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Art Factor RAW novel - Chapter 9_2
“클리어 B1. 오더 대기!”
“대기! 울트라 처리 다 됐습니다. 나머지도 처리할까요?”
“C2, 후퇴.”
“네?”
“C2! 물러나서 대기!”
“네, 넵. 알겠습니다. 마법공격 중지. C2! 물러난다. 상황 주시!”
“상황 주시! C2! 사주경계!”
길드원들에게 상황을 지시하고, 셔틀을 인지해 다시 100m 밖으로 물러나기 시작하자, 둔덕 위에서 이상한 고함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한편의 처절한 영화를 감상했다. 아니, 중간에 위험한 상황이 있어 같이 영화를 찍었다.
대체 왜 300명이 넘는 각성자들이 1,000여 개체의 발업 저굴링과 300개체의 히드라를 상대하지 못하는 건데?
아무리 마력이 딸린 마법사들과 힐러, 성직자들이라고는 하지만, 어이가 없다. 아니면, 그만큼 정신계열 각성자의 수가 많은 건가?
처음에 우리가 도와줄 때는 한없이 기뻐하던 이들이 한 번의 물러남과 두 번의 도움에는 이를 악무는 이들도 있었다.
도와줄 거면 확실히 도와주던가, 아니면 상관하지 말라는 이도 있었다. 그래 상관치 않아 주마.
그래서 한 번의 도움을 끝으로 물러나 구경했다. 슬쩍 셔틀 뒤에서 소모된 줄럿들은 대신해 신규 셔틀을 10여개를 더 생산하기도 했고.
중간에 함께 이동한 LC 길드 전사들이 눈치를 보더니만, 끝내는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자신들 몇 명이 도와준다고 해서 지금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판단이겠지. 아니면, 지 모가지가 더 중요했거나.
여하튼, 영화를 다 감상한 후 널브러져 있는 그들에게 셔틀을 타고 다가가 약간은 큰 소리로 외쳤다.
“던전 나가는데 두당 70억! 선착순 100명!”
약간의 웅성거림이 점차 커지며 파도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그게 무슨 말인가!”
누구였드라? 금수저는 금수저였는데? 기억이 안난다.
“알 필요 없고, 없으면 패스. 알아서들 살아 남아봐. 우린 간다~.”
내가 셔틀을 인지해 약간의 움직임이 보이자마자 누군가의 외침이 들린다.
“저, 저요! 저 신청합니다. 신청하는 거 맞습니까?”
“오~ 환영합니다. 역시 목숨은 하나뿐이죠. 70억이면 껌 값이죠. 하나 내려줄 테니 거기 타세요.”
난 신규로 생산한 여분의 셔틀을 던전 바닥으로 착륙시키기 시작했다.
“저, 저도 신청합니다.”
“저도요!”
“거기! 너희들 어느 소속이야! 길드에서 제명당하고 싶어!”
“하라면 하라고 그래! 시팔! 여기서 뒤지기는 싫다고! 지금까지 벌써 얼마나 죽어났는데! 난 나갈래!”
“나도! 사성, LC, 질풍새끼들. 다 한통속이야! 내 나가기만 하면, 싹 다 까발릴 거야! 개새끼들.”
성큼성큼 셔틀로 다가오는 수십 명의 각성자들.
난 여분의 셔틀들을 다 착륙시키고 몇 명이나 탑승 하려는지 헤아리고 있는데, 어? 저 개새끼가!
“어둠의 암살자 전체 소환!”
[띠링! 어둠의 암살자 4개체를 소환합니다.]50대 초반의 대머리. 이 새끼가 내 손님한테 무슨 짓이야!
난 어둠의 암살자를 대머리 앞, 뒤로 소환시킨 후 날카로운 기다란 검이 그의 목에 걸쳐지자 큰 소리로 물었다.
“함부로 움직이지 마. 가는 사람 왜 막는 거지? 지금 뒤통수치려고 한 거야? P.K?”
“크으윽. 놈!”
하, 어찌 레퍼토리가 항상 똑같냐? 근데 어디 금수저… 아, 질풍 길드장.
“아~. 질풍? 됐고, 가겠다는 사람을 니가 왜 잡아?”
“어린놈의 새끼가!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왜? 난 손님 보호 차원으로 경계한 거야. 니가 먼저 뒤통수치려고 했잖아. 안그래?”
