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lord in the Corner RAW novel - Chapter (229)
229화
태형은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자신의 앞에 선 괴인을 바라보았다.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두꺼운 검정 코트를 입고, 코트에 딸린 후드를 깊게 눌러쓴 웬 사내였다.
‘아니, 뭔 어둠의 종자도 아니고 왜 이렇게 음침해?’
가뜩이나 지하 공간인데 조명까지 엄청 어두워 거의 보일 듯 말 듯 한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죄다 검정 차림이니, 이건 뭐 과연 정신이 제대로 박힌 녀석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아마 저 후드 속 얼굴도 음침하게 생기지 않았을까?
‘좀 밝게 살면 어디가 덧나나? 설마 저놈, 박쥐인 거 아냐?’
속으로 그런 우스갯소리까지 중얼거렸으니 오죽하랴.
“설마 했는데, 진짜 인간이었네?”
놀랍다는 듯한 목소리. 확실했다. 등골이 오싹했던 무형의 기세를 날렸던 바로 그 의문의 목소리와 같았다.
아무래도, 그 공격은 이 괴인이 날린 것이리라.
“아닌가?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어디 있어 보자. 분명 외양은 인간인데, 느껴지는 느낌은 또 달라. 애매하군. 흠…….”
괴인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태형을 위아래로 훑으며 연신 중얼거렸다.
“아, 알겠다. 너 엘프냐?”
“아니.”
“그럼 오크?”
“아니.”
“이상하네. 이것도 아니라고? 그럼 뭐지? 아, 혹시 드래곤인가?”
‘병신인가?’
“검은 머리면 블랙 일족인가? 아닌데. 내가 아는 드래곤 중 저런 느낌을 지닌 녀석은 없는데. 설사 맞는다고 하더라도, 미치지 않고서야 목숨을 내놓고 이곳에 직접 올 리는 없지. 아, 알겠다!”
괴인이 마침내 깨달았다는 듯 손바닥으로 주먹을 ‘탁’ 쳤다.
“너, 타 차원의 용족이구나!”
‘진짜 병신인가?’
태형은 어이가 없는 나머지 피식 웃었다. 왜 종족을 자기 맘대로 바꿔 버린단 말인가.
“오호. 그렇단 말이지.”
짧은 감탄. 깊게 눌러쓴 후드 밑으로 얼핏 보이는 괴인의 입이 호선을 그렸다.
“타 차원의 용족을 여기서 만날 줄은 미처 몰랐군. 어느 차원이지? 좀 알려 줄래? 차원도 워낙 종류가 많아서 말이지. 잘 모르겠단 말이야.”
아무래도 태형의 웃음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저리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중얼거리는 걸 보면 말이다.
태형은 저 괴인의 확신을 정정해 주지 않았다. 스스로 저리 확신하는데, 굳이 정체를 떠벌릴 필요는 없었다.
“말할 생각 없어? 이계의 동족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말이야.”
태형의 눈이 반짝였다.
‘이놈, 드래곤이네.’
자신을 타 차원의 용족으로 여기는 놈이 스스로 ‘이계의 동족’이라고 했으니 아마 틀림없으리라.
“정말 말할 생각 없나 보구나? 네 이야기가 퍽 흥미로웠다면 좋게 넘어가 줄 수도 있었는데…….”
괴인이 후드를 젖혔다. 온통 검정 차림과 비교되는 창백한 얼굴을 한 사내가 드러났다.
대체 얼마나 머리를 감지 않았는지 사방팔방 이리저리 제멋대로 뻗친 까치집 머리에, 퀭한 눈 밑엔 다크 서클이 진하게 나 있었다.
“뭐, 괜찮아. 어쩔 수 없지.”
순간, 그 퀭한 눈이 반짝거리며 빛났고.
“그러면 처리할 수밖에. 사실 지금 바쁘거든. 긴급 지원 요청이 와서 가 봐야 해. 근데, 네가 여기에 있으면 갈 수가 없잖아. 그렇겠지?”
괴인이 진한 미소를 짓는 순간, 날카로운 기세가 폭발적으로 솟아났다.
화아아악!
마나가 회오리치며 주변을 잠식했다. 그 회오리치는 마나 주변으로 음울한 기류가 스멀스멀 생겨났다.
‘마기?’
폭발적인 마나와 음울한 마기. 상이한 두 기운이 마치 상호 보완이라도 하듯 서로 맞물려 덩치를 키우더니.
쐐애애액!
태형에게 미끄러지듯 솟구쳤다.
따악!
태형이 손을 튕겼다. 태형의 육신이 한참 먼 곳에 이동되었다.
“오호!”
괴인이 눈을 빛냈다.
“지난번에 봤던 그 방법이로구나! 그런 방법으로 내 권능을 피했구나!”
괴인이 클클 웃었다. 특유의 가래 끓는 목소리가 여간 듣기 싫은 게 아니었으나, 한가롭게 투덜거릴 시간은 없었다. 괴인은 태형이 여유를 부릴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으므로.
