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powered Sword RAW novel - chapter 114
‘오러를 얇고 긴 실처럼 홀려보내, 체내의 신경계를 외부로 확장하듯이
무아지경에 들어선 레온의 눈이 체 내를 통찰한다.
셀 수도 없이 뻗어나가고 엉켜있는 선, 주기적으로 신호를 주고받는 이 음줄, 신경계와 모세혈관의 혈류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극대화된 집중력
이 오러를 불러일으켰다.
많이 쓸 필요도 없다.
한 줌, 아니 반 줌만도 못한 양의 오러가 미약한 흐름으로 손바닥을 향한다.
그때 였다.
‘아!’
레온의 앞머리에 가려져있던 미간 에서 은은한 빛이 샘솟아, 지지부진 하던 오러를 창 안에 밀어넣었다.
‘기원자의 성흔’이 정신력을 더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창의 내부구조가 순간
적으로 느껴졌다. 보이는 것도 아니 라, 들리는 것도 아니라, ‘느껴졌다’. 어떤 목적으로 이 형태를 갖추었는 지, 얼마나 공들여서 만든 것인지.
“탄성에 집중하려는 목적으로 연성 을 높였군요. 강도는 좀 떨어져도 원 심력이나 반탄력을 이용하면 기술 자체의 위력은 큰 차이가 없을 테니 까.”
“그, 그렇소.”
갑작스러운 존댓말에 놀란 드워프 가 말을 더듬었지만, 아직 무아지경 에서 돌아오지 못한 레온은 개의치 않았다.
강도의 부족, 그 약점을 파고든다.
중심부가 아니라 자루 끝부분을 양 손으로 쥔 채, 검이라도 잡은 것처럼 상단세로 들어올린다. 엘시드와 다르 게 한 번에 부러트릴 자신도,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한 번에 꺾어버리고 싶다는 마음만이 남았다.
‘ 벤다.’
레온의 정수리에서 발등까지 한 줄 기 벼락이 내리꽂혔다.
일섬 (一1켜).
고요하기까지 한 수직베기가 대장
간의 허공을 가르자,
끼기이익!
정가운데부터 구부러진 창의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후우.”
극한의 집중력이 사그라지니 몸 전 체가 근육통을 호소하고, 몇 배나 강 하게 뛰어댔던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온은 웃고 있 었다.
엘시드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닌 성 취였지만, 그는 한 걸음을 더 나아갔 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그 얼굴을 본 대장장이들의 심정까지는 고려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저 인간, 웃고 있잖아?”
“…마귀 같은 놈이야.”
“•••우리들의 솜씨가 고작 이 정도 였다니.”
레온을 두려워하는 자, 혹은 꺼리는 자. 그리고 스스로의 미숙함을 부끄 러워하는 자들까지.
마키나 대장간의 분위기가 낮게 가 라앉았다.
수십 자루의 병장기가 제 기능을 잃은 채로 널브러져있는, 이 참혹한 광경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었다. 승부를 권한 책임자로서 마이스터
페드로가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의 승리일세.”
레온은 그제서야 주위를 한 번 둘 러보고, 떨떠름한 얼굴로 그 결과를 받아들였다.
〈로드릭의 전승〉은 결국 300년만에 재현되고 말았다.
* 水 氷
“나한테 클레임 좀 넣겠다고〈로드 릭의 전승〉에 도전하는 것도 모자라 서, 기어코 이기기까지 한 거냐…!?”
마침내 세 사람의 눈앞으로 온 드 워프, 롬바트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 로 중얼거렸다.
13에어리어에서 잘 나가는 장인이 라고 해도 1에어리어에선 도제급에 불과하다. 도제 한 명 때문에 대장간 의 작업이 멈춘 것도 모자라 장인들 이 애지중지하던 무구들까지 박살났 으니, 그의 고생길은 확실하게 예약 된 거나 다름없었다.
“뭐, 클레임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심각한 사안인데요.”
그래도 대륙 단위로 불어닥치게 될 피바람에 비하면 별 거 아니었다. 레
온은 한 점의 동정심도 내비치지 않 으며, 뒤쪽에 서있던 갈론드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처음에는 제 신세에 넋이 나가버렸 던 롬바트도 이내 귀를 기울이는가 싶더니, 크게 놀라면서 외쳤다.
