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lord in the Corner RAW novel - Chapter (337)
337화
심연의 씨앗이 발아하기 위해선 관리가 필요하다. 당연히 주변에 관리자가 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심연의 씨앗이 심긴 루시퍼의 근처에도 심연의 씨앗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관리자는 누구일까?
베르칸의 끄나풀은 과연 누구일까?
마계의 경우, 별로 이름도 존재감도 없는 웬 이상한 놈이었다. 직접 그놈을 찾아내 죽이기까지 했잖나.
그러한 마계의 경험을 떠올려 본바, 말론은 처음엔 당연히 존재감을 감춘 이름 없는 낯선 존재가 관리자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마계와 천상은 같지 않다.
마계는 넓고 천상은 좁다. 마계에는 첩자가 몸을 숨길 곳이 많지만, 천상은 그렇지 않다. 마계는 항상 혼란스럽기에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지만, 천상은 그럴 수 없다.
성도의 중앙 권력이 천상 곳곳에 골고루 미치는 천상 특유의 상황은, 다른 세력의 첩보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환경에서, 베르칸의 끄나풀이 과연 존재감을 완벽하게 숨기고 루시퍼에게 심긴 씨앗을 관리할 수 있을까?
아니다.
천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럴 확률은 굉장히 낮다.
하지만, 분명 베르칸의 끄나풀은 있었다. 그렇지 않고선 루시퍼의 몸속에 심긴 심연의 씨앗이 저렇게 발아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루시퍼의 폭주가 점점 더 심해지는 걸 보면 여전히 베르칸의 끄나풀이 천상 속에 존재한다는 뜻인데.
그놈은 과연 누구일까?
어떻게 날카로운 천상의 눈썰미를 속이고 천상에서 활동할 수 있을까?
한참 고민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자, 말론은 생각을 바꿔 봤다.
혹시 적은 가까이에 있는 게 아닐까?
왜, 지구엔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도 있지 않나.
어쩌면, 적은 내부에 있을 수도 있다.
루시퍼의 곁에 있으면서 천상의 경계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자.
아마도, 루시퍼가 아끼는 심복 중 하나가 아닐까.
말론은 그렇게 생각했다. 꽤나 그럴듯하지 않나. 루시퍼의 바로 옆에서 루시퍼에게 개수작을 가할 수 있는 위치라면, 루시퍼가 아끼는 심복 정도가 아니면 불가능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말론의 추측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루시퍼의 심복 따위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한 자.
“크, 큭! 미카엘. 네가 왜!”
“미안하게 됐군.”
“커헉!”
대천사 미카엘.
충격적이게도 베르칸의 끄나풀은 천상의 일곱 대천사 중 한 명이었다.
‘미친! 이건 예상 밖이군요!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이게!’
마계 대공을 죽이기 위해 천사들을 진두지휘하는 우리엘에게 다가가 등에 창날을 박아 넣는 그 충격적인 모습을 우연히 본 건 정말 행운과도 같았다.
‘지,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이건 기회입니다!’
이에 말론은 곧장 부하들에게 달려가 명령을 하달했고, 그렇게 반전의 기회가 다가오게 된 것이었다.
* * *
우리엘이 피를 토했다. 그는 찢어질 듯한 고통을 참으며 자신을 찌른 오랜 전우를 바라보았다.
“미, 미카엘. 네, 네가 왜…….”
“너의 임무는 우리 천상에 날뛰는 괴물들을 막아서는 것이지, 갑자기 난입한 마계 대공을 막아서는 게 아니다. 네가 평정심을 잃고 대공을 공격하지만 않았더라도 널 찌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커헉!”
우리엘의 눈이 마구 흔들렸다. 이리도 냉랭한 목소리라니. 이리도 냉랭한 눈빛이라니. 미카엘의 이런 모습은 이제껏 본 적이 없었다.
신성력을 뿜어 상처를 회복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가 대천사이듯, 미카엘 또한 대천사였다. 죽기 직전의 육신조차 되살리는 강한 신성력은 같은 대천사의 힘에 막혀 발휘되지 못했다.
“전혀 예상에 없었던 일이지만… 오히려 상황이 나아질 수 있겠군.”
“…….”
“우리엘, 너에겐 악의는 없다. 그러니 날 미워하지 마라.”
털썩.
우리엘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충격적인 상황에 대공을 막아서던 포위망이 느슨해졌다.
여기저기 우왕좌왕. 자신을 향한 경악을 느끼며, 미카엘은 힘을 담아 크게 외쳤다.
