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210
209화
-이 코인은 뜹니다(3)
하지만 이현의 정중한 자기소개에도 테자스는 대답은커녕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어이, 아카샤. 설마 이 인간이 넥타르의 제조자이자 공급책이라는 건 아니겠지? 농담해?”
작은 행성이라지만, 지구의 신들이 만들던 영약을 한낱 인간이 만들 수 있을 리가.
테자스의 목소리에 의심하는 티가 역력했다.
꿈틀, 이현의 미간이 한껏 구겨졌다.
‘오냐, 지금은 참는다. 대신 제대로 갚아줄게.’
이현의 표정이 좋지 않자 아카샤가 테이블을 쾅 치며 목소리를 굳혔다.
“자네, 내가 소개하는 이에게 태도가 왜 그런 식인가!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
테자스의 언성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아카샤는 그와 동급의 존재였으니까.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네가 정 그리 못 믿겠다면, 눈앞에 있는 걸 보고 얘기하게나.”
아카샤가 거칠게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방금까지 그가 마시고 있던 넥타르가 담긴 잔이 놓여 있었다.
그걸 본 테자스의 몸이 다시 한번 크게 붉은빛을 뿜어냈다.
“오, 오오! 넥타르!”
테자스는 상회의 주인답게 아카샤와 마찬가지로 한눈에 넥타르를 알아보았다.
“저, 정말이네? 이걸 네가?”
그제야 자신을 보며 말을 건네는 테자스를 보며 이현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제 던전에서 만든 거죠.”
“저 말이 진짜인가?”
이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테자스가 다시 아카샤를 향해 물었다.
이현을 대화의 상대로 여기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보스 도이현의 말이 맞다네. 내가 보증하지.”
“당장 팔아! 있는 거 전부!”
테자스가 넥타르를 팔 생각에 환호성을 지르며 이현에게 윽박질렀다.
하지만 이현은 어느새 진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였다.
눈은 전혀 웃지 않은 채로,
“싫은데요?”
“뭐, 뭐?”
단칼에 테자스의 말을 거절해 버렸다.
“안 판다고 했습니다.”
이현의 단호한 거절에 테자스가 멍청하게 굳어 버렸다.
설마 격이 하등하기로 유명한 인간이 자신의 말을 거부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내,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거 맞나? 아카샤, 지금 쟤가 뭐라는 거야?”
테자스가 동의를 구하기 위해 아카샤를 바라보았으나, 그 역시 이현과 마찬가지로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쟤가 아니라, 판매자라네. 자네가 그렇게 목매고 있는 넥타르의 공급책이며, 내가 중개하는 거래인이지.”
“이, 인간인데?”
“인간이지만 던전 보스지. 우리의 고객이고. 총관님이 정한 룰은 잊지 않았겠지?”
아카샤의 지적에 테자스가 움찔했다. 하지만 곧 억울한 듯 언성을 높였다.
“암만 그래도 내가 한 상회의 주인이자, 이 던전 마켓의 이사인데!”
“나는 안 그렇나? 나는 저 보스에게 충분히 예를 다하고 있는데?”
“…….”
아카샤의 연이은 지적에 테자스가 입을 다물었다.
“자넨 그 성질부터 죽이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었지. 자네가 눈이 있다면 진즉에 발견했을 분을 몰라보다니.”
“뭐? 그게 누군데?”
테자스의 멍청한 대답에 아카샤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현의 옆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있는 티타니아를 가리켰다.
“티, 티타니아?! 그대가 여긴 어쩐 일로?!”
“오랜만이네요, 테자스. 전혀 반갑지는 않고요.”
“…….”
당장이라도 폭발할 거 같은 티타니아의 매서운 눈빛에 테자스가 대답도 못 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자네가 무시하고 있는 그 인간이 바로 티타니아의 새 주인이자, 총관의 관심을 받는 자라네.”
“……정말인가?”
아카샤가 밝힌 충격적인 사실에 테자스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이듯 물었다.
대답은 티타니아가 했다.
“물론이죠. 한낱 인.간.이지만요. 안 그래요, 주인님?”
“그래. 한낱 인.간.이지.”
쌍으로 날아오는 차가운 시선에 테자스가 당황해서 아카샤에게 도움을 청하듯 손을 내밀었지만, 아카샤는 못 본 척할 뿐이었다.
