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9_1
3-3
서울시청 3등급 바이오 던전 리젠 클리어 입장 2시간 40분 후.
30분 가량 예전에 처음 발견한 멀티 있는 쪽으로 계속 이동하는데,
“전방 1,500m! 멀티 발견!”
“멀티 발견! 1시 방향! 거리 1.5km.”
앞서 있던 셔틀에서 원들의 외침이 들려오자, 난 셔틀 속도를 천천히 줄이고 진형을 가로로 변경했다.
“마법사 마법 발현!”
“이데아 여신의 분노! 불의 벽! … 레디!”
“이데아 여신의 눈물! 얼음의 벽! … 레디!”
“이데아 여신의 한탄! 슬픔의 이슬! … 레디!”
“이데아 여신의… 레디!”
사방에서 마법주문 완료 보고가 들려오고, 전사들은 대검을 꺼내든다.
“줄럿, 드라칸, 굼벵이 전차, 번개 주술사, 토르칸 전체 소환!”
[띠링! 줄럿(방어+공격 200%,) 443개체를 소환합니다.] [띠링! 드라칸(방어+공격 200%) 320개체를 소환합니다.] [띠링! 굼벵이 전차 12개체를 소환합니다.] [띠링! 번개 주술사 24개체를…]난 하얀빛과 함께 던전 바닥에 소환된 수백의 유닛들을 보며 명령을 내렸다.
“쓸어버려!”
내가 명령을 내리자 홍찬이 형이 말을 잇는다.
“마법사 마법 공격! 전사들 대기!”
“이데아 여신의 분노! 불의 벽!”
“이데아 여신의 한탄! 슬픔의 이슬!”
‘콰아앙… 콰앙.’
‘쿠아앙… 쿠와아앙.’
‘쿠워워.’
‘키에엑, 키엑.’
역시나 저번과 마찬가지.
멀티에 있던 수백의 저굴링과, 히드라, 락커, 울트라들이 달려드는 내 소환 유닛들과 드잡이를 벌이지만, 셔틀 위에서 공격하는 마법사의 마법공격에는 속수무책. 더군다나 강화된 줄럿들과 드라칸의 수에서도 차이가 난다.
번개 주술사의 눈이 부실만큼의 파란빛의 번개공격과 굼벵이 전차의 대형 포탄, 수백의 드라칸들이 내뿜는 캐논포, 셔틀 위에서 아래로 쏟아내는 마법사의 마법공격.
수십 개체들의 던전 유닛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다른 곳으로 도망쳤고, 수백의 유닛들이 던전 바닥에 제 몸통을 내려놓는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3등급의 성체 타워가 굼벵이 전차의 포탄에 파괴되자 난 셔틀을 착륙시켰다.
몇 개체의 저굴링들이 달려들었지만, 전사들의 대검에 몸통이 조각나고, 지금까지 한 일이 없던 그들이 알아서 미네랄을 캐기 시작한다.
난 잠시 길드원들을 쳐다보다 성체 타워 뒤쪽으로 이동해 가스를 캐기 시작했다.
[띠링! 가스채광소가 생성되었습니다. 총량 535.964L]프롤브를 100개체를 더 소환해 한창 가스를 캐고 있는데,
“주, 주군! 부디 저에게도 아량을 베풀어 주소서!”
싸이가 지랄한다.
“드란 하나 있는 거 가스채광소 만들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하려고?”
“능력치는 37입니다.”
오호. 그 사이에 그렇게나 올렸어? 길수가 버스 잘 태워줬네.
“일단 내가 최대치까지 흡수할 때니까, 그 이후에 채광소 지어서 흡수해봐.”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주군.”
100개체의 프롤브들이 물어오는 가스조각을 최대치까지 흡수한 후 싸이를 남겨두고 자리를 떴다. 녀석도 생각이란 걸 해봐야 할 테니까.
길드원 대부분이 미네랄 캐는데 정신이 팔려 있고, 몇몇은 그나마 멀쩡한 유닛 사체를 인벤토리에 저장하고 있었다.
길드원들 중 한명이 매캐한 연기를 내고 있는 울트라 사체에 다가가 막 손을 뻗으려고… 울트라? 울트라!
