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8_3
“어떻게 된 겁니까?”
“가끔씩 있는 일이지. 서로 떠넘기기.”
“뭐가요?”
“원래 이쪽은 하청에 하청이거든. 대금을 받으려면 역으로 계속 올라가야 되는데, 이게 중간에 끊기면….”
안 봐도 비디오고, 내가 생각하는 일명 ‘갑질’이 맞는 것 같았다.
“저하고 같이 들어가시죠. 전화 한 통이면 됩니다.”
“귀찮게 하는 거 아냐?”
“귀찮기는요. 아니, 누군가는 귀찮을 수도 있겠네요. 크큭.”
묘한 웃음을 짓던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조립식 컨테이너 안으로 같이 들어섰다.
사무 집기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지만 서로 주먹다짐은 하지 않았는지, 60대 초반 아저씨 두 분이 40대 중반 아저씨와 담배를 피고 있었다.
“한씨, 거긴 누구여?”
“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구만.”
“그러게 한씨하고 똑같이 생겼네. 혹시 아들인가?”
“어. 내 큰아들. 각성자지.”
“크큭. 한씨. 그거 내가 재미없는 농담… 어, 어!”
“어디서 많이 봤는데… 당최 생각이….”
“제, 제주지역 방위길드 지원 길드장 한지원!”
멍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기만 하던 40대 중반 아저씨가 정답을 외친다.
“내가 말했지. TV에서 보던 녀석이 내 큰아들이라고. 하하, 하하하.”
아버지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컨테이너 사무실에 울려 퍼졌고, 난 조용히 핸드폰을 꺼냈다.
“발주처가 제주지부죠?”
“네, 넵. 지원관리팀 총무과에서 발주한 사업입니다.”
“네. 잠시만요.”
다들 나와 아버지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 난 누군가에에 전화를 걸었다.
“네. 접니다… 예, 당연히 뭔 일이 있죠. 제가 지금 아주 재미있는 상황에 놓였거든요. 지원팀이 고용석 팀장 맞죠? 그 사람, 왜 그런데요? 아뇨. 당연히 그 밑에 사람이 어떻게 일하는지 관리, 감독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여기요? 아라초등학교 근처이긴 한데, 왜요? ….”
대략 5분정도 통화를 끝내고 전화를 끊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가 궁금한지 한마디 한다.
“누구하고 통화한 거냐? 팀장 이름을 막 부르던데?”
“지부장요.”
“응? 지부장?”
“협회 제주지부면, 지부장이 대빵 아닙니까? 이런 일은 대빵한테 전화해야 빨리 처리가 되죠. 30분 내로 처리가 될 겁니다. 기다리는 동안 커피나 한잔 하시죠.”
“어? 어.”
약간은 놀란 눈빛의 아버지가 소파에 앉는 동안, 난 커피포트에 전원을 켰다.
믹스 커피 입구를 찢고 종이컵을 준비하는데,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40대 아저씨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잠시 후.
지부장과의 통화가 끝나고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협회 지원팀 고용석 팀장이 전화가 걸려왔지만, 무시.
그 이후에도 모르는 번호로 몇 건의 전화가 더 왔지만, 여전히 다 무시했다.
채 30분이 지나기도 전에 가장 빨리 도착한 사람은 하청을 받은 건설업체 사장이었다.
“… 지금 당장 대금을 지급토록 하겠습니다.”
“에이~ 그건 아니죠. 그러면 사장님 돈으로 지급하는 거잖아요. 맞죠?”
“예.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어차피 저희도 나중에 받으면….”
“제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죠. 잠시만 기다려봐요.”
하청 받은 건설업체 사장 이후로 사업을 수주한 업체 이사가 사무실을 찾아왔고, 나중에는 제주지부 지원팀 총무과장, 그리고 지원팀 팀장까지 찾아왔다.
“한지원 씨. 행정적인 절차에 약간의 오류가….”
“사업에 대한 검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서.”
“행정적인 절차에 대한 오류요? 그건 협회 잘못이니 위로금 지급하시면 되고, 사업에 대한 검수요? 검수도 지부에서 하는 거죠? 검수 늦어진 걸 왜 밖에다 화풀이해요? 이거, 이거… 아주 안되겠구만. 제주지부가 이 정도밖에 안돼요? 진짜? 나 갑자기, 막, 실망이….”
