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436
435화
-잊힌 사도(3)
마령관.
협곡 사이를 틀어막고 높게 쌓아 올려진 성벽과 거대한 관문은 난공불락의 요새나 다름없었다.
마교의 본산으로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이 관문 앞에 천 명에 가까운 무림인들이 도열해 있었다.
거기에 이현의 던전에서 나온 뉴뉴가텀 부대와 구울 부대, 그리고 무공을 배운 던전 사람들까지 합세하니 그 위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중 백미는 3m가 넘는 거대한 기계 거인, 골렘들이었다.
전신이 금속으로 이루어져 병장기가 듣지 않는 데다 손짓 하나로 사람의 골통을 부술 수 있는 골렘들은 적에게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물론, 아군에게는 사기를 백배하게 만드는 승리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들어라! 10년 전 마교가 발흥한 이래로, 너희 사교 무리가 수없이 많은 백성의 피와 눈물을 흘렸고, 무림에 흉사를 끼쳐 왔다. 이에 우리는…….”
마교의 깃발이 나부끼는 금강문 앞에 나선 은미환이 무림인들의 대표로 격문을 읽고 있었다.
1,800자에 이르는 격문은 구구절절 욕설인 데다가 평소엔 온화하기 그지없던 은미환이 목청이 터져라 마교를 성토하고 있었다.
“네 이놈들!!”
결국, 참지 못한 마교도들이 감추었던 모습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너희 같은 위선자들이 감히 우리를 욕할 자격이라도 있단 말이냐!”
“외당주님! 교주님께서 모습을 감추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놔라! 저 무례한 놈들을 가만히 놔두란 말이냐!”
덩치로는 거완력사 호광보다도 머리가 하나 더 큰 남자가 수하가 말리는 것을 뿌리치며 분노로 몸을 떨었다.
텁석부리 수염에 온몸이 근육으로 가득 찬 그는 거대한 도끼를 들고 야차와 같은 눈을 부라리는 것이 마치 금강역사와도 같았다.
외당주 이배성.
마교의 관문인 마령관을 지키는 외당의 당주이자 마교에서도 손에 꼽히는 고수 중 하나였다.
“백성을 위한다고 했느냐? 크핫핫핫! 본 당주가 불혹을 살면서 처음 듣는 개소리구나!”
분노해서 고함치는 그의 흰자에 붉은 핏발이 솟아났다.
“위선자들!”
외당주 이배성은 무림인이라면 뼈를 갈아 마셔도 속이 시원치 않을 정도로 그들을 증오했다.
“너희 때문에 피눈물을 흘린 백성들이 현교의 아래 구원받았다. 언젠가 우리 현교의 칼날이 너희 무림을 난자하리라! 황제도 마찬가지다! 크핫핫핫!”
분노가 섞인 광소를 터뜨리는 이배성의 웃음에는 내공이 섞여 있었다.
아직 내공이 약한 무림인 몇이 비틀거릴 정도로 강력한 내공이었다.
그때, 앞으로 나서는 이가 있었다.
“할(喝)!”
마찬가지로 내공을 담은 웅혼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누구냐!”
“소승은 현당이라고 합니다.”
선장을 짚고 외당주 이배성의 광소를 멈춘 이는 바로 소림의 방장 현당이었다.
“아미타불, 시주는 혹 이배성이 아닙니까?”
그의 정체는 바로 한때 소림의 속가 제자로 현당과 함께 수련한 적이 있던 이배성이었다.
그는 수련을 마치고 속세로 돌아와 가문의 사람들과 함께 표국을 운영해왔다.
“국주님! 녹림의 것들이 표물을 모두 훔쳐 갔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녹림의 산적들에게 표물을 모두 빼앗겼다.
이배성은 서둘러 이를 하소연하러 관에 들렸지만, 무림의 일은 무림에서 해결하라며 문전박대당했다.
그래서 그가 찾아간 곳이 남궁세가였다.
‘본래라면 자신의 사문인 소림을 찾아가야 하겠지만…….’
그는 피를 볼 일에 소림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고 안휘성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소림은 너무 멀었다.
그래서 이배성은 가까운 남궁세가에 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사해가 무림 동도이니, 우리 남궁세가는 이 국주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요.”
하지만 흔쾌히 도움을 약속했던 남궁세가는 다음날, 바로 말을 바꾸고 그를 내쳤다.