“거기, 잠시 대기! 홍찬이 형! 밥 먹고 하자!”
내 외침에 길드원들이 다들 나만 쳐다본다.
왜? 금강산도 식후경이잖아!
전사들이 달라붙어 거대한 울트라 사체를 조각낸다. 대가리와 커다란 뿔을 잘라내고 각 부위별로 뼈와 살을 분리한다. 몇몇은 사체에 달라붙어 울트라를 손질하면, 몇몇은 거대한 솥에 물을 부어 불을 피우고, 포션을 일정 비율로 섞는다.
삶든지, 굽든지, 생으로 먹든지 간에, 타입별로 즐기기 위해선 일단 사체의 독성을 제거해야만 한다.
수십 명의 전사들이 달라붙었기에 3개체의 울트라 사체는 순식간에 푸짐한 저녁식사 메뉴가 되었고, 만찬이 이어졌다.
“세, 세상에! 이런 맛이!”
머뭇거리며 처음으로 울트라 사체를 먹은 싸이의 외침이 터져 나오고,
“주, 주군! 능, 능력치가 올랐습니다!”
10등급의 그의 능력치가 소폭 상승했다.
“많이 먹어라.”
“여, 영광입니다. 주군! 크으윽.”
서울시청 3등급 바이오 던전 리젠 클리어 입장 4시간 30분 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시 멀티 미네랄을 캐기 시작했다.
울트라 사체를 처묵처묵 하던 도중 몇몇의 길드원들이 조금씩은 레벨 가중치가 증가했다고 했고, 거기에 한득도 포함되었다. 볼록한 배를 만지면서 조만간 레벨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는 걸 보니 각성자 5등급 초반에 들 것 같다.
전사 계열 길드원들을 중심으로 미네랄 캐는 것을 지켜보다가 내 상태를 살폈다. 소모된 유닛들을 최대한도로 생산하기 위함이다.
“상태창!”
[띠링! 본인의 상태를 확인합니다.] [아트팩터/전사: 한지원(Lv-30)국적/소속: 대한민국/지원 파티,
나이: 40, 신장/체중: 180cm/77kg,
민첩: 43, 지구력: 36, 힘: 37,
체력: 38, 지능: 36, 행운: 34,
인챈트: 34, 인벤토리: 9/10
(줄럿(방어+공격 200%, 317),
드라칸(방어+공격 200%, 257),
어둠의 암살자(4), 굼벵이 전차(5),
번개 주술사(18), 토르칸(16),
타락한 전사(1), 드란(101)
발업 저굴링(공격 100%, 388))
건물: 11
(포스, 배터리, 게이트웨이, 드라칸 코어,
가스채광소, 발업 코어, 랜드 코어, 스타게이트,
블랙 코어, 라이트 코어, 랜드 스포 코어),
수정체: 12/300, 개인 보유 능력치: 0,
소환 대상 능력치: 1,601(프롤브),
보유 아트팩트:
미네랄 조각(흡수): 1020,
가스 조각(흡수): 1020,
이데아 주머니(흡수): 1,
이데아 송곳(흡수): 2]
음, 멀티를 파괴하면서 줄럿들과 드라칸들을 꽤 잃었다. 줄럿이야 미네랄만 있으면 생산할 수 있으니 상관없고, 나머지는 가스 조각을 소비해야 하는데, 과연 어떤 유닛이 좋을까?
바이오 던전 유닛 특성상 드라칸은 움직임이 굼떠 발업 저굴링에 약한 것 같고, 줄럿은 업그레이드 했다고는 하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다. 굼벵이 전차도 이동속도가 느려 별로고.
그럼, 역시나 번개주술사와 토르칸으로 가야겠지? 번개주술사의 광역 번개 공격 후 토르칸과 수백의 줄럿들이 달려들면, 꽤 효과가 좋을 것이다.
어차피, 싸이도 멀티 가스를 다 흡수하지 못한 것 같으니, 남아있는 가스는 모조리 고급 유닛 생산에 투자해야겠다.
잠시 고민을 마치고 난 프롤브 한 개체를 소환시켜 녀석의 더듬이에 손을 가져갔다.