“마검이라니! 내 검이 그렇게 될 리 가 없다!”
대장장이에게 있어서 마검은 곧 타 락의 상징이며, 악감정을 담아서 검 을 벼려냈다는 증거였다.
롬바트의 경악을 이해한 레온이 즉 시 뒷말을 덧붙였다.
“당신이 의도하고 만들었다는 게
아닙니다. 재료로 쓴 광물 일부분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때 사용했던 광물이라면… 세 종류밖에 없는데.”
“세 종류라면?”
“현철과 미스릴, 극소량의 아다만티 움. 몇 번을 검사했는데 그런 문제가 생겼다니? 말도 안 된다고. 갈론드, 너도 오러를 흘려넣어서 검을 살펴 보지 않았나.”
갈론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 면서 대답했다.
“물론이지. 그렇게 했는데도 알 수 없었네. 검으로 피를 본 후에야 놈이
본성을 드러냈으니.”
“ 피를..‘?”
“음, 어쩌면 광물을 오염시킨 놈은 생명체의 피에 반응하는 걸지도 모 르겠군.”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롬바트도 겨우 납득한 것처럼 보였 지만, 그들이 광물을 캔 출처를 물어 보자니 또 난감한 표정으로 변했다.
“미안하지만 재료로 쓴 광물의 출 처는 2급 기밀이야. 길드 조사원 자 격으로는 열람할 수 없어.〈로드릭의 전승〉에 따른 요구라도 권한 밖의 일은 들어줄 수 없다고.”
“끄응….”
“어떻게든 듣고 싶다면 마이스터 페드로에게서 허락을 받는 수밖에 없겠지.”
돌고 돌아서 제자리였다.
세 사람이 다시 페드로를 찾자, 꼬 장꼬장한 모습을 되찾은 그가 이야 기를 듣고 말했다.
“광물 출처에 대한 정보인가.”
페드로는 얼마 고민하지도 않고 말 했다.
“별 거 아니군. 내가 동행한다면 그 자리에서 열람할 수도 있네. 광맥의
위치를 알아봤자 캘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도와주실 겁니까?”
“내가 어째서 자네들을 도와줘야하 나?”
그들 모두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유겐트스틸’의 도전을 준비하던 중 에 찾아와, 산통을 다 깨버린 일행에 게 도움을 줄 이유가 없다.
그러나 레온은 앞서 맞부딪혔던 일 로 돌파구를 찾았다.
“대장간을 굴리고 싶으시다면 절 도우셔야합니다.”
“하! 마이스터 대장장이를 협박 따 위로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인간 꼬마?”
“설마요. 저는 그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분입니다.”
“ 뭐라?”
300년 전의 사건과 달리〈로드릭 의 전승〉은 다대일이 아닌 일대일로 성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레온은 페 드로만을 제외한 대장장이 모두를 혼자 꺾어버렸으니, 그들 모두에게 한 번씩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 유하고 있었다.
상황파악을 한 페드로가 뱁새 같은
눈을 부릅떴다.
“네, 네 녀석…!”
“이렇게 덥고 습한 곳에서 계속 일 하시면 다들 지치시겠죠. 시원한 맥 주라도 마셔가면서 한 달쯤 쉬는 건 어떨까요?”
“빌어쳐먹을 로드릭의 재래 같으 니!”
오직 유겐트의 드워프들만 즐겨 사 용하는 욕설이었다.
카렌과 갈론드는 그 극찬과도 같은 욕설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레 온만은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얼어 붙었다.
몇 초 후에야 가까스로 회복한 그 가 말했다.
“협박에 굴복하는 것 같아서 싫으 시다면, 승부를 하죠.”
페드로가 그 말에 솔깃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내게〈로드릭의 전승〉을 걸 셈이 냐?”
“솔직히 이 상황은 마이스터 페드 로의 억지잖아요? 그러니 제가 설명 하는 방식대로 진행했으면 합니다.”
“…한 번 들어나보지.”
“간단합니다.”
자꾸만 치밀어오르는 양심의 가책 을 억누르면서, 레온은 제 허리춤에 걸린 성검을 가리켰다.
평상시와 같이 평범한 롱소드로 위 장한 모습이었다.