“위로금 지급하고, 검수 지금 당장 하겠네. 뭐 하는가! 총무과장. 수주업체한테 사업대금 선지급 안하고!”
“네? 지금 여기서 어떻게… 품의를 올려야.”
“당신 바로 위 결재권자가 바로 나야! 내 위로 지부장님이 계신 거고! 지금 지부장님 이쪽으로 오고 있는 거 몰라? 당장 처리해!”
“네, 넵.”
총무과장이 핸드폰을 꺼내들고 허겁지겁 밖으로 나간다.
원격업무? 그런 건 모르겠고, 그 밑에 누군가가 서류를 작성하겠지.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고.
“아~ 이 사람. 그게 아니라니까.”
결국은 지부장까지 나타났다.
“실망입니다. 실망.”
“아니야. 아니라고.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닌데, 왜 이러는가. 그건 그렇고, 이쪽이 아버님 되시나? 하하. 반갑습니다.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 제주지부장 한태환입니다. 아들, 진짜 잘 두셨습니다. 저도 아들 하나 있는데, 40이 넘은 놈이 지금도 장가를 안가서 아주 골치가….”
나한테 친근하게 굴던 지부장이 아버지한테 다가가 오랜 친구처럼 대한다.
뭐 연배도 비슷하긴 한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 화통한 웃음을 보이는 아버지. 갑자기 분위기가 훈훈해지더니, 고용석 팀장까지 아버지 쪽으로 합세한다.
“아들.”
“예.”
“그만하고 일어나자. 협회도, 수주업체도 다 알아서 한다잖아.”
“입금되는 거 지켜보고요.”
“에이. 지부장님 말씀이 있는데, 그걸 안 지킬까? 안 그렇습니까? 지부장님.”
“하하. 물론입니다. 아마 한두 시간 내로 대금 처리 될 겁니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 어떻습니까? 폐를 끼친 것 같아 제가 모시겠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저도 간만에 아들하고 저녁 먹으려고 합니다. 식사는 다음에 하시죠. 지부장님.”
“네. 알겠습니다. 부자간의 저녁 시간을 제가 망칠 수야 없죠.”
“그럼, 담에 뵙겠습니다. 수고스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희 불찰인걸요. 한지원 씨 아니였으면, 지금도 처리가 안됐을 겁니다.”
“하하.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대충 정리하고 간이 사무소를 나왔다.
현장소장을 비롯한 건설업체 사장과 수주업체 이사, 제주지부 지원팀 팀장과 총무과장, 지부장까지 밖으로 나와 배웅한다. 아니, 내가 사라지면 이 사람들도 떠나겠지.
결국 아버지 통장으로 대금이 입금 되지는 않았다. 최대한 빨리 처리될 것이라는 약속만 받았을 뿐.
약간은 쓰라린 속으로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아버지가 한마디 한다.
“큰아들.”
“네.”
“… 고맙다.”
아버지의 단 한마디.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그 한마디면 됐다. 꿀꿀하던 기분이 싹 사라진다.
잠시 후.
근처 횟집으로 이동해 밑반찬 안주로 소주를 막 까기 시작할 때쯤.
‘우웅… 우우웅.’
와이프다.
“어. 왜?”
‘자기야. 외도 해안도로 쪽에 1,800평 나온 거 보고 있는데, 경치가 엄청 좋아. 어떻게 할까?’
“해안도로? … 평당 얼만데?”
‘잠시만. 여기 부동산 사장님 계셔. 바꿔줄게.’
‘전화 바꿨습니다. OO부동산 박진숩니다. 저, 혹시 제주지부 방위길드 한지원 씨 맞으신지요?’
“네. 한지원입니다.”
‘세상에! 진짜였다니! 여, 영광입니다!’
그럼 나처럼 행동하는 가짜도 있냐? 그건 그렇고.
외도 해안도로 쪽이라… 낚시 다니기에도 딱 좋군. 평수가 좀 넓긴 하지만.