서울시청 3등급 바이오 던전 리젠 클리어 입장 5시간 40분 후.
어찌된 게 멀티를 파괴하는 것보다 미네랄 캐는 것과 던전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더 걸린다. 그만큼 3등급 던전은 넓기도 하고, 클리어 보상 미네랄이 많다는 뜻.
두둑해진 인벤토리를 뒤로하고 셔틀에 탑승해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서울시청 3등급 바이오 던전 리젠 클리어 입장 7시간 50분 후.
2시간 이상을 더 이동하며, 멀티를 찾아봤지만, 헛수고.
중간에 멍텅구리와 와이번 몇 개체를 만났을 뿐이다. 아, 물론 지상에서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저굴링들과 히드라는 별개다.
울트라였다면 잡았을 텐데, 아쉽다.
“던전이 점점 어두워지는데, 야영할 곳을 찾는 게 어떻겠습니까?”
“응.”
홍찬이 형 의견에 주변을 살폈다.
거대한 나무들이 있는 곳이라면, 깊지 않은 내천이라도 있으리라.
마침 멀지않은 곳에 약간의 둔덕과 50m가 넘어가는 거대한 나무들이 보인다.
난 셔틀을 인지하며, 그쪽으로 이동했다.
잠시 후.
“A3 상황!”
“전방에 각성자 발견! 40여명 정도 됩니다!”
“응? 각성자? 아!”
앞장 선 정찰 셔틀에서 길드원들의 외침이 들린다.
클리어하겠다고 들어온 금수저 일행인가? 그런데 왜 40여명만 떨어져 있는 거지?
셔틀이 다가오자 그들도 우리를 발견한 눈치다. 손에 들고 있던 대검과 도끼 등을 내려놓고… 응? 나무를 베고 있었어? 왜? 장작불 피울 것도 아니고, 이 거대한 나무를 왜 베는 건데?
30m 정도 접근해서 천천히 셔틀을 착륙시키자, 외관(外觀)이 형편없는 그들이 다가온다.
“저, 지원 길드죠? 길드장님 좀 뵐 수 있겠습니까?”
“날 아나?”
경계하던 전사들을 헤집고 앞으로 나서자, 홍찬이 형과 길수가 뒤따른다.
“네. 저는 LC 길드 전사 3팀 5등급 김문수입니다. 이곳 처음 클리어 진행할 때 H1B4 지점에서 포위된 저희를 구해주셔서 알고 있습니다.”
“H1B4? 그게 뭔데?”
“예? 대략적인 던전 위치입니다만?”
“그래? 난 그런 거 몰라. 날아다니니 알 필요가 없지. 그건 그렇고 여기서 왜 나무를 베고 있었지?”
“아~ 네. 나무 베는 건 이제 그만 뒀습니다만, 아닙니다. 처음부터 말씀드리자면 저희와 같이 클리어 진행하러 들어온 사성에서 세운 계획인데요. 원래는….”
그들의 대표격으로 나온 LC 길드 전사 5등급 김문수가 내 물음에 착한 학생처럼 상황설명을 이어간다.
잠시 후.
“허… 그게 가능해?”
“던전 입구에서 조그만 나무로 테스트해보니까 되더라구요. 그래서 인근을 돌며 거대한 나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멀티 찾는 정찰도 겸해야 하니까요. 처음에는 본진이 천천히 이동하면서 정찰조를 운영했지만, 하루가 지나자 정찰조가 두 배로 늘어났고, 그 덕분에 멀티 하나 발견할 수 있었는데, 주변에 큰 나무가 없어서 제가 속한 정찰조가 이쪽으로….”
“여기서 2시간 거리, 아니지. 우린 날아서 왔으니까, 음… 대충 10시간, 아니, 아 모르겠네. 여하튼, 저쪽으로 반나절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멀티를 말하는 건가?”
“예? 예. 맞습니다.”
“그거 우리가 파괴했는데? 각성자들은 보이지도 않더구만. 무슨 소리야?”
“예? 없었다구요? 분명 500명 정도가 있어야….”
“500? 왜 500이야. 천명 넘게 들어온 거 아냐?”
“아, 멀티를 찾지 못하니까, 본진을 두 개로 나눠서….”
