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0
8화. 적응 (2)
원시적인 마법 지식.
동시에, 나는 상상도 못 할 기술로 만들어진 IT 기기.
어째서 이곳이 이런 기형적인 진화를 했는지 궁금하지만 우선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그러면 여기 있는 흡마제는 내가 써도 아무도 모르는 거네?’
정보의 차이는 곧 힘의 차이였으니까.
이로써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어쩌면, 마법을 쓰지 못해도 지구에서 그럭저럭 살 수 있겠다는 사실을.
***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흐아아암.”
지구에 온 지 며칠째더라.
이젠 김기려의 몸이 제법 익숙하다. 나는 이부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마법은 여전히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화장실 앞의 거울을 보며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살이 붙었네.”
열심히 영양을 섭취한 덕인지 건강을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작은 성취에 감사를 표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여유로운 아침이었다.
‘오늘은 사뒀던 계란을 먹자!’
하지만, 사실 현재 내 상황은 여유와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위기에 처했다고 봐야 했다. 왜냐하면 나는 지난 일주일 동안 사회의 쓴맛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이 계란을 다 먹기 전까진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어.’
마음만 먹으면 억대의 돈을 쓸어 담는다는 직업군. 헌터.
하지만 미디어 속의 환상과 달리 F~E급의 하위 헌터 생활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가장 많은 각성자가 이 등급에 속하기 때문에 멀쩡한 사냥터는 고사하고, 게이트 하나를 공략하러 다른 지역을 전전하질 않나···.
누구나 퇴치할 수 있는 약한 몬스터는 돈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돈이 되는 몬스터를 잡자니 갖은 위험이 도사리는데.
목숨을 거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F급 각성자가 한 달 동안 번다는 돈은 약 430만 원.
솔직히 지난 일주일간 헌터 일을 조사하면서 내가 내린 F급 생활의 최종 평가는 ‘막노동 하위호환’이었다.
‘기려의 뇌에도 관련된 기억이 있어. 그래도 각성하면 일반인보다는 강해지니까. 안전을 추구하는 F급들이 죄다 공사 현장으로 빠져서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게다가 나는 특히나 상황이 열악했다.
환생체는 한쪽 다리에 문제가 있질 않나, 마법은 몽땅 못 쓰게 돼질 않았나.
이런 쓰레기 육체로 쓰러트릴 수 있는 게 대체 무엇이 있지?
‘독나비는 돈이 안 돼. 협회에서 사주지도 않는다고.’
이대로 가다가는 저금이 떨어져서 다시 굶어 죽고 말 거다. 그래서 나는 다른 돈벌이를 구상했다.
“일단 흡마제를 잔뜩 퍼오긴 했는데 말이야.”
슬쩍, 시선을 들어본다.
안 그래도 좁은 원룸에 검은 봉투가 가득 쌓여있다.
이것들은 내가 게이트에서 야금야금 퍼온 흙이었고, 나는 이것으로 죽일 수 있는 마법 생물을 몇 가지 알고 있었다.
검색해보니 지구에도 비슷한 몬스터가 있긴 했는데···.
“문제는 그게 산다는 C급 게이트에 들어갈 방법이지.”
F급인 기려는 협회 규정상 C급 게이트에 접근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한담.”
나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잠시 고민했다.
‘아직 지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뜸 흡마제로 장사를 하긴 애매하군. 게다가 내가 선택한 육체가 F급이란 것부터가 이상해. 분명 그 각성 검사라는 것에서 뭔가 문제가…….’
그리고······.
-삐이이이이이이익!
-위우우우우웅.
으악, 이게 뭔 소리야!
“깜짝이야!”
갑자기 김기려의 휴대전화에서 쩌렁쩌렁 소음이 울렸다.
지금껏 이런 일은 없었는데?
ㅡ삐이이이이익.
나는 화들짝 놀라 다급히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그러자 화면을 가득 채운 문자 메시지가 보였다.
< 긴급 재난 문자
[[던전 브레이크] 7월 13일 12:30서울 마포구 인근 레드 게이트 발생
B급 마수 출현 경보 / 몬스터 이동
경로 확인 후 대피 https://ww······.]
“어··· 이게 무슨 말이지?”
나는 문자를 보고도 순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소란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처음 겪는 일에 얼이 빠졌을 무렵. 나는 복도 밖이 소란스러워진 것을 깨달았다.
원룸의 얇은 벽을 뚫고 옆집의 문소리가 쿵, 울렸고···.
자세히 들어보니 웅성거리며 달리기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 정도면 눈치를 못 채는 게 바보지. 나는 곧바로 현관문을 열고 나와 주민들과 함께 대피했다.