“… 거기 구매 진행해 주세요. 그리고 아시는 건설업체… 아! 됐습니다. 최대한 빨리 구매 진행해 주세요.”
“네, 넵.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결국 평당 얼마나 하는지는 못 물었다. 아니다. 물어볼 이유조차 없다.
해안도로 쪽에 전원 주택이라… 그리고 그 정도 평수면….
“아빠.”
“왜?”
“집 지을 수 있죠?”
“그야….”
“3층짜리 전원주택 3채 정도 직접 지어보죠.”
“몇 평인데.”
“1,800평요.”
“… 그렇게나 넓은 땅에 왜 3채만 지어. 더 많이 지어서 팔아먹을… 아니다. 크큼. 자재비와 인건비는 네가 대는 거냐?”
“물론이죠. 이참에 아빠 사업자 하나 내요.”
“무슨 사업자?”
“건설업체요.”
“내가 돈이 어디… 돈은 니가 내냐?
“네.”
“돈만 있다고 건설업체 차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관련….”
“100억 투자할게요. 그 정도면 되죠?”
“… 진심이냐?”
“네.”
“니가 가지고 있던 금액에 4분의 1일 투자하기엔….”
와이프가 말한 서울시청 3등급 클리어 보상과 경매 대금, 사백억.
그게 아닌 걸 언젠가는 밝히긴 밝혀야 하는데, 지금은 아니고.
“금방 든 생각인데요. 해안도로 쪽이니까 바닷물 끌어와서 3~5m 깊이로, 500평정도 저수지 만든 다음에, 가운데에 정자하나 지어서, 거기서….”
“낚시?”
“정답입니다.”
“양식장?”
“자연산.”
“관리하는 사람도 필요할 텐데?”
“두어 채 더 짓죠 뭐. 야간에 정자에서 밤낚시….”
“1,800평이니까, 딱 떨어지게 800평으로 가자. 수심은 7m 이상. 여름에는 해수욕 할 수 있게 가장자리는 수심 1m 정도 모래로 깔고, 파도 발생기하고, 해초, 산소까지 하려면, 아쿠아리움하는 업체를 알아봐야….”
아버지가 들뜬 기색으로 연신 이것저것 말씀하시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같이 다녔던 바다낚시.
그때 당신이 말한 걸 난 아직도 기억한다.
자신의 꿈은 집 앞 바닷가에서 밤낚시 하는 거라고.
해안도로니까 집 앞으로 나가서 해도 되겠지만, 그것보다는 운치 있게 정자에서 낚시하다가 잡은 걸로 매운탕에 소주한잔 걸치면… 됐다. 침 나온다, 그만하자.
아까 주문을 뭘로 했지? 감성돔인가? 돌돔인가? 매운탕도 미리 주문해야겠다. 매운탕은 우럭이지. 암….
부자(父子)는 부자(父子)인건 같다. 공통점이 나오자 아이디어에 샘솟는다.
그래도 이걸 하려면 부자(富者)이니까, 가능한 것이다.
며칠 후.
와이프가 말했던 부지를 보러갔다.
외도 일주도로를 기준으로 바닷가 방향으로 펼쳐진 넓은 대지.
기존에는 과수원을 하다가 밀어버리고, 용도변경을 한 후 건물을 올릴 계획이었다고 하는데, 별로 믿음이 가진 않는다. 방풍림이 없는 바닷가 근처에서 무슨 얼어 죽을 과수원. 비가림(하우스)도 아니고. 뻥치지 말라 그래.
“총 금액이 얼마죠?”
“평당 217만 원이었습니다만, 제가 210만 원으로 맞췄습니다. 거기에….”
“금액만요.”
“수수료와 각종 세금을 포함해서 41억5천7백3십….”
“42억 넣으면 되나요?”
“가, 감사합니다.”
“저쪽 일주도로에서 여기까지 길 낼 수 있죠?”
“그건 시청 쪽으로 알아봐야… 가능할 겁니다. 아니 가능합니다. 진행할까요?”
“예. 그리고 저 뒤편으로 다시 일주도로로 올라갈 수 있게끔 연결해주세요. 차량 진입 수월하게.”
“알겠습니다.”
