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8_2
길드원들도 안다.
지금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앞으로 자신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지난 3주일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제주지역 방위길드 창립을 앞두고 급작스럽게 발현된 시청 6등급 기갑 던전과 서울시청 3등급 바이오 던전. 부길드장들을 포함한 1, 2팀 팀장, 부팀장들과 시청 6등급을 클리어했고, 각성자 협회 제주지부장, 본회 지원본부장의 추천으로 참여하게 된 서울시청 3등급 바이오 던전도 우여곡절 끝에 클리어할 수 있었다. 자세한 제반 사정과 클리어 보상에 대해서는 추가로 공표하기로 하고, 길드창립 조건, 7등급 각성자 72명에 대한 모집은 SG 길드와 M&A를 함으로써 충족시키게 되었다.”
“SG 길드면 그때 그 SG?”
“길드장님과 같이 다니던 길드 말하는 거 맞지?”
“그럼, 우리가 서울로 올라가는 거야? 우리 제주 방위길드잖아?”
“조용, 조용. 길드장님 말씀 안 끝났다!”
길드원들의 술렁임을 길수가 잠재운다.
이들도 불안하리라.
대기업과의 M&A가.
“맞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대기업, SG. 그곳과 M&A를 진행하였고, SG 길드원 187명 전원, 우리 지원 길드와 합병한다. 단, SG 길드라는 타이틀 대신 지원 길드로 통합되며, 제주지역 방위길드 역시 공표한다.”
“세, 세상에!”
“뭐, 뭐야? 그럼 우리가 먹은 거야? SG를?”
“SG가 지원 길드 밑으로 들어온다고?”
“기, 길드장님, 만세!”
“최고입니다. 지원 길드장님!”
또 다른 의미의 함성이 사무실이 터져라 울려 퍼진다.
“우선 이번 주말 전까지 제주시청 6등급 기갑 던전 리젠 클리어해야 합니다. 이건 지난 3주간 리젠 클리어했던 길드와 클리어 내역섭니다.”
“신규 사무실 알아봤는데요. 노형 쪽에 있는 12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이구요. 지하 2층까지 주차장으로 되어 있고, 1층에는 편의점과 식당, 2층부터 12층까지 저희가 사용하기로 했어요. 여기 보고서.”
“던전 운영지원팀하고 서무팀, 직군별로 구별해야 할 듯싶습니다. 사무직원 채용에 따른 이력서와 팀 운영 방안 내역서입니다.”
“SG 길드원들과 현재 지원 길드원들에 대해 직군별로 팀 구성 다시 해야 합니다. 여기 각성자 등급과 팀 편성 상세내역서입니다.”
길수와 한득, 지혜와 미혜, 김은희와 최은지를 길드장실로 불러들이고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이거 꼭 내가 해야 되는 거냐?
왜 보고서와 내역서 등을 합친 A4 용지가 수백 장이 넘어가는 건데?
이것들이!
“부길드장님들.”
“네. 길드장님.”
“예.”
“이거하고, 이거, 그리고 이것도, 아니 이것까지. 아니 전부다. 이거 꼭 내가 해야 되냐? 너희들이 알아서 처리하면 안돼? 지금 나보고 과로사 당해보라는 뜻? 줄럿 함 소환하까? 응? 부.길.드.장.님.들!”
“형님, 아니 길드장님. 이건 반드시 길드장님의 승낙이 필요한 겁니다.”
“맞습니다. 엄연히 길드장님이 계신데 저희가 어찌….”
“하… 미치긋다.”
분명하다.
녀석들이 날 과로로 뒤지게 만들려는 계획이다.
아니, 알고 있다.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는 내 승인이 필요한 것들도 있고, 내 판단에 따라 운영해야 할 것들도 상당하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이건 정말 싫다는데 있다.
직장생활하면서 분석, 보고, 견적, 산출, PT 등을 지금까지 얼마나 해왔는데, 각성한 후에도 이걸 해야 한다고?
젠장!
그냥 던전에 입장해서 클리어 보상이나 챙기면 안될까?
돈 존나 많이 벌 자신 있거든?
그러니깐 이런 일은 니들이 알아서 척척척 해주고, 난 그냥 돈만 벌게 해주면 안되겠니?
“저… 길드장님. 저번에 보니까 SG 길드장님요.”
지끈거리는 머릴 꾹꾹 눌러대고 있는데, 미혜가 한마디 한다.
