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lord in the Corner RAW novel - Chapter (179)
카이센 대수림. 오크들의 영역인 이곳 한복판 도시 안의 지하 감옥, 습기로 가득 차 축축하기 그지없는 이곳의 철창 안에 마스트라는 갇혀 있었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더럽혀져 넝마처럼 변한 옷을 걸친 채, 빛나는 사슬에 묶인 마스트라.
더 없을 정도로 초라한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카프레온은 헛웃음을 날리고 말았다.
“꼴이 말이 아니군.”
무슨 생각이라도 하는 건지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던 마스트라가 눈동자만 돌려 카프레온을 보았다.
흐릿하던 눈동자는 이내 선명해졌고, 낮은 의문을 터트렸다.
“카프레온?”
“그래. 나다.”
“네놈이 어찌 여길…? 아, 그놈과 한패였지.”
마스트라가 피식 웃었다. 그를 꽁꽁 옭아맨 이 사슬에 의해 제압당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다시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었다.
공간을 찢고 이동하는,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사슬이라니. 이 무슨 해괴한 기술이 있단 말인가.
황당한 것은 이 사슬을 쏘아 보낸 주인이 바로 그가 벼르던 인간이라는 것이다.
아지트를 침범했었고 무식하게 강한 오크를 부하로 부리는, 정말 인간이기는 한 건지 의심이 드는 괴상한 인간.
김태형.
황당한 것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세상에, 이젠 별 볼 일 없게 된 과거의 친구 녀석이, 그 김태형이라는 인간 놈과 한패였다니. 대체 어떻게 이런 괴상한 능력을 지닌 인간과 인연을 만든 것일까? 이젠 드래곤이라고 부를 수도 없게 된 퇴물 녀석이?
하여튼, 어안이 벙벙했다.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너무 놀라운 일이 연속으로 발생했다.
화룡점정으로, 인간 놈은 차원문까지 자유자재로 열 줄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 그는 차원을 넘어 끌려왔다. 시야를 가렸기에 어디로 끌려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이 오크들이 있는 곳의 지하 감옥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고, 이 낯선 곳에서 다시 한번 과거의 인연을 마주하고 있다.
“분명 그 덜떨어진 악마 놈은 특이사항은 없다고 말했는데, 어떻게 된 거야? 언제 이런 인연을 만나게 됐지? 아, 숨기고 있던 건가?”
“그리고, 이 감옥에 펼쳐진 이 마법진들은 뭐지? 응? 넌 알고 있지?”
이때다 싶은 건지, 마스트라는 궁금했던 것을 마구 쏟아부었다. 하지만 카프레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모르는 걸 알려줄 순 없는 법이었다. 애초에 알고 있었다 해도 알려줄 생각은 없었지만.
“정말 이러기야?”
마스트라가 마구 꿈틀거렸다. 뭔가를 시도하려 했다. 그가 손을 꼼지락거리자 마나가 솟아나나 싶더니 픽 꺼졌다.
“제길.”
마스트라가 작게 욕을 내뱉었다.
마나가 움직여지지 않는다. 참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무리 본체가 아닌 인간 형태라지만, 거기에 더해 힘을 봉인해 놓은 상태라지만, 드래곤인 그의 마법 운용 자체를 막아버릴 정도의 수준 높은 초고위 방해 결계라니.
마스트라의 상식으로, 드래곤인 그의 능력을 막아버릴 정도의 능력자는 하나뿐이다.
드래곤.
이 감옥에 설치된 결계들을 설치한 건 드래곤이다.
그것도 무척 수준이 높은.
“그래. 틀림없이 동족이야. 그렇군. 너, 숨은 동족들의 행방을 알고 있는 거야. 맞지?”
“난 모른다.”
“웃기지 마. 분명 동족이야. 동족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내 마나 운용을 막아낼 수 있지? 응? 그러지 말고 좋게 말해. 너한테도 손해 볼 것 없잖아. 아, 그래. 실리스는 건들지 않을게.”
꿈틀.
카프레온의 미간이 살짝 뒤틀렸다.
“내 이름과 존재를 걸고 맹세할 수 있어. 너희 부부는 건들지 않겠다고 말이야. 대신 동족의 위치만 알려줘. 그럼 된 거 아냐? 윈윈이잖아. 우린 우리 대로 좋고, 너희 부부는 너희 부부대로 행복하게 살고.”
“할 말, 못 할 말 구분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나불대는 네놈의 입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군.”
