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501
외전 5화
-규격 외 던전 보스
이현이 던전에 휘말렸던 그 시점부터, 지구는 끔찍한 재앙에 휩쓸려야 했다.
곳곳에 던전 돔이 생겨나 사람들이 실종되었고,
사도의 권속들이 태어나 인류를 공격했다.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냈던 인류 문명은 파괴되었고 생존 인류는 고작 1억 명에 불과했다.
이 모든 것이 고작 몇 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새로운 지구라는 안전한 보금자리를 얻게 된 것에 기뻐했다.
지구 문명 중 멀쩡한 부분은 그대로 새로운 지구에 옮겨졌고 파괴된 부분도 재건 중이었다.
무엇보다 이제 더는 벌레 신이나 외계의 끔찍한 존재들에게 위협당할 일이 없었다.
바로 이 행성의 주인이 규격 외의 신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끔찍한 재난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PTSD.
모든 것이 끝나고 평온한 나날이 찾아오자 사람들은 찾아오는 과거의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여보……. 얘들아…….”
“어머니, 불효자를 용서하세요.”
“아아악! 다가오지 마! 오지 말라고!”
가족과 지인을 잃은 사람들은 슬픔과 우울함에 빠져 살았고, 쌀알만 한 개미만 봐도 공황에 빠져 집을 불태우는 이들도 있었다.
1억 명의 생존자들은 모두 크건 작건 PTSD를 앓고 있었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이들은 가족이 생존해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살아남은 가족들을 위해 새로운 삶에 빨리 적응해 나갔다.
가족을 가진 사람들은 그랬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상태가 심각해.”
이현의 말에 이아코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진의 영역이지만, 나도 대충은 알아. 다들 내 신전에 와서 술을 찾거든.”
술로 기억을 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술이 가져다주는 망각은 잠시일 뿐이었고, 숙취와 함께 돌아오는 끔찍한 기억과 절망은 사람들을 더 무겁게 짓눌렀다.
홀로 살아남은 이들 중 대부분이 폐인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는 나진의 보고를 받고 이현은 고민에 빠졌다.
‘이들을 구제해주고 싶다.’
하지만 이현이 아무리 규격 외의 신이더라도 그들 하나하나의 마음을 구원해줄 수는 없었다.
그때, 마침 연락을 해온 이가 바로 표사트였다.
‘조만간 지구-2의 던전과 헌터들을 모두 정리할 생각이야. 네 새로운 행성에서 도움을 주면 좋겠는데?’
애초에 약속한 바가 있었기에 이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중 지구-2와 지구-1의 유사성을 떠올렸던 것이었다.
‘PTSD를 겪는 이들을 지구-2로 보내자.’
가족을 모두 잃은 그들과 다르게 지구-2에 있는 동일한 존재들은 평범하게 아직 살아 있는 가족들과 지내고 있었다.
이현은 PTSD에 시달리는 사람 중 지구-2에서 이미 죽었거나 던전 사태로 실종되어 존재하지 않는 이들을 지구-2로 보낼 생각이었다.
‘저쪽에서는 죽은 자가 돌아오거나 실종된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버리는 이상한 일이 되겠지만.’
던전이 있는 세상이었다.
윤나진이 몇 년 만에 복귀했듯이 던전 사태에 휩쓸렸다가 다시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하면 그만이었다.
아마 그들은 지구-2에서 이렇게 불리게 될 터였다.
“귀환자.”
이현이 1억 명의 명단을 살피며 말했다.
“귀환자 프로젝트. 이게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이야.”
“그런데 말이야.”
이현의 설명이 끝나자 이아코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음료를 들이켰다.
“저쪽으로 옮겨간다고 해도 힘들었던 기억은 그대로 아니야?”
이아코스의 말이 맞았다.
아무리 지구-2에 잃어버린 가족들과 동일한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귀환자들의 뇌리엔 죽어가던 가족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을 터였다.
오히려 평행 세계의 가족들을 볼 때마다 죽은 가족들을 떠올리며 더 괴로움에 몸부림칠 터였다.
이현도 그걸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해, 이아코스.”
“나?”
이현의 말에 이아코스가 텅 빈 잔을 내려놓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의 기억을 완벽하게 지워줄 넥타르를 만들어줘. 정확히는 최근 10년의 기억이 사라지도록 하는 넥타르가 필요해.”
이현의 말에 이아코스는 그제야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끔찍한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새로운 곳에서 간절히 원하던 가족들과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귀환자 프로젝트였다.
10년간의 기억을 지우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구-1과 지구-2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10년 전 일어난 지구-2의 던전 게이트 사태였다.
10년간의 기억을 잃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도착한 곳이 지구-2라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로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될 터였다.
“할 수 있겠어?”
“…….”
이현의 물음에 이아코스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원래 신화 속에서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는 신들의 영생을 책임져주는 음식이었다.