“자네 이럴 건가?”
“난 충분히 경고했네. 자네의 그 불같은 성질머리 때문인 걸 누구 탓을 하는 건가?”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테자스가 한숨을 푹 쉬더니 사과를 했다.
“미안하군. 사과하겠네. 내 넥타르라는 소리에 너무 흥분했나 보군.”
“……받아들이죠.”
“우리 주인님은 너무 성격이 좋아서 탈이라니까.”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이현과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대는 티타니아의 모습에 테자스는 더욱 기가 죽었다.
“내가 진심으로 사과하겠네. 어차피 나 외에는 거래할 대상도 없지 않은가?”
던전 마켓에서 영약을 팔 수 있는 권한은 오로지 연단 상회에만 있었다.
큰 실수를 하긴 했지만, 어차피 자신 외엔 거래할 곳이 없다는 자신감이 테자스에겐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이현의 콧방귀 앞에서 깨져 버렸다.
“글쎄요. 굳이 판매하지 않아도 쓸 곳은 많은 제품이라서요.”
이현의 시큰둥한 태도에 테자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걸 팔지 않겠다고? 그게 얼마나 큰 이득이 될지는 알고 말하는 거야?”
“아니깐 더 그런 거 아닐까요?”
이현이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당장 지금 아카샤 님께 드린 것처럼 선물로 드리고 원하는 지식을 얻어낼 수 있겠죠.”
“그, 그건 명백한 불법 거래야!”
테자스의 고함에 아카샤가 피식 웃었다.
“불법? 그저 내게 호의를 베푼 던전 보스에게 소정의 사례를 하는 것이 어떻게 불법 거래라는 거지?”
아카샤가 말한 대로 그 정도의 거래는 암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총관도 엄격한 편은 아니라 거기까지 손을 대지는 않는 편이었다.
“내가 총관에게 이걸 밀고한다면!”
“하, 바쁘디바쁜 우리 총관님이 겨우 그 정도로 이런 일에 신경 쓰실 거 같아요?”
이 자리에서 가장 총관과 오래 있었던 전문가 티타니아의 말에 테자스의 입이 다물어졌다.
이현이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렇다는데요?”
“……내가 뭘 하길 바라나?”
이현은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대며 입꼬리를 올렸다.
“글쎄요, 거래 조건에서 테자스 님의 마음이 드러나면 서운한 제 감정도 풀리지 않을까요?”
“……선처하겠네.”
결국, 테자스가 두손 두발을 다 들고 항복 선언을 했다.
* * *
“이 정도 금액은 어떤가?”
“별론데요.”
“그러면 여기에 이걸 더 얹어주지.”
“역시 선물로 돌릴까…….”
“에잇, 여기까지 양보하면 내가 손해다. 그러니 딱 여기까지!”
“……흠.”
테자스의 흥정은 이현에게 영 먹히질 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테자스의 뒤에서 아카샤가 계속 고개를 저으며 신호를 보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현은 그 신호를 보면서 계속 테자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있었다.
“잘 어울리는 콤비인데요?”
“조용히 해.”
이현이 생긋 웃으며 티타니아에게 속삭였다.
그러곤 마치 실망했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실망이네요. 아카샤 님은 저를 믿고 10만 DP를 투자해주셨습니다. 테자스 님은 절실해 보이지가 않으신가 봅니다?”
“시, 십만 DP?”
예상을 뛰어넘는 금액에 테자스가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아니, 암만 넥타르가 귀하더라도 10만 DP를 투자하는 멍청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것도 지식 상회처럼 가난한 곳에서!
테자스가 얼이 빠져 있든 말든, 이현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거기다 제시하신 병당 금액은 겨우 2,000 DP. 그 정도라면 연단 상회의 점원과 흥정해도 끌어낼 수 있는 금액인데. 상주라는 분이 그것밖에 안 되십니까?”
“나도 먹고는 살아야지!”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을 독점하시는 겁니다.”
“아니, 원래 독점인데…….”
“뭐라고요?”
훅 치고 들어오는 반문에 테자스가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이현이 말했던 대로 그가 다른 루트로 활용할 수 있다면 독점이 아니게 된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병당 5천 DP.”
“말도 안 돼!”
