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 Dragon RAW novel - chapter 223
입을 벌리고 있는 채로 놀랑 표정을 한동안 지우질 못했다. 물론, 똘마니들도 놀란
표정은 변함 없지만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으니 제외한다.
“저게 인간이야? 인간의 탈을 쓴 헐크 아냐?”
느긋하게 들어가는 카이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자 차 한잔씩 들지.”
노인네는 차를 한잔씩 그들에게 돌렸다.
“우선 그쪽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해야겠구먼. 고마우이.”
위험한 상황에서 구해줬으니 노인네는 카이란을 향해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손을 한
번 휘 저었다.
“아니, 됐어. 그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나저나 저 녀석들은 뭐지? 보아하니
땅을 넘기라는 서약서 같은데….”
“아, 그것 말인가? 자네 말 대로네. 그냥 그저 땅을 팔라는 것이지 뭐.”
“왜, 그들이 영감에게 그런 짓을 하는 것이지?”
대충 얼버무린 느낌이 감돌자 한쪽 눈썹이 치켜지며 다시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혜미가 뭔가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것 때문인가요?”
“허허허… 그렇지 뭐. 그것 밖에 더 있나.”
역시 뭔가 알고 있으니 그 둘은 서로 맞았다. 노인네는 지긋한 눈으로 풍경을 슬쩍
바라보며 다시 카이란에게 초점을 두었다.
“이봐 젊은이 이곳은 나의 삶이네.”
삶? 이곳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 노후는 가족이 있었다네. 아들 한 명에 마음씨 착한 며느리에 그 둘 사이에 태어
난 손녀딸이 있었지. 특히나 아들녀석은 나를 닮아서 유능하고, 얼굴도 잘생겼었지.
그리고 손녀는 지아비를 닮아서 예쁘기까지 하고 말야. 허허허허허….”
너털웃음을 내뱉으며 자신의 가족들을 말하며 마지막 자식들 자랑까지 잊지 않았다.
너무나 상투적 말씨가 배인 가족 소개에 그들은 부드럽게 쓴웃음을 그리려 했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있었다네’ 라는 과거형이 상당히 신경 쓰여 표정이 잘 나오지 않았
다. 그렇다면 지금은 없다는 의미인가?
“남부러울 것이 없는 생활이었지. 돈으로써 살아가서 행복한 그런 집안이 아닌, 항상
웃음도가니와 정이 가득 넘쳐나는 평범한 가정었다네. 이런 행복은 이 노후가 생명을
다 할 때까지 지속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노부의 늙은 주책같은 허망한 망상이었
지.”
그때 그 일을 상기하기 시작하자 그 평온했던 노인네의 표정은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나이로 인한 주름살이 더더욱 짙게 되었다.
“아들과 며느리와 손자 딸은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떠났었다네. 그땐 나도 가고 싶었
지만 모처럼 가족여행에 이 늙은이가 끼면 불편해 할 것 같아서 같이 가지 않았지.
하지만 그때였지. 즐겁게 돌아오는 도중, 커브 길 쪽에 느닷없이 지진이 발생한 거야
. 오래가는 지진은 아닌, 단순히 한번 크게 흔들린 지진에 불과했어. 그런데도 진도
만큼은 엄청났는지 크게 흔들렸고, 당황한 아들은 그만 흔들을 꺾고 만 것이지.”
그 일을 생각하면 괴로운지 노인네는 옅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서요?”
조심스럽게 사미가 다음을 물었다.
“그 자리에서 아들과 며느리는 숨을 거두었지만 다행히 손녀딸만 살아 날 수 있었네.
사고가 나기 전 아이만은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며느리가 손녀를 꼭 껴안고 있어서 목
숨만은 건질 수 있었던 게야. 나로서는 다행이라 여겼지. 모두 죽지 않고, 손녀딸이
라도 살아 있었으니까 말야. 하지만 목숨을 건졌지만 그 뒤 손녀딸은 그만 부모의 죽
음과 사고의 충격으로 인해 말을 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만 거야. 그때 당시 손녀의
나이는 9살에 불과했다네. 그때 나도 아들놈과 며느리를 잃었다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손녀딸은 어떻겠나? 어린 나이에 그런 일을 겪었으니 충격이 이만 저만
아니었을 게야.”