실제로는 꾸준히 섭취하면서 격을 높여 신의 수명을 늘려주는 영약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아코스가 누군가.
바로 술의 신이었던 디오니소스의 신격을 물려받은 이였다.
그 덕분에 지금껏 여러 가지 넥타르를 만들어 올 수 있었다.
영약, 독약, 치료약 등등.
이아코스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가슴을 탁탁 쳤다.
“당연히 할 수 있지. 나를 뭘로 보고 그러는 거야?”
“고맙다. 빨리 만들어줬으면 좋겠어. 조금 많이 필요할 거 같거든.”
“얼마나 필요한데?”
“1만 명분?”
“마, 만 명?”
기겁하는 이아코스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현의 눈은 노트북으로 향해 있었다.
PTSD에 시달리는 사람 중 지구-2로 향할 수 있는 조건에 적합한 귀환자 후보는 총 만 명 정도였다.
아직 동일한 존재가 지구-2에서 살아 있는 경우를 제외한 인원이었다.
이번에 가지 못한 이들은 동일한 존재가 죽거나 실종된 뒤에야 이동할 수 있을 터였다.
이현은 노트북을 탁 덮으며 이아코스를 바라보았다.
“할 수 있지?”
“으, 응.”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아코스를 보며 이현이 히죽 웃었다.
* * *
한편, 나진은 이길수에게 지구-2의 생활을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다.
“정말요? 이경이가 진짜 그랬단 말이에요?”
“네, 넵! 부길드 마스터께서는…….”
본인은 정작 지구-2로 가본 적이 없지만, 그곳에서 살았던 윤나진의 기억이 나진에게 고스란히 있었다.
그랬기에 나진은 이길수가 말하는 지구-2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그리워할 수 있었다.
“세상에, 조자룡 아저씨랑 페르세우스 아저씨가 던전을 박살 내고 다닌다니.”
“그 때문에 헌터들의 반발이 많습니다. 물론, 신경도 쓰시지 않는 분들이라서…….”
이길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이현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나진은 알고 있었다.
이현과 표사트는 지구-2에서 던전과 헌터를 점차 없앨 계획이었다.
헌터들 중 질 나쁜 이들은 지금처럼 새로운 지구에 보내서 처리한다면, 지구-2의 던전은 물리적으로 때려 부수는 모양이었다.
“그전까지는 던전에 가까이 가지도 않던 영령분들이 ‘제한이 풀렸다’며 눈에 보이는 대로 던전을 소멸시키고 있습니다. 아무도 말리지도 못해요.”
안 그래도 던전이 점차 소멸하는 상황인데 엎친 데 덮친 격이라며 이길수가 울상을 지었다.
‘아마 다른 던전들이 사라지는 것도 영령 혹은 표사트의 지시를 받은 다른 존재들이 한 일이겠지.’
아마 조만간 표사트가 만들었던 지구-2의 던전은 모두 소멸하고 총관이 운영하는 진짜 던전들이 생겨날 터였다.
사념 에너지 소모를 위해서는 아무래도 원조 던전이 더 효율적이었으니까.
“역시 이현이가 하는 일 중에는 틀린 게 없다니까.”
이현의 계획이 잘 흘러가는 것을 깨달은 나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때였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현아!”
USB 내용을 확인하고 온 이현이 허공을 찢어 만든 차원의 균열 속에서 쏙 얼굴을 내밀었다.
나진은 반가움 반 미움 반인 얼굴로 이현의 얼굴을 보며 활짝 미소 지었다.
“온다면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미안해요. 요즘 저쪽이 정신없이 바빠서요. 누나는 잘 지냈어요?”
“아무리 그래도…….”
이현이 차원의 균열에서 완전히 나오며 나진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한바탕 푸념을 쏟으려던 나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럴 수도 있지. 잘 왔어, 이현아.”
“보고 싶었어요, 누나.”
이현은 부드럽게 웃으며 나진을 끌어안았다.
중간중간 던전 시스템을 통해 이야기를 주고받긴 했지만, 이렇게 얼굴을 마주 대고 만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때문에, 나진도 싫진 않은지 그대로 이현의 품 안에서 얼굴을 붉혔다.
마치 이 자리에 둘밖에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평행 세계의 기, 길드 마스터가…….’
물론,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이길수는 민망해하면서도 그 모습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나중에 지구-2로 돌아가면 길드 마스터와 부길드 마스터에게 이 장면을 꼭 보고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이길수 헌터?”
“……네, 넵!”
잠시 멍하니 있던 이길수는 이현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그런 이길수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던 이현이 입을 열었다.
“데이터는 잘 받았어요. 큰 도움이 되었다고 저쪽에 전해주세요.”
“그, 그러겠습니다!”
기합이 바짝 들어가 대답하는 이길수를 보던 이현은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이길수 헌터에게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제게요?”