“역시 대가리에 똥만 찬 놈들이네. 던전에서 본진을 왜 갈라. 병신새끼들.”
“저… 그런데, 죄송합니다만 먹을 게 없을까요? 저희가 가진 식량이 그제부터 바닥나서….”
“한득아.”
“넵. 길드장님.”
“비상식량 몇 개 풀어줘라.”
“알겠습니다.”
클리어 진행 상황을 설명해 준 LC 길드 전사 5등급 김문수 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았다.
첫째, 정신계열 각성자, 그것도 염동력 각성자들을 대거 모집해서, 나무로 만든 뗏목 비슷한 것에 마법사들을 태운다. 그리고 그걸 공중에 띄워 멀티를 파괴한다는 계획이었다.
아마도 내가 셔틀을 타고 이동하거나, 멀티를 파괴하는 걸 흉내 낸 것 같은데, 병신 헛짓거리다. 그게 그렇게 쉽게 될까?
던전 입구에서 테스트해봤다고는 하지만, 정신계열 각성자들이 전부다 4등급이라도 무리다.
뗏목의 무게와 몇 명이나 태울 수 있는지는 몰라도 마법사의 몸무게를 그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잠깐도 아니고, 장시간을? 힐러와 성직자들의 힐과 축복을 받는다고 해도, 멀티를 파괴할 정도의 마법공격이 이어지려면, 수십 명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둘째, 원활한 정찰을 위해 본진을 나눴다는데, 이 역시 미친짓이다.
바이오 던전은 저굴링을 비롯해 던전 유닛이 떼로 다닌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개체의 저굴링과 히드라가 뭉쳐 다니는데, 각성자들을 나눠?
상황을 보아하니, 정신계열 각성자들과 마법사들을 위주로 클리어 입장한 것 같은데, 전사 계열 각성자가 절대 부족하다면, 몰살당하기 딱 좋은 방법이다.
아마도 정찰조만 전사들로 운영했겠지. 지금처럼.
마법사들의 마법공격이 강력하고, 화려해 보여도, 신체 특성이 우월한 전사들이 반드시 필요한 법인데, 그 가장 중요한 던전 클리어 룰 자체를 깨는 방식이라니!
지나가는 개새끼가 형님 하겠다.
셋째, 정찰조를 따로 운영해서는 더더욱 안됐다. 시간이 걸려도 본진과 같이 움직였어야지!
정찰에 나선 전사들의 정보를 습득, 처리하려면 그들의 복귀를 기다려야하기에 본진 이동 시간이 그만큼 늦어질 것이다. 더군다나 전사들로만 구성된 정찰이 사상자 없이 무사히 이뤄질 거라고 생각한 놈은 도대체가 누군데?
대가리를 쪼개서 안에 뭐가 들었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심정이다.
뭐, 더 많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지만, 내가 지금 그걸 생각할 이유가 없다.
살던, 죽던, 내 알 바가 아니다. 지들 목숨, 지들이 챙겨야지 누가 챙겨.
혹시 몰라, 내 앞에서 다 죽어가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면 조금은 도와줄 용의(用意)도 있기 있다만. 그건 나중에 일이고. 일단은,
“오늘은 이곳에 숙영지를 마련한다. 진행해.”
“각 셔틀팀별로 천막을 세운다. 1팀부터 10팀까지는 아래쪽으로, 11팀부터는 이쪽으로!”
“전사들은 천막치고, 마법사들은 불을 피워!”
“힐러와 성직자들은 내천에서 물 길어와!”
내 명령에 팀장급들이 길드원들에게 세부 지침을 하달한다.
“지원아. 잠시만.”
홍찬이 형이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는지, 자리를 피해 내천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된다. 넌 되냐?”
“미친 짓거리지 뭐. 자살하는 방법도 여러가지야.”
“아까, 그 LC 길드 소속 각성자가 말한 거. 뭔가 조금 이상하지 않던? 멀티 근처에 있던 500명.”
“어. 그건 이상하긴 하더라. 500명이나 있었다면 무슨 흔적이라도 남아야 하는데. 지나치며 봐도 그런 게 전혀 없었거든.”