얘가 뜬금없이 툭툭 던져대는 말이 가끔씩 시원한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부디 이번에도 그러기를.
“홍찬이 형은 왜?”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SG 길드와 합병되거나, 길드원들이 제주에 내려오게 되면, 부길드장님들과 저희만으로는 길드 운영이 힘들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요.”
“어. 맞아. 죽겠다. 아주.”
“그냥 SG 길드장님을 부길드장으로 임명하면 어떨까 해서요.”
“뭔 소리야. 지금도 홍찬이 형이 부길드장인… 어? 잠시 대기!”
맞다. SG 길드장 문홍찬.
그 형이 M&A된 지원 길드 부길드장이다. 내가 길드장이고.
그럼, 그렇다면,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걸 왜 고민하고 있었지?
그냥 홍찬이 형한테 다~ 시키면 되잖아!
SG 길드던, 지원 길드던, 어차피 하나의 길드인데, 내가 왜 고민해!
원래 모든 조직에서 제일 윗사람은 일을 하는 게 아니다.
밑에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지켜보는 거지.
잘됐다.
난 핸드폰을 꺼내들고 예전 SG 길드장, 아니 지원 길드 부길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이제 아주 주옥된 거야. 크큼.
몰라. 배 째.
나 안 해. 즐.
이란 단어를 돌아가면서 몇 번씩 사용하고, 통화시간이 30분을 넘어갈 때쯤 홍찬이 형 포기 선언이 들려왔다.
그래도 자신은 당장 내려갈 수가 없으니, 똘똘한 팀장 서너 명을 먼저 보내주겠단다.
됐다. 미션 성공.
이제는 이 지긋지긋한 서류들과 안녕이다.
가장 머리 아픈 일이 해결됐으니, 그 다음은….
“한득아. 아까 제주시청 6등급 기갑 던전, 언제까지 리젠 클리어해야 한다고?”
“금요일까집니다.”
“지금은?”
“네?”
“지금 리젠 클리어하면 어떻냐고.”
“지, 지금요?”
“왜? 6등급이 쫄려? 3등급이 아니라서?”
“설마요. 가시죠. 길드장님. 다들 준비해!”
“오빠. 이번 기회에 길드원들도 버스 좀 태우자. 우리끼리만 하지 말고.”
“콜. 길드원들 팀별로 전원 무장시켜서 1시간 내로 시청 던전 앞으로 모일 것. 이상!”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넵.”
한득과 길수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이 서둘러 방을 빠져 나간다.
자신의 팀원들에게 시청 6등급 던전 리젠 클리어 소식을 조금이라도 빨리 알려줄 심산일 것이다.
난 남아있던 한득과 길수를 쳐다보며 씩 웃음을 지었다.
잘됐다.
망친 미네랄 판을 어디다 뒀더라?
길수한테 미네랄 판이나 깎으라고 해야겠다.
1시간 후 제주시청 6등급 기갑 던전 앞.
소식을 들었는지 각성자 협회 제주지부장이 직원들을 데리고 날 찾아와 이것저것 잡소리를 해대다가 갑자기 이데아 미러를 슬쩍 건넨다.
“이건 뭐하게요?”
“알잖는가. 저번 이데아 미러 경매 때 전부 다 사성으로 넘어간 거.”
“그래서요?”
“리젠 클리어할 때 촬영 좀 해주게.”
“여기를요? 여긴 6등급인데요.”
“알고 있네. 정확한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추정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사람, 이거. 내 클리어 진행사항과 유닛 특성을 가지고 3등급 던전 상황을 추론하겠다는 건가?
뭐, 상황도 다르고 던전 규모나 유닛 특성 등 차이가 많이 나니 문제는 없겠지.
그건 그렇고.
“수고비는요?”
“… 우리 사이에 이러긴가. 그냥 해주게. 나중에 밥 한번 사지.”
“그러죠 뭐. 한득아~.”
“넵. 길드장님.”
“이거 가지고 지금부터 촬영 시작해라.”
“알겠습니다.”
“다들 주목! 지금부터 시청 6등급 기갑 던전 리젠 클리어 시작한다. 해당 팀장 말 안 듣고 딴 짓 하다 걸리면, 길드에서 제명시킨다. 똑바로 정신 차리도록! 알겠나?”
“넵. 길드장님.”
“네!”
