞다면, 이거 진짜 대단한 겁니다. 형님도 아시다시피 각성자 등급 올리려면 레벨 올려야죠?”
“어.”
“레벨 올리려면 능력치 올려야죠?”
“그치.”
“능력치 올리려면 던전 유닛 잡아 클리어하거나, 아이템 흡수해야죠?”
“어. 근데 빨랑 결론만 말하지?”
“예. 그럼 각성자 등급 능력치는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어느 정도나 올라가죠?”
“다 아는 거잖아. 10등급 50이하, 9등급 50이상, 8등급 100, 7등급 200, 6등급 400, 5등급 800, 4등급… 어라?”
“아시겠죠?”
“자, 잠시 대기!”
뭔가 알 것 같다.
수치와 비율.
등급에 따른 능력치 가용률.
10등급의 2.9%와 6등급의 2.9% 하늘과 땅 사이다.
원래 각성자 능력치는 상위 등급으로 높아질수록 그 두 배에 해당하는 능력치를 부여받아야만 등급이 상승하고 레벨이 높아진다.
만약 4등급 각성자가 이 아이템을 흡수한다면?
“씨팔! 대박!”
“그치? 맞지? 내말이 맞지. 근데 오빠~ 10등급 말고 9등급은 안 돼?”
“9등급? 아~ 아!”
맞다. 아까 만들건 10등급짜리였다.
10등급이 이 정도면, 9등급이나 8등급은?
“젠장! 이데아 송곳 소환!”
[띠링! 이데아 송곳을 소환합니다.]난 이데아 송곳을 다시 소환한 후 미네랄 판에 달라붙었다.
1억짜리 미네랄 판.
이제 얼마짜리로 만들어 줄까?
결국 2시간 가까이 나머지 미네랄 판에 달려든 결과,
‘불꽃의 정화(흡수 가능)
출처: 아트팩터 한지원, 등급: 10등급,
파이어 마법계열 능력치 가용률: 2.7% 상승’
‘얼음의 정화(흡수 가능)
출처: 아트팩터 한지원, 등급: 10등급,
아이스 마법계열 능력치 가용률: 2.5% 상승’
‘전사의 투지(흡수 가능)
출처: 아트팩터 한지원, 등급: 10등급,
전투 계열(전사) 능력치 가용률: 2.4% 상승’
3개의 아이템을 더 만들어낼 수 있었고, 하나는 망쳤다.
그렇다고 개당 1억 원이나 하는 미네랄 판을 버릴 수는 없고, 길수한테 가져가서 얇게 포를 떠 달라고 해봐야지.
포를 뜨던 마법진이 그려진 부분을 긁어내던, 깎아내던 그건 길수가 알아서 할 것이고.
희희낙락거리는 지혜와 투덜거리며 운전하는 한득과 함께 사무실로 이동했다.
참고로, 실패한 미네랄 판에 새겨진 마법진은 힐러나 성직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마법, 이데아의 치료다.
사무실에 도착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함성이 들린다.
“길드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길드장님!”
“길드장님, 최고!”
“지원 길드 짱입니다!”
미리 다 모여 있던 거냐?
어쩐지 집에서 한득이가 핸드폰을 들고 자꾸만 밖에 나갔다 들어온다 싶었다.
“길드장님. 길드원 28명, 정원 다 모였습니다.”
“어야. 다들 주목!”
내 말에 사무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