“던전 클리어 같이 진행하기로 협약됐다. 거기에 너희가 끼어들 이유가 없어!”
“그래? 그래도 클리어를 포기하면, 무리에서 이탈할 수 있을 텐데? 안 그렇습니까?”
난 질풍 길드장을 내버려두고 셔틀 쪽으로 다가온 수십 명의 각성자들에게 물었다.
“맞습니다. 제가 클리어 포기하겠다는데, 질풍이 뭔 상관입니까!”
“Top길드는 던전 클리어 포기합니다. 다들 모여!”
“Ensoli 역시 마찬가지. 다들 이리로 와!”
몇몇 중견길드 길드장들이 클리어 포기 선언과 함께 셔틀 쪽으로 다가오자, 각성자들이 거의 150여명을 넘어간다. 음, 이러면 셔틀이 모자랄 수 있겠는데.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인가! 이러고도 국내 던전 클리어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 딴 생각 말고 자리 지켜!”
“그러니까 처음부터 전사들 투입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지금 이게 뭡니까!”
“정신계열 각성자들은 클리어에 하등 도움이 안된다구요. 바이오 던전에 왜 전사 비율이 이렇게 적은 겁니까! 정찰조 운영은 본진과 같이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입장하기 전에 동의 했잖아! 이제 와서 이러면 클리어 진행 안 할 거야!”
“물 건너갔습니다. 지금은 살아서 돌아가는 게 더 급해요. 어차피 던전 터진 거 아닙니까!”
“차라리 지원 길드로 붙겠습니다. 신경 끄시죠.”
“보상 못 받아도 앞으로는 지원 길드와 함께 할 겁니다. 두 번의 클리어에 사상자가 벌써 몇 명입니까! 이게 질풍이나 사성, LC에서 주도하는 방식인가요? 정말 실망입니다!”
“하이 리스트 하이 리턴, 몰라? 3등급 클리어가 장난이냐고! 당연히 희생이 따르는 법이지!”
어쭈? 이건 지들끼리 판 깨고 자빠졌네. 그건 그렇고, 나한테 붙는다고?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어이. 대머리 아저씨.”
“놈!”
“보이는 대로 말했을 뿐이야, 근데 아까 뭐라고 했어? 당연히 희생이 따른다고? 놀고 있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마찬가지. 우린 사상자 단 한명도 없어.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고. 사상자가 난다는 건 언제든지 본인도 그럴 수 있단 얘기야. 이해해?”
“자신의 레벨 능력치가 부족해서 그런 걸, 왜 나한테 덮어씌우는 거지? 그럼 국내의 모든 던전에서 사망한 각성자들이 다 내 책임이란 말인가! 말도 안되는 개소리!”
“하, 네이~ 니 좆 꼴리는 데로 사세요.”
답이 없다, 답이. 일단 대머리 아저씨는 신경 끄고,
“거기 길드장님들과 각성자분들은 일단 12명씩 팀 구성하시고, 한득아.”
“넵. 길드장님.”
“계약서 준비해. 그리고 길수.”
“예.”
“울트라 사체 챙겨라.”
“알겠습니다.”
일단 셔틀을 전부 착륙시켜 길드원들에게 한득과 길수를 도와주라고 했다.
한득이와 길드원 몇 명이 A4용지를 중견길드원들과 각성자들에게 나누어주고, 길수와 다른 이들은 울트라 사체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려 하는데,
“거기 울트라는 우리 몫이야!”
‘지랄.’
“분명 우리가 먼저 상대하고 있었는데, 너희가 가로챈 거잖아!”
‘얼씨구?’
금수저 밑의 작은 금수저 몇 명이 태클을 걸어오자, 난 줄럿들을 인지해 울트라 사체 주변으로 모이게 했다.
“너희도 양심이 있으면, 누가 처리했는지 알 텐데? 꼭 내가 갖겠다는 건 아냐. 가질래?”
수백의 줄럿들을 나누어 울트라 사체 앞에 대기하고 있고, 우리 쪽 길드원들과 150여명의 중견길드 각성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
태클을 걸던 몇몇이 뻘쭘함에 입을 다문다. 뒤에선 대머리 아저씨가 얼굴이 홍시가 되어 궁시렁거리고 있고.