‘뭔진 모르겠지만 가만히 있으면 위험할 거 같아.’
혹시 몬스터가 다가오고 있나?
자세한 상황이 궁금했지만 질문할 시간은 없었다.
기려의 아픈 다리는 주민들을 뒤쫓는 것만으로도 한계였다. 나는 닥치고 걸음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었다.
“헉, 후우······.”
그나저나 이 몸은 역시 폐가 작살난 게 틀림없어.
마력을 각성했는데 이거 뛰었다고 숨이 차? 나는 헐떡거리며 한 이웃의 등을 쫓았다.
그러자 이윽고 우리가 멈춘 장소는······.
“으아~ 엄청나게 크다. 저게 정말 B급 몬스터 맞아?”
“다들 뒤로 물러나세요!”
“안녕하세요~ Y튜브 여러분! 오늘 생방송은···!”
젠장!
이 인간 대피한 게 아니었잖아!
‘빨리 뛸 수가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가장 느린 사람을 점찍은 거였는데······.’
아무래도 따라갈 사람을 잘못 고른 것 같다. 이곳은 대피소가 아니라, 불구경을 하러 온 이들의 집합이었으니까.
“뒤로 물러나시라고요!”
저 멀리, 재난 경보의 주인공이 보인다.
일단 비기너 킬러보다 3배는 거대한 파충류가 날뛰면서 도시의 공원을 부수고 있고···.
“오.”
동시에 이를 저지하려는 헌터들의 움직임이 보이는데.
‘어? 잠깐, 한 명이 낯이 익네?’
나는 활약하는 헌터들을 보던 도중, 아는 얼굴을 발견했다.
멀리서 봐도 눈에 확 튀는 저 헤어스타일. 역시 저건 그 헌터가 맞지 않을까?
‘저게 지구의 헌터들이 쓰는 원시 마술이구나. 하지만 멀어서 잘 안 보여······.’
나는 싸움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인파 사이로 살짝 파고들었다.
물론 폴리스라인은 넘지 않았다.
‘이제는 이 노란 테이프가 뭘 뜻하는지 알아.’
지구의 접근 금지 문화를 배웠으니까 문제없겠지. 라고 생각한 그 순간이었다.
“아, 좀! 지나갑시다~”
퍽!
누군가 행렬 앞으로 비집고 나왔다. 동시에 근처에 서 있던 나를 밀쳤다.
“읍!”
내 연약한 몸은, 이 사소한 충격조차 버티지 못했고 말이다···.
이윽고 우당탕, 작은 소란이 났다.
이쪽은 그만 경찰통제선 일부를 무너트리며 앞으로 자빠져 버렸다.
“아! 죄송합니다.”
나는 허둥지둥 쓰러진 기둥을 세우며 경찰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뒤를 휙 돌아봤다.
충격의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 녀석인가?’
그러나 사고를 낸 범인은 상상과 상당히 다른 이미지였다. 기려보다 3배는 큰 근육 돼지가 있을 줄 알았건만.
뒤에 서 있던 사람은 그냥 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체형의 남자다.
저딴 얇은 팔로 날 쓰러트렸다고? 어처구니가 없네.
‘이런 수모는 처음이야. 고향에선 보호 마법을 2중, 3중으로 두르고 다녀서 다친 적이 없었는데.’
나는 처량한 신세를 깨닫고 하마터면 울먹일 뻔했다. 그런데 그때, 나를 밀쳤던 남자 쪽에서 거친 목소리가 터졌다.
“그렇게 세게 밀지도 않았구만 생난리네!”
“······.”
“자기가 길을 막았으면서 뭘 노려봐. 노려보기는. 지금 시비 걸어?”
아니, 노려본 적 없는데.
이쪽은 그냥 별생각 없이 지구인을 관찰한 거지만, 어디선가 오해가 생긴 모양이다.
그 껄렁거리는 남자는 나를 쓱 훑어보더니 픽 웃으며 말했다.
“와, 무섭네? 저기요. 한 성깔 하시나 본데, 나 헌터거든요.”
그는 한결같이 나를 업신여기는 태도였다.
“일할 때 참고하려고 조사차 온 거라고. 몬스터 옆에 있으면 나도 각성하지 않을까~ 싶어서 얼쩡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아, 그래서 이렇게 일반인 구경꾼이 많았나.
“그러니까 눈깔에 힘 풀어라. 어차피 나 쳐봤자 비각성자는 손만 아파요~”
자신을 헌터라고 소개한 남자는 품에서 삼각대를 꺼내 주섬주섬 세팅하기 시작했다.