“우리가 놓친 걸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동한 걸까? 정찰조는 내버려두고? 그것도 아니면 던전 유닛의 습격?”
“이동한 건 말이 안되지. 40여명의 전사를 일부러 버려? 그건 아냐. 그렇다고 다수의 던전 유닛 습격이라면 전투 흔적이라도 조금은 남아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고. 우리가 놓쳤을까? 하, 웃기는 상황이네.”
“일단은 100% 믿지 마라.”
“믿어달라고 해도 못 믿어. 아니 믿기지도 않고.”
“어. 이거 상기 시켜주려고 말한 건데, 알고 있으니 됐다. 그건 그렇고, 만약 먼저 입장한 각성자 본진 찾으면 어떻게 할래? 데리고 나가게?”
“셔틀 더 만들지도 못하고 만들 생각도 없어. 저번에 그렇게 당해놓고도 또 살려줘?”
“그래도….”
“상황 보면서 판단할게. 금수저들이 문제지 그 밑에 있는 각성자들은 아니잖아.”
“그래. 잘 생각했다. 각성자들이 뭔 잘못이냐. 이끄는 놈이 문제지.”
“나도 이끄는 놈이야.”
“이끌긴! 혼자 다 해먹는 놈이지.”
“크큭. 내가 잘나긴 좀 잘났지. 형도 인정하네?”
“즐~.”
홍찬이 형이 한마디하고 숙영지로 걸어간다.
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땡큐, 홍찬이 형. 역시 대기업 소속이었던지라, 일처리가 확실하긴 하네.’
숙영지 주변에 수십의 방어탑을 건설하고 수백의 줄럿들을 소환해 사주경계를 하도록 시켰다.
셔틀팀별로 불침번을 정하고, 피곤한 몸을 뉘였지만, 한 시간가량 간이침대에서 바둥거리다 밖으로 나왔다. 잠이 오질 안는다.
선선한 바람과 함께 칠흑같이 컴컴한 던전. 모닥불만이 우리가 여기에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불침번을 서던 길드원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오려고 하자, 하던 일 하라고 손짓을 해줬다.
타닥타닥 거리며 불똥을 뱉어내는 모닥불 앞에 앉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정말 내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일을 못 본 척 할 수 있을까?
금수저들도 도와달라고 고개 숙여 부탁하면, 내가 거절할 수 있을까?
피눈물을 흘리며 아우성치는 그들을 내가 정말 외면할 수 있을까?
난, 나만 아는 이기적인 놈이었던가? 아니면 성인군자라도 되어야 하는 건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답답한 마음에 절로 고개를 젓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온다.
“잠이 안 오세요?”
“오빠. 뭐해?”
미혜와 지혜다.
“너희들은 안자고 왜 나왔어? 안 피곤해?”
“조금. 그래도 오빠만큼은 아니지. 근데, 무슨 생각하길래 그렇게 분위기를 잡아?”
“뭔 분위기. 나 원래가 분위기 있는 남자야. 몰랐어?”
“알고 있었지. 헤헤. 근데 오빠.”
“왜?”
간만에 지혜가 애교를 부리며, 한마디 한다.
“고민 있으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우리한테 얘기해도 돼.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던전 클리어하면서 서로 등을 맡긴 사이잖아. 오빠 혼자 고민한다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 같은 팀이면 같이 고민하는 게 맞는 거 같아.”
“그래요. 저희가 도움이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길드장님이 저흴 믿는다면, 혼자 아파하지 마시고 같이 해요.”
“…….”
붉은 불빛이 일렁이며, 지혜와 미혜 얼굴을 가렸다 놓아준다.
먹먹한 무언가가 가슴에 들어와 가라앉는다. 괜스레 코끝이 간질거린다.
“… 그래. 알겠다. 앞으로 나 혼자 결정하지 못하는 일들은 함께 하자.”
“네~.”
“헤헤. 오빠 오늘따라 괜히 더 멋있어 보인다. 후후.”
저쪽 천막 입구에서 홍찬이 형, 한득, 길수 머리가 엉켜, 안으로 쑥 들어간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다음날, 서울시청 3등급 바이오 던전 리젠 클리어 입장 22시간 30분 후.