약간의 시비 끝에 울트라 사체를 다 수거한 후 신규 셔틀과 여유분의 셔틀까지 꽉꽉 채워서 각성자들을 탑승시켰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무런 말없이, 너희들이 뒤지든 말든, 상관없이 이동했다.
공중으로 떠오르는 셔틀을 멍하니 쳐다보는 금수저와 그의 소속들. 몇몇은 부러운 눈빛으로, 몇몇은 제발 자신도 데려가 달라는 눈빛을 보이긴 했지만, 막상 입을 열지 않으니 내가 알 수가 있나.
자신의 모가지는 본인 스스로가 챙기는 거다.
미인도 용기 있는 자만이 얻을 수 있… 기는 개뿔! 돈만 많고 잘생기면 된다.
잠시 후.
대략 20분 정도 이동한 후 셔틀을 착륙시켜 중견길드원들과 신규 각성자들을 모이게 했다.
아까는 그들의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그 장소에 있는 것 자체가 귀찮아서 넘어갔지만 확실히 해야 할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물론 부상자들도 치료해야 하고.
심각한 부상자들은 지들이 알아서 응급처치 했다곤 하지만, 힐러와 성직자들의 마력이 딸린 상황.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식사도 하고, 계약서도 정확하게 쓰기 위함이다.
서울시청 3등급 바이오 던전 리젠 클리어 입장 1일 5시간 10분 후.
“지원 길드라면 저희도 클리어 진행하는데 동참하겠습니다.”
“저희도요.”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냥 구경이나 하세요.”
“아닙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더군다나 저희 길드인원이 57명이라, 던전 나가면 400억 가까이 드려야하니 최소 자신의 몫은 해야죠.”
“마찬가집니다.”
그러니까 니들 모가지 값은 벌고 나가겠다는 거지? 다른 길드도 마찬가지고?
뭐 상관은 없다. 어차피 클리어 공헌도에 따라 미네랄 분배될 테니. 중간에 바이오 유닛 사체는 알아서들 챙기시고.
“그런데 질풍은 그렇다 치고, 사성이나 LC는 어디로 갔습니까?”
“글쎄요. 던전 초입쯤에서 헤어져서 모르겠습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이동했기에….”
“저희하고 차이점은 없을 겁니다. 정신계열 각성자 인원 수나 마법사, 전사, 힐러나 성직자 등 클리어 진행 구성은 비슷비슷 했습니다.”
그럼, 그들 역시 질풍 길드와 차이점은 없을 거다. 아니, 이제는 자신들끼리 3등급 바이오 던전 리젠 클리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구상하거나, 아니면 나에게 접근하려고 하겠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앞에 두고도 차지하지 못하니, 깽판치거나, 거위를 훔치려 들 것이다. 일단 나중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리젠 클리어가 우선이다.
“질풍 길드는 그곳에서 괜찮을까요? 부상자와 사상자도 꽤 되던데….”
“뭐, 기다리지 않겠습니까? 근처 던전 유닛들도 처리했으니. 지원 길드에서 클리어하길 기다렸다가 클리어 알림 뜨면 알아서 나가겠지요. 아마 그 편이 지금 그들의 유일한 방법일 겁니다.”
“그렇겠죠. 그 정도는 누구나 생각할 겁니다.”
“글쎄요. 그건 두고 봐야죠. 그 대머리 아저씨 이상하던데.”
“하하, 역시 지원 길드장님이십니다. 질풍 길드장을 그렇게 부르시다니요. 하하하.”
“뭐, 사실 아닙니까? 대머리에, 아저씨. 딱 맞네요. 크큼.”
“하하하.”
왜? 맞잖아.
서울시청 3등급 바이오 던전 리젠 클리어 입장 1일 15시간 30분 후.
중견기업 소속 Top길드와 Ensoli길드원들의 부상자를 돌봐주고, 식사를 한 후 3시간 가까이 이동해 멀티 하나를 추가로 발견했다.
어제와 같은 방식, 같은 조직 구성. 아니 쓸모없는 정신계열 각성자를 제외한 마법사와 힐러, 성직자들이 더 많아진 상황. 하루 만에 마력을 다 채우진 못했지만, 푹 쉬어서 그런지 그럭저럭 마법공격을 한다. 그래봐야 뻔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거지만.
“줄럿, 번개 주술사, 토르칸 전체 소환!”
