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lord in the Corner RAW novel - Chapter (33)
33화
한참을 달리고 달려 도착한 곳은 푸른도끼 부족의 영역 바깥 부근이었다.
“족장. 꽤 멀리까지 왔는데? 여기서 무슨 볼일이 있다는 거야?”
세르취는 늑대의 등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쿵쿵거리며 무언가가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영락없는 몬스터의 것이다.
“뭐, 몬스터라도 잡게?”
“비슷하지.”
세르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몬스터를 잡는다면 잡는 거지, 비슷한 것은 또 뭐란 말인가?
“저거 보이나?”
“응. 트롤이잖아. 저거 잡아 오면 돼?”
세르취가 손을 뻗자, 허공에 반투명한 파란 고양이가 생겨났다.
그것은 바로 물의 정령이었다.
“동시에 두 마리는 힘들지만, 한 마리 정도는 가능해. 우리 그동안 꽤 수련 많이 했거든. 그치 친구?”
끄덕끄덕.
물의 정령이 고개를 끄덕이자, 세르취가 싱긋 웃었다.
“봐봐. 우리 방울이도 가능하다잖아.”
방울이. 그것은 세르취가 자신의 정령에게 붙여준 이름이었다. 꼭 물방울을 닮았다면서 말이다.
“다녀올까?”
“죽이지 말고 생포해와야 한다.”
“응? 죽이지 말라구? 그건 좀 힘든데···?”
세르취가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해볼게. 혹시 나 위험하면 족장이 도와줘. 가자, 친구!”
세르취가 달려갔다. 곧이어 싸움이 시작됐다.
보통 정령사가 직접 전투는 잘 나서지 않는 데 비해, 세르취는 본인의 몸을 던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은 일반적인 정령사와 오크 정령사의 싸움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모름지기 오크란 싸움을 피하지 않는 종족. 아무리 정령이라는 힘이 있다 한들, 오크는 역시 오크였다.
트롤의 공격을 가까이서 피하면서, 마치 차륜전을 펼치듯 정령과 번갈아 공격을 감행한다.
전투는 꽤 오래 걸렸다. 아마 생포해오라는 명령 때문인 듯했다.
목숨을 끊을 수도 없으니, 세르취는 상당히 난감해했다. 하지만, 긴 전투 끝에 결국 생포에 성공했다.
“헥헥···. 족장. 잡아 왔어. 힘들어 죽겠네.”
“수고했다.”
‘확실히 실력이 많이 늘었군.’
그는 처음 정령사로 각성했을 당시 세르취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
오크답게 육탄전은 잘하지만, 정령술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세르취는 훌륭히 성장했다.
현재 4천이 넘는 부족민 중, 정령사로 각성한 오크는 총 30명.
현재 세르취는 그중에서도 제일 정령술 실력이 좋고 깔끔했다.
“잠깐 쉬고 있어.”
“으응···.”
트롤은 전신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 물의 정령이 펼쳐낸 정령 마법인 ‘물감옥’에 갇혀 있었다.
거대한 물방울 속에서 머리만 빼꼼 내밀고 있는 모습이 꽤 우스꽝스러웠다.
역시, 트롤은 트롤이었다. 피투성이였던 육체가 금방 회복되고 있었다. 눈에 띌 정도로 말이다.
트롤은 몸부림치고 있었다.
마치 늪지대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못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물감옥은 견고했다. 저렇게 작은 고양이 모습을 하고 있어도, 방울이는 중급 정령이었다.
“쉬면서 내가 하는 걸 잘 봐라.”
“응.”
카림은 손을 뻗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트롤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흐, 이 괴물 놈, 키 하나는 정말 크군.”
손이 닿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늑대를 소환해 위에 올라탔다. 그제야 트롤의 머리에 키가 닿았다.
그대로 눈을 감고 마나를 끌어올려 트롤의 몸속에 주입했다.
그러자 트롤이 괴로워했다. 안 그래도 험악한 얼굴을 더 사정없이 찌푸리며 괴성을 질렀다.
‘정말이지 못 들어주겠군.’
하지만 익숙해져야 한다. 이제부터 자주 듣게 될 괴성이 될 테니까.
카림의 마나가 뱀처럼 꿈틀거리며 트롤의 몸속을 마구 휘저었다. 그럴수록 트롤의 괴성은 더 커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
마구 몸부림치며 괴성을 지르던 트롤이 전원을 끈 기계처럼 갑자기 뚝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떨구고 축 늘어졌다.
“응? 족장!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의식을 제압한 거다. 몬스터 제압술이라고 하지.”
“의식을 제압해? 마법 쓴 거야?”
“아니.”
얼핏 보기엔 마법과 비슷하긴 하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정신계 마법이라고 착각할 만했다.
