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bearing Tyrant RAW - chapter (761)
쿠아치노 II (10)
방금 전까지 여유가 넘치던 쿠아치노의 표정이 더할 수 없이 굳어졌다.
‘내 검술을 이리 쉽게 뚫고 들어오다니.’
초강자 머러스와 싸우면서도 별다른 부상을 입지 않았던 쿠아치노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아 머리털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이안과 단 한 번 검을 겨뤘는데 자신의 왼쪽 다리가 피로 물들고 있었다.
뼈까지 보이는 증상이었다.
‘절대 내 아래가 아니다.’
신중해진 쿠아치노는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다가오는 이안을 노려봤다.
그러고 보니 딜런의 보고는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
딜런은 톰브린을 도운 이안을 두고 깊이를 추측할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검사라고 평가했다.
암살을 실패한 것에 대한 변명 차원에서 다소 과장이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눈앞의 젊은 사내는 평생 단 한번도 만나 본 적 없는 대적이었다.
‘벨로린 왕국의 그 소식이 사실이었나 보군.’
뒤늦게 얼마 전 들은 알베른 영주의 무용담을 떠올리던 쿠아치노는 심해진 황사 바람을 뚫고 순식간에 유령처럼 다가와 검을 휘두르는 이안의 모습에 다시 한번 가슴이 섬뜩해졌다.
이안의 검 끝에서 수없이 많은 실줄 같은 검기들이 뻗어 나와 자신의 주변을 그물처럼 뒤덮고 있었다.
“이놈!”
노호성을 터트린 쿠아치노는 번개처럼 사방으로 검을 휘둘렀다.
붉은 빛이 그의 검신에서 빛살처럼 퍼지며 이안이 만든 검기의 그물을 잘라 버렸다.
콰콰콰쾅!
쿠아치노의 몸을 중심으로 폭음이 연이어 나며 불꽃이 튀었다.
이안의 검기를 막아 몸을 움직일 공간을 확보한 쿠아치노는 정면에서 검을 찌르는 이안의 검을 향해 마주 검을 날렸다.
전력을 다한 쿠아치노의 검은 새빨간 용암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내가 사막의 왕이다!”
스스로를 페르콘의 진정한 왕이라 생각하고 있던 쿠아치노는 검끝에 모든 의지를 담았다.
두 검이 충돌한 순간, 쿠아치노의 눈이 한껏 커졌다.
사막에서 적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강한 그의 포스가 장엄하게 빛나는 이안의 검에 의해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너는 사막의 왕이 아니라 낙타똥이다, 이 자식아!”
콰앙!
이안의 검을 막지 못한 쿠아치노는 폭풍에 휩쓸린 가랑잎처럼 뒤로 튕겨져 나갔다.
‘빌어먹을!’
하늘을 보며 뒤로 튕겨져 나가던 쿠아치노는 사막의 태양이 자신에게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정도로 이안의 검에 담긴 힘이 막대했다.
실 끊어진 연처럼 뒤로 튕겨져 날아가던 쿠아치노는 땅에 눕혀져 있던 고대 유적지 기둥에 처박혔다.
쿠웅!
금이 가 있던 돌기둥이 부서지며 먼지구름이 크게 피어올랐다.
“쿨럭, 쿨럭!”
기침을 하며 돌기둥의 잔해 속에서 일어난 쿠아치노는 일순 몸을 휘청거렸다.
그의 전신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말할 수 없는 현기증이 밀려 왔고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그를 덮쳤다.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군.’
쿠아치노는 현실감각이 뛰어난 자였다. 몇 번 검을 섞어 보자 이안을 상대로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상대는 동대륙 최고의 검사라 불려도 될 만한 실력자였다.
돌기둥에 등을 기댄 채 다가오는 이안을 노려보던 쿠아치노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굳이 너와 내가 싸울 필요가 있겠느냐!”
“이제 와서?”
이안이 저벅저벅 걸어오며 차갑게 응수했다.
쿠아치노는 부러진 검을 바닥에버리고 두 팔을 활짝 펼쳐 보였다.
“대화로 하자.”
“대화?”
이안은 쿠아치노와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쿠아치노는 이안을 향해 부드럽게 말을 했다.
“의견을 나누다 보면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결론이 도출될 것이다. 네가 저들을 돕는 이유가 지난번 내가 보낸 서신 때문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사과를 하겠다.
세리엥크 일은 두 번 다시 거론하지 않을 것이며, 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 그래, 이것은 어떠하냐? 네가 벨로린의 왕이 되겠다면 내가 전력으로 널 지원하겠다. 재물과 병력, 어느 것이든 네가 요청만 하면 나는 널 위해 아낌없이 지원하겠다.”
“벨로린의 왕이 되어라?”
이안이 관심을 보이는 것 같자 쿠아치노가 비틀거리며 이안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바뀐 말투로 정중하게 말을 했다.
“이안 영주, 큰 인물은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오. 자신에게 철저히 이득이 되는 바대로 움직여야지. 지난날은 모두 묻어 두고 나와 손을 잡읍시다.