이현 같은 위대한 존재가 평범한 F급 헌터에게 부탁이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당황하는 이길수를 보며 이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저쪽에 보낼 물건이 몇 개 있어요. USB를 안전히 이곳으로 들고 온 이길수 헌터라면 믿고 맡길 수 있을 거 같아서요.”
물건을 몇 개 옮겨달라는 이현의 부탁이 생각보다 간단해 보이자 이길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정도야 뭐…….”
이길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현은 다행이라며 그에게 전달을 부탁할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건 설예린 헌터에게 보낼 [이프리트의 너클], 이건 허윤권 헌터에게 보낼 [분석의 외눈 안경], 그리고 이건 여사용이 쓸 [창해 역사의 찰갑]…….”
허공에서 이현이 손이 움직이는 대로 수십 개의 S급 아티팩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만 시중에 풀려도 이를 사겠다고 나라의 경제가 뒤흔들릴 정도의 고가품들이었다.
그런 S급 아티팩트가 수십 개가 튀어나오는 모습에 이길수는 자신의 눈도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이 중 하나라도 떨어뜨려서 흠집이라도 난다면 내가 보상할 수나 있을까?’
S급 아티팩트가 떨어뜨린다고 흠집이 날 리가 없었지만, 이미 빚에 시달리고 있는 이길수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꿀꺽 침을 삼켜야 했다.
게다가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저, 저, 제가 이걸 다 들고 갈 수 있을까요?”
외눈 안경처럼 크기가 작은 아티팩트도 있었지만, 갑옷처럼 혼자서 들기 힘든 크기의 아티팩트도 있었기에 이길수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이현에게 물었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아공간 주머니]도 함께 드릴 거니까요.”
이현은 주인이 될 사람들을 다 설명한 후 S급 아티팩트들을 다 아공간 주머니로 회수했다.
“이 주머니에 [자물쇠] 스킬을 쓰시고 가져가시면 될 겁니다.”
이현은 웃으며 주먹만 한 가죽 주머니를 내밀었다.
이길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가죽 주머니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어진 이현의 말에 다시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물건 다 나눠주면, 그 [아공간 주머니]는 이길수 헌터가 가지세요.”
“네?! 이걸 제, 제가 가져도 된다구요?”
기절할 것처럼 펄쩍 뛰는 이길수를 보며 이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에선 흔한 물건입니다. 수고비는 드려야죠.”
“세, 세상에. 이런 아티팩트가 흔하다니…….”
사실 흔한 물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티타니아가 회수한 던전 마켓의 상품들이 고스란히 이현의 것이 되었기에 그에겐 진짜 흔한 물건 중의 하나였다.
“저,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뭘로 갚아야 할지…….”
얼떨결에 [아공간 주머니]의 주인이 된 이길수는 눈물을 흘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런 이길수를 보며 이현이 그의 어깨에 손을 탁 올렸다.
“그럼 부탁 하나만 더 하죠.”
“네! 말만 하십쇼!”
“조만간 그쪽에 많은 사람들이 나타날 거예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
귀환자가 지구-2에 나타날 거란 소리였지만, 전후 사정을 모르는 이길수는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이현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이 있을 겁니다. 그때 그 사람들을 잘 챙겨 주세요. 당신이라면 잘해 낼 수 있을 겁니다.”
“네? 아, 네…….”
이현이 하는 소리의 반의반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길수였지만, [아공간 주머니]를 선물해준 이였다.
이길수는 꿈에서라도 잊지 않도록 그의 부탁을 뇌리에 잘 새겨놓기로 결심했다.
“그럼, 돌려 보내드리겠습니다. 올 때랑 다르게 가는 건 금방일 겁니다.”
이현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을 때만 해도 이길수는 그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곧 자신의 발밑이 허전해지는 것을 느끼곤 입을 쩍 벌렸다.
“서, 설마?”
“지구-2로 가는 직행 게이트입니다. 꽉 잡아요.”
“으, 으아아악!”
이길수는 이현의 말대로 [아공간 주머니]를 꽉 잡은 채, 발밑에 열린 차원의 균열 속으로 떨어져 사라졌다.
마치 땅으로 꺼지듯 사라진 이길수를 보며 나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잘 갔을까?”
“그렇겠죠?”
이후, 레이드 1팀이 전멸한 던전에서 홀로 살아 돌아온 것도 모자라 수십 개의 S급 아티팩트를 가져온 F급 헌터 이길수의 이름이 지구-2에 널리 알려지게 되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그러면.”
이현은 몸을 돌려 나진을 바라보았다.
동천복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본체와의 연결을 꺼버리는 것은 덤이었다.
오랜 시간 던전에서 고생을 함께 해왔던 나진에게 이현이 손을 내밀었다.
“시간 좀 내줄래요?”
나진은 생긋 웃으며 이현의 손을 잡았다.
“그거 팬으로서 하는 말이야, 아니면……?”
기대 반 짓궂음 반이 섞인 나진의 미소를 보며 이현이 말없이 빙긋 웃었다.
-외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