“마이스터 페드로의 작품과 제 애 검이 승부하는 겁니다. 몇 자루를 가 져와도 상관없으니, 먼저 포기하거나 검이 부러지면 승패가 결정되는 걸 로 하지요.”
“크하하하하하!”
그의 제안이 어떻게 들렸는지, 페드 로는 근엄한 표정까지도 일그러트리 며 요란한 목소리로 웃어댔다.
뒤이어 제 가슴팍을 쾅쾅 때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내 체면을 살려주려는 모양 인데, 제법 기분이 나브지 않은 제안 이구나! 첫 만남은 불쾌했지만, 너의 역량은 내가 본 전사들 중에서도 최 상위권이다. 그 검을 부러트린 후에 나의 역작을 선물하도록 하지!”
“ 어?”
“준비는 필요없다! 이곳은 내 대장 간이니, 손에 잡히는대로 가져오면 될 터!”
그렇게 말하고서 쿵쿵 멀어져가는 페드로의 뒷모습을, 본의 아니게 나
락으로 떠민 레온이 멍하니 바라보 았다.
그 심정을 조롱하듯이 엘시드가 입 을 열었다.
[제자야.]
‘••••••왜.’
[나도 못 부러트린 성검을 저 꼴통 꼰대한테 부러트려보라고 권유하다 니, 너무하는 거 아니냐?]
변명할 말도 다 잊어버린 레온은 그저 침묵했다.
[캬하하하! 맨날 마검마검거리더니, 너도 역시 나 못지않게 지독하구만! 내가 죽어서도 제자 하나는 잘 골
랐어!]
‘… 시끄러워.’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더니. 내 제자답다!]‘시끄럽다고, 이 마검놈아!’
엘시드와 투덕거리는 그의 시야에, 저 멀리서 웃는 얼굴로 다가오는 페 드로가 잡혔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였다.
“크홍, 흑, 어흐흑, 흐흑, 끅.”
레온 일행은 장례식이라도 찾아가 는 듯한 분위기로 마키나 대장간을 빠져나왔다. 세 사람의 앞에 선 것은 눈물과 콧물로 꼴불견이 된 마이스 터급 대장장이, 페드로였다.
유겐트 왕국 내부에서 순환하는 물 류의 규모는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광산지대에서 채굴된 원석들이 제련 소가 밀집된 에어리어로 옮겨져, 그 곳에서 추출된 금속들이 다시 대장 간에 흘러들어가서 온갖 병장기의 재료가 된다.
또한 1에어리어처럼 수제작으로 일 관하는 곳이라면 모를까, 분업제도가
정착되어있는 에어리어의 무구 생산 량은 그 전과 비교해서 최소 열 배 이상이었다.
300년 전이면 한 자루만 나돌아도 입소문을 탔던 드워프제 무구가 산 더미처럼 쏟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생산량을 감당하기 위한 유통체제가 발달했으며, 왕국 전역으 로 이동할 수 있는 철마(鐵馬)와 화 물용 비공선이 완성되면서 결국 정 점에 도달했다.
단 하루에 움직이는 물류만 해도 중소왕국의 몇 달치가 될 정도였으 니, 물류의 이동만을 전문적으로 기 록하고 처리하는 기관이 필요불가결
할 수밖에 없었다.
“크흥, 여기일세.”
가까스로 흘러나오는 콧물을 삼킨 페드로가 말했다.
기록열람실 (記錄閱覽室).
왕국 전체의 물류이동을 관할하는 곳. 페드로가 없었더라면 출입 자체 가 불가능한 2급 중요시설로, 광물 의 출처를 밝히기 위해서는 꼭 협조 를 받아야하는 곳이었다.
유겐트답지 않게 쇠 대신에 종이냄 새가 진하고, 드워프보다 인간이 주 로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기도 했 다.
“제아무리 필요한 일이라지만, 제 손에 망치 대신에 도장을 쥐고 싶어 하는 드워프가 어디 있겠는가?”
“ 과연.”
갈론드가 그 말에 공감하듯이 고개 를 끄덕였다.
“적성에 안 맞는 자리만큼 괴로운 것도 없지. 내가 용병의 삶을 선택했 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으니.”
“흐응.”