9살에 나이에 사고로 인해 부모를 여의면 정신적인 충격은 말로 형언하기 힘들 것이
다. 어쩌면 ‘실어증’에 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거다.
“어린 나이에 너무 가여웠어. 사고도 모자라 말까지 못하게 되니 난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손녀딸이 빨리 괴로운 일을 잊고 하루빨리 건강하게
되기만을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일 밖에 없었지만 나 역시 가족을 잃었다는 슬픔이
가득해 매일매일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어. 영특하게도 나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손
녀딸은 나를 향해 밝은 웃음을 보여줬네. 아직 말은 못했지만 밝은 웃음을 보이며 자
신은 괜찮다는 표정을 보여줬지. 손녀딸의 그런 표정에 난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고,
그만 참지 못해 그대로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네.”
그런 기분 이해한다는 듯이 그녀들을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은 흘러서 손녀는 점점 완쾌되고 있었지. 여전히 말은 못했지만 사고로 인한 상
처는 거의 다 나았던거야. 하지만 그것은 아니었어. 사고로 난 상처는 아물었지만 문
제는 내부의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했지. 손녀딸이 퇴원을
하고 난 후에 알았었네. 며칠은 괜찮았지만 언제부턴가 고열과 구토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거야. 처음엔 그저 사고 후유증 때문에 그런 것으로 생각했지. 의사들도 그런
증상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하루 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전혀 증상이
좋아지지 않았고, 점점 악화만 되고 있었지. 그리고 알아버렸네. 그때 그 사고로 인
해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의사들도 생각지도 못했던 게야. 사고
라면 대부분 외상이니까 말야. 설마 상처 속에 바이러스가 스며들어갔을 거란 생각을
누가 하겠는가?
“…….”
“노부에겐 손녀딸이 전부였어. 더 이상 잃을 가족이 없었지. 노부는 손녀딸만이라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돈을 쏟아 부었었네. 이래봬도 이 노부는 돈이 많았다네.
지금은 사라진 회사지만 한때 조그만 한 중소기업 사장이었으니까 말야. 그래서 제일
큰 대학병원에 가서 치료를 했지. 하지만 좀처럼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거야. 오
히려 악화만 되어가고 있으니 노부로써는 막막하기만 하더군. 하지만… 포기하긴 싫
었다네.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꼭 나을 거라는 신념을 가지면 완쾌 될 거라 믿고
있었지.”
“그럼 지금 그 손녀딸은 어디 있는데요?”
“그래? 어디 있지?”
처음 하나고 손녀가 어딧는지 물어봤고, 두 번째 질문은 카이란이었다. 여차하면 카
이란이 그 소녀를 치료해 줄 의향이 있어서 물어본 것이다. 인간의 꼬마쯤이야 치료
하는 것은 식인 죽 먹기보다 쉽고, 무엇보다 마법이 존재하는 카이란의 세계에선 바
이러스 때문에 인간이 죽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에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카
이란은 그런 의미에서 물어본 것이었다.
노인네는 잠시 침묵을 보이더니 입을 열었다.
“…죽었다네.”
그 한마디와 함께 쌀쌀한 바람 한 점이 푸른 들판을 가로지르자 마치 노인네의 심안(
心眼)을 들여다보는 것이 꽃들이 나플나플 흔들거렸다.
“에?”
생각지도 못하는 대답이 흘러나오자 그녀들은 당황해 버렸다. 아직 병원에서 치료받
고 있을 거란 생각으로 지금 몸 상태가 괜찮은지 물어보려는 것이었는데… 난데없이
죽었다는 말을 들으니 당황은 물론이고 어떠한 말을 꺼낼지 막막했다.
“에또… 그, 그게… 죄, 죄송해요.”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에 하나는 사과를 건넸다.
“허허허… 괜찮네.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럴 수도 있다는 듯이 노인네는 너털웃음을 내던지며 그녀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래… 노부의 하나밖에 없는 손녀도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네. 큰 대학병원에
서도 필사적으로 치료를 했지만 그곳에 있는 의사들은 바이러스의 정체를 알 수가 없
었네. 결국 그사이에 이미 손쓸 방도가 늦을 정도로 크게 퍼져버리고 만 것이야. 손
녀는 끝까지 괴로워했네. 노부는 그 곁에서 손녀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다였어. 대체
이 어린것에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것인지… 어디에서 한탄이라도 하고 싶었네. 그
래도 노부는 끝가지 포기하지 않고, 기적을 바라면서 손녀를 지켜보았지만… 결국…
….”