“기분 상했어? 하지만 할 말은 해야지. 안 그래? 내 제안엔 조금의 거짓도 없어. 네가 동족의 위치를 알려주기만 한다면, 난 너희 부부를 건들지 않을 거야. 맹세한다니까?”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지구 어딘가에 숨어 있을 네 동료들도 너와 똑같이 생각할까?”
그 말에 마스트라가 멈칫했다. 카프레온이 피식 웃었다.
저 말에 거짓은 없다. 마스트라의 저 말은 진심이다. 그리고 조금은 혹했다. 만일 태형을 만나지 않났다면 진심으로 고민했을 정도로.
하지만.
함정이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후회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말 것이다.
맹세의 제약 때문에 손을 못 쓰는 마스트라 대신 황혼의 다른 놈들이 그의 목숨을 노리겠지.
“네놈의 잔머리, 여전하군. 하긴. 그러니 악마 놈들과 붙어먹었지.”
“말 고쳐줄래? 악마 놈들과 붙어먹다니. 그놈들이 얼마나 덜떨어진 멍청이들인 줄 알아? 우리가 그놈들한테 손을 건네고 있는 거라고 해줘.”
“마스트라. 아니 마스트라우스. 소중한 나의 동족이여.”
나지막이 읊조린 이름.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진명에 마스트라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너의 오랜 친우로서 네게 묻고 싶다. 네가 정말 나와의 인연을 특별하게 생각했다면, 내 물음에 진실하게 답변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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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나?”
짧은 질문. 하지만 모든 것이 담긴 질문.
“대체 왜…….”
그것은 블랙 드래곤 마스트라우스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동족을 배신하고 터전을 박살 낸 배신자들 전체에게 하는 말이었다.
“꼭 그랬어야 했나?”
그토록 묻고 싶어도 묻지 못했던, 오랫동안 가슴 속에 묻어두기만 했던 억눌린 호기심이 불쑥 튀어나왔다.
싸늘한 정적이 일었다. 싸늘하다 못해 냉랭했다.
그 냉랭한 분위기처럼, 카프레온의 표정 또한 냉랭했다. 하지만 그 냉랭함 속엔 티끌만큼의 기대가 숨어 있었다.
한참 동안 이어진 냉랭한 분위기를 깬 건 마스트라의 옅은 웃음이었다.
“카프. 아, 이리 부르는 것도 참 오랜만이네. 예전에 기억나지? 우리 수영 대회 나갔던 거. 우리 그때 나란히 꼴등을 했었지.”
“너와 난 마구 싸워댔어. 꼴등은 내가 아니라 너라면서 말이야. 흐, 그때 정말 재밌었는데. 남이 볼 땐 꼴등이나 꼴등에서 두 번째나 거기서 거기인데, 그땐 왜 그렇게 집착했을까?”
“또 그런 적도 있었어. 맥크란 아저씨 살던 화산에 놀러 갔던 적 말이야. 그때 우린 맥크란 아저씨가 애지중지하던 천 년 묵은 만드라고라를 훔쳐 먹었었지. 그때 기억나지? 네가 실수로 절반으로 나눈다는 걸 애매하게 나눠서, 우리 싸웠잖아. 내가 많은 쪽 먹을 거라면서 말이야. 하하하. 뒤에서 맥크란 아저씨 뿔난 줄도 모르고 싸워 대는 꼴이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우리도 어렸지.”
한참 추억에 잠겼던 마스트라의 표정에 이내 온화함이 맺혔다.
“카프. 난 너와 가장 오랜 친구야.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실이지. 난 너와 함께 했던 그 모든 순간을 기억해. 그러니 어찌 소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추억은 존재를 온화해지게 만드는 법.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과거의 이야기들에 카프레온의 냉랭함이 조금 풀렸다.
그 찰나의 순간, 마스트라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는 그 새를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난 항상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어. 너와 함께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이리 틀어지지 않았을 텐데. 그렇지?”
마스트라의 눈빛에 사이함이 새겨졌다. 그 사이한 눈빛으로 똑바로 카프레온을 응시했다.
카프레온은 이내 멍한 표정으로 변했다. 먹혔다고 생각한 걸까. 마스트라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괜찮아. 이리 진솔한 대화의 기회가 왔잖아? 누구나 잘못은 저지를 수 있어. 하지만 문제는 없어. 뉘우치면 되거든. 그렇지, 카프? 내 소중한 친구?”
“그러니, 말해주지 않을래? 동족이 어디에 있는지 말이야. 네가 내게 솔직하게 말해준다면, 우린 다시 예전처럼 돌아올 수 있…”
“일말의 기대를 했던 내가 멍청했던 건가.”