20여명의 각성자가 내지르는 소리에 주변에 사람들이 점점 더 몰려든다.
귀찮다. 얼른 들어가자.
“마법사 마력발현!”
“이데아 여신의 분노! 불의 벽! … 레디!”
“이데아 여신의 눈물! 얼음의 벽! … 레디!”
“이데아 여신의 통곡! 절망의 바다! … 레디!”
“이데아 여신의 한탄! 슬픔의 이슬! … 레디!”
“이데아 여신의… 레디!”
“리젠 클리어 입장!”
“입장!”
“입장!”
내 ‘입장’이라는 소리에 전사 계열 길드원들이 시커먼 입구에 몸을 던진다.
6등급 기갑 던전 리젠 클리어?
흥! 씹어 먹어 주지.
제주시청 6등급 기갑 던전 리젠 클리어 입장 2시간 10분 후.
“1팀과 2팀은 왼쪽에서, 3팀과 4팀은 오른쪽, 난 중앙. 중첩 방어탑 파괴되면 전사들 달려들어.”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넵.”
“알겠어요.”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셔틀을 생산한 후 멀티 먼저 파괴했다.
드라칸은 소환할 필요조차 없었고, 업그레이드된 수백의 줄럿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멀티 파괴.
2시간이 지나지 않아 두 군데의 멀티를 차례대로 파괴했고, 지금은 본진 앞이다.
중첩된 방어탑만 처리하면 어렵지 않게 리젠 클리어할 수 있으리라.
“줄럿, 드라칸, 토르칸, 굼벵이 전차 전체 소환!”
[띠링! 줄럿(방어+공격 200%) 265개체를 소환합니다.] [띠링! 드라칸(방어+공격 200%) 541개체를 소환합니다.] [띠링! 토르칸 19개체를 소환합니다.] [띠링! 굼벵이 전차 17개체를 소환합니다.]하얀 빛과 함께 나타난 줄럿들과 드라칸들이 사방을 가득하다.
“넥서스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 쓸어버린다. 굼벵이 전차 출발!”
기존처럼 셔틀에 줄럿들과 굼벵이 전차를 나누어 태울 이유조차 없다.
파괴되면 다시 생산하면 되는 거고, 예전보다 지금은 그 개체수가 배 이상이다.
‘콰과광… 콰앙.’
‘투콰아앙… 콰아앙.’
굼벵이 전차가 중첩된 방어탑 사거리에 도달하자 난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줄럿, 드라칸, 토르칸! 쓸어버렷!”
수백의 유닛들이 기갑 던전 본진을 향해 파도처럼 덮쳐간다.
“원거리 마법공격!”
“이데아 여신의 분노! 불의 벽!”
“이데아 여신의 눈물! 얼음의 벽!”
“이데아 여신의 통곡! 절망의 바다!”
‘콰아앙… 콰앙.’
‘콰과광… 콰아앙.’
“전사들 대기! 다섯, 넷, 셋, 둘, 하나. 지금!”
“우와아아.”
“가자~ 1, 2팀은 이쪽으로.”
“3팀, 4팀 날 따라와!”
물론 길드원들도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주시청 6등급 기갑 던전 리젠 클리어 입장 2시간 40분 후.
“다들 빨리 빨리 움직여!”
“마법사 앞으로, 다음은 힐러와 성직자, 다음이 전사다. 어이, 태석이. 너 뒤로 안 빠질래? 앙!”
“겹치지 않게, 중복되지 않게 서란 말야! 이게 지금 장난으로 보여!”
거대한 파도가 모래성 무너뜨리듯 순식간에 본진을 파괴한 후 지금은 넥서스 앞이다.
6등급 던전에서부터 발생하는 스펠 쇼크웨이브.
지혜가 말한 길드원들한테 버스를 태워주기 위함이다.
“다 됐습니다.”
“어야. 줄럿 20개체 소환!”
한득이의 보고에 난 줄럿 20개체를 소환했고, 넥서스를 파괴하도록 명령했다.
‘스…파…아앗!’
언제나 좋은 느낌, 감미롭고 청아한 파란빛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지, 진짜닷!”
“레, 레벨업이다!”
“나도! 나도 레벨업이다!”
“길드장님! 감사합니다.”
“지원 길드장님 쵝오!”
“길드장님, 부길드장님, 팀장님, 감사합니다.”
“어야. 얘들 데리고 미네랄 캐라. 난 가스 흡수하마.”