곧이어 괴인의 공격이 태형에게 쏜살같이 들이닥쳤다. 태형은 재차 공간 도약을 사용했다. 공격이 허무하게 허공을 덮쳤다.
괴인의 음침한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숨 돌릴 시간도 주지 않으려는 듯, 괴인은 기세를 몰아붙였다.
* * *
예전, 아직 능력이 미숙했던 시절. 서울 한복판에서 처음 켈베로스를 만났을 당시의 상황을 태형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흉측한 지옥의 괴물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 내는 자신의 몸놀림에 스스로 놀라지 않았던가.
단 한 번도 실전 경험이 없었던, 그저 방구석에서 카림의 활약을 지켜보기만 했던 자신이 그런 숙련된 육체파 헌터의 몸놀림을 해내다니.
그때의 느낌을 되새겨 보자면.
몸이 스스로 움직였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그 괴물의 공격을 부드럽게 피했다.
지금도 그때의 느낌과 같았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괴인의 공격을, 자신은 단 한 방도 맞지 않고 모조리 피해 내고 있었다.
공간 도약이 아닌, 스스로의 몸놀림으로.
하면서도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태형 자신이 육체적인 재능이 그리 탁월하진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랬다.
단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매일 육체 단련을 반복했어도, 오크들처럼 비약적인 실력의 성장을 이룩하진 못했지 않은가. 오크들과 실전과도 같은 근접 대련을 틈틈이 펼쳤지만, 오크들을 순수 육탄전으로 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 않은가.
그런 자신일 텐데, 대체 어떻게 이런 움직임이 가능한 걸까.
태형은 그 이유를 깨달았다.
몰랐던 게 아니었다.
알고 있었다. 다만 잊고 있었을 뿐.
답은 링크였다.
끊임없는 링크로 인해, 카림의 몸놀림을 체득한 것이었다.
링크된 태형의 네 소환수 중에서도 가장 많은 시간을 링크한 카림의 움직임을, 저도 모르게 태형의 육신이 기억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지금 체득한 게 아니라 진작에 체득했을지도 몰랐다. 아니, 아마 그럴 것이다.
다만 그걸 몰랐던 이유는, 그동안은 이리 생명의 위기를 느낄 정도로 몸을 움직일 기회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몸을 움직이더라도, 태형 자신이 앞에 나서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에 몸을 사리기도 했고.
‘그랬구나. 그런 거였구나.’
머릿속이 맑아졌다. 태형이 환히 웃었다.
“여유를 부려? 하긴, 이 정도로 끝나면 섭섭하지. 어디 그럼, 탐색전은 이 정도로 해 둘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괴인의 몸놀림이 빨라졌다.
퍼엉!
마나가 폭발했다. 그 폭발을 추진력 삼아, 괴인이 쏟아지듯 쇄도해 들어왔다.
빠르다. 그리고 강력하다. 아까까진 원거리 공격이었다면, 이번엔 육탄 공격을 감행할 생각인가 보다.
괴인이 주먹을 뻗었다. 주먹은 태형에게 닿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닿을 생각조차 없었던 것 같았다.
주먹에서 마나가 쏟아졌다. 마나가 소용돌이치며 태형을 뚫으려 했다. 아마 원래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괴인은 원거리 공격과 육탄전을 자유자재로 펼칠 줄 알았다. 뿐만 아니라 그 두 개를 교묘히 섞을 줄도 알았다.
주먹을 뻗는 것 같은데, 실은 마법이고. 마법을 펼치는 것 같은데, 강력한 주먹질을 날려 왔다.
그 모든 몸놀림엔 마나와 마기가 함께했는데, 섞인 두 기운이 괴인을 더 까다롭게 느끼게 했다.
안개 낀 것처럼 괴인이 흐릿하게 보였다. 마치 점멸하는 신호등처럼 깜빡거리기도 했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봐도 그랬고 크게 뜨고 봐도 그랬다. 마나와 마기, 두 기운이 만들어 내는 효과 같은데, 모르긴 몰라도 아마 눈을 현혹하는 일종의 기술 같은 게 아닐까 싶었다.
그것뿐인가? 중간중간 마법을 날려 대기도 했다. 땅을 미끄럽게 만들고, 갑자기 뜬금없이 물을 뿌려 대고, 벌 떼 수백 마리가 들이닥치는 환영을 만들어 내는 등, 하나같이 살상력이 없는 하위 보조 마법들이었다.
여러모로 까다로운 상대였다. 괴인은 어떻게 하면 상대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는지 알고 있었다.
“꽤나 잘 버티는구나! 하지만, 네가 과연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슬슬 본체로 현신하는 게 좋을 텐데?”
클클 웃는 괴인. 그런 괴인의 얼굴은 한껏 기대감으로 차 있었다.
실제로 괴인은 기대 중이었다. 이계에서 온 이 드래곤이 본래의 커다란 육신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중이었다.