어느새 카프레온은 또렷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고, 마스트라의 표정은 당황으로 물들었다.
“일말의 기대를 했던 내가 바보였나.”
“어, 어떻게……?”
“너의 대답은 잘 들었다.”
카프레온의 눈빛에 결심이 새겨졌다. 그는 단호한, 하지만 왠지 씁쓸해 보이는 얼굴로 일어섰다.
“고맙다. 내 소중한 친우여. 아니, 소중했던 친우여.”
그 말을 끝으로, 카프레온의 표정에서 어른거리던 일말의 기대가 싹 사라졌다.
완전히 차가워진 얼굴로, 카프레온은 미련없이 지하감옥을 나섰다.
“카프, 어디가? 카프! 카프레온!”
대답은 없었다. 마스트라가 혀를 찼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완벽했는데? 완벽한 기회였고, 완벽한 시도였고, 완벽히 먹혀들었는데?
“말도 안 돼. 껍데기만 남은 용족이 어찌………….”
“와, 어쩜 말론의 말은 하나도 틀림이 없냐.”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다가왔다. 바로 태형이었다.
“너, 넌……!”
“반가워. 또 보네?”
“인간!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되긴. 보면 몰라? 네 스스로 기회를 걷어찬 거지.”
카프레온은 한때 소중했던 친구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친구라는 놈은 그 마지막 기회를 걷어찼다.
이제 막차는 지나갔다. 돌이킬 방법은 없다.
“무, 무슨 해괴한 말을….”
“뭐, 어차피 카프레온이 용서한다 해도 내가 가만히 두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태형이 혀를 찼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악마의 권능을 행사하는 드래곤이라. 그것도, 베르티온이 설치한 결계의 힘을 뚫고? 이야, 이거 참 희귀한 놈일세. 대체 어떻게 한 거냐?”
“……..!”
“뭐, 대답하지 않아도 돼. 한마디 말도 하지 마. 네가 말하지 않아도 넌 대답한 꼴이 될 거니까.”
당황에 물든 얼굴로 마스트라가 뭐라 대답하려는 찰나, 태형이 손을 뻗었다.
[고유 스킬 소환』을 발동합니다.]빛과 함께, 꼬록이가 소환되었고.
[뭐임? 여긴………… 오크들 감옥임.]꼬록이가 수긍했다. 이젠 어디에 소환된다 한들 당황하지 않는 꼬록이였다.
“꼬록아. 그때 내가 먹잇감 뺏어서 서운했지.”
[맞음. 꼬록이, 엄청 서운했었음. 하지만 이젠 괜찮음. 마물 많이 먹어서 구성 요소 저장고 꽤 많이 채웠음. 후후후.]꼬록이가 웃었다. 꽤 만족해하는 표정이었다. 역시, 배가 부르면 온화해지는 법이었다.
“좀 미안하고 그래서 선물 하나 준비했는데.”
[선물? 어떤 선물임?]“이거.”
태형이 마스트라를 가리켰다.
[이거? 선물임? 잠깐, 확인하겠음. 허억! 엄청남!]꼬록이가 엄청나게 놀랐다.
어찌나 놀랐는지, 제자리서 통통 뛰며 놀람을 표시하기까지 했다.
[그때 그 악마보다 훨씬 더 나쁜놈임! 말도 안 됨!]상상할 수조차 없이 진득한 악의에 꼬록이는 몸서리치고 말았다.
세상에!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이런 악의를 지닌 생명체가 세상에 놓인다면, 그 세상은 혼돈으로 가득 차고 말 것이다.
[그럼 마음대로 해도 됨?]“응. 아, 참. 한가지만.”
태형이 머리를 가리켰다. 기억을 흡수하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아, 알겠음.]“뭐, 뭣?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거야?”
[알 거 없음.]꼬록이가 꼬록거렸다. 왠지 기대감이 들었다. 대체 이 악의로 점철된 나쁜 드래곤은 무슨 구성 요소가 있을까?
통!
꼬록이가 높이 도약했다. 그리고 쇠창살 안으로 쏙 들어가서.
“뭐, 뭣………… 커, 컥! 캑!”
그대로 마스트라의 입속으로 골인했다.
마스트라가 마구 몸부림쳤다. 어떻게든 몸속에 들어온 슬라임을 빼내려 했으나, 애석하게도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깊숙이 들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사, 살려줘!”
완전히 머리에 자리 잡은 꼬록이가 능력을 썼다.
[꼬록이가 블랙 드래곤 마스트라우스에게 기생을 시도합니다.] [179화> 끝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