“이건 마법이 아니다. 순수한 마나 응용 기술이지. 하이 오크가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순수 하이 오크 표 기술이다.”
“그렇구나······.”
세뇌, 현혹과 같은 정신계 마법과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몬스터 제압술은 정말로 몬스터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몬스터로 분류되는 종들은 모두 머릿속에 ‘마석’이 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마치 고승의 몸속에서 발견되곤 하는 사리와 비슷한 모양새의 작고 동글동글한 돌인데, 아프록시아의 주류 학계에선 그것에 소량의 마기가 들어있어서 몬스터를 흉포하게 만드는 주원인이라고 꼽기도 한다.
하이 오크의 몬스터 제압술은 바로 그 몬스터의 ‘마석’을 건드는 기술이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사용하고자 하는 대상의 몸속 구조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도 정신계 마법과의 차이점 중의 하나다.
그러니까 만약 타겟이 된 몬스터의 몸속 구조를 모른다면, 아무리 마나를 잘 다룬다 하더라도 먹혀들지 않는다.
“완전 신기해!”
세르취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고는 땅바닥에서 길쭉한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축 늘어진 트롤의 대가리를 쿡쿡 찔렀다.
트롤은 반응이 없었다. 꼭 죽은 것 같이 보였지만, 분명 숨은 쉬고 있었다.
마치 신난 아이처럼 트롤의 대가리 이곳저곳을 쿡쿡 찔러보는 세르취에게, 카림은 과거 하이 오크들이 몬스터를 대대적으로 사육해 여러 방면에 활용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리고, 그걸 우리가 할 거라는 것까지 말이다.
세르취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몬스터를 사육하다니! 그녀로선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대륙을 지배하는 인간들도 몬스터를 사육하진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
애초에 상식이 그랬다.
몬스터는 때려죽여야 할 존재라는 상식 말이다.
당연히 세르취도 그렇게 생각했다. 몬스터를 죽이면 고기도 얻을 수 있어 일석이조니, 안 죽일 이유가 없다.
“대단해···!”
“세르취. 난 방금 보여준 몬스터 제압술을 너에게 알려줄 생각이다.”
“정말?”
“그래. 세르취, 너한테 몬스터 사육 계획의 총책임을 맡길 생각이거든. 해볼 생각 있느냐?”
“응!”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해! 할게!”
“좋아. 넌 당분간 날 따라다녀라. 이것 말고도 네가 배울 게 많으니까.”
“알겠어!”
세르취가 실실 웃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계획 총책임자라니! 뭔가 이름부터 그럴듯하지 않은가!
중요한 일을 맡게 되었다. 족장이 자신을 좋게 본다는 뜻이다. 신임한다는 뜻이다.
“정말 열심히 할게!”
세르취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
“우리가 제압하고 길들여야 할 몬스터는 딱 두 종이다. 하나는 트롤이고, 다른 하나는 벨푸아다.”
벨푸아는 타조와 흡사하게 생긴 조류형 몬스터로서, 타조와 마찬가지로 날지 못하는 녀석이었다. 다만 타조와 차이점이 있다면, 덩치가 더 작다는 것 정도다.
하지만 절대 만만하게 볼 순 없었다. 벨푸아는 칼날처럼 뾰족한 부리와 날카로운 발톱 때문에 상당히 강한 축에 속하는 몬스터였다.
두 몬스터는 두 개의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는 바로 재생력.
확실히 숨통을 끊어 놓지 않는다면, 마치 좀비처럼 회복해 원상복구가 되고 만다.
마지막 하나는 바로 동족 포식.
그 두 몬스터는 동족을 먹는데 거리낌이 없다.
둘 다 무리를 이루지 않는 몬스터기에, 자기자신을 제외하곤 모두 적이었다.
그게 바로 카림이 두 몬스터를 고른 이유였다.
죽이지만 않고 살려둔다면, 거의 무한정으로 고기를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적은 개체만 가지고도 오크들의 고기 수요량을 충족시킬 수 있다.
심지어 몬스터를 먹일 사료도 많이 들지 않는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들이 상당히 강한 몬스터라는 것. 그래서 그것들을 제압할, 훨씬 강력한 무력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
그러한 사실을 사전에 충분히 알려준 후, 본격적인 교육이 시작됐다.
카림은 세르취를 위해 ‘하이 오크의 의지’에 나온 몬스터 제압술 관련 지식을 따로 집필해 문서로 남겼다.
카림이 제작한 문서를 보며 세르취는 트롤과 벨푸아의 체내 구조를 익혔고, 몬스터 제압술 특유의 마나 운용법을 배웠다.
그렇게 세르취는 종족을 위한 새로운 지식을 익혀나갔다.
‘세르취는 훌륭히 해내고 있다.’
