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49
147화. 김기려 (3)
이는 이화영의 도주부터 확정된 사항이었다.
‘이렇게 산다고 나한테 무슨 미래가 있을까.’
김기려는 2700만 원을 들고 사라진 어머니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는데,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상황에서 다리까지 크게 망가지고 말다니.
만약 그가 그저 건강한 20대였다면 이 정도 시련은 차차 이겨냈으리라.
하지만 평생을 함께한 외로움은, 결국 일생의 큰 독이 되었으니.
기려는 최근 몸에 여러 증상이 생겼다.
밥을 먹기 귀찮다는 건 둘째치고, 어찌저찌 음식을 입에 욱여넣으면 어찌 된 게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됐다.
게다가 건망증도 심해졌다.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항상 머릿속이 희뿌옇고, 책을 펼치면 1페이지조차 집중해 읽을 수가 없고.
이쯤 되면 본인도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아챌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기려는 이를 치료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솔직히 병원에 간다고 사람이 처한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이딴 심적인 문제를 해결해 봤자 자신은 어차피…….
“큼.”
기려는 꽁초가 가득 찬 재떨이에 피우던 담배를 내려놓았다.
아무튼 그는 자신의 상태를 인지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어떠한 결정을 내렸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돈은 열심히 벌어왔는데, 정작 자신을 위한 소비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기려는 이 김에 하고 싶었던 일을 다 해보기로 했다.
여기에는 일용직으로 번 2달 치 월급을 사용하기로 하고 말이다.
하고 싶은 일들을 정리해보니 얼추 20개쯤 나오는 목록.
하지만 달성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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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 리스트
①케이블카 타보기
②보호소에 기부하기
③카페에서 커피 사 마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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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원은 대부분이 소박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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⑮염색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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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기려는 버킷 리스트의 마지막 남은 항목을 달성하기 위해 미용실을 들렀다.
“어서 오세요~”
살면서 외모를 꾸미는 데에 신경을 써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입장부터 어색하다.
“여기에 앉으세요. 머리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그게…….”
하지만 기려는 어떤 스타일을 부탁할지만은 확실히 정하고 온 상태였다.
톡. 곧이어 그는 의자에 앉아 염색 색상표의 한쪽을 가리켰다.
“이렇게 염색해주세요.”
“블론드? 이거는 색을 똑같이 내려면 탈색을 2번은 해야 할 텐데~”
“네. 괜찮아요.”
그리고 그가 왜 하필 금발로 염색하려 하느냐면…….
사실 기려의 동창 중에는 머리카락을 항상 금색으로 물들이고 다니던 학생이 하나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당시. 졸업 축사를 맡았던 바로 그 학생회장 말이다.
그는 집도 잘살고, 공부도 잘하고.
심지어는 성격까지 좋아서 인간관계가 좁은 기려에게도 자주 말을 걸어주곤 했는데.
‘참 착했어.’
막상 머리를 만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문득 그 학생회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갑자기 따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걸 보면 사실 자신은 그 동창을 전부터 선망하고 있었나 보다. 아니면 시샘이거나.
“자, 다 됐습니다~ 어우, 색이 너무 예쁘게 잘 나왔다.”
하지만 예상대로 염색 같은 걸 한다고 사람이 뭔가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었지.
그냥 무미건조한 기분이었다.
‘별로네.’
그래도 이걸로 할 건 다 해봤으니 이제 됐나.
기려는 염색비를 계산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 나오지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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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및 내려받은 앱이 모두 삭제되며, 삭제된 데이터는 복구할 수 없습니다.] [모두 삭제 / 취소]귀가한 기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휴대폰 초기화였다.
왠지 정리가 하고 싶었다.
그다음은 방 청소였고. 원래는 이 뒤에 집에 있는 책도 모두 가져다 버릴 계획이었지만 뒤늦게 그걸 이미 했다는 게 생각나더라.
“맞다. 교재들은 저번 주에 내놨지.”
하여튼 기억력하고는.
사실 기려는 지난 버킷 리스트를 달성하면서 제 마음속에 다시 살고 싶단 생각이 들길 바랐는데, 보다시피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무너진 의욕을 되찾을 수가 없었으니.
“피곤해…….”
처음에는 일하는 것과 밥을 먹는 것 정도만 귀찮았다면 이제는 움직이는 것도, 심지어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은 상황.
그렇다면 이런 상태까지 내몰린 약자가 어떤 결말을 맞았겠는가.
이후. 김기려는 집에 틀어박혀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미래에서 희망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은둔하는 동안엔 밥을 굶는 건 일쑤이고 온종일 물을 마시지 않는 날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한때는 끼니를 거르면 허기라도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점점 배고픔조차 느껴지지 않았지.
지금이 몇 월인지, 몇 시인지조차도 인지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잠만 자는 나날.
그러던 어느 날.
기려는 수마에서 깨어나 오래간만에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는데.
“으…….”