그러자 카렌이 뚱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왠지 용병치고는 말투가 좀 딱딱
하더라니, 귀족이었구나?”
“유년기에 배운 것들은 잘 고쳐지 지가 않더군. 벌써 20년은 더 지난 일인데도 말이야.”
귀족 출신의 모험가나 용병이 그렇 게까지 드물지는 않으나, A랭크까지 올라간 자는 몇 없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대접받을 수 있는 실력자, 금패를 지닌 자들이 바 로 A랭크였다. 어릴 적부터 그 두각 을 보일 수밖에 없는 재능의 소유자 들이니, 가문에서도 그들을 놓치려고 하지 않을 터였다.
갈론드는 쓰게 웃으면서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이 런.”
뒤이어 하멜의 폭발화살을 안면으 로 받아. 쥐털처럼 짧아진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민망해했다.
엘시드가 그 꼴에 키득키득 웃어대 다가 말했다.
[게다가 드워프들의 굵은 손가락은 서류작업에 안 맞거든. 악력도 쓸데 없이 강해서 종이가 찢어지기 쉽고, 대장장이로서 일할 때 말고는 성질 머리도 더러워서 민원인하고 멱살을 잡고 싸우는 일이 빈번했어.]‘아, 그래서 인간들하고 어울리게
된 거야?’
[바로 유겐트가 이종연합국이 된 이유지. 역사책은 뭐라고 적어놓았을 지 모르겠다만.]그건 드워프라는 종족의 한계였다.
현장직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소규모였다.
대장간 한두 개를 운영하는 정도라 면 몰라도, 왕국 규모가 되면 사무직 과 행정직은 필수적이었다. 광물을 캐고, 제련소를 굴리고, 무구를 만들 어내는 것 이외의 작업들은 드워프 족보다 인간족이 몇 배나 더 우월했 다.
지금 네 사람을 상대하고 있는 사 람도 인간이었다.
“어서 오세요. 마이스터 페드로. 오 랜만이군요.”
창구 맞은편에 앉은 중년여성이 상 냥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한 번 숙 여보였다.
페드로가 한 걸음 나오면서 그녀와 마주앉았다.
“오랜만이야, 케이트. 잘 지냈나?”
“저야 뭐 무탈하지요. 마이스터 페 드로야말로 이 열람실을 찾으시다니, 특별한 용무라도 있으신가요?”
“끙,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 야.”
여덟 가닥으로 꼰 턱수염을 당기며, 페드로는 목구멍에 탁 걸려있었던 말을 간신히 토해냈다.
“지난주에 내 대장간으로 부른 롬 바트, 그 녀석의 작업실이 13에어리 어에 있거든? 그쪽으로 들어간 광물 세 종류가 어느 광산지대에서 나온 건지 좀 알아보고 싶어서.”
“세 종류라고 하시면?”
“현철과 미스릴, 아다만티움.”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몇 분쯤인가 서류의 산을 뒤적거리 던 케이트가 곧 무언가를 찾아냈다. 그녀는 손에 쥔 빨간봉투를 의아한 표정으로 살펴보다가, 난감한 표정으 로 네 사람을 돌아보았다.
긍정적인 표현으로는 보이지 않았 다.
“마이스터 페드로, 정말 죄송합니 다.”
“뭐야? 안 된다는 거야?”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해당 광구 (鑛區)에 1급 접근제한이 걸려있어 요. 채굴은 물론이고 그 광구의 정보 를 열람하는 것 또한 심의를 거쳐야
합니다.”
“1 급?!”
터무니없는 말에 경악한 페드로가 입을 딱 벌렸다.
이 기록열람실도 2급 중요시설에 불과한데, 1급의 제한령이 걸려있다 면 실장급이 나서도 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1급이면 제한령을 걸 수 있는 인물 도 극소수였다. 국왕이나 각 에어리 어의 관리자, 마이스터급 대장장이들 중에서도 겨우 너덧 명이나 될까 말 까다.
“누구야? 도대체 누가 그 접근제한
을 걸어뒀지?”
“아, 그게….”
명령권자의 이름을 찾아보는지, 발 간봉투 밑부분을 살피던 케이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반응부터가 대상의 높은 지위를 증명했다.
그녀가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말 하려는데,