“미안하오. 가문에 흉사가 있어서 도움을 주기 어렵게 됐소.”
“아,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말씀이 다르지 않습니까!”
어처구니가 없어진 그가 남궁세가의 문을 수차례 두드려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싸늘한 냉대뿐이었다.
“어허. 이를 어쩐단 말인가.”
도움을 얻지 못해 허탈해져 털레털레 표국으로 돌아오는 그의 앞에 나타난 건, 불타오르는 표국이었다.
“안 돼!”
표물은 물론이고 표국의 표사, 쟁자수, 그리고 그의 아내와 떡두꺼비 같던 아들도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졌다.
진상은 그의 재물을 탐낸 고관대작 하나가 녹림을 시켜 표물을 빼앗았다가 무림의 개입이 있을 것 같자, 화근을 없애기 위해 불을 지른 것이었다.
고관대작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안 남궁세가는 이를 외면했고 결국, 그 사이에 표국은 잿더미가 되었다.
이 모든 사실을 안 이배성은 피눈물을 흘리며 귀신과 같은 얼굴이 되어 안휘성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 뒤로 아무도 그의 자취를 알지 못했었는데, 이배성이 마교에 몸을 투신했었다니.
한때 그와 함께 수련했던 동기인 현당이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 시주. 시주의 가문과 표국에 일어난 참혹한 일은 소승도 안타깝게 생각하오. 하지만 마교에 몸을 투신하다니…….”
“안타까워? 크하하하! 개소리가 아주 맛깔나는 것이 네놈도 정파라 자처하는 위선자들과 다름없구나. 한때 너를 사형이라 부르며 존경했었거늘…….”
이배성이 핏발 선 눈으로 현당을 노려보았다.
“아무도 내 복수에 나서주지 않았다. 소림마저도! 그렇게 권력과 돈이 무섭더냐!”
“아미타불…….”
현당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당시 방장이던 그의 스승은 고관대작의 막대한 시주를 받고 외면하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를 도와준 이는 교주님뿐이었다! 교주님은 내게 힘을 주었고 원수의 목을 가져다주셨다!”
“역시 그 사건도 마교의 짓이었나.”
개방의 주팔공이 이배성의 외침에 혀를 찼다.
경비와 치안이 삼엄한 황성 한가운데서 고관대작의 목이 달아나는 사건이 있었다.
놀란 황제가 명을 내려 사건을 조사했지만, 그 흉수를 알 수가 없어서 미결로 남았던 일이었다.
그것이 마교의 짓이었다니.
“나는 그때 결심했다. 내 모든 것을 교주 충충도인께 바치리라고! 그리고 충현진인의 가르침을 중원에 퍼뜨릴 것이다!”
광기와 분노로 얼룩진 이배성의 두 눈이 무림인들을 향했다.
“그 첫걸음이 바로 무림인과 황제의 목을 베는 일이 될 것이다.”
대역죄나 다름없는 그의 발언에 무림인들이 술렁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명문정파라 불리는 남궁세가와 소림이 그의 비극을 외면했다는 점에 무림인들의 사기가 내려가고 있었다.
“이래선 마치 정의가 마교에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이런 소리까지 흘러나올 정도였다.
흔들리는 무림인들을 본 이배성이 히죽 웃어 보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당장 무기를 버리고 현교에 투항하라. 그리고 충현진인의 가르침을 받…… 컥!”
퉁!
작은 소리와 함께 호기롭게 외치던 이배성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명중!”
골렘의 어깨에 올라가 있던 소녀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마혈소총 [악 불카누스]를 들고 있던 민아의 저격이었다.
상반신의 반 이상이 날아간 이배성의 모습에 무림인도, 마령관의 마교도들도 당황하는 사이, 몽중현녀 윤나진이 앞으로 나섰다.
“정의고 뭐고 상관없어.”
북해의 빙정을 깎아놓은 듯 싸늘한 얼굴로 나진이 입을 열었다.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격과 내공이 실린 그녀의 말은 마령관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현이를 내놔. 그렇지 않으면.”
나진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다시는 마교라는 이름을 입에 담지도 못하게 해줄 테니까.”
말을 마친 나진의 손이 올라갔다가 휙, 아래로 떨어졌다.
당황하는 무림인들을 뒤로하고 던전의 군세가 고함을 지르며 마령관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보스를 구하자!”
“마교를 쳐 죽이자!”
