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437
436화
-잊힌 사도(4)
우지직!
난공불락의 마령관 성문이 무너지는 순간, 이배성이 피를 토하는 외침을 내뱉었다.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컥!”
“앗싸! 이번엔 제대로 맞췄다!”
퉁!
민아의 환호성과 함께 이배성의 머리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대로 그의 몸뚱어리가 성벽 위로 쓰러졌다.
“크아악!”
“진인이시여!”
이배성뿐만이 아니었다. 성벽을 타고 올라간 좀비 로드 부대와 성벽 밑에서 쏘아대는 스팀건 부대의 활약으로 마교도들은 하나둘씩 쓰러지고 있었다.
“가, 강하다.”
“우리가 필요 있나?”
무림인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던전의 군세는 강력했다.
하지만 충란선단을 먹은 마교도들은 한 번 죽였다고 끝날 정도로 쉬운 이들이 아니었다.
“퀴에엑!”
“크퀴이잇!”
목이 잘리고 배가 뚫린 마교도들의 시체에서 사람 허벅지만 한 굵기의 지네들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숙주를 잃은 권속 지네들이 살기 위해 뛰쳐나오는 것이었다.
“어휴, 징그럽네. 다들 바깥으로 떨어뜨립시다!”
“버려, 버려!”
민수의 외침에 좀비 로드 부대들이 방금 밖으로 나와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권속들을 성벽 밑으로 떨어뜨렸다.
퍽! 퍽!
10여 미터나 되는 높이에서 떨어진 권속 지네들은 반항도 하지 못하고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죽기 시작했다.
간혹 끈질기게 살아남아 몸을 꿈틀대는 권속들도 있었다.
“살아남은 놈들을 처리하자!”
하지만 그런 권속 지네들은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던전 사람들의 손에 끝장이 났다.
스팀건과 병장기가 몇 번 스쳐 지나가자 살아남은 권속 지네는 한 마리도 없었다.
아니, 단 한 마리가 남아 있었다.
“크퀴에에에엑!”
외당 당주이자 마교에서 손꼽히는 고수인 이배성은 교주에게 특별한 충란선단을 받았다.
그렇기에 그의 몸에서 튀어나온 권속 지네는 범소백의 것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강하고 컸다.
“퀴에에에엑!”
사람 허리 굵기만 한 몸통을 가진 권속 지네가 몸을 비틀며 흔들어 대자, 단단한 돌로 만들어진 성벽이 무너져 내릴 정도였다.
“뒤로 물러나!”
“보통이 아니다!”
좀비 로드가 된 캠핑장 사람들도 그 사나움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후퇴할 정도였다.
나진은 성벽 밑에서 이배성의 권속 지네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보통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겠네.’
무림인들이나 좀비 로드들은 물론이고 골렘도 힘겨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대할 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유주야.”
“네. 사부님.”
나진의 부름에 그녀의 제자, 유주가 앞으로 나섰다.
이배성의 권속 지네를 노려보는 그녀의 눈은 호승심과 단호한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할 수 있지?”
유주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범소백의 권속 지네를 처리하지 못한 일로 크게 반성하고 뼈를 깎는 수련을 해온 그녀였다.
나진은 그런 제자의 수련을 지켜봐 왔기에 유주가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녀오렴.”
“네!”
타닷.
유주가 가볍게 바닥을 차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 방향은 성문을 박살 낸 골렘들이 있는 곳이었다.
“어깨 좀 빌려주시겠어요?”
“얼마든지!”
릭의 대답에 방긋 웃은 유주는 가볍게 몸을 띄워 골렘의 위로 올라섰다.
“차핫!”
골렘의 무릎, 어깨, 그리고 머리까지 밟은 유주가 몸을 굽혔다 펴는 반동을 이용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엇! 위험해!”
그래도 성벽의 반도 올라가지 못한 유주를 보며 무림인들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유주의 몸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
“가려무나!”
은미환이 암기처럼 쏘아낸 나무판자가 마치 계단처럼 차례대로 유주의 앞으로 날았다.
유주는 그대로 그걸 밟고 다시 몸을 허공으로 띄워 올렸다.
“천상제(天上梯)!”
허공을 계단을 걷듯이 오르내린다는 전설 속의 경신술에 무림인들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은미환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이미 기적에 가까운 경지의 경신술이었다.
하지만 이배성의 권속 지네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유주를 가만히 둘 리 없었다.
“퀴에에엑!”