[띠링! 줄럿(방어+공격 200%) 500개체를 소환합니다.] [띠링! 번개 주술사 100개체를 소환합니다.] [띠링! 토르칸 100개체를 소환합니다.]“번개 주술사 광역 번개!”
100개체의 번개 주술사들이 멀티를 향해 광역 번개 공격을 준비한다. 각각의 번개 주술사 몸에서 파란빛이 일렁거리더니, 가슴 앞으로 모은 두손을 앞으로 내지르는 순간!
‘콰… 치… 치지직. 파치직. 파지직… 파직.’
“까악!”
“어이쿠!”
“뭐, 뭐야!”
얘들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멀티를 감싸는 대규모의 광역 번개 공격.
설마하니 100개체의 번개주술사가 이런 엄청난 효과음이 가미된 CG를 만들줄은 나도 몰랐다.
천둥이 옆에서 치는 것처럼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하얀 빛과 파란 빛줄기가 엉키고, 성켜 멀티 전 지역을 감싼다. 나뭇가지가 뻗어나가듯 굵은 빛줄기가 지역을 구분짖고, 가느다란 잔가지가 그 뒤를 따라 사방을 채우며 던전 유닛을 태운다.
천지를 감싸던 광역 번개 공격이 끝나자 매캐한 연기와 함께 고기 탄 냄새가 사방에 진동한다.
[띠링! 숨겨진 스킬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스킬명을 정해 스킬을 등록하십시오.스킬명: ? (3등급)
조건: 번개 주술사 100개체 이상 광역 번개 사용 시
효과: 인지하는 범위 내 광역 번개(바이오 던전+200%)
데미지: 광역 번개+200%, 크리티컬+50%]
응? 뭐, 뭐가? 숨겨진 스킬?!
“허….”
“이, 이게 말이 돼!”
“세, 세상에!”
이상한 알림에 정신을 놓고 멍하니 있는데, 옆에서 길드원들이 아우성이다. 고민은 나중에 하고, 일단은.
“… 줄럿, 토르칸 나머지 정리해.”
대기하고 있던 줄럿과 토르칸한테 남아있는 유닛을 정리하라고 명령한 뒤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숨겨진 스킬이라….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시커먼 가죽만을 남긴 저굴링과 히드라들. 숨어 있던 락커가 꿈틀거리며 땅속을 기어 나와 휘청거리다 넘어지고, 울트라인지 검은 소인지 구분이 안되는 놈이 입에 거품을 물며, 쓰러질 듯 위험하게 걷는다.
성체 타워와 가시체 등 방어 건물은 별 타격이 없는 것 같지만, 살아있는 바이오 유닛한테는 치명적인 광역 번개. 대충 기갑 유닛과 바이오 유닛간의 상성을 짐작했지만, 이렇게나 효과가 좋을 줄은 나도 몰랐다. 그저 가스가 아까워 고급 유닛을 중심으로 클리어 계획을 짠 우연의 결과다.
500개체의 줄럿들과 100개체의 토르칸이 멀티를 한 바퀴 돌며, 남아있던 던전 유닛과 가시체들을 정리하자, 난 셔틀을 착륙시켰다.
그저 멍하니 나만 바라보는 중견길드원들은 내버려두고 한득이에게 미네랄을 캐라고 말한 뒤 성체 타워 뒤쪽으로 향했다. 소비한 가스를 흡수하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아까의 알림에 대해 생각해 볼 요량이다.
‘분명 스킬명을 정해 스킬을 등록하라고 했다.’
스킬명? 그러니까 마법사들이 마법주문을 외칠 때 말하는 그런 문구를 말하는 건가?
아니다. 스킬이다. 스킬.
게임에서 보면 특정 스킬을 사용하면 자동으로 벌어지는 그런 패턴.
음, 뭐가 좋을까? 한번 정하면 바꿀 수 없는 거겠지?
화려하지만, 간단하고, 번개주술사의 특성을 감안하면서도, 뭔가 있어보여야 할 것 같다.
일단 번개이니 번개라는 단어가 들어가고, 광역이니, 지역이니 하는 단어도 좀 넣어야 하지 않을까? 주술사라는 단어도 들어가야 하나? 간단해야 하는데….
서울시청 3등급 바이오 던전 리젠 클리어 입장 1일 19시간 20분 후.