“네. 레벨업 된 길드원들은 능력치 나중에 분배하고, 지금부터 다들 미네랄 캔다. 전사 계열 앞으로 나오고, 힐러나 성직자들은 힐, 축복 줘.”
지금까지 시청 6등급 기갑 던전 리젠 클리어 진행하면서 부상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아니, 약간의 찰과상과 타박상을 입은, 스스로 진 길드원이 두세 명 있었지만, 던전 유닛한테 당한 상처가 아닌 부주의에 의한 사고.
즉, 지금까지 아니 세 시간 동안 힐러와 성직자들은 놀고먹었다는 얘기.
한득 역시 마찬가지고.
자신도 미안했는지 미네랄 캐는 전사 계열 각성자들에게 힐과 축복을 준다고 난리다.
전사들이 힐과 축복을 받아 미네랄 열심히 캐면, 그게 자신들한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알아서 하고, 난 파괴된 넥서스 뒤쪽 바위틈으로 향했다.
물론 가스를 흡수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쭉~ 생각해 온 걸 시험해 볼 요량이다.
[띠링! 가스채광소가 생성되었습니다. 총량 89.563L]89리터라. 3등급에 비하면 10분의 1도 되지 않는 매장량이다.
그래도 흡수해야지, 별수 없다.
가스는 최대한 많이 흡수해놓는 편이 이득이니.
일단 프롤브 100개체를 소환해 가스를 흡수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드란 소환!”
[띠링! 드란 1개체를 소환합니다.]하얀 빛과 함께 던전 바닥에 나타난 드란 1개체.
크기 13cm 정도, 굼벵이 비슷하게 생긴 모습에, 투명한 점액질이 묻어있고, 조그만 대가리 위로 한 쌍의 더듬이가 보인다.
별로 만지고 싶진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약간은 주춤거리며 놈의 더듬이에 손을 뻗었다.
찰나의 시간.
바이오 유닛 생성과 관련된 테크트리가 머릿속에 펼쳐진다.
저굴링을 시작으로 히드라, 락커, 와이번, 가디언, 마법지렁이, 멍텅구리, 울트라 생산에 필요한 건물과 조건. 방어 건물들과 3등급의 성체 타워 등. 기갑 던전 테크트리와 비슷비슷했다.
“해보면 알겠지 뭐.”
난 놈의 더듬이에서 손을 놓고 바닥에 내려놓은 후 약간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외쳤다.
“타워 생성!”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던 놈이 5m 전방으로 쫄래쫄래 기어가 던전 바닥에 웅크린다. 파란빛과 함께 놈의 변태가 시작되고 약간은 보기 싫은, 흉측한, 민망한 장면이 이어진다.
[띠링! 타워가 생성되었습니다. 생산 가능 유닛 드란.]타워가 생성되었지만, 지금은 드란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드란을 2개체 생성시킨 후 한 개체는 저굴링 코어를, 다른 한 개체는 발업 코어로 변태 시켰다.
그리고는,
“성체 타워 생성!”
[띠링! 타워를 성체 타워(2)로 변태합니다. 남은시간 3분 59초, 58초, 57초, 56초…]“저굴링 코어, 발업 저굴링 업그레이드!”
[띠링! 저굴링 코어에서 발업 업그레이드를 시작합니다. 남은시간 2분 59초, 58초, 57초, 56초…]“발업 코어, 공격력 업그레이드!”
[띠링! 발업 코어에서 지상 유닛 공격력 100% 업그레이드를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 4분 59초, 58초, 57초, 56초…]“드란 생성! 타워 생성, 드란 생성, 타워 생성! ….”
바이오 유닛 생성 테크트리를 살펴본 결과, 이놈은 가스를 잡아먹는 하마다.
물론 가스가 필요치 않는 유닛인 저굴링도 있지만, 대부분은 유닛 생산에 기갑 유닛보다 훨씬 더 많은 가스 조각이 소모된다.
레벨업에 따른 가스 조각 흡수 능력치를 대폭 상승시켰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나는 가스 조각에 배고프다.
바이오 유닛 생산에 가스를 낭비할 이유가 없다.
아직까지는….
한창 타워에서 발업 저굴링들을 생산하고 있는데, 한득이가 내 쪽으로 다가오다가 깜짝 놀라 소리친다.
“혀, 형님!”