던전의 군세에겐 어느 쪽에 정의가 있건 상관이 없었다.
이현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그들이었기에, 그를 구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방해하는 이들은 모두 쓰러뜨릴 뿐이었다.
시작은 사격이었다.
퉁! 퉁! 퉁! 퉁!
민아와 뉴뉴가텀의 사수들이 마혈소총과 스팀건을 쏘아 성벽 위의 마교 무인들을 쓰러뜨렸다.
“뭐냐! 보이지 않는 화살이다!”
“아냐! 암기다!”
“크아아악!”
총이라는 무기를 구경도 하지 못했던 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푹푹 쓰러져 나갔다.
그들을 지휘할 외당주 이배성이 민아의 저격으로 쓰러졌기에, 혼란은 더욱 커져 갔다.
“성벽 위로 몸을 숨겨라!”
겨우 정신을 차린 부당주가 지시를 내렸지만, 이미 그때는 다음 공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서, 성벽을 타고 올라온다!”
10여 미터가 넘는 성벽을 마치 도마뱀붙이처럼 타고 오르는 이들은 구울 부대였다.
“히히, 이거 마치 스파이더맨 같구만?”
“주 피디님, 농담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올라가요. 어휴, 살 떨린다.”
주지남과 민수가 단단한 돌에 손가락을 박아 넣어가면서 성벽을 오르고 있었다.
언데드가 되어 인간 이상의 힘을 가진 구울 부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좀비 로드 부대였다.
전쟁을 앞두고 티타니아가 임시 보스의 권한으로 그들을 모두 승격시켰기 때문이었다.
“적을 떨어뜨려라!”
“충충가향 충현진인!”
그들이 성벽을 거의 다 오르자 기겁한 마교도들의 창과 칼이 좀비 로드 부대를 향했다.
“난 기독교야!”
교회라곤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때만 가는 나이롱 신도였지만, 주지남이 내질러지는 창을 잡고 간단히 부러뜨렸다.
“으아악!”
“내가 참된 전도 맛을 보여주마!”
주지남을 비롯해 좀비 로드 부대들이 성벽을 모두 오르자 마교도들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외당의 일원들 모두 내공을 지닌 고수인데 이럴 수가……!”
마령관을 지키는 이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충란선단을 먹은 내가고수들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좀비 로드라는 상격의 언데드 앞에서는 한낱 인간에 불과했다.
“크아악!”
“버텨라! 저들이 모두 성벽을 오르진 못할 터! 지원군이 올 때까지 성문을 지켜야 한다!”
“당주님!”
오른팔과 어깨가 모두 날아간 이배성이 겨우 정신을 차린 듯 지시를 내렸다.
“쳇, 안 죽었네.”
그 모습을 본 민아가 혀를 찼다.
이배성은 민아의 저격을 맞는 순간 무너져 내리긴 했지만, 그는 마교에서도 손꼽히는 고수인 외당의 당주였다.
총에 맞자마자 재빨리 점혈해 출혈을 막고 내공을 끌어 올려 몸을 보호했다.
그 직후 잠깐 기절하긴 했지만, 정신을 차린 후에는 다시 마교도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마령관의 성문은 공성 병기라도 가져오지 않는 이상 뚫을 수 없다. 그러니 버텨라!”
“나진 양, 쟤들 버틸 셈인가 본데요?”
“우습네요.”
성벽 아래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티타니아와 나진이 피식 웃었다.
“공성 병기가 필요하다니 보여주죠. 우리의 공성 병기를. 릭!”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진의 부름에 푸시식! 배기음을 내뿜으며 골렘들이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지축을 뒤흔들며 달려간 골렘들의 손에는 오면서 베어낸 천산산맥의 아름드리 거목들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간이 공성추였다.
콰아앙!
골렘의 힘과 거목으로 만든 공성추가 성문에 내려꽂히자 성문이 버티질 못하고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모자랐다.
“아, 아직이다! 버틸 수 있어!”
이배성의 외침대로 공성추의 연이은 충격에도 성문은 버텼다.
오히려 공성추로 쓰는 나무들이 으깨지고 있었다.
골렘들 역시 포기한 듯 공성추를 버리자 이배성의 얼굴에 희망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더 강한 맛을 보여 주자구! 스팀건 들어!”
퉁! 퉁! 퉁!
골렘용 스팀건이 발사됨과 함께 간신히 남아 있던 이배성의 희망은 성문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