가스채광소를 지어 프롤브 100개체를 소환한 후 가스를 최대치까지 흡수해 소비된 유닛을 생산… 할 필요가 없군.
두 번째 멀티는 번개주술사의 스킬 덕택에 소비된 유닛이 몇 개체 없었다.
이러면, 멀티에 가스가 너무 많이 남는 상황이… 아! 드란!
남아있는 가스로 바이오 테크티리나 올려볼까?
남아있는 가스 조각을 어떻게 써야할지, 스킬명을 무엇으로 정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해 나쁜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고 있는데, Top길드장과 Ensoli길드장을 비롯한 몇 명의 각성자가 이쪽으로 걸어온다.
“바쁘십니까?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안 그래도 잘됐다. 계속 머리카락을 쥐어뜯다간, 질풍 길드장처럼 대머리될라.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저, 조심스럽습니다만, 저희가 지원 길드로 들어갈 방법이 없겠습니까?”
“네?”
“M&A든, MOU든, 지부 개념이든지 간에 상관없습니다. 앞으로도 이곳 서울시청 3등급 바이오 던전은 지원 길드 아니면 리젠 클리어하지 못할 것 같은데요. 지금 길드원 인원 수가 부족해 보인다 싶어서요. 저희가 운영하고 있는 6~7등급 던전도 함께 내놓겠습니다.”
인원 수가 부족하기는! 얘들이 할 일이 없어 손가락만 쪽쪽 빠는, 아니 전사들의 주된 임무가 미네랄 캐는 거구만. 물론 제주로 내려가면 상황이 다르긴 하다만.
“저희가 제주지역 방위길드인거 아시죠?”
“네.”
“제주 내려올 의사는 있으시구요?”
“물론입니다.”
“음, 홍찬이 형하고 얘기해 보세요. 제가 길드 운영은 젬병이라. 부길드장이 전담하거든요.”
“예전 SG 길드장님이시죠? 그래도 지원 길드장님이 결정하시면 그렇게 되는 거 아닙니까?”
“그야 그런데, 일단은 상의해 보세요. 부길드장이 찬성하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고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넙죽 숙이는 Top길드장과 Ensoli길드장.
뭔데? 나 아직 허락 안했는데?
그들이 돌아간 후에도 끙끙거리며 고민을 계속해 봤지만, 뒤통수를 강타하는 맘에 드는 스킬명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드란을 성체 타워로 변태시켜 저굴링 코어, 히드라 코어를 생성 시킨 후 성체 타워 2에서 건물 생성과 유닛 생산 간의 가스 소모를 대략적으로 비교해보고, 다시 성체 타워 3에서 나머지 바이오 유닛의 특성을 살펴봤을 뿐이다.
바이오 유닛은 가스 소모가 심해 다수의 유닛 생산은 힘든 상황.
울트라를 저굴링처럼 대량 생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차라리 마법 지렁이 특성을 활성화시켜 마법 안개를 사용해 볼까?
이것저것 고민 끝에 한참이나 고급 바이오 유닛 특성을 살피는데, 잉여인간이 슬며시 다가온다.
“주, 주군! 부디 저에게도 주군의 품에 들 수 있는 기회를 내려 주소서!”
“… 새롭게 만든 개소리냐?”
“주군!”
“읊어봐.”
“네?”
“나중에 얘들한테도 물어보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다. 아까 번개 주술사들이 펼친 광역 번개 공격에 이름을 지으면 어떤 게 좋겠냐? 내 맘에 들면 니가 말하는 기회를 내려주지.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 네. 제가 어찌 그 장면을 잊겠습니다. 찬란하고도, 웅장하며, 화려하지만, 강력한 그 빛의 향연을! 제가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그런 멋진 장관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 대단, 대단하십니다. 주군!”
“사설이 길다. 본론만.”
“네. 간단히 광역 번개 공격이니, 익스텐시브 에어리어 라이트닝 어택(Extensive area lightning attack) 어떻습니까? 죽이지 않습….”
‘퍼어억!’
“아악! 주, 주군!”
“죽여줄까? 내가 평생 이불킥하는 거 보고 싶냐! 이 씨밤바쌔꺄!”
이 새끼가 어디서 약을 팔어!
아까 뭐? 뭐라? 익스텐시브 뭐시기?