드래곤의 육신으로 죽어야 이득을 볼 수 있으므로.
하지만 괴인은 몰랐다, 자신이 단단히 착각하고 있음을. 그 착각으로 인해 태형이 자신에게 찾아온 기연을 충분히 맛보고 있다는 사실을.
놀랍게도 태형은 싸움에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
조그만 실수에도 목숨이 날아갈 이 중대한 순간에, 태형은 한눈을 팔고 있었다.
‘링크를 통해 배운 것이 과연 카림의 몸놀림으로 끝일까? 다른 아이들과 링크하며 습득한 것은 없을까?’
바쁜 몸놀림과는 별개로, 태형의 의식은 내면으로 깊숙이 침전되고 있었다.
태형의 머릿속으로 지난 과거가 빠르게 스쳤다. 암울했던 시절, 강력한 헌터가 되길 염원했고, 그런 자신에게 한 줄기 기적처럼 카림이 찾아왔다.
뒤이어 꼬록이를 만났다. 릴리를 만났고, 스텔라도 만났다.
그들은 실력을 키우고 세력을 넓히는 등 제각기 자신만의 성장을 이룩하고 있었고, 그런 그들의 성장을 태형은 단 한순간도 빠지지 않고 함께하고 있었다. 단순히 지켜본 게 아니라, 그들과 육신을 공유하고 감각을 공유했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그들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은, 단순히 허비한 시간이 아니었다.
모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 의미 있는 시간들은 곧 의미 있는 경험이 되어 태형의 육신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 능력과 경험들은, 이미 내 안에 있었어.’
단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그 생각을 끝으로, 끝없이 내면으로 침전되어 가던 태형의 의식이 수면 위로 깨어났고.
[고유 스킬 『링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고유 스킬 『링크』가 성장합니다!] [링크 대상과의 동기화율이 더욱 오릅니다!]화악!
외부에는 보이지 않는, 내면의 변화가 일었고.
[스킬 『육감』을 각성합니다!] [스킬 『본질을 보는 눈』을 각성합니다!] [스킬 『마르지 않는 신비』를 각성합니다!] [스킬 『용족의 축복』을 각성합니다!]뿌득!
그 내면의 변화에 따라 육신 또한 한층 진화했다.
“후우.”
그러는 사이에도 끊임없이 쏟아지는 공격을 가뿐히 피하며, 태형이 눈을 떴다.
“응?”
괴인이 의문을 터트렸다. 태형이 뭔가 달라졌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뭐야, 뭐 한 거야?”
“하긴 뭘 해. 아까부터 피하고만 있었는데.”
“그건 그렇지.”
괴인은 이내 의문을 훌훌 털어 버렸다.
저 이계의 용족이 뭔가 달라진 것 같지만,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때, 태형이 불쑥 물었다.
“근데 너,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 가 봐야 한다며. 긴급 지원 요청인지 뭔지가 와서.”
“응? 그걸 기억하고 있었어? 뭐,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것보단 네가 더 흥미로워졌어. 기어코 네 본체를 봐야겠거든. 그 녀석들은 뭐 알아서 하겠지. 별일이야 있겠어?”
“별일 있을 것 같은데?”
“뭐?”
“아, 별것 아냐. 잊어도 돼.”
이내 이어지는 태형의 진한 웃음. 괴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태형의 웃음이 왠지 의미심장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상념은 사라졌다. 괴인은 꽤 오랫동안 함께해 온 두 종족이 서로 대차게 싸워 대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깨닫지 못했다.
“흐음. 이쯤 해야겠어. 아무래도 제대로 해야 네놈이 본체를 드러낼 것 같거든.”
괴인이 씩 웃으며 손을 펼쳤다. 그러자 느껴졌다. 가공할 기세가.
‘그 공격이다.’
태형을 도망가게 했던 그 무형 공격의 전조가 일어나고 있었다.
저번과 똑같았다. 강력한 기세가 일었다가, 씻은 듯 사라진다.
마치 비 온 후 갠 화창한 날씨처럼 맑다. 하지만 이때야말로 위험하다.
전에는 그냥 단순한 느낌이었다. 그냥 위험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다.
‘보인다.’
보였다. 허공 속에 숨은 날카로운 비수가.
극히 민감한 태형의 감각마저 속였을 정도로 은밀한 권능이.
[스킬 『본질을 보는 눈』이 현상을 파악합니다.]태형은 손을 뻗었다. 무언가를 쥐는 듯한 모양새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덥석!
“잡았다.”
태형이 씩 웃으며 그대로 주먹을 꽉 쥐었다.
끄그그극!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뭉개졌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태형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대체 뭘 움켜쥐고 터트렸을까?
“…네놈. 뭐지?”
괴인이 처음으로 낯빛을 굳혔다.
“어떻게 했지? 어떻게 내 권능을 잡아 냈지?”
“어떻게 했냐고?”
태형이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