허탈한 듯이 노인네는 말했다.
“…숨을 거두고 말았지.”
“…….”
휘이잉… 차가운 봄바람이 한 점이 뺨을 스쳤다.
“그것이 그때 그 일이군요.”
“……!?”
뭔가 알고 있다는 조용히 내리까는 목소리로 혜미가 말하자 남은 그들은 무슨 의미인
지 모른다는 표정이 되어 버렸다. 노인네는 혜미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
다.
“아가씨는 알고 있는가 보구먼… 그때 그 일을. 그렇다네 그때 그 일이지.”
대체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이지? 남은 일행들은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대체 그녀가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할 정도로 아는 것이 많았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기도 전
에 노인네는 이야기를 계속 이었다.
“…운명은 제천이라고는 하지만 이것은 정말로 너무하다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더구
먼. 진짜로 신을 볼 수 있다면 일갈이라도 날리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한순간의 아들
에 며느리를 잃고, 하나 남은 손녀까지 앗아가니 노부에겐 남은 것이라면 단순히 허
망함뿐이었네. 그렇게 모든 가족을 잃으니 더 이상 살 의욕도 나지 않아, 그저 이곳
저곳 방탕하며 지내는 것이 다였지. 차라리 자살을 할 까 기도했지만… 주제에 목숨
은 아까운 생각이 나는지 그게 생각처럼 되지 않더라고. 허허허….”
씁쓸한 웃음기가 감돌며 노인의 눈빛은 측은해 지고 있었다.
“노부는 하루 하루를 술로 찌들어 살았었네. 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졌기에 이런 가
혹한 벌을 내리는지 알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지. 이럴 바엔 차라리 그때 가족여행
때 같이 가서 함께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왜 혼자 살아 남아서 이렇게 괴로워
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더구먼. 그때 죽었다면 편안했을 텐데 말야.”
옅은 한숨을 내뱉는 노인네의 모습에서 방탄했던 생활이 힘들었다는 기색을 옆 볼 수
있었다. 노인네는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며칠이 지나도 손녀가 괴로워하면서 숨을 거둔 표정이 아직도 새록새록 피어난다네.
차라리 숨을 거뒀을 때 한번이라도 웃는 표정을 보았다면 이렇게 괴롭게 지내지 않았
을 것을… 병원 내내 있을 때부터 손녀는 괴로워하는 표정만 보이니 그것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아서 더더욱 괴로워 할 수 밖에 없었지. 오로지 술… 술만이 노부의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네.”
눈을 감은 노인네의 인상이 살짝 찡그러졌다. 아직도 손녀의 괴로운 표정이 아른거리
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게 여기저기 방탄을 하면서 우연찮게 노부는 이곳으로 찾을 수 있었지. 손녀딸
은 꽃을 참 좋아했다네. 특히 봄꽃을 말이지. 이 꽃들을 보니 손녀딸의 모습이 아른
거리더군. 행복했던 그 순간의 생활들이 말이지. 그 뒤 이 노부는 방탄하던 생활을
버리고, 이제 별로 남지 않는 모든 돈을 꺼내서 이 조그만 한 땅을 살 수 있었다네.
그리고 이곳에서 죽은 손녀딸을 생각하면서 조금 밖에 남지 않는 남은 여생을 행복하
게 보내려는 계획이네.”
부드러운 눈빛으로 노인네는 자신이 가꾼 꽃밭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이 꽃들을 죽은
손녀라고 생각하면서 키워왔다. 이곳을 볼 때마다 손녀의 환한 얼굴만 생각나니 괴롭
게 숨을 거두었던 기억을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매일 매일 이곳에 오면
서 정성 들여 꽃을 가꾼 것이었다.
“…그렇군요. 그래서 매일 이곳에 오는 거였네요.”
왜 자주 이곳에 오는지 이제야 알 것 같자 그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우. 집에 돌아가 봐야 이 노부에겐 반겨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네. 여기서
추억이나 잠기면서 노부는 편안한 생활을 하려고 하는 것이 노부에겐 더없이 좋은 것
이라네.”