“모두 동요하지 마라! 우리엘은 타락한 자다! 악의 씨앗을 보유한 주제에 이리도 뻔뻔하게 대천사를 자처하는 자다! 나, 미카엘은 루시퍼를 저리 만든 괘씸한 범인을 잡았을 뿐이니, 너희들은 동요하지 말고 원래 너희들이 맡은 임무를 수행하라!”
여기저기 동요가 일었다. 우리엘 님이 배신자라니? 타락한 자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냔 말인가?
그 말이 진짜인가? 혹은 거짓인가?
무엇이 진실인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진실과 거짓이 혼재된 혼돈투성이. 천사들은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헤맸다.
믿자니 뭔가 꺼림칙하고, 안 믿자니 미카엘의 표정이 너무나 진실했다.
우리엘이 일어나 뭐라고 말을 하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우리엘은 털썩 쓰러져 기절한 뒤였다.
그런 동요를 미카엘은 읽었고.
“나, 대천사 미카엘의 이름과 존재를 전부 걸고 너희들에게 맹세하노니, 하늘을 우러러 내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음을 고하는 바다.”
이내 존재의 맹세를 했다.
천사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저런 존재의 맹세라니!
모든 걸 다 걸고 하는 저 말이야말로 진심이다.
저걸 어긴다면 대천사로 쌓아 온 모든 걸 버린다는 말과 같으니까.
모두의 표정에 서린 의심이 사라졌다.
각자의 위치로 빠르게 흩어지는 병력. 빠릿빠릿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카엘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내 미카엘이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화륵!
갑자기 날아오는 화염.
미카엘은 고개를 틀어 피했다. 애꿎은 바닥으로 날아간 화염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누구냐.”
“접니다.”
이내 다가오는 한 천사. 미카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넌… 라파엘이 아낀다는 애송이 놈이로군.”
“예. 기억하고 계셨군요! 참으로 영광입니다!”
어느새 다가온 말론이 생글생글 웃으며 미카엘의 앞에 섰다.
“분명 동요하지 말고 각자의 위치로 가라고 명령했을 텐데.”
“그랬죠.”
“명령 불복종인가?”
“예.”
미카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은 전쟁 상황이다. 상관에 대한 명령 불복종은 죽음으로 다스릴 것이니라. 라파엘이라고 해도 널 보호할 수 없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닐 텐데.”
“맞는 말이긴 합니다. 당신이 정말 상관이라면 말이죠.”
“뭐?”
“당신이 미카엘이라면 그렇겠죠. 하지만 당신이 미카엘이 아닌데 제가 왜 당신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또랑또랑한 말론의 음성에 움직이던 천사들이 뒤돌아봤다. 삽시간에 모두의 시선이 꽂혔다.
미카엘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저도 긴가민가했습니다. 근데 확실히 알겠군요. 당신이 누군지.”
“…….”
“오랜만입니다, 칼.”
조금의 동요조차 없던 미카엘의 눈이 흔들렸다.
* * *
주시자.
심연 대군주 베르칸의 명령만을 수행하는 직속 부하들인 그들은, 베르칸의 다른 부하들에게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갖췄다.
그건 바로, 심연 세계와 심연 바깥 세계를 마음껏 오갈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
그것과 더불어 ‘색’을 갖춘 모습으로 완벽히 변신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그들은 심연 바깥 세계에서 전천후 요원 역할을 수행한다고 한다.
주시자가 대체 몇 명이나 있는지, 어디서 뭘 하는지는 심연 세계에서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개중에서도 꽤나 유명한 몇몇 존재가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칼이었다.
심연 심층 세계 내에선 일명 ‘천의 얼굴’로 불리는 자.
자신이 죽인 상대의 육신의 모습은 물론, 그자의 능력마저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기괴한 능력을 보유한 자.
도플갱어 킹, 칼.
베르칸을 제외한다면 그 누구도 본모습을 본 적 없다는 유명 주시자가 말론의 앞에 서 있었다.
“아무래도 보통 애송이가 아닌 모양이군.”
“칭찬입니까? 고맙습니다. 하하.”
“넌 누구냐.”
“저요? 말론입니다만.”
“거짓부렁은 통하지 않는다.”
한껏 굳어진 얼굴로 칼이 땅을 박찼다. 창이 쏟아지며 신성력을 뿜어냈다.
말론이 황급히 도약했다. 후웅! 간발의 차로 창이 빗나갔다.