나를 죽여 얻을 것보다 나를 동료로 삼아 얻을 게 훨씬 많다는 것은 당신도 느끼지 않소?”
“내 친구와 원로들을 배신하라고?”
“이안 영주, 권력자들에겐 영원한 친구도 우정도 없소. 권력을 위한 실리에 따라 움직이는 법이지. 아직 나이가 어려 더 큰 그림을 볼 줄 모르는가 본데, 충동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냉정히 생각하시오.”
“그렇게 살아왔냐?”
“뭐라 하셨소?”
이안은 손에 든 검을 검집에 넣으며 다시 말했다.
“그렇게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면서 권력을 강화해 왔냐고, 이 새끼야. 네가 친구란 뜻을 알기나 해?”
“이안 영주.”
“다정하게 부르지 마,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까.”
이안이 타협할 뜻이 없음을 내비치자, 쿠아치노의 눈빛이 순간 변했다.
“이안 영주, 그러지 말고 진지하게 생각……”
쿠아치노는 말을 하는 척하며 소매 속에 감춰 둔 작은 비수를 눈 깜짝할 사이에 꺼내 가까이 서 있는 이안의 가슴을 향해 찔러 넣었다.
일련의 과정이 실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재빨라 쿠아치노는 자신의 비수가 이안의 가슴에 꽂힐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헛된 망상이나 다름없었다.
이안의 강철 같은 손이 쿠아치노의 손목을 자신의 가슴 앞에서 낚아챈 것이다.
“교활한 놈들이 하는 짓은 늘 뻔하지. 너도 별수 없구나, 쿠아치노.”
이안이 고개를 내밀어 쿠아치노의 얼굴을 가까이서 노려봤다.
서로 숨을 쉬는 것이 느껴질 만큼 가까웠다.
“네놈이 날 죽이려 하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수치심에 얼굴이 벌게진 쿠아치노가 고함을 치며 이안의 얼굴을 이마로 들이받았다.
콰앙!
돌 깨지는 소리가 나며 쿠아치노의 상체가 뒤로 크게 휘청 거렸다.
이마로 들이받은 것은 그였는 데, 정작 이안은 끄덕도 없었고 자신만 손해를 본 것이다.
“그것도 박치기냐? 박치기를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쿠아치노의 한쪽 손목을 붙잡고 있었던 이안은 다른 손으로 그의 멱살을 틀어쥐고 앞으로 잡아당겼다. 그리고 강하게 쿠아치노의 이마를 자신의 이마로 찍었다.
와작!
이마 뼈가 함몰된 쿠아치노는 숨이 턱 막히는 고통에 입을 쩍벌렸다. 두개골이 반으로 갈라지며 그의 영혼도 잘게 부서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한 번으로 되겠어?”
이안은 연속으로 쿠아치노의 이마와 얼굴을 자신의 머리로 내리 찍었다.
퍽! 퍽! 퍽!
이마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쿠아치노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대로 맞아 죽겠다 싶었는지, 그는 무릎으로 이안의 급소를 공격해 일단 이 위기를 벗어나려 했다.
힘을 모아 무릎으로 이안의 급소를 올려 치려던 쿠아치노의 눈이 부릅떠졌다.
“커헉…… 이 개자식.”
“네가 하려던 짓을 내가 먼저한 거야, 이 자식아. 어딜 치려고.”
쿠아치노의 의도를 눈치채고 먼저 그의 하체 급소를 무릎으로 쳐 버린 이안은 차갑게 말했다.
몸을 부르르 떨며 괴로워하던 쿠아치노는 이안을 협박했다.
“나를 죽이면 너라고 무사할 줄 아느냐? 내 가문의 일원들이 널 죽이고 네 영지를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다!”
“네 걱정이나 해, 이 새끼야. 뒷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안은 비수를 잡고 있는 쿠아치노의 손목뼈를 으스러트렸다.
부러진 손목뼈가 살점을 뚫고 나오자, 쿠아치노는 다시 한번 크게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아악!”
“입 다물어.”
이안은 주먹으로 쿠아치노의 얼굴을 후려쳤다.
쾅
뒤로 수 미터나 날아간 그의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이안이 다가오자 쿠아치노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자신의 부러진 검을 움켜쥐고 일어나 이안을 향해 애처롭게 휘둘렀다.
“나는 페르콘의 대원로다! 감히 나를 해하려 하다니!”
“닥쳐.”
이안은 쿠아치노의 검을 가볍게 피한 뒤, 주먹으로 그의 양어깨를 가격했다.
“커헉!”
양어깨 뼈가 박살이 난 쿠아치노는 팔과 손에 힘이 하나도 모이지 않았고, 곧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떨어트렸다.
덜렁거리는 양팔을 힘없이 내려다보던 쿠아치노는 고개를 들어 이안을 노려봤다.
더는 대항할 힘도 없었다.
“내가 괴물 같은 놈을 만났군.”