노인네는 눈앞에 펼쳐져 있는 예쁜 꽃들을 보았다. 봄바람을 맞으며 꽃들이 샬량 샬
량 기분 좋다는 듯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지금 노인네에겐 자신의 손녀딸이 활짝 웃는
것처럼 보였다.
“이 꽃들은 내 딸과 다름없다네. 예전부터 꽃을 가꾸는 것이 취미였었는데… 이제는
일이 되어버렸던 것이지. 허허허….”
노인네는 밝은 웃음을 보였다. 애써 웃는 것이 아닌, 이제는 괜찮다는 의미의 웃음이
었다.
“다행이네요.”
노인네의 웃음을 보고 그녀들은 내심 안심이 되어 있다. 여기서 느닷없이 심상치 않
는 표정으로 카이란이 노인을 보았다.
“그런데… 딸이 죽었을 때, 어떤 증상 때문이었지?”
뭔가 느낌을 받은 카이란은 그때 그 일에 대해 자세히 들려 달라는 듯이 말했다.
“백성님.”
“그런 질문 너무 하잖아.”
덕분에 시겁한 표정으로 바뀐 사미와 하나가 한마디씩 던졌다. 그러지 않아도 그 일
은 노인네에게 가슴 아픈 일인데, 실례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런 질문을 내던지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정작 카이란은 그 말에 신경도 쓰지 않는 표정을 보이며 노
인의 표정만 응시할 뿐이었다.
“허허허… 괜찮다네. 젊은지 자네는 무척 직설적이구먼. 허허허허… 그런 성격이 어
찌보면 배짱이 있다고 할 수 있으니 사내대장부로서는 괜찮은 성격이지. 그러니 아가
씨들 나는 괜찮우이. 허허허허.”
흘끔 그녀들은 노인네의 눈치를 보자 아무렇지 않은 듯이 너털한 웃음을 내뱉으며 오
히려 카이란의 성격을 칭찬했다.
“그래… 젊은이 뭐가 알고 싶은지 모르지만, 얘기해주겠구려.”
카이란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손녀는 처음엔 그저 단순히 열에 시달린 것 뿐이었네. 그때까진 일반적인 사고 후유
증이라고 생각했지만 열은 내리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고열로 바뀌자 급히 병
원에 데리고 갔었지. 그리고 정밀검사를 통해서 원인불명의 바이러스 항균이 검출되
는 것을 알았다네. 그 전 피검사 땐 전혀 그런 증상이 나오지 않더니만 그런 증세가
나타나니까 검출되더군. 나중엔 구토증세와 심한 기침까지 일으켰다네. 덕분에 손녀
는 하루에 한끼도 먹을까 말까한 식사를 보여줬고, 나날이 초췌해지는 것을 두 눈으
로 보고만 있었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기침은 심해져만 갔었고, 나중엔 각
혈( 血)까지 나오더군. 그리곤 손녀는 내리지 않는 고열과 각혈로 인해 그렇게 괴로
워하다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네.”
어떻게 사망하게 된 경위를 듣자 무슨 이유 때문인지 설마 라는 표정으로 카이란의
얼굴이 바뀌었다.
“‥그러면 사고가 났던 장소는 어디지?”
“글세… 요즘 노부도 나이를 먹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곳은 아마도…….”
노인네는 사고가 일어났던 장소를 카이란에게 세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탕!!-
장소를 듣자마자 카이란은 박차게 자리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백성님 어디가세요!!?”
“오빠 어디가!!?”
느닷없이 어디로 나가버리자 그녀들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소리쳤다.
“잠깐 여기 있어. 좀, 늦을 수도 있으니까 내가 늦게 오면 그냥 집으로 가고!!”
카이란은 그녀들에게 그렇게 소리쳐놓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헤에… 정말로 빠르기도 하네.”
하나가 이마에 손을 올리며 이미 모습이 사라진 카이란을 향해 감탄을 내뱉는다. 이
미 이런 스피드는 경험해본 바가 있지만 또 봐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저 정도라면
세계 육상선수권에 나가면 세계 신기록을 낼 것이 분명했다.
“참나… 느닷없이 어디로 가버리는 거야?”