밀친 것도 모자라 이상한 오해까지 하다니. 나는 억울한 마음에 사실을 정정했다.
“나도 헌터인데요. 그쪽이랑 똑같은 이유로 여기 있었고.”
“헌터? 몇 급?”
“···F급.”
하지만 그 헌터는 이어진 대화에 코웃음 쳤다.
“아, F급?”
이런 시간에 게이트에 있지 않고 남의 싸움이나 구경 다닐 정도면, 백수거나 저급 헌터일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설마 가장 낮은 F급이라니.
“혹시 한국은 남을 밀치면 사과해야 한다는 인식이 없나요?”
남자는 이어진 말을 깔끔히 무시하며 자기 일에 집중했다. 나는 잠깐 풀이 죽었다.
‘지구의 문화는 알다가도 모르겠군.’
그 순간이었다.
저 멀리서 쿵, 심장이 내리 앉을 정도로 커다란 소음이 울렸다.
이는 도시를 활보하던 거대 도마뱀이 쓰러지는 소리였고, 이어서 주변 사람들이 외쳤다.
“와! 잡았다아아!”
“SNS에 올려야지.”
“저기 봐! 헌터들 이쪽으로 온다! 사인받을 수 있을까?”
그들의 말마따나 헌터들은 이 경계선 방향으로 오고 있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떤 헌터 하나가 갑자기 달렸고, 영문을 모르는 나머지가 뒤따르는 모양새지만.
“안윤승이다! 안윤승! TV에서만 봤는데, 우와아.”
“젊은 친구가 대단하네.”
“구독자 여러분! 보이세요? A급 안윤승 헌터님입니다!!”
최근, 검색으로 알게 된 점이 있다.
이 세계에서 A급 헌터란 각성자 상위 3%에 속하는 엘리트. 실질적으로 도시 안전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층이라.
이들 상급 헌터는 곧 국민의 우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달려오고 있는 어떤 헌터를 향해 열성적인 반응을 보냈고.
“와···. 안윤승이 이렇게 가까이···.”
A급을 존경하는 건 이 껄렁한 남자도 마찬가지.
그는 홀린 듯이 카메라 렌즈를 안윤승에게 고정했다. 그런데 안윤승은 경찰까지 무시하고 계속 달리더니··· 어째 점점 여기로 가까워진다?
“어?”
남자가 얼빠진 소리를 낼 무렵.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안윤승은, 구경꾼들 앞에 떡하니 멈춰서 숨을 헐떡헐떡 고르고 이렇게 말했다.
“아, 아, 아! 안녕하십니까!”
곧이어 그는 경계선 라인 밖에 있는 내 손을 두 손으로 덥석, 붙잡는다.
“그분 맞죠? 그분! 이런 곳에서 뵙네요! 그때는 정말 덕분에 살았습니다! 아, 맞다!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제가 누구냐면 왜 그, 일전에 게이트에서 도와주셨던······.”
“기억나.”
“진짜 감사했습니다, 형!”
국민의 우상인 청년이 웬 인간 앞에서 허리가 90도가 되도록 넙죽 인사하다니!
주변 사람들은 이 상황을 놀란 듯 바라보고 있었지만, 안윤승은 아랑곳하지 않고 속사포로 말했다.
“아직 마포에 계셨군요!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아, 던전 브레이크 때문이겠네요. 하긴 형님 같은 분이 안 나와보실 리가 없지. 그런데 이제 괜찮습니다. 제가 다 정리했······.”
하지만 잠시 뒤.
안윤승은 돌연 말을 멈췄다. 그리고 내 옆에 서 있던 남자를 휙 돌아봤다.
방금 시비가 있었던 그 카메라맨이 현재 벌어진 일 때문에 날 빤히 보고 있었는데······.
안윤승은 자꾸만 내 쪽을 흘긋거리는 사람이 있으니 착각한 건지 짧게 질문했거든.
“여긴 일행분이에요?”
그런데 내가 미처 말을 안 한 게 있다.
지난번은 부상 때문에 제대로 된 꼴이 아니어서 여태 몰랐던 거지만.
다시 만난 안윤승의 모습이란 이러하다.
푸릇하게 보일 정도로 짧게 민 스킨헤드.
화려한 스크래치.
거무칙칙한 눈가.
그리고 왼쪽 콧볼에 자리하고 있는 은색 피어싱······.
솔직히 말해서 안윤승은 입만 다물면.
“예?”
강도까지 눈을 깔게 할 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