존나 길어서 기억도 안 나네. 스킬명 외치다가 쪽팔려 뒤지겠다. 개놈의 쌕.
하긴, 너한테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차라리 잘됐다. 어차피 참신한 작명이 금방 나오는 게 아니니, 나 혼자 머릴 감싸고 고민할 이유가 없다. 얘들한테 물어봐서 슬쩍하면 되는 거다. 크큼.
그건 그렇고, 마법 지렁이 마법 안개 활성 하는데, 가스 조각이 300이면, 지렁이 코어에 150조각 투자하고….
난 뒤통수를 손으로 연신 비벼대는 싸이를 쳐다본 후 바이오 테크트리 활성과 내 상태창을 비교해보기 시작했다.
서울시청 3등급 바이오 던전 리젠 클리어 입장 1일 20시간 50분 후.
어영부영 유입된 전사 계열 각성자 40여명이 미네랄 캐는 걸 도와주자, 그래도 어제보단 조금 더 빠른 시간 내에 클리어 보상 미네랄을 다 캘 수 있었다.
멀티 두 군데에서 캔 미네랄만 100톤가량. 돈으로 환산하면 3500억이 넘어가는 무지막지한 금액이다. 역시 3등급은 3등급.
나에게 상황보고를 하던 홍찬이 형이 어두워지는 던전 하늘을 쳐다보며 묻는다.
“미네랄도 다 캤으니, 오늘은 그냥 이곳에서 지낼까? 저 밑에 조그만 내천 있더라.”
“어, 그러지 뭐. 그건 그렇고, 아까 Top길드장하고 Ensoli길드장이….”
“들었다. 어찌할래?”
“형 생각은?”
“받자.”
“왜? 지금도 부족한 건 없는 거 같은데?”
“앞으로 지원 길드는 제주지역 방위길드뿐만 아니라, 전국을 상대해야 해. 그들이 제시한 6~7등급 던전 운영하기엔 길드원 수가 너무 적어. 길드원들 등급도 올려야하고, 리젠 클리어 전담팀도 만들고, 매달 여기까지 정기적으로 클리어해야 하는데, 지금 인원 수로는 어림도 없지. 더군다나 Top길드하고 Ensoli길드가 알짜배기더라.”
“그런 길드가 왜 우리한테 고개를 숙여가며, 들어오려고 하는데?”
“… 몰라서 묻냐?”
“응.”
“… 진짜?”
“응.”
“하~. 할 말이 없다.”
“무슨 소리냐니까?”
“몰라! 자식아.”
왜? 난 당최 이해가 안되는데? 아, 에이~ 설마.
오늘밤은 이곳에서 지낸다는 지시를 내린 후 인근 주변에 방어탑을 건설하는 동안 길드원들이 알아서 천막을 꺼내 설치하고, 장작을 주워 모닥불을 피우고, 내천에서 물을 길어온다.
몇몇이 울트라 사체를 꺼내 손질하는 걸 보고, Top길드원들을 비롯한 신규 각성자들이 깜짝 놀란 눈치다.
울트라 사체 먹는 거 처음 보려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니 침을 흘리는 얘들을 보고, 호기심 반, 걱정 반인 그들.
“괜찮은 겁니까? 식량이 부족해서 그런 건가요?”
옆 천막에서 Top길드장이 의문을 표한다.
“겸사겸삽니다. 하지만 딱 3개체까집니다.”
“네? 뭐가요?”
“여하튼 3개체가 최대한돕니다. 나중에 더 달라고 해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저 울트라 사체가 모자라서 더 달라고 한다는 말씀이시죠? 먹는 용도 맞습니까?”
“없다니까요. 없어요.”
“…….”
잠시 후.
“세, 세상에!”
“쩝쩝. 지, 진짜 녹는다. 녹아.”
“이런 거 먹다가 한우 1++ 먹으면 입맛만 버리는 거 아냐?”
“와~ 이 육즙 봐라. 죽여준다.”
“맛도 맛이지만 능력 가중치 올라가는 건 또 어떻고.”
“냠냠. 이 맛있는 걸, 왜 지금까지 몰랐었지?”
“꿀꺽. 병신아! 울트라 사체 하나가 수십억인데, 그걸 니 입에 쳐 넣겠냐? 지원 길드장님이 선심 써서 내 준거잖아.”