“터다지기부터 시작하죠. 포크레인하고 중장비 불러서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 5채 지을… 어? 잠시만요.”
부동산 사장과 땅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건물 올리는 거야 사람과 장비가 하는 일이지만, 터다지는 정도와 800평 되는 일명 저수지는 굳이….
“어디 가서 말하지 마요. 줄럿, 드라칸 전체 소환!”
[띠링! 줄럿(방어+공격 200%) 520개체를 소환합니다.] [띠링! 드라칸((방어+공격 200%) 380개체를 소환합니다.]“허억!”
“저쪽부터 저쪽까지 깊이 4m, 그리고 저쪽에서 이쪽까지는 깊이 10m이상 판다. 바위든 돌이든 땅속에 있는 건 무조건 부숴. 파낸 흙은… 음, 일단 파!”
내 말이 끝나자마자 수백의 줄럿들과 드라칸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기다란 건틀릿으로 바닥을 쑤셔대는 줄럿들과 바위가 있는 곳에 캐논포를 쏴대는 드라칸.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같이 왔던 부동산 사장은 벌린 입을 다물줄 모른다.
근데 흙은 어떻게 하지? 역시나 중장비를 불러야 하나?
다음날.
일시불로 부동산 사장한테 대금을 입금시키고, 길드원들 중 전사 계열 각성자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구매한 부지에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입을 떠억 벌린다.
“혀, 형님!”
“길드장님!”
“왜?”
“이래도 되는 겁니까? 이거 다른 사람들이 보면….”
“뭐 어쩌라고. 내 소환수? 유닛? 여하튼, 내가 소환한 거 내 맘대로 쓰는 건데, 누가 뭐라 해?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주는 것도 아니고. 됐잖아.”
“그, 그래도요.”
“잔말 말고 옷 갈아입고, 삽 들어.”
“예?”
“놀러왔냐? 일당 줄 테니까, 삽 들라고.”
“… 저, 노가다 안 해봤는데요?”
“하다보면 다 돼. 그리고 너 전사잖아. 이럴 때 힘써야지. 언제 쓰냐? 던전 클리어할 때도 별거 없더구만.”
“… 혀, 형님.”
존나 억울해하는 길수를 비롯해서 대부분이 멍~한 표정이다.
당연히 중장비를 동원해서 처리해도 되겠지만, 일단 손 붙인거 빨리 끝내면 좋지.
그리고 너희들 내가 버스 태워줬잖아. 사람이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야지. 암, 그렇고말고. 크큼.
“후욱, 후욱.”
“허억, 허억….”
“이데아 여신의 안배! 퍼스널 힐!”
“아~ 진짜! 한득이 너 힐 그만 주라니까!”
“잔말 말고 빨랑 파라. 오늘내로 못 끝내면 알아서 생각해.”
“형님!”
“해질 때까지 저쪽까지 마무리 못 지으면, 제명이다.”
“아아악~!”
“이데아 여신의 안배! 퍼스널 힐!”
“야이~ 쌔꺄!”
“뒤질래?”
“아악, 아아악~!”
전사 계열 각성자들이 3시간 만에 퍼져버린 탓에 결국은 길드원들 모두 불러들였다.
힐러와 성직자 계열 각성자들은 신이 나서 힐과 축복을 전사들에게 걸었고, 마법사들은 줄럿, 드라칸과 함께 바위와 바닥을 파냈다. 화염마법에 땅거죽이 터져 나갔고, 바위가 부서진다.
역시나, 집 터다지는 데는 각성자들이 중장비보다 낮다.
일주일 후.
집 터 다지기가 끝나고 난 뒤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다.
물론 중간에 전원주택에 대한 구조와 설계 등에 시간이 뺏기기는커녕, 건축사무소에 다 있더구만. 샘플이.
가장 화려하고, 실용적이며, 예쁜 구조로 선택한 후 짜깁기 하면, 끝.
돈으로 쳐 바르면 안되는 게 없는 세상 아닌가. 밤 새는 건 그들이지, 내가 아니니까. 크큼.
아버지가 본격적으로 집 짓는데 관심을 보이고, 어머니는 매일 와이프와 구경하다가 가신다.