그날은 특히 이상했다.
머리를 짓누르는 두통은 둘째치고 일단 몸이 너무 추웠거든.
휴대폰 대기화면을 보니 지금은 7월이며 바깥 날씨가 29도다. 그런데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춥다고?
기려는 우선 이부자리에서 일어났다.
잘은 모르겠지만 따뜻한 물로 씻으면 좀 나아질 것 같아서 샤워를 했다. 오랜만에 면도도 하고.
“춥다.”
그리고 샤워를 마친 뒤에는 옷을 입으려고 행거를 확인했는데, 이때 어느 검은 천이 눈에 들어오더라.
나중에 공무원 면접을 보게 될 날이 오면 쓰려고 미리 사둔 2만 원짜리 정장 세트.
몸에 맞는지 확인해본 이후로는 한 번도 입은 적이 없는 새 옷이었다.
‘아까워.’
기려는 문득 든 생각에 따라 걸어둔 정장을 입어본다.
‘이거 어떻게 매더라?’
하지만 이조차도 도중에 귀찮아져서, 넥타이를 집어 던지고 다시 이불 위로 넘어지는데…….
그때였다.
기려는 자신의 몸 상태가 평상시와 크게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
밖은 푹푹 찌는 여름날인데 계속 몸이 떨리고, 무엇보다 말 한마디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비이상적으로 졸렸으니.
‘아.’
그래. 오늘이었구나.
기려는 그때가 되어서야 다가오는 죽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시력도 좋고 나이도 젊은 편이라. 아마 이대로 죽어도 쓸만한 장기가 꽤 많을 텐데.
‘장기를 기증하려면……. 뭔가 서약 같은 걸 해야 한다고 들은 것 같기도…….’
이럴 줄 알았으면 그 기증 절차나 미리 좀 밟아둘 걸 그랬을까?
기려는 죽는 순간까지도 세상에 대한 원망은 없었다. 그저 장기 이식이 필요할 환자들을 저버린 것이 왠지 속에 걸렸을 뿐.
‘좀 아깝네.’
그는 천장을 한참 동안 가만히 지켜보다, 이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누구든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쓰는 게 나을 텐데.’
감은 눈 사이로 고여있던 눈물이 흐른다.
자리에 누운 남자는 긴 한숨을 뱉었다.
***
다시 눈을 뜨니 보이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다.
누리끼리하게 변색한 낡은 원룸의 천장.
“…….”
타성의 영혼인 나는.
경악한 안윤승을 떨쳐내고 겨우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이화영의 이름을 듣자마자 밀려들기 시작한 기억을 정리하느라 그때부터 자그마치 7시간이나 쓰러져 있었지만.
아무튼 그것도 이제 끝이다.
방금의 기억을 끝으로 김기려의 과거는 떠오르지 않았다. 몸 주인이 그 시점을 기준으로 숨을 거둔 것이다.
“그런 거였군.”
이제야 명확해졌다.
김기려는 단순히 굶어 죽은 것이 아니었다.
이 몸의 주인은 외로움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으며, 그것을 해결하려 제 어미에게 매달리다 다시 버려졌으니.
그의 사인은 고독사였고.
아사였으며, 자살이었다.
여기까지 오니 드디어 환생에 얽혔던 의문도 천천히 해소됐다.
‘김기려의 뇌에 기억이 비어 있던 이유.’
내가 쓴 [환생] 마법은 시체에 들어가기 전 그것을 최대한 멀쩡한 상태로 복원해둘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도 한계는 있지. 예를 들어, 80대 노인의 시체를 그의 40세 시절로 되돌리긴 어려웠으니.
내 마법의 기본 체계는 차지할 육체를 사망 몇 주 전쯤의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
그런데 알다시피 김기려는 그맘때부터 이미…….
“건망증이 심했지.”
중증 우울증으로 말미암은 뇌 손상.
이딴 건 환생 마법의 변수로 고려해두지 않았거늘.
.
.
.
오전 8시.
이화영은 이른 아침부터 화장대 앞에 앉았다.
오늘은 아들을 만나는 날이다. 그것도 평범한 아들이 아니라…….
[(속보) 한국, 4번째 S급 등장!]무려 S급 헌터인 아들을.
그녀는 평소에 뉴스를 잘 보지 않지만, 그럼에도 자식의 소식은 귀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D급 각성자의 시신을 목숨 걸고 건져왔다느니.
세이렌을 다 죽여줬다느니.
아무튼 그 S급은 정체를 밝힌 지 몇 개월 만에 믿을 수 없는 활약들을 보였으니까.
“세상에나! 기, 기려가……. 각성자가 됐다고?”
이화영은 뉴스에 등장한 아들의 얼굴을 알아보고 그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연락이 끊긴 지 꽤 지나 전화번호를 찾는 데 고생은 했지만, 다행히 얼마 전에 휴대폰에서 필요한 기록을 찾았고.
[수신차단목록]1533-09….