그녀는 빠르게 몬스터 제압술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세르취가 완전히 숙달되면, 그녀를 공식으로 몬스터 육성 계획의 총책임자로 임명하고 그녀에게 일을 같이할 부하를 배속시켜 줄 생각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사육장 건설인가.’
트롤의 거대한 덩치를 수용하려면 사육장은 정말 커야 했다. 벨푸아의 넘치는 활력을 감당하려면, 또 넓어야 했다.
‘문제는 없다.’
모든 방법은 전부 ‘하이 오크의 의지’에 나와 있었다. 이게 있는 한, 아무것도 문제 되지 않을 것이었다.
모르면 익히면 되고, 역량이 부족하면 힘을 합하면 되니까 말이다.
‘계획대로 차근차근하면 된다.’
사육장이 건설되면, 생각해 뒀던 다음 목표를 진행할 생각이었다.
도시 건설.
카림은 도시를 세울 생각이었다.
오크들을 위한 도시를 말이다.
그곳은 앞으로 만들어나갈 제국의 중심이 될 것이다.
대수림 바깥으로 뻗어 나갈 원동력이 될 것이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우리 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 수는 없지. 우린 진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4천의 오크들이 하나가 되긴 했으나, 여전히 많은 오크가 숲 이곳저곳에 흩어져 사는 상황이었다.
카림은 그들을 한 곳으로 이주시킬 생각이었다. 그리고, 힘을 합해서 같이 도시를 건설할 생각이었다.
*
카이센 대수림 중앙 지역 근처의 어느 곳.
가죽 갑옷을 입은 사내가 머리를 짚고 표정을 찡그리고 있었다.
“아이고, 두야.”
사내, 김교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치겠네, 정말.”
가도 가도 끝없이 숲만 펼쳐지는 이 광활한 대수림 속을 정말 빨빨거리며 열심히 돌아다녔다.
중앙 지역을 돌아다니며, 곳곳에 설치해 놓은 마나 측정기의 이상 유무를 살폈고.
연락이 끊긴 부하, 카를이 머물만한 곳도 전부 뒤졌다.
“하. 마나 흐름은 정말 맛탱이가 갔고, 카를 이 새끼는 어디로 갔는지 도통 보이질 않고.”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계획했던 일이 어그러지려 하고 있었다.
그는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았다. 두 개비밖에 없었다. 표정을 확 찡그렸다.
“시벌, 이거 피우면 돛대네.”
이게 지구에서 챙겨온 마지막 담배였다. 이제 담배를 피우려면 지구에 다녀와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아프록시아 산 담배를 피우던가.
하지만, 아프록시아 산 담배는 정말 하나도 맛이 없었다.
“후. 어쩔 수 없지.”
빠르게 담배를 태운 김교헌은 눈앞의 허름한 오두막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오두막은 그의 부하, 카를의 거처였다.
이 오두막엔 사람의 온기가 전혀 없었다. 카를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카를 이 새끼 정말 뒈져버린 것 같아.”
안 되겠다. 더 자세히 살펴야겠다.
그는 눈을 감고 스킬을 썼다.
김교헌의 클래스 『어둠 추적자』의 고유 스킬인 『어둠 탐색』이었다.
흐으으으!
마치 영혼이 절규하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어둠이 사방으로 퍼졌다.
어둠은 마치 무언가를 수색하려는 듯, 넓게, 더 넓게 숲의 곳곳을 뒤덮었다.
한 30분가량 지났을까?
그는 눈을 부릅떴다.
“찾았다.”
그가 찾은 것은, 카를의 흔적이 마지막으로 끊긴 장소였다.
곧장 다른 스킬을 썼다.
그의 또 다른 고유 스킬인 『영혼의 기억』이었다.
그러자, 그의 머릿속에 하나의 장면이 재생되었다.
어느 오크가 도끼로 카를을 죽이는 장면이었다.
“엥?”
충격적인 장면에 그만 스킬이 끊기고 말았다.
“카를이 오크한테 죽었다고?”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 오크의 도끼에서 어른거린 푸른빛은 분명 오러였다.
“오러를 쓰는 오크라···. 과연 진짜 오크의 소행일까? 아니면 오크를 이용해 눈속임을 벌이는 괘씸한 개새끼의 짓일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같은 말을 반복하며, 한참을 곱씹던 김교헌이 이내 씩 웃었다.
“시발. 어떤 새낀지는 몰라도, 뚜껑 열리게 하네. 흐흐흐.”
이내 그의 웃음이 더 커졌다.
“안 되겠다. 조져야지. 물건도 되찾아와야 하고.”
입꼬리가 거의 귀에 걸렸다. 꼭 악귀 같은 웃음이었다.
한참을 웃던 김교헌은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오러를 쓰는 오크. 오러를 쓰는 오크라···.”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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