요즘 와이프와 음식점을 탐방하는데 시간을 할애하는 걸 보아하니, 나중에 레스토랑이든, 식당이든 하나 장만해 드려야겠다.
내가 돈 버는 이유가 가족하고 같이 쓰려고 버는 건데, 아끼면 뭐하냐? 아끼다가 똥 된다.
벌면 번만큼 써야 된다. 그래야 돈이 돌고, 돌아서 동그란 거다.
다음날 오후.
길드 사무실에 잠깐 들려 얘들 7등급 던전 클리어하는 것과 시청 6등급 기갑 던전 운영에 대한 보고를 듣고, 잠깐 시간이 남아 집에 들어가려는데, 집 앞 입구에서 40대 중반의 남성이 날 발견하고는 서둘러 다가와 말을 꺼낸다.
“저, 실례합니다. 지원 길드장 한지원 씨 맞으시죠?”
“맞습니다만, 무슨 일인지?”
“하~ 드디어 만나게 됐군요.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 비서실 실장 고택근입니다. 저번에 통화 한번 한 적이 있는데요. 연락이 되지 않아 제가 직접 제주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래요. 근데 그래서요?”
“그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협회장님께서 한지원 씨를 만나보고 싶다고….”
“그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 보고 싶으면, 내려오라고 하세요. 그럼 이만.”
“… 지원 씨, 한지원 씨.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협회장입니다!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 협회장이라니까요!”
어쩌라고? 아까 말하는 거 들었잖아. 병신인가?
난 뒤에서 소리치는 비서실장을 내버려두고 집으로 들어갔다.
짜증난다. 보쌈이나 시켜서 소주나 한잔 해야… 이제야 4시다. 좀 있다가 먹어야지. 크큼.
며칠 후.
새로운 지원 길드 사무실로 이전했다. 아니, 새롭게 구매한 노형사거리 쪽의 건물로 이사 왔다.
기존의 지원 길드원들과 SG 길드에서 먼저 내려온 3명의 팀장급 인원까지. 거기에 서울에서 홍찬이 형이 드디어 내려왔다.
“정리는 다 된 거?”
“일단은. 그리고 서울은 지부형식으로 가는 거 맞지?”
“그렇게 해야지. 명색이 제주지역 방위길드인데, 본사가 제주에 있는 게 맞지. 약속한 것들도 많고.”
“그럼 여긴? 길드 최조 조건 100명만 상주하는 거?”
“응.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긴 한데, 조건은 조건이니까. 그리고 각성자법 도대체 언제 바뀐데? 통과 됐다며?”
“법이 하루아침에 뚝딱 바뀌냐? 계도기간 있잖아.”
“계도기간은 무슨. 우리가 일반인도 아니고. 던전 하나 더 터져봐야 정신 차리지. 쩝.”
‘똑똑’
“왜?”
“길드장님. 손님이 찾아오셨는데요. 그, 그게….”
“누군데 그래? 뭐 이상한 사람이면 돌려보내고….”
비서역할을 담당하는 박지민 성직자 계열 길드원하고 얘기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녀를 밀치며 안으로 들어온다. 60대 후반 남성과 그를 수행하는 각성자 남성 4명. 뭐야 이거?
“허허… 참 만나기 힘들구만. 나 협회장일세.”
“… 그래서요?”
“건방진 놈! 일어나서 맞이하지 못할까!”
“조그만 길드하나 운영한다고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뭐지? 이 단체 또라이들은?
저번에 본 협회 지원본부장은 꽤 괜찮은 사람 같던데.
“하… 내 살다살다 별 꼴을 다 보네.”
“지, 지원아. 그래도 말이 좀. 명색이 협회장님인데….”
“형까지 왜 이래? 그리고 거 아저씨.”
“뭐 아저씨? 이놈이!”
“따금한 맛을 봐야 정신차리지!”
“하~ 진짜.”
부글거리는 속을 일단 억눌러 참고, 일어나서 한마디 했다.
“일단 여기까지 오셨으니, 이쪽으로 오세요. 그리고 나머지 떨거지들은 나가있고.”
“뭐, 뭐라!”
“놈! 네놈이 진정!”
“그만!”