“날 부른 건, 쿠아치노 바로 너다.”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한 이안은 쿠아치노를 땅바닥에 메다꽂은 후, 그의 두 발목을 발로 밟아 박살을 내 버렸다.
“으아악!”
쿠아치노의 사지를 못 쓰게 만든 이안은 초주검이 되어 고통에 신음하는 그를 질질 잡아끌며 머러스와 에딘이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툭!
머러스 앞에 쿠아치노를 내동댕이친 이안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처리하시죠.”
이안은 자신의 손으로 쿠아치노를 죽이려 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원로들이 쿠아치노를 단죄하는 것이 더 의의가 있을 것 같았다.
머러스는 사지가 망가진 채 땅바닥에 누워 고통에 허덕이는 쿠아치노를 내려다봤다.
페르콘을 좌지우지했던 쿠아치노가 하룻밤 새에 이런 처참한 몰골로 나뒹군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말 대단하군. 이 정도로 강하다니.’
에딘과 함께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던 머러스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쿠아치노는 이안의 적수가 전혀 못 됐다. 마치 어른과 어린아이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얼마나 강한 것인가?’
쿠아치노를 내려다보던 머러스는 고개를 들어 이안을 감탄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고맙소, 이안 영주. 영주가 아니었으면 이자를 놓칠 뻔했소.”
“별말씀을요. 제가 없었다 해도 여기 에딘이 쿠아치노를 잡았을 것입니다.”
이안은 에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했다.
겸손이 아니라 에딘은 그 정도 실력이 되는 대마법사로 성장했다.
“크윽, 이대로 끝이다 생각하지 마라.”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누워 있던 쿠아치노가 분한 눈빛으로 말을 하자, 이안과 에딘, 머러스가 그를 내려다봤다.
“너희들은 내 가문과 나를 따랐던 수많은 가문의 복수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페르콘은 대전쟁에 휘말릴 것이고, 너희들 때문에 수십, 수백만 명의 백성이 죽고 부상을 당하고 왕국은 죽음의 기운에 휩싸일 것이다.”
“충고해 줘서 고맙다, 새겨듣겠다.”
머러스는 검을 뽑아 쿠아치노의 가슴을 겨눴다.
“하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네 놈 가문의 사람들은 너처럼 권력에 눈이 먼 놈들이니까. 네가 죽으면 그들은 작은 먹잇감에도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머러스!”
흥분을 한 쿠아치노가 상체를 들썩거리며 머러스를 노려봤다.
“죽여라! 그러나 나는 네놈에게 패해 죽는 것이 아니다! 알베른 영주에게 죽는 것이다! 그것을 세상에 널리 알려라! 알겠느냐!”
쿠아치노는 본능적으로 이안이 대륙에서 큰 명성을 떨칠 인물임을 깨달았다. 지금보다도 훨씬 말이다.
“하찮은 네놈 따위에게 패해 죽은 것으로, 내 죽음이 알려지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난 너와 싸운 일이 없으니까.”
사탕을 꺼내 입안에 넣은 이안이 쿠아치노를 싸늘하게 응시했다.
“여기 머러스 원로님이 널 이긴 거야. 역사엔 그렇게 기록이 될 것이고, 너는 조용히 사라지는 거야. 사막 아래 잠들어 있는 수많은 모래 알갱이들처럼.”
“이안!”
쿠아치노가 이안을 향해 소리칠 때 머러스의 차가운 검이 그의 가슴을 서서히 파고들어 갔다.
“허억!”
쿠아치노가 눈을 치켜뜨고 몸을 격렬하게 떨었다.
몸속을 파고드는 머러스의 검이 놀라울 정도로 세세히 느껴졌다.
그만큼 고통도 심했다.
머러스는 몸을 떠는 쿠아치노의 두 눈을 내려다보며 느린 동작으로 검을 계속 찔러 넣었다.
“쿠아치노, 날 보거라. 날 봐!”
머러스가 고함을 치자, 쿠아치노는 저도 모르게 눈동자를 움직여 그를 올려다봤다.
“내 아버지가 가문을 보존하기 위해 네놈 발등에 입을 맞췄다는 사실은 이미 나도 알고 있었다.
그 울분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너는 내 아버지를 비웃었지만, 넌 결코 내 아버지를 따라올 수가 없다. 그분은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고 많은 사람들의 애도 속에서 잠드셨지만, 너는 악명을 떨치다 비참하게 죽게 되었으니 아무도 네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머……러스.”
“잘 가거라, 쿠아치노. 전하께네 죽음을 알리면 얼마나 기뻐하실지 상상하니 벌써부터 웃음이 나오는구나.”
푸욱!
머러스의 검이 쿠아치노의 심장을 완전히 관통해 들어갔다.
몸을 크게 떨던 쿠아치노의 몸이 잠시 후 축 늘어졌다. 두 눈을 부릅뜨고 죽은 그의 시선은 머러스가 아닌 이안에게로 향해 있었다.
원통함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이안은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쿠아치노의 시신을 내려다보다가 뒤를 돌아봤다.
고대 유적지 사이로 세 원로들과 병사들이 말을 몰아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