아침을 대충 먹고 천막을 철수하는데, LC 길드 김문수와 몇 명이 날 찾아왔다.
“길드장님. 저희도 데리고 가 주십시오.”
못 데리고 갈 이유는 없다. 셔틀도 3대 정도 여유분이 있고, 40명 정도라면 셔틀당 2명씩만 더 태우면 되니까. 하지만 한번 도와주기 시작하면, 다음에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들 한다. 난 그게 싫다.
“그대로 던전 입구까지 가지? 입구에 내가 방어탑 건설해 놨으니, 식량하고 식수만 챙겨서 이동하면 되지 않나?”
“기, 길드장님. 저희끼리 여기서 던전 입구까지 가려다간 전원 몰살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알지. 잘~ 알지. 중간중간에 수백의 저굴링과 히드라가 있고, 가끔씩은 울트라와 와이번도 있으니. 뭐 숨어 있는 락커까지 너흴 잡아먹겠다고 덤벼들겠지.
마법사나 힐러, 성직자 계열 각성자가 없는 전사 40명이 반나절 거리, 아니지 하루 이상 3등급 던전을 사상자 없이 돌아다닌다? 울트라가 풀 뜯어 먹는 소리다.
“우리도 인원 풀이야, 공간도 없고. 다른 길드원들까지 챙겨서 클리어하기엔 부담돼. 왜 이래? 아마추어 같이.”
“대가를 지급하겠습니다.”
“대가? 무슨 대가? 너희들 목숨값?”
“네.”
“음, 그래? 읊어봐.”
“던전 클리어가 완료되거나 무사히 던전을 나갈 수 있다면, 두당 2억 원씩 지급토록 하겠습니다.”
“70억.”
“네에~?”
“넌 5등급이라며? 70억도 없어? 저번 바이오 유닛 사체 경매 때 울트라 사체가 마리당 65억에 팔렸어. 니 목숨값이 울트라 사체값보다 싸면 쓰나. 5억은 밥값하고, 셔틀 사용비. 이 정도면 꽤나 저렴하구만.”
“노, 농담이시죠?”
“내가 지금 농담하는 것처럼 보여? 그럼 할 수 없고. 한득아.”
“네. 길드장님.”
“얘들 출발 준비시켜.”
“네엡~.”
내 말에 한득이가 천막을 나가며, 큰 소리로 외친다.
“5분 후 출발한다. 각자 짐 챙겨서 해당 셔틀 앞에서 대기!”
“5분 후 출발! 셔틀 앞 대기!”
“출발 5분전!”
길드원들이 복명복창이 연이어 들려오고, LC 길드 소속 각성자들이 잠시만 기달려 달라는 말과 함께 서둘러 천막을 빠져나간다. 아마도 다른 이들과 논의하기 위함이겠지.
두당 70억, 70억이라… 음, 어쩌면 다른 각성자들도.
서울시청 3등급 바이오 던전 리젠 클리어 입장 23시간 10분 후.
몇몇은 수긍했고, 몇몇은 깎아달라고 애원했으며, 몇몇은 고개를 저었다.
돈이 없는 이들은 7등급 각성자들. 깎아달라는 이들은 6등급, 그리고 말없이 굳은 표정으로 사인한 이들은 5등급이었다.
나름 형평성을 적용해 7등급은 평생, 6등급은 3년, 5등급은 1년의 유예기간, 즉 할부기간을 주자, 전원 수긍했다. 계약서를 작성해 사인 후 한 부씩 나누어가졌다.
물론 이 계약은 던전 클리어가 끝나고 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누구는 정말로 돈을 입금할 거고, 누구는 모른 척 하겠지. 그래도 상관없다.
국내에서 각성자로 활동하지 않을 거면, 그래도 된다. 누가 이기나 한번 보자고.
서울시청 3등급 바이오 던전 리젠 클리어 입장 1일 2시간 40분 후.
3개 여분의 셔틀과 해당 팀별로 한명씩 LC 길드 전사들을 추가로 태우고, 이동하길 2시간이 넘었다.