협회장이 내 쪽으로 다가오며 수행원들을 만류한다.
밑에 있는 사람을 보면 그 윗사람을 안다고 했다. 수행원인지, 경호원인지, 비서인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했던 이 짓거리. 지금까지 나 진짜 많이 참은거다.
“약속도 없이 무례하게 찾아온 우리 잘못도 있느니, 넘어감세. 자네가 찾아오라고 해서 찾아오지 않았나. 자네도 그만하게.”
“…….”
협회장이 내가 앉았던 소파 상석에 엉덩이를 붙이더니 쩝쩝 거린다. 차를 달라는 얘긴가?
난 인터폰으로 녹차와 홍차를 준비해달라고 말을 한 후 손짓으로 4명의 떨거지들을 나가게 했다.
얼굴색이 온통 검붉은 색으로 변한 떨거지가 문을 닫고 나가자, 그제야 협회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허허허… 쟤네들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얘들인데. 여기선 찬밥 신세구만.”
“찬밥은 무슨 찬밥입니까? 개밥만도 못하죠.”
“… 허허, 허허허. 농담이 지나치군.”
협회장이 나이에 맞지 않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농담이 아니고 사실이죠. 보여드려요?”
나 역시 협회장을 빤히 쳐다본다.
난 누르면 누를수록 튀는 성격이거든. 유(柔)하면 유(柔)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성격이 쪼잔한 거다.
“협회장님이 무슨 일로 제주까지 오셨는지요?”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시작하자 홍찬이 형이 환기시킨다.
“SG 길드장이구먼. 그래 M&A 했다며? 알아서 잘 하겠지만, 잘못된 선택 아닌가?”
“글쎄요.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최고의 선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가?”
씨바. 지금 뭐하자는 거지? 당사자을 앞에 두고.
“서로서로 바쁜 것 같으니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지. 지원 길드장.”
“… 말씀하시죠.”
“허, 됐고. 서울시청 3등급 바이오 던전 리젠 클리어할 때 몇몇 길드와 같이 진행하게.”
“그 몇몇 길드가 혹시 사성, LC, 질풍인가요?”
“정확하구만.”
“됐습니다. 저희끼리 진행합니다.”
“협회장이 이렇게 제주까지 내려와서 말하고 있는데도 그럴 건가?”
“협회장이 아니라, 이 나라 대통령이 와도 내가 싫은건 안 합니다. 더군다나 대리인이 와서 이런 부탁 같지 않는 명령이라면 더더욱.”
“… 허. 제주에서만 살아서 앞, 뒤 구분 못하는 천둥벌거숭이였구만. 쯔쯧.”
“서울에서만 살아서 좌, 우 구분 못하는 늙은 노인네구만. 쯔쯔.”
‘쿵~.’
협회장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친다.
“어둠의 암살자 전체 소환!”
[띠링! 어둠의 암살자 4개체를 소환합니다.]‘쾅! 쩌저적.’
동시에 길드장실 문이 터져나가며 떨거지 4명이 안으로 들어온다.
하얀빛과 함께 그들의 대검이 소환되었고, 난 어둠의 암살자들을 인지했다.
“놈! 겁대가리 상실한 건방진 애송이….”
“더 떠들면 그 모가지, 떨어질 거야.”
“지, 지원아!”
“기각! 여기 5명 쓱~ 처리하고 묻어버리지 뭐.”
“크으윽. 놈!”
“크윽.”
떨거지 4명이 움직이려고만 하면 목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둠의 암살자 4개체.
떨거지 뒤에서 기다란 대검이 목에 걸쳐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가죽이 찢어지며 피가 흐른다.
전사 계열 각성자면 뭐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암살자들이 대검을 목에 겨누고 있는데.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은가?”
“아까부터 자꾸 혼잣말 하는 것 같은데, 내가 금방 말한 거 못 들어나? 처리하고 묻는다 했을 텐데?”
“대한민국 각성자법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터인데? 가족은 무사할 듯싶은가?”
“죽은 놈은 말이 없는 법. 노인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런가? 그럼 어디 해보시던가.”
오호라~. 대단한 배짱인데?
“그래? 그럼 그러지 뭐.”