“왜?”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여긴 기갑 던전이라구요! 어째서 성체 타워가… 어라? 저굴링이 공격을… 어? 혹시 설마 형님이 하신 일인가요?”
알아듣게 얘기해라. 뭔 소리냐?
“됐고, 미네랄 다 캤냐?”
“지금 미네랄이 중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여긴 기갑 던진이라니까요! 어째서 저굴링이… 형님 줄럿 소환 안합니까! 지금….”
“얘들아, 이리 와 봐.”
“예? 예에~?”
내 부름에 수십, 수백의 발업 저굴링들이 나에게 뛰어온다.
“히이익!”
‘쿠엉… 쿠엉.’
‘쿠에엑. 쿠이에엑.’
난 내 앞에 줄지어 있는 놈들을 손으로 일일이 터치하며, 인벤토리로 집어넣었다.
슥~ 지나가며 손만 대면 알아서 사라진다.
아니 난 가만히 있고 저굴링들이 내 손에 달려들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한득이가 드디어 실성을 했다.
“… 허… 세, 세상에… 말도 안되는 일이… 어찌… 바이오 유닛까지… 이럴 수는….”
얘가 아까부터 뭐래?
진짜 미쳤나?
발업 저굴링 수백 개체를 인벤토리에 저장해놓은 후 이번에는 락커를 생상해서… 자, 잠시만.
아까….
“상태창!”
[아트팩터/전사: 한지원(Lv-30)국적/소속: 대한민국/지원 파티,
나이: 40, 신장/체중: 180cm/77kg,
민첩: 43, 지구력: 36, 힘: 37,
체력: 38, 지능: 36, 행운: 34,
인챈트: 34, 인벤토리: 10/10
(줄럿(방어+공격 200%, 215),
드라칸(방어+공격 200%, 501),
어둠의 암살자(4), 굼벵이 전차(15),
번개 주술사(24), 토르칸(18)
타락한 전사(1), 발업 저굴링(공격 100%, 388)
미네랄(8.123kg), 이데아 송곳(2))
건물: 11
(포스, 배터리, 게이트웨이, 드라칸 코어,
가스채광소, 발업 코어, 랜드 코어, 스타게이트,
블랙 코어, 라이트 코어, 랜드 스포 코어),
수정체: 0/300, 개인 보유 능력치: 0,
소환 대상 능력치: 1,601(프롤브),
줄럿의 상의 갑옷 1,
보유 아트팩트:
미네랄 조각(흡수): 520,
가스 조각(흡수): 710,
이데아 주머니(흡수): 1,
이데아 송곳(흡수): 2]
“역시, 공간이 모자라!”
생각해 보니 인벤토리에 공간이 부족하다.
기껏 락커를 생산해 봤자 넣을 칸이 없었다. 더군다나 소환 대상 능력치가 프롤브밖에 뜨지 않는 걸 보니, 드란 1개체는 항상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는 건데.
던전을 나가면 당장 각성자 쇼핑몰에서 이데아 주머니 구매해야겠다. 가능하다면. 그건 그렇고 일단은,
“미네랄, 이데아 송곳 전체 소환!”
[띠링! 미네랄 8.123kg를 소환합니다.] [띠링! 이데아 송곳 2개를 소환합니다.]됐다. 두 칸 비었으니 락커까지 생산해서 넣을 수 있겠다. 드란도 마찬가지고.
히드라를 생산하고, 히드라 코어에서 락커 생성을 활성화 시킨 후 히드라의 변태를 기다리고 있는데, 뭔가 까작까작 하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니, 한득이가 이데아 송곳으로 미네랄을 조각내고 있었다.
“… 너 뭐하냐?”
“네? 이거 쪼개라고 꺼내신 거 아닙니까?”
“그걸 니가 왜… 아니다. 하던 거마저 해라.”
“넵.”
까작까작. 깨작깨작.
이 새끼 가끔씩 엉뚱한 면이 있단 말야.
“오빠~ 미네랄 다 캤다니… 뭐, 뭐야!”
“뭐, 뭐가!”
“세, 세상에!”
“길드장님!”
지혜와 길수, 김은희와 최은지가 이쪽으로 다가오며 한마디씩 한다.
“쉿~.”
난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세웠다.
얘들은 영문을 몰라 당황했고, 한득이는 열심히 미네랄을 쪼개고 있었다.
까작까작. 깨작깨작.