3등급 던전이 넓긴 진짜 넓다. 어제 이동한 거리와 오늘 이동한 거리까지 합치면 본진을 발견할 때도 됐는데 말이야.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셔틀이 지금도 신기한지 앉아서 여기저기 만져보는 LC 길드원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앞에서 길드원들의 외침이 터져 나온다.
“전방 2시, A1 상황!”
“수백의 각성자 발견! 전투 상황! 거리 2km!”
길드원들이 가리킨 방향을 유심히 살펴보자, 3~400명의 각성자들이 둔덕 위에 포위된 채 주변의 발업 저굴링과 히드라, 울트라들에게 공격당하고 있었다. 멍청한 것들.
처음 들어온 각성자들이겠지? 어째 재네들은 항상 똑같냐? 그렇게 당하고도 또 똑같은 상황에 놓여있었다.
셔틀 이동속도를 약간 늦추고, 천천히 다가가며 곰곰이 생각해 봤다.
클리어 입장한 전사들의 수가 부족하니 몸빵이 안되고, 몸빵이 안되니 마법사가 수월하게 공격하지 못하고, 마법이 안되니 힐러나 성직자가 뭘 하겠냐? 마력 낭비, 전력 낭비지.
중간중간에 신기하게도 몇몇의 마법사들이 공중을 날면서, 화염구를 던져 보지만 물량 앞에 장사((壯士) 없다.
저 날아다니는 마법사들은 정신계열 각성자들이 서포터… 응? 금방 세 명의 각성자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뗏목이나 배 같은 것을 만들어서 수십의 마법사는 띄우기 어려우니까, 그냥 마법사를 띄운 거야? 참나, 웃기지도 않는다.
“어떡할까요?”
옆에서 홍찬이 형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길 가다 어린아이가 물에 빠졌으면 일단 구하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 일단은 지원한다. 마법사 마력발현!”
“마법사 마력발현!”
“마법사들 마력발현 후 대기!”
“이데아 여신의 분노! 불의 벽! … 레디!”
“이데아 여신의 눈물! 얼음의 벽! … 레디!”
“이데아 여신의 한탄! 슬픔의 이슬! … 레디!”
“이데아 여신의… 레디!”
마법사들에게 마법 공격을 준비시키고, 200m 앞까지 다가갔다.
그들도 우릴 발견했는지 서두르지 않고 대형을 유지한다. 그래봐야 다 떨어진 썩은 동아줄이지만.
“대기! 줄럿 전체 소환!”
[띠링! 줄럿(방어+공격 200%) 500개체를 소환합니다.]셔틀을 상공에 멈추게 한 후 줄럿들을 전체 소환시켰다.
하얀빛과 함께 나타난 500개체의 업그레이드 줄럿들. 난 줄럿들을 인지하며 이상한 명령을 내렸다.
“울트라만 붙들고 있어. 출발!”
500개체의 줄럿들이 둔덕 위로 쉼 없이 뛰어가기 시작하자, 나 역시 줄럿들의 속도에 맞춰 셔틀을 앞으로 이동시켰다.
“울트라만 공격한다. 마법사 마법 공격!”
“타깃, 울트라! 울트라다! 마법 공격!”
“일점사! 줄럿이 잡은 울트라만 일점사!”
‘콰과광… 콰앙.’
‘쿠아앙… 퍼어엉.’
‘음머어. 움머~.’
한꺼번에 20개의 셔틀에서 수십 개의 화염구와 얼음 덩어리가 날아가 울트라에 부딪혀 폭발한다. 그 이후에는 자유 난사(亂射). 줄럿들이 붙든 울트라를 향해 공중에서 던전 바닥으로 마법 공격이 쏟아진다.
울트라를 향해 날아간 파이어 마법이나 아이스 마법에 주변의 저굴링이나 히드라 역시 휩쓸려 사체가 터져나간다.
그 광경에 금수저들과 함께 입장한 각성자들도 힘이 나는지 함께 응대한다.
5분 정도 마법공격을 퍼부었을까? 역시나 움직이지 않는 타깃은 누워서 떡 먹기… 는 아니고. 누워서 떡 먹다가 체한다.
여하튼,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십여 개체의 울트라가 처리되자, 길드원들이 다음 명령을 기다린다.
“B1 클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