난 어둠의 암살자를 쳐다보며 떨거지들의 목에 상처를….
“크으윽.”
“커억.”
“자, 잠시!”
그럼, 그렇지. 괜히 센 척은.
원래 뭔가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걸 잃는 게 두려운 법이다. 그게 재산이던, 권력이던, 명예던.
없는 놈은 잃을게 없기 때문에 무식하고, 용감한 법.
난 원래부터 가진 게 없었다. 아무것도.
감히 내 가족들을 들먹여? 늙은 노인네. 넌 좆 됐어. 시밤바쌕!
“왜? 유언장 작성하려고?”
난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협회장을 쳐다봤다.
협회장의 떨리는 눈이 지금 심정을 말해준다.
“자, 잘못했네.”
“늦었네요. 일단 떨거지부터 처리하고, 담은 아저씨야. 형은 밖에 나가서 얘들 다 돌려보내.”
“지, 지원아!”
날 쳐다보는 홍찬이 형에게 알게 모르게 암시를 주자, 머뭇거리며 나간다.
“다들 이쪽으로 걸어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조금씩… 그래 그렇게.”
떨거지들이 걷는 속도에 맞춰 어둠의 암살자들을 인지했다. 그들까지 소파에 앉게 한 후 협회장을 쳐다봤다.
“거기서 이렇게 해달라고 하던가요? 자신들도 한 몫 잡게 리젠 클리어 끼워 달라고? 한번 끼면 앞으로도 계속 낄 수 있을 것 같아서?”
“… 그, 그렇네.”
“왜 자신들이 안 나서고, 아저씨가 온 거죠?”
“부탁 받았네. 자신들은 상대하기 껄끄럽다고.”
그렇겠지. 던전 클리어 때 그렇게 헤어졌는데, 이제 와서 무슨 낯으로 얼굴을 들이밀까? 더군다나 그들의 자존심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닐 테니.
그건 그렇다 치고, 이 아저씨는 날 어떻게 봤길래 이 따위로 나오는 거였지?
“혹시 제가 누군지 아세요?”
“대충은 아네. 제주지역 방위길드 지원 길드장 한지원. 소환술사에 정령술사. 소환 가능한 유닛은 줄럿과 드라칸 십여 개체에 마법사들이 없으면….”
“하아~ 아저씨. 혹시 사성에서 이번에 경매로 산 이데아 미러 영상 본적 없죠?”
“… 맞네.”
“TV나 인터넷은? 내가 그래도 국내에서는 꽤 먹어주는데?”
“언론보도는 대부분 부풀려지거나, 허황된 말이 많아서….”
“허….”
이러니깐 이 따위지. 도대체 금수저들이 뭐라고 했길래 이러는 건데?
“길드장님. 준비됐습니다.”
“어. 무기 처리하고, 눈 가리고 차에 실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대가리가 세로로 쪼개질 거야. 명심해.”
“크윽.”
“어, 어디로 데려가는 건가? 진정 협회와 법의 힘이 무섭지도 않단 말인가!”
“무섭기는 개뿔! 내가 더 무서워!”
바둥거리는 떨거지들을 포박하고, 진땀을 줄줄 흘리는 협회장을 전사 계열 길드원들이 에워싼 후 시청으로 이동했다.
잠시 후.
어설프게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시점에 부슬부슬 이슬비까지 내린다.
설정 좋고, 분위기도 좋다.
홍찬이 형이 어떤 식으로 얘기했는지는 모르지만, 한득이와 길수를 주축으로 팀장급 길드원들과 한바탕 연극 같지 않는 연극이 시작되었다.
“길드장님. 이번에도 거깁니까?”
“어.”
“괜찮겠습니까? 본 회 직원은 처음 아닙니까?”
“알게 뭐야. 던전 놀러갔다가 뒤졌다고 하면 되지. 미러는 챙겼지?”
“네.”
“그게 결정적인 증거니까, 잘 녹화해. 잘못하면 독박 쓴다.”
“알겠습니다.”
“읍~ 읍읍!”
“으읍….”
뒤에서 떨거지와 협회장의 입막음 소리가 들린다.