제주시청 6등급 기갑 던전을 클리어하고 밖으로 나오자, 지금까지 기다렸었는지 제주지부장이 내게 다가온다.
“무사히 리젠 클리어한 걸 축하하네. 그나저나 그것은….”
“한득아.”
“넵. 여깄습니다.”
한득이가 이데아 미러를 꺼내자 제주지부장이 얼른 낚아챈다.
“오늘은 이만 감세. 그리고 아까 협회에서 연락 왔었는데, 협회장이 자넬 보고 싶어 한다는군.”
“지원본부장님이 아니고요?”
“그래. 협회장. 대빵 말일세.”
지부장이 엄지를 들어 위로 쿡쿡 찌른다.
“저보고 서울로 올라오라고요?”
“그런 말은 없었고… 여하튼 난 전달했네. 수고하시게나.”
“네.”
이 아저씨. 하던 말이나 정확하게 하고 가든지. 뭔 소리냐.
제주지부장이 직원들을 데리고 자리를 뜨자, 난 한득이게 말했다.
“사우나하고 쇼핑몰 들린 후 회식하자. 항상 하던 대로.”
“알겠습니다. 다들 차량으로 이동한다. 이동 대형 유지해.”
“이동한다. 거기 잡담 말고 이동해.”
“지원팀에 연락해서 사우나 예약하고, 두 시간 후 OO전문점 예약해.”
한득과 길수, 지혜까지 나서서 길드원들에게 상황을 전파하고, 차량이 있는 시청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사이에 한득이가 말을 건넨다.
“형님, 그거 괜찮을까요?”
“뭐가?”
“미러요. 이데아 미러.”
“그게 왜?”
“형님이 던전 입장하기 전부터 녹화하라고 했잖습니까.”
“어.”
“던전 나올 때까지 녹화되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뭔 말인데?”
이 시키가 또.
“아니, 그거요. 그거. 넥서스 파괴하고 형님 뒤쪽에서 드란으로 타워 생성….”
“뭣!”
“네?”
“씨파! 그게 다 녹화되고 있었어? 진짜?”
“예, 예. 제가 항상 가지고 다니니까, 당연히 녹화되고… 보안 사항이었습니까? 제가 잘못한 건가요?”
“아~ 젠장! 지부장 전화 때려. 미러 돌려달라고 해. 당장!”
“네, 넵!”
내 언성이 커지자 길드원들과 팀장들이 날 쳐다보며 걸음을 멈춘다.
난 손으로 이동하라고 제스처를 취한 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한득이 전화를 지부장이 안 받는다. 썩을.
다음날.
어제 지부장과는 대략적인 협의를 봤다.
미러를 절대 보지 말 것. 대신 다음번의 서울시청 3등급 리젠 클리어 이데아 미러 영상을 준다는 조건하에.
근데 꼭 이걸 숨겨야 하나? 그냥 오픈해버려?
아니다. 강호에선 실력의 삼푼을 숨기라는 명언 같지 않는 말도 있다.
강호도 아니고, 삼푼 정도가 될지 안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뭔가 비장의 수가 있는 게 좋다. 그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지만, 알고 있는 사항과 모르고 있는 상황은 천지(天地)차.
나한테 락커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차이는 하늘과 땅 사이.
준비할 수 있다는 것과 그렇지 못하는 것은 뒤통수를 한번 후려치냐 못 치냐의 차이. 비유가 이상한가?
여하튼,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죄, 죄송합니다. 형님.”
“그건 됐다. 니 잘못이 아니고, 신경 쓰지 못한 내 잘못이지.”
“혀, 형님.”
“그래도 미안하지?”
“네? 넵.”
“그럼, 이쪽 분들과 잘해봐. 내가 신경 안 써도 되겠끔.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난 홍찬이 형이 먼저 내려보내준 SG 길드, 아니 지원 길드 서울지부에서 내려온 팀장급 각성자 3명을 보며 한득에게 말했다.
SG 길드와 M&A 하면서 얼굴을 읽힌 5등급 초반 등급의 능력치를 가진 각성자, 김종태, 한태우, 박진만.
똘똘한 얘들이 3명이나 추가로 유입되었으니, 앞으로는 애들이 각종의 서류로 날 갈구지 못하겠지. 크큼.
‘우웅… 우우웅.’
“아, 진짜.”
또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온다.