그렇게 팍 나가버리니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민지는 팔짱을 끼며 입 살을 찌푸렸
다.
-탁탁탁!!-
카이란은 빠르게 달렸다. 달리는 속도는 가히 빛과도 흡사할 정도로 짙은 남색 교복
의 잔상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치 예전 명화 ‘플러쉬 맨’의 주인공을 보는 것처럼 굉
장한 스피드였다. 가끔 지나가는 인간들 곁에 그가 지나치면 무엇이 지나갔는지 분간
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시야가 따라가지 못했다.
카이란은 으슥한 곳을 찾아서 몸을 텔레포트 시켰다. 노인이 얘기해준 장소는 다리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아니, 갈 수는 있으나 좀 돌아가야 되는 거리이라서 차
라리 빠르게 갈 수 있는 레비테이트(Levitate) 비행마법으로 가는 것이 더 효율적이
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들의 눈도 있으니까.
지상 몇 키로 위로 올라가니 마을이 한눈에 보였다. 도시든 외각 지역이든 단번에 보
였고, 그 상태에서 카이란은 빠른 속도로 노인이 가르쳐 준 곳으로 향했다.
-슈앙!-
빠르게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았다. 하얀 구름이 아름답게 펼쳐졌지만 지금은 그런 것
을 느긋하게 감상할 따위가 아니었다.
‘분명히 그것 밖에 없어…!’
예상했던 것이 맞았다. 그것도 잘 맞아 떨어졌다. 노인네가 얘기해준 것 만으로도 충
분하게 근거는 확실하다. 처음 노인네의 손녀가 사망을 했을 땐 단순히 바이러스로
인해서 걸린 병으로만 착각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많이 본 증상이라 설마 했기에 증
상을 자세히 물어보았고, 예상했던 설마가 사실로 맞닥뜨리자 그곳에서 박차게 나가
버린 것이다.
풍사(風邪)
그 바이러스의 이름이다. 이것은 이 세계에서 걸리기 힘든 바이러스다. 아니, 절대로
걸릴 리가 없는 바이러스다. 그 소녀가 감염되었다면 죽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고 이
세계에서 치료가 불가능 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소녀뿐만 아니라, 우연찮
게 그 소녀의 가족들이 살아 남더라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을 것이다. 그
것은 단순한 병이 아니니까 말이다.
어쩌면 노인네의 손녀 가족들 중에 부모쪽은 다행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고통 없이
숨을 거두었으니까 말이다. 어차피 죽음을 피하지 못한 몸, 차라리 사고로 인해서 목
숨을 잃는 것이 더 행복했을 테니까. 만약 모든 가족이 다 그렇게 죽었다면 노인네는
절대로 치료할 수 없는 상처가 가슴에 남았을 것이다.
그나마 이곳 세계에서 바이러스를 검출이라도 했다는 것이 굉장한 것이었고, 과학이
뛰어나다는 것을 실감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풍사 바이러스를 못 치료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시작이 있다면 반드시 끝은
있는 법이니, 독이 있다면 해독제가 있는 것도 당연한 이치처럼 치료가 가능했다. 다
만 치료 할 수 있는 범위가 무척 낮았고, 그중 완벽하게 치료 할 수 있는 종족은 그
들… 즉, 카이란 같은 드래곤만이 치료할 수 있다. 인간도 치료는 할 수는 있지만 높
은 고위 신관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또한 높은 고위 신간이라고 해도 완벽히는 불가
능했다. 상태를 늦추거나 적어도 5년까지 계속 치료를 받아야 나을까 말까한 무서운
바이러스였다.
드래곤은 마법에 능숙한 존재니 이런 인간의 병 따윈 고칠 수 있다고 당연하다고 여
길 수 있다. 치료는 치료, 마법은 마법, 검술은 검술, 채술은 채술… 살아온 세월이
말해주듯 못하는 것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 말이 맞기는 하지만 그것말고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한가지가 있다.
그 한가지를 말한다면 그 병의 원인이자 근원은… .
드.래.곤의 병이기 때문이다.
-슈앙!!-
뭉게 뭉게 피어 있는 구름을 거느리지 않고 빠른 속도로 통과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오로지 앞만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눈앞에 큰 항공모함이라도 있다면 비
켜가지 않고 그대로 통과 정도로 굉장한 스피드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