한득과 길수, 지혜와 미혜, 최은지와 김은희 등 팀장급 길드원들이 똘똘 뭉쳐 이동했기에 포박된 떨거지와 협회장은 일반인들 눈에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어둠의 암살자가 그들의 목에 날카로운 대검까지 걸쳐진 상황. 바둥거려봐야 모가지에 상처만 더할 뿐이다.
제주시청 6등급 기갑 던전 리젠 클리어 입장 5분 후.
우리가 운영하는 기갑 던전에 입장한 후 이데아 미러로 녹화를 시작하기 전에, 그들의 안대와 포박을 풀어주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긴 하지만, 조연의 연출에도 세세하게 신경 쓴다.
안대에 포박 당한 조연이 사라지면… 이상하잖아. 어차피 그럴 맘은 없다만.
“프롤브 소환! 수정체 생성! 게이트웨이 생성! 발업 코어, 드라칸 코어, 랜드 코어 생성! 셔틀 생산!”
프롤브를 소환해 셔틀 생산까지 순식간에 테크트리를 탔다. 넉넉하게 셔틀 3개를 생산한 후 멍~한 표정을 짓는 떨거지들과 협회장을 태워 멀티 쪽으로 향했다.
제주시청 6등급 기갑 던전 리젠 클리어 입장 25분 후.
“줄럿 전체 소환!”
[띠링! 줄럿(방어+공격 200%) 520개체를 소환합니다.]“쓸어버렷!”
첫 번째 멀티를 발견한 후 줄럿들을 소환한지 10분이 되기도 전에 멀티를 파괴하자, 그제야 협회장과 떨거지들의 입이 터졌다.
“세, 세상에!”
“말도 안돼!”
“주, 줄럿이 수, 수백 개체나!”
“… 크으음.”
벌써부터 그렇게 놀라면 쓰나.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한득에게 아까 얘기해둔 게 있다. 오늘은 떨거지들만 살필 것. 클리어는 나 혼자 진행한다.
제주시청 6등급 기갑 던전 리젠 클리어 입장 1시간 10분 후.
두 번째 멀티도 첫 번째와 비슷하게 파괴한 후 본진 앞으로 이동했다.
“주, 중첩 방어탑!”
“그럼 6등급 이상?”
“어떻게 6등급 이상 던전을 솔로잉….”
오호~ 떨거지들의 상황 설명이 다양해 좋다. 협회장을 흘끔 쳐다보니 무슨 상각을 하는 건지 몸을 부들부들 떤다. 노환인가?
“줄럿, 드라칸, 굼벵이 전차, 도르칸 전체 소환!”
[띠링! 줄럿(방어+공격 200%) 488개체를 소환합니다.] [띠링! 드라칸(방어+공격 200%) 363개체를 소환합니다.] [띠링! 굼벵이 전차 14개체를 소환합니다.] [띠링! 토르칸 17개체를 소환합니다.]셔틀 위에서 내려다보는 던전 바닥이 온통 하얀빛으로 물들어 간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나타난 수백의 유닛들.
줄럿을 제외한 나머지 유닛들은 처음 보는지라, 떨거지들이 놀라 경악성만 뱉는다.
그래도 일단은,
“넥서스만 제외하고 모두 파괴해!”
수백의 줄럿들과 드라칸이 중첩 방어탑을 향해 돌진했고, 토르칸과 굼벵이 전차가 그 뒤를 이었다.
제주시청 6등급 기갑 던전 리젠 클리어 입장 1시간 40분 후.
“저희는 미네랄이나 캐고 있겠습니다.”
“어야.”
한득이가 길수를 제외한 나머지 길드원들을 데리고 미네랄을 캐러 갔고, 떨거지 4인방과 협회장은 던전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상황.
셔틀에서 내린 이후로 계속 이 지랄이다.
가끔씩은 날 쳐다보거나 파괴된 넥서스를 쳐다본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줄럿들과 드라칸을 쳐다보기도 하고.
초점없는 눈빛으로 멍하니 던전 하늘을 쳐다보던 협회장이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걸어온다.
자신도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모양.
내가 왜 이런 상황을 보여줬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 거다.
“서울시청 3등급 바이오 던전 클리어 때도 이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