서울시청 3등급 바이오 던전을 클리어한 후부터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의 전화가 온다. 모르는 전화번호로. 그래서 그 이후에는 내가 저장해놓지 않는 모든 전화는 안 받는다.
바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핸드폰을 꺼 놓기에 그리 귀찮지 않았는데, 요즘은 아니다.
한번 핸드폰 전원을 켜면, 수십통의 문자 알림으로 한동안은 웅웅거린다. 어차피 확인은 안하지만.
이참에 핸드폰 번호를 바꾸든지, 하나 더 마련해야겠다.
‘똑똑.’
“저, 길드장님. 어제 오전부터 각성자 협회 비서실에서 계속 연락이 왔었는데요. 지금도 대기 중입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비서실? 비서실에서 왜?”
“그건 저도….”
“연결해봐.”
“예.”
지원팀 직원 한명이 전화를 연결해준다.
차라리 나도 비서실을 운영해 볼까? 내가 일일이, 하나하나… 귀찮다.
“네. 한지원입니다.”
‘수고하십니다.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 비서실 실장 고택근입니다. 저희 협회장님께서 한지원 씨를 한번 뵙자고 말씀하시네요. 이번 주 금요일까지 저희 협회장실로 오시면 되겠습니다.’
“… 안 갑니다.”
‘오전은 가급적 피하시고,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에… 예?’
“안 간다구요. 제가 거길 왜 갑니까?”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협회장님입니다만? 회장님께서 말씀하시….’
“날 보고 싶으면, 제주로 내려오라고 하세요. 어디서.”
난 내 말만하고 전화를 끊었다.
협회장, 이 사람도 금수저야? 왜 이리 대가리에 똥만 차 있는 거지? 지가 부르면 내가 개새끼마냥 쪼르르 달려 갈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도대체 왜? 하여튼 금수저들이란….
‘우웅… 우우웅.’
“아~ 또. 응?”
아버지다. 크큼.
“네. 지원입니다.”
‘아들. 너 혹시 각성자 협회 제주지부에 아는 사람 없냐?’
“있죠. 왜요?”
‘아니, 이 사람들이. 일을 했으면 대금을 줘야 하는데, 안 준다. 하청에 하청이긴 한데, 그래도 준공공기관에서 이렇게 하면 안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일당 못 받으신거예요? 얼마나요? 그리고 발주처가 제주지부 맞구요?”
‘어. 발주처는 거기가 맞고. 일당은 아니고, 통키 대금인데, 아니 일당이라고 치자. 그런데 이게….’
“거기 최고 담당자 이름 아세요? 아닙니다. 제가 그리로 가죠. 어디세요?”
‘어. 여기 아라초등학교 건너편에….’
30여 년간 용접 일을 하고 계시는 아버지.
내가 그만 두라고 몇 번이나 말해도, 사람은 무조건 일을 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하신다. 돈은 부수적인 문제.
어디선가 많이 본 상황, 어렴풋이 짐작되는 설정… 은 아니겠지? 에이~ 설마.
여하튼, 일단 가보자. 또 어떤 놈이 금수저 흉내를 내는 건지.
따라오겠다는 한득과 길수를 만류한 뒤 택시를 타고 아라초등학교 쪽으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아버지는 밖에 나와 있었고, 현장 사무소로 쓰고 있는 조립식 컨테이너 안에서 꽤나 큰 고성이 오간다.
“… 그러니까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 건데요! 우리도 대금 못 받았다니까!”
“현장 소장도 몰라, 발주처도 몰라. 그럼 우린 어디 가서 돈 받아야 되는데!”
“자재대금은? 일당은 일당이고, 일을 시켰으면 돈을 줘야할 거 아냐!”
“이 사람들이! 우리도 아직 못 받았다니까,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어린놈의 시키가, 어디서 소리를 빽빽 질러대고 난리야!”
“뭐? 어린놈의… 그래 넌 좋~ 겠다. 나이 처먹고 노가다 뛰니까!”
“뭐! 이 개새끼가!”
“어쭈? 잘하면 한 대 치겠다? 쳐, 치라고. 안 그래도 박봉인데, 이번 기회에 돈 좀 벌어보자.”
뭔가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만, 뭔가 깨지는 소리도 들린다. 누군가의 말리는 소리와 서로 쌍욕을 해대는 소리… 됐다.
아버지한테 거의 다 다가가서야, 그제야 내가 온 걸 알아차린다. 다른 생각을 하고 계셨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