이어진 삼연격. 말론은 신들린 몸놀림으로 그 공격을 모조리 피해 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쏟아지는 공격. 그와 함께, 칼의 의식이 파고들었다.
-넌 어디서 내 정체를 들었느냐.
말론은 피식 웃었다. 입으로 떠벌리긴 보는 눈이 많으니 이렇게 의식으로 전달하겠다는 건가.
“글쎄요. 제가 당신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혹시 당신을 직접 본 건 아닐까요?”
-날 아는 내계인은 아무도 없다. 난 그 누구에게도 정체를 들킨 적 없다. 그것은 천상도 예외는 아니지. 그러니 넌 천사가 아니다. 네 진정한 정체는 과연 무엇이냐?
“이거, 당신 스스로를 너무 높게 평가하는 것 아닙니까? 당신이 누구에게도 정체를 들키지 않았다고 어떻게 확신합니까? 이크!”
말론이 황급히 고개를 틀었다. 그의 머리가 있던 자리에 창이 지나갔다.
하마터면 머리가 잘릴 뻔했지만, 말론의 입은 쉬지 않고 나불거렸다.
“이거 죽을 뻔했군요! 도플갱어 주제에 대단합니다!”
칼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한껏 치켜뜬 도끼눈으로 죽일 듯 말론을 노려봤다.
-말을 삼가라. 듣는 귀가 많다.
“그거야 당신 사정이지 제 사정이 아니잖습니까. 제가 뚫린 입으로 뭘 나불거리든 당신이 무슨 상관입니까?”
-…죽인다.
압박감이 진해졌다. 칼의 몸놀림이 더욱 민첩해지고, 쏟아지는 공격은 강해졌다.
그 눈에는 살기가 한껏 담겼다. 아마 진심으로 임할 모양.
말론은 강한 위기를 느꼈다.
‘저, 참 운도 지지리도 없는 것 같습니다. 왜 하필 미카엘일까요?’
도플갱어 킹, 칼의 능력은 죽인 상대의 능력을 고스란히 사용하는 것.
당연히 놈이 사용하는 저 미카엘의 힘은 대천사 미카엘이 사용하던 수준 그대로다.
쉽게 말해, 말론은 대천사 미카엘과 동등한 수준의 적과 싸우고 있다는 소리다.
그게 어찌 쉬우랴?
더구나, 놈은 미카엘의 외견과 능력을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던 모양. 능력 활용의 숙련도도 높을 테니 말론도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을 아는 자는 얼마나 있느냐?
“저밖에 없습니다만.”
-그럼 네놈을 죽이면 끝이겠군.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왜 우리엘을 찌른 거죠?”
-네놈이 알 바 아니다.
“아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당신의 임무는 루시퍼가 더욱 날뛰도록 상황을 만드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저 마계 대공을 막아야 할 텐데, 마계 대공을 죽이려는 우리엘을 찌른다? 암만 생각해도 앞뒤가 안 맞는데요?”
이내 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네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 같으니 자세하게 말 좀 해 주십시오.”
-네놈이 보기에, 갑자기 난입한 저 마계 대공이 과연 나의 적으로 보이느냐?
“그렇게 보이는데요?”
-틀렸다.
칼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어설픈 네놈에게 내가 친히 알려 주지. 저 마계 대공 또한 우리의 편이다.
“엥?”
-이제 알겠느냐? 멍청한 녀석. 흐흐.
말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랍니까?’
대공에게 심연의 씨앗이 심긴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꼬록이 덕분에 제거되었지 않나.
비록 골수까지 파고든 심연력까지는 제거하지 못했지만, 정신까지 완전히 오염되는 것만큼은 막아 냈다.
비록 점점 심연력에 의해 미쳐 갈 수 있을지언정, 지금의 대공은 멀쩡한 대공이다.
자신의 오랜 친우. 강함을 위해 이름마저 포기했던 바보 같은 녀석.
그런데 뭐?
같은 편이라고?
‘쟤, 아무래도 뭔가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저놈은 마계 대공의 몸속에 심긴 심연의 씨앗이 제거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
그러니 저런 생각을 하지.
아마, 갑작스레 난입한 마계 대공이 자신을 돕기 위해 나타난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한데.
과연 그럴까?
“당신의 편이라고요?”
-그렇다.
“전 아닌 것 같은데요. 저거 보십시오.”
말론이 손가락을 뻗어 가리켰다.
“저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뭘 보라는… 헉!
그 끝엔, 루시퍼의 복부를 관통한 대공의 주먹이 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