“역시 지원 길드장님이 짱이다. 근데 양이 좀 적지 않아? 배불리 먹진 못하겠는데?”
“말할 시간도 아깝다. 닥쳐! 쩝쩝쩝.”
주변에 먹자판이 벌어졌다.
클리어 입장할 때 준비한 식량과 더불어 울트라 사체의 독성을 제거한 고기 파티.
물론 우리들은 각종의 방법으로 먹는 법을 알고 있으니, 각자 기호에 맞게 날로 먹든, 익혀 먹든지 하고, 신규 각성자들은 어설프게 우릴 따라했다.
하지만 수백의 각성자가 울트라 3개체가지고 되겠냐? 어제 우리끼리 먹은 저녁식사에도 울트라 3개체가 조금 모자란 양이었는데.
더군다나 각성자들이 먹는 식사량은 일반인들의 2배 이상. 거기에 능력 가중치를 아주 소폭이라도 올려주는 음식이라면?
저 봐라.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날 애타게 쳐다보는 눈빛들.
됐다. 난 분명 말했다. 3개체까지라고.
누구에겐 적당한, 누구에겐 무척 아쉬운 저녁식사 시간이 끝나고, 셔틀팀별로 불침번을 정해 개인정비 및 휴식시간이 이어졌다.
난 홍찬이 형을 비롯한 팀장급들을 천막으로 모두 불러들였다. 스킬명을 정하기 위함이다. 크큼.
“다 모였습니다. 길드장님.”
홍찬이 형이 멍석을 깔아주자, 난 입을 열었다.
“뭐 다른 건 아니고, 아까 오후에 멀티에 쓴 광역 번개 공격, 다들 봤지?”
“네. 오빠~ 진짜 대박 사건!”
“봤습니다. 정말 대단하더군요. 그냥 녹던데요?”
“컴퓨터 그래픽(CG)이라고 해도 믿겠어요. 진짜 멋졌어요.”
“그래서 말인데, 그 공격에 이름을 붙이면 뭐가 될까? 번개주술사가 광역 번개….”
“어? 형님! 혹시 스킬 생겼습니까?”
길수가 갑자기 정곡을 찔러온다. 예리한 놈.
“어? 어. 그런데 너도 스킬 있냐?”
“네. 전사직군은 스킬 있잖습니까? 안 그래도 반복되는 육체노동인데, 당연히 있죠. 그런데 형님이 어찌… 아, 형님도 전사직군 있으니까… 응? 아까 그건 번개주술사가 쓴 거잖아요!”
커다란 외침과 함께 벌떡 일어나는 길수와 입을 쩍 벌린 한득.
나만 멍하니 쳐다보는 홍찬 형과 미혜, 김은희, 최은지, 그리고 잉여인간.
마지막으로 간만에 지혜가 단순하지만 정확한 판단을 내린다.
“울 오빠를 이해하려고 하지마. 그냥 받아들여. 그게 맘 편해.”
적절한 표현이다. 근데 누가 울 오빤데?
잠시 후.
내가 스킬을 가졌다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가 되어 버렸다.
하긴 나도 내 특성에 대해 아는 게 개뿔인데, 니들이 알겠냐?
이놈의 각성자 시스템이 뭔가를 친절하게 가르쳐준 적이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하고 살아야지.
천막 안에서 다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심각하게 내 스킬 작명에 대해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는 와중에, 잉여인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익스텐시브 에어리어 라이트닝 어택, 괜찮지 않습니까?”
“… 풋!”
“크큼. 그거 니가 지은 거냐?”
“네. 뭔가 있어보이지….”
‘퍼억.’
“아악! 주군!”
“쓸데없는 소리 말고 다들 하나씩 읊어봐.”
잉여인간, 싸이의 뒤통수를 한 대 시원하게 갈겨주고 얘들에게 물었다.
“그냥 광역 번개.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면 뭔가 없어 보이잖아. 스킬명은 앞으로 계속해서 쓰게 될 텐데, 남들이 들었을 때 뭔가 있어 보여야지.”
“스톰샤워, 어때요?”
“오~ 괜찮은데?”
“아냐. 그것도 약해. 기가 라이트닝 아니면 테라 라이트닝?”
“바이트 단위로 쪼개줄까?”
한득과 길수가 한마디씩하고,
“음, 일렉트로 웨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