권속 지네의 거대한 턱이 벌어지더니 산성 액체가 물대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유주야!”
밑에서 은미환의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유주는 가볍게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산성 액체를 피했다.
치이익!
유주가 밟고 뛰어올랐던 나무판자들이 산성 액체를 뒤집어쓰자 연기를 뿜어내며 타들어 갔다.
만약, 유주가 직접 그 액체를 뒤집어썼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을지도 몰랐다.
“퀴에에엑!”
“앗!”
자신의 공격을 쉽게 피한 유주의 모습에 약이 오른 권속 지네가 꼬리를 휘둘러 유주가 마지막으로 밟을 나무판자를 쳐냈다.
성벽까지 단 한 걸음을 남겨 놓았던 유주의 신형이 추락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당황하는 대신 몸을 활처럼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튕기듯이 폈다.
“궁신탄영!”
몸을 펴는 반동으로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는 유주의 검이 곧게 뻗어져 나갔다.
“[화예소휘검-화류낙월(花流落月)].”
유주 특유의 새하얀 검기를 담은 검이 목련과도 같은 꽃잎을 휘날리며 권속 지네를 찔렀다.
“크퀴이익!”
쿵!
화류낙월의 검식이 몸통을 그대로 반으로 쪼개 버리자, 이배성의 권속 지네가 두 동강이 나서 바닥에 쓰러졌다.
이내 마치 선녀가 구름에서 내려오듯, 흰 무복을 펄럭이며 유주가 성벽 위로 착지했다.
“소검후가 해냈다!”
“역시 몽중현녀의 제자다!”
성벽이 무너져라 외치는 무림인들의 환호 속에서 나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저건 또 언제 배웠대.”
[화예소휘검].월녀검문의 제자였지만, 동시에 나진의 제자였던 유주가 스승의 창술 [화예소휘창]을 보고 만들어 낸 새로운 검법이었다.
제자의 놀라운 성취에 놀라움과 기쁨을 잠시 만끽하던 나진이었지만, 지금은 마음 편히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성벽은 함락되었고, 성문은 열렸습니다.”
나진의 말에 삼인방과 은미환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제, 마교를 쓸어낼 시간이에요.”
“존명!”
“존명!”
“명을 따르겠어요.”
은미환과 주팔공, 태허자가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나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목청을 높여 무림인들을 지휘했다.
“성문을 통해 진격하라!”
“마교 놈들을 물리치자!”
“몽중현녀의 이름으로!”
천 명의 무림인들이 함성을 지르며 성문 안으로 향했다.
던전의 군세와 유주가 보여준 기적 같은 무위로 사기가 충만한 무림인들이었다.
그 소리만으로도 성벽이 무너질 정도였다.
그렇게 무림인들과 던전의 군세가 성벽 안으로 향하고 남은 이는 단 두 명이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나요?”
나진은 자리를 지키고 남은 현당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현당이 반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미타불, 현녀께서는 앞으로 마교를 어쩌실 생각입니까?”
“어쩌다니요? 이현이를 구한 다음 모조리 없애야죠.”
“아미타불.”
나진의 차가운 말에 현당이 불호를 외우며 탄식을 내뱉었다.
“하오나 그들도 이 땅의 백성이었습니다. 이배성의 한 짓은 천하의 모두가 침을 뱉을 악행이었지만, 그의 사정은 딱하지 않습니까?”
한때 이배성의 동기였던 현당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마교의 주구가 되어 칼을 휘두르는 악한들은 처벌받아 마땅하나, 단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마교에 투신한 백성들도 있을 겁니다.”
“…….”
“그런 백성들마저 칼날의 핏방울로 끝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소림의 방장은 무림의 거두이지만, 동시에 살생을 금하고 중생을 제도할 의무를 가진 불가의 승려였다.
관과 무림인들이 돕지 못해 비뚤어져 버린 불쌍한 백성들을 죽이는 데 앞장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요?”
하지만 나진의 대답은 차가웠다.
“난 이곳의 사람이 아니에요. 이곳 백성의 애환과 슬픔은 여러분들이 알아서 하세요.”
“맞는 말입니다. 하나…….”
몽중현녀의 차가운 대답에 놀란 현당이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나진은 그런 현당을 보지 않고 성벽 안쪽, 이현이 있을 마교의 본산을 노려보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이현이를 구하고 마교를 무너뜨릴 거예요.”
“…….”