이현의 제시에 테자스가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희귀하더라도 그 가격이면 한 단계 위인 청옥액의 2배를 넘는 금액이야!”
청옥액의 시세는 2,000 DP.
정상적인 사고방식이 박힌 이라면 당연히 싸고 질 좋은 청옥액을 사 먹을 터였다.
하지만 가격이라는 게 어디 효과만으로 정해지는 것이던가?
“이런, 상회의 주인이라는 분이 수요와 공급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아니실 텐데요?”
희귀하고 찾는 이가 많으면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
거기다 다이아몬드 와인 잔처럼 아무 능력도 없는 사치품에 DP를 쓰는 걸 보면 가격의 거품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테자스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아무리 그래도 그건 내 살 깎아 먹기야. 마진을 남기기도 힘들뿐더러 5천 DP라면 사갈 이들도 많지 않아.”
거기까지 말한 테자스가 비장의 한 수를 꺼냈다.
“거기다 이 상품에는 큰 하자가 있지.”
“하자라뇨?”
“넥타르만으로는 불완전하다는 걸 모르는 건가? 허 참, 기본이 안 되어있군. 자기가 파는 상품에 대한 정보도 모른 체 흥정이라니.”
이현이 문제점을 전혀 모르는 기색이자 테자스가 의기양양해져서 외쳤다.
“넥타르는 원래 암브로시아랑 한 세트야. 그게 없는 반쪽짜리 물건을 누가 그 DP로 사겠어?”
“아, 그러니까 암브로시아만 있으면 세트로 5천 DP에 팔 수 있다 이 말씀인 거죠?”
“충분하다마다! 둘이 세트라면 5천 DP라도 불티나게 팔릴 거다.”
호언장담하는 테자스를 보며 이현이 히죽 웃었다.
“왜, 왜 그렇게 웃는 거지?”
갑자기 웃음을 짓는 이현을 보며 테자스가 불안에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현은 웃음기를 지우지 않으며 품속에 손을 넣었다.
“이야, 공교롭게도 제가 이런 걸 가지고 있거든요.”
품에서 나온 건 암브로시아를 담은 병이었다.
“그리고 제조법도 알고 생산도 가능하죠.”
“커, 컥!”
이현이 꺼내 든 암브로시아에 테자스는 물론 아카샤도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둘을 보며 이현이 빙긋 웃었다.
“약속 지키셔야 합니다. 5천 DP입니다.”
결국, 테자스는 자신이 말을 꺼낸 대로 암브로시아&넥타르 세트 1병당 5천 DP로 계약을 맺어야 했다.
* * *
테자스가 계약을 마치고 떠난 뒤, 이현과 아카샤는 그대로 남아 티타임을 마저 즐겼다.
“그래서 이번에 받은 DP로 뭘 살 생각이오? 전과는 차원이 다른 금액인데.”
아카샤의 물음에 이현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혹시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지식도 살 수 있습니까?”
지식을 사고파는 지식 상회. 스킬을 연구한 학문이나 연구라고 생각하면 팔 수도 있다.
그것이 이현이 던전 마켓으로 들어오기 전에 해왔던 생각이었다.
“왜 안 물어보나 했소.”
아카샤는 빛을 번쩍이며 만족스러움을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질적으로 던전 보스들이 우리 상회에서 가장 많이 찾는 상품이 그것이지. 스킬.”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하는 던전 보스들에게 우주의 진리나 사후세계의 진실 같은 학문보다는 스킬이 더 우선이었다.
“뭐, 가끔 불로불사에 집착하는 고객도 있지만, 그건 워낙 비싸서.”
“얼맙니까?”
흥미가 동한 이현이 물어봤지만, 무려 DP로만 수백억이 넘어간다는 이야기에 곧바로 머릿속에서 ‘불로불사’를 지워 버렸다.
“그렇다면 스킬은 저렴한 편입니까?”
“불로불사에 비하면 저렴하지. 하지만 그래도 비싼 편이라오.”
아카샤의 대답에 이현이 얼굴을 찌푸렸다.
“수백억 DP보다 싼 건 너무 당연한 소리 아닙니까?”
“허허, 농담이었소. 얼굴 펴시오.”
아카샤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손가락을 쫙 폈다.
“평범한 스킬북은 작은 걸로 5장, 즉시 습득이 가능한 스킬북은 큰 걸로 1장부터 시작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