02-2109….
010-1287….
“아! 1287! 이거네, 이거.”
솔직히 이 과정에서 망설임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도 아들과의 마지막은 명확히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기려야, 엄마를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될까?
아들에게 2700만 원을 빌리고 집을 나섰던 일.
물론 자신도 미안한 마음은 있다. 하지만 이쪽도 선택지가 없었는데 뭘 어찌하란 말인가?
“어휴.”
젊을 때 멋모르고 빌린 대출에 힘들어하던 나날.
이화영은 집을 청소하다 김기려의 통장을 우연히 확인하게 된 적이 있었다.
[₩27,001,839]하루가 멀다고 빚 독촉에 시달리는 와중에 그런 큰돈을 보면 당연히 누구라도 유혹에 빠지지.
‘세상에 안 그럴 년이 어딨어.’
화영은 자신의 선택이 쉽게 비난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후에 집을 나왔던 건…….
단지 기려에게 미안해서, 식당 일로는 그 빚을 갚기 어려울 것이 뻔하니 얼굴을 보기 죄스러운 마음에 피한 것뿐.
따지고 보면 이것도 다 아들이 돈을 갚으라 부담을 줘서 생긴 일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이쪽도 도망까진 치지 않았을 것이다.
2,700만 원. 그 정도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게 고맙다고 그냥 줘도 됐을 것을.
“하여간 걔도 참…….”
그래도 이제는 이런 자잘한 고민이 다 끝이다.
기려는 그사이에 무려 S급으로 각성했으니.
가난에서 벗어난 착한 아들은 잠깐의 실수를 용서해줄 것이다.
어제만 해도 자신의 통화를 그렇게 반갑게 받아주지 않았던가?
마치 과거의 일 따위는 다 잊었다는 듯이!
“아유, 요즘 또 허리가 말썽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드디어, 내가 말년이 되어서야 팔자가 피는구나.”
이화영은 콧노래를 부르며 화장을 고쳤다.
그럼 슬슬 아들을 보러 가보자.
그녀는 얼마 안 가 마포역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부터 큰길을 따라 쭉 내려가고, 또 몇 분 걷다 보니 드디어 한 골목에 들어섰다.
“처음 와봐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네.”
보자, 분명 아들이 이 근처에 산댔는데…….
“아!”
전화를 해볼까 하고 호주머니를 뒤적이던 찰나. 멀리서 누군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장례식장에서나 볼법한 새카만 정장으로 몸을 옭아맨 젊은 남성.
“기려야!”
이화영은 아들을 발견하고 손짓한다.
오래간만에 만난 아들은 그사이에 신수가 훤해진 상태였다.
TV에 나올 때부터 알아는 봤지만, 돈을 얼마나 벌었길래 저런 때깔 좋은 옷도 척척 입고 다니는지.
“잘…. 있었니?”
화영은 짐가방을 내려놓고 아들을 힘껏 끌어안았다.
“건강해 보이니 다행이다. 엄마가 그동안 정신없이 힘들게 지내긴 했어도, 우리 아들 잘 있게 해달라는 기도는 매일 빼놓질 않았어.”
원래는 이다음에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상황을 설명할 계획이었다.
“기려야, 지금 와서 말하는 거지만 사실 내가 그때 어떤 사정이 있었느냐면…….”
“엄마.”
“으, 응?”
한데 아들은 그녀의 말을 툭 자르고 새로운 화두를 꺼냈다.
“물어볼 게 있는데.”
그가 삼백안을 굴려 화영을 내려다본다.
언제봐도 부친의 피를 짙게 이은 티가 나는 얼굴이었다.
“생각해보니 이상하게 아빠에 관련된 기억이 적길래.”
“어?”
“아빠는 지금 뭐 하고 있어? 혹시 연락처는 알아?”
그런데 설마하니 이런 질문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지.
화영은 크게 당황하며 답했다.
“무슨 소리니? 그, 그 양반은 예전에 폐암으로 죽었잖아. 벌써 한참 된 일인데.”
“아하.”
내가 이 이야기를 기려에게 안 했던가?
화영은 포옹을 풀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상대는 이 순간에도 뜻 모를 소리만 중얼거릴 뿐.
“가족력이 있었구만.”
금발의 헌터는 눈앞에 있는 화영에게 추가적으로 질문했다.
“엄마, 그런데 나 뭐 달라진 거 없어?”
“달라…진 거?”
“나보면 느껴지는 거 없냐고.”
이건 젊은 자식이 가족에게 건네는 가벼운 장난일까?
“글쎄, 우리 아들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화영은 그 소리를 듣고 잠깐 고민하는 척했지만 사실 이건 생각해볼 것도 없는 문제였다.
이 헌터는 과거와의 차이점을 쉽게 찾을 수 있는 편이었으니.
“그래. 염색을 예쁘게 했네! 호호, 아들. 설마 여자친구라도 생겼어? 웬일로 멋 부렸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