“그걸 방해한다면, 무림인들이라도 내 창 앞에서 자유롭지 않을 거예요. 기억해 두세요.”
‘몽중현녀 윤나진과 도이현은 천계에서 내려온 이들. 현녀의 말에 하나도 틀림이 없다. 허허, 우리의 업보로구나.’
진즉에 백성들을 돌보았다면, 마교의 발흥을 막았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현당은 고개를 떨구며 불호를 외울 수밖에 없었다.
나진은 그런 현당을 내버려 두고 탈라리아의 힘으로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성벽을 넘어 마교의 본산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티타니아가 날개를 펼치고 허공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티타니아, 나 왔어요.”
“왜 이렇게 늦었어요?”
나진이 현당이 했던 말을 들려주자 티타니아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어휴, 저 대머리 아저씨, 중요한 싸움 앞두고 무슨 소리 하나 했네.”
“저기, 스님은 대머리가 아니라…….”
“몰라요. 빡빡이가 대머리지. 내가 알 바예요?”
만약에 들었다면 현당의 수양이 무너질 만한 티타니아의 악담에 나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이현이 있는 곳은 찾았나요?”
나진의 물음에 티타니아가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없어요. 마교 전체가 이상할 정도로 텅텅 비었어요.”
사기 충만해서 달려온 무림인들도 텅 비어 버린 마교 본산의 모습에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진은 이현은커녕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마교의 모습에 얼굴이 어두워졌다.
‘대체 어디에 있는 거니, 이현아.’
* * *
교실이었던 던전의 모습이 무너져내렸다.
석양빛으로 물들었던 하늘도, 학생들이 앉던 책상과 걸상도, 그리고 칠판도 모두 무너져 내려 암흑만이 남았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이현과 정신을 잃은 윤나진뿐.
이현은 암흑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낯익은 기시감을 느꼈다.
‘이거 심상 공간이랑 비슷한데?’
던전수와 접촉해서 던전을 관리할 수 있는 심상 공간에 처음 들어갔을 때 딱 이런 느낌이었다.
‘그러면 여기가 이 던전의 심상 공간인가?’
던전의 심상 공간은 던전 보스의 정신세계를 반영한다.
이현은 저도 모르게 정신을 잃은 윤나진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윤나진의 심상 공간일까?’
하지만 이현은 곧 고개를 저었다.
던전의 명목상 보스는 윤나진일지 몰라도 이 던전의 실제 주인은 그녀가 아니었다.
자신이 규격 외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사도 표사트.
그가 바로 이 던전의 진짜 주인이었다.
‘사도가 규격 외의 힘을 가지고 있다니. 그게 가능이나 한 일인가?’
규격 외의 힘은 원래 주인이었던 티타누스가 벌레 신의 무리를 소멸시키기 위해 만들어 낸 힘이었다.
벌레 신의 무리에게 가장 상극인 그 힘을 벌레 신의 사도가 가지고 있다니 이현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확인이 필요했다.
“표사트! 어디에 있는 거지? 나와라!”
참다못해 이현이 어둠 속에서 크게 외친 순간이었다.
[빛이 있으라.]번쩍!
먼 곳에서 거대한 빛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빛의 정체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붉은 항성이었다.
[그리고 멸하라.]그 말이 끝나는 순간, 심상 공간 전체가 어마어마한 충격에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초신성의 폭발이었다.
거대한 붉은 항성이 그대로 폭발하며 막대한 에너지와 충격파를 뿜어낸 탓이었다.
“으윽!”
이현은 눈과 몸을 태워 버릴 것 같은 빛과 열기에 윤나진의 앞을 가로막으며 규격 외의 격을 끌어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을 쉬기조차 힘든 힘이 이현을 덮쳐왔다.
마치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지난 후, 이현은 감았던 눈을 떴다.
“……끝났나?”
빛과 열기는 환상이었는지, 이현을 실제로 태우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현이 느꼈던 에너지만큼은 진짜였다.
“이건…….”
몸이 멀쩡한 걸 확인하고 고개를 든 이현의 눈앞에 떠올라 있는 것은 거대한 성운이었다.
별이 폭발하고 남은 가스와 먼지가 환상적인 빛을 내뿜으며 신비한 모습을 이루고 있었다.
“……곰벌레?”
곰벌레의 모습을 한 성운을 보며 이현이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때였다.
[내가 바로 표사트다. 규격 외의 힘의 주인.]우주적 규모를 자랑하는 곰벌레가 입을 열어 자신을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